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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74)화 (74/74)

074.

펑, 퍼엉!

전방에서 흐느적거리며 뛰어오는 해골들이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산산이 조각난 뼈다귀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성주안을 둘러싼 보호막에 맞고 튕겨 나갔다.

지난번 던전 공략의 보상으로 스킬 쿨타임이 감소해서인지 스킬을 쓰는 백은후는 번개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해골들이 가까이에 오기도 전에 번개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백은후가 주위에 있는 해골들을 모두 물리치고 한숨 돌리는 사이 성주안이 소리쳤다.

“백은후 씨, 쿨타임이 감소한 거지, 마나가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건 아닙니다. 물약으로 채우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백은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던전 안에서 한 무리의 해골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독을 쓰는지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푸른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다들 이리로 오세요. 포옹 버프 드릴게요.”

성주안은 제가 있는 보호막 안으로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공세윤, 주지찬, 모준영이 차례로 성주안을 안고 나갔다.

“백은후 씨, 왜 안 옵니까?”

“필요 없어. 접근하기 전에 모조리 죽이면 되니까.”

백은후가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섬광이 번쩍여 눈을 찌르는 듯했다. 해골들은 독을 내뿜지도 못한 채 뼛가루가 되어 날렸다.

“버프 안 받을 거면 협공이라도 하세요.”

진짜 왜 그럽니까? 또 뭐에 뒤틀려서!

성주안은 뒷말을 삼키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을 들은 다른 파티원들이 백은후의 주위로 갔다. 모준영의 함성으로 해골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마구마구 독을 쏘아댔지만 포옹 스킬을 받은 모준영에겐 의미 없는 공격일 뿐이었다.

공세윤이 스킬을 걸어 해골들을 얼리면 모준영이 빠져나오고, 다시 주지찬이 폭파시켰다.

그 와중에 백은후는 미처 모준영의 몸에 달라붙지 못한 해골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많은 해골이 한 번에 독을 쓰면 저항이 없는 데다가 포옹 스킬을 받지 않은 백은후는 위험했기에 선택한 방식이었다.

……포옹 스킬 받을 걸 그랬나?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백은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와서 결심을 무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백은후는 당분간 성주안과 어떤 신체접촉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했다고 생각한 그 밤은 성주안에겐 아무것도 아니었고, 저도 다른 파티원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분노로 시작한 감정은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종국엔 극심한 허무함으로 끝이 났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은후가 내린 결론은 어이없게도, 버퍼의 키스와 관심에 목말라하는 다른 파티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백은후는 남은 마나를 모조리 끌어모아 죽음의 낙뢰를 펼쳤다. 채찍이 세 배쯤 늘어나며 번쩍이는 금실을 만들었고 몸을 띄운 백은후가 줄을 타고 던전 끝까지 달렸다.

펑!

폭발음과 함께 던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독해골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모준영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해골들을 제법 죽였는데 이제 남은 건 보스 아닙니까?”

곧바로 던전 상태를 확인한 성주안은 한숨을 쉬었다. 해골 뼈다귀들은 이미 전멸했고, 독해골도 거의 다 처리해서 50마리쯤 남았다. 대충 봐도 여기 있는 몬스터가 다라는 말이었다.

“하아, 진짜 왜 저러죠?”

주지찬이 해골의 머리를 부서뜨리며 대답했다.

“저 속을 누가 알아. 저번에 갇힌 게 억울했나 보지. 워낙 뒤끝 많은 성격이잖아?”

공세윤은 백은후가 무엇을 하든 별로 상관없다는 듯 마지막 무리를 단체로 얼려버리곤 성주안 옆에 딱 붙어서 어깨에 뺨을 비볐다.

“형, 독 튄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보호구 안에 있었잖아요.”

“그럼 됐어요. 형, 저 진짜 많이 보고 싶었어요.”

거의 매일 보고 있는데, 라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안에 들어간 백은후가 가장 문제였으니까.

네 사람은 남은 독해골을 처리하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스킬을 마구잡이로 써댔으니 지금쯤 마나가 모자랄 텐데……. 덜컥 걱정되는 마음에 주안은 공세윤의 손을 잡고 악수 스킬을 썼다.

“세윤 씨, 미안하지만 저 좀 업고 달려주세요.”

“네! 얼마든지요.”

세윤이 자세를 낮췄다. 그는 주안이 목에 팔을 감고 업히자 무서운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저 끝에서 푸른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물약을 먹었구나. 그럼 다행인데…….

분명 남은 몬스터는 보스뿐이었고, 그렇다면 설마 혼자 보스에 대적한다고? 백은후가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불안한 예감에 성주안은 공세윤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주안의 불안을 눈치챈 세윤이 물길을 만들어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던전 끝까지 도착한 두 사람은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너무 놀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이, 이런 미친.”

“세상에.”

백은후는 머리가 세 개 달린 해골을 향해 타격감이 하나도 없는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손엔 채찍을, 또 다른 한 손엔 물약을 들고 마나가 부족할 때마다 물약으로 채워가며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했다.

다행히 머리가 세 개 달린 해골이 이동하는 놈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공격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나마 스킬 쿨타임이 짧아져서 다행이었지.

“백은후 씨, 괜찮습니까?”

혹시나 부상이 있을지 몰라 백은후에게 다가가려 하자, 그가 소리쳤다.

“오지 마!”

“……왜요?”

그 질문엔 공격하느라 정신없는 백은후 대신 공세윤이 대답했다.

“도끼 들고 있잖아요. 저걸 던지거나 그랬겠죠. 백은후 씨 다리에 상처 있는 거 같은데요?”

공세윤의 말에 주안이 시선을 내렸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옷이 찢어져 있는 데다 그사이로 피까지 나오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어제 백은후와 통화할 때 자신이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저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럼 치료해야죠. 치유 스킬 뒀다 뭐 할 겁니까?”

성주안이 다가가려 하자 공세윤이 앞을 막아서며 주안의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다들 오고 있네요. 협공해서 보스부터 처리하고 치료는 나중에 해요. 모준영이 함성 스킬을 쓰지 않으면 해골 공격은 가장 약한 형에게 집중될 거예요.”

공세윤이 얼음막을 만들고 그 안에 주안을 내려놓았다. 마침 도착한 모준영이 함성으로 세 개의 머리를 제 쪽으로 이끌었다. 공격 대상이 바뀌자 도끼날이 날아와 모준영의 팔에 꽂혔다가 튕겨 나갔다.

“헉, 괜찮아요?”

주안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외쳤지만 모준영은 고개만 끄덕하곤 다시 전투에 몰입했다.

“올 거면 좀 빨리 오지.”

백은후의 말에 주지찬이 호통쳤다.

“누가 무모하게 혼자 가래? 혼자 간다고 해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으나 백은후는 그냥 웃고 말았다. 사실 주지찬의 말은 틀렸다. 조금 전 협공을 할 때 백은후가 혼자만 번개 길을 만들어 빠른 속도로 이동한 것은 혼자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프를 핑계로 다른 파티원들과 안고 입을 맞추는 성주안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돌면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미친놈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이 걸린 전투에서 그 정도로 철없는 짓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백은후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협공으로 인해 아군의 공격력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백은후의 계산대로였다면 남은 몬스터들과 적당히 싸우고 있는 동안 버프를 다 주고 이리로 와야 했는데, 안에 있던 괴물들까지 죄다 끌어내 처리해 버릴 줄은 몰랐다.

“뭐, 스킬 쿨타임 감소 효과가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하고 싶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어.”

백은후는 그렇게 말하며 공세윤에게 제 자리를 양보했다. 해골 앞에 선 공세윤이 스킬을 쓰자, 해골 머리 위로 수백 개의 얼음송곳이 비처럼 내려와 꽂혔다. 어차피 움직임이 둔하니 피통을 조금이라도 깎는 편이 유리했다.

어깨에 화염 방사기를 맨 주지찬이 방아쇠를 당기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해골 보스가 주지찬을 향해 도끼를 날리려고 해 봐도 함성 스킬 때문에 공격이 번번이 빗나갔다.

그때 스킬 물약을 한입에 털어 넣은 백은후가 보스를 향해 창백한 번개 스킬을 펼치자, 부러진 머리 세 개가 바닥을 굴렀다.

“끝난 건가? 너무 싱거운데?” 

“흐억.”

그때 뒤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네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성주안이 배를 움켜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형!”

“성주안!”

“으윽…….”

주안은 얼음막 안에 쓰러진 채 바닥을 굴렀다. 기온은 낮은데 배에선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이 까맣게 꺼지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배를 찌는 듯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함정이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트랩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로 이런 고통을 느끼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제, 제발…… 오지 마. 함정이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어 말했지만 네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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