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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70)화 (168/201)

백루찬의 번개가 순식간에 몰아치며 진마하를 타점으로 공격해 갔다. 그러나 진마하는 금세 해준을 끌어안고 몸을 피했다. 사라진 잔상을 향해 전류가 관통했다. 진마하는 뒤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들쳐 업듯 끌어안은 해준에게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백루찬의 눈이 벌겋게 익었다. 과한 집중과 스트레스에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 안에 콰직, 콰직 소리가 나며 사방에 전선과 전등들이 터져 나갔다. 그는 안광을 뿌리며 진마하에게 경고했다.

“내려놔.”

“싫어. 내 거야.”

콰드득-!

백루찬의 발밑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전류는 진마하의 코앞에서 멈췄다. 차해준을 안고 있는 탓에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진마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뒤로 크르륵 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노란 눈들이 백루찬을 주시했다. 진마하는 해준을 끌어안고 그들 사이로 몸을 뺐다.

“사이가 좋더라고, 둘이. 질투 나게.”

“…내놔.”

“그러고 보니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네? 처음은….”

-콰쾅!

플랫폼 한쪽 면에 갈퀴로 긁은 듯 뇌전이 벽을 훑고 지나갔다. 남아 있던 스크린 도어가 와장창 깨져 버리고 깔려 있던 철도에 불이 확 붙어 일어났다가 꺼졌다. 그 앞에 있던 몬스터들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하고 까맣게 타들어 갔다. 진마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그래, 그 여인. 네가 사랑했던 어머니였지. 이번에는 뭐야?”

“…닥쳐.”

“연인?”

백루찬의 몸이 흐릿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돌파해 진마하 앞까지 온 그가 뇌전을 머금은 팔을 휘둘렀다. 진마하는 해준을 일부러 그 앞에 대며 몸을 돌려 피했다. 해준을 보고는 멈칫한 백루찬을 향해 그대로 다리를 들어 옆구리를 찼다. 백루찬이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 처박혔다.

“가엽기도 하지. 오로지 소중한 이를 위해 아등바등 사는데 모두 내 손에 빼앗겨 버려서.”

진마하는 중얼거리며 해준을 꽉 끌어안고 소중하다는 듯 창백하게 질린 뺨에 제 얼굴을 맞댔다.

“그런데 어쩌겠어. 내게도 유일한걸.”

진마하가 백루찬을 응시했다. 백루찬이 비척비척 일어나며 전류를 사방으로 터트렸다. 표정 없는 얼굴이지만 진마하는 그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차해준이 제 손에 잡힌 이상 공격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진마하는 조금 짜증을 느꼈다. 날카로운 시선이 백루찬을 향했다가 다시 차해준을 향했다.

“그렇다면 더욱 가져 봐야지, 나도.”

그렇게 소중한 무언가를. 앞뒤 분간 없이 덤벼들게 만드는 그런 인간을.

진마하는 백루찬에게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의 뒤로 몬스터들이 겹겹이 쌓였다. 놈들은 노란 눈을 빛내며 백루찬에게 덤벼들었다.

-크아악!

그는 핏발 선 눈으로 멀어지는 진마하의 뒷모습을 끝까지 노려봤다.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사방에 썩은 내를 풍기는 몬스터들이 백루찬을 감쌌다.

“이까짓 것들….”

- 콰지지직!

사방에 전류가 휘몰아쳤다. 플랫폼에 황금빛이 번쩍이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린다. 단백질을 태우는 듯한 역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백루찬은 진마하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무것도 아니야.”

진마하는 차해준을 데리고 사라졌다. 또 제 앞에서 빼앗겼다.

백루찬은 이를 악물었다.

“빼앗기지 않아.”

절대. 백루찬의 몸에서 황금빛 전류가 터져 나왔다. 머리카락과 코트 자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각성자의 폭주. 백루찬의 잿빛 머리카락이 더욱 하얗게 세어 버리기 시작했다.

차해준을 어떻게든 되찾을 것이다.

“다시는….”

놓치지 않아.

❖ ❖ ❖

“생존자, 생존자입니다!”

“아악, 연희야!”

“엄마!”

광덕역 계단으로 지하철 내부에 숨어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과 응급대원들이 재빠르게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극적으로 상봉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들을 보며 홍희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홍희가 기다리는 사람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십 명의 생존자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작전팀장이 하얗게 죽은 얼굴로 주저앉았다. 우반희는 그를 보고 한숨을 쉬곤,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희수야!”

끝에 올라온 사람은 피투성이에 그을음투성이로 엉망진창인 몰골이었다. 유일하게 그만 그랬다. 홍희는 그래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정희수를 꽉 끌어안았다.

“고생했어. 진짜 잘했어. 잘 버텼어.”

“아니에요…. 한솔이는… 모르죠?”

“일단 말은 안 해 놨는데, 눈치가 워낙 빨라야지. 기사도 완전히 막을 수도 없고. 대강 알아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의젓하게 있어. 상황은 어떻게 되었던 거야?”

“그거 나도 묻고 싶은데.”

정희수와 홍희 뒤로 다가온 우반희가 물었다. 정희수는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몬스터들이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그때 때마침 제가 각성해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고요. 그리고 해준 형이 왔었는데, 형은 지금 어디 있나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각본 요원들과 응급대원,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까지 번잡하게 움직이고 있는 바람에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희수의 물음에 홍희와 우반희는 입을 다물었다. 정희수는 그들을 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혀… 형은요? 해준 형, 다쳤는데…! 어디, 어디 있어요?”

“…올라오지 않았어.”

정희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미간을 꾹꾹 누르던 홍희는 정희수에게 다시 물었다.

“길마는? 백루찬도 내려갔잖아.”

“길드장님 덕분에… 모두가 나올 수 있었어요….”

정희수는 이제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해준이 형이, 칼에, 그놈 칼에 맞아서-”

“…….”

말을 잇지 못하는 정희수를 홍희가 달래 주며 한숨을 삭였다. 정희수의 말을 토대로 하면 게이트를 연 남자, 검은해의 교주인 그 남자와 마주친 게 틀림없었다. 분명 전투를 벌였겠지. 그리고 해준은… 사라졌다. 홍희는 입술을 깨물며 집중해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길마는 어디 갔어? 길마도 안 올라왔는데…!”

정희수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홍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백루찬이 항상 끼고 있던 반지였다. 이것은 길드 내에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항상 끼워 놨던 거였다. 그리고, 조회하면 추적기를 단 모든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길드장의 물건이었다. 홍희는 그것을 받아서 꽉 쥐었다.

“찾으러 간다고 하셨어요. 이걸 드리면 부길마님께서 알아보실 거라고-.”

“…잘했어. 고생했어. 희수야. 너는 이제 쉬어. 한솔이도 걱정하니까.”

“-해준 형은…! 길드장님은 어떻게 되신 거예요?”

정희수의 물음에 홍희는 웃어 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마.”

홍희는 간단하게 말하고 우반희와 눈짓을 교환했다. 정희수를 응급대원에게 맞긴 홍희는 우반희와 함께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며 말했다.

“위치 추적 바로 가능?”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거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루찬이가 하나 더 가지고 있거든.”

홍희가 씩 웃었다.

“혹시 몰라서 호출기에 다 심어 뒀어. 이건 조회해서 찾아오란 뜻이야.”

우반희가 픽 웃었다.

“준비성 철저하네. 마음에 들게.”

❖ ❖ ❖

폐아파트들이 높게 서 있는 유령 단지 내에, 무언가가 허공에서 불쑥 솟아 나타났다.

해준을 끌어안은 진마하였다. 그는 공사 잔해물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그곳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품에 바짝 안아 든 차해준에게서 나오는 핏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으윽….”

진마하는 제 품에 있는 차해준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고통에 힘겨운지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잠시 품에 안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유심히 살핀 그는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중앙에 있는 건물로 올라간 그는 중간층에서 멈춰 섰다. 창문을 달지 않아 뻥 뚫린 공간에 소파와 침대, 몇 가지 물건들만이 그를 반겼다. 진마하가 지내는 생활 공간이었다.

진마하는 상처 입어 정신을 못 차리는 해준을 침대에 눕히고는 뚫려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창가 앞에 서서 제 손을 들어 올렸다.

반투명해진 손바닥을 보며 진마하는 실소했다. 세상에서 그의 존재가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경고.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경고.]

[경고.]

눈앞에 온통 새빨간 경고 메시지투성이였다. 그의 권한은 점점 축소되고 있었고, 시스템은 오류를 아예 제거하려는 것처럼 진마하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아쉽진 않아. 어차피… 같이 갈 거니까.”

혼자서 지워질 수 없었다. 차라리 세계와 같이 침몰할 것이다.

그는 다시 등을 돌려 침대에 눕힌 차해준에게 다가갔다.

창백하게 질려 식은땀을 흘리는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뺨을 쓸어내렸다. 멈추지 않는 피 때문에 하얀 침대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가련하게도 보이는 세계의 구원자. 진마하는 이 무력한 모습이 더없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침대맡에 앉아, 차해준의 상처를 꾹꾹 눌러 헤집었다.

“큭, 으윽…!”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비트는 차해준을 보고 진마하는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차해준의 상체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내 유일한 동지. 나에게도 보여 줘.”

진마하의 한쪽 눈이 파랗게 빛났다. 그는 가지고 싶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행하는 희생.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해서 지옥 같은 게이트에도 뛰어 들어가 구하는 그 마음.

외로운, 세계에 홀로 있는 자신에게도 그것을 보여 줬으면. 알려 줬으면. 겪게 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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