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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89)화 (185/201)

[세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세계선이 무너집니다. 

남은 시간 16:23:31….]

시스템이 경고한다. 눈앞에 뜬 것을 보았지만 진마하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걸 나만 보는 게 아닐 텐데.

그럼에도 진마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나는 녀석의 반응을 살피며 눈을 굴렸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산책하며 걷던 진마하가 갑자기 나를 끌고 벤치에 앉혔다.

“야, 야! 뭐하는 거야!”

그리고선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제 머리를 두고 누웠다. 나는 당황해서 펄쩍 뛰었다. 이 자식 진짜…!

진마하가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채 나를 올려다봤다. 깜박이는 속눈썹과 진한 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녀석은 내 손을 잡아당겨 제 머리 위에 올려놨다.

“해준아, 나 이것만 해 주면 안 돼?”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머리, 쓰다듬어줘.”

“…….”

기가 막힌다. 내가 왜 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야 하지? 아니 그보다 이 행동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과 내가 이런 짓을 할 사이냐고. 하지만 진마하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나에게 요구했다.

“해준아 한 번만 해 줘.”

“야, 진마하.”

“누군가가 날 소중하게 생각하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소중하게 대하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

하 이렇게 말하면, 내가… 내가 해줄 줄 알고…….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거부의 말은 끝끝내 목구멍 밖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강제로 올려진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진마하의 머리칼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오히려 이런 느낌이 이 녀석도 나와 같은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조금씩… 녀석의 머리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진마하가 스르륵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느끼는 것처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바로 코앞에 녀석의 얼굴을 둔 탓인지, 변화하는 표정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나는 이 녀석을 대체, 하, 이 녀석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마음이 아린다. 아프고 괴로워서 툭 건들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작고 평범한 행동들을 녀석은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바라 왔을까.

사람들의 요동하는 감정들을 보면서, 자신은 왜 거기에 끼지 못하는지, 왜 다가갈 수 없는지, 왜… 자신은 그렇게 살아서 존재해야만 하는지 수많은 물음을 남겼을까.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느릿하게 진마하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네가 좋아서 해 주는 거 아니다.”

괜히 민망스러워 말을 덧붙였다가 금세 후회하고 말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외롭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진마하는 그저 눈을 살짝 뜨더니, 떨어지는 햇빛에 얼굴을 찡그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사랑해서 괜찮아.”

“…….”

“행복이란 게 이런 건 가봐. 신기해. 해준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녀석의 눈꺼풀 위에 손을 얻어 쳐다보는 시선을 가렸다. 심장을 간질대는 감정의 크기는 점점 커져 간다. 견딜 수가 없었다.

❖ ❖ ❖

[남은 시간 11:45:17]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진마하는 그렇게 느긋하게 한참을 햇빛 아래서 노닥거렸다. 나는 녀석을 대충 받아주면서 얼른 이 상황을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끝내야 한다. 더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진마하를 어서… 이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

무엇보다 제한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저 시간이 다 끝나면 현실에 있는 게이트가 터지면서 당장이라도 몬스터가 튀어 나갈지도 모른다. 또한 진마하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녀석은 나와 산책하고, 티타임까지 가진 후 잠시 자리를 비웠다. 마치 내가 이 집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감시인조차 한 명 없이 나를 혼자 두고 나갔다. 뭐, 틀린 생각은 아니다. 나는 잡은… 이라기엔 내가 잡혔지만, 하여튼 녀석을 이대로 놓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게이트를 해결해야 하니까.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녀석을 외면한채 나는 방에 틀어박혀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누워 있던 사이, 퍼뜩 드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지금이 기회다. 영혼석을 찾을 기회! 혹시 이 집에 있을지도 모르는 진마하의 영혼석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양만철은 진마하를 없애려면 영혼석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없으면 몇 번을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고….

그렇다는 건 나보다 먼저 이 세계에서 시간을 보낸 진마하는 대체 무얼 겪은 것일까. 심상 세계이자 게이트 내부까지 제 맘대로 만드는 놈이, 양만철의 손에 죽기 직전까지 당한 걸까. 설마, 나도 모르게 떠오른 가정을 휘휘 없애고 나는 움직였다.

일단 진마하와 함께 있던 방부터 뒤졌다. 널따란 방의 크기와는 다르게 가구들은 단출했다.

“이게 어딨냐…대체…”

나는 하나둘씩 살펴보며 온갖 것들을 뒤졌다. 서랍장부터 탁자 밑 침대 밑, 장식장 등등 이곳저곳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아무도 없는 저택이라,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 옆 방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큰 저택인 만큼 방이 많았고, 3층까지 있었다. 나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영혼석, 영혼석….

근데 영혼석이란 게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2층에 있는 모든 방을 둘러보다가 생긴 의문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젠장,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을 찾고 있는 내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영혼석이라 했으니 뭔가 눈에 띄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아무 소득도 없이 복도 맨 끝방까지 뒤진 나는 이제 3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간 3층은 로비가 난간 밖으로 훤히 보여 빛이 잔뜩 들어오는 2층과 달리 조금 어두웠다. 창마다 커튼이 쳐져 있고, 복도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이거 꼭… 어디서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3층의 문들은 대부분이 잠겨 있었다. 하, 마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이런 문 따위 쉽게 부수는데.

혹시나 해서 멀리 떨어졌다가 달려들며 어깨를 부딪쳐 봤지만, 무슨 철심이라도 박아놓은 건지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 열리는 것은 포기하고, 하나씩 문고리를 돌려 열리는 문을 찾았다.

그러다가, 도착한 맨 마지막 방.

복도 끝에 위치한 방은 내가 머물렀던 방처럼 양 문으로 되어있었다. 유독 어둡게 칠해진 색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문고리를 돌리자 어쩐지 더 수상하게도 문이 쉽게 열린다. 나는 조금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나 긴장이 무색하게 방 안엔 그냥 침대와 탁자, 작은 서랍장만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방을 보다 한숨을 삼켰다. 젠장, 솔직히 뭐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예를 들자면 영혼석이니 예전 게이트에 봤던 봉인석 같은… 쇠사슬에 매인 돌이라거나… 뭐 그런 거 말이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삭막하게 꾸며진 곳은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침대 쪽 탁자 위에 작은 액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

사진에 있는 것은 양만철과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진마하였다. 대체 이게… 뭐지.

양만철은 단순히 시스템이 만들어낸 NPC 아닌가. 시스템은 말했다. 심상 세계의 틈을 이용해 NPC를 끼워 넣었다고. 설마 진마하는 그 NPC와 진짜로 이 심상 세계에서 시간을 보낸 것인가. 진짜처럼?

양만철은 진마하를 주워 왔다고 말했다. 말하는 투와 행동거지를 보면, 그가 어린 진마하를 어떻게 대했을지 뻔하게 보였다. 녀석은 그런 것들을 참아 왔던 건가.

왜?

순간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진 속의 진마하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쑥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미묘하게 기쁜 것처럼.

나와 산책하며 이런 것은 처음이라 말하던 녀석.

…처음 겪어보는 사람과의 부딪침을 진마하는 여기서 경험을 했던 것일까.

그게 좋아서, 그런 양만철 밑에서 견디고 죽이려 했던 그 행동까지 봐주면서 옆에 있었던 건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젠장, 젠장!

속이 답답해졌다. 그러면서 이런 어두운 방에 이딴 사진을 그때를 추억하듯 놓은 거냐고!

다른 따스한 방들이 많은데 이렇게 어둡고 구석진 방에 혼자서.

대체 너는….

“잘 나왔지?”

그때였다.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쑥 다가온 손이 액자를 뺏어가고 내 어깨를 밀었다. 나는 풀썩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존재감도 없이 다가온 사람은 진마하였다. 그는 쓰러진 내 위로 올라타 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해준아, 그냥 기다리지. 왜 여기까지 와.”

“…너.”

진마하는 꼼짝없이 녀석의 품에 갇힌 나를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지만, 녀석은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단지 흐트러진 머리를 넘겨주며 손끝으로 내 뺨을 더듬기만 했다.

나는 입을 꾹 닫고 녀석을 쳐다봤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내 눈이 잔뜩 흔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진마하, 이 자식… 대체 심상 세계에 들어와서 뭘 한 거야. 왜, 넌 자꾸 나한테 이런, 이런…….

진마하는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뺨을 더듬던 손을 내려 내 목에 채운 목걸이를 만졌다.

“뭘 찾으려고 했어?”

“…….”

“바보같은 차해준. 난 이미 너에게 다 줬는데.”

“…헛소리하지 마.”

“해준아.”

진마하가 나를 쳐다봤다. 얼떨결에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녀석을 쳐다봤다.

“나 이 세계, 마음에 들어. 비록 거짓이긴 해도 경험해 볼 수 있었거든. 가족이란 거.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거.”

“…미친 자식아. 네가 겪은 건-”

“알아. 나도. 근데… 버리기 싫더라고. 아무리 괴로워도.”

양만철은 가족이라고 하기엔 최악인 놈이었다. 그놈의 집만 봐도, 어떻게 행동했을지 뻔히 보였다.

그런데도 진마하는 그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처음 겪는 것이라서. 처음…이라서. 아, 이 빌어먹을 자식. 불쌍해서 화가 났다.

진마하는 인상을 한껏 찡그린 내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걱정하는 거야?”

“…헛소리.”

“있잖아.”

“비켜.”

“키스하면 안 되나.”

“…야!”

나는 녀석을 힘껏 밀쳤다. 그러나 금세 손목이 잡힌 탓에 그대로 버둥댈 수밖에 없었다. 진마하가 나를 힘껏 끌어안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꽉 끌어안은 놈은 말과는 다르게 그대로 멈춰서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하 젠장, 몸에서 힘이 빠졌다. 진마하가 속삭였다.

“널 사랑해서 다행이야.”

“…….”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어서……”

진마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가까이 얼굴을 맞댔다.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것처럼 녀석을 내 뺨을 붙잡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쳐다보기만 했다.

진마하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불쌍한 새끼. 불쌍하고….

금방이라도 입술이 부딪치려 할 때였다. 그때,

-쿠콰아앙!

밖에서 굉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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