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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30)화 (30/74)

030.

원래 계획대로라면 네 명의 S급 각성자를 한데 모아 던전을 차례대로 하나씩 클리어해 나갈 생각이었다. 다들 스킬도 일정 이상 다 개발된 상태에다가 저도 버프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성좌 없이 난이도대로 던전을 클리어하면 되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무작위로 던전 게이트가 열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가겠다는 계획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하, 형도 아쉽죠? 저도 형과의 첫날 밤을 이런 식으로 보내게 되어서 너무너무 아쉬워요. 하지만 어린아이들이랑 작은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니까 일단은 전투하러 가요. 저 지금 기분 좋으니까 다 이길 수 있어요.”

아니 지금 첫날 밤이 중요하냐고요.

저러는 공세윤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던전에 가지 말자는 건 아니라고 주안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세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세윤 씨, 나랑 악수해요.”

“스킬 주시려고 그러는 거죠?”

“그럼 뭐겠어요. 어서요. 시간 없으니까.”

주안이 재촉하고 나서야 세윤이 손을 맞잡아왔다. 몇 번 흔들자 손에서 뜨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스킬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세윤이 주안의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업혀요. 시간 없다면서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알긴 알았지만 이놈의 스킬은 정말 쓸 때마다 적응이 안 됐다.

스킬을 줄 거였으면 같이 이속을 높일 수 있는 걸 주든가!

주안은 투덜거리며 세윤의 등에 업힌 채로 그의 목을 감았다. 그의 엉덩이를 받쳐 든 세윤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밖은 생각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난 던전으로 인해 그곳에 원래 있어야 할 건물들과 도로는 이미 다 무너진 상태였고,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선 사람들부터 구조해야 할 것 같았다.

“뭐 해! 빨리빨리들 움직이지 않고! 시발, 더 서두르라고!”

주지찬이 늦게 도착한 구급대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세윤 씨, 저기로 가요.”

“주지찬한테 가자고요?”

“네.”

“왜요? 모준영이 게이트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요.”

“저 사람들 도와야 할 거 아니에요. 우리만 그냥 가자는 게 말이 돼요?”

공세윤은 입술을 비죽이며 주지찬 쪽으로 발을 돌렸다. 곁으로 다가가자 주지찬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너 얼른 성주안 내려놓고 나랑 같이 사람들 좀 옮겨.”

공세윤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착실히 사람들을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날랐다. 역시 S급 각성자의 움직임은 남달랐다. 주안은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의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장신의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분은 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무작위로 옮기지 말고 우선 의식이 있는 사람부터 옮기는 게 맞아요.”

주지찬이 다가와 남자를 들것에 태웠을 때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소리가 들리더니 열 대가 넘는 구급차가 사고 현장에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주지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일이래?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국가에서 지원이 나온 건가?”

“아닙니다. 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원은 모두 차출된 상황입니다.”

언제 왔는지 모준영이 밀려드는 구급차를 보며 말했다.

“그럼 대체 저 많은 구급차는 어디서 왔다는…….”

주지찬이 말끝을 흐렸을 때였다. 가장 먼저 들어온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백은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지냈나.”

손을 올려 가볍게 인사하는 모습이 천만의 구원군을 데리고 전장에 참여한 장군처럼 강렬해 보였다. 주안은 입을 딱 벌리고 백은후를 쳐다보았다. 흰색 전투복을 입고 은발을 휘날리며 한 손에 전기를 일으키는 채찍을 들고 있는 모습이 진짜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형, 뭐 해요? 정신 차려요.”

“어? 아…… 네.”

공세윤이 눈을 뾰족하게 뜨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백은후를 조금만 더 쳐다봤다가는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럼에도 주안은 백은후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백은후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성좌놈들이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이야. 선을 넘은 짓이야.”

주지찬이 비아냥거렸다.

“참나. 고양이 쥐 생각하고 앉아 있네. 네가 언제부터 민간인 걱정했다고.”

백은후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사비 털어서 구급차까지 대동했는데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백은후의 푸른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캐릭터 시트를 쓸 땐 분명 이렇게까지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백은후도 최소한의 정의감은 있는 걸까?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백은후에 대한 평가가 후해졌다.

백은후가 몰고 온 구급차와 의료진들 덕분에 상황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물론 주안을 포함한 S급 각성자들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끝인가?”

백은후의 말에 주지찬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대충 마무리는 된 거 같으니 던전 클리어하는 일만 남았네.”

모준영은 상황수습이 끝났으니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한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공세윤은 주안의 팔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각성자들이 힘을 합쳐 사람들을 구한 덕분에 다행히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주안은 저의 파티원들이 사고 수습을 하는 과정을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얘들은 어딘지 모르게 비틀려 있긴 하지만 공동의 목표가 있을 시엔 협력도 잘하는 캐릭터들이라고.

그렇다면 상황이 꼬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던전 공략을 노려볼 수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상황에 맞게 수습해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랬다. 이곳이 꿈속인지 실제 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던전과 그 안에서 나오는 괴물들마저도 모두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캐릭터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주안보다 <성좌가 되어라>라는 게임에 유리한 입장에 선 이는 없었다.

성주안이 기억하고 있는 게임의 시스템과 S급 버퍼라는 특성을 모두 활용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이 뜨끈해지며 자신감이 차오르는 순간,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던전 정보>

버퍼로 각성한 뒤 처음 보는 시스템창에 주안은 입을 딱 벌렸다.

뭐지? 성좌의 도움은 아닐 테고, 이 세계에도 게임 마스터가 따로 존재한다는 건가? 어쨌든 정보는 하나라도 더 알고 가는 것이 유리할 테다.

주안은 눈을 크게 뜨고 시스템창을 살폈다.

<던전 정보

― STAGE 3

― 파티 추천 LV. B급 5인 이상

― 몬스터 LV

*늑대인간(??) : 1마리

*늑대궁수(A) : 234마리

*늑대용병(B) : 1,542마리>

던전 정보 창의 보스는 등급에 따라 정렬된다. 따라서 제일 처음 뜬 늑대인간이 보스고, 제일 마지막에 뜬 늑대용병은 잡몹이다.

보스인 늑대인간 옆에 물음표가 있긴 했으나 주안은 저 몬스터의 등급을 알고 있었다. 등급은 늑대궁수와 같은 A지만, 물리공격보다는 환각 스킬을 이용해 공격하는 인간형 몬스터였다. 레벨이 A급이라도 잘못 걸리면 공격 한 번 못 해보고 전멸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 아래 궁수나 용병은 지금 있는 파티원으로 충분할 것 같긴 하지만.

“하아.”

환각 스킬을 쓰는 몬스터는 파티원들의 단합이 어느 정도 된 이후에 나타나도 좋았을 것을.

아니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머리 싸매고 고민해 봐야 바뀌지 않는다. 이제 적을 알았으니 아군의 상태를 살펴봐야 할 때였다.

주안은 빠르게 시스템창을 조작했다. 잠시 후, 파티창이 떴다.

<파티 구성원 (5 / 5)

― 성주안 (S급 버퍼)

― 모준영 (S급 헌터(물리계))

― 백은후 (S급 헌터(전뢰계))

― 주지찬 (S급 헌터(화염계))

― 공세윤 (S급 헌터(빙결계))>

“캬, 이거지!”

주안은 S급으로 가득 찬 자신의 파티창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본 게임이라면 카드를 대체 얼마나 뽑아야 이런 구성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혼자 뭐 하냐?”

주지찬의 말에 주안은 씩 미소를 지었다.

“방금 파티창을 확인해 봤는데 우리 파티 구성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요.”

“싱겁긴.”

성주안은 잠시 주지찬을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러분, 제게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는 하지 말고 본론을 말해 봐.”

백은후의 재촉에 성주안이 말을 이었다.

“저는 저 던전의 스테이지 레벨과 몬스터의 이름, 그리고 스킬을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전적으로 저만 믿고 따라오셔야 합니다.”

네 남자의 시선이 주안에게로 옮겨갔다. 던전 경험도 없는 신입 버퍼가 던전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걸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주안에게 호감이 있으니 억지로 우기면 따라 주긴 할 테지만 그래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선 파티원들로 하여금 저를 완전히 신뢰하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들이 나를 완전히 믿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주안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희생의 창조자!’

저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걸 건드리면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제가 성좌라는 걸 들켰을 때 일어나는 후폭풍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던전 공략이 우선이었다. 걱정은 그 이후에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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