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나마 조금 다른 점이라곤 술에 취해 약간 해롱거렸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이성은 있었다.
살짝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향하던 참이었다. 골목 바로 옆 도로에 커다랗고 까만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꼭 연예인 밴처럼 생긴 그 차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골목으로 몸을 꺾었을 때였다. 축축한 손수건이 입 안으로 틀어박히며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 기억엔 몸이 붕 뜨는 느낌만이 희미하게 남았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어젯밤의 기억. 더듬고 더듬어 가장 자세히 기억해 낸 내용이다.
지금은 회색빛 좁은 방 안에 갇힌 채였다. 천장엔 탁한 불빛을 내뿜는 전등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주변엔 삐거덕거리는 고철 침대 하나와 그 옆의 서랍뿐이다.
이런 일은 TV에서만 보았다. 분명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한 일임을 알고는 있었어도 나만은 비껴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낯선 공간에 몸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장기 매매였다. 수술대에 옮겨져 배가 갈라지는 상상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몸은 묶여 있지 않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처음엔 누구 없어요, 몇 번 소리쳤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계도 없는 방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순간순간의 작은 움직임이 곤두선 신경에 세세히 걸렸다.
서서 돌아다니다 침대에 앉고 다시 서는 것을 몇 차례. 굳게 닫힌 문이 끼이익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준은 한껏 경계를 하며 발을 뒤로 물렸다. 보기만 해도 위압적인 덩치를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뒤로 문이 다시 둔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그가 시선을 주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결코 작지 않은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나를 샅샅이 훑어 내렸다. 정돈된 머리 아래로 보이는 호감형의 단정한 얼굴은 상상 속 범죄자의 얼굴과는 많이 달랐다. 홍보지에 실릴 법한 정석적인 모범 시민 상이었기에 두려움이 살짝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무섭긴 무서웠다.
“저, 여기는 어디… 저, 저는 왜 데려오신 거예요?”
떨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목소리를 내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는 긴장감을 반영하듯 목소리도 잘게 떨린 채로 나왔다.
“…저기?”
“음.”
남자는 잠시 가늠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듯한 시선에 계산이 오갔다.
그 침묵을 못 견뎌 다시 조심스레 불러 봤으나 침음 외엔 별다른 답이 없었다. 재촉하는 시선으로 남자를 응시하며 좀 더 센 태도로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래도 되나. 낯선 곳에 갇혔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괜히 자극했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 살인마일 수도 있잖아. 혹시 정말 장기 매매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건강 안 좋다고 말할까. 돈 때문에 납치한 거면 어쩌지. 나도 돈 없는데….
여러 생각이 뿌리처럼 퍼지며 이어 나가던 중, 갑자기 정전이 된 것처럼 불이 꺼졌다. 탁한 빛이었지만 그럼에도 빛이었다. 마지막 남아 있던 희미한 빛마저 꺼지자 창문 없이 사방이 막힌 방엔 빽빽하게 어둠이 들이찼다. 눈을 뜬 건지 안 뜬 건지 분간이 안 가는 무거운 어둠에 적응하려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홱 돌아가며 뺨에서 화끈한 고통이 일었다.
“어….”
겨우 뺨을 맞은 것뿐인데 몸이 바닥에 쓰러지며 둔탁한 통증이 빠르게 퍼졌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쓰러지듯 넘어진 후 바보같이 어, 하는 말 한 음절 뱉어 낸 게 다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됐다. 갑자기 이상한 데서 눈 뜨고, 납치범 같은 사람이 들어오고, 정전이 되고, 뺨을 맞고….
“아악!”
머리카락이 억센 손아귀에 한 움큼 쥐어졌다. 머리채가 다 뽑혀 나갈 듯 우악스러운 손길에 몸이 절로 일으켜 세워졌다. 두피가 빳빳하게 당겼다. 혼란스러운 머리가 느리게 돌아갔다.
반대편 뺨에 불이 일었다. 남자의 손은 너무 크고 딱딱했다. 아까와 별다를 바 없이 또 바닥에 쓰러졌다. 홧홧하게 뜨거워진 뺨에 눈물이 길을 냈다. 눈물이 닿으니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맞은 거지? 왜? 왜 갑자기?
웅크려 누워 있는데 배가 구둣발에 축구공처럼 차였다. 들이쉬는 숨이 턱 막히며 무서운 고통이 몸을 압도했다. 뺨을 맞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머리에 내리꽂히듯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몸을 바닥에 비비며 얼굴을 묻었다. 끅끅거리는 긁는 듯한 목소리가 낡은 기계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바닥이 더럽든, 차갑든 그런 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대로 숨이 막혀 죽게 되는 게 아닌지 두려움이 가득 찼다.
계속 되풀이되던 억울한 물음도 탈색되듯 하얘졌다. 희게 빈 머리엔 아프다는 말만이 빙빙 돌았다. 너무 아파. 아파. 맞기 싫어. 너무 아파.
“아… 아파요… 죄송….”
눈물을 매단 채 바짓단을 잡았다. 맞기 싫었다. 왜 맞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맞기 싫었다. 뭐가 죄송한 건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용서를 빌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들이 절박하게 땅을 기었다.
“흐, 죄송해요. 때리지 마세요….”
달달 떨리는 손이 바짓단을 연거푸 잡아당겼다. 남자는 그 힘에 제지되듯 멈춰 주었다. 구두코가 턱 아래로 들어왔다. 얼굴이 위로 들려서 눈물로 흐릿한 눈을 깜박거렸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야는 까맣게 물든 채였다.
멈춘 폭력에 헉헉, 숨을 내쉬고 점점 더 선명하게 파고드는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저도 모르게 바짓단을 붙든 손을 놓고 몸을 최대한 말며 울었다. 너무 아프다. 진짜 너무 아파. 어떡해. 너무 아파.
곤두선 감각 사이로 머리 위에 무언가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정말 들고 싶지 않은 고개를 주저하며 살짝 들어 올렸다.
“구두 핥아 봐요. 그럼 용서해 줄게.”
남자는 관대하게 말하며 턱을 들어 올린 구두코를 입 앞에 갖다 댔다.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구차하게 구두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혀를 빼내 어색한 몸짓으로 구두코에 가져다 대어 핥아 올렸다. 고통의 눈물과 자괴감의 눈물이 섞여 흘렀다. 벌린 입가에 짠맛이 스미고 가죽 냄새가 닿았다. 매끈한 감촉을 연신 쓸어 올렸다. 위에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길 몇 분, 두 손에서 구두가 쓱 빠져나갔다. 텅 빈 두 손을 채 거두지도 못하고 멍하니 구두로 시선을 내렸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방을 나갔다. 다준은 무릎을 꿇은 채 더듬더듬 바닥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문의 차가운 감촉이 손에 닿았다. 역시나 열리진 않았다.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잠깐 졸다 일어나니 언제 들어온 건지 천장 위에서 탁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껏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니 온갖 근육과 뼈가 뻐근하게 아파 왔다. 손을 들어 볼에 살짝 대니 역시나 부풀어 올라 있었다. 거울이 없어 모르겠지만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빨갛게 부어올랐거나.
여전히 당기는 배 위의 옷을 걷어 올렸다. 검푸른 멍이 물감처럼 퍼져 있었다. 멍을 직접 보니 어쩐지 더 아파 오는 것 같다. 눈을 찌푸리며 옷을 내렸다.
난 왜 갑자기 맞았던 걸까. 여긴 어디고,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왜…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여기선 할 것도 없었다. 답이 안 나오는 질문만 되새기며 좁은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우울하고 무섭다. 차라리 목적이라도 알면 이 불안감이 좀 덜해질까. 도대체 날 왜 데려온 건지도 모르겠으니 계속 나쁜 상상만 부풀어 갔다. 그럴 리 없을 거라 부정하고 싶지만 너무 현실적인 상상들이라 더욱 두려워졌다.
몇 시간, 어쩌면 하루. 체감상 꽤 긴 시간이 흐르고 갑작스럽게 불이 꺼졌다. 다시 방 안에 어둠이 드리웠다. 피부에 불길함이 오소소 타고 올랐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훑어 오르듯 불온함이 타고 흐르고 끼이익-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들렸다.
바깥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눈이 부셨다. 눈을 감자마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다시 눈을 떴다. 위압적인 덩치를 보니 어제 날 때렸던 그 남자인 것 같다. 남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분명 뭐라고 질문할 거리들이 많았는데 입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제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직도 몸에 새겨진 고통이 선명하게 날을 세웠다.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좁은 방 안이라 몇 발자국 옮겼을 뿐인데 바로 벽이 닿았다.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방황하며 남자의 구두로, 얼굴 언저리로, 침대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커다란 손이 얼굴을 감싸듯 부어오른 뺨을 스쳤다. 가볍게 얼굴을 쥔 손이 엄지로 턱을 살살 쓸었다.
의미 모를 손짓에 크게 쿵쿵거리는 가슴이 아플 만큼 세게 뛰었다. 정적 속에 심장 소리만이 크게 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용기를 내어 그를 살짝 올려다봤다. 두려움은 여전해서 주저하며 슬쩍 눈을 올렸다. 가까이에 있는 까맣게 물든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눈을 몇 번 더 감았다 뜨자 어렴풋한 표정이 보였다. 미소를 짓듯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휘어지는 눈꼬리. 그리고….
뺨을 감싸고 있던 큰 손이 머리통 옆을 후려쳤다. 관자놀이가 찌잉 울리며 시야가 뒤집혔다. 몸이 종이처럼 팔랑팔랑 아래로 휘청였다. 왜. 왜. 왜.
당황스러움이 깊이 파고들었다. 왜 또 때리지? 내가 뭘 했는데.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데.
다시 어제와 같은 폭력이 이어졌다. 정강이가 구둣발에 채이고 머리채가 잡혀 올라가자 다시 애원이 나왔다. 이유 모를 사과를 하며 빌었다. 다시 눈물로 범벅이 되어 가는 얼굴에서 머리카락 몇 가닥을 떼어 낸 남자가 자기 앞에 엎드리라고 했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고개를 조아리며 혼란스럽게 부유하는 생각의 조각들을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잠시 비굴한 모습을 구경하던 남자는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둔중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터져 나가는 울음을 쏟아 내며 소리를 지르다 남자가 다시 들어와 때릴까 봐 화들짝 입을 덮었다. 입에 댄 손바닥이 울음을 막았다. 삼키고 막아도 흐느낌이 간간이 새어 나갔지만 크진 않았다. 서럽고 억울해서 속이 답답했다. 배도 고프고 춥고 아팠다.
정전은 남자의 방문을 뜻했고, 남자는 폭력을 뜻했다. 불이 꺼지면 어김없이 남자가 찾아왔다. 남자는 들어와 이유 없이 날 때렸다. 아프다고, 잘못했다고 빌면 자비롭게 선처해 준다는 빌미로 굴종을 명했다. 시키는 대로 따르면 남자는 말없이 나갔고 그럼 다시 울다가 잠들었다. 이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내가 처한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턴 자고 일어나면 죽이나 물이 놓여 있었다. 이 또한 영문 모를 상황이었으나 바싹 마른 입술을 벌려 목을 축이고 마른 뱃가죽을 쓰다듬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이불을 쓰다듬었다. 어떤 전조도 없이 또다시 불이 꺼졌다. 공포에 학습된 손이 떨렸다. 일곱 번째 정전이었다. 남자가 들어왔다.
고요한 방엔 한 사람의 헐떡임만이 울렸다.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숨이 가쁘게 조이고 걷어차인 배가 아프다. 내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 배를 팔로 감싸 안으며 무릎을 꿇고 익숙하게 잘못을 빌었다. 본래는 명령을 내리고 굴종을 확인한 뒤에야 방을 나서던 남자가 오늘은 다른 행동을 보였다. 그가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대화를 시도했다.
“때리지 말까요?”
“네, 네….”
“왜?”
“아, 아파요….”
“아파?”
“네….”
이상한 질문들이었지만 착실히 대답을 했다.
“그래. 그럼 안 때릴게요.”
“아….”
…이렇게 갑자기?
“고마워요?”
“네? 아, 네, 네….”
어쩐지 이상했지만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안 때린다고 했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
“그런데 약속 하나 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네네.”
“여기서 나가도 얌전하게 굴어야 돼요. 알았죠?”
“네네네.”
“그래. 다준 씨 믿고 내보내 주는 거니까 착하게 있어야 돼요?”
“네네.”
남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기 바빴다. 최대한 유순한 표정을 지으며, 비굴할 정도로 착실히 대답을 하며.
***
그간 있었던 곳은 지하실이었다. 어쩐지 춥고 눅눅하다 싶었다. 스산한 분위기의 회색빛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여니 지하와는 딴판인 깔끔한 내부가 보였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따사로운 햇살이 너울거리는 널찍한 거실이었다. 평범한 가정집 같으면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집처럼 호화로웠다. 집 바닥이 대리석인 곳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매끈한 대리석에 맨발이 닿았다가 떼어질 때마다 쯔즉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긴장으로 인해 땀에 젖어서 그런지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바닥에 쯕 달라붙었다.
남자의 넓은 등을 보며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입구를 찾기도 했고 소리를 지를까, 이대로 뛰어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출구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뛰쳐나가는 건 너무 무모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남자에게 무력하게 맞고 있었던 몸이다. 일단은 얌전히 따르다가 기회가 생길 때 도망치는 게 현명할 듯싶었다. 남자는 계단을 올랐다. 뒤따라 오르며 계단 아래를 힐끔 내려다봤다. 입술을 꾹 깨물며 남자를 따랐다.
“여기가 다준 씨 방이에요. 다른 방으로 돌아다녀도 되는데 잠은 여기서 자요.”
“네….”
계단을 오르고 방 하나를 건너뛴 방. 나무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깔끔한 내부가 드러났다. 여타 평범한 방과 다름없었다. 습하지도 좁지도 어둡지도 않고 빛이 잘 드는 창이 있는 깨끗한 방.
“그럼 난 먹을 거 좀 가져올게요. 얌전히 둘러보고 있어요.”
“네에….”
아직 무섭고 낯설어 기죽은 채로 말하니 남자는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고 나갔다.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다. 갑자기 납치당하고 갇히고 맞고 지금은 어딘지도 모르는 방 안에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난 어떻게 해야 되지?
무거운 고민들이 켜켜이 쌓여 갔으나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무엇보다 너무 무서웠다. 그 큰 손이 또 언제 나를 때릴지 예상할 수 없었다.
남자의 눈치를 보며 식사를 어영부영 하고 그의 지시대로 물을 마셨다.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며 이를 닦고 시키는 대로 세수를 한 후 욕실에 밀어 넣어져 샤워기의 물을 맞았다.
대충 샤워기를 휘휘 저으며 몸을 씻기는 남자의 행동에 다준은 경직된 채로 굳어 있었다. 몸엔 그간 새겨진 멍이 빼곡했다. 먹다 체해 아픈 배를 움켜쥐고 도대체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인가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제발 집에 가고 싶다. 제발. 인형 놀이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이러다 갑자기 또 맞을까 봐 두려웠다. 남자는 이제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배려심 없는 손길 때문에 부드러운 수건이 닿는데도 여린 피부가 까끌하게 쓸렸다.
“아, 됐다.”
남자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잡아 올렸다. 멍이 든 허리를 꽉 쥐어 올리는 바람에 소리를 지를 만큼 아팠지만 꾹 참았다. 토할 것 같다. 남자는 들어 올린 그대로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체하더니 싱글벙글 웃음을 띠었다.
“밥 먹으니까 배부르죠?”
“네? 아, 네….”
“씻으니까 개운하고?”
“네에….”
질문이 뭔가 이상했다. 하긴 애초에 여기 온 후 모든 상황이 이상했다.
“그래서 고마워요?”
“…네? 그, 네.”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게 무슨 미친 말일까. 소화가 안 된 배가 쿡쿡 쑤셔 온다.
“자, 그럼 이제 침대에 가요.”
남자는 흥얼거리며 허리를 잡은 상태로 계단을 올랐다. 휘청휘청 흔들리는 몸을 맡기며 개꿈보다도 개연성 없는 전개에 머리가 복잡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목적이 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등 뒤로 푹신한 이불이 닿았다. 직후 남자가 몸 위로 올라왔다.
“어?”
커다란 손이 허벅지를 잡아 벌리자 다리 사이로 성기가 달랑 드러났다. 잠깐 멍하게 남자의 얼굴을 보다 한발 늦게 반사적으로 어깨를 밀쳤다. 조금도 밀리진 않았다.
“왜요?”
도리어 남자는 태연한 물음을 던졌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왜, 왜….”
혼란스러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미쳐 돌아가는 세계에 홀랑 던져진 것처럼 돌아가는 상황이 도대체 이해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다른 상식이 있는 공간 같았다. 미치광이들이 가득한 기괴한 세계 같은.
“이제 밤이잖아. 달리 뭘 하겠어요.”
“…뭘, 뭐를 하는데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터무니없었다. 나도, 앞의 사람도 남자다.
“섹스 해야지.”
눈앞의 장면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가 막히지도 어이없지도 않고 그저 멍했다.
“얌전히 있겠다고 했잖아요.”
“시, 싫어! 싫어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다. 무슨 미친….
“비켜!”
차라리 맞는 게 훨씬 낫다.
“…윽!”
남자의 어깨를 어떻게든 밀쳐 내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갑자기 남자가 한쪽 어깨를 콱 잡아 침대 아래로 밀쳐 냈다. 데구루루 굴러간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쳐 쿵! 부딪혔다.
“허억…!”
숨통이 콱 조이고 눈물이 절로 고이는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 갔다. 바닥과 정통으로 부딪힌 어깨가 부러진 것같이 달랑거리며 싸하고 뜨거운 고통에 화끈거렸다.
“얌전히 굴겠다고 했으면서 왜 반항해요?”
“윽….”
“안 되겠네.”
콱 다부진 손이 머리채를 낚아챘다. 고통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쓰러진 채로 숨을 쉬려 애쓰는 몸을 그대로 끌고 갔다.
“아아악!”
머리 가죽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아 어떻게든 일어나려 애썼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성큼성큼 움직이는 기다란 다리가 한 번 벌어질 때마다 바닥에 몸이 끌렸다.
계단을 내려갈 땐 더욱 심했다. 계단 모서리에 이곳저곳 부딪히며 뼈가 도독도독 부러지는 것 같았다. 살이 패이고 긁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중간쯤 와선 아예 계단 아래로 몸이 굴렀다. 굴러떨어지는 몸이 바닥에 도착했을 땐 멀쩡히 걸어 내려온 남자와 달리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죽은 것처럼 미동 없이 처져 있던 몸이 간간이 바르작 떨렸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엉켜 얼굴을 가렸고 입술이 부딪혔는지 찢겨져 피가 고여 있었다. 가련한 몰골에도 동정심은 들지 않는지 남자는 다시 머리칼을 잡아끌었다.
의식이 깜빡 켜지니 지하실이었다. 우악스럽게 머리를 잡아끌던 손이 생각났다. 온몸이 아프다. 뻐근하고 쓰라리고 곳곳에서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데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준을 차가운 바닥에 눕힌 채 다리를 벌렸다.
“흐으, 으….”
차마 다시 밀어낼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프다. 맨 등의 살결에 차가운 냉기가 아리게 퍼지고 남자는 벌린 다리 사이로 들어와 성기를 잡고 비벼 댔다.
단단한 귀두가 매끈한 회음부에 비벼지다 좁은 구멍에 장난치듯 꾹 눌러졌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별 해괴한 짓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당장 자리를 박차 나가고 싶고, 이상한 짓을 시도하려는 남자를 제지하고 싶지만 고통에 잠식된 몸은 굳은 채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 아,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러게 얌전히 있었으면 잘해 줬을 거 아니에요. 왜 괜히 반항해서 몸만 고생시켜.”
이 모든 게 다준의 잘못이라는 양 타박하듯 말한 남자는 물기 하나 없이 빡빡한 구멍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었다.
“아아악!”
“안 들어갈 것 같은데.”
남자는 고민하듯 갸웃거리면서도 손가락을 마른 구멍에 밀어 넣으며 꼼지락거렸다. 다준은 생소한 고통에 몸을 떨었다.
“내가 젤도 준비해 뒀는데 다준 씨 때문에 이게 뭐예요. 다 망쳤어. 진짜 짜증 난다.”
토라진 듯 말한 남자는 부러 더 거칠게 좁은 안을 헤집었다. 빡빡한 마찰열 때문에 화끈거림이 쓰라림과 함께 찾아왔다. 더 커져 가는 두려움과 통증에 저도 모르게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가늘게 떠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으나 남자의 손목에 닿은 순간 고개가 홱 옆으로 꺾여 돌아갔다. 뒤이어 뺨 쪽에 새로운 고통이 퍼졌다.
“어딜 함부로 만지려 해.”
“헉… 허으….”
정신을 흐트러뜨린 고통에 의식은 깜빡거리며 더욱 가라앉아 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선명히 몸을 파고드는 통증에 완전히 정신을 놓을 수조차 없었다.
“준비했는데 다 망했어. 처음 계획도 어그러졌는데 이런 것도 못 하면 어떻게 해요. 진짜 속상하다….”
남자는 눈썹을 축 내리며 손가락을 하나 더 욱여넣었다. 가중되는 고통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몰라. 그냥 넣을래. 다쳐도 네 탓이야.”
손가락이 확 빠져나가고 두꺼운 것이 구멍 위로 닿았다. 안 돼요, 하지 마세요. 희미한 애원이 계속 입 밖으로 나갔지만 남자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귀두를 꾹 눌렀다. 손가락을 넣었다지만 여전히 좁디좁은 입구는 꾹 다물려 있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준의 허리께를 몇 번 대충 쓰다듬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
“으… 아…!”
절로 몸이 뒤틀렸다. 투둑,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크게 고인 고통을 토해 낼 수도 없이 그대로 받으며 몸이 굳어 갔다. 온 근육이 경직되고 힘이 꽉 들어갔다. 이따금 뼈가 덜커덕거리며 새로 끼워 맞춰지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데인 듯이 화끈거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어닥치며 계속 비집고 들어왔다. 내장이 위로 밀리며 없는 자리가 억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윽… 아, 힘 좀 빼.”
벌어진 허벅지 안쪽이 거세게 내리쳐지자 반사적으로 조금 힘이 풀렸다. 남자는 그 틈에 더욱 몸을 밀어붙였다. 목 안쪽이 길게 긁어지는 것 같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가 내뱉어지지 않는다. 오한이 들다 몸이 확 뜨거워지고 그러다 다시 추위에 몸이 떨렸다. 안쪽이 너무 뜨겁다. 처참한 고통이 끊임없이 파고들어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다.
살덩이가 터질 듯이 가득 찬 것도 잠시, 불덩이 같은 게 온 내벽을 긁으며 다시 뒤로 빠졌다. 빡빡하게 말라 있던 속에 뜨끈한 액체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조금 수월하게 빠져나간 것이 다시 쾅 밀고 들어왔다. 처음보다 거칠고 빨랐다.
크게 쳐올려 살을 찧은 다음 다시 빠져나갈 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았다. 내장이 잔뜩 우그러들었다가 돌연 끄집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섭고 아프다. 계단에 채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에 비하면 차라리 계단을 몇 번 더 구르는 게 낫겠다.
“숨 쉬어.”
“어윽….”
“맞는 거 좋아해? 왜 말을 한 번에 못 알아 처먹어.”
어지러운 와중에도 목소리는 고통처럼 선명하게 꽂혔다. 곧장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볼록한 배 위를 느긋이 쓰다듬은 남자가 다시 몸을 물렸다. 예상되는 끔찍한 고통에 눈물이 났다.
중간에 까무룩 정신을 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너무 아팠고 흥건히 젖은 하체가 느껴졌다. 꼬물거리는 구멍에선 피와 섞여 선홍빛이 도는 액체가 찔끔찔끔 나왔다. 얼얼하고 쓰라리고 뻐근하고 아리고. 하나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구석구석 퍼졌다.
무참히 폭력을 휘두른 남자는 깔끔한 복장 그대로 옆에 앉아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제 손을 가져다가 깍지를 끼워 보고 손등을 엄지로 살살 쓸어 보다 꾹 누르기도 하며 괴상한 짓을 이어 갔다.
“깼어요? 아프지? 그래도 어떡해요. 네가 나빴어.”
아이 같은 유치한 말이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너무 아팠다.
“씻겨 줄까요?”
남자는 자비로운 제안이라도 하는 양 봐준다는 식으로 툭 던졌다.
“구멍 찢어질 때 성대도 같이 찢어졌어? 왜 대답이 없어요. 기분 나쁘게.”
“…아, 안… 아니….”
“씻겨 줄까요?”
“네… 네….”
“그래.”
퍽 만족스럽게 웃은 남자는 시체 같은 몸을 안아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파 뒈질 것 같은 와중에도 씻고 나면 다시 지하실로 가는 건지 궁금했다. 그냥 미친 것 같았다. 잘못 걸렸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어떻게든.
남자는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내려다보다 배시시 웃곤 말했다.
“고마워요?”
“네….”
도망가야 한다.
***
흰 베일을 뒤집어쓴 사람들 틈으로 눈에 띄는 체격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번 제물은 진여울 사도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주가 서 있는 단상까지 걸어 나온 남자는 홀로 검은 베일을 쓰고 있었다. 얇게 하늘거리는 베일 안의 표정이 지루한 곡선을 그렸다. 얼굴조차 기억 안 나는 식상한 사람의 장기를 손 위에 올리곤 벌써 몇 번이나 들어 다 외운 연설을 듣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구원을 청하고.
앞으로 해야 할 병신 같은 짓거리를 생각하다 문득 어제의 감각을 곱씹었다. 부드러운 몸, 쉽게 찢기는 속살과 하염없이 울며 숨이 넘어가던 표정. 다시 그 속에 처넣고 싶었다. 좆을 씹어 먹을 듯 비좁게 감싸던 내벽. 따듯한 피를 윤활제 삼아 처박던 감각이 되새겨졌다.
“일곱 번째 날에 모든 것이 끝나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교주의 개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꺽꺽거리던 목소리를 머릿속에 불러 왔다. 가는 신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 감촉이 손에 감길 정도가 되자 어느새 기도문이 끝나 있었다. 유리판 위에 축 처진 덩어리를 올렸다. 역하게 퍼지는 피 냄새를 들이켜며 베일을 걷었다. 반듯한 얼굴이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다시 지하실이다. 천장 위 희미한 불빛이 깜빡였다. 어둠이 들 때마다 이유 없이 때리던 남자의 커다란 손이 생각났다. 그 위로 무자비하게 강간했던 끔찍한 모습이 덧그려졌다. 몸에 한기가 들었다.
“으….”
아래로부터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다. 차마 손을 댈 수도 없는 처참함이 끓어올랐다. 최대한 빨리 그 미친놈한테서 도망쳐야 되는데. 걷긴커녕 일어설 수도 없을 것 같다. 널브러져 누워 있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다시 눈을 감고 싶다. 선명한 고통이 연신 파고들어 괴롭게 했다. 종일 구른 몸도 곳곳이 욱신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너무 가고 싶어. 메마른 목도 찢어지는 것같이 아파 왔다.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다. 빈속도 울렁거린다. 얼마나 잔 거지?
“이다준 씨.”
“헉.”
낮은 목소리에 몸이 파득 떨렸다. 문을 조금 연 남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곤 장난스럽게 웃음 짓고 있었다. 고통에 정신 팔려 문이 열릴 때 나는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어요. 사실 지하실 환경이 좋진 않잖아요? 더럽고 춥고 딱딱하고. 물론 다준 씨가 잘못해서 온 거지만 난 아량이 넓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큼성큼 커다란 보폭은 단 두 걸음 만에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돌린 고개가 구두코에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그보단 두려움이 더 컸다. 아직도 아픈 몸에 고통을 더 추가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어- 조금 봐줄까 생각 중이에요. 나도 여기서 몸을 누이긴 싫고 다준 씨도 이왕이면 따듯한 곳에서 지내는 게 좋잖아요. 날도 슬슬 추워지고 있는데. 그렇죠? 위로 올라가고 싶지? 내가 준 방 좋았잖아요.”
“네….”
“그럼 사과를 해야지.”
“아….”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나오는 걸 막으며 입을 뗐다. 떨어지지 않는 입이었지만 두려움에 떠밀려 저절로 열렸다.
“죄, 송해요. 제가… 죄송해요….”
“용서해 달라고도 해야죠.”
“용서해, 주세요….”
“성의도 보이고.”
젠장. 뭐 이리 덧붙는 말이….
“죄송해요.”
살짝 고민하다 손을 모아 공손하게 구두코를 잡았다. 남자가 잡힌 구두를 느릿하게 뒤로 빼냈다. 손이 구두를 놓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위로 다시 구두가 얹혀졌다. 무게를 주어 누르진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남자의 발에 손이 짓밟힐 것만 같아 초조해졌다.
“죄, 죄송해요.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말로만 하는 거면 누가 못 해요. 성의를 보이라니까? 사과하는 법 안 배웠어요?”
그딴 게 뭔데. 알려 주기라도 하든가. 남자는 그저 깔려 있는 손을 밟을 듯 말 듯 간을 보며 무게를 살짝 얹었다가 떼어 내며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굴욕감이나 수치심, 모멸감보단 역시 공포가 압도적이었다.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건가. 비척비척 일어나려 하자 그제서야 손 위의 구두가 내려갔다. 정답인가 보다. 내심 안도하며 뻐근한 몸으로 겨우겨우 무릎을 꿇었다. 접힌 하체가 삐걱거리며 뭉근한 통증이 퍼졌지만 최대한 공손한 표정으로, 비굴한 말투로 잘못했다고 주절거렸다.
남자는 뭐가 그리 까다로운지 침음을 내며 손으로 턱을 쓸었다. 힐끗 올려다본 얼굴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걸려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이 흠칫 떨렸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다.
“다준 씨 눈치 진짜 없구나.”
자신의 정신이 이상한 건 생각 못 하는 모양이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게 죄는 아니에요. 내가 알려 줄게요. 대신 이번에 잘 기억하고 배워야 돼요. 두 번 실수는 죄야.”
머리채가 확 잡혀 끌려갔다. 입술이 남자의 바지춤에 파묻혔다. 놀라 눈을 크게 떠 바라보니 남자가 여상하게 말했다.
“성심성의껏 빨아요. 미안한 만큼.”
“아.”
멍하니 입을 벌리자 입 속에 볼록 튀어나온 바지 앞섶이 살짝 들어갔다.
“입으로 지퍼 내리고. 손 쓰지 말고 꺼내 봐요.”
역겨움에 그대로 깨물어 영영 제 구실을 못 하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그러나 얌전히 이로 지퍼를 물었다. 여러 번 놓쳤다가 겨우 지이익 내리고 바지 버클을 이로 긁었다. 아무리 깔짝거려도 열리지 않자 남자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흐트러진 앞머리가 눈을 찔렀다.
“아. 진짜 너무 편하게 봐주는데.”
남자가 투덜거리며 직접 버클을 풀어 주었다. 속옷 위에 입을 대니 그 무게감과 크기가 더 여실하게 느껴졌다. 속옷을 이로 물어 아래로 끌어당기자 한쪽 허벅지에 고이 고정되어 있던 성기가 흉흉한 모습으로 퉁 튕겨 나왔다. 두터운 기둥에 뺨을 철썩 맞자 모욕감과 수치심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위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걸 뜯어 뱉고 싶다.
“아, 하고 잘 삼켜 봐요. 혀도 쓰면 좋고.”
막상 앞에 그것을 두자 너무 흉측해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앞에 두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자 머리채를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두피가 뒤로 당겨지고 확 뽑아 버리기라도 할 듯 위협적으로 쥐는 손아귀 때문에 일단 입부터 들이댔다. 말랑한 입술이 단단한 귀두에 닿았다가 끄트머리를 살짝 물었다. 토할 것같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욱!”
황급히 입을 막으며 물러났다. 다행히 정말 쏠리진 않았지만 입을 뗀 순간 바로.
“윽!”
세상이 뒤집혔다.
“아. 씨발. 진짜….”
“아, 그… 죄, 죄송….”
“일부러 이래?”
“아니….”
“와. 진짜 기분 더러워. 다준 씨 진짜… 사람 기분 더럽게 잘 만든다.”
“흐….”
생리적인 역겨움을 어떻게 하라고.
너무 억울하다. 세상 살면서 남자 걸 물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대중목욕탕도 가 본 적이 없어 남의 것을 본 경험도 거의 없었다고. 그런데 그걸 눈앞에서 직면하는 걸로도 모자라 빨라고? 심지어 어제 나에게 처박아 살을 찢어 놓은 그걸?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고 실제로 하려니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도망가려면 최소한 지하실은 나가야 하는데. 나가려면 꾹 참아서라도 남자의 기분을 풀어 놓고.
“따지고 보면 지금쯤 다준 씨 장기들 유리 위에서 뒹굴고 있을 거, 내가 모처럼 살려 준 건데. 진짜 속상해.”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려니 이것도 이거대로 구역질이 났다. 나까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악!”
“은혜를 베풀었는데 갚긴커녕 이딴 식으로 행동해요? 진짜 괘씸한 사람이야.”
남자가 벽에 부딪혀 나뒹굴고 있는 몸을 끌어다 다리를 벌렸다. 아래는 찢어진 채 아물지도 못한 상태다. 건드리지 않아도 쓰라려 선명하게 아파 왔다. 지금 박으면 정말 너덜너덜 걸레짝이 될 게 뻔했다. 절대 안 돼. 너무 아파. 지금도 너무 아픈데. 진짜 너무 아파. 싫어. 싫어. 너무 싫어.
“하지, 하지 마요! 제발, 지금 너무 아파요! 흐, 제, 제발….”
“애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예쁜 짓을 하고 해야죠. 지금 이러면 짜증 나서 가증스럽기만 해.”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 왜 하필 내가 이딴 짓을 당해야 하는데.
“자, 잘 빨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 흐, 주세요… 제발… 제가 진짜, 흑, 잘, 잘 할게요….”
몸이 뒤집힌 채로 계속 애원했다. 등 뒤로 애처롭게 뻗은 팔이 하나로 모아져 잡히고 뒤로 들린 엉덩이 골 위로 그 흉흉한 살덩이가 간을 보듯 비벼졌다.
“내가 그렇게 많이 봐줬는데. 양심도 없지.”
“흐으윽, 진짜… 진짜 잘할 수 있, 어요. 정말….”
“하… 그렇게까지 빨고 싶어요?”
“네네네… 네, 제발….”
“알았어요. 물려 줄게. 진짜… 이렇게 빌면 마음 약해지는 거 어떻게 알고.”
그렇게 울며불며 애원해도 억지로 처박았던 주제에 잘도 저딴 말을 지껄였다. 하지만 정신병자의 말을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저걸 이해하려 노력하는 순간, 나도 점점 이상해지고 말 것이다. 안 되지. 난 정상적으로 나갈 거야. 꼭 나가서 여생을 감옥에 처박혀 살게 만들 거야.
독하게 마음을 다잡아 봐도 절망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바닥을 구른 몸이 다시 무릎 꿇리고 얼굴에 커다란 성기가 들이밀어졌다. 이번엔 망설임이 없었다. 유일한 기회를 빼앗길까 얼른 입에 담았다.
그러나 아무리 입을 벌리고 욱여넣어도 절반도 채 들어가지 않았다. 입이 크지도 않은데. 아니, 입이 크다 해도 저걸 다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노력하려고 컥컥대면서도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런데.
“욱!”
숨이 안 쉬어진다.
“애쓴다. 못해도 노력하니까 예쁘잖아. 그래, 이렇게 성의를 보이라니까 왜 뻗대서 화나게 했어요.”
“우욱!”
남자가 허리를 가볍게 쳐올릴 때마다 이를 세우지 않으려 입을 더 벌려야 했다. 줄줄 나오는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타액으로 성기를 축축 적셨다. 입술에 기둥 표면이 닿고 귀두가 혀를 누르며 더 깊이 들어오려 했다. 살짝 샌 쿠퍼액이 혀에 그대로 눌려 비벼지고 비릿한 맛이 퍼져 갔다.
고통과 역겨움에 눈물이 고였다. 코로 숨을 쉬려 해도 숨이 막혔다. 감각이 둔해지고 머릿속이 흐려진다. 남자가 뭐라 말한 것 같은데 웅웅거려 해석이 안 됐다. 죽을 것 같아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남자는 계속 장난치듯 허리를 튕겼다.
“컥!”
성기가 더 깊이 박혀 왔다. 목젖에 닿을 듯 쑥 들어와 목구멍까지 침범해 왔다. 참으려 해도 잔기침이 간질거렸고 귀두가 목젖을 누르는 탓에 헛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 남자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덧그리듯 매만졌다. 말랑거리는 볼을 살짝 건드리고 억세게 잡은 머리칼을 풀어 쓸어 주다 얼굴 전체를 손으로 감쌌다. 양손을 뺨에 대자 작은 얼굴이 손아귀에 다 찰 듯 쥐어졌다.
직후 남자의 허리가 탁탁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준의 머리도 앞뒤로 따라 흔들렸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았지만 정신을 부여잡으며 입을 벌렸다. 입가가 찢어진 듯 따끔거리고 턱이 빠진 것처럼 덜컹거렸다.
성기를 목구멍까지 밀어 넣었다가 뒤로 빼낼 때마다 이상한 마찰 음이 났다. 찐득하고 불쾌하게 울리는 소리였다. 쭈븟, 쭙. 타액이 얽힌 이상한 소리가 거슬렸다. 자괴감이 더해 가고 비참함이 서럽게 커져 갔다.
“허윽, 컥, 큭, 윽, 우윽… 흑….”
타액과 정액,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었다. 결 좋은 머리칼이 전부 이마로 흐트러져 내려와 군데군데 정액이 얽혔다. 콧대를 타고 정액이 주르륵 내려와 콧방울에 맺혔다. 점성이 있는 액체는 느리게 툭, 떨어졌다.
다준의 타액을 잔뜩 묻힌 성기가 뺨에 정액을 비벼 댔다. 핏기 없는 뺨에 정액을 덮어 허옇게 덧그리고 색색 숨을 내쉬며 기침을 내뱉는 입술에 슬쩍 비볐다. 무릎을 꿇어 더 작아 보이는 몸이 어깨를 안으로 말아 잔뜩 웅크리며 움찔 떨었다. 겨우 툭 건드렸을 뿐인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이 재밌었다. 여기서 박으면 어떻게 할까. 저번처럼 엉엉 울어 댈까. 그것도 귀엽긴 했다.
멍청하게 굴거나 나쁘게 굴어서 섭섭하기도 했지만 역시 예쁘긴 예뻤다. 눈이 어떻게 저러지. 강아지처럼 축 처져선 눈망울은 반짝거리고. 굳이 눈물을 매달고 있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떨어질 것같이 촉촉했다.
저런 눈으로 돌아다니면 이상한 게 많이 꼬일 텐데. 납치범한테 납치라도 당하면 어떡해. 물론 납치야 내가 하긴 했지만 죽일 생각은 사라졌으니 따지고 보면 납치가 아니었다. 그냥 보호지. 모처럼 주워 왔으니 잘 키워 주고 잘 돌봐 줘야지.
방도 깨끗하게 준비해 뒀는데 아쉽게도 다준은 사회화가 좀 덜 된 것 같았다. 말을 한 번에 못 알아 처먹고 괜히 속상하게 뻗대기나 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나쁜 버릇은 앞으로 차차 고쳐 나가면 될 것이다.
정액 묻은 얼굴로 후드득 눈물을 쏟는 다준은 무척 애처로워 보였다. 봐달라는 듯이 훌쩍거렸지만 저런 얼굴로 이리 바라보는 건 오히려 몸을 더 동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그래도 기분은 좋아졌다. 그러니 괜히 짓궂게 굴지 말고 조금 봐주기로 했다.
“입 더 벌려 봐요.”
여울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살살 달래듯 말하며 종용했다.
“한 번만 더 싸고 방에 데려다줄게요.”
다준이 주먹을 꾹 쥐며 입을 벌렸다. 눈물이 한 줄기 흐르고 다시 목구멍까지 처박혔다.
***
계속 귓가에 부딪히는 부스럭 소리와 어딘가 휑한 기분에 눈을 떴다. 포근한 등의 감촉이 좋고 몸을 감싼 부드러운 시트가 따듯해 마음이 편안했다. 아직도 몽롱해 흐릿한 시야로 눈을 깜빡이자 점점 의식이 깨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편안하게 잠겨 있던 감각에 선명한 고통이 파고들었다. 목이 찢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따끔거린다. 메마른 건조함 때문에 더욱 아파 온다.
상체에 덮인 따듯함과 달리 하체는 허전했다. 아래를 보니 다리를 양옆으로 벌려 놓곤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손으로 구멍을 벌리곤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에 수치심보다도 소름이 끼쳤다. 뻐끔거리는 물고기의 입처럼 작게 벌어진 구멍에 남자의 숨결이 닿았다. 정신병자의 기행을 목격한 사람의 기분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미쳤다.
하지만 뭐 하냐고 묻지도, 한껏 벌어져 있는 다리를 모을 수도 없었다. 그저 불쾌하고 무서울 뿐이다. 무슨 반항이라도 한다면 다시 그 지하실에 처박힐 것 같았다. 저 남자 앞에선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어떤 미친 짓을 벌일지 모르는 일이다.
이게 나 혼자 조심한다고 괜찮을 일인가, 하는 좌절감도 들었지만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은 무사히 도망갈 때까진 남자의 비위를 맞추며 최대한 온순히 굴어야 한다.
“음….”
남자가 침음을 내며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 하나였지만 그 굵은 마디에 여린 살점이 아파 왔다. 조심성 없이 파고든 손길이 좁게 닫히는 살을 비집고 들어와 거칠게 한 바퀴 돌리며 내벽을 눌렀다. 고통에 꿈틀거리는 주름까지 훑은 손가락이 다시 동그라미를 그리듯 둥글게 내벽을 휘저었다. 얇은 점막이 끈끈하리만치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으윽….”
“괜찮죠? 찢긴 건 아문 것 같은데. 내가 약도 발라 줬거든요.”
전혀 괜찮지 않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손가락이 홱 빠져나가고 남자가 숙이고 있던 상체를 들어 얼굴에 갖다 댔다. 부담스러운 자세에 어깨가 움찔거렸으나 그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다준 씨 정액 범벅이었는데 내가 다 씻겨 주고 침대에 데려다줬어요. 이불도 내가 덮어 줬고.”
“…아…….”
일부러 모멸감이라도 주려는 것일까. 남자는 뭘 원하는 건지 빤히 얼굴을 쳐다봤고, 다준은 어쩐지 불길한 시선에 어색하게 입을 열어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응시하다 말을 덧붙였다.
“다준 씨 자고 있을 때 구멍에 약도 발라 줬어요.”
“아하…….”
저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나름의 호응도 해 줬건만 뭔가를 강요하는 듯한 시선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내가 싫어하는 걸 바라는 걸까. 조금 인상을 구겨 보았다. 눈썹이 살짝 처지며 미간에 작은 주름이 졌다. 입꼬리도 삐죽 내려 보이며 남자를 억울하게 쳐다봤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그 침묵에 괜한 불안감이 쌓여 가는 건 나였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다시 개소리를 붙여 가며 날 때릴 것 같았다. 흔들리는 눈으로 남자의 큰 손을 보다 다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내리깔고 남자의 가슴팍을 보기도 하다 다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너무 무섭다.
“할 말 없어요?”
“네?”
“할 말 없냐고.”
“아… 그… 어… 가, 감사해요?”
어거지로 뱉어 본 말인데 정답이었는지 남자가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페이지를 한 장 넘긴 것 같은 표정 변화에 묵직한 가슴께가 더 답답해졌다.
“뭘요.”
대학 홍보 모델 같은 반듯한 미소도 이젠 정신병자의 기이한 일그러짐 정도로 여겨졌다.
“감사 인사는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고마움을 느껴야 소중함을 알잖아. 감사 일기 같은 거 쓰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잖아요.”
“아, 네….”
남자의 손바닥이 느릿하게 발목을 쓸었다. 다리 사이에 남자가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도 벌어진 채였다. 발목부터 시작된 손이 안쪽 허벅지까지 파고들었다. 엄지가 여린 살결을 쓸어 올리고 손바닥이 무릎께로 내려가며 연신 살을 쓰다듬었다.
그나마 상체에 덮여 있던 이불마저 남자가 걷어 냈다. 포근했던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무방비한 나체를 손이 매만져 갔다. 가슴팍, 겨드랑이, 팔. 치한처럼 이곳저곳을 더듬는 남자가 역겨웠다. 희열이 담긴 눈이 광적으로 빛났다. 이상 성욕자 같았다. 숨을 거칠게 쉬기까지 했다면 영락없는 만화 속 죽어 마땅한 치한 같았을 것이다. 행동은 이미 그러했다.
“나 착한 짓 많이 했어요.”
“흣….”
조마조마한 심정을 대변하듯 가슴이 쿵쿵 무겁게 뛰었다. 가슴팍을 스치던 손이 기어코 유두를 건드렸다.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톡 쳐 본 것이 재밌었는지 주위를 돌며 톡톡 건드려 왔다. 자괴감이 들었다. 가판대 위의 인형처럼 몸 곳곳이 아무렇게나 만져지는데 무력하게 몸을 맡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착하게 굴면서 신실하게 살면 원하는 게 이루어질 거라고 그랬는데 진짜 그러더라고.”
“흐윽!”
“그래서어- 계속 착하게 살려구요.”
젖꼭지가 굵은 손가락 사이에 끼어 마구 눌려졌다. 이리저리 누르는 대로 뭉그러지며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갔다.
처음엔 말랑하던 것이 점차 꼿꼿하게 몸을 세우니 흥미가 돌았다. 나름대로 살살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손안에서 굴리다 쭉 잡아당겨도 보며 그 작은 돌기를 관찰했다. 이게 꽤 재밌었다. 만져 보니 손을 대지 않은 다른 쪽 유두와 비교했을 때 조금 부풀어 올라 더 도드라지게 보였다.
“흥분하면 여기도 서나 봐요. 좆만 서는 줄 알았는데 신기하다.”
“윽….”
분해서 계속 눈물이 나오려 한다.
“좋아요? 얼굴 엄청 빨갛다.”
“으….”
공포심에 억눌려 있는 격노가 마음속에서 응어리진 채 꿈틀거렸다.
유두를 제 마음대로 농락하던 손이 떨어져 나가자 다준은 잠시 제 처지를 잊고 안도했다. 그러나 잔뜩 벌려져 있던 회음부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아 왔다. 경악에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갈무리하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저 미친 사람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본능적인 움직임을 자제하며 주먹을 쥐었다.
“아… 아파요….”
“뭐 하지도 않았는데 아프대.”
했었잖아, 개새끼야.
“그… 아, 아직, 안 나았….”
“그래. 하긴. 나도 그런 취향은 아니에요. 아파하는 걸 왜 좋아하겠어. 서로서로 같이 즐기는 게 좋지.”
남자가 상체를 물리더니 침대 옆 서랍장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덜컹거리며 열린 서랍 안에 손을 넣은 남자가 이내 이상한 통과 함께 다시 몸 위에 올라탔다.
“짠. 그래서 이거 샀잖아요.”
뚜껑이 열리고 묽은 액체가 주르륵 쏟아지자마자 저것이 뭔지 알아챘다. 엉덩이 골로 주룩 쏟아지는 액체가 차가워서 움찔 허벅지가 떨렸다.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이거 바르면 좋아서 정신 못 차린대.”
구김 없이 활짝 웃는 표정은 이거 좀 보라고 무언가를 자랑하며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자아- 몸 뒤로.”
“윽!”
남자의 손에 몸이 한 바퀴 구르더니 어느새 무릎이 꿇리고 엉덩이가 위쪽으로 들렸다.
“아, 자, 잠….”
남자의 성기가 때리듯이 툭툭 구멍을 내리쳤다. 장난스러운 움직임이 한 번 내려앉을 때마다 몸이 덜컥덜컥 굳었다. 잔뜩 뿌려진 액체 때문에 기둥이 때리듯 닿을 때마다 쯕- 착- 하는 이상한 마찰 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속이 더 안 좋아져 간다.
“윽! 아, 잠까… 자, 잠깐만, 요. 아…!”
“왜 자꾸 애태워. 적당히 해야 애교지.”
“허윽…!”
숨이 절로 삼켜지는 압박감이 배를 채웠다. 액을 묻힌 성기가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좁게 닫히는 구멍을 비집고 들이찼다. 전보단 수월하게 들어가고 있었지만 시트를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등 뼈가 도드라지며 힘이 꽈아악 들어갔다.
“아으으, 아…!”
“아, 진짜. 엄살은….”
“흐윽….”
“어때? 좋아요? 막 흥분되고 그래?”
전혀 아니다. 아팠다. 그냥 아프기만 하다.
“아, 아프. 아파, 아파요….”
“거짓말하지 마. 좋잖아. 지금 구멍 엄청 움찔거리는 거 안 느껴져?”
개새끼가.
“흐으, 아니야. 흑, 아윽, 아파요, 으, 진짜….”
더듬더듬 호소하는데 갑자기 반쯤 들어온 성기가 허리를 부여잡고 콱 박아 왔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신음도 턱 삼켜졌다. 그저 힉, 공기를 들이켜는 소리만 짧게 나오고 전처럼 거센 추삽질이 시작됐다.
억센 손에 힘없이 이끌리며 시트만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똑같았다. 그저 장소만 조금 달라졌을 뿐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괴롭다. 그런데 그 고통 사이사이로 이상한 감각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허, 허윽! 윽!”
서서히 불을 지피듯 희미한 감각이 뻑뻑 무자비하게 찧이는 속살로부터 피어올랐다. 급기야 다시 뒤로 빠졌다 뻑! 살 소리를 내며 안을 뭉갤 때는 등허리가 움찔 뒤로 휘었다. 시트에 고개를 박은 채 달달 떨고만 있던 뒷덜미에 소름이 확 끼쳤다.
열기가 아랫배에 찬찬히 고이고 고통과 닮은 것이 서서히 들끓었다. 쓰라리게 아픈 구멍은 따갑다 못해 뜨거워져 갔다. 점막이 안을 한껏 휘저어 가는 성기에 달라붙는 게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점점 녹아 가는 몸과 달리 머릿속은 차가워졌다. 번지듯 생각을 방해하는 감각 속에서 서늘해진 머리가 의문했다. 이게 뭐지. 왜 갑자기.
“기분 좋지?”
등 뒤에 붙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를 숨결처럼 귀에 대고 불어 넣었다. 하늘거리는 기다란 것이 귓속을 파고들어 제멋대로 유린하는 것 같았다. 좁은 귓속 통로를 타고 따라 들어와 정신까지 마음대로 휘저을 것 같다. 간지러움이 귀를 통해 허리를 타고 내려와 발끝까지 찌르르 퍼졌다. 고작 그 작은 감각에 한차례 몸이 휩쓸리자 더한 변동이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올 듯 날뛰었다.
“아으, 아!”
저절로 배 아래로 손을 가져다 댔다. 남자의 허리 짓대로 배가 올록볼록 꿈틀거렸다. 한 번 처박을 때마다 목구멍까지 이상해졌다. 당장이라도 몸 전체를 꿰뚫곤 입 밖으로 웩 튀어나올 것 같다. 무섭다. 이상한 감각이 몸집을 불려 갔다. 너무 싫어. 무서워.
“아! 아악! 하으! 으으윽!”
시야가 엉망으로 흔들린다. 속이 이상하게 뒤얽혀 간다. 얇게 들러붙고 질척하게 휘젓고 의지와 상관없이 꽉꽉 조여들었다. 성기를 빨아들이듯 수축하는 구멍이 연신 오물오물 품고 있는 성기를 씹듯이 움직였다.
찌극거리며 성기가 뒤로 물러나고 꽉 찬 접합부가 느슨하게 틈을 보이면 그 사이로 녹은 젤이 주룩 흘러나왔다. 미지근하게 녹아 느릿하게 흐르는 액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제 성기를 맛있게 받아먹으며 줄줄 싸질러 대는 꼴이 마음에 든다. 남자가 허리를 뒤틀고 무릎 꿇은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렸다. 다준의 자세가 개가 소변을 누는 것과 같아 웃겼다. 아, 진짜 질질 싸고 있긴 하잖아. 좀 비슷한가.
“흐아!”
바뀐 자세에 균형이 무너진 다준이 시트에 몸을 비비며 울었다. 눈물 젖은 뺨이 시트에 뭉개지고 흔들리는 몸과 함께 마찰되어 비비적비비적 빨간 자국이 새겨져 갔다.
다리가 잡혀 들리자 삽입이 더욱 깊어졌다. 이보다 더 들어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내장을 밀며 억지로 파고들어 왔다.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뭔가가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분명 아픈데, 그런데 그 틈으로.
“흐! 흐어! 흐으윽!”
믿을 수 없는 쾌락이 파고들었다.
다준도 모르는 새 성기가 세워져 있었다. 귀두 끝에 새어 나온 쿠퍼액이 금방이라도 무게를 못 이기고 떨어질 듯 방울져 매달렸다. 연신 추삽질을 하던 도중 성기가 구멍에서 홱 빠져나왔다.
남자의 성기 모양대로 벌어진 채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서 녹은 젤이 투둑 덩어리져 떨어졌다. 직후 기둥이 빠져나갔음을 깨달은 구멍이 확 수축했다가 다시 움찔 동그랗게 벌어지고 또 오무락거리며 속살을 감췄다.
귀엽게 개폐하는 구멍에 다시 뻑! 성기를 박아 넣었다. 걸리는 것 없이 쑥 물렁한 점막을 비비며 곧바로 끝까지 도달했다. 온통 짓물러진 살을 다시 찧고 더 열라는 듯 쾅쾅! 쑤셔 들었다. 다준이 배를 부여잡으며 앙앙거렸다. 혼미해진 정신에 온통 쾌락이 가득 찼다.
“좋아? 좋아서, 죽을 것 같지, 그래?”
“응! 흐윽! 아!”
“방금 응이라고 한, 거지?”
“흐으! 아! 아으으! 아으!”
머리가 달랑달랑 시트에 비벼졌다. 가볍게 들리는 무게가 줏대 없이 흔들리며 시트를 구겨 갔다.
남자가 홀랑 들어 올린 발을 내팽개치듯 침대에 툭 던졌다. 힘없이 떨어진 다리가 몸처럼 널브러졌다. 커다란 몸에 깔린 나체가 시트에 파묻히며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바르작댔다. 위에서 아래로 찍듯이 박아 넣어지는 성기에 물소리가 찰박거렸다. 완전히 녹은 액이 구멍에 남아 철퍽거리는지, 다준의 구멍에서 액이 터져 나와 참방거리는지 알 수는 없었다.
등의 오목한 부분이 빠져나갈 수 없는 악력에 짓눌리고, 잔뜩 젖은 구멍 사이로 계속 파고드는 거센 힘에 그저 시트에 푹푹 처박히며 다리 사이를 온전히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다준의 성기가 시트에 한껏 비벼지자 울음소리가 더 격해졌다. 언제 싼지도 몰랐던 성기가 예민해진 채로 비벼지니 허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절박하게 숨을 헐떡이며 시트를 앙 물었다.
“흐으으, 우으!”
시트에 막힌 신음이 소리를 줄이고 남자가 못마땅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다 이내 미간을 구기며 웃었다. 콧잔등이 살짝 찌푸려지자 작은 주름이 생기고 한쪽 볼에 보조개가 파였다.
남자가 다준이 문 시트를 확 빼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천을 대신해 손가락이 들어갔다. 손가락이 다준의 혀를 누르다 치열을 훑듯 건드렸다. 이따금 작은 이가 손가락을 살짝 깨물기도 하였으나 정신없이 앙앙거리는 귀여운 모습에 별말 없이 봐줬다.
너무 좋으면 정신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 좋다고 저러는데 그럴 수도 있지. 입 천장을 간질이고 손가락 끝으로 볼을 누르기도 했다. 가끔 쑥 파고들어 목젖을 건드리면 엑엑, 괴로워하는데 그 소리가 신음과 섞여 꽤 귀여웠다.
위로는 입 안을 휘젓고 아래론 구멍을 휘저으며 남자가 즐겁게 눈을 접었다. 벌써 몇 번이나 쌀 뻔한 것을 참고 참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퍼지는 만족감을 느끼며 여울이 성기를 짜내듯 퍽! 다준의 속까지 꾸우욱 박아 넣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느끼며 다준이 다리를 한계까지 벌렸다. 정액이 들어오는 내내 구멍이 혼자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눈물이 연신 떨어졌다.
개폐하는 구멍 안으로 정액이 언뜻언뜻 보이고 이따금 가느다랗게 흘러내려 시트에 젖어 들었다.
헉헉, 다준의 헐떡거림만이 조용한 침실을 맴돌았다. 남자는 몇 번 숨을 고르더니 다준에게 엎어지려다 옆으로 빙글 돌아누웠다. 계속 부풀었다 푹 꺼지는 배를 잡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힘없는 몸이 쉽게 딸려 갔다.
“하으, 학….”
여울은 개처럼 헐떡이는 다준이 마음에 들었다. 진짜 개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엄청 헐떡거리네. 숨 못 쉬겠어요?”
제법 다정한 손길이 안은 등을 쓸어내렸다. 기분이 좋아 관대해진 여울이 그제야 다준을 돌봤다. 폭풍우라도 맞은 듯한 머리칼을 곱게 쓸어 올려 주고 추스르지 못한 몸을 가지런히 정돈해 품에 넣었다. 그렇게 몇 번 등을 토닥이고 보듬어 주자 다준의 숨이 차차 잦아들었다. 힘겹다는 듯 색- 길게 내쉬는 숨이 있긴 했지만 정상적인 호흡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손을 내려 엉덩이를 매만졌다. 움찔 엉덩이 근육이 수축하고 그와 동시에 수축하던 구멍이 돌연 벌름거려 정액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엉덩이에 얹힌 손에 주르륵 흐른 정액이 걸렸다. 남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조곤조곤 구멍 주위를 매만졌다. 다준은 정신이 들었다. 죽고 싶었다.
“아. 예쁘다.”
“흐으윽….”
“아직도 좋아서 정신 못 차리네.”
다준은 지금 당장 벽에 머리라도 처박고 싶을 만큼 멀쩡한 정신이었다. 희게 질린 다준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은 남자가 쇄골에 입술을 부볐다.
***
어김없이 아침은 돌아왔다. 햇볕이 잘 들어 따스하게 환해진 방 안을 멍하니 보다 남자에게 안긴 채로 호박죽을 받아먹었다.
한 술 크게 떠 입에 욱여넣다시피 먹이는 남자 때문에 입가와 몸에 죽이 덕지덕지 묻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옆에 둔 손수건으로 흘러내린 음식물을 닦으며 칠칠맞게 먹는다고 혼내듯 젖꼭지를 꼬집었다. 억울함에 순간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만족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니 일부러 이러는 거구나 싶었다. 울분이 솟아올랐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개를 내리고 다시 얌전히 죽을 씹어 넘겼다. 채 씹지도 않았는데 숟가락을 들이밀고, 억지로 입 안에 쑤셔 박았기 때문에 식사라기보단 고문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억지로 쑤셔 든 죽이 이번엔 남자의 손장난으로 부어오른 젖꼭지 위에 주륵 흘러내렸다.
시간이 지나 뜨겁다기보단 따듯해진 죽이었지만 잔뜩 부어 예민한 곳에 닿으니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며 신음이 터졌다.
“아!”
“다준 씨, 겨우 이딴 거로 느낀 거예요?”
“네? 아니, 아니에요. 아파서….”
누가 들어도 이상한 신음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란 탄성 딱 그뿐이었다.
“와. 어쩐지 아까부터 얼굴도 빨갛더라. 칠칠맞게 먹길래 조금 혼냈는데 설마 그거로도 느꼈던 거야?”
하지만 역시 미친 사람은 보통 상식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되었다.
“아니….”
“하긴. 몸을 막 꼬더라. 난 아파서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좋았던 거였구나.”
기가 막히는 황당함에 입이 다물렸다. 말이 안 통했다.
“다준 씨 그거다. 요망? 맞아. 요망해요. 강아진 줄 알았는데 여우였어.”
저 미친놈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또 몸 달았죠? 어제 엄청 느끼더라. 뚫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래.”
여기 온 후 억울함과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도망치기도 전에 화병으로 죽지나 않을까.
“왜 이리 빤히 쳐다봐.”
남자가 불길하게 눈을 휘었다.
“유혹하는 거지.”
“아니, 아니, 아니에요.”
황급히 입을 열었으나 호박죽이 툭 침대 한쪽에 놓였다. 안고 있던 상태로 남자가 몸을 빙글 돌렸다. 몸이 뒤집혀 남자의 아래에 푹 깔렸다. 어젯밤의 기억이 덕지덕지 흐리게 떠올랐다. 몸을 쥐어뜯고 싶었던 그 이상한 감각도 절로 생각났다.
“밥은 알아서 먹어.”
남자가 몸에 올라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두 팔을 끌어 올려 시트를 짚게 하고 어제처럼 무릎을 꿇렸다. 얼굴 아래론 구석쯤에 놓여 있던 그릇을 가져와 먹으라는 듯 두었다. 진짜 개 같은 꼴에 기가 찼다.
“윽, 아…!”
뒤로 굵은 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풀리지도 않은 빽빽한 구멍으로 다짜고짜 성기부터 밀어붙였다. 숨통이 콱 조여들었다. 남자가 세운 팔이 부들부들 흔들렸다. 고개가 푹 아래로 숙여지고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가 갈리고 손바닥 아래의 시트를 꽉 쥐었다. 생리적인 눈물이 부은 눈가에 고였다.
“너 허벅지에 정액 말라붙었어.”
남자는 한 손으로 허리를 움켜잡은 채 다른 손으론 허벅지를 아래에서 위로 쓱 쓸어 올렸다. 자신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남자가 귓가에 대고 작게 키득거렸다. 난 이렇게 아픈데 혼자 즐겁게 낄낄거리는 모습에 속이 뒤집혔다.
“아으윽….”
“팔 무너지면 혼나. 제대로 짚고 죽도 다 먹어.”
“흑, 아, 너무 아프, 아파요….”
“다준 씨는 다 좋은데 거짓말을 이렇게 밥 먹듯이 해서 어떡해요.”
“악!”
팔이 크게 휘청이며 허리가 꺾이듯 휘었다. 남자가 곧장 박아 들었다. 정신을 나가게 했던 그 부위가 치고 들어온 귀두에 온통 뭉개졌다. 단숨에 박힌 살이 놀라 오무락 조여들었다.
“조일 거 다 조이고, 쌀 거 다 싸면서 내숭은 또 내숭대로 다 부리네.”
“흐으! 윽!”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팔이 달달달 떨렸다. 손아귀가 머리채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기어코 팔이 꺾이고 고개가 그릇 안으로 푹 들어갔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호박죽 안에 얼굴이 처박히진 않았다. 대신 주황빛의 누렇고 묽은 호박죽이 시야에 가득 찼다.
“먹으라고.”
그 말에 혀를 내어 죽 표면을 핥았다. 혀에 달큼하고 고소한 맛이 감겨들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흑, 으….”
서럽다.
“잘 먹네.”
“흐으, 윽, 으윽….”
너무 서럽다.
이 와중에 팔이 무너졌는데 혼나지 않을까, 가슴이 두려움으로 쿵쿵 두방망이질을 했다. 길게 빼낸 혀로는 연신 묽숙한 죽을 핥아먹었다.
남자는 놀리듯 느릿하게 허리 짓을 했다. 슬슬 빼내었다가 한순간 뻑! 박아 왔고 등허리를 잠시 쓸다 다시 퍽! 박아 왔다. 그때마다 잡힌 머리채가 뒤로 홱 젖혀져 등이 오목하게 꺾여 들며 그릇에 처박고 있던 얼굴도 따라 들렸다.
하체 근육은 움찔움찔 수축하길 반복했다. 발가락도 움칫 곱아들고 허벅지 안쪽으로도 힘이 콱 들어갔다. 특히나 못 견디겠는 건 엉덩이 근육이 절로 조여들 때였다. 그 때문에 남자의 성기도 함께 조여져 울룩불룩 곤두선 핏줄 같은 게 얇은 점막에 달라붙었다. 안 그래도 속살에 감싸이듯 들러붙어 있는데 그것이 더욱 선명하게 잡혀 들었다.
“흐, 흑… 윽, 컥! 크억!”
예고 없이 또 처박은 남자 때문에 고개가 들리고 넘어가던 죽이 턱 걸려 사레가 들렸다.
“캑! 끅, 컥…!”
남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기침하는 다준을 기다려 주지도 않고 그 상태로 허리 짓에 박차를 가했다. 컥컥, 기침할 때마다 가뜩이나 좁은 구멍이 꽉꽉 성기를 물어 댔다. 기침 몇 번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끄윽, 헉, 큭!”
숨이 막혀 바둥거리던 다준이 저도 모르게 앞에 놓인 죽 그릇을 팔로 퍽 쳐 냈다. 다준의 팔에 날아간 죽 그릇이 파열음과 함께 바닥에 부딪혔다. 깨진 조각이 드극, 한 바퀴 구르다 멈췄고 방바닥에 주황 얼룩이 번졌다. 신나게 살 마찰 음을 내던 남자의 허리 짓이 뚝 끊겼다.
“아. 진짜….”
낮게 저문 목소리에 다준이 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 고여 있던 눈물이 한 방울 툭 시트에 떨어졌다. 기침은 멎었다. 막혔던 숨이 터져 나가 가쁜 숨소리만이 헐떡거렸다.
“길거리에서 굴러먹었나 버릇이 없어.”
“헉, 흑….”
간신히 숨을 고르던 때 갑자기 남자가 뻑뻑! 살을 거세게 때리며 허리를 밀어붙였다.
“하윽! 악!”
관계라기보단 화풀이나 폭력에 가까웠다. 차지게 맞부딪히는 엉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르더니 푸른 멍이 번졌다. 한 번 올려칠 때마다 몸이 시트를 끌며 쑥 올라갔다. 그럼 그새 또 따라붙어 올려치고, 몇 번이고 올라가고 올려쳐지며 다준의 몸이 점점 침대 밖으로 몰렸다.
“악! 아! 으아!”
격한 정사에 물이 찰박 튀며 상체가 허물어졌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앞을 짚으려 했는데 팔이 허공만 휘저었다. 미간에 힘을 주며 어지러운 시야를 드니 앞은 바닥이었다. 뒤로 물러나려 해도 뒤엔 남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물이 튀었다. 몸이 앞으로 밀려들었다. 훅 떨어지는 상체가 침대 밖으로 밀려났다. 다준이 놀라 팔을 뻗고 바닥을 짚었다.
“악! 아, 잠, 자, 흐악!”
허리를 쥐어짜듯 움켜쥔 남자가 다준의 상체를 바닥에 밀어 넣고 허리 짓을 계속했다. 다준은 팔로 아래로 쏟아진 몸을 지탱하며 이를 악물었다. 피가 쏠리고 하체는 침대에 둔 채로 계속 살이 맞부딪혔다. 꿇렸던 무릎이 펴지고 브이 자로 벌어진 다리가 남자에게 잡혀 박혀졌다. 죽을 것 같았다.
“힘들어도 느낄 건 다 느끼지?”
“으흐, 아! 제발, 윽, 자, 잘못… 흑! 잘못했, 했어요! 아으윽!”
고통으로 뒤범벅된 와중에도 전립선이 오묘하게 자극됐다. 지난밤의 정사로 잔뜩 부어오른 속살을 다시 짓찧고 문질러 짓이기며 온통 진창으로 헤집어 놓았다. 오동통 부어 있던 속살이 이젠 질퍽질퍽 성기에 뒤엉켰다.
“잘못, 잘, 못 했어요. 제발, 아! 악! 으헉, 윽!”
아래로 꺼진 몸이 쑥 들렸다. 커다란 손이 몸을 들어 침대 안쪽에 툭 내팽개치듯 던졌다. 시트가 폭신하게 감싸 들어 충격을 완화시켰다. 푹 들어간 시트에 파묻힌 다준이 엉엉 울었다.
남자가 또 질질 짜는 다준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었다. 왜 이리 잘 울어. 자기가 잘못한 거잖아. 살짝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나 세상 무너진 듯 서럽게 우는 게 귀엽긴 귀여워서 들었던 손을 내리고 다시 허리를 잡았다.
잔뜩 물러진 속에 다시 박아 넣자 다준이 울면서도 흐어엉, 좋다고 허리를 틀었다. 더듬거리며 허리를 꽉 쥔 손에 그 조그만 손을 얹는데 그대로 쌀 뻔했다. 어떻게 이건 자기 귀여운 건 또 잘 알아 가지고 이딴 짓을 하는지.
상으로 허리를 들어 올려쳐 주자 또 좋다고 시트를 마구 휘저어 놓았다. 까닥까닥 흔들리는 성기에서 줄줄 허연 액이 솟아 나왔다. 다준의 구멍처럼 엉망이 된 시트를 보며 남자가 허리를 퉁겼다.
“흐으… 아으, 악! 앞, 아파, 아파요!”
“좋아서 질질 싸 대면서, 왜 거짓말해?”
“으! 하으! 윽!”
공중에 들린 다리가 강아지풀처럼 나풀나풀 흔들렸다. 허벅지를 자신의 허리에 딱 붙이고 허리를 밀어붙이는 남자는 흉포한 기세로 추삽질을 이어 갔다.
“하으… 윽, 흐으으….”
두 팔로 얼굴을 가린 다준이 흐느끼며 속절없이 흔들렸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그저 뭉근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다가도 쓰라릴 만큼 선명하게 쾌감이 쑤셔 오곤 했다.
남자는 흐물텅 녹아내리는 것 같은 허리를 곧추세워 두고는 연신 성기를 들이밀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하는 건지, 언제 끝나는 건지 이젠 다 지쳤다.
숨을 너무 과하게 들이켜서 코가 매울 지경이다. 다 쉬어 버린 목소리로 신음 한 음절 내는 것조차 힘겹고 따가웠다. 눈도 지나치게 많이 울어서 쓰리다. 정액을 내보내지 못한 배도 부글부글 끓는 것같이 이상했다. 몸이 장난감처럼 굴려져서 이곳저곳 뚜둑뚜둑 망가져 가는 기분이다.
“흐으응… 흑, 으으윽….”
“아, 진짜. 애야? 하루 종일 울기만 하네.”
“윽, 흐으….”
지가 당해 보든가, 미친놈이.
“알았어. 이제 끝. 한 번만 더 싸고 끝이에요. 그러니까 허리에 힘 좀 줘 봐. 계속 늘어지잖아. 네가 고양이야? 다준 씨 젤리예요? 왜 이리 흐물거려.”
“흑, 으… 흐….”
힘을 줘 보라고 해도 힘이 들어갈 리 없다. 지금 내가 기절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버티고 있는 게 용할 지경인데 어떻게 힘을 줘. 주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정말로.
“완전 말랑말랑해. 떡 같다.”
여울이 다준의 허리를 세우다 엉덩이를 조몰락거렸다.
“음. 아니야. 떡은 다준 씨 구멍이 떡이지. 아주 눌어붙어 가지고 따라오고. 이걸 다준 씨가 봐야 그만하라는 소릴 못 하지. 그걸 보면 그딴 말이 나올 수가 없을 텐데. 나가려 해도 자기가 붙잡아 오면서.”
진짜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남자는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말 거는 듯이 말하면서도 막상 대답을 듣진 않고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모순되는 말을 주저리 풀어놓으면서도 자각이 없는 걸 보면 그런 게 확실했다.
“으응….”
“응. 그래. 됐다. 다 했어. 끝났어요.”
뜨거운 게 확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며 드디어 성기가 나갔다. 한동안 계속 벌려져 있던 구멍이 제자릴 찾지 못하고 벌름거렸다. 휑하니 벌어지는 구멍 사이로 배 속에 잔뜩 머금고 있던 정액이 꾸물럭꾸물럭 크림처럼 흘러내렸다. 금방 우므러지는 구멍이 꼬옥 조여들면 허연 액이 모습을 감췄다가 이내 또 동그랗게 벌어져 다시 꾸물꾸물 나왔다.
오므라들었다가 벌어지며 벌름거리는 다리 사이가 정액을 내보내고 있다는 게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한계를 넘어 시달린 몸은 아주 희미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감출 힘도 없이 넓게 벌어진 다리 사이로 정액이 한 웅덩이 고여 갈 때마다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가만히 구멍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여울이 잘게 떨리는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다 볼록 나온 아랫배를 보곤 눈을 빛내며 꾹 눌러 보기도 했다. 여울의 작은 기대대로 정액이 왈칵 쏟아지며 다준의 허리가 옆으로 움찔 뒤틀렸다. 흐아으, 울먹거림이 새어 나왔다.
“이거 재밌다.”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꾹꾹 누르며 다리 사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어떻게 저렇게 울컥 울컥 쏟아지는 건지 신기했다. 얼굴을 가리며 우는 다준의 절망 속에서 여울은 즐거웠다.
긴긴 정사가 끝나고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다준 옆에서 여울은 다준의 다리 한쪽을 가지고 놀았다. 자신의 무릎 위에 가져와서 위로 들어 보기도 하고 살결을 쓰다듬다가 복숭아뼈를 깨물어 보기도 하며 혼자 즐거움을 찾았다.
다준은 눈을 감으며 저 미친 사람이 제발 좀 그냥 처자길 기도했다. 차라리 나라도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힘도 없고 정신력도 다 소진된 것 같은데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분명 낮게 가라앉아 있는 의식이 느껴지는데도 잠에 빠지진 못했다. 졸린데 억지로 깨어 있는 기분이라 짜증 난다. 피곤이 겹겹이 쌓인 정신 아래로 꾹 눌러 담은 화가 더욱 뭉쳐졌다.
까닥거리며 별 이상한 짓을 하길 몇십 분 정도 지났을까. 흥미가 떨어진 남자가 다리에서 떨어지고 옆에 가만히 눕자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바로 옆에 남자가 누워 있는지라 여전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안도가 되었다.
잠시 누워 있으니 미동 없는 남자가 느껴졌다. 슬쩍 눈을 뜨고 시선을 힐끔 돌리니 남자는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다준은 주먹을 꼭 쥐었다가 팔꿈치로 몸을 받치고 살짝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상체를 받친 팔꿈치가 바들거렸지만 남자의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너덜거리는 다준의 상태완 달리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단정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 조금이나마 흐트러진 것은 구겨진 셔츠와 살짝 흐트러진 머리칼 정도였다.
다준이 입술을 짓씹다 더 버티기엔 힘이 모자란 팔꿈치를 바르게 두고 다시 털썩 누웠다. 씻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
눈을 뜨니 약간 어지러운 정신과 뽀송해진 몸이 느껴졌다. 씻은 기억이 없는데. 몸이 상쾌해서 좋다기보단 소름이 끼쳤다. 분명 자고 있었는데 언제 씻긴 건지 모르겠다.
반쯤 열려 있는 창틈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오고 방 안이 따스한 볕으로 가득 찼다. 이런 모습의 방은 다준이 늘 바라던 쾌적한 풍경이었으나 마음만은 지하실에 처박힌 양 불편하고 더러웠다.
남자가 식사를 가져왔을 땐 다시 입 안에 억지로 욱여넣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 손으로 수저를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나가지 않고 밥 먹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며 이따금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가벼운 참견을 툭툭 던졌다. 눈치 보여서 밥이 입에 잘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애칭 정할까요?”
“…네?”
입으로 가져오던 숟가락이 멎었다. 그러자 남자가 멈춰 있는 다준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입에 넣었다. 기계적인 턱 근육이 잘근잘근 입 안에 든 음식물을 씹어 넘겼다.
“다준아, 라고 부르는 건 너무 간지럽잖아요. 하필 이름도 다준이어서 더 이상해.”
남자는 오늘도 역시나 헛소리를 했다. 이제 좀 그러려니 해야 되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게 기괴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삐삐나 방울이 어때요? 붕붕이도 괜찮고.”
“미친….”
경악할 만한 작명 센스였다.
“응?”
목 끝까지 올라와 기어코 육성으로 나온 소리에 입을 얼른 막으며 다준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미치? 애칭 말하는 거지? 미치가 좋아요?”
“아, 아니요. 그냥 말해 봤어요. 애칭들이, 그런 느낌이라서….”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치라는 이름도 있어요?”
“어… 옛날에 옆집 강아지 이름이 미치여서요….”
“아, 그래? 별론데. 다준 씨랑은 안 어울려.”
남자는 쓸데없이 단호했다.
“그렇구나….”
“아무튼, 그래서 붕붕이는 어때요?”
“그냥… 그냥, 원래 이름이 낫지 않을까요?”
제발.
“간지럽다니까.”
“아니에요. 아직 잘 안 불러서 그런 걸 거예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시면…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남자가 빤히 다준을 쳐다봤다. 또 저 지랄 맞은 신경에 거슬렸나 눈을 깔고 가만히 후회를 곱씹는데 의외로 그리 나빠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씰룩거리는 입꼬리가 위로 휘어지다 달싹 입술을 열고 다시 닫았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감정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정이 빠르게 변하는 남자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조금 애매해 보이고 불확실해 보였다.
남자는 그 큰 손으로 자신의 턱을 덮었다. 엄지로 턱 끝을 문지르듯 쓸고 으으음… 말끝을 길게 끄는 침음을 내며 시선을 내렸다.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데구루루 눈동자를 굴리다 남자의 옆을 비스듬히 보는 상태로 눈을 고정했다. 어른거리는 시야론 남자의 모습이 블러처럼 언뜻 보였다.
“어디 봐?”
손가락을 맞부딪혀 딱, 소리를 낸 남자가 시선을 끌었다.
“고민해 봤는데 다준 씨가 정 그렇게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니까 어쩔 수 없네요. 이름으로 불러 줄게요.”
“아. 와…….”
“좋아?”
“네에.”
다준이 힐끔 눈치를 보다 자신 없는 투로 덧붙였다.
“와… 좋다…….”
“그래서?”
“네?”
“그래서?”
“아. 아, 감사합니다.”
“응. 뭘요. 다시 밥 먹어.”
“네.”
우스꽝스러운 연극 같다. 도대체 이게 무슨 대화인 건지. 다준은 군말 없이 밥을 넣었다. 저것도 올려 먹어 봐요. 조용할라치면 끼어드는 남자의 목소리에 한숨을 삼키고 가리킨 방향의 나물을 조금 집어 밥 위에 올렸다. 남자가 먹으라 한 나물은 쓰고 맛없었다.
“다준 씨, 손.”
왜 또 저러나 싶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손을 내밀었다. 손 위론 남자가 등 뒤로 감춰 두고 있던 동그란 반죽 같은 게 올라갔다. 하얀 반죽이 손안에 꽉 찼다. 살짝 쥐어 보니 말랑거리며 부드럽게 감겼다. 물기는 없는데 적당히 촉촉하고 감촉이 좋은 게 딱 알맞게 만든 반죽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거 가지고 놀고 있어요.”
“…네?”
“모래사장은 다음 주에 들어올 거예요.”
모래사장은 또 뭔데….
남자는 저 혼자 알고 있는 걸 마치 나한테 미리 귀띔이라도 줬던 것처럼 말하는 이상한 말버릇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거 가지고 잘 놀고 있어요. 밥은 식탁에 차려 놓은 대로 차례로 먹고 빈 그릇 하나씩 개수대에 넣어 놔. 간식은 냉장고에 과일 있으니까 꺼내 먹고, 부족하면 있는 거 아무거나 먹어요. 뭐 하지는 말고. 사고 치면 안 되니까.”
여덟 살 애라도 대하는 것 같은 남자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슬그머니 설레는 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 말하는 게 꼭 애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하려는 상황인데.
“지금은 과일 말고 먹을 건 없을 거야. 아. 시리얼은 찬장에 있는데… 잠깐만. 꺼내 줄게요. 괜히 올라가다가 다칠라.”
지하실에서 사람 죽일 듯이 팬 주제에 저러는 꼴이 기가 찼다. 차라리 의자 딛고 올라섰다가 떨어지는 게 머리채 잡혀 계단에서 굴렀던 것보다 덜 다쳤겠다. 밖으로 못 꺼낼 말, 속으로라도 실컷 하며 다준이 주먹을 쥐었다.
“식탁에 둘 테니 먹고 싶으면 먹어요. 과자는 오늘 올 때 사 올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그래? 알았어요. 집 잘 보고 있어요.”
“네에.”
남자가 손 위에 가지런히 둔 반죽을 손등으로 툭 쳤다.
“재밌게 놀고.”
“…네네.”
이딴 걸로 어떻게 놀라는 거야. 차라리 베이킹을 하라고 하던가.
“나는 한… 일곱 시 정도엔 올 거예요. 잘 있어. 이따 보자.”
“네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꾹 누르며 남자의 발길을 따라갔다. 배웅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남자가 활짝 웃으며 이마에 쪽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깐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떨떠름하게 이마를 문지르려는데 다시 다가와 이번엔 입술을 비볐다. 곡선으로 휘어진 호선이 맞닿은 입술로 느껴졌다.
‘으….’
팔에 기분 나쁜 소름이 돋아 꺼림칙해졌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손 하나를 팔랑팔랑 흔든 남자가 정말 나갔다. 닫힌 현관문에서 짧은 멜로디 하나가 경쾌하게 울렸다. 다준은 문 앞에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조그맣게 벌어진 입에서 희열이 서린 탄성이 새었다. 참았다 내뱉는 탄식과 닮았지만 명백한 희망이 차올랐다.
다준은 잠시 멀뚱히 서 있다 밀가루 반죽을 대충 거실 유리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푹 뭉개진 반죽이 그대로 탁자 위에 붙었다.
이마를 덮는 머리칼을 연신 쓸어 올리며 거실을 뱅뱅 돌았다. 불안함이 확 끼쳐 들어 시계를 바라봤다가 넓은 창을 응시했다. 다시 한 바퀴 돌고 시계를 봤다. 남자가 나간 지 20여 분이 흘렀다. 이제 슬슬 나가 봐도 괜찮지 않을까.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끌어 현관문 앞에 섰다. 혹시… 혹시 내가 열면 이상한 경고 음 같은 게 울리면 어쩌지. 애초에 안 열리게 되어 있으려나. 차라리 그러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가려 했던 게 남자한테 알려지는 시스템이라면? 그럼 큰일인데. 다시 그 지하실로 처박힐 게 뻔했다. 손이 초조하게 입술을 뜯었다. 바싹 마른 입술 한 겹이 벗겨지고 비린 피 맛이 스몄다. 다준은 연신 엄지를 깨물었다. 어쩌지. 그냥 나갈까. 어떡하지.
괜히 발만 동동 구르며 갈팡질팡했다. 남자라면 분명 무슨 괴상한 장치 같은 걸 해 뒀을 것 같다. 아까 보니 그냥 현관문 같던데 알고 보니 그게 지문을 인식해서 평범한 현관문처럼 열렸던 거라면? 내가 열려고 하면 막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남자한테 연락이 가고, 돌아온 남자한테 개처럼 얻어맞고, 지하실로 끌려가고… 또 정전되고 맞고 강간당하고… 그럼 어떡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점점 더 크기를 불려 갔다. 조그마한 가능성이 확신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맞아. 그런 것 같아. 애초에 이게 남자의 시험인 걸 수도 있잖아. 내가 나올지 안 나올지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아. 아, 씨발….”
중학생 이후론 입에 담지 않았던 욕이 절로 씹혀 나왔다. 힘이 들어가는 손으로 머리를 뜯듯이 쓸어 넘기고 불안감에 손바닥을 펴 얼굴을 폭 묻었다.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하겠다.
아니야. 일단, 일단 나가 보자. 나간 다음에 왜 나갔냐고 하면 그냥… 날씨가 좋아서 산책하고 싶었다고 하면 되잖아. 어차피 문 열어 봤자 마당이니 대문 밖까지 나간 것도 아니니까. 그냥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만 해 보자. 확인만.
화장실에서 가져온 욕실화를 현관에 툭 내려놓고 발을 넣었다.
아까 남자가 했던 대로 잠금장치에 손을 가져다 대자 띠링- 멜로디가 울리곤 철컥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지금까지 했던 온갖 고민들이 허탈할 정도로 쉬이 문이 열렸다.
남자가 나간 틈새로 보였던 마당이 활짝 모습을 드러냈다. 화창한 햇빛 아래, 소복한 꽃들이 한 아름 흐드러진 화단과 울긋불긋 무성한 단풍의 그늘이 시야에 가득 담겼다.
너무 커 덜렁거리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땅을 밟았다. 겨우 며칠 못 나간 것뿐인데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모든 풍경이 생소했다. 그토록 일상적으로 마주치던 장면들이 다른 세계의 기이한 광경이라도 된 양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조심조심 발을 끌어 대문까지 나아갔다. 단단한 철문에 손이 닿자 차가운 쇠의 감촉이 긴장감을 일깨웠다.
잠금장치가 걸린 것 같은 철문도 힘을 주어 열자 덜컹 소리만 내며 그대로 젖혀졌다. 기가 찼다. 남자는 아무런 장치도 해 두지 않았었다. 얼떨떨한 기쁨도 잠시, 벌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계속 눌러두기만 했던 분노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와 몸을 감쌌다. 차갑게 닿아 오는 공기에도 뺨이 홧홧했다. 남자가 입힌 남색 잠옷 아래 살엔 아직도 멍이 빼곡한데. 지금도 아래가 아리고 있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뛰어 최대한 남자의 집과 멀어졌다. 간간이 사람도 스쳤다. 잠옷 바람으로 뛰어다니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훑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정신없이 달려 큰 대로변으로 나섰다.
“헉….”
바삐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숨을 고르자 점점 마음이 편안해져 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야 안심이 되어 갔다. 어느새 슬리퍼는 벗겨졌다. 차가운 길바닥을 디딘 맨발엔 상처가 가득해 시리고 쓰라렸지만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달렸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저를 의심쩍게 바라보는 시선도 차차 의식이 되어 갔다. 조금 머쓱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괜히 한번 매만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찰서. 경찰서에 가야겠지.
그런데 문득 발이 멈췄다. 경찰서에 가면? 가면 뭐라고 신고하게?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슬슬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왔을 즈음. 그때도 이렇게 시렸었다. 고등학교 내내 부정하고 부정하다 결국 동성의 남자애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몇 주 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다. 반쯤 충동적이었고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어떻든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어떻든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빠는 팔목을 붙잡고 거리에 날 내몰았다. 정신 병원에 가자며 팔을 끄는 아빠의 모습에 익숙한 거리의 건물들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귓가에 파고드는 엄마의 울음소리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가, 곰곰이 생각했다. 아빠의 억센 힘을 내치고 나도 울었다. 처음으로 뺨을 맞았고 처음으로 머리가 차였다.
그 짧은 소란이 머릿속을 스치자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을 거리 위에 멍하니 서 있자 어느 한 여자 분이 눈을 맞추며 어디 아프시냐고 물었다. 긴긴 상념에서 깬 듯 몽롱했다. 돈이 있으시냐고 물었고 돈을 빌렸다. 여자 분이 알려 주신 방향을 되새기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이질적인 시선을 받아 몸이 움츠러들긴 했지만 안전하게 좌석에 앉았고 점차 익숙한 역 이름이 들려왔다.
반쯤 정신을 빼놓고 걸었으나 결국 자취방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미치광이 남자의 폭력과 강간이 꿈결인 양 멀게 느껴졌다. 그렇잖아. B급 영화 소재로도 안 써먹을 너무 비현실적인 일들이었다. 이대로 끔찍했던 악몽을 꾼 셈 치고 덮어 두면 되지 않을까.
잠옷을 가위로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갈기갈기 찢겨 버려진 옷처럼 남자의 기억도 다 사라지길 바랐다.
몸을 오래 씻었다. 멍이 든 곳은 아파도 괜히 더 빡빡 문질러 거품을 묻혔다. 몸을 씻고, 머리도 말리고, 익숙한 침대에 누워 익숙한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모든 게 괜찮아졌다. 주위를 돌아봐도 모두 무해한 것들이었다. 내가 아는 것들, 내가 가진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준은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푹 꺼진 매트리스로 자꾸만 더더 파묻히고 싶었다. 안락한 밤이 찾아왔다. 작게 남은 불안감조차 눈꺼풀 아래로 사라져 오롯이 평안한 잠이었다.
처음부터 편안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니 알바는 당연히 잘렸다. 내가 잠수 탄 거라 생각하셨던 건지 사장님의 마지막 문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제법 긴 교훈이 담겨 있었다. 굳이 해명을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게 느껴졌고 그럴 만한 의지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잠이나 많이 자고 싶었다.
냉장고가 텅 빈 지 이틀이 지나서야 집 앞 슈퍼까지 나갈 수 있었다. 손안엔 112를 친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사람들이 많은 길목을 찾아다녔다. 겨우 장 한 번 본 것뿐인데 집에 오자 몸이 축 늘어지도록 지쳤다. 불안하다. 무섭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시간에 마모되어 흐려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힘든 기억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나아졌다.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생각해 보면 다시 마주칠 가능성도 적었다.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보복당하지도 않을 테고 어쩌다, 정말 어쩌다 다시 스쳐 지난다 해도 남자는 한 번 비웃기나 하고 지나칠 것이다. 그럴 것 같아. 그러겠지. 그러니 걱정할 게 없다. 머리는 희망적으로 돌아갔다. 불길한 상상들이 낙관적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때였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 사항을 읽고 복학 신청을 했다. 등록금을 납부하자 잔고가 금세 바닥을 보였다. 다음 학기 등록금 대출을 받지 않으려면 다시 알바를 구해야 했다. 앱을 뒤적이며 알바 자리를 찾고 아슬아슬한 수강 신청을 했다. 개강은 금방 다가왔다. 남자는 기억 속에 잊힌 채였다.
재작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하루의 단조로움에 채 질리기도 전에 불쑥 재앙이 끼어들었다.
[… 많이 고민하다 과대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일단 신고부터 하는 게 좋으실 것 같고….]
진중한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달달 떨리던 손은 기어이 휴대폰을 놓쳤다. 기묘한 추락감에 오싹 소름이 등을 타고 올랐다. 내 인생은 망했다. 좆 됐어. 망했다고. 다 끝이야. 이제.
대학 커뮤니티에 사진 네 장이 올라왔다고 한다. 내 사진이었다. 남자의 정액을 받은 채 늘어진 나른한 얼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벌린 다리 사이 구멍을 꽉 채운 정액, 잔뜩 풀린 얼굴 위를 덮은 정액, 입 안 한가득 찬 남자의 좆.
해당 게시물은 곧 삭제되었으나 무성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삭제된 사진도 중요 부위와 얼굴만 가려진 채 다시 떠돌았다.
「제목: 어제 에X 핫게」
「내용: (사진)(사진)(사진)(사진) 이게 어제 떠돈 사진임. 약간 리벤지 포르노? 그런 것 같아. 지금은 삭제 됐는데 이미 누군지 나옴. 경영학관데 심지어 남자야. 인생 망한 듯.」
「익명1: 와 ㄹㅈㄷ다.」
「익명2: 우리 학교? 미쳤다 진짜.. 세상 말세..」
「익명3: 이건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익명4: 진짜 ㄹㄱㄴㅋㅋㅋㅋㅋㅋㅌ」
「익명5: 지금 경영학과 단톡 어떰?」
└「익명8: 걍 ㅈㄴ 조용」
└「익명10: 과대가 갠톡으로 말하지 안흥ㄹ까...」
└「익명13: 아니 난 진짜 그런 사람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들 어떻게 아는 거임? 개쌉에바다 했는데 우리 과라 해서 존나 깜짝 놀랐자너..」
「익명6: 헐 누군지 아는 사람??」
└「익명17: 경영 복학생이래 ㅇㄷㅈ」
└「익명18: ? 인성 무슨일??」
└「익명(글쓴이): 근데 이미 퍼져서.. 걍 조용히 자퇴하시는 게 최선일 듯」
「익명7: 아 쫌 미친것들아 그만 좀 올려」
「익명9: 이번 학기 인싸 씹가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명11: 헐 미쳤다 나 저분 교양에서 봤는데」
└「익명16: 무슨 교양?」
└「익명11: ㄱㅈㅅ 교수 서양 철학의 역사 그냥 완전 조용하신 분이셨음」
└「익명21: 와 나도 알아 저분 어떠캄,,」
「익명12: 자퇴각이다」
└「익명23: 자퇴각보다 그냥 강제 자퇸데?ㅜ 아 근데 쫌 불쌍하지 않냐 왜 또 올림?」
「익명14: 게시 글 내리세요. 신고합니다.」
「익명15: 이건 뉴스 나가는 거 아니냐? ㅈㄴ 학교 망신;」
「익명17: 아 진자 개에바다」
「익명20: ㅋㅋㅋㅋ원본 갖고 있는 사람 쪽지 좀」
└「(삭제): 삭제된 댓글입니다.」
「익명22: 아니 왜 이리 다들 태연해? 나만 존나 심각함??;;」
「익명24: 왜 아무도 남자인 거엔 안 놀래? 나만 놀랐어?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익명25: 나도;;; 개놀랏는데 다 태연해서 더 놀람...」
「익명26: 헉 강제 아웃팅이자나... 그만 올리자ㅠㅠㅠ 진짜 너무 힘드실듯ㅠㅠㅠㅠ」
내려도 내려도 계속 이어졌다. 가벼운 관심, 단순한 흥미가 버무려진 짧은 글들이 흐리게 번져 갔다.
지루한 시기에 던져진 불씨는 처음부터 컸다. 가지가 덧대어지기까지 하니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데면데면한 동기들은 물론 모르는 번호로까지 연락이 왔다. 늘 잠잠했던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가 나날이 찍혀 갔다. 당연하게도 학교에 갈 순 없었다. 집에 틀어박힌 다준의 머릿속엔 내내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어떻게 죽는 게 가장 덜 아플까.
자취방 전구가 나갔다. 두꺼비집을 확인하지도, 전구를 살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쭉 웅크려 있었다. 모든 게 무서웠다. 이대로 죽어 가는 건가. 두려우면서도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쿵.
다준이 이불을 둘러싼 채 움찔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쿵. 쿵.
규칙적인 소음이 쿵쿵 울릴 때마다 가슴이 둥둥 두방망이질 쳤다. 언제까지나 그 상태 그대로 웅크려 있을 것 같던 다준이 일어섰다. 사실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 누군지 알았다. 곤두선 신경에 걸린 직감이었다. 정전이 될 때마다 찾아와 팼던 그 미친 사람. 날 억지로 강간한 씹새끼. 내 삶을 망친 개새끼. 기어코 나락으로 떨어트린 씨발 새끼.
막상 닥치니 두려움은 없었다. 어차피 내 인생은 망했다. 내내 생각했다. 남자를 죽여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죽어야지. 그러나 부엌으로 가 칼을 꺼내려던 손이 멈췄다. 수납장을 열어 칼 손잡이를 잡았을 때 욕구 하나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살고 싶었다. 이 구질구질한 것도 삶이라고 구차한 생존 본능이 칼을 빼내려는 손을 잡아끌었다.
덜컹덜컹 흔들리고 있는 부실한 현관문을 바라보다 문고리를 잡았다. 남자의 커다란 몸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자취방 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둠이 들이찼다. 눈을 깜박였다. 늘어지고 구겨진 자신의 옷과 달리 말끔하고 흰 셔츠가 시야에 담겼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지 않고 그 커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살고 싶다.
“우리 오랜만이에요. 난 바빴어.”
남자는 놀란 기색 없이 자신에게 파고드는 몸을 보듬듯 등을 쓸었다.
“다준 씨 나가고 나서, 왜 도망쳤는지 생각해 봤어요. 다준 씨 주려고 산 간식도 차곡차곡 넣어 두고, 장난감도 잘 정리해 두고 계에-속.”
등을 쓰는 손이 느려지고.
“잠깐 산책 갔다 온 거면 봐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안 오더라고. 가을도 진작 지났고 겨울도 다 갔는데. 그래서 내가 왔어요.”
곧 머리채를 휘어잡아 올렸다.
“여기서 병신처럼 처박혀 있다 죽을래, 나랑 같이 가서 벌 받고 사람처럼 살까?”
“가, 갈게요… 갈래요….”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와 억울함이 방울방울 넘쳐흘렀다. 온갖 좌절과 절망으로 점철된 다준의 얼굴과 달리 여울은 미소 지었다. 아주 당연한 것을 거머쥔 양 태연한 미소였다.
***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히다 종국엔 침대 위로 툭 던져졌다.
“전부터 다준 씨한테 계속 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그런데 다준 씨는 엄살도 많고 약하잖아. 그래서 배려한다고 참고 있었는데 벌로 적당할 것 같아.”
“허으으….”
다준이 맞아 부은 얼굴로 초점도 못 맞추며 끙끙거렸다.
“구멍에 주먹 좀 넣어 보려고.”
“흑, 으….”
“무서워요? 그래도 괜찮아. 구멍은 풀려만 있으면 뭐든 다 들어가는데 겨우 주먹 하나 못 들어갈까.”
“헉, 으, 흡. 으윽….”
“아. 왜 이리 울지? 내가 너 억지로 끌고 왔어? 씨발 놈이 네가 처나가서 내가 친히 데리러 간 거잖아. 얌전히 안기고 조용히 따라오길래 반성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아, 아니, 윽,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흐으, 윽, 제가….”
여울이 다준의 부어오른 뺨을 보고 손에 힘을 풀었다. 그 손으로 다준의 뺨을 툭툭 치며 한 자 한 자 말했다.
“그래? 그럼 이렇게 처우는 건 미안해서 그런 거죠?”
“네네… 네. 그, 그런 거, 흐, 네….”
다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인형처럼 끄덕끄덕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꼴이 꽤 깜찍했다.
“그럼 알아서 구멍 벌려 봐.”
다준이 더듬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멱살 잡혀 늘어진 티를 벗고 흙이 묻은 바지를 주섬주섬 끌어 내린 뒤 속옷도 마저 벗었다. 이미 심하게 멍든 무릎이 매트리스에 닿았다. 무릎 꿇은 다준이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양 둔덕을 잡았다. 구멍이 잘 드러나게 잡아 벌린 다준이 끅끅 서럽게 쏟아지는 울음을 삼켰다.
여울이 좁게 닫힌 틈새를 관찰하듯 주시했다. 좀 벌렁거리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다준의 구멍은 꼭 닫혀 있었다. 그렇게 해 댔는데도 안 벌어졌나. 신축성이 좋은 것도 타고나는 건가. 아. 하긴 몇 달 안 했으니 당연한가.
솔직히 문을 일부러 열어 두긴 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도망치는 것보다야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도망치는 게 훨씬 나으니까. 그래도 유약한 다준의 성정상 정말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막상 열린 대문을 보니 기분이 더러웠다.
텅 빈 집 안을 둘러본 후에도 조급함은 없었다. 어차피 다준의 학교도, 집 주소도, 주민 등록 번호도, 가족도, 대인 관계도, 기본적인 개인 정보는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다준을 제물로 갖다 바치려고 계획했을 때부터 다준이 갑자기 사라져도 뒤탈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저를 찾을 사람도, 기다릴 사람도 없는 주제에 무슨 정신머리로 도망을 친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가족한텐 버려졌고, 친구도 없고, 모아 둔 재산도 없고, 뭐 하나 가치 있는 것 하나 없이 근근이 살아간 다준이었다.
돌아갈 이유가 없을 텐데 굳이 굳이 그 좁은 자취방에 기어들어 간 다준이 이상했다. 솔직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고, 죽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잘 돌봐 준다는데.
여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라고 그런 사진을 뿌리고 싶었을까. 그 귀여운 모습은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준이 나빴다. 왜 그런 얄궂은 짓을 했어. 나 혼자 외롭게 만들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면 칭찬해 주자. 이번 주가 가기 전에 돌아오면 용서해 줘야지.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돌아오면 겁만 주고 넘어가 줄 거야. 이 계절이 지기 전에 돌아오면 좀 봐줄 수도 있어.
다준을 위해 들인 모래사장을 정돈하고, 책꽂이의 책을 훑어보고, 거실에 폭신한 러그를 깔았는데도 다준은 오지 않았다.
낯선 기다림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다준과 보낸 짧은 시간을 상기해 봤다. 처음엔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으니 조금 때리기야 했다. 복종시키는 건 원칙이었으니까. 이건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겨우 이런 거로 도망쳤을까. 그래도 영구적인 손상은 없었잖아. 이가 뽑혔어, 뼈가 나갔어? 애가 너무 비실거려서 온전한 상태로 조금 괴롭힌 수준에 그쳤는데 이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을까.
그런데 그 후엔 잘 대해 줬잖아. 방도 예쁜 방으로 내어 줬는데. 밥도 배부르게 먹이고 몸도 깨끗하게 씻기고. 다준도 고마워했다.
아. 침대로 데려오자마자 바로 섹스한 건 조금 빨랐을까. 점진적인 단계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준이 잘못했잖아. 얌전히 있었으면 부드럽게 해 줬을 텐데 약속도 어기고 반항하고. 이건 다준이 잘못한 거지. 솔직히 이 부분은 억울했다. 난 다준이 귀엽고 예쁘길래 많이 사랑해 주려고 그랬던 건데. 조금 아팠었던 건 다준의 책임 탓이었으니 제외하고. 좋아해 주고 예뻐해 준 건데.
다준의 사과를 받고 난 다음부턴 정말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기분 좋은 약도 발라 줬고 다준도 좋다고 앙앙거렸다. 다준이 종종 멍청하게 굴어도 착하게 알려 주고, 실수해도 봐주면서 잘 지냈는데.
다준의 깜찍한 애칭을 정하려고 밤새 고민했는데도 다준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름을 불러 주기로 했었다. 집에 혼자 있을 다준이 심심할까 봐 가지고 놀라고 반죽도 만들어 줬다. 내가 이렇게까지 많이 배려해 줬는데도 다준은 도망이나 가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건 다준이었다.
느릿느릿 엉덩이 골을 훑어 오르며 여울이 입술을 삐죽였다.
섭섭해.
열심히 기도해서 마침내 애완동물이 생긴 건 좋았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 거고. 그런데 신실하게 회장에 나가고 매일 기도를 했는데도 결국 다준은 제 발로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선생님 말이 맞았나. 병신 같은 짓거리 그만두랬는데.
물론 나도 그리 생각하긴 했다. 그 조그만 섬마을에 갇혀 살던 시절은 이미 지났고, 입만 잘 다물고 있으면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별 상관없긴 할 테지. 그런데 솔직히 편하기야 했다. 사이비 집단이라지만 와해될 일 없고, 사고 쳐도 알아서 뒤처리 해 주고. 좋잖아.
몇 번씩 귀찮은 짓거리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가끔 원하는 게 이뤄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생님은 옛날에 고래 밥이 됐고, 지금도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건 교주였다. 뭐가 유리한지는 뚜렷했다.
“음.”
아무리 다준이 잘못을 해서 혼을 낸다고 해도 구멍을 찢어 놓는 건 그리 끌리지 않았다. 찢어져도 언젠간 아물 거니 별 상관없겠지만, 역시 애가 너무 빌빌거리니 적당히 풀어는 줄 생각이다.
힐끗 보니 다준은 또 어물어물 울고 있었다. 하여간 눈물은 참 많지. 이럴 때 보면 진짜 징징거리는 애새끼 같았다. 이렇게까지 거슬리게 하면서도 사지 잘 붙어서 살아 있는 거 보면 참… 나도 마음이 너무 약하지.
성기를 한 번 쓰다듬은 여울이 그대로 벌어진 구멍에 밀어 넣었다. 좆으로 박아 풀어 주면 되겠지. 살도 말랑거려서 잘 벌어질 거고 정액이 윤활제 역할을 해서 잘 들락날락할 거고. 난 참 다준에게 무르다.
여울이 마음이 여린 자신을 탓하며 허리를 격하게 움직였다.
“어윽, 흑….”
“아… 진짜.”
“흐으, 윽, 악!”
“벌주는 건데….”
“흑! 아…!”
“너어-무 느낀다.”
소름 끼치게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긴장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진 와중에 줄곧 처박히는 구멍만이 흐물흐물 풀어져 갔다. 배려 없이 아무 곳이나 찧어 대는 움직임에 아프고 쓰라렸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한 탄성 같은 게 반사적으로 터져 나갔다.
“아! 흐, 아윽!”
눈앞에서 빛이 튀기는 게 아픔 때문인지 쾌락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장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 배를 쳐 대는 고통에 입술이 꽉 깨물리면서도 뒤이어 아래에서부터 훅 치고 드는 저릿한 감각에 입이 열렸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허리를 뒤틀면 쥐어짤 듯이 잡아 아래로 확 끌어 내렸다. 그 탓에 그저 널브러진 채 박히는 족족 힘을 쭉 뺄 수밖에 없었다.
“흐아… 아, 윽!”
빠져나갈 땐 내장까지 끄집어 뺄 듯 온 점막이 다 딸려 나가더니 파고들 땐 준비도 채 못 한 상태일 때 무식하게 힘으로 욱여넣었다. 허리를 올려붙일 때마다 엉덩이 살이 벌어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좁은 통로가 죄다 쓸렸다.
곧장 처넣는 움직임은 미약하게 내쉬는 숨도 앗아 갔다.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데 감긴 눈 아래론 다색의 빛이 쨍쨍 터져 나갔다. 어떻게든 떨쳐 내려고 고개를 마구 저었지만 남자한테 뺨을 얻어맞곤 그쳤다. 고통 바로 뒤에 딱 붙어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고 따라붙는 감각은 이젠 구별조차 못 하게 섞여 하나가 됐다. 뒷골이 찌르르 울리고 줏대 없이 꺼덕거리던 목이 빳빳이 굳혀졌다.
“으아!”
앞이 터지는 감각에 절로 허리가 훅 들리고 박아 오던 남자와 맞물려 감히 생각도 못 할 만치 깊게 박혀졌을 때 세상이 암전되었다.
“하으윽…!”
찰박. 난잡한 물소리가 느린 라디오처럼 나중에야 들렸다. 등허리가 휘어 잔뜩 들린 상태로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기가 차다는 남자의 웃음소리도 금세 먼지처럼 흩어졌다. 세상이 죄다 부서져 바스러지는 조각이 되고 그 틈 사이사이가 형용 못 할 희락으로 가득 찼다. 그득그득 부풀어 가는 폐부 사이로도 따끔거리는 쾌감이 들이차는 것 같았다.
쯕- 쯝쯥-.
끈적한 소리가 남자의 손 아래로 들리고 배 위로 끈끈한 점액성의 멀건 액이 로션처럼 넓게 펴 발렸다. 가슴까지 뻗어 온 손바닥이 중심부도 무심히 문지르며 액을 발라 갔다. 따가운 성감이 뭉친 돌기가 손바닥 아래로 뭉개졌다. 그 작은 자극에도 시야가 뒤집혔다. 깜빡거리니 정액이었다. 그제야 비릿한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아… 흐아….”
“와. 한 번만 박아 줘야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느껴 댈 줄 몰랐지. 벌이 아니라 상이 됐잖아요. 어쩔 거야.”
부루퉁한 목소리가 웅웅 물먹은 것처럼 불분명하게 뭉개졌다.
뭐라는 거야… 좋아. 좋아. 좀 더 해 줘. 좋아. 아, 좋아….
풀린 눈이 가물거렸다. 깜빡 눈을 뜨자 집요하게 파고드는 쾌감 사이로 언뜻언뜻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깜빡 눈을 감자 정액을 뚝뚝 흘리는 다리 사이로 또 뭔가가 박혀 들었다. 뭐든 좋았다. 계속 뭔가가 파고들었다. 너무 좋아서 감당할 수 없이 벅찼다. 비명을 지르며 울어도 해소되지 않은 성감이 온몸에 고였다. 다시 고조되는 성감에 신음하다 돌연 가득 차 있던 구멍이 순식간에 휑하게 비고 주르륵 정액만이 쏟아졌다.
“응, 허으으….”
뭣도 모르고 그저 서러웠다. 벌린 다리를 더 벌리려 바둥거리며 억센 손아귀에 단단히 잡힌 몸을 뒤틀자 아래로 푹! 단단한 게 다시 박혔다. 아, 씨발. 귓가에 낮은 욕설이 들렸지만 이내 흩어졌다. 너무 좋아. 좋아. 좋아. 한 가지 생각만이 반복되었다. 세뇌된 듯한 넘치는 만족감이 잔뜩 풀린 구멍을 타고 흘렀다. 점막이 딸려 가다 다시 박히고. 조이면 더 선명해지고. 온갖 곳에 다 들러붙어서 비벼지고. 아. 죽을 것 같아.
투둑, 툭.
정액이 덩어리져 툭툭 떨어졌다. 흐물거리는 점막과 엉킨 정액을 끄집어내려는 듯이 굵은 손가락이 구멍에 푸욱 박혀 들었다. 그것에 또 좋다고 다준이 허리를 튕겼다.
“읏…! 흐아!”
기가 막힌 여울이 다준의 뺨을 손등으로 툭 약하게 쳤다. 입새로 침이 줄줄 새고 눈에 맛이 간 게 정신을 놓고 쾌감에만 흔들거리는 것 같다. 예쁘게도.
“이러면 봐줄 줄 알아?”
“흐으으. 으응….”
“아. 그런데 줄 벌도 없네. 뭘 주든 좋다고 먹으니까. 다준 씨 때문에 내가 뻘쭘해졌어요. 몸이 왜 이리 야해. 너무 느끼잖아.”
“흐아아….”
“응, 그래. 이것도 좋아?”
남자가 박아 넣은 손가락을 구멍 속에서 돌렸다. 정액으로 푹 적셔진 구멍이 야물야물 손가락을 씹었다.
“하으아, 아으으….”
“다준 씨 옹알이해요? 진짜… 아. 웃긴다.”
귀엽게 도리질 치다가 깜찍하게 허리를 튕기고 아주 떨 수 있는 요망 다 떨지.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간드러지는 흐느낌을 신음처럼 내보내는 다준은 일부러 이런다는 의심을 저버릴 수 없게 행동했다. 되바라진 움직임이 요사스럽게 머리를 휘저어 갔다. 가열된 도료를 뇌에 흠뻑 부어 버린 것처럼 다준이 몽롱하게 흔들거렸다.
손가락을 더 쑤셔 넣어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이 모두 구멍에 박혀 들자 다준이 길 잃은 새끼마냥 응앙응앙 울먹였다. 또 본격적으로 엉엉 울려는 태세에 젖은 엉덩이 골을 엄지로 조곤조곤 어루만져 줬다.
“으, 까, 꽉 차안… 으흐, 꽉 찬 것 같, 같은….”
“괜찮아요.”
고통에 정신이 한 조각 돌아온 다준이 뻗은 팔을 바들바들 옮겼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무작정 뻗은 손을 허공에서 헛손질하며 정작 남자의 움직임은 제지하지 못했다. 여울은 헛수고만 정성스레 하고 있는 다준의 팔을 내리곤 품 안에 폭신한 베개를 안겨 주었다.
얼떨떨하게 베개 하나를 껴안은 다준이 어리둥절하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깜빡깜빡 털어 내다가 다시금 깊게 파고드는 쾌락에 허리를 휘며 고개를 젖혔다. 품 안에 안긴 베개를 구겨지도록 꽈악 안는 팔을 보니 안겨 준 보람이 있어 뿌듯했다.
“흐응…! 흐악!”
“그치. 엄살도 잘 부리지.”
어쩜 그렇게 교태를 잘 부리지 했더니만 다준은 역시 엄살도 심했다. 원래 뭐든 크게 크게 과장시켜 표현하는 게 습관인가.
손가락을 씹으며 오밀조밀 다물려 있는 구멍을 엄지 하나로 비집고 들었다. 움찔거리며 꾸욱 닫힌 구멍 사이를 계속 건드리며 꾹꾹 파고들었더니 좁은 구멍에 마침내 엄지도 천천히 들어갔다.
엄지까지도 들어가자 구멍이 한계인 듯 팽팽히 벌어졌다. 손에 들러붙은 얇은 점막이 달싹거렸다. 이 상태로 훅 빠지면 뻥 소리라도 날 것마냥 잔뜩 다물린 상태였다. 온갖 곳을 다 찧어 놓아서인지 속은 따끈따끈 물렁거렸다. 성히 익은 열매가 힘없이 으깨지듯 잔뜩 무른 속살이 손에 치즈마냥 엉켜 감겼다.
방금 싸 놓은 정액에 손가락들을 까닥까닥 휘적거리며 꿈틀거리는 구멍을 즐겼다. 다준은 거의 죽어 가는 소리를 내며 베개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그러라고 준 거고, 귀엽기도 한데 어쩐지 들뜬 기분이 가라앉아 베개를 홱 빼앗아 아무 데나 던졌다. 휙 날아간 베개가 뭘 건드렸는지 쨍강 파열음이 들렸다.
다준은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멍하니 팔을 휘저었다. 잡히는 게 허공밖에 없자 툭 시트 위에 팔을 떨구곤 흑, 숨을 짧게 들이켰다. 뒤따라 또 서럽게 울어 댔다. 온 표정을 와락 구기고 아물아물 입을 달싹거리며 말간 뺨이 다 젖도록 펑펑 눈물을 쏟는 그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허물듯 투명하게 우는 표정엔 마냥 아프지만은 않은 희락이 감출 수 없이 드러났다.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손에 꿰뚫린 상태로 울어 봤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진짜 몰라서 저러나.
“흐으으… 아! 아으윽!”
일부러 다준을 배려하여 찬찬히 느릿느릿 넣어 주고 있는데 하여간 엄살이 심했다. 저렇게 엄살떠는 사람은 다준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늠이 안 갔다.
손을 한 번 까닥 움직이자 엉엉거리는 울음소리에 앙앙거리는 신음이 뒤섞였다. 겨우 이 정도로도 좋다고 자지러지면서 왜 저리 뻗대는 건지. 홀로 서러운 다준을 품에 안았다. 한쪽 팔로 안아 주니 다른 쪽 팔이 자신의 구멍에 들어가 있는 것도 모른다는 듯 마냥 몸을 치대며 안겨 왔다.
풀린 구멍 상태를 가늠하며 조금씩 조금씩 손을 들이밀었다. 판판한 배가 볼록 밀려 올라가며 좁아 빠진 자리에 억지로 쑤셔 들어갔다.
“으흑, 흑!”
배에 찬 압박감에 숨쉬기도 버겁다. 다준은 애써 남자의 목을 안은 상태로 그에게 몸을 꼭 붙여 가만히 몸을 진정시켜 갔다. 금방이라도 안에 들어간 주먹이 내장에 닿을 것 같다. 내장을 온통 뭉개고 때리며 무서운 추삽질을 해 댈 것 같다. 너무 두려워 눈물이 쏟아지는데도 남자는 비집고 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이 다시는 다물리지 못할 것 같다. 속에서 새어 나온 액체가 줄줄 흘러 남자의 손목을 타고 내려갔다. 주르륵 줄기를 긋는 액체가 남자의 팔꿈치에 다다라서야 뚝 아래로 떨어졌다. 이미 흠뻑 젖은 시트 위로 방울방울 투명한 액체가 툭툭 떨구어졌다.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해 버린 다준은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칠 길 없는 눈물이 어디서 또 나왔는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으아… 아…! 아악!”
그 커다란 손이 죄다 구멍에 박혀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볼록 튀어나온 게 기어코 뱃가죽을 뚫고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지나친 크기를 받아들인 구멍에선 연신 줄줄 삽입을 돕는 액이 흘러나왔다. 손으로 꽉 차 팽팽해진 내벽 주름 사이로도 끈적한 액체가 주륵 새었다. 몸은 온통 질척거리고 흐물거리는데도 다준은 무서웠다. 분명 몸이 이상해졌을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못할 것 같다. 이대로 남자 혼자 즐길 대로 즐기고 나면 저는 망가진 채 쓰레기 더미에 버려질 것 같았다.
“이게 진짜 들어가네.”
다 죽어 가는 다준의 구멍에 손을 꽂은 여울은 태연히 푹 젖은 구멍 안의 감촉을 즐겼다. 처음엔 야들야들하게 오물거리더니 좀 더 박혀 드니 꽉 조여서 잘근잘근 손을 씹어 댔다. 축축한 점막이 고스란히 손 마디마디에 들러붙는 감각은 마음에 들었다. 직접적으로 성기를 넣어 흔들어 댄 것도 아닌데 재미있었다.
아. 그런데 역시 다준이 제 손을 야물야물 삼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제 성기도 뻐근하게 섰다. 저 구멍에 박고 싶은데 이미 손으로도 꽉 차 찢어질 것 같은 상태였다. 여울의 시선이 제 목을 꼭 안은 채 잔뜩 겁을 집어먹은 다준의 등으로 향했다.
“다준 씨. 잠깐 떨어져 봐요. 나중에 안아 줄게.”
달래는 듯한 목소리와 달리 손은 무참히 다준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제 몸에서 떼어 냈다. 몸이 흔들린 다준이 저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 댔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꼴이다. 고래고래 술주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비명을 비웃은 여울이 다준을 엎어 놓곤 울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얼굴 앞으로 제 성기를 들이댔다.
절망에 가득 찬 다준의 표정이 온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 서러운 얼굴에 성기를 비비니 투명한 눈물 사이로 제 쿠퍼액이 섞여 들어 한층 천박한 꼴이 됐다. 이딴 얼굴을 가졌으면서 겁도 없이 혼자 밖에 나돌아 다녔다고. 저게 미쳤지 진짜.
“뚝 그치고 빨리 빨아나 봐요. 쪽쪽거리면서 예쁘게 빨면 살살해 줄게.”
다준이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줬는데도 다준은 말귀를 못 알아 처먹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려 댔다. 이쯤 되니 저 많은 눈물이 대체 어디서 다 나오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어찌 됐든 다준이 말을 잘 못 듣는 듯하니 좀 도와줘야 했다. 다준의 입에 성기를 가져다 대고 작게 벌어진 채 울음소리가 뭉개져 나오는 입술에 툭툭 두드리니 주름진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그 틈으로 귀두부터 꾸우욱 밀어 넣자 욱욱 괴로워하면서도 입 안에 담아 내긴 했다.
아래 구멍에 넣은 손을 더욱 밀어 넣자 성기에 이가 닿아 왔다. 괴롭게 일그러진 눈썹을 보면 제 딴엔 열심히 빨고 있는데도 모르고 이가 닿았던 것 같다. 여울은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로 했다. 제 손을 잘 씹어 대는 다준에 대한 배려로 목구멍까지 성기를 처넣지도 않았다.
더럽게 못 빨고 입 안에 넣은 채 하는 거라곤 타액만 흥건히 묻힐 줄밖에 모르는 멍청한 다준이었지만 그 또한 너그럽게 이해해 줬다. 이것저것 따져 가며 추궁하기엔 다준이 그리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쯕- 쯔그극- 쯜끅- 츱-.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에 마침내 손목이 닿았다. 다준의 죽어 가는 울음이 엄살은 아닌지 팔을 하늘하늘 늘어트렸던 아까완 달리 꽤 억센 힘으로 허벅지를 쥐어짜듯 잡았다. 유심히 다준을 살피니 얼굴이 심할 정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게 숨을 못 쉬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제 기분에 취했던가. 얼른 다준의 입에서 성기를 빼내 주었다.
“크억! 컥! 큭, 윽! 어흐, 으… 흐으윽….”
금방이라도 눈을 뒤집고 쓰러질 것 같아 다준을 끌어 올려 입을 맞췄다. 벌린 틈새로 숨을 불어넣어 주며 가슴팍을 쓸어 주자 겨우겨우 호흡을 되찾아 갔다. 사람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 아는 여울은 겨우 조금 거친 섹스 한 번으로 다준의 숨이 꼴깍 넘어가진 않을 거라 믿고 있었지만 막상 제 눈앞에서 이러니 조금 조급해졌다.
언제 이렇게까지 소중해졌지. 죽이려다 아쉬워서 애완동물로 데려온 다준이었지만 남다른 애정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그냥 귀엽고, 가끔 예쁘기도 하고, 섹스 하면 기분 좋아지는 애. 단지 그뿐이라 생각했던 다준은 제 생각보다 더 사랑스럽게 울었다.
안 죽이길 잘했지. 이런 앨 또 어디서 찾아. 다준의 자세를 고쳐 시트 위에 지친 몸을 뉘여 주었다. 온갖 액들이 더럽게 얽힌 얼굴 위로 작은 애틋함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직후 그 위로 정액이 난잡하게 쏟아졌다.
“아. 잘 어울려.”
여울이 뿌듯하게 웃었다.
손목까지 푹 박힌 구멍에서 살살 돌려 손을 빼내었다. 녹진한 구멍에서 녹은 점막이 딸려 오는 게 손등으로 여실히 느껴졌다. 이 정도 되면 힘없이 벌렁거릴 때도 됐는데 참 잘도 물고 있다.
쯔그. 쯔즈즉-.
젖어 달라붙은 게 찬찬히 떼어지는 소리가 나며 푹 박혀 있던 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손엔 정액과 정체 모를 액들이 엉켜 있어 희멀겋고 투명하게 적셔져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가는 실을 그린 점성들이 거미줄처럼 얽혔다. 살짝 나온 손은 그 상태 그대로 다시 다준의 구멍 속에 처박혔다.
“……!”
그렇게 고래고래 나 죽어요, 소리를 질러 대던 다준은 흡, 눈을 홉뜨더니 그대로 몇 번 부르르 진동했다. 배에 붙은 성기에서 말간 물이 팍 터지듯 나왔다. 거하게 싼 후에도 찔끔찔끔 지리듯, 귀두에서 주루룩 나온 투명한 액이 곧게 선 기둥 아래로 흐르다 이내 멎었다. 붕 뜨인 허리도 다시 시트에 떨어져 곧 늘어졌다.
기절했나 싶어 구멍에 꽂힌 손을 달랑달랑 흔들자 허리가 좌우로 비틀렸다. 기절한 게 아니라 눈이 뒤집혔던 거였다. 하여간 귀엽긴. 얼른 정신 차리라고 손을 털듯이 흔들어 대니 팔다리가 삐거덕삐거덕 움직였다. 제 딴엔 손목을 잡겠다고 저리 바둥거리는 것 같긴 한데 보기엔 기름칠 덜 된 로봇이 삐걱거리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여간 구멍 아래로 제 손을 꽂고 있어서 그런가 뭔 짓을 하든 다 애교로 보였다. 힘들어 땀을 흘리는 것조차 교태 같고, 부은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숨는 것도, 찌푸린 미간 사이의 작은 주름도, 별 연관도 없는 사소한 것들이 당장 처박아 달라고 조르듯 선정적이었다.
“하윽!”
몸이 펄쩍 뛰듯이 허리가 덜컹 들렸다. 주먹이 내장을 때리고 그대로 푸끅- 빠져나갔다. 다시금 주먹이 배 속을 때릴 때야 제 다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깨달았다. 얌전히 손만 넣다가 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제 얼굴만치 커다란 손이 추삽질을 시작하자 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물속에서 뻐끔뻐끔 힘겹게 숨 쉬듯 짧은 헐떡거림이 피스톤질에 맞춰 헉, 헉 터졌다.
“흑! 아! 흐!”
남자의 손이 다시금 푹 박힐 때마다 내장이 상하고 속살이 죄다 짓물러 갔다. 몸이 망가져 가는 와중에도 고통보단 저릿하게 퍼져 가는 큰 쾌락에 허리가 들썩였다. 쿡 찌르는 통증이 눈물로 빠져나가고 쿵 울리는 둔중한 쾌감이 황홀감으로 뇌리에 박혔다.
손짓 한 번에 절정으로 훅 치솟고 사정도 아닌 것이 속에서 팍 터져 갔다. 깊은 속까지 들어간 주먹이 무언가를 때렸고 부딪혔고 열렸고 터졌다. 제가 느끼는 감각이 허상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 진작 허물어진 몸이 완전히 전복됐다. 까맣게 암전된 와중 연쇄적으로 터져 나가는 화려한 색채에 정신이 혼미하다.
“으흐, 아! 아으…! 하으응, 으!”
남자에 대한 저주도 증오심도 다 잊고 그 아래서 바르작바르작 감당 못 할 희락에 몸부림쳤다. 종국엔 성기처럼 뻑뻑! 살을 때리는 마찰에 딸려 가 오르내리는 몸이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렸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성감에 시달리다 못한 정신은 이미 나가 침만 뚝뚝 흘렸다. 이미 물크러질 대로 물크러진 속살인데 커다란 방망이 같은 게 계속 쑤셔 들어왔다.
아파, 좋아, 제발. 그만해 달라는 건지, 더 해 달라는 건지 본인조차도 뭘 원하는지 모르는 불분명한 애원이 본능처럼 쏟아졌다. 쾌락 바로 뒤엔 고통이 따랐고, 고통 후엔 곧장 쾌락이 치고 들어왔다. 극단의 감각이 다리 사이를 담금질했다. 꽝꽝 파고들 때마다 경계선이 닳아 지워져 갔다. 모르겠어. 몰라. 좋아. 아파. 좋아.
“아, 아프! 아! 흐으으… 제, 제발요! 아으! 제발!”
“응응. 그렇게 좋아?”
“흐, 아! 으아! 흐아!”
“응? 좋냐고? 좋아?”
“아, 좋아요, 윽! 응! 조, 좋아… 흑! 조으, 좋아, 흐으윽!”
“이럴 줄 알았어. 결국 벌도 안 받고 넘어가네, 다준 씨는.”
뻑뻑 피스톤질 하던 팔이 이번엔 둥글게 움직이더니 잘게 진동하듯 떨기 시작했다. 온 속살로 팔을 감싸고 있던 다준의 몸 역시 움직임에 맞춰 달달 떨렸다. 제 의지를 무시하고 멋대로 반응하는 몸이 너무 이상했다.
다물리지 못하는 입으로 무언가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쪽쪽 빨자 칭찬하듯 다시 허리가 둥 울렸다. 과한 자극에 들어온 걸 살짝 깨물었더니 이번엔 때리듯 뻑! 박혔다. 한껏 휜 허리가 작살나듯 아프게 꺾였다. 꺽꺽 목구멍을 긁으며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음성이 기어 나갔다.
“끄으, 윽, 흐아으….”
“다준 씨는 나한테 진짜 잘해야 돼. 벌도 안 주고 오히려 상만 주고 있잖아요. 그치? 너무 고맙지?”
“허으, 으아… 아흐….”
“지금처럼 착하게만 굴어요. 이렇게 예쁘게 굴면 내가 어떻게 혼내. 알았지? 나도 잘 보살펴 줄게요.”
“허억, 흑, 윽! 으어흐….”
계속 넣고 있을 것 같던 주먹이 뿌즉, 쯕,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결국 뻥 빠져나왔다. 벌어진 구멍에서는 줄곧 고여 있었던 정액이 슬며시 흘러나왔고,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액체들이 난잡하게 쏟아졌다. 크게 벌어지다 힘겹게 오므라드는 구멍을 여실히 내놓은 채 다준은 눈을 감았다.
기절한 다준의 옆에서 여울은 구멍을 자세히 지켜보다 하품하듯 벌어지는 구멍 안에 제 손가락을 넣어보곤 키득거렸다. 다준도 데려왔고, 하고 싶었던 것도 했고, 예쁜 모습도 실컷 본 여울은 그저 한없이 좋았다. 말간 기쁨으로 다준을 보듬으며 혹사당한 구멍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줬다. 내 거지. 진짜 내 거. 온전한 내 거.
다준의 표정을 손끝으로 덧그리다 가볍게 웃으며 입을 맞췄다. 늘 꿈꿔 왔던 완벽한 내 애완동물이다.
***
언제 끝난 거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감각이 돌아오자 깨달았다. 남자의 품 안이었다. 다시 눈을 깜빡이자 뜨끈한 수증기가 훅 끼치며 물이 넘실거렸다. 뺨에 와 닿는 남자의 손에 다준은 흠칫 몸을 떨었다. 커다란 손을 보니 지난밤, 몸을 몰아붙였던 감각이 어른거렸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살이 내린 것 같은 뺨이 남자의 손가락에 쓸리자 방금 전에 있었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남자의 손이 집요하게 박혀 오고 술을 진탕 퍼부은 듯 정신이 풀려 있던 그때. 고개를 푹 숙이자 허리에 감긴 팔이 더욱 배를 끌어당겼다.
남자의 다리 한쪽에 걸터앉아 가슴팍에 기댄 몸이 수치스럽다. 힘없는 몸이 싫었다. 앞으론 또 어떻게 될까. 벌은 이걸로 끝인 걸까. 남자는 저를 어떻게 대할까. 답 없는 고민들이 초라하게 움츠러든 어깨 위로 층층이 쌓여 가는 것 같다. 가중되는 무게가 제 숨통까지 조여드는 기분이 들 때 안으로 오므라든 어깨로 툭 가벼운 손길이 내려앉았다.
“몸 안 뻐근해? 가슴 펴요.”
평소 목소리 톤과 달리 확연히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화들짝 놀란 다준이 엉거주춤 상체를 폈다. 남자의 팔이 다준의 어깨를 안아 자신에게 붙였다. 꾹 누르는 손에 곱아든 어깨가 저절로 펴지며 한결 편해진 몸이 남자에게 온전히 기대졌다. 숨통을 조이는 것도 트이게 하는 것도 남자였다. 이 모순이 우습고도 역겨웠다.
“아. 안녕하, 아니, 그… 오, 오셨어, 요.”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대 TV를 보던 다준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 사랑스럽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애완동물을 키우는 거겠지. 내가 마련해 준 공간에서 내가 준 옷을 입고, 내가 주는 음식을 먹고, 내가 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오직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약하고 작은 나의 것. 이건 내가 없으면 죽겠구나. 절로 떠오르는 생각에 입가가 계속 호선을 그렸다.
“왜 러그에 안 앉고.”
“아. 아… 러그….”
“다음부턴 저기에 앉아요. 폭신한 거 좋아하잖아.”
“네네….”
다준은 귀엽게도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직도 연애 초처럼 수줍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당장이라도 엎드리게 해 처넣고 싶다.
“오늘은 뭐 했어.”
“아, 그… TV를 봤고… 밥도 먹었고요. 어… 세수도 했고, 물도 마셨어요.”
“그래? 잘했어.”
“네, 네에….”
말도 어떻게 이리 깜찍하게 조잘거리는지. 저가 귀여운 건 알아 가지고 일부러 말끝을 늘리며 애교 부리는 게 참 듣기 좋았다. 조곤조곤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 귀여운 걸 악용할 땐 화가 나지만 이렇게 애교 떠는 건 껴안아 주고 싶게 사랑스럽다. 부스스한 머리칼을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부엌으로 향했다.
“응? 뭐야?”
다준이 밥을 잘 챙겨 먹었나 개수대를 넘겨봤다. 그런데 그릇 하나 없는 개수대 안엔 물기만 흥건했다. 슬쩍 위를 보니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그릇이 싱크대 선반에 엎어져 있었다.
저 먹은 그릇을 씻어 놓은 다준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게 조금 불쾌했다. 재밌게 놀고 있으라고 모래사장도 거실에 설치해 줬건만, 그건 건드린 흔적도 없더니 기껏 했다는 게 겨우 설거지라니. 이건 잘 돌보고 보살피려는 내 정성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다준 씨, 그릇 씻었어요?”
“아, 네네….”
“네가 왜 설거지를 해?”
“아….”
다준은 멍하니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꼼지락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이 이리저리 휘청이듯 방황했다.
“집안일을 저는 안 하니까… 조금, 도와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나도 굳이 설거지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할 게 없었다. TV를 틀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에 쥐여 주는 밀가루 반죽이나 색깔 블록,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모래사장 같은 건 당연히도 놀 만한 게 못 되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이 그나마 시간을 죽이는 데 가장 쓸모가 있었지만 그조차 요즘엔 잘 읽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짧은 걸 읽자니 조잡한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은 왠지 기분이 나빴다. 남자한테 대놓고 조롱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괜히 집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남자가 준 휴대폰에 알림이 왔고 식사하라는 문자에 답장을 한 후 밥을 먹었다. 그러다 쌓인 그릇이 눈에 들어왔고 설거지 같은 소일거리라도 해야지 싶었다. 이거 가지고 이렇게 못마땅해할 줄은 몰랐는데. 이 미친 새끼가 이번엔 또 뭐가 거슬린 건지.
“다준 씨는 개한테 집안일 시키고 그래요?”
“…….”
그럼 너는 밤마다 개랑 접 붙느냐고 묻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개라니.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삼켰다.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구나. 사람처럼 살게 해 준다고 했으면서.
“고무장갑은 꼈어요? 손 줘 봐.”
“꼈어요.”
“이러다 손 부르트면 어떡해. 앞으론 그냥 둬요.”
고무장갑을 꼈다는데 또 딴소리다. 가끔은 내 목소리가 남자한테는 진짜 왈왈 개 짖는 소리로 들리는 거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까지 든다. 미친 거랑 있으니 나도 미쳐 가는 건지.
“아, 혹시 물놀이하고 싶었어?”
“아니요. 무, 물 안 좋아해요.”
이러다 모래사장 옆에 이상한 간이 수영장 같은 거라도 들어올까 얼른 대답했다. 멋대로 그런 거 설치하고 사용 안 하면 또 나한테 뭐라 할 거 아냐.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건 꽤 어려웠다. 단순히 말만 잘 듣는 거로 넘어가지지 않았다. 뭔가 묘하게 어긋난 부분을 알아서 맞춰 주어야 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미친 새끼의 마구잡이로 튀는 정신을 정상인이 어떻게 알아서 맞춰.
분노와 억울함, 복수심, 증오, 혐오 등 남자에 대한 감정은 뭉치고 뭉쳐 더럽게 나뒹굴었다. 평소엔 드러나지 않고 어느 한구석에 꽁 박혀 있다가도 의지와 관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깊게 침잠되어 있다가도 이따금 부유해 떠올랐다.
그날 밤, 남자가 개 패듯 때리고 주먹을 처박았던 그날, 모든 감정이 휘발돼 사라진 줄 알았다. 깨고 나니 남자가 있었고 이게 마땅한 순리인 양 어딘가 뒤틀린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죽을 것같이 막혀 있던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았지만 결코 시원하진 않았다. 굳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고, 사진에 대해선 잊은 채, 그냥 얌전히 집 안에만 있으면 되는 삶. 한심하게도 내가 선택한 건 겨우 이런 거였다. 두려움에 발발 떨다가 살고 싶다고 고른 게 애완동물. 내 구차한 생존 본능은 갑갑한 연명을 택했다.
“다준 씨, 간식 먹… 아. 또 울어.”
신경질적으로 접시를 탁자 위에 던지듯 둔 여울이 눈가에 손을 대 톡 흘러내리는 물기를 훔쳤다.
“왜 자꾸 울지? 갓 태어난 핏덩이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데. 내가 지금 애새끼라도 키우고 있나. 응? 다준 씨 몇 살이에요? 태어난 지 6개월은 넘었어?”
남자는 퍽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어찌 보면 조롱하는 듯, 어찌 보면 농담이라도 하는 양 능글맞은 투였다.
남자의 눈엔 죄책감이나 죄악감, 그와 유사한 어떤 것이든 비스름한 편린조차 찾을 수 없었다. 까만 눈동자는 그저 재미있어하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만족감을 투명하게 투사했다. 내가 울든, 아파하든, 화내든, 뭘 하든 남자는 한결같이 그저 제 감정에만 충실했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동떨어진 채 본인 기분만 신경 썼다. 저건 사람 새끼가 아니다. 사람 거죽을 뒤집어쓴 금수만도 못한 것이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래. 도대체 왜 그렇게 울어요? 섹스 할 땐 아프거나 좋아서 우는 거라고 이해할 수라도 있지. 그런데 지금은 왜 그래? 정말 아무것도 안 했잖아. 간식 먹는 게 싫었어요?”
저게 진심이라는 것이 더 착잡하다. 남자와 있을 땐 답이 없는 것처럼 눈앞이 막막해졌다. 시야가 깜깜하게 덮이고 먹먹한 고요가 들었다. 맞아. 세상이 정전된 것처럼. 남자의 존재 자체가 그랬다. 천진한 암전.
“그냥…”
“그래, 그냥? 그냥 눈물이 난다고. 그냥.”
흠, 고개를 갸웃거린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다 곧 고민을 떨친 듯 상쾌하게 웃었다.
“그럼 기분 좋아지게 섹스나 해요. 간식은 이따 먹여 줄게.”
보조개가 폭 패며 산뜻한 웃음이 말갛게 걸렸다. 허리가 손에 들리고 벽에 찌부러질 듯 밀쳐진 채 다리 사이로 남자가 들어왔다. 축 처진 성기가 남자의 딱딱한 배 위로 뭉개듯 비벼졌다.
고개를 숙인 남자가 귓바퀴를 잘근잘근 물다 축축한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달랑거리는 종아리를 자신의 허리에 감으라고 종용했다. 훌렁 올라간 셔츠 아래로 남자의 얼굴이 들어갔다. 이가 살짝 유륜을 깨물고 벼려진 송곳니가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를 스쳤다.
“흐읏…!”
유두를 핥아 올리는 혀가 질척하게 제 타액을 묻혀 갔다. 물기 젖은 유두에 찬 공기가 닿아 딱딱해지고, 꼿꼿해진 것이 다시 입 안으로 들어갔다.
“흐아….”
“이거 좋아하지.”
“흣!”
“다리에 힘 풀린다. 똑바로 감아.”
허리를 달랑 안은 채 남자는 식탁으로 향했다. 날이 갈수록 느끼는 속도가 빨라졌다. 겨우 젖꼭지가 빨렸을 뿐인데 이미 잔뜩 부푼 성기가 계속 단단한 복근에 부딪혔다. 남자가 일부러 다준의 허리를 들썩이게 하며 걸었다. 남자의 보폭에 맞춰 살짝 들렸던 허리가 내딛는 걸음에 따라 다시 내려가고 제 성기가 연신 위아래로 비벼졌다.
쿠퍼액이 찔끔찔끔 새어 나오자 보채는 듯한 울먹임이 나왔다. 가만히 있으려 해도 허리가 혼자 움찔거렸다. 남자에게 들키지 않게끔 조금 간들거렸더니 그걸 어떻게 눈치챘는지 잡힌 허리에 악력이 꽉 들어갔다.
“좋다고 혼자 즐기고 있네?”
“윽!”
등이 식탁에 쿵 밀쳐졌다. 등뼈가 으스러지듯 아팠지만 속옷과 함께 잡힌 바지가 홀라당 내려가고 회음부에 귀두가 스치자 고통이 쾌감으로 치환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빨리 박아 달란 거지.”
“흐, 아!”
스파크가 번쩍 튀며 거대한 것이 밀고 들어왔다. 곧장 다물리며 콱 조이는 구멍이 조급하게 성기를 씹었다. 남자의 허리에 비볐던 성기는 이미 한껏 서 움찔움찔 쿠퍼액을 흘려 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모양새인 성기를 톡 치자 다준이 뒷머리를 식탁에 비비며 자지러졌다. 발발 떨리는 허리가 요사스럽게 휘었다.
“뭘 했다고 섰어.”
남자가 픽 비웃으며 무릎까지 내려간 바지를 완전히 벗겨 내 던졌다.
“아. 이거 야하다.”
곳곳에 푸르게 멍이 든 몸이 식탁 위에 누워 있었다. 맨다리는 활짝 벌어져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었고, 말려 올라간 흰 셔츠는 허구한 날 씹혀 빨간 자국이 가실 날 없는 유두를 그대로 내놓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 허리께엔 잘근잘근 씹어 놓은 잇자국과 키스 마크가 빼곡했다.
얼굴은 종이를 구겨 놓은 것처럼 울상을 지어 눈썹이 불쌍하게 처졌다. 아래로 휘어진 눈매 끝엔 또 눈물을 매달고, 내내 물고 빨았던 입술은 부은 상태로 웅얼웅얼 신음했다. 시선을 더 내리면 성기가 꽂힌 구멍은 제 크기대로 다물려 살짝살짝 오무락거리고. 어떻게 이런 게 살아 움직이지? 신기하게.
“흐아! 흐윽!”
“아. 귀여워. 귀여워. 예뻐.”
“학! 아! 으아! 아!”
“다리.”
“흐악!”
“감으랬지.”
“아……!”
크게 뜬 눈동자에 물기가 고이고 주룩 한 줄기 흘러내렸다. 반들거리는 눈동자가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쾌락 속을 헤맸다. 뺨을 가볍게 친 여울이 다준의 맛 간 시선을 끌었다. 상을 제대로 비추지도 못하는 눈동자가 그저 자신 쪽으로 향했다고 때렸던 뺨에 쪽 입을 맞춰 주었다.
입맞춤과 동시에 허리를 부르르 떤 다준이 사정을 했다. 배와 가슴에 사정액이 낭자했다. 구멍으로도 투명한 액이 줄줄 새는 걸 보니 뒤로도 갔나 보다. 박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앞뒤로 질질 싼담. 다준에게 조루냐고 놀려 주려 했는데 표정을 보니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조루라는 말은 너무한 것 같았다. 진짜 조루한테 조루라고 하면 농담으로 못 받아들일 테니까. 분명 상처받고 또 울겠지. 아주 울보야, 울보.
완전히 힘이 풀려 늘어진 다리를 자신에게 감은 여울이 그 상태로 허리를 쳐올렸다. 다준의 몸이 위로 퍽 솟으려 하다가도 다리를 꾹 고정시킨 손 때문에 허리만 휘청 들리며 꺾였다. 크게 꺾인 반동이 볼록한 배를 더 볼록 나오게 하고 그 꼴이 또 너무 야해서 여울이 쓰게 인상을 썼다. 너무 좋아서 짜증 날 때도 있구나.
이걸 이대로 망가뜨리고 싶다. 밤낮없이 구멍에 처박으며 목구멍 끝까지 쑤셔 넣고, 속이 다 문드러질 때까지, 구멍이 죄다 헐어 다물리지도 않을 때까지 쭉 박고 때리고 정액을 싸지르고 싶다. 다준의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서 정액만 질질 흐르게 되면 그 모습도 절경일 텐데.
그럼 그때 다준의 표정은 어떨까. 늘 그랬듯이 엉엉 울려나. 울 힘도 없이 축 처질까. 정액으로 부푼 배를 끌어안은 채 끙끙거릴지도 몰랐다. 좋다고 헥헥,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숨만 쉴지도 모르고. 음. 더 해 달라고 보챌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미 정액으로 가득 차 들어갈 곳도 없는 주제에 박아 달라고 애원하면 그것도 재밌겠다. 그 상태 그대로 구멍에 박아 넣으면 물 풍선이 터진 것처럼 콧구멍으로도, 귓구멍으로도, 목구멍으로도 정액이 울컥울컥 나오고. 다준은 자기가 어떤 꼴인지도 모른 채 좋다고 흔들리고. 아. 좋겠다.
“흐아! 학!”
속절없이 흔들리는 다준을 깔고 있으면서도 보다 자극적인 상상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하지만 아껴 써야지. 아껴 주고 잘 돌봐 줘야지. 다준은 내 거고, 내가 책임을 져야 되니까. 그래, 내 거. 내 귀여운 다준, 예쁜 다준, 사랑스러운 다준. 어쩌면 소중하기까지 한 다준.
“아으으! 흐!”
아래에 깔린 작은 몸이 좋다고 이리저리 뒤틀렸다. 다시 허리를 잡았다. 다리가 허리에 감기지 못하고 다시 달랑거렸지만 움직임에 맞춰 탈랑거리는 것도 꽤 깜찍했다.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다준에겐 타협이 너무 쉬웠다. 어딜 봐도 예쁜 구석밖에 없어서 그런가.
“어윽! 아으! 흣! 아, 응!”
찔꺽찔꺽 엉켜 오는 속살은 쫀득했다. 주먹을 처박았던 다음 날엔 그래도 좀 벌름거리나 싶었는데 그것도 하루뿐이었고. 시간이 지나자 어째 박을수록 쫀쫀해졌다. 하긴 무슨 상관일까. 헐렁거리든 조이든 뭐든 괜찮았다. 헐렁거리면 다른 걸 더 처넣으면 되고, 조이면 계속 박아 풀리게 만들면 되니까.
“흐으으….”
정액을 싸 주고 성기를 빼내면 정액을 머금은 구멍이 슬쩍 벌어졌다. 그 사이로 빼꼼 희멀건 게 드러나고 벌름거릴 때마다 주룩 흘러나왔다. 어느 시점부터 여울은 이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 꼭 후희를 즐겼다. 대개는 다준의 몸 어딘가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고, 한동안은 정액을 머금은 구멍에 손가락 장난을 쳤다.
검지만을 넣어 요리조리 쑤셔 대고 주름을 훑다 진동을 일으켜 결국 손가락 하나로 가게 만들기도 하고, 손가락 두 개로 피스톤질 해 주는 가벼운 핑거링이었던 것이 피스트 퍽으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 그날은 눈물 콧물 쏙 뺀 다준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혼내냐고 엉엉 울며 반항했었다.
피스트 퍽까지 간 후, 푹 젖은 채 풀린 구멍으로 쓰러져 있던 다준을 욕조에서 씻기던 중 다준이 가물가물 눈을 뜨고 일어났었다. 구멍을 살살 매만져 주고 있었는데 눈을 몇 번 끔뻑거린 다준이 꽤 억울한 표정으로 제 가슴을 툭툭 치며 오열했다.
그 작은 손으로 쳐 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꼭 쥔 주먹으로 계속 쳐 댔다. 솔직히 너무 약해서 애교인 줄 알았다. 그렇게 서럽게 울어 대지 않았으면 유혹하는 걸로 오해해서 그 흐물흐물 풀린 구멍에 다시 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준은 숨넘어갈 듯 가엽게도 울었고, 그간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예쁘고 얌전히 지내고 있었던 터라 다독이며 달래 주었다. 착하게 지내는데 그 정도 앙탈쯤이야 당연히 받아 줄 수 있었다. 곰팡이처럼 눅눅하게 지내던 다준이 성내며 뻗대는 게 달갑기도 했다.
오늘은 뭘 할까. 귀엽게 빠끔거리는 구멍에 손가락을 좀 넣어 줄까. 따끈따끈해 보이는 뺨을 주무를까. 기꺼운 고민을 하며 다준의 허리께를 쓸었다.
***
“다준 씨.”
남자의 부름은 대체로 불길함을 띠었고 대개 불온했다.
“또 박으면 울 거예요?”
욕조에 담가지면 거의 온건히 씻긴 후 침대에 눕혀졌다. 그러나 가끔씩 욕조에서도 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오늘이 그날인가. 안 그래도 힘들어서 절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흐….”
“왜 벌써 울려고 그래요. 뭐 하지도 않았는데.”
다준의 구깃한 미간을 꾹 눌러 쓸면서 여울이 다준의 몸을 더욱 붙여 안았다.
“안 할 거야. 이제 코 자야죠. 요즘은 아무 때나 꾸벅꾸벅 졸잖아. 낮잠이라도 좀 재워야겠어요.”
개 씨발 새끼…. 그게 누구 때문인데.
수건에 폭 싸인 몸이 들려 거실로 나갔다. 소파로 향하는 몸 위로 넓은 창에서 들어온 따스함이 내려앉았다. 너울거리는 햇빛은 물결처럼 일렁였다.
지금 이 상태를 정의할 수가 없다. 가끔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갈 데도 없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날 기다리거나 맞이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남자를 만나기도 전부터 내 삶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다만 그 까마득함 속에서도 탁한 빛이 조금은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기대 같은 것들이. 하지만 남자는 그마저도 앗아 갔다. 넓고 환한 이곳이 우중충한 자취방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햇볕이 이렇게나 밝게 들이치는 곳인데 곁에 있는 남자가 빛을 다 꺼트렸다.
“자자. 자요. 여기 눕고.”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놓은 남자가 말똥히 뜬 눈을 손으로 가렸다. 눈을 감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다시 찾아들었다. 남자의 손은 희미한 빛 하나도 들이지 않곤 갑갑히 눈 위를 덮었다.
남자가 흥얼거리는 자장가가 조용히 울렸다. 의식을 붙잡아 아래로 끌고 가듯 찬찬히 잠겨 들기 시작했다. 스며드는 졸음은 평온한 안락과 닮았지만 조금 달랐다. 이 또한 남자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면 내겐 다시 정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