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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80)화 (177/201)

하늘 위에 떠오른 게이트 덕분에 가장 가까운 빌딩 하나가 현장 사령탑으로 낙점되었다. 그 앞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주변엔 많은 각성자들과 각본으로 붐볐다. 

나는 난간 너머로 개미 떼같이 몰려든 사람들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현재 그 빌딩의 옥상에 와 있었다. 비가 부슬비가 되어 뺨을 때렸다.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저녁. 도시를 밝히는 불빛들이 하나같이 다 물기에 번져 보였다. 그것을 보다, 허리에 맨 긴급 의료 키트가 담긴 슬링 백의 벨트를 조였다.

지금 환자복에서 급히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옥상 위에선 백루찬과 송류진 그리고 우반희가 함께 있었다.

우반희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게이트 발생 32분 경과. 마력 파장은 아직 안정되어 있어. 제로급답게 언제 폭발할진 아무도 모르겠지만.”

“웨이브 터지기 전에 진입해야지.”

나는 긴말 없이 움직였다. 몸을 띄워 저 게이트 너머로 갈 생각이었다. 물론 날아오르는 건 백루찬의 몫이었다.

녀석도 환자복에서 나와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르젠트에서 급히 옷을 가져오려 했으나 각본이 더 가까워서 예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코트는 입지 못했다.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예요.”

“무슨 게이트인지 파악부터 해야지.”

내가 가볍게 대답하자 우반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송류진은 자신도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의견은 기각되었다. 저번 가약동 제로급처럼 몬스터라도 튀어나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밑에선 카리나와 바탈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모르젠트는 오고 있다고 했는데…. 들어가기 전에 홍희를 보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다행이었다. 보면 뭐라고 할지. 나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지금이라도 카리나에게 맡기는 게 어때. 걔가 아주 의욕적인데.”

“가약동에서 합을 맞춘 사람들이 있는 게 낫겠지. 나는 무조건 들어가야 돼.”

“안에 있다는 그놈을 구하려고?”

우반희가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나는 녀석을 쳐다봤다. 꽤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다. 내가 일일이 설명해 줬는데도 이해를 못 했나.

나는 각본이 도착하자 이들에게 간략하게나마 세계의 기둥에 대해 설명했다. 메인 캐릭터 존재에 대한 것도 말했다.

물론 못 믿는 눈치였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어. 나는 궁금한 게 많다는 얼굴을 한 녀석들의 질문은 모두 패스한 채 내 말만 늘어놨다.

“내가 가야 돼.”

“꼭 네 손으로만 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아? 그, 네가 말한 그거, 그래. 세계가 줬다는 퀘스트. 남의 손으로도 해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여기서 진마하가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이….”

나는 내 앞에 모여 있는 세 녀석을 면면히 훑었다.

일단 백루찬. 보자마자 죽이겠다고 벼락이나 안 떨구면 다행이고.

송류진. 이미 한 번 말렸던 전적이 있으니 진마하에게 말이 안 통할 거고.

우반희. 저놈의 고약한 말버릇은 진마하의 성질만 돋울 것이다.

음…. 셋 다 기각.

“아무도 없네.”

나는 그냥 웃었다. 우반희가 기분 나쁘다는 듯 팍 인상을 썼다. 나는 최대한 가볍게, 일부러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너희는 안 돼. 상성이 안 맞아.”

“너는 맞고?”

“봐야지.”

우반희가 허- 실소했다. 그래도 더 이상 말리지는 않았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악독한 검은해의 교주라는 놈을 자신들이 말한다고 살려서 데리고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뭐 나도 걱정이긴 하다. 싸우지 않고, 무사히 구할 수 있을까. 그 걱정부터 들었던 것이다.

송류진이 애타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웃으며 녀석의 손을 꽉 붙잡았다.

“뒤, 잘 부탁해요 류진 씨. 한 번씩 새벽이도 챙겨 주세요.”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백루찬이 내 팔을 채 갔다. 이 녀석은 집사를 빼앗긴 고양이 같은 눈으로 송류진을 쳐다보곤 나를 잡아끌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가자, 형.”

백루찬은 내 허리를 감싼 채 두둥실 떠올랐다. 녀석의 천둥의 발걸음은 참 좋은 스킬이다. 실없는 생각으로 긴장을 죽이려고 애를 썼다. 내가 백루찬의 어깨에 팔을 감고 떠오르려 하자 송류진이 다급하게 한 걸음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문을 품은 얼굴로 송류진을 쳐다봤다.

그는 무척이나 풀이 죽은 얼굴로 애절하게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절대, 위험한 일은 하지 않기로 약속해 주세요.”

“류진 씨.”

“절대, 당신의 몸은,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다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어휴 걱정도 많은 자식. 솔직히 장담은 못 하겠지만…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나올 거니까 괜찮다. 그렁그렁 일렁이는 녀석의 눈을 보며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렸다.

“당연하죠. 저 한야인데, 안 다쳐요.”

그럼 랭킹 1위가 죽을 일이 있나. 누구보다 강한데.

백루찬이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더 높이 쑥 올라갔다. 송류진이 절박하게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나는 백루찬의 옆구릴 쿡 찔렀다.

“야 이 욕심쟁이야. 그냥 인사잖아.”

“누가 인사를 그렇게 찐하게 해? 친구도 아니면서.”

“친구거든.”

“아, 상대방은 기억도 못 하는데 혼자 하는 친구?”

“야.”

백루찬의 심술궂은 말에 녀석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이런 중요한 순간까지 아주 그냥 소유욕이 넘쳐서는.

나는 녀석의 목에 팔을 감고 백루찬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속삭였다.

“다치지 마 루찬아.”

“…형이야말로.”

그렇게 우리는, 게이트 너머로 향했다.

❖ ❖ ❖

[게이트 ‘뷁툴칵3%$묽뼣얗애……’]

[경고! 오류로 인해 게이트를 읽을 수 없습니다!]

[경고! 게이트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게이트!]

시스템이 경고를 잔뜩 날리며 붉은 글씨를 깜빡거렸다. 나는 그것을 쓰윽 훑어보며 넘기곤 앞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이트는 또 처음 보는데.”

옆에서 백루찬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없이 입장한 것도 처음이지만 정말 이런 게이트는 처음 본다.

눈앞엔 거대한 도시가 양면으로 놓여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거꾸로 솟은 건물들과 도로가 보였다.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도, 마치 여러 나라의 도시를 합성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백루찬이 실소했다.

“여기서… 누굴 찾아야 한다고?”

“…….”

이 넓은 곳에서 진마하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뭐 힌트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여길 다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하…. 그렇게 생각할 때, 눈앞에 이모티콘이 번쩍 떠올랐다.

[클리어런스!⸜(♡'ᗜ'♡)⸝✧\(>o<)ノ✧]

시스템이 말을 걸어왔다. 이 자식, 왜 너는 신나 있냐?

[(◞‸◟)(⑅◞‸◟)]

그러자 급하게 시무룩한 척한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시스템창이 말했다.

[이곳은 진마하의 심상이 얽힌 게이트입니다! 급하게 추적하여 찾아낸 정보예요.]

심상? 나는 더 말해 보라는 듯 눈을 좁히며 시스템창을 쳐다봤다.

[오류와 함께 심상이 얽혀 있어서 이 세계에선 진마하가 신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그만큼 취약하기도 하지요.]

[진마하를 찾으려면 그의 흔적을 먼저 쫓아가야 해요! 여기는 그의 심상이 얽혀 있으니까.]

아니 그냥 시스템이 해킹이든 뭐든 해서 알아내 줄 순 없는 건가?

[ㅠㅠ그 정도의 간섭까지는 할 수 없었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아직 진마하의 힘이 남아 있는 상태라서…. 다만 간신히 게이트가 열릴 때 틈을 이용해 이 세계에 NPC를 끼워 두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가는 길을 인도해 줄 거예요.]

“형 뭐 해?”

백루찬이 멈춰 선 채 앞을 뚫어져라 보는 나를 흔들었다. 나는 백루찬에게 잠시 가만히 있으라 말하곤 시스템에게 물었다.

“NPC는 누구인데?”

“형?”

“쉿 조용해 봐.”

백루찬은 그제야 내가 자신은 볼 수 없는 무언가와 대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시스템이 말을 이어 갔다.

[NPC는 무작위로 섞여 있어서, 어디에 있다고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ㅠㅠㅠㅠ 급하게 하느라고 로딩이 느려져서 설정 부분을 손볼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클리어런스! 하지만 찾을 수 있어요.]

[퀘스트!

NPC를 찾아라!

게이트 ‘뷀구툵…….’에 들어온 두 사람. 필요의 아이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몰디베리 17번가에 거주하는 양만철을 찾아라!

보상: 진마하의 위치 파악]

“…마을 이름은 몰디베리인데 왜 이름은 양만철이야?”

[(╯•﹏•╰)…급하게 설정하느라 그만….]

일 처리 이따위로 하지. 내가 팍 째려보자 시스템은 말줄임표를 남발했다. 나는 손을 휘저었다.

[클리어런스 파이팅…!๑´ ³`)ノ 믿어요!]

시스템은 금방 사라졌다. 나는 멀뚱히 서 있는 백루찬을 돌아봤다.

“일단….”

“응.”

“몰디베리 17번가 양만철 씨를 찾자.”

백루찬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씩 웃고 녀석의 팔을 잡아당겨, 우리가 서 있던 건물 위에서 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몰디베리가 어딘지 알려 준 거야?”

“아니.”

“형?”

도로에 떨어지자, 시스템이 말한 대로 NPC들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한 그들은 갑자기 옥상에서 우리가 뛰어내리자 무척 놀라며 수군거렸다. 나는 백루찬의 손을 잡고 그들의 시선을 피해 뛰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 알고, 물어물어 가다 보면 나오겠지. 몰디베리 17번가!

백루찬이 한숨을 내쉬며 나를 따라왔다.

“형은 참… 어쩔 땐 진짜 대책 없어. 아니 항상 그랬나.”

“욕이냐?”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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