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새. 어디갔다...어어?"
상혁의 눈이 동그랗게 띄이는가 싶더니 이내 해죽. 입가에 묘한 웃음을 메달고는 쪼르르 달려온다.
응? 하고 무심히 쳐다보던 재운의 눈썹이 꿈틀. 미약하게 움직이자, 바로 코앞까지 달려들어 재운의 어께에 매달린 누군가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상혁의 미간이 오묘하게 좁아진다.
생각 같아서는 홱 돌려서 확인해보고 싶어 좀이 쑤시겠지만, 재운이 험악한 눈으로 야리기 시작하자 이내 쩝. 입맛을 다시고는 슬쩍 내밀었던 손을 등뒤로 숨기는 폼이 무척이나 어정쩡하다.
"야, 뭐냐?"
턱짓으로 어께의 짐 - 짐 치고는 꽤나 가벼운 이유는 아마도 아까 그 배고픈 눈빛이 대변해 주지 않을까. 걸리는 거라고는 뼈밖에 없는 녀석이었다 -을 가리키는 상혁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피식 웃으며 그를 내려놓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씨발...내가 치워노랬지."
"야.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 근데 이새끼가...누군 뺙새개..."
"씹. 깔 자리가, 아니. 눕힐 자리가 없쟎아."
"지랄. 박을 거면 빨리 끝내. 언젠 뭐 따져가면서 먹었냐? 왜. 카메라 돌려?"
"생각하는 거라곤 꼭. 방 문이나 열어. 들여야겠다."
"어...? 방에서 하게? 아 졸라 피튀게 옮겨야겠네. 카메라 어딨...어. 야!"
글쎄 뭐랄까.
상혁의 툴툴거림을 뒤로 하고. 사실 일일이 '그게아니라...'라고 설명해 줄 기분도 아니었다.
그저 얼른 씻기라도 좀 하고 누워 잤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끙차 거리며 때묻은 침대 위에 눕혀 놓고 보니 꽤나 예쁘장한 얼굴이다.
아니다, 예쁘다 라기 보다는 역시나 어딘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그래. 신기한 녀석이다.
피딱지가 말라붙은 입술을 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까실하게 일어선 입술이 쩍 쩍 갈라져 메말라 있었다. 엄지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조금 밀어보자 쉽게 열리는 입안은 자극적으로 붉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담배를 꺼내 물고는 한 손 끝으로 감상하듯 흘러내린 흰 어깨를 더듬어 내렸다. 사내새끼 답지 않게 뽀송한 흰 피부는 변태새끼나 끌기에 딱 십상이라고 혼자 궁시렁대는데, 작은 어깨가 유난히 둥글고 예쁘게 내려와 그 가정을 더욱 더 뒷밪침해준다.
한 품에 쉽게 안겨오는 작고 둥근 마른 어깨는 남자를 쉽게 흥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슴으로 손을 옮기게 만들고 허리를 더듬게 만들고 그래. 그 다음 진도가 술 술 풀리는 것이다.
더듬더듬. 그제야 '앗차' 하고 그의 짐이며 품을 뒤적이기 시작하는 재운이었다. 파카 안에도, 바지주머니에도 백원짜리 두 개, 오백원짜리 세 개. 그리고 이상하게 꼬부라진 - 아마도 일어로 보였다 - 글자가 술술 적힌 명함 하나. 그 외에는 성과가 없어 시선을 돌린 곳에는 그가 그렇게도 부여잡고있던 검정색 작은 가방이 보였다.
뾰족한 손잡이엔 여전히 예의 그 대머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 묻어있어 기분이 찝찝했지만. 찌이이익 - 자크를 열어 안을 벌리자.
'아 씨발. 잘못걸렸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목구멍에서 일렁이는 단어들은 공격해야 할 상대를 잃은 패잔병들처럼 입안을 멤돌다 스스로 자폭해간다.
개구리 소년이 제일 싫었다. 다른 행복한 녀석들도 싫다.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는 사탕 문 꼬맹이부터 조금 큰 형들의 참견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삐딱선을 타고 마는 사춘기 면역성 결여의 부르짖음 역시.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싫었던 건.
"우리 아이예요."
"찾아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닮은 아이를 보신 분은 여기로 연락..."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제발..."
하얀 전단지 위에 시컴하게 찍힌 하나같은 표정의 행복한 아이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헤메는 부모들이었다.
박 박 밟아 구겨대던 전단지 뭉치들이 찍 찍 거리는 비명을 흘리며 찢어져갔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모조리 죽여버릴테다.
씩씩거리는 재운의 어깨가 축 늘어지고. 한 해가 지나고 또 두 해가 지나도 그 적개심은 사라져 주지를 않았다. 뜯어모은 전단지들을 쌓아 치익- 불을 붙였다.
그날 담배를 처음 베웠다.
"문 열어봐 테이프 줄게."
"피곤해. 가봐."
"씹. 왜, 깔이냐? 몰래 씹질하게? 근데 왜저래? 수면제 탔어? 그런거 보면 깔은 아닌거 같...아! 문 부서져! 왜 문짝은 까?"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야, 냉장고에...안 상했냐?"
"문이나 열고 지랄하지. 씨. 그게 더 시끄럽다. 졸라 빙구쫑. 안 상했어. 먹고 뒤집어 자."
"원...새끼 입심 하고는. 알았다. 주절대지 말고 얼른 가 새꺄."
"지는. 간다. 나중에 꼭 보여줘 스위티 허니~"
"...나간다."
"씹...농담도 못해."
작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말은 저렇게 험하지만 상혁은 아이같이 순수한 녀석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마찬가지다. 누구든 처음부터 씹복이 터지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그래. 재운 역시 그럴 지도 몰랐다. 아니. 아닐지도.
살 살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보았다. 치익-하고 피워 물은 담배불이 조금씩 타들어가는 가운데, 이제는 꺠어날 법도 한데도 도통 깨질 않는다. 씁쓸히 웃어보다 틱- 둥근 이마를 엄지와 검지를 모았다가 살짝 튕겨 보았다. 재수없는 새끼.
가방 안에 가득했던 것은 소중하게도 감싸 놓은 부모 찾는 전단지 다발이었다.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감탄하리만치 긴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말려올라간 그것은 꿈틀꿈틀. 계속 움직임을 지어내면서도 끝까지 띄이지 못했고, 그런 그를 표정없이 바라보던 재운의 손가락끝이 꼭 다물린 얇은 잆술로 향한다.
피식 한 번 웃어보인 재운이 서슴없이 그대로 그 입술을 향해 다가가자. 거짓말처럼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녀석의 눈이 힘겹게 꿈틀거리며 띄어진다.
몽롱하게 또 띄인 눈을 보며 음 일어났군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난데없이 옷깃을 잡아채는 손길에 시큰둥하게 녀석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천천히 그 얇은 입술이 열리며 몇 마디 말을 늘어놓는다.
"???I..."
(저...)
"뭐?"
"??...愛?μ?A?a...?¢?¢?A?·?ⓒ?"
(사...사랑해도...되겠습니까?)
"...씨발. 이새끼 쪽발이 맞네."
"答?|?A??¾?³?¢。。。?¨願?¢..."
(대답해주세요. 제발...)
"아 시끄러. 나 무식해서 못알아먹어. 어? 알았어. 하이. 하이하이. 됐냐?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스미마셍 에또..."
인상을 찌푸리며 보기에도 과격하게 욕설을 내뱉는 재운과는 달리, 그는 갈구하는 듯한 눈으로 재운을 천천히 쫓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인가부터 갑자기 반짝. 두 눈을 순식간에 반짝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어...내가 뭐라고 했길래?
녀석의 발음이 희한한 것이 영어나 중국어보다는 일본어 같았다. 재운은 되는대로 소리쳐대고 낮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려다가.
"...!"
아. 못참겠다.
놀라 부릅띄인 녀석의 동그란 눈 앞에 정확히 정지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싱긋. 눈가를 휘며 웃어보인 재운은 곧바로 풀썩.
그대로 옆으로 누워 눈을 감는가 싶더니 움찔거리며 주변을 놀란듯 돌아보는 녀석을 갑자기 홱 끌어당겨 입술을 겹쳤다.
순식간에 입술을 빼앗긴 녀석이 버둥거리며 재운을 밀어내려 했지만, 탈진했다 이제 깨어난 몸에 힘이 남아 있었을 리 없는 일이라서, 몇 번 움찔거리다 이내 스륵. 힘이 풀려 고분고분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입안을 해집고 돌아다니던 재운의 혀가 민망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자, 녀석은 재빨리 붉어진 얼굴을 돌려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워온 값 대신이니까."
"...??...僕?I..."
(...저...난...)
"해 뜨면 꺼져."
못박듯 말하고는 휙 고개를 돌려버리는 재운의 시야에 조금 붉어진 그 입술이 다시 들어왔다.
얇고 말랑해 보이던 그것에 또, 동글하게 띄이던 놀란 쌍커풀의 두 눈에. 사실은 그대로 놀려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순간 귀여워 보이기는 했다.
일 안 치른게 다행이지.
이정도면 꽤나 봐 준 셈이다 라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재운은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여러 모로 피곤한 날이었고. 다시 눈뜨면 똑같은 일상이 재운을 맞이할 것이었다.
뒷골목 공갈협박범 오재운.
내일은 한 벌 밖에 없는 정장이라도 빼고 나가볼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이미 재운의 졸린 뇌 속에는 주워온 노랑병아리 따위는 백지처럼 지워진 지 오래였다.
어쨌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러나 그 철칙에 그대로 따른 댓가가 어떤 것일지 재운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재운의 인생에 있어 커다랗고 묘한 영향을 미친.
알을 깨고 태어난 작은 새 한마리.
품어 잡아준 어미새를 찾다.
우시환.
감은 눈가로 겹쳐지는 검은 여권의 영상에 적힌 이름은 woo yeonsuk이었다.
"...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상혁이 녀석은 뒤통수를 테이프각으로 몇 차례 얻어맞고서야 감각을 찾았는지 울상을 하고는 왜 때려 하고 소리를 빽 질러댔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한 점에 멈춰 있었고, 그 자리에는 성가신 병아리 한 마리가 부리를 꼭 다문 채 까만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었다.
"씨발. 저새낀 안간대?"
"저새끼가 뭐야 저새끼가. 시환형! 밥 안 먹었지? 헤헤. 우리 밥먹으러갈까?"
"아주 임자 만났네. 만났어. 갈거면 빨리 꺼져 새꺄!"
상혁은 시환이 좋아 죽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손짓 발짓과 함께 아이처럼 물었지만. 정작 시환은.
"?²飯? ?W?????q???N?I??W?????q???N?I食?×?E?¢?I?"
(밥?...재운이는? 재운이는 안 먹어?)
"아. 야. 얼른 데리고 나가서 버리고 와라. 나 저 쪽발이 새끼 맘에 안들어. 아, 듣기만 해도 땀띠난다. 얼른 달고 나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쫑? 시환이 형이 무슨..."
꽁알대는 상혁을 마구잡이로 잡아 시환과 함께 밀어내는 재운의 팔에 불끈 힘줄이 돋았다.
그러나 시환은 비실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정말 성질이 더러운 녀석인데다 고집 또한 보통이 아니라서.
"出?A???A?A? ?¢?U? ?a?¾。?±?±?E?¢?e?a?n."
(나가라는 거야 지금? 싫어. 여기 있을거야.)
"...뭐라는 거야 씨발!!! 아, 골깨져."
"못 알아듣는다고 욕하지 말랬지!!!"
셋이 번갈아 소리를 빽 빽 질러대는 방안은 정말 골이 빙 빙 돌 정도로 정신 사나웠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재운의 얼굴은 그래도 웃고 있었다.
거의 매일이 이랬다.
시환의 얼굴을 제대로 본 순간 눈이 풀려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헤 벌리고 있던 상혁은 그제야 지 이상형을 만났다나 어쨌다나 중얼중얼 하더니만, 이제 저렇게 앞 뒤 따질 것 없이 그에게 푹 빠져 정신을 못차리는 것이었다.
시환 형이라니. 시환형이라니. 김상혁 생애에 뒤지게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맘에 드는 사람 아니면 형 취급 안해주는 개깡을 달고 지낸 그 수많은 시간 동안에 세상에.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우시환이라는 여우새끼한테는 단박에 붙여주는 그 '형' 소리를 지금껏 오재운이란 놈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이 상황을. 콩깍지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러브러브에 대한 굳은 예우?
하여간 뭐 때문인지 또 인상을 팍 찌그리며 뾰족한 턱을 빳빳이 든 채 뚫어져라 재운을 바라보는 시환 덕에. 그리고 그 옆에서 '시환이 형이 같이가자는 것 같은데 쪼옹? 가자. 응?' 이라며 바람잡는 상혁이 녀석 덕택에.
별 수 있겠는가 싶어 결국은 포기한 채 덜렁덜렁 걸음을 옮기고야 마는 재운이었다.
저 앞에서 입이 귀에 걸린 상혁에게 거의 껴안기다시피 해서 걷고있는 우시환은 일본인 같았다. 아니,
여권상으로는 틀림없는 일본인.
하지만 엄연히 한국인 이라는 피를 줄줄. 몸 속 혈관 가득히 흘려보내는 같은 눈 같은 피부 같은 머리색의.
시환은 모국어일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도 바디랭귀지랍시고 휘적거리는 상혁의 말을 열심히 알아듣는 것을 보면 눈치는 빠른 모양이었다.
"?¨腹?ª?·?¢?A?½?I。?W?????q???N"
(배가 고팠어 재운아.)
"...씨발. 또 뭐라그러는거야."
"???I人?ª食?×?³?¹?A??e?e?Æ?¢?¤?ⓒ?c。。。?A?¢?A?¢?A?½?I。"
(그사람이 먹을 걸 주겠다고 해서...나 따라갔거든.)
"됐다. 말을 말자."
"...?a?c?e?½."
(...당했어.)
"..."
"頭?ð打?½?e?A氣?ð失?A?½???C"
(머릴 맞고 기절했는데.)
"야. 된장찌개 간이 안맞아. 다음엔 다른데 가자."
"..."
깨자마자 '저새끼 아직 안 갔네' 하며 고개를 저어버린 재운은 그후로 또 몇 번을 시환을 쫓으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고집이 보통이 아닌데다 성질도 보통이 아니라서, 시환은 절대 고분고분히 재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눈치가 또 초 일류급이라 그런지 상혁이 자신에게 반한것을 캐치했는지 상혁에게는 그렇게 샐샐 웃어가며 얌전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손목을 잡고 끌어내려 하자 제법 완강한 힘으로 뿌리치며 '愛?μ?A?e?A?A言?A?½?¶?a?n!行?ⓒ?E?¢. ?C?±?E?a行?ⓒ?E?¢!' (널 사랑한다고 했쟎아! 안가. 아무데도 안가!) 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로 - 이렇게 들린다 $%&^&*^*&!!! %&*! *&)^&ㅛ&^(^ !!!!! -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통에 짜증이 나서 귀를 막으며 포기해 버리고 말았더랬다.
아무렇게나 쑨 죽을 던지다시피 안겨주자 한참을 뚫어져라 그것과 재운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이내 허겁지겁. 정말로 며칠 굶은 녀석 답게 퍼먹어대는 통에 혀를 끌 끌 찬 재운이었다.
물론. 벌개진 눈은 잊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턱을 잡아채 옷소매로 허옇게 죽이 붙은 입술을 닦아주던 중에도 소리없이 차오르던 말간 물기를 보면서 '나중에 배로 갚아라' 라고 말하는 재운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정말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가만히 뜯어보면 시환은 정말 변태새끼들 여럿 들러붙을 정도로 심각한 야돌이였다.
그냥 척 보기에 사내새끼야 계집애야 싶을 정도라던지 눈 돌아가는 미소년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건 녀석을 접해 본 사람만이 느낄 테지만. 그녀석은 고분히 눈물 메달고 훌쩍이며 수줍게 당해 줄 성격도 되지 못할 뿐더러. 마른 주제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자기 방어력 하나는 또 끝내 줄 것 같았다.
막말로 누가 달려들어 옷이라도 벗기면 예전에 목격한 것처럼 돌이라도 주워들어 대가리나 사타구니를 뭉개 놓지 싶을 정도로 독한 기가 보이는 녀석인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오직 재운이나 상혁에게만은 천에 없는 요조숙녀인 척 하며 수줍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치거나 하는 사람들의 족족. 녀석의 그 민첩한 사람 떨궈내기에 당했는데 말이다.
어지간히 재운이나 상혁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역시 사람 볼 줄 아는군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기본적인 말들은 조금씩 알아듣는 것 같았다.
가령 이제는 밥을 줄 때마다 '감 사 합 니 다? 감사합니다!" 를 연발해서 "다음부턴 고마워 라고 해라 빙구야." 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다, 담...부...빙...야?"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따라하는 덕택에 그만 사정없이 허리를 숙여가며 비웃어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녀석의 표정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참으로 가관이었고, 풀리는 데 까지는 꽤나 오래 걸렸었다. 화 나면 살벌한 것이 무섭기도 좀 무서운 녀석인데. 도대체 왜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 그렇게 버티고 남아있을까?
오후에는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어디서 그렇게 가져오는지 재운이 팽개치면 가져오고 팽개치면 가져오고.
멍청아. 아무도 널 찾지 않아.
넌 이미 그 악마들의 기억 속에서 죽었다니까.
태어나자 마자 죽어버린거야. 슥삭. 이렇게.
그러니까.
넌 혼자야.
"僕?I君?I?±?Æ?ª大好?≪?¾?æ"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야, 또 씨부렁댄다. 델꾸가라. 나 오늘은 작업 들어가야 돼."
"本當?¾?æ? 僕?I..."
(정말이야. 난...)
"너 아까 빨래 어디다 널었냐? 어? 아 씹. 빨래 말야 이렇게 입는거 빨...아, 빙구새끼한테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야 임마 김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