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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29)화 (29/74)

029.

이게, 집이야, 성이야? 이런 건 정말 영화에서만 봤기에 이곳이 제집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일하시는 분은 일주일에 세 번 오실 겁니다.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이니 안전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일하는 사람이요?”

주안이 되묻자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집안일이나 가구 관리 등을 도와주실 분들이에요.”

재벌이 따로 없네…….

입을 딱 벌린 채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직원의 시선이 주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쓱 훑었다. 낡거나 지저분한 옷은 아니었지만 고급도 아니어서 눈길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필요한 옷가지들은…….”

말을 잠시 멈춘 직원이 태블릿을 꺼내더니 쇼핑몰 화면을 띄웠다.

“우리 센터와 협약한 쇼핑몰을 통해 구매하시거나 저를 통해 말씀하시면 구해 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카드키입니다. 카드키는 성주안 님 외에 호위를 맡은 S급 각성자 네 분에게 지급됩니다.”

직원이 성주안과 공세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혼자 사는 집 카드키를 다른 남자 네 명과 공유하는 게 살짝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집을 무료로 평생 이용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송충이였을 때를 생각해라. 월세 50에 허덕이며 월말에 컵라면 먹던 걸 생각하면 여기가 천국이다!

공세윤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갔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까딱까딱하고 있는데, 부엌 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혹시 음식을 만드는 중인가? 애가 음식 만들다가 손가락이라도 베이면 어떡해.

덜컥 겁이 난 주안은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공세윤은 앞치마를 맨 채 정신을 집중하며 감자를 썰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세윤이 주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귀, 귀여워…….’

앞치마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세윤이 웃는 것만으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강아지가 저를 향해 조르르 달려올 때의 기분이랄까? 제가 만든 각성자들 중에 공세윤이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형, 왜요? 배고파요?”

갑자기 형이라고 부르다니, 조금 놀랐지만 호칭을 바꾸라고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니요. 뭐 도울 일은 없나 해서요.”

공세윤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눈을 접어 웃었다. 활기찬 상태라는 건 알겠는데 자꾸 웃으니까 귀여워서 심장이 아팠다. 홀린 듯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입을 열었다.

“형은 저 대신 모준영 씨한테 연락해 주세요. 무사히 잘 왔고, 오늘 밤은 세윤이랑 같이 자겠다고요.”

“아…… 그냥 잘 왔다고 할게요.”

그럼 될 걸, 같이 잔다는 말을 왜 해? 당연히 각방을 쓸 텐데. 이상한 놈 다 보겠네.

주안이 이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사이 공세윤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았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제가 직접 모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준영 씨, 우리 도착했어! 형이랑 같이 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어, 나 상태 좋아서 웬만한 상대는 다 이겨. 백은후? 상호불가침 조약에 사인했는데 뭐가 문제야. 걱정하지 마.”

이렇게 말하더니 잠시 후에 다시 말을 덧붙였다.

“아씨, 방해하지 말라고오!”

빽 소리를 지른 공세윤이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칼을 잡았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감자를 써는 세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파티원 계약도 끝났겠다, 집도 넓겠다, 잠시 후면 세윤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도 먹겠다, 오늘 하루는 마음 편히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세윤이 시키는 대로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급스러운 조명이 원형으로 군데군데 박혀 있는 천장을 보다 보니 눈이 부셨다.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으니 얼마 안 가 잠이 솔솔 왔다. 오랜만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았다.

얼마쯤 졸았을까?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을 때 주머니에서 지이잉, 하는 진동 소리가 느껴졌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까 본 책임자 이민재와 S급 네 명밖엔 없었으니 그중 한 명일 것이다.

문자를 보내온 것은 다섯 중에 가장 연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백은후였다.

<백은후 : 밥은 먹었나?>

문자를 확인한 순간 주안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무슨 꿍꿍이지? 진짜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아닌지 궁금해서 보낸 건 아닐 텐데…….

성주안은 잔뜩 경계하며 전화를 걸었다.

“아뇨. 지금 요리 중인데 왜 그러시죠?”

―누가? 공세윤이?

“네.”

―그, 그래. 명복…… 아니, 아무쪼록 잘 지내고 내일 길드에서 만나도록 하지.

성주안은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가 미친놈 아니랄까 봐 밥 먹는 사람한테 명복은 왜 빌어? 그냥 잘 먹으라고 하면 될걸.

하여튼 백은후는 이상한 놈이라며 속으로 욕을 중얼거릴 때였다. 공세윤이 국자를 든 채 부엌에서 나왔다.

“형! 얼른 와요. 밥 다 됐어요.”

식탁으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주안은 세윤의 얼굴을 보고 빵 터지고야 말았다. 음식을 얼굴로 한 건지 세윤의 새하얀 피부에 고추장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왜 웃어요?”

“세윤 씨 얼굴이 빨개서요.”

“아…… 그건 형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예요.”

“예?”

사람 말을 뭐 어떻게 알아들으면 저런 반응이 나와.

주안은 킥킥 웃으며 휴지에 물을 묻혀 공세윤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깨를 움찔 떨면서도 주안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주안은 세윤의 턱을 잡아 고정한 채 뺨을 쓱쓱 닦으며 말했다.

“고추장이 여기저기 튀었네요.”

“아아. 요리를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봐요. 근데 저 엄청 맛있게 만들었거든요. 닭볶음탕이요. 진짜 진짜 맛있을 거예요.”

말갛게 변한 얼굴로 세윤이 주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식탁에 앉으니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닭볶음탕에 어묵볶음에 소시지와 달걀부침까지……. 주안이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이야, 맛있겠네요.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숟가락을 들자 공세윤이 잘 익은 닭다리와 감자 하나를 덜어 주안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닭볶음탕의 묘미는 역시 감자에 밥을 비비는 거지! 감자를 밥에 넣고 쓱싹쓱싹 비벼서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데,

“……!”

뭔가 닭볶음탕에서 나면 안 되는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제야 주안은 명복을 빈다는 백은후의 말을 이해했다. 공세윤이 만든 음식은 정말로 명복을 빌어야 할 맛이었다. 왜, 닭볶음탕에서 시큼한 맛이 나지?

“형형, 맛있죠?”

“어음…… 마, 맛있네요.”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얼굴을 앞에 두고 닭볶음탕에서 이상한 맛이 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으니 더듬거리며 대충 말했다. 그러자 공세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제 몫의 닭을 입에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빨간 입술이 움직이는 동안 주안은 입안을 감도는 시큼한 맛에 인상을 찡그렸다.

“세윤 씨는 어때요? 맛있어요?”

공세윤의 표정 역시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래, 아무리 제가 만들었다고 해도 이걸 먹고 맛있다는 말은 못 할 거다. 주안의 예상이 맞았는지 공세윤은 더 이상 씹지 않고 입을 가린 채 휴지에다가 음식을 뱉었다.

“……왜 뱉어요?”

“하하! 못 먹을 맛이네요.”

쿨하게 제 요리 솜씨를 인정하며 웃는 공세윤의 얼굴이 예뻤다. 그래, 음식 좀 못하면 어때? 저렇게 미소가 해맑은데. 너는 계속 그렇게 웃기만 하면 좋겠다.

세윤은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라서 스스로 요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우울함이 자주 왔을 테니 굶는 일이 더 많았을 거다. 챙겨 먹더라도 대부분 인스턴트 음식이었을 거고.

아까 백은후의 반응을 보면 왜인지 헌터들에게 음식을 해준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이 솔직하게 피드백을 해 줬을 리는 없었겠지.

그 생각을 하니 괜히 공세윤이 더 안쓰러워졌다.

“세윤 씨, 음식은 정성이 중요하다잖아요. 요리가 쉬운 일이 아닌데 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주안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꼭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았다. 뭐야? 또 금방 우울해진 건가?

“고마워요. 내 음식 먹고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은 형이 처음이에요. 저는 형한테 잘해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알아줘서 다행이에요.”

눈물이 찔끔 나왔는지 소매로 눈을 쓱쓱 닦은 공세윤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걸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까 그 책임자한테 말해서 배달이라도 시켜야지.”

“오오, 배달도 돼요?”

“네, 치킨 시켜요. 우리.”

공세윤이 치킨을 시키는 동안 주안은 식탁 위를 정리했다. 우선 닭볶음탕을 처리하고 남은 반찬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또 그 맛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다 처리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책임자와 통화를 하던 공세윤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전화를 끊고 주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형, 우리 치킨은 다음에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왜요?”

“……성좌들이 갑자기 게이트를 연 모양이에요. 대체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 짓을 벌이는지!”

게이트라고? 이렇게 갑자기?

“그걸 성좌들이 만들었다는 건 어떻게 안 건데요?”

“이 세계에서 성좌가 아니면 던전 구역이 아닌 곳에 게이트를 만들 놈들이 누가 있어요. 진짜 나쁜 새끼들이에요. 왜 하필 오늘일까요! 드디어 형과 함께 자게 되었는데 왜 하필 오늘!”

공세윤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지만 주안에겐 세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귀가 먹먹하고 토가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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