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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60)화 (60/74)

060.

용이 선심 쓰듯 말을 툭 내뱉었다.

“진짜 위험할 때만 쓰도록 해. 막 쓰면 후회할 일이 생길 테니. 보관은 주씨가 하고.”

주지찬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도 구슬은 소중히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럼 모두 잘 가시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

용은 그 말을 남기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곳 지하에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얼빠진 얼굴로 서로를 보던 네 사람은 벽 안에 있는 방에서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문이 스르륵 사라지는 걸 봐도 놀랍지 않았다.

* * *

잘하고 있겠지? 안 봐도 잘할 거다.

파티원들의 능력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지만 그들이 만나기만 하면 투덕거리는 통에 거기서 싸우기라도 할까 봐 조바심이 들었다. 제가 있을 땐 적절히 조율하면 되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으니 걱정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던전 앞에서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그들끼리 싸울까 봐 걱정해야 한다니. 학부형이 따로 없네.

성주안은 던전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다 안에서 들리는 거대한 천둥소리에 발을 딱 멈췄다. 백은후가 번개를 소환해서 얼음을 쪼개고 있는 듯했다.

“오……. 나름대로 협공하나 본데?”

파티원들도 참 많이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부딪히기만 하면 싸우더니 이제 협공까지 하고.

뿌듯한 마음이 되어 소리가 나오는 쪽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간지러웠다. 뭐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포털스톤을 제게 먹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백은후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서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너희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말고 나와. 나오기만 하면 원하는 거 다 들어줄게.

속말을 하며 걷는데 안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땅이 뒤흔들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본능적으로 던전을 채우고 있던 물이 다 사라졌다는 감이 왔다. 이제 지하로 가는 입구를 찾아 등급이 낮은 괴물들을 가볍게 소탕하고 나올 일만 남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 무슨 트릭이 숨어 있는 걸까?

성좌들이 트릭을 너무 쉽게 발견한 것이 못마땅해서 함정을 판 건 아니겠지?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들을 모두 잃는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다시 또 백년 같은 한 시간이 지나고 성주안은 바짝 타들어 가는 속을 애써서 달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준영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받지 않았다. 각자의 핸드폰에 다 전화를 걸다가 마지막으로 공세윤에게 전화했다. 드디어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다. 주안은 숨을 멈추고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형! 많이 기다렸죠? 우리 지금 나가고 있어요.

“……어?”

―나가고 있다고요!

“다, 다친 사람은요?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누구 기다리다가 죽는 꼴 보려고 그랬어요?”

―혀엉……. 걱정 많이 했나 보다.

“하, 진짜 다들 나오기만 해 봐요. 내가 그냥 두나.”

―네에, 그냥 두지 말고 안고 뽀뽀해 주세요.

공세윤의 말끝에 다른 파티원들의 웃음소리가 섞여들더니 모두 한마디씩 했다.

―그래, 차례로 포옹하면 좋겠네.

―네가 그냥 안 두면 어쩔 건데? 싸우기라도 하게?

―성주안 씨, 걱정시켜서 미안합니다.

말하는 투만 봐도 누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말을 듣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이 들떴다.

“빨리 와요.”

―이제 다 와 가요.

―백 걸음 정도 남았네.

그 말에 성주안은 전화기를 든 채로 숨 가쁘게 뛰어 게이트를 찾아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게이트가 생겨 있었다.

“나도 게이트 찾았어요. 이제 몇 걸음이죠?”

―80걸음.

―70걸음, 60걸음, 50걸음…….

“뛰고 있나 봅니다. 걸음 수가 훅훅 주네요.”

―누가 너무 애달프게 우릴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지.

―30걸음 남았습니다.

이런 유치한 대화에 동참하지 않을 것 같던 모준영이 진지하게 내뱉은 말에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10걸음.

이제 머지않았다. 성주안은 발을 가만히 둘 수 없어 게이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서성였다.

―형, 숨이 거칠어요.

공세윤의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 되어, 드디어 게이트가 열리고 그들이 등장했다.

후광을 입은 것처럼 반짝이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성주안은 저도 모르게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백은후에게 와락 안겼다. 단단한 팔이 몸을 감싸는 것과 동시에 주안은 활짝 웃으며 뒤에 서 있던 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공세윤이 입을 삐죽이며 툴툴거렸다.

“뭐예요. 통화는 나랑 해 놓고 다른 사람한테 안기고.”

“세윤 씨도 이리 와요.”

백은후의 어깨너머로 팔을 뻗자 공세윤이 와서 한쪽 팔에 안겼다. 반대쪽 팔로는 모준영의 어깨를 감싸자, 주안의 뒤로 온 주지찬이 머리를 흩뜨리며 어깨에 뺨을 댔다. 졸지에 네 남자에게 둘러싸인 꼴이 되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버퍼가 똑똑하게 방법을 잘 찾았지.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야.”

백은후의 중얼거림에 그의 어깨에 턱을 대자 나머지 사람들도 몸을 밀착해왔다. 각기 다른 향기와 기운이 주안의 몸을 든든하게 둘러쌌다. 그제야 불안했던 마음이 점차 안정되었다.

“지하실 공략은 안 어려웠어요?”

그 말에 파티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차례로 한마디씩 했다.

“가기도 전에 다 죽어 있던데?”

“뭐 할 것도 없었습니다.”

“안 죽어 있었어도 불로 다 태워버렸으면 그만이야.”

“침수시켜도 되고요.”

백은후의 품에서 빠져나온 주안은 이제 2번 스테이지에 갈 거냐는 모준영의 말에 경악하며 고개를 저었다. 1번 스테이지를 깨는 데만 해도 이렇게 고생했는데 연이어서 바로 깰 생각은 없었다.

바깥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성주안이 결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성좌들이 전쟁을 생각하는 이상 던전 공략을 멈추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절대 무리한 일은 벌이지 않겠다고.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모두 다 함께 끝까지 살아남는 거라고.

여길 탈출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던 성주안의 목표가 모두와 함께 끝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 모두의 눈앞에 상태창이 보였다.

<보상카드 ― OPEN

― 파티원 전원의 신뢰도가 5 증가합니다.

― 신뢰도의 영향으로 협공 시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성주안은 눈을 크게 떴다. 스테이지 1의 보상치고는 정도가 지나쳐서였다. 그러나 어쩐지 나머지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동요하지 않고 놀라는 주안을 보며 웃기만 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주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예요? 저 없을 때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 보상이 좋으면 좋은 거지.”

“……수상한데.”

“뭐 언제는 무사하기만 하면 된다며? 왜 의심이야?”

“하긴 그래요.”

버퍼의 도움 없이 그들이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으로도 공격력을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다면 남은 스테이지도 무사히 통과할 테니 잘된 일이었다. 보상이 좋은 것도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보상은 난이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성좌들이 던전을 숨기는 바람에 난이도가 올라간 거나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무사히 만난 기념으로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준영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공세윤은 붙잡고 있던 주안의 손도 놓은 채 발끈했다.

“그런 게 어딨어! 다들 양심이 없네. 1분도 양보할 생각 없으니까 꺼져.”

하긴 공세윤이 지금까지 참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항 없이 순순히 물러섰다.

“그럼 저는 다시 센터로 돌아가겠습니다.”

“뭐, 다음 차례가 있으니까. 회식은 내 차례에 하는 거로.”

“성주안, 이틀 뒤에 보자고.”

모두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성주안은 아직 얼굴이 붉어진 채 씩씩거리는 공세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순진한 얼굴로 주안의 손에 뺨을 비볐다.

활기찰 땐 이렇게 발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활기찰 때가 더 좋긴 하지만 우울한 상태일 때도 신경이 쓰였다. 함께 있을 때 우울한 상태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공세윤과 함께 거주 시설로 돌아갔다.

* * *

자신의 집으로 갈까 하던 성주안은 발을 돌렸다. 공세윤이 이사 오기 전의 집이 얼마나 썰렁했는지가 떠올라 여기서도 그런 집에서 혼자 지낼까 걱정된 탓이었다.

발을 돌리는 성주안을 보고 공세윤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안 들어가요? 어디 가게요?”

“세윤 씨 집으로 가요.”

“응? 왜요?”

“이사 왔으니까 집들이해야죠. 반갑기도 하고.”

눈매를 접어 웃던 공세윤이 성주안의 팔을 끌고 집 앞으로 가서 번호키를 눌렀다. 기껏해야 거주센터에서 주는 가구들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성주안은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배경에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전체를 화이트와 블루 톤으로 맞춘 곳은 마치 지중해에 어느 마을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청량감이 넘쳤다. 수빙계인 그의 스킬과 가장 잘 맞는 인테리어였다.

베란다를 터서 훨씬 넓어진 거실의 한 면을 푸른색으로 칠하고 그 앞엔 하얀색 소파를 ㄴ자로 배치했다. 위엔 벽지와 톤을 맞춘 하늘색 톤의 쿠션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철제와 유리 등으로 포인트를 준 새파란 천장과 통유리 중간중간에 사선으로 그어진 흰색 나무가 전체 인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마치 창문을 열면 상쾌한 바닷바람이 불어올 것 같았다. 공세윤은 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치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노을이 지기 직전의 불그스름한 햇빛 속에서 피부가 하얀 공세윤이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어서 들어와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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