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1/32)

1장

정 2품 도총관 유일선의 막내아들이 이상하다, 라는 소문이 도성 내에 자자하게 퍼졌다.

어른들이 영특한 아이를 보고 총명하다며 칭찬을 해도 또래 아이들 귀에는 거슬릴 수 있는 일인데, 하물며 이상하다는 말이 흘러나오면 급격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유일선의 셋째 아들 유명월은 어려서부터 짓궂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지체 높은 양반 댁의 자식이었지만, 함께 모여 공부를 하고 어울리다 보면 다 같은 친우로 생각하게 되어서 신분의 벽이 허물어질 때가 더러 있었고, 당시가 그랬다.

늦은 밤, 같이 반딧불을 잡으러 가자 했을 땐 그러마―하고 흔쾌히 허락해 놓고선, 막상 바깥에 다들 모여 있으니 다시금 못된 마음들이 슬금슬금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명월은 갑작스럽게 덤벼드는 아이들을 피해서 나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번 구르고 넘어졌기 때문인지 땋은 머리는 반쯤 흘러내렸고, 여기저기에 나뭇잎이 묻어 있었다. 의복도 흐트러진 꼴로, 이 상태로 돌아가면 분명 머슴 복운에게 한소리 듣게 될 거다. 이런 꼴이어서야 모두와 사이좋게 지낸다 변명을 해도 그가 믿지 않을 게 아니겠는가. 답답할 노릇이라며 명월은 양손을 들어 뺨을 감쌌다.

어둠이 잡아먹은 숲 한쪽에 쪼그리고 있는 명월은 아직 9살이었다.

어려서일까. 달빛이 비친 얼굴이 하얗고 조그마한 것이 제법 깜찍했다. 실제로 두 눈동자는 검고, 콧대가 우아하게 뻗어진 데다가 다물린 입술이 야무지니 아주 어여쁘게 생긴 외모였다. 거기다가 이름이 명월(明月)이니 또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딱 좋았다.

넌 이름도 이상하고 얼굴도 계집애 같다. 바지 좀 벗어 봐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무례한 놈들이었다. 자신은 어엿한 사내 대장부였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분명히 함께 바지를 내리고 논두렁 위로 올라가 시원하게 소변을 갈기기도 했는데, 그 기억은 이미 사라진 모양이었다.

매번 그런 식으로 짓궂게 구니, 이제 더는 학사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버님께 집에서 공부를 하겠다 말해 볼까도 싶었지만, 그 순간 완고한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쪽 같은 성품으로 유명한 그는 분명 허락하지 않을 거다. 어쩌면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거기까지 생각하던 명월은 긴 한숨을 쉬면서 세운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월이 이 자식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자. 바람 소리가 이상해.”

“바람 소리가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이 겁쟁이 녀석.”

“겁쟁이라니. 말조심해. 그러는 너야말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잖아. 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건데?”

“무, 무서워서 이러는 거 아니야. 그냥 뒤에 뭐가 있는 건가 싶어서 살펴봤을 뿐이야.”

“잘도 그러시겠다.”

웃기지도 않은 변명이라는 양 이죽거리는 말투에 화가 난 건지, 이 녀석이,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명월이 어딘가에 넘어져 있거나, 쓰러진 거 아니야? 이렇게까지 안 보이는 게 이상하잖아.”

넘어지긴 했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엎드리는 순간 바로 일어났으니까. 자신을 그렇게 약골로 보지 말라며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그 녀석은 그럴 만한 놈이 아니야. 분명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보고 비웃고 있을 거야.”

“그래. 맞아. 그 녀석은 이상한 놈이란 말이야.”

이상한 놈이라.

다시금 ‘계집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잖아.’ 같은 식으로 말한다면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이 얼굴은 귀하게 잘 생긴 거였다. 분명 복운이도 그렇게 말했거늘, 왜 저놈들은 하나같이 계집애 운운인지 모르겠다.

그래. 거기서 한 번 더 말을 해 봐라. 내 당장 올라가서 너희 전부를 쓰러뜨려 줄 테니까―.

“예전에 뒤뜰에 혼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뭘 하는 거냐고 했더니, 갑자기 팔을 들고는 저기 있는 새가 예쁘지 않느냐고 묻는 거야. 근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어.”

“그뿐인 줄 알아? 예전에 학사에서 불이 났을 때 그 녀석이 맨손으로 불을 두드려서 껐단 말이야. 그걸 보고 따라했다가 손바닥 전체를 데어서 내가 몇 달을 고생했는데―.”

“아까도 반딧불을 잡다 말고 갑자기 호수 쪽으로 내려가기에 왜 그러냐고 했더니 누가 부른다고 하잖아. 아무도 없는 곳인데. 다들 무서워서 호수 근처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누가 부른다는 거야. 정말 이상한 말을 하는 놈이야.”

마지막은 언제나처럼 이상한 놈이라는 말로 끝났지만, 그 목소리 안쪽엔 짙게 서린 두려움이 느껴졌다.

원래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건 쉽게 전염되기 마련이었다. 하나, 둘씩 예전에 명월하고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던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고, 그사이로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해가 저물어 캄캄한 숲속이었다. 다 함께 모여 있더라도 오싹하니 무서워서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떤 계기만 있으면 다들 그 자리를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안쪽에서 파사삭, 하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으아아아, 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이 그 자리를 허겁지겁 빠져나온다.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잊힌 채 방치되어 있었던 명월은 조금 전 위에서 들린 말들 때문에 지금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단순히, 얼굴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던 게 아니었구나.

새삼스레 알게 된 사실에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은 채로 있던 명월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 오른손은 손가락 다섯 마디만 내놓고, 그 외의 부분은 검은 천으로 꼼꼼하게 감싸여진 채였다. 그 손을 움켜쥔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명월은 아주 가끔씩 이상한 게 보일 때가 있었다. 어려서 아는 게 없으니까, 그걸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간혹 이상하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걸 가리키거나 ‘저건 뭐지?’ 라는 식으로 묻고는 했던 거다.

처음에 그리 물으면 사람들은 웃으면서 ‘뭐가 말입니까.’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같은 일이 반복되자 그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복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한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양,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명월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굳어 있었다. 이상한 걸 보듯 은근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복운이 저런 얼굴을 할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암암리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이상한 짓을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명월의 눈엔 보였다. 눈에 보이니까 먼저 다가가는 거고,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보면 늘 같은 의문이 들고는 했다.

자신은 왜 그런 게 보이는 걸까.

명월은 무릎을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때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흩트리는 시원한 바람에 명월은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떴다. 가만히 허공을 주시하던 명월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고 옷에 묻은 것들을 털어냈다.

적어도 흐트러진 옷 상태는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숲을 빠져나가기 전까진 뭘 어떻게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말았다. 명월은 허리까지 올라오는 긴 풀을 걷으면서 위로 올라갔다.

주변은 어둠에 감싸여 있었지만, 위로 올라가는 명월의 얼굴엔 두려움이 없었다. 차분하게 걸음을 서두르던 명월은 굳게 결심했다.

앞으로는 뭐가 보이더라도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을 터였다.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냥 무시할 거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그 이상한 것들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 때문에 부모님이 자신을 똑바로 봐 주지 않는 것일 테다. 명월은 풀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살폈다.

이 겁쟁이놈들은 몽땅 어디로 가 버린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적어도 함께 왔으면 같이 돌아갈 시도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나쁜 놈들.

한숨을 쉰 명월은 주먹을 들어선 촉촉해진 눈가를 비볐다.

이건 서러워서 우는 게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간 놈들이 괘씸해서 이러는 거였다. 학사에서 마주치면 가만 두지 않을 거다.

한꺼번에 덤비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지, 한 놈이나 두 놈씩이라면 자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것들이었다. 제대로 손을 봐서 아예 쓸데없는 소리를 못하도록 할 거다. 그래야지만 저런 말이 더 멀리 퍼지지 않게 될 거다.

명월은 도성 안에 자신의 소문이 어떻게 나 있는지를 모르진 않았다.

이상하다는 말 속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좋은 의미든, 아니든, 일단은 말이 돈다는 것 자체가 아버님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었다. 그분 덕분에 고생 안 하고 편하게 사는 건데,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평판을 더럽힐 순 없다면서 명월은 양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무척 진지한 얼굴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명월은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숲을 빠져나와서 하얀 돌다리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명월의 눈에 산의 초입에 서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키가 큰 사내였다.

사내는 하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호랑이의 머리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니 저런 이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상대가 당장 이리로 오는 건 아닐 텐데 괜히 초조해진다. 명월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양 앞으로 고개를 돌리곤 걸음을 서둘렀다.

이제 돌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명월의 눈에, 다리 가운데에 놓인 꽃가마가 들어왔다.

“…….”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저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돌아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게다가 앞으로는 이상한 게 나타나도 그걸 아는 척하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명월은 고개를 숙인 채로 걸음을 서둘렀다.

다리의 중간에 다다라 꽃가마 옆을 지나칠 무렵, 뭔가가 떨어졌다. 놀란 명월은 발 바로 앞에 떨어진 작은 주머니를 발견했다.

이게 어디서 떨어진 거지.

그때 가마 아래쪽으로 나온 손이 바닥을 더듬는다. 아주 조금 드러난 손가락은 무척 하얬다. 하지만 그 손은 주머니에 닿지 않았다.

어쩌면 좋지. 망설이던 명월은 발끝으로 주머니를 밀어 주었다. 그러자 바로 손이 그 주머니를 채 간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에 화들짝 놀란 명월은 헛숨을 삼키며 서둘러 뛰었다. 등 뒤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꽃가마에서 내리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리는 걸 느끼며, 명월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때 가느다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령,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였지만, 거북했다.

다리를 건넌 명월은 계속 달리면서 소리쳤다.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그건 비단 그녀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보였던 모든 것들이 다 보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명월은 죽자고 뛰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콧구멍 안쪽이 확 트이는 것 같다.

날은 화창하고, 바람은 시원한데다 눈앞으로 산해진미가 가득한 술상이 차려져 있고, 옆자리엔 어여쁜 기생이 잔을 채워 준다. 더할 나위 없는 호사였다. 물론, 대낮부터 여자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남들 보기엔 파락호의 그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반양 제일의 기생, 호접화를 옆자리에 앉힌 그에 대해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는 올해 초, 반양에 새롭게 부임된 사또였으니 말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도성의 세력가 자제라지만, 확인할 수가 없으니 다들 그러려니 넘겼다. 그저 새파랗게 어린 게, 외진 곳이라 할지라도 사또로 온 걸 보면 보통 놈이 아닐 것이라 추측만 할 뿐이었다.

보통 사또가 새로 부임이 되면 으레 축하 자리로 기생집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다들 뒤로 주고받으면서 이래저래 공생하는 관계였으니 좋게 보여서 나쁠 건 없었던 거다. 하지만 기생이라 해도 여자인지라, 암만 사또가 부른다 해도 가볍게 튕기는 게 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에 나타난 사또는 범상치 않았다.

인물이, 보통이 아니었다.

반양 제일의 기방, 호란에서도 가장 값비싼 자리에 열댓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상 앞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은 사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호접화가 버티고 앉아 있건만, 상 주변으로 몇이나 되는 기생이 더 있었다. 과년한 기생에서부터 새끼 기생까지, 하나같이 자리에 앉아서 사또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우선 잔을 집어 드는 손가락이 길고 우아하게 뻗어져 있었다. 잔이 닿는 입술은 붉고, 그 위로 보이는 콧날은 적당히 높게 잘 솟아 있었으며, 내리뜬 속눈썹은 길고 풍성했다. 옆에 앉은 호접화보다 훨씬 더 예쁜 그 속눈썹이 올라가자 깊고 그윽한 눈매가 드러난다.

작은 얼굴에 조화롭게 자리한 이목구비는 유려했다. 거기다 오른쪽 뺨 가운데에 있는 작은 점 하나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돈 좀 있는 놈들 중에선 배가 나오지 않고, 호색하지 않은 인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사또는 젊고 아름다운 데다 유머가 있었고, 행동거지 또한 과하지 않아 첫날부터 호란의 인기인이 되었다. 물론 그를 한눈에 찍은 호접화가 있으니 쉽사리 접근은 할 수 없겠지만.

탐이 나 죽을 것 같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앞에 두고도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잔 하나를 비우자 기다렸다는 양 호접화가 전을 집어 내밀었다.

“술만 마시면 무슨 재미랍니까. 안주도 좀 드시지요.”

“그럴까?”

가볍게 대꾸하는 목소리조차도 듣기가 좋았다.

어디선가 하아,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걸 나무랄 수가 없는 게, 모든 기생들이 똑같은 눈빛과 태도로 사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벌려 전을 받아먹은 그는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혀를 내밀어선 아랫입술을 핥았다. 눈을 가늘게 접은 그는 만족스러워하면서 “맛있군.” 하고 말했다.

그러곤 부채를 펼치면서 호접화를 향해 흔들었다.

“자네가 먹여 주니 유난히 더 맛이 좋은 것 같군. 이래서 자네가 호란 제일의 인기인이 아니겠는가. 다른 이들도 나와 똑같은 말을 하겠지?”

“다른 분들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소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나, 사또의 말은 참으로 감미롭군요. 듣기가 좋습니다.”

호접화의 말에 사또는 소리 내 웃으며 본인 쪽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 사람, 언변은 여전하군. 과도한 업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 죽을 것 같았는데 자네 덕분에 살 것 같네.”

그 말에 호접화의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호란 제일의 꽃이었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노래와 춤, 서화에 능숙한데다, 눈치가 빨라서 대화가 끊기는 일이 없었다. 물론 본인이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는 조용히 술만 따르면서 적당히 사내의 비위를 맞춰주는 방법을 아는 여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아무에게나 이러는 건 아니었다. 사또라 해서 쉽게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원래 고을이라는 곳은 사또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큰 집단이 존재하기 마련으로, 그녀가 싫다 하면 굳이 이 자리에 처음부터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호접화는 이 사또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비단 매력적인 용모에만 끌리는 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내들과 다른 방식으로 여인을 대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다 해도 함부로 치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거나 희롱하지 않았다. 가볍게 다가와 말을 던지는 것 같아도 적당한 선을 긋고 도를 넘지 않았다. 그게 원래 성품인지, 아니면 여인을 꾀어내기 위한 수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외모는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수려했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원래 남녀는 살이 닿아야지 정이 통하는 법 아니겠는가.

호접화는 재차 술을 따르기 위해서 병을 들었고, 그때 내내 상 아래로 내려가 있던 사또의 오른손을 봤다. 긴 소매 아래로 보이는 사또의 손바닥은 검은 가죽으로 감싸여 있었다. 손가락은 다 내놓고 있으면서 손목에서부터 위까지는 가죽으로 딱 맞춰서 끼고 있는 게 신기해 보였던 그녀가 물었다.

“오른손의 그것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화상을 입어서 흉한 상처가 있네.”

간단하게 대답한 사또는 소매를 내리면서 손을 안쪽으로 옮겼다.

더 물을 수 없을 정도로 간결한 대답이었다. 게다가 손을 가리며 감추려 들자 호접화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그가 웃는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어찌 사내가 저리도 사람을 홀리는 웃음을 짓는 건가 싶었던 호접화는 술을 따르며 속삭였다.

“사또는 참으로 죄가 많은 분이십니다.”

“죄 지은 자들을 벌하러 온 나에게 어떤 죄가 있단 말인가.”

“너무도 수려하셔서 이곳에 있는 모든 여인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여인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랍니다.”

호접화의 말에 상 앞에 모여 앉아 있던 기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한복을 입고 머리도 한껏 틀어 올려서 장신구를 달고, 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분을 바르고 꽃잎을 빻아서 우린 물로 입술 색을 들였다. 과하게 치장한 여인들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바라보는 건 상석에 앉은 사또 한 사람이었다.

사또는 호접화가 따라 준 술을 마시면서 웃었다.

“이것 참 과한 애정을 받고 있는 것 같군.”

“멋진 사내대장부에게 여인이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랍니다.”

꽃잎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사또는 호접화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은근히 물었다.

“그건 자네도 해당되는 말인가.”

“물론이지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제 마음은 사또의 것이랍니다.”

지금껏 호접화가 저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기생들은 정말 놀라선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양,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접화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반양 제일의 미색 호접화가 이리도 노골적으로 나오니 그걸 보고 흔들리지 않을 사내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또는 잔잔한 미소만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주고받는 눈빛이 그윽했다. 여기가 방 안이었다면, 당장 초를 끄고 둘이 한 몸이 되어서 이불 위를 뒹굴 것만 같았다.

그때 한창 좋던 분위기를 잡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또, 거기에 계십니까?”

그들이 모여 앉아 있던 전각 바로 아래에서 들리는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에 기생들은 대체 뭔가 싶어선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를 살폈다. 그곳엔 몸짓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사내가 양손을 모은 채로 서 있었다.

사또의 종인 복운이었다. 사또만큼은 아니라 해도, 도성 물을 먹어서인지 꽤 나쁘지 않은 용모를 지닌 복운이었다. 게다가 여인에 대한 면역이 없는 것인지, 여길 찾아오긴 했어도 차마 기생들을 볼 수 없다는 양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게 여겨졌던 기생들 몇이 품에 달고 있던 노리개를 잡아 흔들면서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복운은 쩔쩔매며 대답했다.

“사, 사또께 긴히 드릴 말이 있어 찾아왔습죠.”

“긴히 드릴 말씀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어찌 전하시려고요. 사내가 고개 좀 뻣뻣하게 들고 다니면 안 되십니까? 아니면 뭡니까. 저희들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짓궂은 그녀들의 말에 복운은 당황했다. 위에서 봐도 알 정도로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를 두고 기생들은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들의 모습에 호접화는 혀를 찼다.

“그만들 해라. 사또 앞에서 그 무슨 추태냐.”

호접화의 말에 복운을 보면서 즐거워하던 기생들이 알아서 뒤로 물러났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은 그녀들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매단 채로 사또를 바라봤다.

“종이 찾아왔으니 이만 일어나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조금 더 이 낙원에서 달디 단 꿀물을 즐기려 했는데, 많이 아쉽소.”

사또의 넉살에 미소 지은 호접화는 사또가 뒤에 벗어 둔 전립을 들어 올렸다.

“그리도 아쉬우시면 밤에도 찾아오시면 될 게 아니겠습니까.”

호접화가 씌워 주는 전립을 쓴 사또는 띠를 턱 아래에 댄 채로 웃었다.

“내 바쁘지 않으면 꼭 밤에도 찾아오겠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리 말을 주고받아도 정말은 사또가 밤에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호접화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사또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이걸로 여기 계산을 하고, 조금 더 있으면서 쉬게나.”

그리 말을 한 사또가 몸을 돌려선 전각을 내려갔다. 그가 내려오자마자 복운이 징징 대면서 “왜 대낮부터 이곳에 계신 겁니까.”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새끼 기생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다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는 동안 사또와 복운은 멀어져 갔고, 그제야 기생들은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언제 봐도 정말 잘난 분이십니다. 어쩔 땐 저보다 훨씬 더 고우셔서 저분이 사내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넓은 가슴과 듬직한 어깨를 보고도 몰라? 당연히 멋진 사내대장부시지.”

거기까지 말한 기생이 양손을 마주잡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힘들게 일하면서 여기에 붙어 있던 보람이 여기에 있네. 내 살다가 저런 미남자를 보게 되다니.”

“그러게 말이야. 형님,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야말로 꼭 잡아서 첩으로 들어앉으세요.”

누군가의 말에 모든 기생들이 호접화를 바라봤다.

사또가 건넨 주머니를 쥔 채로 그걸 내려다보고 있던 호접화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쌍꺼풀이 진 눈매가 무척이나 고혹적인 그녀는 붉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쓸데없는 소리들은 하지 마라. 어차피 잠시 이곳에 있다가 금방 돌아가실 분이시다.”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전에 붙잡으면 좋잖아요.”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

차분하게 말하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기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새끼 기생이 앞에 있던 고기 전을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었다. 옆에 있던 기생이 등을 치면서 “거지도 아니면서 왜 손으로 집어먹는 거니.” 하고 타박을 해도 고기 전을 입 안 가득히 넣은 새끼 기생은 눈을 가늘게 휘면서 웃을 뿐이었다. 그 순한 웃음에 혀를 찬 기생은 젓가락을 들었다.

이윽고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남은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호접화는 주머니를 살폈다. 그걸 손에 꼬옥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의 사또를 떠올리는 것일까.

그녀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아니. 왜 낮부터 기방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사또가 일도 하지 않고 기방에 들어가서 계집질이나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망할 이방 놈이 절 고깝게 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가 널 고깝게 보는 건 네놈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기 때문이지.”

사또의 뒤를 따르던 복운은 억울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그놈은 지금까지 관아의 곳간에 있던 물건을 빼돌리려 했는데 그럼 그걸 보고 가만히 있는단 말입니까? 그런 놈이 어찌 이방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놈은 도둑입니다!”

흥분해선 제 가슴을 두드리는 복운이지만, 내심은 사또의 칭찬을 듣길 원했다. 이방을 잡은 건 이곳으로 와서 처음 세운 공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관아의 이방이 곳간을 건드리는 걸 잡아낸 거였으니, 실로 엄청난 실적을 올린 셈이었다.

백번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무정한 사또는 그 일을 조용히 넘겨 주었다. 그런 도둑을 이방으로 둘 순 없으니 썩 쫓아내야만 한다는 말에도 사또는 묵묵부답이었다.

자연스럽게 애가 타는 건 복운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교활한 이방이 뭔 짓을 벌일지 모를 일이었다. 그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인데, 사또는 자신을 너무 괄시하는 것 같다면서 복운은 앞을 바라봤다.

앞장 서 걷는 사또는 등채를 흔들면서 느긋한 모습이었다.

애가 타 들끓는 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복운은 한달음에 명월의 옆으로 달려가 그를 올려다봤다.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계십니까?”

“여긴 참 사람 살기가 좋은 곳이로구나.”

이건 또 뭔 말인가 싶었던 복운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마침, 저 앞에서 커다란 물 항아리를 머리에 지고 오는 여인이 있었다. 위로 손을 들어 항아리를 잡고 있어서 봉긋한 가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모양새에 얼굴을 붉힌 복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쪽으론 어린 낭자가 종종 걸음을 옮기며 웃는 게 보였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 탓인지 모르겠지만, 낭자들이 훨씬 더 예뻐 보이는 것 같다면서 복운은 머리를 긁적이곤 쑥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여자도 많고, 미인도 많고…….”

“왜?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도 있느냐? 다리를 놓아 줄까?”

“아,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여기에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우리는 놀러 온 거다.”

양손을 흔들면서 부정하던 복운은 명월의 말에 그대로 멈췄다.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한량처럼 설렁설렁 걷던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몇 년만 놀다가 도성으로 다시 돌아갈 거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 말거라.”

처음에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따져 묻고 싶었던 복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화가 나면서도 안쓰러운 양, 명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재차 명월의 옆에 딱 붙은 채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도 말입니다. 아닌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셔야 합니다. 전 천출이니 그렇다 쳐도, 사또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방과 그 패거리가 오늘도 모여서 저들끼리 숙덕거리는 것 같던데, 다음에 그걸 보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서라, 그러다가 네놈만 호되게 당할 수가 있다.”

“뭐 어떻습니까. 제 뒤에는 사또가 계시는데요.”

손을 마주 잡은 복운은 한껏 웃어 보였다.

입 다물고 있으면 그럭저럭 준수한 얼굴이 대번에 바보처럼 변했다. 종이 있으면 딸랑거릴 것 같은 태도로 사또를 바라보는 복운이지만, 님은 무정하게도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보다 확실한 거절이 없었다.

바로 얼굴이 일그러진 복운은 고개를 뒤로 빼고는 뚱하니 내뱉었다.

“설마 도와주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그 순간 뒤를 돌아본 명월은 등채로 복운의 배를 아프지 않게 툭, 쳤다.

“네놈이 사고를 쳤으면 직접 수습을 해야지. 왜 내게 투정인 것이냐.”

명월과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0년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리도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너무한다며 바라보는 복운이었으나, 명월은 해괴한 걸 보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이 저기 호란 제일의 미녀, 호접화라도 되는 줄 아느냐. 눈이 썩을 것 같으니 당장 표정부터 풀어라.”

그리 말하면서 명월은 등채로 계속 복운의 배를 두드렸다.

단단한 나무로 된 등채로 연거푸 맞자 아팠던 복운은 ‘그만 때리십시오,’라면서 본인 배를 양손으로 감쌌다. 그 모습에 명월의 눈이 가늘게 접힌다. 웃는 그 얼굴을 본 복운은 바로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사내 주제에 왜 저렇게 웃는 얼굴이 예쁜 거야.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며 복운은 손으로 눈을 마구 문질렀다. 그러는 동안 매정한 사또, 명월은 그를 버리고 저만치 앞서 가 버렸다.

도성에서는 말 타고 열흘, 걸어선 한 달이 걸리는 곳에 반양이 있었다. 도성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반양은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거기다 매년 이어지는 풍년으로 모든 이들의 삶이 풍족하고, 하나같이 장수하기로도 유명한 지역이었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는 살기 좋은 고을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명월이 이곳의 사또로 부임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양에 온 지 한 달 정도 된 명월은,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좋지 않은 쪽이었지만 말이다.

하얀 한복을 입은 채, 바깥으로 나온 그는 동그랗게 뜬 달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달빛이 훤하다. 마치 자신의 얼굴마냥 훤하니, 무척 보기가 좋다면서 흡족한 미소를 짓던 명월은 등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이방 한소규였다.

일주일 전, 곳간의 물건을 몰래 꺼내는 걸 복운에게 들통이 나 한바탕한 후에,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해 다니더니만 웬일로 이렇게 나타난 건가 싶었다. 설마하니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잠자코 있었고, 마주 잡은 손을 잡았다 놓은 이방 한소규는 초조한 듯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결국 명월이 먼저 물었다.

“야심한 시각에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근처를 지나치다가 사또가 계시기에 와 봤습니다.”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자신을 피해 다녀도 부족할 판에 일부러 찾아왔다는 건, 할 말이 있기 때문일 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려면 하라는 듯 빤히 바라보자 이방은 시선을 피했다. 고민이 짙은 채로 서 있던 그는 용기를 내 말을 꺼냈다.

“일전의 그 일은, 그냥 묻어 주시는 겁니까.”

“어떤 일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명월의 대답에 이방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사또의 대답이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를 파악하려 했지만, 이미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 들켜서 복운이 길길이 날뛰었을 때에도 사또는 보고만 있다가, 복운의 머리를 치면서 “시끄럽다. 사람들 다 깨게 생겼구나.”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이미 그 일을 묻어 줄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다시금 말을 꺼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면서도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은 무척 심각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명월은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 주겠다고 하는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 줬으면 싶은데. 그때 이방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를 결심한 그 눈빛을 본 명월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안 돼. 말하지 마. 성가신 일 만들지 마―!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외쳐 봐도 소용이 없었다.

한소규가 굳은 목소리를 토해 냈다.

“제겐 어린 딸이 있습니다. 그 딸이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온갖 귀한 약재를 구해다가 먹여 봤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런데도 아비 마음이 그게 아닌지라, 계속 사다 먹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이 어렵게 되어서…….”

그래서 곳간의 물건을 털었던 건가.

걱정했던 거에 비해선 별거 아닌 말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자신이 머리 아플 일은 없겠다 싶었던 명월은 너그러운 상태가 되어서 선심 쓰듯 말했다.

“그렇게나 상태가 안 좋은 거라면, 도성으로 가서 의원에게 진맥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나? 괜찮으면 내가 바로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지.”

“…… 제 딸은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괴로운 듯 중얼거린 이방 한소규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짧은 순간 왜 이런 말을 한 것인가 싶어 자책하듯 눈을 내리뜬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그러곤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황급히 멀어지는 이방을 바라보던 명월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말을 해 놓고는 못 들은 걸로 해 달라는 건 대체 뭔 심보야.”

그럴 거면 애초에 말을 하지 말든가. 자신이 신경 쓰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도 모처럼 이방이 못 들은 걸로 해 달라고 하니 그냥 한 귀로 흘려 넘겨 버릴까. 하지만 이방이 한 말과 그가 보인 태도 등이 영 거슬렸다. 덧붙여 이 고을의 분위기도 영 이상했다.

겉보기엔 별문제가 없을 정도로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런 외진 곳에 있는 고을에서 문제가 없다니. 이방이 곳간을 턴 것 외에는 탈세나, 비리의 흔적도 없었다.

누군가 착취를 당했거나, 사기를 당한 것도 없고, 큰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고, 자신이 이곳에 와 있는 한 달 동안 원 바깥에 걸어 둔 북이 울리는 일도 없었다. 그 흔한 “억울하옵니다. 소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라는 말도 한 번도 듣질 못했다. 너무 조용하니까 그게 더 수상쩍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사또 명월은 오른손을 들었다. 검은 가죽으로 덧씌워진 본인의 손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있는 동안 별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지. 뭐.”

그러니까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관아에서 기방, 기방에서 관아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나 지속하자면서 명월은 몸을 돌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명월의 주변으로 어른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집안의 제일 큰 어른들이었다. 제사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모이는 이들이 그럴 때가 아님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명월 때문이었다.

명월은 5살까진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같이 지내던 이가 ‘우리 어디 좀 가자.’라고 말하면서 손을 뻗었고, 명월은 아무 의심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다.

으리으리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큰 대문 앞에 혼자 서 있던 명월을 발견한 누군가 호들갑을 떨어댔고, 명월의 품에서 나온 편지를 보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명월은 바로 그 커다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편지 한 통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방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앉은 명월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더는 숙일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아팠다. 저들의 시선은 마치 칼날처럼 날아와 자신의 몸을 난도질 하는 것만 같았다.

‘저런 아이를 받아들이는 건 집안의 수치가 될 겁니다.’

‘누구의 배를 빌어서 태어난지도 알 수 없는 아이입니다. 천출의 핏줄이라도 타고 난 거면 어쩐답니까.’

‘혹시 압니까? 역적의 딸이었을지도요.’

‘저런 아이를 집안에 들이면 분명 조상님들께서 크게 노여워하실 겁니다. 쫓아내는 게 옳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저런 더러운 아이를 이곳에 더는 둘 수 없구려―.’

그들은 명월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잔인한 말을 해도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 거라는 듯 멋대로들 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프고 힘들지만 딱히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저 왜 그가 자신을 여기다가 버리고 간 건가 싶었을 따름이었다. 저들의 말보다 그와의 헤어짐이 훨씬 더 마음 아픈 명월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르륵, 하는 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아봤고 그건 명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려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손을 짚고는 다시 똑바로 앉으려 하는 순간, 누군가 이리로 다가왔다.

‘자, 자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건가―.’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신경 쓰지 말게나.’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명월 옆으로 온 사내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명월을 안아 드는 그의 행동에 모두가 헛숨을 삼켰다. 그건 명월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기에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진 그 외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었던 명월은 싫은 느낌이 들어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아우의 핏줄이니, 제가 거둬서 키우겠습니다.’

그 말에 움찔한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장 처음 본 건 흔들림 없는 눈동자였다. 곧고 똑바른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내, 그 순간 명월은 저도 모르게 그의 가슴팍을 붙잡았다. 어렸어도 그에게 매달려야 살 수 있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거다.

우당탕, 하고 뭔가가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명월은 눈을 떴다.

손가락만 한 부분의 벽지가 살짝 들려진 걸 확인한 명월은 인상을 쓰면서 이불 밖으로 두 팔을 내밀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했다. 그러는 동안 바깥에선 사또를 부르고 난리가 났다. 문 바로 뒤에 붙어서 불러젖히는 건지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한 달 동안 조용해서 여기가 극락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던 건가. 설마하니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손으로 귀를 막은 명월은 옆으로 몸을 돌렸다.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자고 싶었지만, 숨이 꼴딱거리고 넘어갈 것처럼 사또를 부르는 복운 때문에 그리 할 수가 없었다.

저 망할 놈. 혀를 찬 명월은 이불을 걷고 당장 몸을 일으켰다.

“뭐야.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뭐를 좀 걸쳐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남자들밖에 없는 곳에서 뭘 또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나 싶었던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바로 앞의 대청에 엎드려 있던 복운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위로 손을 뻗었다.

“사…… 사, 사또! 어서 나와 보십시오! 어서요!”

아침부터 핼쑥해져선 난리를 치는 복운을 보자니 기분 참 더러웠다.

명월은 나올 때 챙긴 등채로 복운의 머리를 꾸욱 누르면서 대청 끝에 섰다.

“시끄럽다 이놈아. 누가 들으면 내가 죽은 줄 알겠구나.”

발목이 긴 목화를 신는 것도 번거로웠던 명월은 그냥 가죽신을 구겨 신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그사이에 냉큼 옆으로 온 복운이 바깥을 가리켰다.

“어, 어서 내동헌으로 가 보십시오!”

“거기에 뭐?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라도 나타난 거냐?”

“그런 게 아닙니다. 다, 다, 닭, 닭이―!”

“아니. 뭐 이런 닭만도 못한 놈이 있나. 왜 말 하나 똑바로 못 하는 거야.”

막 일어난 터라 명월의 기분은 좋지가 않았다. 인상을 쓴 그는 되었다며 복운을 밀치고 밖으로 향했다.

대문을 지나쳐 곧장 동헌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그 앞에는 포졸들과 이방과 호방까지 와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나 싶더니, 명월이 나타나자 바로 입을 다물곤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슬슬 피하는 모습들이 그리 썩 보기 좋지가 않았다.

저놈들이 대체 무슨 꿍꿍인가 싶었던 명월은 인상을 쓴 채로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서 고개를 든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동헌의 안쪽, 그가 종종 마당을 가로지르듯 기어가는 개미를 구경할 때 앉았던 의자 위에, 모가지가 비틀어진 닭이 놓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 붉은 피가 좌악 퍼져 있는 데다가 닭의 깃털까지 잔뜩 뿌려져 있었다.

지금껏 저런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남 일처럼 여겨졌다.

“누가 먹을 걸 가지고 저런 장난을 쳤지?”

중얼거린 명월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에게 끓는 물이나 준비해 오라는 식의 농을 건넬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었다. 고을의 사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원한을 살 경우에 저런 식으로 보복을 하려는 자가 나타날 수도 있음이었다. 하지만 명월은 부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되었고, 그 동안 일을 한 적도 없었다.

이방이 곳간에서 슬쩍한 걸 제외하곤, 관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고을도 마찬가지였다. 그 평화롭던 곳에, 처음으로 사건이 생긴 거라고 볼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닭을 보기만 하자 그 옆으로 이방 한소규가 다가왔다.

“정신 나간 놈이 한 짓일 겁니다. 저희가 정리할 테니 들어가서 옷을 갖춰 입고 나오시지요.”

그 말에 명월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신을 신은 채로 대청 위에 올라서선 의자 앞으로 걸어갔다. 뒤따라온 복운이 화들짝 놀라면서 급히 쫓아왔지만, 차마 대청 위로 올라오진 못했다.

닭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재료였지만, 저런 모습으로 있으니 끔찍하기만 했다. 똑바로 보기가 부담스러웠던 복운은 치를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명월은 의자 뒤에 서선 눈을 내리떠 닭을 확인했다.

이놈도 갑자기 당한 일인지 눈을 부릅뜬 채로 있었다.

목이 반대로 돌아가서는 저리 눈을 뜨고 있으니 오싹하다.

명월은 대청 위에 뿌려진 피와 깃털, 그리고 마당 앞에 모여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죄를 지은 게 없어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들은 명월의 시선이 닿으면 바로 고개를 돌리거나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에 긴 한숨을 쉰 명월은 등채로 의자 위를 두드렸다.

“―일단은 정리부터 해야겠군.”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이방이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깨끗하게 주변 정리 좀 하고, 마지막엔 소금도 뿌리게.”

“네. 그리 하겠습니다.”

이방의 대답을 듣고 나서 명월은 바로 대청을 내려왔다.

허리에 한 손을 지고, 다른 손으로는 등채를 휙휙 돌리면서 명월이 돌아가자, 모여 있던 포졸들은 재차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불길하게 이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이야. 내가 여기서 일한 지 벌써 10년 째인데,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괴상한 사또가 오셨다 했더니, 그것 때문에 부정이 탄 게 아닌가?”

“지금 모여서 뭔 소리를 지껄여대는 것이냐. 입 다물고 정리나 해라!”

이방의 호통에 입방아를 찧던 포졸들은 급히 입을 다물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청소를 할 물건들을 챙겨 오는 동안 이방은 굳은 눈으로 의자에 놓인 닭을 바라봤다.

산에 둘러싸여서 고립된 고을치고는 꽤나 분위기가 괜찮다 싶었는데 그도 아니었다. 이제 슬슬 폐쇄적인 습성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먹는 걸 가지고 장난질이라. 너무 음험하지 않나.

이건 비단 자신에게만 타격을 입히겠다는 게 아니다. 괴이한 짓을 해서 내부적으로 분란을 일으킬 셈인 거다. 저런 일이 생겼으니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금방 소문이 퍼져 나가게 될 것이었다.

명월은 인상을 썼다.

“이방, 그놈이 수상쩍습니다.”

“…….”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본인의 추측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는 양,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는 복운을 본 명월은 혀를 찼다. 그는 별말 없이 당장 등채로 복운의 이마를 가격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복운은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픕니다! 이렇게 아프게 때리시면 어찌합니까?”

“네놈이 뚫린 입이라고 되는 대로 지껄여대니 수가 없잖으냐. 아픈 맛을 보여서 말 좀 가려서 하도록 가르침을 선사한 거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절을 해도 부족할 판에 지금 나한테 성을 내는 거냐?”

이 고약한 놈아―라면서 눈을 크게 뜨자, 복운은 움찔해선 주먹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하지만 그 이방 놈이 가장 수상쩍지 않습니까. 저번 일로 사또께 앙심을 품은 게 분명합니다.”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만 해라. 지금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느냐.”

이건 머리만 굴린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사또를 혼자 있게 해선 안 되겠다 싶었던 복운은 이마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기방엔 가지 마십시오. 암만 봐도 이상합니다. 혼자 다니시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생기겠습니다. 전에도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어서, 합―.”

너무 혼자만의 생각에 심취한 모양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 버린 복운은 당장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명월은 이미 멈춰 서선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의 구슬처럼 말간 눈동자에 주시된 복운은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복운의 모습에 명월은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에도 움찔한 복운의 고개가 조금 더 수그러든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화를 낼 기분도 사라진 명월은 되었다며 손을 휘저었다.

“가서 밥이나 준비해라. 매운 고추도 잔뜩 쌓아 오너라.”

“네, 넵! 금방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아니다. 복운은 대번에 표정이 밝아져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이 나 달려가는 모습이 커다란 개 같다. 저런 녀석이니 시끄럽게 굴어도 곁에 두는 것이었다. 명월은 뒷짐을 지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코끝에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번 일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 주면 고맙겠지만, 왜인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명월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밥을 먹고 몸을 씻은 명월은 동달이를 입고 그 위에 군복을 걸친 후, 전대를 찼다. 색감이 화사한 구군복을 다 차려입은 그는 다시 동헌으로 나왔다.

의자 위에 있던 닭은 치워졌고, 주변 정리는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자신이 나오길 기다렸던 듯, 이방과 호방이 서 있었다. 양손을 모은 채로 다소곳이 인사를 하는 그들을 확인한 명월은 대청으로 올라가 의자 앞에 서선 다리를 구부렸다.

전에도 앉았던 자리긴 하나, 비틀린 닭 모가지가 떠올라서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다리에 힘을 주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일단 앉는 데에 성공해서는 등을 기대었다. 최고급의 목재로 만든 의자이니 만큼 착석감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기분이 꿀꿀했다.

가만히 앉아 있나 싶던 명월은 발끝으로 의자 다리를 툭툭 쳐 봤다. 그러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은 명월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다 앞으로 몸을 내밀곤 이방을 바라봤다.

“의자는 깨끗하게 잘 닦았나?”

“몇 번이나 마른 걸레로 닦아 냈습니다. 만약 기분이 언짢으시다면 의자를 교체하겠습니다.”

“아니야. 그런 일 때문에 의자를 교체하면 안 되지. 원이 생길 때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분이실 텐데―.”

하지만 기분이 거시기했다. 피를 본 자리에 앉아선 안 된다는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져 온 말이니 따르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었던 명월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교체할 수 있는 새 의자가 있기는 한가?”

“말씀만 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서 주문을 하겠습니다.”

“이만한 의자를 만들 정도라면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자가 이 고을에 있던가?”

“실력이 아주 좋은 장인이 있습니다.”

실력이 좋은 장인이라.

명월은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처음 이 의자를 봤을 때, 꽤나 감탄을 했었다. 이런 대단한 물건이라니. 도성에 있는 관아에도 이만한 의자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방은 이와 같은 걸 만들 만한 장인이 이 고을에 있다 말하는 거였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분명 나이가 많은 이겠지.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 동시에 많은 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관아에만 있으면 하는 일 없이 굴러다니다가 기방이나 찾게 될 것 같았다. 곳간에 들어가 어떤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간의 기록을 살펴봐도 나쁘지 않겠지만, 오늘은 이곳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미신은 안 믿지만, 기분의 문제였다.

마음을 정한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나도 함께 가지.”

“……네?”

되묻는 이방 한소규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내는 것에 명월은 웃음이 나왔다.

“왜? 그렇게나 싫은가?”

그제야 본인의 실수를 깨달은 이방은 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싫을 리가 없지요. 그러면 있다 오후에 준비를 해서―.”

“뭐 하러 오후에 가나. 할 일도 없는데 지금 당장 가지.”

기다렸다는 양 몸을 일으키는 명월의 행동에 이방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구군복을 다 갖춰 입고 어딜 다니는 놈들을 보면 “본인이 사또인 걸 자랑하고 싶은 가 보군.” 하면서 아니꼬워 했지만, 막상 그 입장이 되자 명월도 구군복을 벗지 않게 되었다. 일단은 색감이 화려해서 보기가 좋고, 의외로 활동하기가 편했다. 등채도 손에 착 달라붙어서 좋고, 이런 모습으로 다니면서 우러르는 시선을 받는 것도 기분 좋았다.

그렇게 계속 편하게 지내다가 임기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겠다 싶었거늘,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아이구구구―.”

등채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산길을 걸어 올라가던 명월은 앓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굳이 따라오겠다며 나선 복운이 헐떡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죽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물론 산길이 가파르긴 해도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혀를 찬 명월은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그러기에 왜 나를 쫓아와?”

그 말에 기다렸다는 양 복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제가 쫓아가야지 어찌합니까. 이상한 놈도 붙어 있는데―.”

마지막 말을 덧붙이면서 복운은 명월의 옆에 붙은 이방을 흘겨봤다.

그 순간 이방의 얼굴이 불긋해진다. 비단 산을 타는 게 힘들어서 저러는 건 아닐 거다.

사또만 없었다면 당장 저 녀석을 거꾸로 매달아서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실제로도 양손을 움켜쥔 채로 노려보는 이방이었지만, 복운은 씩씩거리면서 명월의 옆으로 가 섰다.

“그 장인인지 뭔지가 정말 이곳에 있기나 하는 겁니까? 지금까지 올라온 지가 얼마인데 코빼기도 안 보인단 말입니까. 혹시, 없는 거 아닙니까?”

“이놈!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냐!”

명월이 있기도 하고, 지레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려 했지만 더는 힘들었다. 복운이라는 종놈이 한 번 치부를 알아차렸다고, 저를 이래저래 휘두르려 하는 꼴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던 이방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순간 복운 또한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아니. 뭐 뀐 놈이 성낸다더니. 지금 내게 큰 소리 칠 입장이쇼?!”

“암만 그래도 난 양반이고, 넌 종놈이다! 어찌 종놈이 내게 눈을 치뜨고 바락바락 말대꾸를 한단 말이냐?!”

“난 종놈이기 이전에 사또를 보필하는 놈이요! 우리 사또께 폐를 끼치는 잡것들이 있다면 그건 양반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소!”

복운은 이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당당하게 외쳤다.

그 순간 이방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화가 난 듯 눈빛이 매섭게 변하는 걸 본 복운은 아차 싶었다.

너무 속을 긁어댔나. 하지만 원의 곳간에 손을 댄 것만으로도 손목이 잘릴 만한 일이었다. 그걸 사또와 자신이 눈감아 준 거였다. 그걸 알면 대놓고 크게 화를 낼 수는 없을 텐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상대가 너무 열을 내니, 움찔할 수밖에 없었던 복운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사또, 하고 웅얼거렸다. 그런데 그의 유일한 믿는 구석인 사또는 벌써 저만치 앞으로 올라가 있었다.

아니. 간다는 말도 없이, 저리 혼자 가 버리면 어떻게 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복운은 이방의 눈치를 살피며 급히 몸을 돌렸다.

“사또, 저도 좀 데리고 가십시오!”

뒤뚱거리면서 위로 올라가는 복운을 노려보던 이방은 뒷짐을 진 사또를 확인했다. 저 종놈을 잡아서 호된 매질을 하고 싶지만, 사또를 보면 또 그리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속만 탈 따름인지라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면서 이방 또한 산길을 올랐다.

어느덧 명월의 옆으로 온 복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도둑놈이 저한테 성질을 부립니다. 역시 현장에서 걸렸을 때, 당장 감옥에 처넣는 거였는데 말이죠.”

“그 전에 네놈이 비명횡사하게 생겼구나. 주제 좀 알고 적당히 나대라. 이방이 이 고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유지가 아니더냐. 수틀리면 네놈 하나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오싹한 말에 복운은 몸을 파르르, 떨면서 원망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어찌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신답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사또께서 절 구해 주실 거지요?”

꼭 그리 해야 한다며 복운은 애처로운 눈으로 명월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희미한 미소를 지은 명월은 뒤를 돌아봤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복운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산길이 험하고, 길을 오른 지 오래라 이토록 힘든데도, 명월은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전립 아래로 보이는 하얗고 말간 얼굴을 감탄 서린 눈동자로 바라보자, 조금 더 짙은 미소를 지은 명월이 등채로 복운의 머리를 딱, 하고 때렸다.

“호접화도 아니면서 날 그리 보지 마라. 속이 역하구나.”

“아이고!”

이번에도 꽤 세게 머리를 맞은 복운은 양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동안 명월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마침 옆을 따르던 이방이 “꼬습구나. 이놈아.”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복운은 당장 고개를 들었다. 앞장서 가는 이방이 뒤를 돌아보면서 기분 나쁘게 웃는다. 복운은 이 씨,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이 위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뒤쪽에 있던 나무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등이 구부정하게 휜 채, 나무에 손을 짚고 선 그것은 명월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바라보다가, 바람이 부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숲 깊숙한 곳에 기거하기 때문에 따라오는 데 힘들 거라고 하더니만, 정말이었다. 처음엔 이방이 함께 가는 걸 꺼려 해서 아닌 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남짓이 걸린 데다, 산길도 워낙에 험했다. 너른 마당이 있는 오두막 앞에 도착했을 때, 복운은 숨이 턱까지 차선,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이방도 힘든 내색이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선 채로 사또 명월을 바라봤다. 그는 등채로 전립의 앞머리를 위로 추어올리면서 오두막을 살폈다.

분명 똑같이 산길을 걸어 올라왔는데도 지나치게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이방은 이번 사또가 보통내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싶었다.

목이 타서 일단 마른침을 삼킨 그는 명월에게 다가갔다.

“제가 먼저 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게.”

명월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방이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보통의 오두막보다는 훨씬 더 크고, 뒤쪽으로는 창고 겸 작업실로 보이는 너른 공간이 붙어 있었다. 오두막 옆으로 항아리도 잔뜩 늘어섰고, 반대편에는 장승도 있었다. 그냥 나무 본연의 색인 것도 있고 화려하게 칠을 해 놓은 것도 더러 보였다.

장인이라고 해서 어떤 인물인가 싶었더니, 이것저것 다 하는 건가. 개중에는 어른 허리 위만큼 올라올 거 같은 항아리도 더러 있었다. 저런 걸 옮기려면 꽤나 힘이 센 자일 터였다. 어쩌면 혼자 지내는 게 아닐 수도 있고―.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몸을 돌렸다.

고을의 정경과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걸 내려다보던 명월은 옆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에 그쪽을 바라봤다. 얼굴이 허옇게 뜬 복운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제, 제가 가서 물을 좀 떠 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무심한 대꾸에 복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마시고 싶어서 떠 오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래. 내 다 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 보아하니 저기서 물소리가 나는 것 같더구나.”

복운은 명월이 등채로 가리키는 쪽을 봤다. 마당 왼쪽으로 좁은 길이 보였다. 저기에서 물소리가 난다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복운은 그리로 귀를 기울였지만,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가 보면 알겠지 싶었던 그는 비틀거리며 그리로 향했다. 복운이 좁은 길 사이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이방이 사또, 하고 그를 불렀다.

왜 그러나 싶었던 명월이 뒤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없다?”

“네. 그렇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하지만 멀리 가진 않았을 겁니다. 이 근처에 그가 나무를 해 오는 장소가 있습니다. 제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마을로 내려간 거라면 헛걸음이 되지 않는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그냥 내려가지?”

“모처럼 사또를 모시고 왔는데 헛걸음이 되게 할 순 없지요. 게다가 그는 마을엔 거의 내려오는 법이 없는 사내입니다. 아마 그곳에 있을 겝니다.”

그래도 먹을 게 있어야 이런 데서 살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마을로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라. 괴팍한 장인인 모양이라며 단순히 생각한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이방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곤 바로 몸을 돌렸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이방을 확인한 명월은 뒷짐을 지고는 오두막을 바라봤다.

“…….”

여럿이 있을 땐 몰랐는데, 혼자 있으려니 꽤나 을씨년스럽다. 이방이 갈 때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 인간은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가자는 말을 하면 기겁을 하겠지.

이렇게 서 있어야만 하는 걸까. 가만히 있는 것도 심심하니 좀 돌아다녀 볼까 싶었던 명월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미 이방이 오두막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리로 가진 않을 거다. 지금 명월이 향하는 건 작업실이었다. 원래 색다른 곳에 오면 그 주변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기에 괜히 마음이 들뜨면서 걸음이 빨라진다.

오두막 뒤쪽으로 있는 작업실은 꽤나 넓었다. 바깥쪽으로 두 개의 용광로가 있고, 그 앞으로 만들다가 만 커다란 항아리나 깨진 것들도 더러 보였다. 제일 구석 쪽에는 거푸집과 망치 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걸 보니 철도 좀 두드리는 모양이었다.

장인이라고 해서 한 사람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이건 도저히 사람 하나가 사용할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미심쩍었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닫혀 있던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으로 커다란 나무가 깎아져서 벽에 기대어져 있거나, 통나무로 된 상태 그대로 놓인 것도 여럿이었다. 지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 동선을 고려해서 물건을 정리해 두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깥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커다란 톱이나 칼, 대패가 놓여 있는 걸 보면서 명월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가운데 쪽에 놓인 낡은 의자를 발견하곤 그리로 손을 뻗었다.

투박할 것 같은 외관과 다르게 의외로 면이 부드럽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장인이라 불릴 만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월은 의자에 앉았다. 몇 번 자세를 고치면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 아주 좋았다.

이렇게나 편안한 의자라니. 동헌에서만 쓰지 말고 방에도 하나 놓아서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싶을 정도라면서 허벅지를 두드리던 명월은 주변을 살폈다.

깊은 숲속에 있기 때문일까. 공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며 갸웃거린 명월은 다시 일어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석 쪽에는 커다란 책상이 있고, 그 위로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그 아래에 깔려 있는 나무 살들을 확인하면서 책상에 손을 올린 명월은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책상에서 손을 떼서 보니 하얀 털이 묻어 있었다. 이건 뭔가 싶어서 그걸 잡아서 눈앞에 댔다. 자세히 보니 실은 아니고, 털 같지도 않았다. 털치고는 꽤나 뻣뻣한 그것은 명월의 가운뎃손가락만 한 길이였다.

이상하다 싶어 유심히 살피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털을 든 손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손을 내려야만 했다. 벽에 걸려 있는 거대한 백호(白虎)의 가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체격이 크고 장대한 놈이었던 듯, 가죽과 얼굴만 남아 있어도 꽤나 위압적이었다. 양팔이 옆으로 펼쳐져 고정이 된 놈은 눈을 내리뜬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게 죽은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짧은 순간 저놈이 살아나서 자신을 덮치는 게 아닐까 싶었던 명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이 털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저기에 걸려 있던 놈의 털이 바람을 따라 이 안쪽으로 떨어진 거다. 괜한 것에 손댔다는 생각에, 명월은 당장 들고 있던 털을 놓고는 손바닥을 배에 문질렀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움찔했다.

바로 뒤에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하얀 도복 위에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조끼를 입고, 허리에 검은 띠를 둘러서 물통과 약초를 넣을 바구니를 매단 사내는 긴 검은 머리를 대충 푼 채였다. 검은 띠를 손목과 이마에 두른 모습이 너무도 자유분방해서 절로 ‘백정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사내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명월은 등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느리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사내를 들여다봤다.

정리가 되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꽤 준수했다. 아니. 굉장히 잘생긴 사내였다. 그 사내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명월은 숨을 삼켰다.

“…….”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거였다.

묘한 소름이 등 뒤에서부터 올라오는 걸 느끼며 명월은 등채를 더 세게 움켜쥐었고, 그에 맞춰서 사내가 몸을 돌렸다. 안쪽으로 들어간 그가 허리에 매고 있던 약초 가방과 칼 등을 빼서 탁자 위에 올리는 걸 본 명월이 물었다.

“여기서 일하는 자인가.”

이곳의 주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일하는 자라면, 난데없는 불청객의 방문이 달갑지 않을 수 있었다. 너무 안쪽으로 들어와서 서 있는 것도 상대가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데 한몫할 거라며 명월은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약초 가방을 열어서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명월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옆으로 걸어갔다.

“난 이번에 새로 부임된 신임 사또라네. 자네는 여기서 일하는 자인가.”

처음에 물은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무시를 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또 운운을 하는 거였다. 내가 사또이니 일단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니겠느냐, 라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구군복을 다 차려입은 상태라는 걸 떠올린 명월은 입맛을 다셨다.

겉모습만 봐도 자신이 사또라는 걸 알 텐데, 괜히 말을 꺼냈다. 어쩐지 지위를 내세우는 속물이 된 것 같았던 명월은 바로 멈춰 서선 사내의 행동을 살펴봤다.

그는 약초를 꺼내 확인을 하고 냄새를 맡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곤 그걸 책상 위쪽에 두고는 바로 칼을 집어 들었다. 커다란 손이 칼을 잡는 순간 명월은 어깨에 힘을 줬다.

설마하니 저걸로 날 찌르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 놀라서 눈이 살짝 커진 채로 있으려니 사내가 바로 몸을 돌려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큼성큼 걸어가나 싶더니 벽에 기대어진 나무판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 본다. 그러다가 어느 하나에 칼집을 내고는 허리를 굽혔다. 바닥에 떨어진 손바닥만 한 작은 나무를 집어 들어선 그걸 위, 아래로 살피던 이는 조금 전 명월이 앉았던 의자에 가서 바로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곤 명월을 쳐다봤다.

“여기에 앉았나?”

“…….”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한 명월은 눈을 깜박였다.

상대의 물음을 머릿속으로 한 번 곱씹어 보자,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너무 좋은 의자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사람도 없는데 너무 내가 멋대로 앉아 버렸네. 미안하게 되었네.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는 명월을 가만히 보던 사내가 고개를 숙이곤 나무를 잡고 그곳에 칼을 댔다. 사악, 하고 칼날에 베인 나무가 얇게 잘려져 나간다. 그대로 빠르게 나무를 깎아내는 모습에 명월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지워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디에 앉았다는 걸로 한 소리 듣긴 또 처음이었다.

그보다 가볍게 앉았다가 바로 일어난 건데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건가 싶었던 명월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무도 없던 곳에 사람이 왔으니 반가울 만도 하건만, 그 존재가 딱히 달갑지가 않았다. 저런 사내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면서 눈을 굴리던 명월은 일단 그 앞으로 걸어갔다. 조만간 이방이 이리로 올 테니, 그 전에 말동무나 해 보자 싶었다. 그래서 사내 앞으로 가서 무작정 서긴 했지만, 머지않아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사내는 자신은 없는 사람인양 본인이 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어찌나 정교하고 얇게 나무를 깎는지, 어색하게 서 있던 명월도 어느새 푹 빠져서 그걸 보게 되었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멈춘다. 사내는 나무에 칼을 댄 채로 고개를 들어 명월을 올려다봤다.

내가 일하는 걸 왜 지켜보는 것이냐.

그리 묻는 눈빛에 명월은 순수한 감탄을 표했다.

“자네 정말 실력이 좋군. 자네 같은 사내를 제자로 둔 장인의 실력은 볼 것도 없겠군.”

내심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기에 이런 곳에서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건가 싶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저런 사내를 제자로 둘 정도라면 본인은 오죽 실력이 좋겠는가. 이번에 새로 얻게 될 의자가 무척 훌륭할 것 같다면서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군. 장인은 바로 나다.”

“……음?”

고개를 끄덕이다말고 바로 멈추었다.

예리하게 잘 갈아진 칼날이 나무에 닿고 그대로 뒤로 밀면서 한꺼풀 벗겨낸다. 잘린 나무 살이 공중을 날아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에 맞춰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바로 이곳의 주인이지. 그리고 넌 내가 없는 곳에 함부로 들어온 불청객이고.”

이 새파랗게 젊은 사내가 장인이라고?

장인이 어떻게 생긴 자인지 소개를 받기 전이었지만, 실력이 보통 좋은 게 아니라 하니 늙은 쪽을 상상한 게 사실이었다.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내는 명월이 상상하던 그런 외형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쉽사리 당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데 사내가 재차 말했다.

“요즘 사또들은 사람 없는 집에 이리도 함부로 들어오는가. 그게 도둑과 무슨 차이인지를 모르겠군.”

이건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 좀 들어왔다고 이 무슨 취급을 받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물건을 훔치지 않았네.”

“물건을 훔치고 아니고를 떠나,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내 공간에 들어선 것 자체가 이미 잘못이다.”

“…….”

사내는 눈동자만을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안 그래도 위압감을 풍기는 사내가 입을 다물고 저리 올려다보니 기분이 언짢았다. 거기다 아까부터 시종 반말이다. 사또라는 걸 알았으면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이 아니던가. 지위를 이용해서 남을 내리누르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이 사내에겐 그게 좀 필요할 것 같았다. 명월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채로 말했다.

“난 이 고을의 사또인데, 지금 자네는 지나치게 혀가 짧은 것 같군.”

“내가 존대를 하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뿐이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새파란 애송이는 내게 존대를 들을 만큼의 그릇이 못 되는 것 같군.”

이건 정말 물건이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몸을 뒤로 물리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 용케도 오래 살았군. 그런 성격이면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해도 하나 이상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그런 놈들 먼저 저승으로 보내줬으니까―.”

별거 아닌 투로 말하지만, 농은 아닌 것 같았다.

명월은 사내의 체격과 팔, 그리고 단검을 쥐고 있는 손 등을 확인했다. 크고 단단한 손은 마디가 굵고 투박했다. 고된 일을 하는 이 특유의 느낌이 풍기는 손이었다. 성격과 실력은 별개인 건가. 그런 경우를 여럿 봐 왔던 명월은 언짢은 마음을 다스렸다.

자신이라도 허락 받지 않은 이가, 방에 들어와 물건을 만지거나 하면 불쾌할 것 같았다. 장인씩이나 되는 인물이라면 그런 폐쇄성이 더 짙을 거다. 괜히 건드리지 말고 용건이나 말하자 싶었던 명월은, 이곳으로 온 이유를 말했다.

“이번에 내 의자에 장난을 친 놈이 있어서 그러는데 의자를 새로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나?”

“어떤 장난을 친 거지?”

의외로 궁금했던 모양이다.

명월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닭 목을 비틀어서 내가 앉는 의자에 올려두었더군.”

“시집가야겠군.”

“……시집?”

시집이라니? 장가가 아니고?

짧은 순간 드는 의문에 명월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여진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명월을 보지 않은 채로, 사내가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 닭 목을 비틀어서 가능한 피를 많이 보는 거지. 구애를 받았으니, 그쪽에 시집을 가야지 화를 면하게 될 거야.”

그와 동시에 사악, 하고 칼날이 재차 나무를 베었다. 그는 벌써 몇 번이나 얇게 나무를 깎고 있었다. 저러다가 나무가 다 사라지겠거니 싶었다. 이내 명월은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 앞에 멈춰선 명월은 허리를 굽히고 그 얼굴 앞에 손을 대곤 딱, 하고 손가락을 부딪쳤다.

공기를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사내는 칼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대단한 눈이다.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명월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다가 정말 칼침 맞게 생겼어. 금방 죽으면 그 실력이 아까우니 앞으로는 입조심하게나.”

나긋나긋하게 경고를 한 후, 명월은 웃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등채로 등짝을 후려쳐 주고 싶었다. 이놈이 지금 자신의 얼굴이 계집애 같다고 우습게보고 헛소리를 하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초면에 반말을 찍찍 싸대는 것도, 자신이 약해 보이기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시집은 무슨 놈의 시집이냐. 그런 건 네놈이나 가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허리를 세우는 명월을 따라 사내의 시선이 옮겨진다. 위로 올라오는 검은 눈동자를 보던 명월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문득 사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낯설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전에도 본 적 있는 것 같은 느낌인지라 명월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자네, 나랑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나?”

“지금 나한테 시집오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 순간 명월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정말 우스웠다. 가볍게 웃음을 흘린 명월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헛소리는 자제하도록 하지.”

그러니 그쪽도 제발 이쯤 하라며 명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곳엔 자신과 적대적인 인물은 딱히 없다고 생각했거늘, 이런 산속에 처박혀 있었다. 산속에서 거의 나오질 않는다 하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마을에 있었다면 종종 마주쳤을 테고, 그때마다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렸어야 할 것 같다.

원래 이런 인간하고는 잘 맞지 않았다. 여기서 더 기분 상하기 전에 물러서자 싶었던 명월의 눈에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사내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묻어 있는 은빛 털이었다. 명월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뿔싸 싶었던 건, 자신의 손이 머리카락에 닿는 순간 바로 그쪽으로 움직이는 사내의 경직된 눈빛을 보고 나서였다. 머리카락이라고는 해도 다른 이의 손이 닿는 것 자체가 불쾌한 듯, 표정을 싸악 굳힌 채로 있는 사내를 본 명월은 애써 태연히 손을 뗐다.

“……이런 게 여기에도 묻어 있군.”

명월은 은빛 털을 집어 들고 보란 듯이 사내의 앞에 내밀었다.

안쪽에서만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게 잘도 머리에 묻어 있군.

아니면 여기서 계속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묻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숙인 명월은 사내와 시선이 부딪쳤다. 여전히 굳어 있긴 하지만, 뭔가 좀 달라진 눈빛이다. 기분이 이상했던 명월은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졌다.

“벽에 걸린 백호 말이야. 그런 멋진 건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보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긴 작업실이라 톱밥이나 먼지도 많이 생길 것 같은데, 그런 멋진 놈은 더 정성껏 보관해야지 대대손손 복을 받지 않겠나.”

아무리 좋은 털이라 해도 이런 지저분한 곳에 걸어 두면 금방 엉망이 될 거다. 딱 봤을 때 깔끔했으니까,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놈이었다. 놈의 멋진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거든 보관도 잘하라는 뜻에서 꺼낸 말인데, 사내의 눈빛은 여전했다.

뭔가 좀 묘한, 이상한 걸 보는 듯한 눈빛을 읽은 명월은 결국 참지 못하고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재미있는 자가 나타났구나 싶어서 그러지.”

“…….”

재미라. 물론 자신은 재미있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저런 말은 시커먼 사내가 아니라, 어여쁜 여인에게 듣고 싶었다.

그래. 예를 들어선 호접화 같은……. 거기까지 생각하던 명월은 아차 싶었다. 정말 뜬금없지만 호접화하고 이 사내의 눈매가 묘하게 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이 든 거다. 그 꽃 같은 여인하고 이 거친 사내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다니. 내가 이상해진 건가.

명월은 팔을 내렸고, 동시에서 바깥에서 복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어디에 계십니까?”

다급한 그 목소리에 명월은 잠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에 맞춰서 사내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사내를 쫓으려니, 바로 복운이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조롱박을 양손으로 든 채인 복운은, 명월을 보자마자 그제야 안심이 되어 환하게 웃었다.

“왜 이런 곳에 계십니까. 한참을 찾았습니다.”

복운은 당장 명월 앞으로 달려와 들고 있던 걸 내밀었다.

“물 좀 드십시오. 여기 물이 아주 시원하고 맛이 좋습니다.”

조롱박 안에는 물이 딱 절반만 채워져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들고 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 소리를 하게 된다.

“어디서 놀다 왔기에 이렇게 늦은 거냐.”

그러자 복운은 진정 억울해하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놀다 오기는요. 가라는 곳으로 갔다가 한참을 헤맸습니다. 우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게다가 근처에 사당도 있어서 분위기가 어찌나 을씨년스럽던지―. 여기 이 바가지에 물을 담고 힘들게 돌아온 겁니다. 우리 사또 목 좀 축이게 해드리려고요.”

“필요 없다. 이놈아.”

명월은 바로 몸을 돌려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당장 나가 버리고 싶었지만, 사내의 머리카락에서 집은 하얀 털을 원래 있던 자리에 두자 싶었다. 이미 떨어진 털이었지만, 차마 아무데나 버릴 수도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영험하게 느껴지는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재차 벽에 걸린 백호 가죽 앞에 선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백호의 얼굴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믿음직스럽진 않아도 복운과 함께라서 그런지 한결 편안하게 백호를 볼 수 있었던 명월은 한숨을 쉬며, 그 빳빳한 털에 손을 올렸다.

“네 털이 여기저기 잘도 묻어 있구나.”

그러곤 들고 있던 털을 그 사이에 밀어 넣었다. 하얀 털을 토닥이곤 손을 떼면서 뒤로 물러서자 복운이 의아한 투로 물었다.

“병든 닭마냥 뭘 그렇게 중얼거리십니까?”

그 말에 명월은 뒷짐을 진 채로 복운에게 걸어가며 한소리 했다.

“저기 벽에 걸린 백호 좀 보고 배워라. 저놈은 죽어서도 저렇게 묵직하니 멋스러운데, 네놈은 왜 이 모양이냐.”

“아이고, 백호가 어디에 있다고 그러십니까?”

명월이 휘두르는 등채를 용케도 피하면서 복운은 투덜댔다. 그 말에 명월은 걸음을 멈췄다.

싸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짧은 순간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복운을 보고 난 후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여전히 백호의 가죽이 벽에 걸려 있었다. 명월은 천천히 손을 들어 백호 가죽을 가리켰다.

“저게 보이냐?”

복운은 생뚱맞은 명월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그가 물은 게 있으니 대답을 하는 게 옳았다. 복운은 명월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했다.

나무가 쌓여 있는 곳 사이로 나무 벽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벽뿐이었다. 달리 뭔가가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까 명월이 벽을 두드리며 혼잣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보였던 거다.

하지만 벽을 보자고 이런 걸 묻는 건 아닐 테고―.

머리를 긁적인 복운은 조금 더 앞으로 가서 벽을 보다가 명월을 흘깃 돌아봤다. 그리고 벽을 가리키는 명월의 손을 봤다. 손톱이 조금 길다. 그 순간 복운이 헤죽거리고 웃었다.

“사또, 손톱 정리 좀 하셔야겠습니다.”

처음엔 무표정으로 있던 명월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그는 들고 있던 등채를 휘둘러서 복운의 머리를 쳤다. 이번엔 피할 수 없었던 복운은 악,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픕니다―라면서 징징거리는 복운을 두고 명월은 당장 밖으로 나왔다.

마당 가운데에 이방과 함께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방이 나오는 명월을 보곤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그를 가리켰다.

“인사드리게. 이번에 새로 오신 사또시네.”

그러자 바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으로 힘이 들어간다. 굳은 눈빛을 한 채로 바라보는 명월을 내려다보나 싶던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사내는 명월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

다시 고개를 든 사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조금 전과는 영 딴판인 태도에, 명월의 안색이 굳어진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이방은 그에게 맡길 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이번에 만들어야 할 의자는 여기에 계신 사또께서 사용하게 되실 거네. 원래는 나 혼자 오려고 했는데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셔서 함께 온 것이니, 그만큼 신경을 써서 잘 만들어 주게. 자네 실력은 믿네만, 그래도 잘 부탁하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만든 것들 중에서 허튼 게 있었습니까.”

“없었지. 그건 내 잘 알지.”

이방은 재차 명월을 보곤 “이자에게 맡기면 분명 사또 마음에도 드실 겁니다.” 라고 말했다.

일을 함에 있어 동헌에 있는 의자는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의자를 편안하게 잘 만들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명월은 이 사내가 참으로 껄끄러웠다. 아까와 달리 웃으면서 자신을 처음 보듯 구는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더러웠다.

젓가락을 들어서 상에 대고 올리나 싶더니 다시 내린다. 그러는 동안 명월은 내내 굳은 얼굴이었다.

술상을 받아서 다들 모인 지도 벌써 2각이 지났다. 그럼에도 사또 명월은 술 한 잔을 비우기만 할 뿐, 아까부터 혼자서 젓가락 장난 중이었다. 모처럼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던 기생 자희는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호접화가 없는 틈을 타 젊고 아름다운 사또의 마음을 빼앗을 수도 있겠거니 싶었는데,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으니 애가 탄다. 그냥 뒤에서 끌어안을까. 아니면 옷고름을 먼저 풀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아주 노골적으로 명월의 얼굴을 감상했다.

다른 명문가 자제들처럼 단정한 청빛 도포를 두르고 검은 삿갓을 눌러쓰고 있으니 훨씬 더 어려 보인다. 피부가 뽀얀 것이, 얼굴을 가까이 붙이면 솜털도 보일 것 같았다. 그걸 정말로 가까운 데서 보고 싶었던 자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용기를 내서 확 덮쳐 버릴까.

그때 명월이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잔을 들어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게 기회다 싶었던 그녀는 바로 술병을 들었다.

“사또, 한 잔 더 드시지요.”

“호접화는 아직이더냐.”

내내 말이 없다가 하는 소리가 고작 저건가 싶었던 자희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서린다. 정말 너무한다며 원망이 담긴 시선을 보내 봐도 명월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그 매정한 모습에 자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께선 다른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전부터 약속이 되었던 자리인지라 오늘은 빠져나오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것 참 곤란하군.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것이 뭡니까.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접화에게서 젊고 아름다운 사또의 옆자리를 빼앗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명월을 바라봤다. 대단히 의욕 넘치는 그 모습에 명월이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몸을 물렸다. 각진 베개 위에 한쪽 팔을 올린 채로 비스듬히 앉은 그는 자희를 흘깃 봤다.

“정말 뭐든지 대답해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형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꽤나 많은 걸 알고 있답니다.”

“그러면 저기 산속에서 홀로 지내는 장인에 대해서 아나?”

“알고말고요. 그이가 만들어 주는 빗이 저희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인데요. 지금 제가 사용하는 빗도 그 사람 거랍니다. 그리고 이 비녀도 그이가 만든 것이지요.”

자희는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정성껏 땋아 올린 머리에 나비로 조각이 된 장신구가 달려 있었다. 이리 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 특별하고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절로 호오, 하고 감탄사를 흘리는 명월의 반응에 자희는 괜히 뿌듯해져선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값어치를 하다 보니 물건만 들고 오면 그 자리에서 다 팔린답니다. 호접화 형님도 그이에게서 몇 개나 사셨는 걸요.”

호란 제일의 미녀인 호접화는 분명 안목도 높을거다. 그녀가 사는 물건이라면 정확하겠지.

그 순간 명월은 산속 그 장인의 눈매가 누구와 닮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호접화였다. 분위기나 얼굴 생김새는 다르나, 사람의 속을 읽는 듯한 그 눈빛은 분명 닮아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더 비슷한 것 같다면서 명월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이 중요한 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본인의 아둔함을 탓하면서도 명월은 일단 차분하게 순서를 밟아 가자 싶었다. 그래서 자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넌지시 말을 건넸다.

“호접화랑 그 장인이랑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던 것 같던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꼽추 노인하고 저희 형님이 어찌 닮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순간 명월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꼽추 노인이라고?”

“네. 꼽추 노인이요.”

“…….”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더니 그의 입이 꾸욱 다물렸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듯도 한 그 얼굴을 본 자희는 왜 그러나 싶어 그를 바라봤다.

지금 명월은 머릿속이 무척 복잡했다. 그가 본 장인은 젊고 단단한 몸을 지닌 매력적인 사내였다. 미녀 호접화와 눈매가 닮았으니, 미남자라 할 만했다. 그런 그가 등이 굽었던가. 아니. 그의 등은 똑바로 펴져 있었다.

이럴 수가. 가슴 한편이 선뜻해지는 걸 느끼며 명월은 차분히 물었다.

“장인이 꼽추 노인이란 말이냐.”

“그럼요. 실력에 비해선 외모가 별로인지라 그 나이가 되고도 아직 총각이랍니다. 하긴 저라도 그런 남자하곤 살고 싶지 않습니다. 뭐……사또 정도의 남자분이시라면 또 모르겠지만―.”

자희는 용기를 내 넌지시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 순간 눈을 가늘게 뜬 명월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곧바로 상을 넘어 앞으로 걸어가는 것에 당황한 자희가 그리로 손을 뻗었다.

“어, 어딜 가십니까?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으니 다시 앉아 주십시오.”

자신이 마지막에 한 소리 때문에 사또가 화가 나 일어난 거라 생각하는 자희의 안색은 해쓱하게 질렸다. 갈 땐 가더라도 오해는 풀어야겠다 싶었던 명월은 자희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볼일이 생각나 이만 가 봐야겠군. 실례하겠네.”

그 말을 남기고 명월은 미련 없이 밖으로 나갔다. 분합문이 닫히는 순간 자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선 자신의 가슴을 매우 쳤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쓸데없는 소릴 해서―.”

덕분에 사또를 모실 수도 있었던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냐면서 자희는 제 가슴을 치고, 또 쳤다.

밖으로 나오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금 타는 소리가 들렸다. 간간히 사내들의 좋다, 같은 추임새 섞인 소리를 들으며 명월은 기방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앞문으로는 다니는 사람이 많을 테니,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갈 셈이었다.

낮에는 구군복을 갖춰 입고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건만, 밤이라서 그런지 괜히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 같았던 그는 삿갓을 잡아 내렸다. 그렇게 계속 걸음을 옮기던 그의 귓가로 물소리가 들렸다. 청명한 그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아담하게 꾸며진 연못 주변으로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달빛을 받아서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주변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것 같다. 잠시 그것에 시선이 빼앗긴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오늘 낮에 본 그 사내를 떠올렸다.

분명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백호의 가죽은 그렇다 치더라도, 산 사람과 죽은 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눈매를 봤을 때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건, 그가 호접화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 넓은 땅덩이에 닮은 사람 하나 정도 없진 않을 테지만, 묘한 분위기까지 흡사하니 그들이 남매가 아닌가 싶어서 물었던 거다. 그런데 나온 대답은 그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

“꼽추 노인이라―.”

혹 바깥으로 물건을 팔 때에는 다른 이를 시키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다들 그를 꼽추 노인으로 오해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다. 이방은 그 사내를 보고서 바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가. 거기다 그곳에서 일하는 건 본인 한 사람뿐이라고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가 귀신에 홀린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때 뒤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명월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등 뒤에 서 있는 호접화를 발견하곤 입을 벌렸다.

“이런 곳에서 무슨 생각을 그리도 깊이 하십니까.”

그리 물으며 다가오는 호접화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환한 달빛을 받아서일까. 그녀의 깊고 그윽한 눈매가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던 명월은 잠시 그녀의 외모를 감상했다. 그러는 동안 명월의 옆에 와서 선 호접화가 그를 올려다봤다.

“이런 늦은 시간까지 기방에 남아 계시다니. 드문 일이로군요. 언제나 늘 해초시가 되기 전에 들어가셨잖습니까.”

그랬다. 날이 저물고 더 깊어지기 전에 자리를 뜨곤 했다. 혈기왕성한 사내치고는 이상할지도 모르는 행동으로 비춰지겠지만, 늦은 밤까지 밖을 다니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시간이 더 늦어지면 이상한 것들이 다니기 시작하니까, 그 전에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앉아 있는 거요.”

말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게 아닐까. 이런 말을 해서 자신이 겁쟁이처럼 여겨지는 건 싫었다. 자연스럽게 호접화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그녀는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시종 똑같은 얼굴로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이만 들어가십시오. 이 고을에선 너무 늦게 다니시면 좋을 게 없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에 취해서 말을 가벼이 흘러 들을 뻔했다.

이 고을에서 늦게 다니면 좋을 게 없다는 말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한 게 아닐까 싶었던 명월은 입을 열었다.

“호접화. 자네에게 피를 나눈 혈육이 있던가.”

호접화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곤 바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제 혈육은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미안하네. 쓸데없는 걸 물었어.”

바로 나오는 사과의 말에 호접화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진다. 눈을 가늘게 휜 그녀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올라간 눈꼬리가 가늘게 접히면서 지극히 아름다운 미소를 남긴 채로 그녀가 몸을 돌렸다. 낭창한 몸을 흔들면서 멀어지는 걸 바라보던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밤하늘 가득히 달이 떠올라 있었다.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명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늦어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오른쪽 손바닥에 붕대가 감겼다. 이게 뭔가 싶어서 만질라치면, 그가 그러지 말라는 양, 자신의 손을 치워내고 검은 붕대가 제대로 감겨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가 보기에 제대로 감겨 있는 것 같으면 그는 웃으면서 ‘됐다.’고 말하곤 했다.

그 되었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버지 댁에 자신을 버리고 갈 줄 알았다면, 그 전에 물어볼 것을.

왜 자신은 오른손에 검은 가죽을 쓰고 있어야 하는 건지를.

그리고 왜 자신의 눈엔 이상한 게 보이는 건지를.

흔히들 이 세상엔 살아 있는 사람만큼의 귀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매번 이 눈에 그런 것들이 다 보이는 건 아니었다. 안 보고 넘어갈 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보인다.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다 계속 암시를 걸어야지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대낮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밤이 되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게 된다. 아무래도 음의 기운이 세지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오늘 낮에 이상한 것과 마주쳤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진 걸 수도 있었다. 사악한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흩트린 거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더 이상 그런 것들에게 현혹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잘 해 오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이제 와 수틀리게 할 순 없다면서 명월은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본인은 제대로 길을 찾아 걷는다 생각했는데, 어느덧 길을 헤매게 되었다. 여기였던 것 같아 그리로 가면 전혀 다른 길목이 나타났다. 다시 되짚어서 올라가면 조금 전의 그 장소가 아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중얼거린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둑한 길가에 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산속에 감싸인 고을인지라, 해가 더 빨리 지고 어두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혼자 길을 찾아 관아까지 가려고 했던 게 실수였던 걸까. 기방에서 사람을 하나 골라 안내를 부탁했어야 했는데―.

당혹감을 느끼며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기방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다시 되짚어서 올라가 볼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천천히 가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은 자신이 당황해서 길을 헤매는 것일 뿐이라며 명월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다 어둠에 감싸인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한 번 정리했기 때문일까. 거짓말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한결 깨끗하게 눈에 들어오는 걸 느끼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었다. 가다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아무 집이나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면 되었다. 다음 날 바로 실없는 사또로 소문이 나게 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일단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며 명월은 흔들림 없이 주욱 걸어갔다.

그때 반짝거리는 작은 빛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걷던 걸 멈춘 명월은 빛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반짝거리는 것이 마치 저를 따라오라는 듯 움직인다.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본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또한 미물의 함정일 수도 있었다. 저런 걸 따라갈 게 아니라 관아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도 왜인지 모르게 명월은 빛을 쫓아 움직였다.

반짝거리는 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진 건 어떤 기와집 앞이었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여긴 어딘가 싶었던 명월은 팻말 앞으로 걸어가 봤지만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싶었던 그는 계단 위에 서선 팻말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 동시에 대문이 열리더니 거기서 누군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헉!”

막 나온 이도 그렇고, 팻말 앞에 서 있던 명월도 놀라서 둘은 동시에 마른 숨을 토해 냈다. 명월 같은 경우는 정말 놀라서 중심을 잃고 계단에서 떨어질 뻔한 걸, 가까스로 버텼다. 벽에 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들자 그 순간 사내가 당장 달려들었다.

“이놈! 도둑인 거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서성거려?!”

“헉, 자, 자자잠깐 기다려 보게! 난 도둑이 아니라네!”

사내는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양 명월의 멱살을 잡아 세게 흔들었다.

“이 세상에서 도둑이 나 도둑놈입니다, 하고 말하는 거 봤냐?! 이 도둑놈아!”

“그러니까 도둑이 아니래도! 나는 이 고을의 신임 사또란 말이네!”

“네놈이 신임 사또면 나는 정승이다! 이놈아!”

아니, 난 정말로 사또라니까!

억울해서 해명하고 싶어도 멱살이 너무 세게 잡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내가 시끄럽게 굴었기 때문일까. 안쪽에 술렁거리면서 “무슨 일인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더 많은 사람이 나올 모양이었다. 그건 무섭지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명월은 이를 악물곤 사내의 손목을 잡아 세게 힘을 주었다.

“아이고오―!”

명월이 멱살이 잡힌 채로 흔들면 흔드는 대로 꼼짝을 못하자 우습게 봤던 사내는 손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죽는 소리를 냈다. 간신히 사내의 손목을 떨어뜨린 명월은 뒤로 물러나면서 크게 외쳤다.

“난 정말로 이 고을의 사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또?”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던 명월은 반가운 마음에 당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얼굴을 확인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횃불을 한 손에 들고 나온 이는 명월, 그가 익히 잘 아는 인물이었다.

이방 한소규는 정말 놀란 듯 멍하니 명월을 보다가 그 앞으로 내려왔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방, 자네의 집이 여기였나?”

묻는 말에 이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제야 명월이 진짜 사또라는 걸 알게 된 사내의 얼굴은 죽상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양 얼어붙은 사내를 두고, 명월은 이방 한소규와 그가 나온 집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좋은 집에서 사는구먼.”

지금 상황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이방은 저도 모르게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무척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그렇게 둘은 오랫동안 눈을 끔벅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이방으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재물은 좀 챙겼거니 싶었지만, 그래도 집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대문도 그렇고 마당도 넓고 집채도 여럿 있었다. 곳간에서 빼돌린 게 한두 번이 아닌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무렵, 문이 열리고 여인이 음식상을 들고 들어왔다.

고운 미모를 지닌 여인이 입은 복식은 깔끔하고 단아했다. 그래서 그녀가 이곳의 종이 아니라 이방의 안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던 명월은 바로 앞에 놓이는 상을 두고 인사를 했다.

“일부러 챙겨 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편히 음식을 드시라며 여인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고, 명월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상을 받아서 보니 음식은 소박해도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그걸 보고 난 후 주변을 둘러보자, 방 또한 낡았지만 깔끔했다.

으리으리한 건 외관뿐, 내부는 검소했다. 정말로 뒤로 빼돌린 게 있다면 집을 이렇게 꾸미진 않았을 테지. 한 번 더 연유를 물어야겠다면서 명월은 눈을 내리떴다.

그러다가 조금 전 멱살을 잡힌 일로 의복이 엉망이라는 걸 확인하곤 바로 그곳을 정리했다. 그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이방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명월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선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또께 무례한 짓을 한 놈은 제가 크게 경을 칠 것입니다. 오늘은 날이 어두워서 말로써 꾸짖고 내일 아침에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모르고서 그런 일인데 뭐하러 처벌을 하나.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행동을 취했어. 그런 걸 보고 도둑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혼내지 말고, 집을 잘 지킨 것이니 상이나 주도록 하게.”

명월의 말에 이방은 고개를 들었다.

지금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싶은 양, 안색을 살피자 명월이 눈을 끔벅거린다. 왜 그러냐고 묻는 눈빛에 이방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 말하는 이방의 얼굴은 칙칙했다. 비단 방 안의 불빛 때문에 그리 보이는 건 아닐 거다.

바로 앞에 가벼운 음식상이 놓여 있었지만,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금 전 호란에서 나오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려 봤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연약한 불빛의 인도를 받아 여기까지 왔지. 그건 반딧불 같은 게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꽁꽁 싸매고 용하게 감춰왔던 걸 여기서 드러낼 순 없었다. 낮의 장인 일도 그렇고, 닭도 그렇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낫겠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모르는 척을 한다고 해서, 과연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일이 조용하게 넘어갈 것인가. 어쩌면 이를 시작으로, 더 많은 일들이 앞으로 팡팡 터질 것만 같은 싫은 예감이 든다. 괜한 생각이었으면 싶지만, 대게 이런 예감은 맞아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때 이방이 몸을 일으켰다.

“제가 있어서 편히 음식을 드실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자네―.”

이방이 일어섬과 동시에 명월이 고개를 들었다.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었던 이방은 달리 할 말이 있는 거냐는 듯 다시 앉아서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일단 이방을 부르긴 했지만, 여기서 달리 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갈 사람 괜히 부른 건가 싶었을 때 역시나 그 불빛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한 그 빛이 너무도 덧없게 느껴져서 마음이 쓰인다. 그것은 분명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고 있었다.

명월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자네 딸이 많이 아프다지?”

그 순간 이방의 안색이 변한다. 굳은 얼굴이 된 그는 명월을 경계하듯 바라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자네가 믿을지 모르겠네만, 내 도성에 용한 이를 알고 있네. 딸의 증세가 어떤지 보여 주면 자세히 살핀 후에 그 사람에게 말을 넣어 주겠네. 그러면 나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용한 이를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이 말엔 살짝 거짓이 가미되어 있었다. 다른 이가 아니라, 자신이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명월은 이방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갑작스러운 제의가 얼떨떨했던 것인지 바로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다문 채로 있었다. 곤란함이 역력한 그 얼굴을 바라보던 명월이 괜찮네, 라고 말했다.

“무엇을 보더라도 말하지 않을 거네. 이미 자네는 내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있지 않나.”

곳간의 일은 크게 부풀리면 나중에 처리하기 귀찮아질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거였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실제로 마지막 말에서 넘어간 것인지 이방은 고민을 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 딸이 앓고 있는 병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내 나이는 어리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듣고 본 것들이 많아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다네.”

“……이 일은 비단 제 딸의 일만이 아닙니다.”

이방의 말에 명월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비단 이방의 딸과 관련된 일만이 아니라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시고 여길 떠나는 게 사또의 복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제 딸을 보셔야겠다면―.”

“내 자리에 모가지가 비틀린 닭이 있지 않았나. 거기서부터 난 이미 이곳 일에 휘말린 느낌이 들었네. 틀린가.”

중간에 말을 자르고 내뱉은 그 말에 이방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조금 더 고뇌의 기색이 짙어진 그는 긴 한숨을 내쉬나 싶더니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그런 의미였다. 언제 갑자기 그의 마음이 변할지 모를 일이었기에 명월은 냉큼 몸을 일으켜 이방의 뒤를 따랐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왜인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주먹으로 뺨을 닦아 낸 명월은 가죽신을 신고 이방의 뒤를 쫓았다.

조금 전까지 망설이던 게 언제였느냐는 듯 이방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한 형색인지라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일단은 조용히 뒤를 쫓았다.

커다란 안채를 지나쳐 몇 개나 되는 문을 통과해서 도착하게 된 곳은 작은 사당이었다. 사당처럼 보이는 건지, 정말 그런 용도로 쓰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의아해하던 명월은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한소규의 행동에 숨을 죽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바라보는 명월을 확인한 그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제가 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 속에는 명월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가 저런 말까지 하니 점점 더 궁금해진 명월은 그저 웃었다.

“괜찮네. 내가 청을 한 일이니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절대로 자네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겠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방은 먼저 계단을 올라서선 분합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대청 없이 바로 문이 나 있었기에 신만 벗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명월이 가죽신을 벗는 것에 맞춰서 이방이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 일이세요. 아직 사또께서 계시잖아요.”

안에서 흘러나오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명월도 뒤따라 들어갔다.

먼저 들어서는 이방만 보고 있었던 여인은 뒤이어 나타나는 명월을 보곤 크게 놀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입을 막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싶었던지 그녀는 이방을 올려다봤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괜찮네. 별일 없을 테니 자네는 잠시 나가 있게.”

나가 있으라는 말에 여인은 바로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녀가 잡은 것은 이불 위에 누워 있던 어린 소녀였다. 이제 갓 12살이나 되었을까. 불빛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하얗고, 곱상하게 생겼다. 아직은 부모의 품에서 웃고만 있어야 할 앳된 소녀가 지금은 지친 듯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은 잠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이상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명월은 일부러 벽을 보고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방은 제 부인에게 나가 있으라며 재차 눈짓했다. 그러자 여인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하며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이방은 혀를 찼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니 그만 하고 나가 있게.”

여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뚝 떨어지는 걸 본 이방이 재차 한소리 하려 할 때 명월이 뒤로 손을 뻗어선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움찔한 이방이 입을 다물고 뒤를 돌아보자 명월이 여전히 벽을 본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미의 애타는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녀가 알아서 진정하고 나가 주기를 기다리는 게 우선이었다. 억지로 나가라고 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명월이 하는 행동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 전해진 듯했다.

이방은 입을 다물었고, 여인은 그런 둘을 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방이 계속해서 큰소리를 쳤다면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명월이 중간에서 그걸 막아 준 거다. 그걸 느낄 수 있었던 여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물을 닦아 낸 그녀는 양손을 모으곤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당치도 않다며, 명월은 그제야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오. 내가 쓸데없는 청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구려.”

“아닙니다……. 말씀 나누시지요.”

여인은 재차 고개를 숙이곤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고 난 후 명월은 목 바로 위까지 올라온 한숨을 삼켰다. 중간에 딱 멈추긴 했지만, 그 마음을 모르진 않았던 이방이 재차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명월은 쓰게 웃었다.

“그런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거니, 너무 그러지 말게.”

미안해할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상대가 연거푸 말하면 이쪽이 얼마나 민망한지 모른다. 그런 느낌으로 바라보는 명월을 두고 이방은 아래를 가리켰다.

“이런 모습이라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제 딸입니다.”

그 소개에 명월은 아까보다 조금 더 자세히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두 번 봐도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남인 자신이 봐도 이런데 부모는 오죽하겠는가. 소녀에게서 시선을 뗀 명월은 방 안을 둘러봤다. 분명 사당이었을 것 같은 곳을 방으로 고쳐서 이곳에 소녀를 둔 것 같다. 이런 상태를 다른 이들에게 보일 수 없으니 이런 델 만들어서 몰래 간병을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방은 바닥을 가리키며 앉기를 청했지만, 명월은 뒷짐을 진 채로 방을 둘러봤다. 소녀의 주변을 느리게 걸으면서 마지막으로 오른쪽 위에 달린 창을 확인하곤 그리로 손을 뻗었다. 열지 않은 지 꽤 되었는지 빡빡하다. 그래도 손으로 힘을 줘 밀자, 먼지가 떨어진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창을 더 열자, 잠시 눈앞에서 반짝이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아, 역시나 이것 때문에 부른 거로구나.

그제야 명월은 자신을 부르던 불빛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창을 반쯤 연 채로 손을 내린 명월이 바깥을 내다보는 모습은 진지했다. 처음엔 그가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리 진지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달리 말을 건넬 수 없었던 이방 한소규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갑자기 몸을 돌린 명월이 소녀의 옆에 앉았다.

곧장 소녀의 손목을 잡아서 맥 위에 손가락 두 개를 올리는 행동에 이방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그는 일단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선 명월이 하는 걸 지켜봤다. 소녀의 맥을 잡아 본 후에 명월은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깨우면 일어날 수 있는 겐가?”

“……올해 들어서 제 딸아이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올해가 벌써 네 달이나 지났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달 동안 눈을 뜨고 일어나 앉지 못했다니.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죽 같은 걸 먹이고 용변은 알아서 전부 대신 처리해 주는 거겠지. 그 뒷바라지는 모두가 아픈 딸을 둔 부모의 몫일 터였다. 고되고 힘들겠지만, 차라리 몸이 힘든 편이 나았다. 딸이 언제 눈을 뜰지 알 수가 없어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보통 아파선 이리 될 수 없음이었다.

“아픈 게 아니라, 다른 뭔가가 있는 거로군. 그게 뭔가.”

명월의 물음에 이방 한소규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차마 그건 말할 수 없다는 양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명월이 몸을 일으켰다.

“말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알아보지.”

“사, 사또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당황한 이방이 붙잡으려 들기도 전에 명월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뺨을 건드리는 바람이 차다. 기분 나쁜 걸 느끼면서 명월은 건물을 지나쳐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뒤쪽으로 막혀 있는 문을 발견하곤 그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다른 때라면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이번엔 그쪽을 주시한 채로 곧장 걸어갔다.

전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모르는 척 넘기곤 했지만, 이번엔 그리 되지가 않았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아이는 너무 어렸다. 그런 아이가 이런 식으로 죽어 가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문 앞에 도착한 명월은 닫힌 곳을 노려봤다.

자물쇠가 걸린 곳, 그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조금씩 스며들어 온다.

느낌이 싸하다 싶더니 어느새 여기까지 들어오려는 모양이라면서 인상을 쓴 명월은 발을 들어 그걸 꾹 눌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소리가 튀면서 빠르게 사라진다. 여전히 문을 발로 누른 채로 명월은 힘주어 말했다.

“들어오지 마라. 이 부정한 것들.”

지금 이 목소리가 들린 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일 덕분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싶기도 했다. 가라앉은 눈으로 닫힌 문을 살피던 명월은 발을 떼곤 몸을 돌렸다. 그러자 저기 앞에 서 있는 이방이 보였다. 손을 마주잡은 채인 그는 불안한 눈으로 명월을 바라봤다.

“……무엇을 하신 겁니까?”

남들 보기에 이상한 짓을 한 것뿐이었다. 어렸을 땐 그것 때문에 여러 말을 들었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좀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결국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 여기에 있을 날이 많이 남았는데, 자신이 무모한 짓을 하는 게 아닐까도 싶지만 이미 해 버린 일이다.

이방 앞으로 걸어간 명월은 뒷짐을 진 채로 물었다.

“자네 딸이 아픈 이후로 계속 이곳에 있었던 건가.”

명월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당장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이방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군. 자네 딸이 여기에 있다는 게 알려진 모양이네.”

그 순간 이방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거나, 미친놈 쳐다보듯 하는 게 정상인데 이방은 바로 감이 온 듯 반응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명월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이 보이는 이상한 모습도, 이자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겠구나 싶었던 거다.

멍하니 명월을 바라보던 이방은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고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쥐어짜냈다.

“이 고을에서 제 딸을 숨겨 둘 장소는 여기밖에 없습니다.”

“지금 바로 짐을 챙겨서 관아로 들어오게.”

이방 한소규는 정말 놀라선 헛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관아로 데리고 와, 내 옆방에 두게나.”

“……사또.”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진 이방을 두고, 명월이 누차 말했다.

“가만히 두면 분명 죽을 거야. 나보단 자네가 그걸 더 잘 알 것 같군.”

지친 모습으로 서 있던 이방 한소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은 모든 걸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전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말하라고 했나? 자네 딸을 데리고 관아로 들어오라고 했을 뿐이야. 아직 어린 처자이니 이상한 소문이 돌면 안 될 것 같으니 은밀한 시각을 이용하라고 하는 거고. 설령 나중에 이상한 말이 돈다면 그땐 곳간에 있는 귀한 약재를 외부로 유출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안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는 거라고 하면 되네. 왜 그렇게까지 자네 딸을 챙기는 건가, 하고 말이 나오면 자네가 내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면 되겠고.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결국엔 자네 딸이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지.”

시종일관 차분한 명월의 태도에 이방은 멍하니 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저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저 아이를 옮기지 않으면 며칠을 버티지 못할 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그의 결단을 도와줄 만한 말이었다.

“난 먼저 돌아가 있을 테니, 사람들 눈 조심해서 바로 옮기게나.”

난 기다릴 테니 서둘러라, 그런 여지를 남기고 명월은 이방을 지나쳐 갔다. 옆을 스쳐지나갈 때 이방의 어깨로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는 결국 말이 없었다. 그가 붙잡거나 안 된다고 하면 일이 더 복잡해졌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이라며 망설임 없이 대문을 나가려던 찰나, 명월은 그대로 멈추었다.

갑작스럽게 그의 얼굴이 굳어진다. 무척 진지한 얼굴이 된 명월은 위로 든 발을 천천히 내리곤 바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이방에게 걸어갔다. 양손을 움켜쥔 채로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 있던 이방은 돌아오는 명월을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이방 앞으로 걸어간 명월은 눈에 힘을 줬다. 심각한 그 얼굴에 이방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명월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사람 하나만 붙여 주게. 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군.”

“…….”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멋지게 나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시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편히 쉬고 싶었고, 헤매는 건 이젠 사양이었다. 부끄러움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입을 다물고 빤히 바라보는 명월을 두고 이방은 사람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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