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조련 ( 서생일기 외전1)
- 슬금슬금 -
- 탁탁탁..탁.탁. -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낮고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에 겁 많은 서생 인은 불 꺼진 캄캄한 부엌 한 켠에 몸을 숨긴 채
눈만 깜빡거리며 제발 이번만은 꼭꼭 숨은 자신을 내버려두고 장정들이 사라져주길 빌고 또 빌었다.
‘덜커덩’하는 문소리와 함께 곧 당황한 듯 조급한 발걸음이 어지럽게 울리더니,
이내 고요한 어둠가운데 잠잠함을 느끼고 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 끼익. 쾅!! -
“저기 계시다. 모셔라!”
지독히도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덩치 좋은 사내놈들이 어느 샌가 우르르 달려들어 어디서 가져왔는지 큼지막한 포대를 발버둥치는
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덮어씌우는 바람에 ‘악’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가뿐히 안겨 두툼한 어느 사내놈의 어깨에 안착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재빠르게 입속으로 쑤셔 넣은 천 쪼가리 때문에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를 내는 것만이 당시 인이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작년 늦가을, 우여곡절 끝에 야만스러운 복면사내에게 범해진 후,
주기적으로 찾아와 협박하며 몸을 요구하는 놈에게 매번 굴욕스럽게 당해야만 했던 날들.
울부짖으며 또 그렇게 사정하며 발목을 붙잡고 애원했건만 매정한 사내는 그럴 때마다 더욱 격렬하게 인의 몸을 탐했고,
온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괴롭힘을 당해 마침내 정신이 나갈 때 쯤 해서야 인을 놓아주곤 했다.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야 어차피 버리기로 한 목숨이니 미련두지 말고 끊어내자’ 하며 자결을 시도하기도 수차례.
번번이 사내가 보낸 감시꾼들에 의해 좌절되고 그런 날 밤에는 더욱 부끄럽고 요사스러운 방법으로 인을 욕보이는데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히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인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것처럼
사내는 첫날밤 이후, 밤낮으로 집 주변에 두어 명씩 사람을 시켜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네들은 계속하여 인의 하루 일과를 보고하고 주기적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여 놈이 인을 범하러 오는 날을 택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운 날씨에 끼니도 거른 채 고생하는 그들이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하련만, 인은 그저 야속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최근에는 남의 이목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 야밤에 장정들에 의해 잠든 사이 보쌈을 당해
영문도 모르고 사내가 기거하는 저택인 듯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 욕을 보이고 오기까지 하였다.
그 외, 말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럽고 민망한 일들을 하나하나 겪으며
서생은 참으로 기가 막히다 못해 슬슬 모든 걸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낮에는 책을 음독하며 밤에는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사내가 올까 전전긍긍하느라 심신이 지쳐
다른 일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보냈더니, 어느덧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은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이다.
꽉 묶인 답답한 포대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들쳐 맨 사내의 단단한 등을 가느다란 주먹으로 힘껏 두들겨대면서
인은 언제나처럼 부질없는 반항을 해본다.
혹시 오늘은 마음이 변해 이 사람들이 자신을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그러나 이내 들려오는 두꺼운 출입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인은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아아.. 결국 오늘도 마찬가지로구나.
“모셔왔습니다.”
수하인 듯 낮선 사내의 음성과 함께 소리 없이 드르륵 열리는 문 사이로 훈훈한 온기가 왈칵 품어져 나온다.
차가운 바깥공기를 온 몸에 맞고 덜덜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인에게는 지독히도 싫은 이 순간, 참으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고했다. 이만 나가 보거라.”
익숙한 사내의 음성이 들리더니 잠시 후, 스르륵 두꺼운 포대가 풀리며 신선한 공기가 인의 폐부로 깊숙이 흘러들어왔다.
인이 긴장감에 번쩍 고개를 든 순간 눈앞에 불쑥 내밀어진 손에 깜짝 놀라 몸을 젖히며 뒤로 물러나자,
언제부터인가 얼굴을 드러낸 사내가 늘 그렇듯이 말쑥한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벌써 울었소? 흥, 소심하기까지 하군 그래. 그렇게 맘이 여려서 어떻게 관직에 나아갈 생각은 한거요. 응? 궁 서생.”
한심하다는 듯이 가볍게 혀를 차며 수치심에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술을 꽉 깨무는 인의 볼을 간지럽게 쓸어내렸다.
“가끔씩 그대가 방문해주니 이것 참 황송하오만, 이를 어쩌나. 서생.
듣자하니 내가 풀어 놓은 애들과 숨바꼭질을 하셨더군. 덕분에 시간이 늦어버렸어. 나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오.”
‘헉’ 다급히 숨을 들이키며 인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바짝 다가가 팔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오늘은 정말.. 정말이지...”
급한 와중에도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송알송알 맺히는 눈물을 원망하며 인은 떨리는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었다.
호기심이 동한건지 아니면 인의 수치심을 더욱 부추기려는 짓인지 사내가 장난스럽게 인의 눈물을 손으로 훑어내며 볼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할 말이 없다면... 이만..”
“아..아니오!! 제발. 제발 나 좀 봐주시오.”
슬슬 인의 옷고름을 잡아당기며 시작하려는 사내의 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덥석 잡은 인의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어렸다.
“부탁이오. 이제 그만 하면 안 되겠소? 나는.. 이 몸은 이 이상은.. 너무 힘이 드오. 그리고 이젠 정말이지.. 아픈데다가 끔찍이도 싫단 말이오!”
더듬더듬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 꺼낸 말에 ‘호오~’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내를 보며
인은 비로소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 하여 바짝 긴장한 입술을 축이며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정히 그대가 그렇다면...”
어렵게 입술을 뗀 사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갑작스럽게 강한 힘에 밀려 바닥으로 쓰러진 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곧이어 인의 얼굴에 사내의 어두운 그림자가 새겨지며,
서서히 인의 귓가로 고개를 숙인 사내가 이윽고 부드럽고 통통한 귓불을 살짝 깨물어 작게 핥으며 건넨 한마디.
“그렇다면, 아프지도 않고 좋기까지 하다면.. 괜찮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지요?”
흑.. 인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오열하고야 말았다.
“아흑.. 제..제발. 그만 두시오!! 헉헉..”
“왜. 설마 저번처럼.. 윽.. 야외에서 끝내고 싶은 거요? 허억..”
“시..싫소. 싫다느..하악!! 악..읏.읏..”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애쓰는 여린 몸이 뒤집어진 채 사정없이 위 아래로 요동치고 있었다.
거대한 사내의 움직임이 등 뒤에서 느껴질 때마다 최대한 부들거리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내질렀더니
이젠 아예 목까지 쉬어버린 건지 숨을 내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흐읏..거부하지..말라 하였소. 내 그대를 찾을 때에는.. 으음.. 앗. 그래 그렇게 좀 더 조여 보시오. 좋아. 후훗..”
만족한 듯 웃음을 띈 채, 사내가 무섭게 끄덕거리는 양물을 더욱 깊게 찔러 넣으며 인의 유두를 거칠게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의 힘에 밀려 어설프게 움직이며 겨우 버티던 가느다란 인의 허리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약한 신음성과 함께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참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감각을 애써 떨쳐내려 애쓰며 인은 머릿속으로 세뇌시키듯 속삭이고 있었다.
오늘밤은 정말 이상하다.
사내가 기필코 인의 흥분에 찬 신음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온갖 기교로 인을 녹여놓는 바람에, 명치끝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하는 따끔거리는
작열감이 느껴지자 기겁한 인은 마음속으로 ‘아니 된다. 결코 아니 돼!!’를 외쳐대며 필생의 인내심을 모두 끌어 모았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아악!! 으흣..으앙..”
결국 터지고야 말았으니..
탄탄한 근육이 사정없이 인의 엉덩이를 짜부라트리며 비벼 올리자 까슬한 체모와 살덩어리들이 예민한 피부에 닿아 금새 흥분을 부추긴다.
더욱이 눈치 빠른 사내가 인의 변화를 알아채자마자 한 번에 푹 찔러 넣고 빼지 않은 채 압박하듯 빠르게 문지르며
흥분을 배가시키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신음을 더 이상 삼키지 못하고 그만 입 밖으로 터트리고야 말았다.
“흐읏.. 그래 이제는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 같소이다만, ”
“흑..흐흑. 죽이시오. 제발.. 하읏. 그만.. 죽여...”
울음석인 신음이 묘하게 색스러워 더욱 색심이 동한 사내를 부추기는 짓인 줄도 모르고
순진한 인은 손톱을 세워 바닥을 사정없이 긁으며 벌벌 떨다가 이내 고꾸라져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힘없이 늘어지는 인의 허리를 거칠게 낚아채 양손으로 강하게 내리누르며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푹신한 이부자리위로 울렁이는 불빛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의 가녀린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내는 뉘인 몸을 슬쩍 일으켜 한 팔로 고개를 괸 채 울긋불긋 붉은 화인이 꽃처럼 핀 인의 등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내 살짝 스치는 그의 손가락에 저절로 굳어지는 어깨를 느끼며
사내는 좀 더 대담하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낙인과도 같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그래. 아직도 아픈가? 그렇게나 많이 교접했는데 말이오. 이젠 적응이 될 때도 되지 않았소?”
흠칫. 가녀린 손목이 잠시 멈추며 가늘게 떨린다고 생각한 순간,
시치미를 떼며 아예 사내를 무시하기로 한 건지 모른 척 다시 움직이는 손가락들을 홱 잡아채 아예 자기 쪽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아얏.”
눈썹을 찡그리며 작은 신음과 함께 힘없이 딸려오는 여린 몸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여,
냉정했던 사내도 슬쩍 겸연쩍은 맘이 들어 ‘오늘은 이만 쉬게 해 줄까’ 하는 고민에 휩싸여 있을 무렵,
당돌하게도 몸을 일으켜 겨우 천 쪼가리 하나로 몸을 가린 채
엉긍엉금 손만 뻗어 흩어진 옷가지를 추스르는 인의 행동에 사내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인”
차분히 부르는 음성에도 딱딱하게 굳은 서생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슬슬 치솟는 노기와 함께 오기도 생겨 다시 한 번 꾹 참고 소리 내어 인을 부르려고 입술을 연 사내는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감추는
인의 고운 얼굴사이로 굵게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을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아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소리로만 들어도 다 아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더욱 허둥지둥 옷가지를 되지도 않게 아무렇게나 꿰차는 인을 저지하며 뒤에서 그대로 끌어 앉았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해. 울지 마시오. 인. 내 다 잘못했소.”
“끄..끅. 하..아..”
결국 참지 못하고 입술 새로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가녀린 서생의 목을 가볍게 쓰다듬어 품으로 끌어 앉으며
사내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것 참 난감한 것이다.
전에 한번 서생의 집에서 관계하던 중 어디선가 구해온 짧은 단도로 자해하려던 그를 아슬아슬하게 저지한 후,
처음으로 분노하여 밤이 하얗게 새도록 인을 괴롭히며 놓아주지 않았던 그 새벽.
잠시 피곤함에 눈을 붙였던 사내는 구석에서 들키지 않게 훌쩍이며 온 몸을 감싸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던 인을 발견하고는
혹여 심성이 여린 서생이 미쳐버린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끌어안고 다정하게 다독이며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샌가 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당황하며 그를 품에 안아 달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천성이 정이 없고 칼 같은 성미를 지닌 사내에게는 애초부터 누굴 달래거나 어루만지는 일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칼로 협박을 하거나 모진말로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말이다.
오늘도 서럽게 어깨를 떨며 울어대는 인을 잠시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내는
이윽고 손을 뻗어 귀중품을 보관하는 반닫이를 열어 한권의 서책을 꺼내들었다.
“잠시 울음을 그치고 이걸 한번 보시오. 전에 얼핏 그대가 이 책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며 자신 없는 투로 건네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확인한 인이 곧 떨리는 목소리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이..이것은 ‘고흥의 서기’가 아닙니까. 어디서 이런 귀한 책을..”
“아.뭐,, 원본은 아니오. 어느 학자가 필사한 교본인데 이거라도 그대의 향학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소만.”
금새 눈물을 떨치며 감탄어린 시선을 받자 우쭐해진 사내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뿌듯해하며 냉큼 대답하였다. 과연 효과가 있군.
정신없이 서책을 뒤적이며 구겨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다루는 인의 모습에 아이처럼 즐거워진 사내는 슬슬 다음 작전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럼, 좀 나아진 듯 하니 책은 날이 밝거든 정독하도록 하고 잠시 이리 가까이 오시지요.”
“.....? ”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인의 손에서 냉큼 책을 빼앗아 서랍장위에 올려놓고
억지로 허리를 잡아끌어 허벅지 위에 앉혀놓자 이내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사내를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잘 보고 배우시오. 기회는 딱 한번 뿐이오.”
무엇을? 이라고 인이 묻기도 전에 재빨리 인을 뒤로 눕혀놓고 고개를 숙여 덥석 중심을 물자 무방비하게 풀어져있던 몸이 펄쩍 뛰며 기겁을 한다.
그대로 인의 허벅지를 다물어지지 못하게 꽉 잡고 벌려 뜨거운 혀로 작고 귀여운 귀두를 갈랐더니
당황하여 허리를 비틀면서도 어느덧 익숙해진 애무에 몸은 슬슬 반응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것이.. 학...학. 멈추시오. 제발. 부탁이.. 하윽..”
채 말을 맺지 못한 채 자지러지듯 허리를 튕기는 솔직한 반응에 뛸 뜻이 기뻐하며, 사내는 더욱 정성을 다해 빨고 문지르며 흥분을 곧추세웠다.
한손에 딱 알맞게 들어오는 작고 동그란 살점을 구슬 문지르듯 강약을 줘 힘 있게 마찰시키며 동시에 이빨로 기둥을 살살 긁으며
귀두 끝을 까칠한 혀로 연신 문질러주자 위에서 까무러칠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사내의 어깨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길게 갈 것도 없이 파르르 떨며 더운 애액을 사내의 입안에 품고선
수치스러움과 자괴감에 얼굴을 감싸 쥔 채 거친 숨만 내쉬고 있는 인의 몸을 잽싸게 자신에게 이끌었다.
“매일 싫다고 투정부리는 그대에게 힘들여 서책까지 구해다 줬는데 이만한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방금 배운 그대로 따라하면 될 것이오. 간단하지 않소?”
어깨를 으쓱하며 ‘자 어서 시작하라’는 듯 얼추 조금 단단해진 양물을 가리키며 사내가 재촉을 하자 인은 눈앞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설레설레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내빼려 하자 주저 없이 사내가 뺏아 갔던 서책을 집어 든다.
“아..아니 되오!!”
망설임 없이 타오르는 불속으로 책을 가져다대자마자 인이 사내의 품으로 뛰어들며 손안의 책을 뺏으려 했다.
덕분에 갑작스럽게 밀려난 사내가 그대로 이부자리에 등을 대고 넘어지면서 잽싸게 한손으로 인의 허리를 움켜잡자
이내 사내의 위에 올라탄 꼴이 된 인은 민망함에 몸을 빼려했으나 이미 그물에 걸린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아니 된다 함은.. 해주겠다는 것이오?”
“그것은.. ”
차마 책을 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하자는 대로 하자니 억지로 당하는 것도 치욕스러워 죽을 지경인 인에게는
입으로 해달라는 것은 천인공노할만한 짓이라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상을 지을 수밖에.
거리낌 없이 다시 책을 불사르려는 그의 움직임에 다급히 사내를 말리며 그의 팔에 매달려 겨우 용기를 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럼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안 되겠냐’며 사정사정 해봤지만 조금 전의 다정함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다시 냉랭한 기운을 뿜으며 가차 없이 고개를 젓는 사내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아. 아니 되오. 그것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오. ”
마침내 힘없이 포기하며 고개를 떨구는 인의 눈에 화로에 던져져 바삭거리며 타들어 가는 두툼한 책 한권이 비쳤다.
실망감에 어깨를 늘어뜨린 채 두 눈을 꼭 감고 살며시 그의 몸에서 내려오려던 인은 다시 강하게 허리를 누르는 힘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왜..?”
“아직 끝나지 않았잖소. 설마 내가 이대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거라면 그대가 오판한 거요.”
피식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마치 놀리는 냥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사내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조금 전엔 그런 뜻이 아니었잖소!!”
항의하는 투로 인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분명 나는 그대가 보고 배운 대로 잘 하면 상으로 그 서책을 주겠다고 했소.
고로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날 만족시켰다 한들 책 나부랭이 따위는 없다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지.
자 그대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 방에 머물러야 할 시간도 두 배로 길어진다는 걸 명심하시오.
알다시피 나는 기다리는 걸 아주 싫어하오. 괴롭히는 건 참으로 좋아하지만. 껄껄.”
경악으로 쩍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한 채 결국 시간만 끌다가
두 번째로 그에게 끌려가 가르침을 받고 난 후 사내의 다리사이로 고개를 숙이는 인의 양 볼은 짙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 또 감쪽같이 옮겨진 건지, 눈에 익은 낡은 방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 인은
밤새 당했던 치욕스런 일이 떠오르자 금방 두 눈 한가득 눈물이 맺혔다.
힘없이 떨리는 손등을 들어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돌리던 인을 사로잡은 건.
바로 어젯밤 사내가 매정하게도 태워버렸던 그렇게도 인이 보고 싶어 했던 ‘서기’였다. 분명 불에 타는 것을 보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가만히 책을 손에 들고 바라만 보던 인이 이윽고 결심한 듯 책장을 한 장 넘기자마자 휙 하고 종이가 한 장 떨어졌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그대의 노력이 가상하여 준비한 것이라오. 다음번에는 물론 만족스러워야만 한다는 걸 꼭. 명심하기 바라오.]
오늘도 그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을 깨달은 인이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며 손안의 종이를 구겨버렸다.
밤새 펄펄 내린 눈이 온 대지를 하얗게 물들이며 어스름하게 통이 터오는 이른 새벽.
작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한 채 서책에 코를 박고 삼매경에 빠진 어린 서생은
오늘 하루도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를 속으로 기원하며 책을 덮고 늦은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