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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72)화 (170/201)

하늘에서 비와 천둥이 몰아쳤다. 폐아파트 한 층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의 전류가 백루찬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이지를 가진 동물처럼 바닥과 벽면을 기어가며 진마하를 덮쳤다. 

- 콰쾅! 콰지지직!

그것은 진마하의 앞에서 모조리 튕겨 나갔다. 반원 형상으로 형성된 실드가 백루찬의 공격을 모두 막고 있었다. 하지만.

- 카직!

진마하의 눈썹이 움찔했다. 쏟아부어지는 공격에 버티고 있던 실드가 금이 가며 전류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진마하는 다급히 팔을 떨치며 옆으로 피했다. 그 순간, 눈 깜박할 사이 다가온 백루찬이 진마하의 멱살을 잡고는 곧바로 난간 너머로 메쳤다.

백루찬은 확인 사살을 하듯 놈에게 스킬을 내리꽂았다.

[낙뢰]

하늘에서 천둥이 치며 번개가 떨어졌다. 백루찬은 금빛 안광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마하가 떨어진 자리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해준을 살폈다.

붉은 피가 웅덩이가 질 만큼 많이 흘러나와 있었다. 누워 있는 차해준의 얼굴은 핏기가 싹 빠져서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백루찬은 안색을 굳힌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차해준에게로 향했다.

도중에 무릎이 꺾여 비틀거렸지만, 백루찬은 멈추지 않고 차해준 앞에 도착했다. 창백한 얼굴. 원래도 안색이 허예서 걱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백루찬은 자꾸만 속에서 용솟음치려는 분노를 삼킨 채, 고개를 숙여 그의 심장 부근에 귀를 댔다. 야트막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느껴졌다. 심장이 느리게 쿵- 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더듬대며 상체를 조심스럽게 살피자 축축한 피가 그대로 느껴졌다. 다친 상처는 그대로였다.

백루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전류가 계속 새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른 채 떨리는 손으로 차해준의 뒤통수를 받쳐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재밌지 않아? 그렇게 강한 남자가 제 몸도 못 가누고 쓰러진 모습이.”

뒤에서 진마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루찬은 차해준을 붙잡고 경계하며 뒤를 돌아봤다. 난간 끄트머리에 놈이 서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선 진마하는 숨을 깊게 내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그의 주변으로 파지직 하며 전깃불이 튀었다. 머리끝이 타들어 갔지만 진마하는 멀쩡한 상태로 백루찬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둥이도 직접 찢어 줄까.”

서슬 퍼런 백루찬의 말에 진마하는 어딘지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왜? 너도 이런 걸 바라왔잖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세계 최강자라니. 밟아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놓고 네 밑을 기게 만들고 싶어 했잖아. 나는 네가 그렇게 차해준을 보고 있다고 느꼈는데, 아니야?”

백루찬의 입가가 씰룩였지만, 그는 진마하를 무시하고 차해준을 다시 눕힌 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마음 같아선 몸에서 떼어 놓지 않은 상태로 상대하고 싶었으나 진마하는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오드아이를 번뜩인 녀석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루찬아, 아니야?”

- 콰직! 쾅!

진마하가 있던 곳에 번개가 떨어졌다. 완강한 대답이었다. 진마하의 신형은 연기처럼 흩어졌고, 그는 있던 자리의 반대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아니야? 그럼 뭐야.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죽어. 관심 두지 말고.”

백루찬이 손가락을 겨누며 노렸지만, 유유자적한 모습의 진마하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아니 나는 이해가 안 가서. 너 원래 그랬잖아. 그런데 고작 게이트 하나 같이 들어갔다고, 그 심상 세계에서 과거를 공유했다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변할 수 있나?”

“…변했다라.”

백루찬은 픽 웃었다. 그리고 차해준을 내려다보았다. 변한 마음이었을까. 글쎄, 자신은 잘 모르겠다. 차해준과의 첫 만남부터 모든 순간이 기억났다. 증오하고 증오했던 사람. 하지만 그를 인지한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모든 순간을 손에 넣고 가지고 싶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괴롭히고 싶었던 마음은 내 것이 다른 것을 눈에 담고 움직여서다.

아니 과거는 이제 다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게 변했다. 이제 백루찬은 차해준의 작은 부스러기 조각이라도 놓치지 않고 손에 쥐어야 했다. 왜냐고?

그가, 차해준이 함께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바스러지면 안 된다. 하나도 잃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내 거야.”

“음….”

“내 것이니까 신경 꺼. 내가 뭘 하든, 뭘 생각하든, 어떻게 하고 싶어 하든. 남 따위가 관여할 수는 없어.”

“아아… 지독하네.”

진마하가 느리게 걸음을 뗐다. 한 발 한 발 움직이는 것에 백루찬의 시선이 돌아갔다. 진마하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거래하는 건 어때.”

“…….”

“어차피 차해준은 회귀를 반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내가 있는 한.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 다음에 회귀할 때는 내가, 그다음에 회귀할 때는 네가 가지는 거야. 순서를 정하자는 거지. 어때?”

회귀? 백루찬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웃었다. 저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로 차해준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상 세계에서, 자신을 찾으려 움직였구나. 그 순간 회귀하던 차해준 자신을.

백루찬은 순식간에 납득했다. 아아, 그러면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더욱 하나도 놓칠 수가 없다.

“무슨 소리야? 나는 기억 조각 하나도 잃을 수 없어. 차해준에 대한 것이면 뭐든.”

반복하는 그 짧은 순간이라도 내 눈과 머리에 담지 못한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온전히 소유해야 했다.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진마하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소했다. 미친 듯이 웃는 그를 보며 백루찬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니까, 넌 그냥… 사라져.”

백루찬은 손을 뻗었다. 천둥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전류가 진마하를 향해 쇄도했다. 상대는 그것을 피했지만, 백루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마하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뇌전이 튀는 사이에 백루찬은 진마하에게 들러붙어 공격했다.

휘두른 주먹을 막는 손을 반대 손으로 붙잡아 꺾는다. 가까이 붙은 놈의 목덜미에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예의 실드가 발동되어 순간 공격이 텅- 하고 튕겨 나갔지만 백루찬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리며 돌려 차기를 날렸다. 진마하가 실드를 꺼낸 상태로 튕겨 나갔다. 백루찬의 손가락이 그를 가리켰다.

바람이 불고, 다시 전류가 휘몰아쳤다. 진마하가 소리쳤다.

“내 제안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궁금해. 너는 왜 이렇게까지 해? 죽어도 상관없는, 네 엄마의 원수가 아니었나?”

“약속했거든.”

- 콰자자작!

굵은 뱀이 똬리를 틀듯, 전류가 진마하를 감쌌다. 진마하는 순간 이동으로 피하려 했으나, 순간 가슴팍에서 턱 걸리는 고통에 멈칫했다.

백루찬은 그 순간을 노리고 전류에 감싸인 진마하에게 주먹을 올려 쳤다. 잔뜩 농축된 마력이 전깃불을 튀기며 진마하의 복부에 꽂혔다. 몸이 부웅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지만 그 순간 진마하의 분신이 사방을 점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 쾅! 쾅!

분신이 내뿜는 공격에 부딪칠 때마다 백루찬이 뒤로 꺾였다. 백루찬은 물러서지 않았다. 뒤에 차해준이 있었다.

“맹목적인 ……으로.”

백루찬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사방에 펼쳐진 분신이 동시에 기절한 채 누워 있는 차해준에게 뛰어들었다. 백루찬은 온몸으로 차해준을 감싸며 바닥을 굴렀다. 침대에 날카롭게 재단된 마력이 꽂혀 들었다. 푸푹, 푹! 박히는 소리와 함께 매트리스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백루찬은 축 늘어진 차해준을 품에 안은 채,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내 이유가 되어 주기로.”

진마하의 분신이 하나로 합쳐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루찬은 눈을 부릅뜨며 차해준을 감싸고 몸을 돌렸다. 백루찬의 중심으로 전류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혀 넓게 펼쳐지며 진마하의 공격을 막았다.

- 크크크큭!

진마하는 제 몸을 태우는 뇌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루찬에게 달라붙어 손을 뻗었다. 전류로 된 방어막을 뚫고 파고드는 손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재생을 반복했다. 진마하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입매를 비틀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 푸욱.

기다란 차해준의 검이 백루찬의 옆구리 사이를 비집고 진마하의 가슴팍에 꽂혀 들었다.

“너도 방심했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 사이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백루찬의 어깨에 기댄 차해준이 한야를 움직인 것이다. 제 가슴팍에 꽂힌 익숙한 검을 본 진마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해준-”

그가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백루찬은 놈의 목에 전류를 둥글게 감싸 걸었다.

“…!”

진마하의 몸이 순식간에 후욱- 난간 너머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때 어두운 하늘에 거대한 황금빛 창이 떠올랐다. 진마하는 눈을 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창]

거대한 창이 낙뢰와 같이 그에게로 떨어졌다.

- 콰과가강!

폭음과 함께 진마하의 신형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형.”

백루찬은 먼지가 이는 땅을 내려다보며 차해준을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다시 기절한 것이다. 백루찬은 차해준을 꽉 끌어안고서, 뿌옇게 올라오는 흙먼지 사이로 쓰러진 진마하를 내려다보았다. 금빛으로 일렁이던 안광이 번쩍였다가, 이내 잠잠하게 사그라들었다. 백루찬은 제 품에서 축 늘어진 차해준이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고개를 기대게 한 채, 자신은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 ❖ ❖

비바람이 몰아쳤다.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며 지면을 적시기 시작했다.

크레이터처럼 파인 바닥에서, 진마하는 비를 맞으며 눈을 떴다.

아직도 전류가 치지직거리며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진마하는 누워서 한참 동안 가만히 호흡하다가, 천천히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생채기가 가득 난 팔과 손등이 점점 투명해지면서 하늘을 투과했다.

“하….”

점점 권한이 소멸되고 있었고, 자신은 필요에 의해 태어나….

“하하….”

필요에 의해 지워지고 있었다. 한탄과도 같은 웃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진마하는 차해준을 떠올렸다.

이 세계에서 유일한, 자신의 이해자. 처음부터 나를 기억했던 사람. 앞으로도 있지 않을 사람.

그리고… 죽음이 목 끝까지 몰아쳐도, 그와 함께한 수십 조각의 기억까지도 잃지 않으려는 사람.

“…부럽네.”

진마하는 눈을 감았다. 비가 온 세상에 내리고 있었다. 철저하게 멸망시키려고 했던, 사랑하던 세계의 비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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