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2/32)

2장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칠흑 같은 어둠이 감싸인 곳에 나무로 된 탁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무언가를 조각하는 사내의 얼굴은 진지했다. 제대로 묶지 않아서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잘 다듬어지지 않아, 마치 짐승의 그것 같았다.

바람조차 스며들어 오지 못하는 곳에서 사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떨어진다. 공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얇은 소리를 내면서 조각에 열중하던 사내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작업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던 꼽추 노인은 그런 사내의 시선에 고개를 숙이곤 안쪽으로 들어가 담요를 집어들었다. 이내 뒷걸음질을 치고 밖으로 나간 노인이 문을 닫는 순간 사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몇 번 더 칼질을 하면서 조각을 하나 싶더니, 행동을 멈추고 지금까지 본인이 깎던 걸 눈앞으로 들어올린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걸 살피더니 이윽고 미간에 짙은 주름이 잡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양 그걸 내려놓으면서 들고 있던 칼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칼은 조금 전 꼽추 노인이 닫고 나간 문에 박혔다. 파르르, 떨리는 검이 멈추자 옆에서 나타난 하얗고 깨끗한 손가락이 그 검을 쓰다듬는다.

“평소와 다르게 예민하시네요. 왜 그러신가요?”

공기를 울리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사내는 세운 무릎에 팔을 올렸다.

“부르지 않으면 오지 말라 했잖아.”

“오늘 밤은 공기가 유난히 차서, 홀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요.”

떨어진 거리가 있었으나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양 감미로웠다. 노골적인 유혹이었으나 바지 매듭을 풀고 당장 달려드는 다른 사내들과 달리, 그는 차분한 시선을 던졌다. 굳어 있는 표정에서 지금 그의 기분이 별로라는 게 느껴지자 여자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지금 그 얼굴은 당신답지 않으시네요. 무슨 일이 있으셨던가요.”

“설령 있더라도 내가 그걸 너에게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잖으냐.”

“그래요. 그렇지요. 당신이 저에게 일일이 말해 주실 필요는 없지요.”

굳이 하는 말을 따라하며 긍정하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 두어 걸음 나오자 머리맡으로 떨어지는 달빛이 그녀의 머리 장식을 스쳐 지나갔다. 반짝거리는 장식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그녀가 조금 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번에 새로 오신 사또가 참 재미있는 분이시더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라.”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너무도 매력이 많으신 사또시더군요. 그처럼 고운 사내는 처음 봤습니다. 오랜만에 제 심장이 뛰더군요.”

여자의 속삭임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너에게 뛰는 심장이 있기나 하더냐.”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차분한 반문에 사내의 입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지워진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여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으나, 더는 아니다. 미소가 사라진 사내의 얼굴은 날카롭게 갈아진 칼보다 훨씬 더 매서웠다. 눈빛으로 사람을 벨 수 있을 것 같은 박력으로 노려보는 사내를 두고, 여자 또한 미소를 지웠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저와는 다른 존재시지요.”

달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던 그녀의 존재감이 점점 엷어지면서, 그녀의 음성도 힘을 잃어 갔다.

“차라도 한잔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듯싶군요. 가 보겠습니다. 쉬세요.”

마지막 말과 함께 여자가 사라지고, 재차 혼자 남게 된 사내는 무릎에 올리고 있던 팔을 내렸다. 탁자 아래로 두 다리를 내린 그는 뒤로 몸을 젖혔다. 넓지 않은 나무 탁자에 편하게 누운 그는 양팔을 벌렸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코가 씰룩거린다. 킁킁, 거리면서 주변 냄새를 맡다가 중얼거렸다.

“꽃냄새가 나는군.”

조금 전에 왔다 간 여자가 남긴 냄새가 아니었다. 이건 그보다 훨씬 전에 남아 있던 향이었다. 밤이 아닌 낮에 찾아온, 그 어린 놈이 뿌리고 간 향이었다.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를 떠올린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혀를 찬 그는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 성가시군, 하며 중얼거렸다.

* * *

아침이 되었어도 여전히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관아 밖에 걸린 북은 여전히 조용했고, 억울하다며 외치는 사람도 없었다. 사또가 나서지 않아도 포졸들은 훈련을 받고, 고을 주변을 돌고, 6방들은 본인들의 일을 했다. 물론 일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쉬기도 하고 딴청을 피우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였다. 일을 하라고 해서 그것에만 집중해서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모두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무엇을 해도 감시하지 않았다.

말이 좋아 감시지, 달리 표현하면 간섭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고 있는 거였다. 지금 사또 명월의 처지가 그러했다.

평화롭고 조용해서 모두가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건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본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 조용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알면서도, 복운의 튀어나온 입술은 쉬어 내려앉지 않았다.

마당 한편에 쪼그리고 앉은 그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닫혀 있는 사또의 방문을 확인하고는 미간의 주름이 조금 더 짙어졌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던 그는 용기를 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돌진을 하려는데 갑자기 분합문이 열리고 사또가 나왔다.

구군복을 차려입으니 저만한 사내가 없다. 겉모습을 보자 바로 표정이 풀리면서 감탄을 하던 복운은 급히 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명월은 대청 끝자락에 앉아서 목화를 신었다.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도와주려 하자 바로 “괜찮다.” 소리를 한다. 그 순간 복운의 입술이 앞으로 한 자나 튀어나왔다.

반대편 발에도 목화를 신으면서 명월은 복운을 흘겨봤다.

“추잡하게 입술은 왜 튀어나와 있는 거냐. 집어넣어라.”

추잡하다는 말에 복운은 충격 받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싶은 눈길로 바라보는 복운을 두고, 명월은 신을 마저 신고는 몸을 일으켰다. 따라 일어난 복운은 용기를 내 물었다.

“그, 이방하고는 대체 뭔 사이십니까?”

“듣는 사람들 오해하겠다. 사이는 뭔 사이 말이냐.”

“전에는 부르지도 않던 사람을 요 며칠 계속 곁으로 데리고 와서 저 몰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십니까?”

“눈도 밝구나. 사람들 몰래 만나고 있는데 그걸 또 어찌 안 거냐.”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아무 사이도 아니라 하실 셈이십니까?”

“난 사또고 그는 이방이다. 관아의 일을 하려면 따로 부르는 일도 있는 거지. 그게 뭐 이상하다고 대낮부터 눈을 부라리는 거냐. 네가 내 안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이상한 추궁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명월은 등채를 휘두르려 했고, 복운은 아이쿠―하는 소리를 내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막았다.

언제나 늘 공격이 날아오는 부위가 머리이다 보니 반사적으로 거기로 손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도 머리로 올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러나 싶어서 한쪽 눈을 가늘게 뜨자 명월이 등채를 옆구리에 채우고 있었다.

왜 안 때리는 거지. 이상하다며 바라보자 명월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도 이제 어른이니 이제부터는 이런 걸 휘두르지 않겠다. 그러니 너도 앞으로는 헛소리 좀 작작하고, 좀 어른스럽게 굴어 봐라.”

“사또께서 제 할 일만 잘 하시면 저도 그리 될 것입니다.”

이놈이 안 맞으니까 제 멋대로 지껄여대는 구나.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노려보는 명월이지만, 복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요즘에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일부러 절 피하시는 것 같아서 섭섭합니다.”

“섭섭할 것도 많다. 할 일이 그리도 없냐? 왜 이렇게 내 뒤만 졸졸 따라붙는 거야.”

“제 할 일이 사또를 보필하는 거라서 그렇지요.”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린 복운은 씩씩한 얼굴이었다.

사또를 보필하는 일이 본인의 가장 큰 긍지라는 양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는 모습에, 명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낯설고 먼 곳으로 혼자 가는 것보단 아는 사람과 함께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판단이 틀린 모양이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조리 다 간섭하며 어린애 대하듯 구니, 남들 보기도 민망했다. 그렇다고 복운이 제 할 일을 똑 부러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인상을 쓴 명월이 재차 한마디 하려 했을 때 뒤쪽에서 포졸이 달려왔다. 그는 근처에 멈춰 서선 공손히 말했다.

“사또. 의자가 도착했습니다.”

포졸의 그 말에 ‘의자가 왜 벌써 와.’ 그런 생각을 하는 명월이었다.

동헌의 마루 가운데에 놓인 의자는 중심이 딱 잡혀 있는 게, 누가 보더라도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실제로 먼저 와서 완성이 된 의자를 살피는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아주 멋집니다. 전에 있던 것보다 훨씬 좋군요.”

“그러게 말이네. 묘하게 위엄이 있는 게, 이렇게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럽구먼.”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하면서 명월의 안색을 살핀다.

물건이라는 건 기분 전환을 하거나, 괜찮은 게 있어서 바꿀 때에나 좋은 법이었다. 흉물스러운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바꿔야만 했던 사또의 기분이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명월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걸 확인한 형방이 냉큼 의자를 양손으로 가리켰다.

“사또, 어서 앉아 보십시오. 저 의자에 앉으시면 사또의 위엄이 한결 살아날 것 같습니다.”

의자 옆에 서서 그걸 내려다보던 명월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가 보기에도 의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설마하니 앉자마자 이상한 뭔가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정체 모를 장인 놈이 만든 것인지라 영 거슬렸다. 하지만 의자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자신이 언제 앉나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엉덩이만 살짝 대 봤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뒤로 몸을 밀면서 편안하게 앉는 걸 확인한 형방이 물었다.

“어떠십니까?”

“편하군.”

“보기에도 좋으십니다.”

손을 비비는 형방은 아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서 옆에 선 이방은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그걸 살피던 명월은 넌지시 물었다.

“―원래 이 의자가 이리도 빨리 완성이 되는 것이던가.”

그제야 고개를 든 이방이 대답을 했다.

“원래 손이 빠른 사람이라 뭔가를 부탁하면 다음날 완성을 시켜오곤 했습니다. 그에 비해 이 의자는 조금 늦게 도착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원래 손이 빨라서 그렇다. 나흘 안에 온 의자가 정말은 늦게 온 것이다.

도성에 있는 아는 목수가 들으면 당장 기함할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여기선 그게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 타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몸에 들어간 힘을 빼고는 편안하게 자세를 잡고 앉은 명월이 재차 물었다.

“그래. 이 의자도 장인이 직접 가져다 주고 간 건가?”

“그렇습니다. 의자만 내려놓고 금방 돌아갔습니다. 오늘은 장날이라 물건 살 게 있다면서 그곳에 들렀다 간다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는 거다.

명월은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대청을 내려왔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그리 알고들 있게.”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목화를 신는 명월은 꽤나 다급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붙잡을 순 없었던 이방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서 있던 복운만이 급히 명월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아니. 또 어디를 가시려고요? 일 안 하십니까?”

“매일매일 조용한 곳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도성에 보낼 물건 정리도 안 하십니까?”

“그건 이달 하순에 하면 될 일이고, 내가 알아서 할 거다. 자꾸 조잘조잘 시끄럽게 굴면 네놈을 버리고 갈 테니, 그리 알아라.”

그리고 그땐 위협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며 명월은 등채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명월이 등채를 쥐기만 하면 머리를 감싸서 방어를 하는 건 거의 조건반사였다. 복운이 양손으로 머리를 막는 동안, 명월은 어느새 저 앞까지 가 버렸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겁도 없이 저렇게 혼자 가나 싶었던 복운은 같이 가자면서 손을 흔들며 명월의 뒤를 쫓았다.

* * *

장날이다 보니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장사치들이 많고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 넓은 길가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나와 앉아 있었다. 평소에도 시끄러운 곳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한 것 같다면서 명월은 나무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바깥을 살폈다.

의자가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 그놈은 여기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대체 어디냐. 그놈이라면 어떤 물건을 사는지도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명월은 눈에 힘을 딱 주고 있었다.

그런 명월의 등 뒤로 천천히 얼굴을 내민 복운이 작게 속삭였다.

“죄송합니다만 사또, 이리 숨어 계셔도 너무 튀십니다.”

그 말에 명월의 미간으로 짙은 주름이 잡혔다.

그건 복운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복식을 입어도 부족할 판에 지금 명월은 구군복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이런 알록달록한 예쁜 복장으로는 어디에 가서 숨어 있는다 한들, 모습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그걸 다 알고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몸을 숨기면서 이동하는 게 아니겠는가. 왜 그 깊은 생각을 모르는 거냐면서 명월은 뒤에 딱 붙어 있는 복운의 배를 팔꿈치로 밀어냈다.

“쓸데없이 덩치만 큰 네놈이 등 뒤를 졸졸 따라붙으니 사람들이 더 쳐다보는 게 아니겠느냐. 나한테서 오십보 이상 떨어져라.”

“그,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사또를 보호해드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복운의 반발에 명월은 조용히 등채를 들어 보였다.

맞고 싶은 거냐? 그런 눈빛을 던지기가 무섭게 헛숨을 삼킨 복운이 알아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복운이 멀찍이 떨어진 걸 확인한 명월은 한숨을 쉬고는 길가로 나왔다.

대낮의 장터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맛이 있었다. 복운이 말한 대로 구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나치게 튀는 게 아닐까도 싶었으나, 의외로 보는 사람들은 적었다. 장사하는 이들은 물건을 파느라 바쁘고, 다니는 이들은 그걸 살피거나 제 갈 길을 가기가 바빴던 거다. 의외로 인사를 하는 이들은 적었다. 그래서일까. 명월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처음에야 모습을 감추려 들었지, 나중에는 그냥 당당하게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포목점 앞에 서 있는 체격 좋고, 키가 큰 사내를 발견했다.

저놈 저기에 있구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번 호되게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고 자세히 살피는데, 암만 봐도 보통 인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저 모습이 다른 이들 눈에는 어찌 보일지 모르는 일인지라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명월은 살금살금 놈의 뒤를 쫓았다. 수상쩍은 짓을 하면 당장 달려들어 볼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놈은 평범하게 다녔다.

가판을 보거나 먹을 것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는 것 같았지만, 금방 다른 곳으로 간다. 설렁거리면서 여기저기 잘도 다닌다. 그 모습을 좇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새 명월의 미간으론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러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장인 놈이 사라졌다.

아뿔싸 싶었던 명월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조금 전까지 그놈이 있었던 곳에 서서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에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건가 싶었던 명월은 낭패한 얼굴로 재차 주변을 살폈다. 그때 저기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놈을 발견하곤 급히 뒤를 쫓았다. 그 뒤로 복운이 헐레벌떡 따라왔다.

“사또! 혼자 어딜 가십니까!”

복운의 외침도 명월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 * *

겉보기와 다르게 이 고을은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그 장인이라는 녀석도 미심스러운 일부였다. 대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인간은 아닐 터였다. 놈의 실체를 밝히고야 말겠다면서 명월은 더 열심히 달렸다.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면서 누군가를 찾는 명월의 모습은 보기에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라도 눈이 마주치는 이가 있으면, 깜짝 놀라선 인사를 하거나 바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나올 때 옷을 갈아입는 건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회해 봤자 늦은 일이었다.

재차 저기 모퉁이 뒤에서 사라지는 놈을 발견한 명월은 당장 그리로 뛰어갔다.

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금방 사라지는지 모르겠다. 어지간히 발이 빠른 놈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명월은 미간을 좁혔다.

그놈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린 명월은 으슥하게 그늘이 진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팔이 그런 명월을 붙잡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헉!”

메마른 숨을 토해 낸 명월은 몸을 비틀었지만, 그 전에 오른손이 잡혀선 등 뒤로 꺾어졌다. 동시에 튼실한 팔이 그의 목을 휘어 감는다. 바로 등 뒤에서 서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것에 명월은 숨을 삼켰다.

너무도 손쉽게 명월을 제압한 이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였다.

“왜 나를 뒤쫓는 거지? 내 기억으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온 건 그쪽이었던 것 같은데―.”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소름이 좌악 돋는다.

몸을 부르르 떤 명월은 이를 악문 채로 말했다.

“당장 떨어져라!”

“싫은데?”

간단하게 거부한 그는 더 세게 명월의 손목을 붙잡았다.

뒤로 꺾어진 손목이 당겨지면서 팔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명월은 아픔보단 누군가 자신의 오른손을 건드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왼손으로 목을 감고 있는 사내의 팔뚝을 잡고 떨어뜨리려 하는데, 이게 바위인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내 체면이 있기에 재차 놓으라는 말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당겨봤다.

하지만 장인의 팔은 요지부동이다. 명월이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힘을 써 봐도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힘을 쓰다가 결국 지레 지친 명월은 헐떡거리면서 중얼거렸다.

“팔 좀 놔 봐라. 네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잖으냐.”

“혼자서 용 쓰다가 숨이 찬 걸 가지고 왜 남 탓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러곤 팔에 더 힘을 줘서 목을 죄었다.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목이 아팠던 명월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진다.

지금 이 상황은 좋지 않았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장인으로 나무를 다루는 놈이니, 오죽 팔 힘이 세겠는가. 명월은 표정을 풀고 좋게 말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내가 널 뒤쫓은 게 아니다.”

“몇 번이나 방향을 틀어도 끈질기게 따라붙던데, 내가 착각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래! 네놈이 하도 수상쩍어서 뒤 좀 쫓았다! 그렇다고 사람 목을 이렇게 조르는 게 어디에 있냐! 내가 탐관오리였다면, 넌 진즉 손목이 날아갔을 거다!”

제 암만 실력 좋은 장인이라 해도, 지금 이 행동을 트집 잡아서 놈을 처벌할 수 있었다. 원래 세상이라는 건 권력이 있는 놈들이 제멋대로 휘두르는 대로 움직이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화가 나 소리를 친 명월은 입을 다물었다.

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한 말이 최선이었다. 거기서 더 비굴하게 구걸을 하진 않을 거라며 명월은 눈에 힘을 줬다. 그러자 긴 한숨 소리가 들리고, 바로 팔이 떨어져 나간다. 덩달아 오른손도 놓아진 명월은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몇 걸음이나 나아갔다. 목을 감싸고 기침을 하면서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저 무식한 놈이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팔이 부들거리면서 떨린다.

풀려나긴 했지만 당한 일이 억울했던 명월은 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장인 놈은 이미 저기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명월은 당장 달려가선 허리춤에 꽂고 있던 등채를 빼어 들고 놈의 어깨를 눌렀다.

“거기 멈춰라.”

그러자 장인 놈이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놓아 줬더니 덤비는 건가?”

“설령 뒤를 밟았다 해도 네놈처럼 사람 팔부터 꺾는 놈은 없다. 이 무뢰배 놈아.”

“그렇군. 팔을 꺾는 게 아니라, 아예 부러뜨렸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리 말한 놈이 뒤를 돌아봤다.

웃음기가 담긴 눈동자가 아주 약간 가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저런 눈을 하고 있다고 해서 놈이 진짜로 웃는 건 아니었다. 놈에게서 비웃음을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명월은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네놈의 정체가 대체 뭐더냐.”

“며칠 전에 직접 만나 인사를 했으면서 그런 걸 묻는 건가. 이번 사또는 기억력이 나쁘시군.”

“기억력은 좋다. 지나치게 좋아서 문제지. 네놈의 작업실에 걸려 있던 백호 가죽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정도니까.”

그리고 그 백호 가죽은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건 자신과 이 장인 놈뿐이었다.

원래 자신은 어려서부터 이상한 걸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놈도 그런 걸까. 하지만 앞서 기방에서 들은 말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기생은 이놈이 꼽추 노인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이름을 가진 주제에 모습이 둘일 순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측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인간이냐. 귀신이냐.”

“별 헛소리를 다 하시는군.”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놈이 등채를 툭, 밀어냈다.

가볍게 치는 것 같아도 그 힘이 만만치 않았다. 비틀거린 명월은 들고 있던 등채를 보다가 재차 걸어가는 놈을 노려봤다.

그냥 확 머리통을 후려쳐 볼까.

등채를 세게 움켜쥔 명월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난다. 하지만 그는 정말 그리 하는 대신에 등채를 옆구리에 다시 집어넣고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까는 방심해서 붙잡힌 거지, 두 번째까지 그리 되진 않는다. 놈을 굴복시키고 말겠다며 명월이 앞으로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손목이 붙잡혔다. 세게 잡혀선 옆으로 꺾어졌다. 억, 하고 신음을 흘리기가 무섭게 그대로 벽으로 밀쳐졌다. 이번에도 오른손이었다.

명월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놈이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는 놈의 얼굴에 놀란 명월이 눈을 크게 뜨면서 헛숨을 삼켰다. 위협을 하듯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 붙인 놈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명월을 바라봐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검은 눈동자가 너무도 깊고 어두웠다. 마치 모든 걸 집어삼켜서 흡수할 것 같은 눈빛이라며 명월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완전히 얼어붙은 명월을 지그시 바라보던 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내가 요물이면 뭘 어쩌려고? 이 가느다란 팔로 날 어찌할 수 있으신가?”

그러곤 더 세게 손목을 붙잡는데 뼈가 나갈 것만 같았다.

윽, 하고 신음을 흘리는 명월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하는 소리를 낸 그는 고개를 숙여선 혀를 세워 명월의 손등을 길게 핥았다. 검은 가죽을 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혀로 핥는 것에 명월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기분 나빴다. 지독한 모욕을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셔선 파리하게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명월을 두고, 그가 웃었다.

“겁먹은 얼굴이 귀엽군. 이대로 잡아먹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야.”

“…….”

그 순간 명월의 눈동자 안쪽으로 불똥이 튄다.

명월은 무릎을 세워선 놈의 오른쪽 옆구리를 세게 가격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뼈가 몽땅 나갔을 거다. 하지만 놈은 눈을 내리떠선 본인 옆구리에 닿아 있는 명월의 무릎을 확인하곤 입을 벌렸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나 싶던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인다. 그 순간 검은 눈동자 안에 서리는 살기를 읽은 명월은 당장 소리를 질렀다.

“복운아!”

좁은 골목길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커다란 소리에, 멀지 않은 곳에서 “사또오오!”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러자 바로 놈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사라진다. 고까운 듯 명월을 바라보던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더 세게 명월의 손목을 붙잡았다. 으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건 비단 착각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토해 낼 정도로 아팠지만, 어금니를 악물고 가까스로 참았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에 매서운 눈으로 놈으로 노려보자 그제야 손이 떨어진다. 그 전에 놈은 손가락을 뻗어선 명월의 뺨을 툭, 쳤다.

“네놈의 목을 꺾는 건 일도 아니다. 이번에 네놈은 나에게 빚을 진 거다.”

그 순간 명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빚이니 뭐니 하는 말이 다 뭔가 싶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하려는 순간 재차 복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입니까?!”

온 고을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악을 써대는 목소리에 명월은 혀를 차면서 “여기에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곤 다시 장인 놈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미 텅 비어 버린 자리를 확인한 명월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그 짧은 순간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가. 방심하지 않는 거였는데. 후회를 해 봤자 늦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분한 마음에 명월은 빈자리만 노려봤다.

* * *

놈은 장인인 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귀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의 눈에는 허우대 멀쩡한 사내 놈으로 보이지만, 사람에 따라선 꼽추 노인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그 외에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궁금해서 복운이나 이방에게 장인이 어찌 보이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한 눈빛을 받을 것 같아서 꺼려졌다.

어떻게 해서 찾은 안정된 삶인데, 여기서 그걸 포기한단 말인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데―.

“…….”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 기분이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없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명월은 눈을 감았다.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라.’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는 동안 명월의 미간으로 더 짙은 주름이 잡힌다.

애초에 이런 곳으로 오지 않는 거였는데. 하지만 오기 전에는 이런 덴 줄 몰랐지. 그냥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약간 규모가 큰 고을이겠거니 싶었는데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제 와 발을 빼기엔 여기저기 손을 많이 댄 상태였다.

특히 이방의 딸도 그렇고―.

지금 그 아이는 내동헌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방이 사람들 모르게 부인을 데리고 와서 그곳에서 함께 생활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숨겨 둔 것이니 언제고 들통이 날 거다. 비단 사람 눈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게서도 말이다.

만약 그리 된다면 자신은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옳은 것일까.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떼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명월은 눈을 떴다. 그리고 대청 아래쪽에 쪼그리고 앉아선 턱을 괸 채로 이쪽을 빤히 보고 있던 복운과 시선이 부딪쳤다.

명월은 대번에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그렇게 날 쳐다보는 거냐.”

“모처럼 일할 마음이 생긴 건가 싶었더니, 그냥 의자에 앉아서 주무시는 건가―싶어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냥 오냐오냐하면서 봐줬더니, 아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려 한다. 어찌 종놈이 주인에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기가 차 복운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복운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명월을 주시했다.

“장터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리도 크게 저를 부르다니. 아무래도 수상쩍습니다.”

“길을 잃은 것뿐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까. 왜 초행길을 왜 혼자 다니십니까. 사또는 길치라서 곁에 꼭 제가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길치라고 하는 순간, 명월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그건 명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어려선 아닌데, 자라면서 점점 길을 찾는 게 어려워져서 몇 번 와 보지 않은 길은 꼭 헤매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습득이 늦을 뿐이지, 익숙해지면 어떻게든 잘 찾아서 간다.

그런 식으로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복운이었다. 저놈에게 구차하게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싶었던 명월은 매섭게 노려볼 따름이었다. 그러자 복운은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네.”라면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복운이 가 버리고 난 후, 명월은 혀를 찼다.

그러다 바로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명월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의자는 편했다. 그 장인 놈과 관련된 것만 아니었다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었다. 문제는,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게 쓸 수 있는 이 의자가 언제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 앉아 있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일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명월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떤 곳이란 말인가.”

그런 한탄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냥 적당히 있다가 다시금 도성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나 다른 형님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와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설령 뭔가를 알아낸다 쳐도 그냥 눈을 감고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방의 딸을 내동헌에 두고 그놈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놈들을 뿌리친 게 아니었다.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금방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낼 거다.

그땐 자신이 나서야만 하는 걸까. 그러다가 오히려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인간들이 사용하는 무기 같은 게 통할 리도 없고 말이다.

머리가 복잡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명월은 곳간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문 가운데로, 보기에도 무거울 거 같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걸 본 명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방이 바로 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그냥 여는 게 아니라 몇 번 열쇠를 흔든다. 그걸 본 명월이 물었다.

“열쇠를 넣고 안에서 뭔가를 눌러야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사또가 계신 곳이라고는 해도 도둑놈들 중에는 간이 부운 놈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하자 싶어서 조금 특별한 자물쇠를 사용했습니다. 이 자물쇠를 여는 방법은 저밖에 모릅니다.”

아니. 저기 이방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문득 든 생각에 웃음이 난다.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자 호방의 표정이 밝아진다. 사또가 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겠다 싶었던 거다. 양손을 마주 잡은 채로 따라서 웃는 호방을 내려다보던 명월은 그리로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왜 손을 내미는지 모르겠다. 잡으라고 내미는 건 아닐 텐데.

알 수가 없어 멍하니 있던 호방이 위쪽으로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기 전에 명월이 짤막하게 말했다.

“열쇠.”

“……달라굽쇼?”

명월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달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또가 원하면 주는 게 맞는 거였다. 그래도 뭔가 좀 망설여지게 되는 듯 눈을 굴리던 호방은, 명월의 눈에 힘이 들어가자 급히 열쇠를 내밀었다.

“여기에 있습니다.”

명월은 이방이 건네는 열쇠 꾸러미를 받아선 그걸 눈앞으로 올렸다.

열쇠가 많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그걸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구경 좀 하고 나올 테니까 여기에 있지 말고 다른 곳에 가 있거라.”

“여, 열쇠는 제가 보관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누가 네 열쇠를 빼앗아 달아나기라도 할 것 같으냐. 다 쓰고 돌려줄 테니까 어서 가 봐라.”

“……네. 알겠습니다.”

괜히 한소리 들은 호방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몸을 돌려선 명월의 눈앞에서 멀어졌다. 호방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명월은 곳간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일까. 갑자기 시원해지는 걸 느끼며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허공을 바라보나 싶던 그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관아의 곳간이다 보니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바깥쪽에는 부피가 큰 것들이 커다란 궤짝이나 자루째로 보관되어 있고, 안쪽에는 칸칸이 나누어진 장 속에 여러 가지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금은보화나 귀한 물건을 보기 위해서 들어온 게 아니었다. 장부와 물건을 일일이 대조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다가, 곳간에 한번 와 볼까 싶었던 거다.

어슬렁거리던 명월은 가장 깊숙한 곳 안쪽에 보관되어 있는 귀한 약재를 확인했다.

상자 속에 넣어진 것도 있고, 개방한 채로 건조를 시키는 것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그 사이에 고운 자태를 자랑하며 누워 있는 산삼을 발견한 명월은 바로 감탄사를 흘리면서 호오, 하는 소리를 냈다. 절로 그리로 손이 간다.

크기를 보아하니 100년은 족히 넘은 놈이었다. 이런 건 뿌리조차도 약이 된다 했다. 자연스럽게 그걸 만지는 손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산삼을 들고는 그걸 바라보다가 “대단하군.” 하고 감탄사를 흘리나 싶던 명월은 그 순간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방은 아픈 딸아이를 위해서 곳간에 들어왔다고 했지만, 소녀는 병 같은 것 때문에 아픈 게 아니었다. 무언가에게 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방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그걸 모르진 않을 터였다. 그런 그가 여기서 딸을 위해서 대체 무얼 들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명월은 아, 하고 탄식을 토해 냈다.

“그렇군. 여기서 이방이 빼돌리는 건 약재 같은 게 될 수 없어.”

아픈 딸이라고 하니 그냥 약재 정도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이나 좀 건드렸겠거니 싶었으나, 그런 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얻는다 한들 그걸로 딸을 위해서 대체 무얼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여기서 무얼 얻고자 했을까.

산삼을 내려놓은 명월은 인상을 쓴 채로 재차 곳간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리 찾는다 해서 이방이 얻고자 했던 게 바로 눈에 들어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 모르는 일이었다. 눈에 힘을 준 채로 주변을 살피던 명월은 어디선가 들리는 기침 소리에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워낙에 집중해 있기도 했고 곳간 안에 홀로 있었기 때문에 저런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대체 뭔가 싶었던 명월은 안색을 굳힌 채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재차 기침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 누군가 있는 건가. 그런데 왜 곳간 뒤로 온 거야. 원래 참외밭 근처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여기에서 서성이다가 괜한 오해를 받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때 “이방의 딸이 아픈 것 같더라고.”라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린 소리에 명월은 그쪽을 돌아봤다. 동시에 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그 소리에 명월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그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벽에 달라붙어선 위를 올려다봤다. 집중하자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본인은 아닌 척하지만, 올해 들어서 그 댁 아씨를 본 사람들이 없다더군.”

“거기에 있는 머슴이나 종년들도 조심스럽게 굴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란다고 하잖아. 솔직히 다른 집이었다면 진작 소문이 났을 테지만, 거기 것들은 이방이 좀 잘 챙겨줬나. 그래서 유난히 입이 무겁게 굴었지만, 영원한 비밀이 어디에 있겠는가. 올해 그만한 나이의 여자가 얼마 안 되어서 설마설마 싶었지만, 정말로 그 댁이 될 줄은 몰랐지. 종종 이방을 만나겠다며 관아에도 찾아오곤 했는데……. 그 아씨가 그리 되니 마음이 착잡하네. 이래서야 어디 무서워서 딸을 낳겠나.”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래 봤자 한 해에 한 명이 아니던가. 그 아씨 덕분에 다른 여자들에게 별일이 생기지 않는 거야. 그건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쓰읍.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게. 이방 앞에선 더더욱. 그리고 신임 사또 앞에서도 입조심해야 할 거야.”

“에이, 그건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더 잘 아네. 걱정을 하지 말게.”

“왜 자네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더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군.”

“이 사람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날 못 믿는 건가?”

“당연히 못 믿지. 이번 사또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은근히 엉뚱한 구석이 있어. 전에 말이야, 개미가 지나가기에 그냥 밟고 가려고 했더니 바로 내 뒷덜미를 잡지 않겠나. 왜 그러나 싶어서 놀라 쳐다보니, 웃는 얼굴로 ‘개미를 밟으면 나중에 재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될 거야.’라고 하더란 말이야. 그 웃는 얼굴이 어찌나 곱던지. 그때는 혼이 빠져서 멍하니 있었는데 집에 들어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란 말이야. 들은 말이 영 재수 없어서 그 후로 며칠 동안 몸을 사렸지 않나.”

“뭐야, 이 사람 사또의 미모에 혹한 건가. 그래 놓고는 괜한 개미 탓을 하나?”

“어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내가 언제 사또의 미모에 혹했단 말인가.”

“지금 하는 말이 그렇지 않은가. 됐네. 나도 같은 사내라서 자네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진 않네. 사또의 미색이 아주 대단하긴 하지. 그 얼굴로 사내라니, 아깝지 뭔가.”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됐네. 가서 일이나 보게.”

“부끄러워하는 건가? 이 양반 큰일 치르겠네. 아서게, 다른 사람도 아닌 사또라네. 괜한 마음을 먹는다면 당장 경을 치게 될 거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화가 난 듯 크게 소리를 치나 싶더니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후로도 티격대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뒤에는 잡담이라 기억할 필요도 없는 거였지만, 앞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한 해에 한 번씩이라.

그 낭자 덕분에 다른 이들에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니.

지금 들은 말이 대체 무언가 싶었던 명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 *

처음 부임해 왔을 때는 조용한 곳이라 좋아했지만, 곧 아니라는 걸 느꼈다.

평온한 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명월이 느낀 건 바로 부조화였다. 속이 불편한 사람이 웃고 있어도 그게 은연중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여기도 그런 게 있었다. 다들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것 같아도 그 안쪽으로는 썩고 곯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걸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지.

그 말을 듣게 된 순간 명월은 뭔가에 이끌리듯 움직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별로 살피지도 않았던 서고로 가서는 그곳에 있는 문건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물론 다른 이들에겐 열람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호방에게 앞서 열쇠를 달라고 해서 얻은 게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명월은 차곡차곡 정리된 문서들 중 하나를 들어 살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있었던 곳답게 쌓여 있는 양이 상당했다. 이걸 일일이 다 볼 순 없었다. 조금 전 그놈들에게서 들은 정보는 어디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신중하게 움직이던 명월은 얼굴에 닿는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이내 뻘쭘한 모습으로 서 있는 복운을 확인하곤 인상을 썼다.

“네놈은 왜 거기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냐.”

“사또가 이상하게 행동하시니까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지금까진 원에 붙어서 예전 기록 좀 살피고 일이나 하라고 했지만, 막상 명월이 이런 식으로 구니 그게 그렇게 이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원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사또도 그리 되는 건가 싶어서 걱정이 한가득인 눈으로 바라보는 복운을 두고 명월은 혀를 찼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두고 밖에 나가서 망이나 보거라. 그래서 네놈을 데리고 온 건데, 네놈이 여기서 내 옆에 붙어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아니, 사또 하시는 행동이 이상해서 그게 신경 쓰이는 걸 어쩝니까.”

차라리 여기서 이러는 게 아니라 기방을 간다고 했으면 일부러 살펴보지도 않았을 거다. 한 달 내내 딴청이나 부렸으면서 갑자기 서고를 찾는 연유가 뭔가 싶어서 괜한 걱정이 된다.

굳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복운에 명월도 한숨이 나왔다. 어찌할까 싶었던 명월은 좋은 생각이 나선 복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이리로 와 봐라.”

부르는 소리에 복운은 몸부터 사리게 된다.

명월의 옆구리에 걸린 등채를 먼저 확인한 그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절 부르십니까?”

“내가 그리로 가면 넌 진짜로 맞는 거다.”

정말로 동네북이 되고 싶은 거라면 계속 버티고 서 있든가. 그런 싸늘한 시선에 화들짝하고 놀란 복운은 급히 명월 앞으로 달려왔다. 그러자 명월은 품에 손을 넣고는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나가서 이 열쇠의 본을 뜨고 오너라.”

“이 열쇠들을 말입니까? 이게 다 뭡니까?”

딱 봐도 스무 개가 넘는 열쇠였다. 이 많은 열쇠가 다 어디에 사용되는 건가 싶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게 궁금해서 그걸 알아야 성이 찰 것 같은 복운이었지만, 명월은 그런 그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여기서 뭔 말을 하면 “네. 알겠습니다.”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손가락으로 복운의 이마를 튕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복운이 크게 입을 벌렸다.

“쓸데없는 건 묻지 말고 냉큼 다녀와라.”

지금 명월이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서 사고에 들어왔다는 걸 알기에 가까스로 소리를 참은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큰 소리를 낼 뻔 했다. 등채로 맞은 것보다도 훨씬 더 아프다면서 얼얼한 이마를 문지르던 복운은 명월을 흘깃 봤다. 시선이 부딪치자 명월의 눈으로 더 힘이 들어간다.

어서 다녀와라. 그리 말하는 눈빛을 읽은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웅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복운이 나가고 서고의 문이 닫히는 걸 본 명월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재차 책자를 살폈다.

분명 기록이 있을 거다. 딱 봐도 세분화해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분명 사람이 죽고 태어난 것에 대한 기록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명월은 가장 안쪽에서 사망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가 싶었던 명월은 그 책자를 살폈다.

하나하나 읽어 보던 명월의 눈동자로 의아한 기색이 서린다.

딱 봤을 때 이상한 건 없었다.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이들이 한 해 몇몇씩 죽었다는 게 전부였고, 이유를 살펴보면 타당한 것 투성이였다. 그 외의 요소들도 꼼꼼하게 작성이 되어 있어서 의문을 가질 것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들은 말로는 분명히…….

명월은 사망부를 모두 꺼내 들고 안쪽 자리로 가 앉았다.

한 해에 하나씩 죽은 낭자들에 대해서 알아봐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명월은 가장 처음 책자부터 천천히 넘겼다. 그러다가 간혹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사고였다. 그 외에도 질환이 있어서 사망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게 아니라고 하기엔 그 정황이 너무 정확하고, 어떤 식으로 처리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정말로 오랫동안 아팠다가 사망한 거라면 그걸 잘못 건드린 걸로도 사람들의 원성을 살 수 있음이었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이 고을에 오래 지냈던 것도 아니고 온 지 딱 한 달 정도였다.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파고 들어가선 안 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해서 이 낭자의 집에 들어가 묻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들에겐 아픈 기억일 텐데 그걸 후벼 팔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책자를 살피던 명월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그리 생각하는 얼굴로 있던 그는 다른 책자를 넘겼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

<무인(戊寅)년 섣달 보름 폭설로 인해서 산속에서 살던 김씨 일가가 동사(凍死).>

이런 산속이라면 종종 있는 사고였다. 저기 사막지대와 인접한 곳은 더위를 먹어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열꽃이 피어서 피부를 도려내다가 간염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추우면 얼어 죽고, 더우면 쪄 죽는 거다. 그런 죽음은 크게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왜 이게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걸까.

그러다가 기억이 났다.

이 시기 섣달 보름쯤 되는 날이라면 분명 그 날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아버지 집 앞에 버린 바로 그 시기였다.

‘겨울인데도 하나도 안 춥구나. 다행이다. 감기에 안 걸리겠어.’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시기엔 유난히 눈이 늦게 내렸다. 섣달이 되었는데도 춥지가 않아서 얇은 겉옷을 한 장만 걸쳐도 끄떡없을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추운 건 정월부터였고, 눈이 내리던 건 그 달 중순부터였다. 그러니 섣달 보름에 폭설이 내리는 것도 그렇고, 그 일로 인해 일가가 동사할 수는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길 뻔했다면서 명월은 다시 앞부분을 살폈다. 하나하나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교묘하게 기록이 된 부분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봄에 돌림병이 돌아서 죽은 여러 사람들 중에 한 소녀.

여름에 물놀이를 갔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빠져 죽은 소녀.

가을에 감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가 낙상으로 인해 앓다가 사망한 소녀.

겨울에 빨래를 하러 나갔다가 멧돼지와 만나서 큰 자상을 입은 후, 거기서 올라오는 독으로 사망한 소녀.

다양하면서도 이상함을 느낄 수 없을 만한 죽음의 아래쪽에는 그들을 염한 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모두 같았다.

장의사 이종원. 작년 여름에 절의 계단 앞에서 굴러서 사망한 소녀 또한 이자가 염을 했다. 그렇다 해서 이 이름의 장의사가 소녀들만 염을 한 건 아니었다. 종종 다른 곳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그게 위장을 한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보통 이런 사건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당장 알아보라 했을거다. 하지만 조금 전 대화를 들어 봤을 때, 그들은 이 사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한 소녀의 죽음으로 다른 이들은 안전한 상태가 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 예전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거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책들을 정리하고 급히 서고를 빠져나왔다.

지금 알게 된 일들이 범상치 않게 여겨졌다. 앞으로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은 단순한 전초전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발을 빼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지금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여기서 발을 빼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을 내릴 문제였다.

“사또.”

부름에 걸음을 멈춘 명월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이방 한소규였다.

조금 전까지 알아보던 게 있었기 때문일까. 그를 바라보는 명월의 눈빛은 굳은 채였지만, 그걸 모르는 한소규가 앞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제 딸은 저희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명월의 눈썹이 올라간다. 말은 없어도 그의 굳은 표정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었다. 이방은 마주잡은 손을 꼬옥 쥔 채로 말을 이었다.

“사또께서 선의를 베풀어 주셨다는 걸 알고는 있으나 곧 다른 사람들도 제 딸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그 전에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자네 딸은 바로 죽네.”

“…….”

이제와 모르는 척하면서 말을 숨기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단호하다 할 수 있는 그 말에 이방의 입가로 쓴웃음이 걸린다.

명월이 뭔가를 알아차린 걸 감지할 수 있었으나, 그걸 두고 뭐라 말을 할 기운도 없는 얼굴로 이방은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 딸이 선택된 것입니다. 그걸 거부할 순 없습니다.”

지친 듯 중얼거린 이방은 고개를 들어 명월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업보라 생각하시고 더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제 말이 건방지게 여겨지실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게 전부 사또를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이방 한소규는 허리를 구부리면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제 딸을 위해 보여 주신 성의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겠나. 난 애초에 자네를 도와준 것도 없었네.”

그러니 성의니, 은혜니 같은 헛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지금 명월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 말이 의외다 싶었던지 이방이 고개를 들어선 명월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외면하듯 몸을 돌린 명월은 빠르게 멀어졌다.

* * *

이방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솔직히 언짢은 것도 사실이었다. 나름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그게 막힌 기분이라고나 할까.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자신이 굳이 나설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싶으면서도 엉덩이가 근질거려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명월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연한 푸른빛의 장삼을 두르고 갓을 눌러쓴 그는 등채 대신에 부채를 들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전날의 장터 같은 활기는 없어도 사람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런 그들을 구경하던 명월은 조금 전 책자에서 읽었던 이름을 떠올려봤다.

장의사 이종원. 그 이름이 머릿속에 박혀선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알아냈는데 멈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뭔가 초자연적인 일인 것 같으니 더 깊이 파고들지 말자 싶으면서도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대체 이 마을은 어떻게 되어 먹었기에 그런 일이 생기는 건가 싶었던 거다. 며칠 더 머무르다가 훌쩍 떠날 상황이 된다면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2년 가까이 더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사내들이 나누던 말이 진짜라면. 올해 이방의 딸이 희생 된다면, 내년엔 또 다른 집안의 처자가 그리 된다는 의미였다. 그녀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리도 덧없이 간단 말인가. 암만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문제는 이방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일단 자신이 이 고을의 사또로 부임한 이상, 의문이 생기는 일이라면 뭐든지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지 무고한 이들이 더는 피해를 입지 않을 게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도 성가실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며 명월은 느릿하게 시장 사이를 걸어다녔다.

그때 안쪽에서 술렁거림이 생겨났다.

“저기 좀 봐.”

여자의 숨죽인 목소리를 들은 명월은 아차 싶었다.

이런 차림이라 해도 워낙에 튀는 용모이다 보니 그걸 알아보는 자들이 있던가 싶었던 거다. 낭패다 싶었던 그는 갓을 잡아 아래로 내렸지만, 이윽고 또다시 한 여인이 중얼거렸다.

“아이고, 저기 저 기생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좔좔 흐르는 색기 좀 보게나.”

“…….”

감탄 섞인 중얼거림에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내가 아니었어?’라는 거였다. 자신감 넘치는 실없는 사내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 명월은 갓을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꽃처럼 화려한 색감의 한복을 입고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린 그녀들은 호란의 기생들이었다. 하나같이 미색이 대단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건 중앙에 있는 호접화였다. 오랜만에 나와서 장신구를 고르는 건지, 그녀들은 가게 앞에서 거울 속에 비치는 본인들의 모습을 살피거나 아기자기한 문양의 장신구를 머리에 대 보거나 했다. 그러면서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이 눈이 부셨다.

칙칙한 원에서 집요하게 뒤를 따라붙는 복운에게 시달림을 당했던 명월은, 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곤 저도 모르게 좋다, 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그리 생각하는 건 비단 자신뿐만이 아닌 듯, 근처에 있던 대부분의 사내들이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기방 갈 생각으로 나온 게 아니라 해도, 이런 데서 그녀들을 만나게 된 걸 보니 이것도 인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이방의 딸을 원에 들인 후에 기방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친 명월은 냉큼 그리로 향했다.

기생이라면서 수군거리긴 해도 다들 그 미색에 넋이 빼앗겨선 조심스레 흘겨보기만 할 뿐, 용기 있게 그 앞으로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그때 명월이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무엇들을 하시나.”

처음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웬 놈이 아는 척인가 싶었던 기생 몇이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양반 도령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은 명월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번에 사, 까지 말하던 기생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명월은 구군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분명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 위해서 저런 편한 차림새를 입고 나온 걸 텐데, 괜히 사또라 불러서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던 기생은 사또라는 말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곤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든 채로 그를 바라봤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최근 기방에 오시지도 않고. 저희들을 영영 잊으신 건가 싶어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자네들을 어찌 잊겠나. 일이 바빠서 찾질 못한 것뿐이니 내 마음을 오해하지 말게.”

그리 말을 한 명월은 고개를 들어 호접화를 바라봤다.

붉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다른 기생들보단 수수해도 단연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아까부터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바라보는 눈매가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눈빛 한 번이면 오금이 저려서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을 터였다. 명월도 전에는 그 눈빛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매력이 반감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눈매가 그 망할 장인 놈을 떠올리게 해서 기분이 묘해질 따름이었다.

왜일까. 전혀 닮지 않은 둘인데 왜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걸까. 자신의 눈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고서야 호접화, 그녀에게서 그 빌어먹을 놈을 떠올리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이상한 생각일랑은 아예 하지 말자면서 명월은 입꼬리를 올렸다.

“웬일로 외출을 나오신 모양이군.”

“저희들도 매번 기방에 붙어 있진 않는답니다. 가끔씩 나와서 돈도 풀어 줘야 기분 전환이 되지요.”

“옳은 말이네. 오늘은 장신구를 살 예정인가 보군.”

“장신구도 사고, 봄을 맞이해서 새로운 옷도 맞추고 할 겸 나와 봤습니다.”

“일부러 맞추지 않아도 미모가 출중하니 아무거나 입어도 되지 않겠는가.”

“넉살도 좋으십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의 모습이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호접화가 기생만 아니라면 천상배필이라 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둘이었다.

처음 명월이 나타난 걸 반기던 자희는 바로 호접화에게 가 버리는 것에 노골적으로 실망을 드러냈다. 근처에 있던 기생이 소매를 잡으면서 안쪽으로 끌어당기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그리로 간다. 어느새 명월과 호접화 단둘이 서 있게 되었다. 당사자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만 쳐다봤다.

그때 명월의 눈에 호접화의 오른쪽 머리 위쪽에 꽂힌 나비가 들어왔다. 전에 자희라는 기생이 보여 준 것하고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 장인 놈이 만든 거라는 건데…….

명월은 호접화를 흘깃 보다가 가판 아래쪽으로 눈을 내리떴다.

그곳에 옥빛으로 빛나는 장신구를 발견하고는 바로 집어들었다.

“참으로 곱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호접화의 오른쪽 머리에 대 봤다.

“그대하고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소.”

명월의 말에 호접화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나 싶더니 손을 들어 장신구를 집었다. 가느다란 침처럼 생겨선 위에 옥빛의 꽃이 피어 있었다. 수수하면서 은은한 맛이 있는 게 나쁘진 않았다.

“여인이 기뻐할 만한 걸 고르는 안목을 지니고 계시군요.”

“일부러 키운 안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오.”

“지금도 그렇지만, 꽤나 여자들을 울리시겠습니다.”

호접화의 말에 명월은 당치도 않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무에게나 호의를 흘리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진 마시오. 난 그저 그게 자네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집어든 것뿐이고. 그 나비로 된 것보다는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군.”

넌지시 장인의 물건에 대해 말을 꺼냈다. 아직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것일까. 호접화는 나비가 꽂힌 쪽으로 손을 올렸다.

“이 아이 말입니까.”

나비 장신구를 아이라 칭하는 말에 명월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자네에겐 소중한 물건이었던가.”

“소중하다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그리 말하곤 명월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옥빛 장신구를 가게 주인에게 건넸다. 그러자 사내가 그걸 양손으로 받아들고는 안쪽의 나무 판 위에 조심스레 올려놨다.

그곳엔 지금까지 호접화가 고른 것 같은 물건이 몇 개나 놓여 있었다. 저 정도라면 사 줄 수 있겠거니 싶었던 명월이 그런 호의를 표현하고자 호접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그녀가 나직이 속삭였다.

“사또. 기방 안에선 괜찮지만,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선 저와 가까이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분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입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익숙한 일이니 괜찮소.”

태연히 말한 명월은 품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면서 가게 주인에게 장신구들의 금액이 전부 얼마가 되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것에 가게 주인이 호접화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하길 머뭇거렸다. 그걸 본 명월이 괜찮다 말하려던 순간 호접화가 손을 들었다. 그 손짓에 가게 주인이 안쪽으로 들어갔고, 호접화는 손을 내리면서 명월을 올려다봤다.

“뭔가 궁금하신 게 있으십니까?”

장신구를 사 주는 것에 대한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눈치가 빠른 여자이니 빨리도 파악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막상 이런 식의 말을 듣게 되자 우물쭈물하게 된다. 명월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없소만.”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을 하고 계신 걸요.”

“…….”

“오랫동안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해 오다 보니 느는 게 눈치밖에 없답니다. 먼저 아는 척했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묻고 싶으신 게 있으면 어려워말고 하십시오. 제가 아는 것이라면 뭐든지 대답을 해 드릴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호접화의 입꼬리가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참 고운 여인이었다. 이만한 미색이 이런 산속 고을에 있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전에는 그 미모를 감탄하면서 멍하니 바라봤겠지만, 지금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떠오르는 자가 있었기에. 그걸 급히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노력하면서 명월은 부채를 펼쳐서 가볍게 펄럭거렸다.

이미 그녀는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으니 말을 가려 봤자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던 명월은 그녀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넌지시 물었다.

“자네는 이 고을에 언제쯤 왔나.”

“스물이 될 즈음에 와서 이제 여섯 해가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바로 호접화의 나이 계산이 된 명월은 의외라는 양 눈을 끔벅거렸다.

그걸 본 호접화가 소리 내 웃는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니네. 내가 어찌 여인의 나이를 두고 많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티가 나게 행동한 걸지도 모른다. 주의를 하자면서 계속 부채질을 하던 명월은 다른 걸 물었다.

“전에 자네가 말하길, 혈연이 없다고 했지. 그것과 관련해서 더 물어도 괜찮겠는가?”

“괜찮습니다만 자세한 대답은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연유로 가족을 잃었기에, 자세한 언급을 하게 된다면 제 신세가 위험해질 것 같군요.”

그냥 흘려 넘기기가 뭐한 말이었다. 자세한 언급을 하게 될 경우 신세가 위험해진다라. 그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호접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 그런 과거사가 있기 때문일까.

본인이 말하길 꺼려하는 것에 대해서 듣고자 한다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었다. 호접화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거운 관계가 되고 싶지도 않은, 미묘한 상태였던 명월은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면서 쩝―하는 소리를 냈다.

아주 잠시 고민을 한 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고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는가?”

“앉아서 듣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에 소문이니, 웬만한 것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장의사 이종원에 대해서 아나?”

“미치광이 이종원말이로군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말에 명월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 작자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조금 더 다녀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데서 의도치 않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더 듣고 싶어 하는 명월을 바라보며 호접화가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평판이 좋지 않은 자입니다. 어째서 찾아 가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가진 마십시오. 그자는 취향이 독특해서 사또처럼 아름다운 분 앞에선 진정을 하지 못하는 이랍니다.”

“……괜찮네. 난 의외로 힘이 세니까.”

그 장의사 놈이 남색을 하는 놈이었단 말인가.

얼굴이 이 모양이라 그런 놈들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놈들 죄다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에게 손가락 하나 대기도 전에 흠씬 두들겨 패주었던 거다. 장의사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자신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감을 드러내는 명월을 보고 호접화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사또께선 정말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말 많이 들어 봤네.”

재미있고, 괴팍하고, 이상하고, 상종하지 못할 놈 등등.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어 온 명월이었다. 으레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았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말을 하는 상대에 따라서 기분이 이리도 달라지는 법이라면서 명월은 호접화를 따라서 웃어 주었다.

* * *

촌락에서 조금 벗어난 길가에 허름한 초가집이 있었다. 그래 봤자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구분은 되어서 이 집에 사는 이가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니, 그걸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마음은 없었던 명월은 싸리문 앞에 서선 헛기침을 했다.

“아무도 없는가.”

입을 다물고는 안에서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묘하게 잠잠하다. 혹시나 싶어서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조용하다. 거기까지 파악한 명월은 싸리문을 슬쩍 밀었다.

“실례하겠네.”

살짝 눌러 봤을 뿐인데도 문이 활짝 열린다.

마당으로 들어가면서 명월은 뒷짐을 지었다

“난 분명히 누가 없느냐고 묻고, 실례하겠다고도 했네.”

그러니 이건 무단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해야만 했다. 전에 장인 놈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게 아직도 억울한 명월이었다. 한 번 억울한 취급을 받다 보니 이번에도 그딴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냥 이쯤에서 밖으로 나가야 할까. 명월은 뒤를 돌아봤다.

저기 멀리로 다른 초가집도 더러 보였다. 사방이 트인 곳이니 들어와 있어도 괜찮겠지. 그래도 일단은 마당에 있는 평상에나 앉아 있을까. 하지만 저런 곳에 앉아만 있는 것도 눈에 띄지 않겠나 싶던 명월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건 상당히 답답했다. 그때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명월은 바로 그리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부엌인 것 같은 곳 안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재차 들린다.

……설마 저런 곳에 있나.

호접화에게 이미 이상한 사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자라면, 누군가 찾아온 걸 보고 바로 몸을 숨긴 걸 수도 있었다. 숨었다면 저런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건 뭔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어쩌면 수작을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명월은 부엌 쪽을 노려봤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소리가 딱 멈췄다.

잠잠한 그쪽을 살피면서 명월은 일단 걸음을 옮겼다.

지금 무기라고 해 봤자 들고 있는 부채가 고작이었다. 이런 걸로는 어린애를 위협할 수도 없을 테지만―. 명월은 부채를 단단히 잡은 채로 부엌 문 앞에 서선 안쪽의 인기척을 살폈다.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 수상쩍었다.

“거기, 누가 있는 건가?”

물으면서 안쪽을 살피는데 조용하다. 그때 오른쪽에서 타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명월은 바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 재빠르게 초가집 뒤로 넘어가는 걸 발견했다. 원래 누군가 도망치거나 몸을 피하는 걸 보게 되면 그 뒤를 쫓게 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명월은 그랬다. 거기에 멈추라는 말도 하지 않고 당장 뒤부터 쫓았다.

저자가 이종원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 자신을 보고 도망치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뭔가 구린 놈들이 저런 식으로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겠느냐면서 명월은 안색을 굳혔다. 그렇게 한달음에 뒤까지 따라붙어선 놈의 어깨를 붙잡는 순간, 명월은 그대로 손목이 잡혀서 앞으로 당겨졌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명월은 손쓸 틈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어, 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뒤쪽의 작은 마루에 눕혀지게 되었고, 그 위로 사내가 올라탔다.

명월의 가슴을 잡아 단단히 누른 사내는 고개를 숙여왔다.

“이 예쁜이는 대체 뭐지?”

그리 묻는 사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곱실거리는 머리를 대충 풀어낸 사내는 마르고, 눈 아래가 퀭하게 죽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나약한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멱살을 잡은 손에는 힘이 단단히 들어가 있었다. 상대의 손목을 붙잡긴 했으나 그걸 떨어뜨릴 수 없었던 명월은 당혹감을 드러내면서 그를 올려다봤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상대가 더 환하게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이 징그럽기만 했던 명월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진다.

명월은 그대로 사내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났지만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월에게 맞아서 주먹이 얼굴에 딱 붙은 채인데도 그게 좋은 듯 더 환하게 웃는다.

“너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사내는 명월의 주먹에 얼굴을 비볐다. 맞아서 아플 텐데도, 오히려 그 손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것에 당황한 명월은 헛숨을 삼키며 바로 손을 뗐다.

“꿀처럼 다디단 향이 풀풀 나는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는 고개를 숙여 명월에게 조금 더 다가오려 했다.

복운에게도 말했다시피, 아리따운 낭자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접근은 역겨웠다. 명월은 몸부림을 치면서 놈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라도 되는 양 명월 위에 떡하니 버텨선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명월이 있는 힘을 다해서 움직여도 몸이 조금만 들썩일 따름이었던 사내는 계속해서 킁킁 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침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좋다. 좋아. 정말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넌 분명히 맛있을 거야.”

그리 말한 사내가 웃었다.

벌려진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웃음은, 킬킬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괴이쩍은 것이었다. 명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놈을 노려봤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당혹스러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내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었고,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힘도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제정신인 상태가 아니었다. 이건 분명히―.

“그리 썩 좋은 구경거리는 아니로군.”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도록 하는 낮은 목소리에 명월은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옮겼다. 그러자 마루 옆의 기둥에 한쪽 어깨를 기댄 채로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이마에 검은 끈을 두른 사내는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다. 바라보는 강렬한 눈매를 확인한 명월은 너, 하고 중얼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올라탄 놈 때문에 다시 딱딱한 나무 마루에 뒷머리를 내렸다.

“곤란해 보이는군. 도와줄까?”

그리 물은 장인 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지금 이상한 놈 아래에 깔려서 정조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명월은 장인 놈의 저 뻔뻔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 일단 도와주기부터 해야 했다. 그런데 저놈은 저기에 서서 느긋한 시선을 보내올 따름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확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면서 명월은 위에 올라탄 놈을 노려봤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재차 놈의 입술을 타고 킬킬킬, 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명월은 재차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오른손이었다.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자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얼굴이 크게 들썩였다.

처음과는 다른 충격에 잠시나마 사내는 비틀거리는 것 같았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그저 몇 번 눈을 끔벅거리나 싶던 그는 눈을 내리떠선 명월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흐릿하게 풀려있던 눈동자 안쪽으로 빛이 번지나 싶더니 그가 명월의 멱살을 놓고는, 대신해서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여기에다가 뭔가를 숨겨 놓았구나!”

“우아아악!”

그냥 달려드는 것도 끔찍한데, 오른손을 붙잡고 그곳에 얼굴을 가까이 붙이는 놈의 행동에 명월은 재차 소름이 돋았다. 끔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명월은 놈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주먹으로 등을 치고 발로도 차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놈은 뭔가에 홀린 것마냥 명월의 오른손을 세게 움켜쥐고는 검은 가죽을 노려봤다.

“이런 건 방해다!”

그리 외치면서 명월의 오른손바닥을 감싸는 가죽을 벗겨내려 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혐오감을 느끼며 명월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당장 내 손에서 떨어지라고 했잖―!”

그 순간 뒤에서부터 뭔가가 빠르게 다가와선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 위로 들어올렸다. 명월의 오른쪽 손목을 붙잡고 이를 세워서 가죽을 벗겨내려 했던 놈은, 갑작스럽게 들려지자 놀라선 뒤를 돌아봤다.

장인과 시선이 부딪치는 짧은 순간, 놈의 눈동자가 파들거리면서 떨린다. 마치 붙잡힌 개구리마냥 팔과 다리를 펄쩍 뛴 놈이 “너, 너는―!”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장인이 그를 안으로 집어던졌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문짝째로 방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데굴데굴 구르던 놈이 벌떡 일어나서 도망치려던 순간, 장인이 당장 방 안으로 들어가 놈의 뒷덜미를 재차 잡았다. 그러곤 지저분한 방 가운데로 패대기를 치고는 그 몸을 인정사정없이 밟아댔다.

체격의 차이가 두 배는 날 것 같았던 장인이 사내를 밟아대는 모습은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멍하니 있던 명월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마루 위에 올라선 명월은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놈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죽이면 안 돼!”

그 순간 놈의 목을 밟으려 하던 장인이 멈추었다.

이미 개구리처럼 좌악 뻗어 버린 놈의 머리 바로 위에서 발을 멈춘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선 명월을 바라봤다.

죽이면 안 된다고?

그리 묻는 눈빛에 명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저자가 장의사 이종원일 수도 있었다. 그자에겐 물어볼 게 있었다. 그래서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인은 그런 명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금 전의 씨름 때문인지 도포 앞섶은 반쯤 풀려있고 갓도 뒤로 넘어가 있었다.

바라보는 장인의 시선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일까. 명월은 눈을 내리뜨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고, 목에 갈려 있던 갓을 풀어선 그냥 마루에 던지듯이 놓았다.

“그자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니까, 그쪽이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다.”

“그런 거 상관없이 내가 이놈을 죽이겠다면 어쩔 텐가?”

오만한 장인의 말에 명월의 눈썹이 꿈틀하고 흔들렸다.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되었다. 일단은 숲의 작업실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다 알려진 놈이 왜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건가에 대해서 집중해야만 했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저 미친놈을 인정사정없이 밟아대는 걸 보아하니 분명 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애초에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 여길 온 거냐.”

“글쎄. 내가 왜 여기에 있었던 걸까.”

두들겨 패는 것만 보면 죽일 마음 한가득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명월은 장인 놈을 보다가 눈을 내리떴다. 기절한 채로 미동이 없는 놈은 떡이 되어 있었다. 혀를 찬 명월은 손을 저었다.

“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놈하고 승강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원래 목적은 그놈이다. 그러니 그쯤하고 내 눈앞에서 썩 물러나라. 조용히 물러난다면 이번에는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주겠다.”

“이번에는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주겠다는 건, 언제고 날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이냐.”

“물론이지.”

단호히 말한 명월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못 잡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물론 놈이 보통 인간이 아닌 듯싶으니 그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명월은 눈에 힘을 준 채로 장인을 노려봤고, 내내 무표정으로 있던 그의 입꼬리가 조금 위로 올라갔다.

“알량한 자신감이로군.”

“…….”

왜일까. 그 순간 명월은 너무도 기분이 나빠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가 않았던 명월은 당장 앞으로 몸을 내밀면서 잇, 하는 소리를 냈고 그 순간 상대가 움직였다.

몸을 돌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나 싶더니만 어느새 코앞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붙잡아서 패대기를 치고 싶었으나, 막상 이리도 가까이 다가오자 몸을 사리게 된다. 놀라선 움찔하고 몸을 떤 명월이 뒷걸음질을 치기가 무섭게 바로 멱살이 잡혔다.

안 그래도 엉망이 된 도포였다. 더는 그런 식으로 잡아당기지 말라 하려는 순간, 뒷목이 잡힌 채로 입술에 말랑한 뭔가가 닿았다.

“…….”

입술을 짓누르는 낯설고 이상한 감각에 명월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대체 뭔가 싶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것마냥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명월은 멍청하니 있었고, 그러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놈의 눈동자를 봤다.

칠흑처럼 검다고 여겨졌던 놈의 눈동자가 은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그 묘한 동공을 확인하는 순간 명월의 뒷골을 타고 소름이 올랐다. 아까 저 이상한 놈이 달라붙을 때에 느껴졌던 감각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한 명월은 당장 붙어 있는 놈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 전에 손목이 콱―하고 잡혔다. 손목이 얼얼하니 아플 정도로 세게 붙잡아 오는 손길에 명월은 저도 모르게 억, 하고 신음이 튀었으나 입술이 막혀 있어서 읍읍―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는 동안 입술은 더 세게 비벼지며 짓눌렸고, 어느새 명월은 방 안으로 끌어당겨졌다. 벽으로 밀쳐진 명월은 양 손목이 잡혀서 벽에 눌려진 채, 계속해서 입술을 빼앗긴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입술을 문질러대더니 그 사이로 혀가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안쪽의 혀를 건드리는 순간 화들짝 놀란 명월은 바로 이를 악물었다. 조금 더 빨랐다면 놈의 혀를 잘라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 전에 빠져나갔다. 오히려 명월이 한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딱 다물어진 치아를 혀로 핥아댔다.

입술에 힘을 줘 보려 해도 억지로 파고드는 혀를 막을 순 없었다. 치열을 열심히 혀로 꾹꾹 누르듯이 핥아대면서 윗입술을 잡고는 세게 빨아들인다. 입술이 얼얼할 정도의 통증에 명월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이상한 놈들의 집적거림을 당해 보긴 했지만, 이런 식의 추행은 처음이었다. 남자와의 입맞춤이라니―!

너무도 끔찍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명월은 다리를 움직였다. 무릎을 세워서 놈의 옆구리를 가격하려 몸을 비틀어대도 워낙에 세게 벽에 밀쳐진 채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놈이 일부러 그런다는 양 허리를 꾸욱 붙여왔다.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놈의 아래에서 벗어나려 하던 명월이 행동을 딱 멈추었다. 놈의 사타구니가 닿은 곳으로, 이상한 물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딱딱하면서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는 그것은 분명―.

명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얼굴이 백지장마냥 하얗게 질린 명월은 경악으로 눈을 치뜬 채, 얼어붙었고, 그 순간 놈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비웃고 있다. 명월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놈이 방심한 틈을 타서 있는 힘껏 앞으로 머리를 뻗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윽―하고 신음을 흘리면서 떨어졌다.

놈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서 놈을 밀어내고 아래에서 빠져나온 명월은 주먹으로 입술을 문지르다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얼얼한 이마와 코를 손으로 더듬으면서 놈을 노려봤다.

“더럽게―!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어찌 남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명월이 오만상을 쓴 채로 노려보자, 장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양 미간 사이로 짙은 주름을 만들었다.

“난 도와준 거다. 그런데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거냐?”

“도와준 거라고?! 이 망할 놈의 난봉꾼 놈이―!”

지금 당장 저놈의 목을 비틀어 버리지 않으면 가슴을 가득 채우는 이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 거다. 어금니를 악문 명월은 당장 놈에게 달려들려 했고, 짧은 코웃음을 친 놈이 가볍게 뒤로 몸을 날렸다. 부웅 뜨나 싶더니 순식간에 뒷마당으로 착지한 놈이 명월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몸 간수 잘 해라. 아까 그놈이 말한 대로 너한테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 재수 없다가는 잡귀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니, 그 전에 알아서 몸 간수를 하도록 해라.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 하려는 순간, 놈이 손가락 두 개를 들어선 명월을 가리켰다. 움찔한 명월이 가만히 있는 틈을 타, 그가 뒷말을 이었다.

“위험한 일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 안 그랬다간 제명에 못 살 거다.”

“그 전에 네놈 목숨 걱정이나 해라!”

이를 악문 명월은 놈을 붙잡기 위해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놈이 무릎을 구부리나 싶더니 가볍게 위로 뛰어 올라갔다. 놀란 명월이 고개를 들자 놈은 지붕 위에 올라앉은 채로 세운 무릎에 한쪽 팔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 굼떠서야 어찌 날 붙잡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남긴 후, 놈은 바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명월은 크게 입을 벌린 채로 굳어 버렸다.

장날에 만날 땐 그나마 사람 흉내를 내더니만, 그게 성가셔 졌는지 아예 노골적으로 제 정체를 드러낸다. 저래서야 어찌 놈을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당장 놈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해결을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 명월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다 좀 전에 놈의 혀가 닿았던 느낌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그래도 그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행위였기에 기분이 무척 언짢고 더러웠던 명월은 입 안에 침을 모아서 그대로 뱉었다. 몇 번이나 퉷퉷, 거리던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입 안을 헹굴 곳은 없는 건가 싶었던 그는 신음 소리에 급히 방 안쪽을 살폈다. 떡이 되어서 쓰러져 있던 놈의 어깨가 부들거리면서 떨리는 게 보였다. 정신을 차린 건가. 하지만 아직은 깨어나선 안 되었다.

명월은 당장 방 안으로 달려가선 놈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쳤다. 억, 하고 신음을 흘린 놈이 다시 기절한 걸 확인한 명월은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채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아―.”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엄습한다.

동시에 그 망할 장인 놈이 한 말이 떠올랐다.

위험한 일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말, 말이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이 이상한 행동을 취하고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중간에 멈춘다고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장인 놈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멀찍이 진행이 된 듯한 이 느낌은 뭘까. 명월은 눈을 내리뜨곤 쓰러져 있는 자를 노려봤다.

* * *

늦은 시간 내동헌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움직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동헌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이방 한소규의 믿음직스러운 식솔들이었다. 잠시 동안 한소규의 딸이 내동헌 안쪽의 깊숙한 곳에 머물러 있었으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나가는 거였다. 그걸 알기 때문에 명월은 그들이 움직이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내다보지 않았다. 동헌을 순찰하는 포졸들은 뒤쪽 자리에서 몇몇 빼 두었으니 저들이 큰 소리를 내거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저들이 여기에 있다가 다시 나간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나름의 호의를 베풀어 이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남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이방 한소규는 모든 걸 포기한 것마냥 굴었고, 그런 그를 붙잡고 마음을 바꾸라 할 수도 없었다.

이 고을엔 뭔가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죄 없는 낭자가 죽게 생겼다.

사또로서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냥 모르는 채로 머물다가 떠나라.

누군가 그리 말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사또.”

닫힌 문밖에서 들리는 부름에 명월은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가만히 있는 동안에, 문밖에 서 있던 자도 미동이 없다.

그러는 동안 재차 그가 사또, 하고 부르며 말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마음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만 썼지, 결과적으로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인사는 그만 하고 가게나.”

그 말에 한소규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조용히 있나 싶던 그는 재차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곤 느리게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가 떠나고 난 후 명월은 서책을 덮었다.

방 안을 밝히는 건 양초 하나뿐이었다. 그 양초도 점점 짧아지면서 방은 어두워졌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나 싶던 명월은 서책을 누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은 가죽을 두르고 있는 오른손. 그걸 유심히 살피던 그는 손을 움켜쥐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마당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이방은 떠난 거다.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게 될 거다. 하지만 그리 한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잘 마무리 지어진 건 아니었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냥 지나치고 말아야 하는 지금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명월은 안색을 굳혔다.

답답한 상황이라면, 그걸 해소하면 되는 거다.

이런 일에는 휘말리지 말자고 스스로 결심을 했지만, 어차피 이번 한 번뿐이었다. 이 일만 마무리 지으면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다. 물론 그 망할 장인 놈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건 차차 처리하면 되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안색을 굳힌 명월은 바로 목화를 신고 대청에서 내려왔다.

“복운아.”

이름을 부르자 몸을 숨기고 있던 복운이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대답을 하는 복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평소와 달리 말대꾸를 하지 않고 긴장된 얼굴로 눈을 내리뜨고만 있는 복운을 확인한 명월은 뒷짐을 지고는 가자, 라고 짧게 말했다.

* * *

관아 안쪽으로 감옥이 있고, 그 지하에는 또 다른 감옥이 있었다.

죄질이 무거운 죄수들만 수감하는 장소로, 고문을 할 수 있는 기구들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명월은 본인이 그것들을 사용하게 될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험악하게 생긴 것들이 널려 있구나 싶어서 한번 정리를 해 두라 지시를 내린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시를 미리 내려 두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뒷짐을 진 명월은 양팔이 위로 묶여서 천장에 매달려 있지만, 두 다리는 칭칭 동여매져서 바닥에 닿아 있는 사내를 확인했다. 밤에 보니 훨씬 더 추레한 얼굴이었다. 이런 놈이 달라붙어서 추행을 하려 했던 걸 떠올리면 속이 메슥거린다. 그 장인 놈이 입술을 비비던 걸 떠올리면 열불 나 죽겠고 말이다.

안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보기 싫은 얼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볍게 두들겨 패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을 하며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매달려 있는 사내 뒤쪽에 숨죽인 채로 서 있던 복운은, 명월과 시선이 부딪치자 크게 움찔하고 몸을 떨면서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러곤 기절한 사내의 목 뒤에 엄지를 대고 꾸욱 눌렀다. 그러자 매달려 있는 사내가 신음을 흘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명월이 말했다.

“이만 되었으니 넌 올라가 있어라.”

“……제가 곁에 있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묶여 있다고 하나 사내와 명월을 단둘이 두는 건 불안했다. 앞으로 명월이 무엇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이곳에 남아 있는 편이 마음은 편할 듯싶어 그리 말을 꺼낸 것이지만, 돌아오는 건 차분한 눈빛이었다. 여러 말 하게 하지 말고 그냥 올라가라니까. 그리 말하는 눈빛에 마른침을 삼킨 복운은 고개를 꾸벅이면서 몸을 돌렸다.

복운이 낡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걸 확인한 명월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사내가 신음을 흘리면서 천천히 눈을 뜬다. 퀭, 하게 들어간 눈빛을 확인한 명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놈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명월은 아차 싶었다.

“아, 미안하군. 저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어.”

아무래도 당한 일에 아직도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이리라.

꽤나 매운 명월의 손찌검에 신음을 흘린 놈이 가볍게 고개를 틀었다. 눈을 뜨자마자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던 듯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자를 앞에 두고 명월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래.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자네 이름이 장의사 이종원인가?”

일단 질문을 던지고 나서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놈이 여전히 풀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늦은 시간에 분위기도 칙칙한 곳에서, 심미안에 맞지도 않는 추레한 놈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건 꽤나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그러니 괜히 시간 끄는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왜 이렇게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내색하진 않아도 이놈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풀풀 나고 있었다. 그걸 참고 이리도 가까이 붙어 서 있는 건데 그걸 몰라주면 어떻게 하나 싶었던 명월은 손을 움켜쥐었다가 펼쳤다. 그냥 한 대 시원하게 올려쳐 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놈이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

“…….”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멀쩡했다. 거기다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울먹거렸다.

“여, 여기가 대체 어디인 겁니까. 당신은 뉘십니까.”

그리 묻다가 사내는 명월의 옷차림을 위, 아래로 훑어봤다.

관복을 입고, 전립까지 쓰고 있었다. 특색 있는 옷차림만 봐도 그가 누군지 바로 감이 온다. 사내는 더럭 겁을 먹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또십니까? 제가 지금 관아에 끌려온 겁니까?”

묻고 난 후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다물린 입술 안쪽으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온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낭패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싶은 모양새로 있는 걸 본 명월이 웃었다.

양 입꼬리를 올리며 차분하게 웃는 얼굴을 본 사내는 움찔하면서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퀭하니 마른 놈이 눈만 크게 뜨니 멸치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명월은 물었다.

“그래. 여기는 관아고, 지금 자네는 죄를 지어서 이곳에 와 있는 거네.”

“죄, 죄를 짓다니요. 그런 거 모릅니다. 전 지금까지 해야 할 일만을 충실하게 해 온 사람입니다. 죄 같은 걸 지을 새도 없었습니다.”

“자자, 너무 그렇게 겁먹을 거 없네. 일단은 내가 묻는 말에 대해서 거짓 없이 솔직하게만 말할 수 있다면 자네는 금방 여길 나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언제 여기서 나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네.”

“그 말씀은……제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죽다니. 그 무슨 험악한 말을 하는 겐가. 내가 사람을 죽일 만한 악독한 탐관오리로 보이는가?”

입을 다문 명월은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두운 곳은 등불로만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은은한 불길로도 충분히 확인이 될 만큼 명월은 곱디 고운 얼굴을 지녔다. 원래 보기가 좋은 걸 앞에 두고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풀어지기 마련으로, 사내도 그런 상태가 된 듯 금방 몸에 들어간 힘이 빠져나갔다. 그걸 확인한 후, 명월이 물었다.

“자네가 장의사 이종원인가?”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는 목소리가 한풀 꺾여 있었다. 솔직하게 대답을 해도 괜찮은 거겠지. 그리 묻고픈 얼굴로 바라보는 것에 명월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른침을 삼킨 그가 눈을 굴려댔다. 그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명월이 재차 물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이 고을에서 살면서 아주 많은 장례를 도운 걸로 알고 있네. 그 중에서도 염에 관련해선 아주 실력이 좋은 자이고 말이야.”

“염을 할 줄 아는 이들은 저 말고도 여럿입니다. 그들 중에서 제가 가장 실력이 좋다고 할 순 없습니다.”

“진정 실력이 있는 자들만이 그리도 겸손할 수 있는 거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부끄럽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명월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시선을 느끼며 명월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 작년에 물에 빠져 죽은 아가씨는 왜 그리 된 것인가.”

잠시 이종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어찌 아는 것인가,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일을 솔직하게 말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듯, 잠시 망설임 후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건 사고였습니다. 사또.”

“눈이 내리던 날 동사한 일가도 사고였던 것인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죠. 갑작스러운 일이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슬퍼했습니다.”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멧돼지를 만나 변을 당한 낭자도 그저 사고인 건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모두 하늘에 달린 게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고 슬픈 사고였습죠.”

“그렇지. 그런 안타깝고 슬픈 사고가 한 해에 한 번씩은 꼭 벌어지지. 그리고 올해의 희생양은 이미 결정이 지어진 것 같고 말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대답을 하면서 이종원은 눈을 끔벅거렸다. 진정 모르겠다는 양 구는 모습에, 바로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눈을 가늘게 뜬 명월은 악문 이 사이로 거칠게 내뱉었다.

“이 잡귀 놈아. 인간한테 들러붙어서 모르는 척하면, 내가 못 알아볼 것 같았느냐. 지금 이 순간에도 네놈에게서 풀풀 나는 썩은 내 때문에 내 귀한 코가 썩을 것 같단 말이다.”

명월의 말이 갑작스러웠던 걸까. 놀라고,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나 싶던 이종원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이 빌어먹을 놈이.”

그 순간 이종원의 얼굴이 올록볼록 올라왔다. 마치 피부 안쪽에 뭔가가 있어 바로 튀어나올 것처럼 움직이는 피부가 점점 검게 변색 되더니, 이종원의 입을 타고 쇠가 긁히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귀여워서 데리고 놀아주려고 했더니만, 지금 날 능멸하는 것이더냐! 애송이놈! 네놈은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먹고 남은 뼈는 뒷산에 뿌려서, 죽어서도 극락왕생할 수 없도록 해줄 테다!”

큰 소리를 치니 침이 튄다.

뒤로 한걸음 물러나서 더러운 침을 피한 명월은 씩씩 거리는 놈을 노려봤다.

“헛소리는 똥 눌 때에나 하고, 지금은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그 순간 놈이 코웃음을 치면서 바로 입을 다물었다.

눈도 붉게 충혈된 놈은 ‘네가 원하는 대답은 그 무엇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뻔뻔한 얼굴을 보는 순간 명월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기 싫으면 하게 만들면 되는 거지.”

명월은 본인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검은 가죽으로 감싸인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그걸 위로 올렸다.

손목을 감은 부분을 풀어내고 위를 잡아서 가죽을 벗겨내는 순간, 매달려 있던 놈의 표정이 변한다. 움찔하나 싶던 놈은 곧, 본인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양 명월을 노려봤다.

“뭘 하는 거냐.”

“이 손이 가지고 싶다고 했으니……한번 가져 봐라.”

나직이 속삭인 후 명월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높이 손을 들었다.

그걸 본 놈은 반사적으로 크게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으, 으아아아악―!”

비명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명월의 손이 빠르게 내려와 놈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비명에 복운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지금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불안했다. 이상한 놈하고 명월을 함께 둔 게 과연 잘한 일인가도 싶었고 말이다. 지금이라도 내려가 볼까. 그랬다가 한소리 듣는 건 아닐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내 무슨 일이 생긴 후에 내려가 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던 복운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래. 맞아.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해 봤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야. 그리 생각한 복운은 당장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한달음에 내려간 복운은 “사또!” 하고 외치면서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놈을 고문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맡겨 달라 말하려 했던 복운은, 막상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달려 있던 놈이, 밧줄이 죄 풀린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아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던 거다. 그런 놈의 앞에 서 있는 명월은 팔짱을 낀 채로,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 고개만 들어 쳐다보는데 민망해 죽을 것 같다.

자신이 들어와선 안 되는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복운은 손을 마주 잡았다.

“아니, 그것이, 비명이 들리니까…….”

그래서 사또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사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빚어진 일이니 이해를 해 달라.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쭈물거리는 동안, 명월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선 이종원 앞에 두었다.

탁, 하고 의자가 놓이는 소리에 놈의 몸이 움찔하고 떨린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걸 꾹 참은 그는 허벅지 위에 양손을 올린 채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명월은 의자에 앉아 말했다.

“그래. 솔직하게 다 말해 봐라. 이 고을에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묻는 말에 이종원은 머뭇거렸다.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고민이 되는 얼굴로 있는 그를 두고 명월이 혀를 찼다.

“네놈을 생각해서 잠시 머물러 있던 놈까지 쫓아내 주었는데, 네놈은 그 은혜를 갚지도 않을 셈이냐.”

“……잘못 입을 놀렸다간 제가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 없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명월은 혀를 찼다.

“내가 알아서 해결을 한다고 하지 않더냐.”

그 말에도 이종원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고, 그것에 한숨을 쉰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계단 앞에 서 있는 복운과 시선이 부딪쳤다.

분명 올라가 있으라 했는데도 멋대로 내려와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거였다. 명월과 시선이 부딪친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복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당장 고개를 돌리곤 휘파람을 불어댔다.

모르는 척해도 일단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였던 명월은 손가락을 들어선 본인 귀를 두드렸다. 그 손짓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았던 복운은 눈치를 살피면서 양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명월의 시선이 치워지지 않자 더 세게 귀를 눌렀다. 그러곤 정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고개를 저어대자, 그제야 명월이 눈을 내리떴다.

재차 명월의 시선이 닿자 이종원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저러다 턱이 가슴에 붙게 생겼다면서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인 인간만 염을 하다 보니 그런 너에게도 잡귀가 들러붙는 것이다. 그놈은 네 자아를 억누르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려 들었겠지. 그러다 보면 네놈 하나 죽는 걸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냐. 결국엔 죄 없는 사람들도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

“처음 시작이 어땠는지 난 모른다. 그냥 이 고을 안에서 벌어지는 괴이쩍은 일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을, 내가 널 이리로 데리고 온 것에서부터 이미 모든 것들이 차고 넘쳐나기 시작했던 거다. 언젠가는 그 일이 한 낭자뿐만이 아니라, 이 고을에 사는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거다.”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귀한 목숨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눈에 빤히 보이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더군다나 얌전히 있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게끔 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 생각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한 명월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상, 나도 이 고을 사람이다. 그런 내게 뭔가를 말한다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네놈에겐 아무 문제도 없을 거다. 일이 생기려거든 그건 내게 벌어지겠지.”

그제야 이종원은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맑고 깨끗했다. 아까처럼 혼탁하고 부옇지도 않고, 광기가 서려 있지도 않았다. 백치처럼 말간 눈동자는 마른 사내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명월이 조금 더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발설한 건 모두 비밀로 할 것이다.”

입을 다문 명월은 진지한 눈빛을 보냈다.

눈빛은 마음의 창이었다. 흔들림 없이 곧은 명월의 눈동자를 보고 뭔가가 느껴진 것일까. 한결 누그러진 상태가 된 이종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사또께선 인간이 아니신 겁니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명월은 가만히 있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대답 없이 그저 웃기만 하는 얼굴을 바라보던 이종원은, 아주 오랜 고민을 하고 난 후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 * *

유난히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농담 조금 섞어서 손가락 마디만 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그때마다 바닥의 흙이 깊게 패일 지경이었다. 원래 이런 날에는 파전을 지진 후에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리고 시원하게 들이켜야 하는 법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비가 내리는 건 기분 나쁘긴 하다만, 이런 날엔 심신이 나른해져선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늘어진 상태가 되기 마련이었고 그건 관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밤늦게까지 비가 멈추지 않자 보초를 서던 이들은 한기를 느끼거나 꾸벅꾸벅 조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아랫사람들이 그러니 윗사람이라고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임 사또인 명월의 방 불은 진즉에 꺼져 있었다. 조용한 그곳을 보고 뭐라 하는 이들은 없었다. 날이 궂을 땐 할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게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러가 늦은 새벽이 되었을 땐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밤은 깊었고, 보초를 서는 이들도 잠시 졸음에 빠져들 무렵이었다. 주변이 조용하고 모든 것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럴 때 곳간의 문이 살짝 열렸다.

검은 그림자는 주변을 살피면서 안쪽으로 살금살금 들어왔다.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큰소리를 내선 안 되었기에 그 몸놀림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앞으로 이동해서 물건을 뒤적거리다가 그쪽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뒤적이다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벽을 더듬었다. 몇 번이나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던 양, 어두운데도 그는 능숙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신중하게 벽을 더듬나 싶었을 때, 그의 손놀림이 딱 멈추었다. 조심스럽게 벽을 쓰다듬자 재차 달칵―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벽이 옆으로 밀려났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리고 그곳으로 손을 넣은 사내는 작은 상자를 끄집어냈다.

힘들게 찾던 걸 손에 넣어서 감회가 새로웠던 걸까. 양손에 들린 걸 멍하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이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하는 순간에 그는 멈춰야만 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또 다른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피하려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몇 걸음 가지 못해서 뒤에서 뻗어진 손에 붙잡히게 되었다.

“큿―!”

짤막한 신음을 흘린 사내는 몸을 비틀면서 벗어나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더 강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 복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소리 내지 마시오. 여기서 들통 나면 곤란한 건 이방 나으리요.”

나직한 중얼거림에 이방 한소규의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진다.

그러는 사이에 앞에 서 있던 이가 천천히 다가와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으로 넘어가는 상자를 바라보는 이방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동안, 상자를 손에 넣는 것에 성공한 명월은 그걸 유심히 살폈다. 그러곤 고개를 든 명월이 한소규를 노려봤다. 나누고픈 대화가 참으로 많았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명월은 옆으로 턱짓을 했다. 그걸 본 복운이 이방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먼저 곳간을 나섰다. 혼자 어두운 곳에 남겨진 명월은, 조금 전 이방이 달라붙어 있던 벽 앞으로 가 그 안쪽을 유심히 살폈다.

곳간은 원체 넓었고, 빈 공간도 많았다. 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이런 공간이 필요했던 건가 싶었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다봤다. 의외로 가볍다. 그걸 흔드나 싶던 명월은 열려져 있던 비밀 문을 닫고는 조용히 곳간을 빠져나왔다.

명월이 앉아 있고, 그 앞으로 이방 한소규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복운이 괘씸하다는 양 눈에 힘을 준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방이 왜 또 그곳으로 은밀히 들어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한 번 알고서도 모르는 척을 해 주었다. 그런데 재차 도둑질을 하려 하다니―. 그 사실 자체가 괘씸했던 복운은 거세게 콧김을 내뿜었다.

“역시나 이놈은 어쩔 수 없는 도둑이었던 겁니다. 전에 사또께서 눈감아 주신 은혜도 모르고 재차 이런 짓을 벌이다니요. 이번에야말로 모두에게 알려서 확실하게 창피를 당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짓을 또 하지 않을 겁니다.”

마음 같아선 여기가 관아니까, 당장 이방을 감옥 안에 처넣고 싶었다. 이것들이 명월이 신입이라 무시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 같았던 거다. 명월이 그렇게 하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당장 끌고 나갈 마음이었지만, 명월의 입은 무겁게 다물려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선 이방을 바라보는 그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이방은 무릎을 꿇고 앉아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제 잘못을 잘 아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있다 한들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한 번 더 이놈을 혼내 주자는 말을 꺼내야 하는 건가 싶을 때 명월이 입을 열었다.

“복운아. 넌 잠시 나가 있거라.”

“이놈이 뭔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뭔 짓을 하진 않을 거다. 이제는 말이야.”

의미심장한 말에 복운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명월이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거라면 자신에게도 미리 말을 해 주는 편이 낫지 않은가. 힘을 쓸 때에만 사람을 부르고 중요한 순간에는 나가라 하고, 귀를 막으라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서 명월이 내린 명을 어길 수 없었던 복운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그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 맞춰서 명월이 상자를 본인 앞에 내려놨다.

탁, 하는 무거운 소리에 이방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린다.

그 반응을 눈에 담으며 명월이 물었다.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했으면서 딸을 살릴 방법을 찾고 있었군.”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는 대신에 이방은 바닥에 대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양손을 움켜쥐나 싶던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고, 그에 맞춰서 명월이 재차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다른 집안의 귀한 딸을 희생시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이방의 벌어진 입술을 타고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몇 번이나 동요를 하게 되는지, 망설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아니오라―.”

“내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게. 그래야 자네 딸을 살릴 수 있을 거야.”

단호한 명월의 말에 이방 한소규는 당장 입을 다물었다.

명월은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 담겨 있던 건 피가 검은 얼룩처럼 남아 있는 붉은 댕기였다. 촛불로 비추어지는 댕기 위로 음영이 서리면서 왜인지 모를 음산함을 풍긴다. 그걸 확인한 명월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히고, 이방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저것이 본인이 원하던 것이었으나, 막상 직접 보기는 힘든 양 안색이 파리하게 질리고 만다. 그걸 본 명월이 상자를 조금 더 밀어냈다.

“왜 피하는 건가. 이게 바로 자네가 원했던 게 아닌가.”

이방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찌할 것인가 싶어서 몸을 덜덜 떨던 그는 바로 바닥에 엎드리곤 큰 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딸을 살리기 위해서 짐승의 짓을 하려 했습니다! 절 이 자리에서 죽여 주십시오! 하지만, 제 딸만큼은―!”

“네놈을 죽이고 나서 네놈의 딸을 살려 달라는 것이냐. 네놈의 원래 계획대로 이 댕기를 다른 낭자에게 하게 한 후에, 제물을 바꾸라는 것이더냐.”

헛숨을 삼킨 한소규의 어깨가 단단히 뭉치는 걸 확인한 명월의 눈빛이 더 차갑게 변했다.

“이 고을의 일이라 한들, 그것이 언제까지 비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다보면 말은 새어나기가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비밀은 없고, 이방이 손을 쓴다 해도 그걸로 정말 딸을 지켜 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가 하는 짓은 괜한 희생을 둘로 늘리는 짓밖에 될 수가 없었다. 그럴 거면 문제의 근원을 잘라내는 게 옳은 게 아니겠는가.

“애초에 잘못이 되었을 때, 그걸 바로 고쳤어야 했던 게 아니더냐.”

“……고치고 싶었습니다. 왜 고치지 않으려 했겠습니까. 하지만 워낙에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풍습인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걸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건 저희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겠지. 본인이 아닌 남이 당했으면 불안을 느끼면서도 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렸을 테고, 본인 일이 되면 그때부터 미치는 거지.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전에 한 짓이 있으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자네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된 거야.”

명월은 댕기를 빼서는 그걸 이방에게 집어던졌다.

날아오는 댕기를 본 이방은 사색이 되어선 소리를 지르며 당장 엎드렸다. 그런 그의 몸 위로 걸쳐진 붉은 댕기가 요사스럽게 빛나는 것 같았다. 그 댕기에 묻은 피가, 원래 댕기의 주인이 가진 깊은 원한을 알려준다. 눈을 찌르는 검붉은 얼룩을 본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방법이 틀려먹었다. 고치고 싶다는 말도 결국엔 거짓일 뿐이다. 네놈은 당장 네 딸만 구하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던 거야. 이번에 네 딸만 구하고 나면 그 다음 해, 다다음 해에 누가 죽어 나가든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놈이다. 너라는 인간은 말이야.”

나직한 목소리에 이방은 흐느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원했던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제 딸을 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 딸만 구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일만 잘 넘어가면 이후로는 누가 희생양이 되더라도 그걸 막아 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절박하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절박함이 사라지고 나면 네놈도 결국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다.”

이방은 재차 고개를 들었지만, 명월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이미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두렵고, 억울하고, 슬프기만 했던 이방은 울고 또 울었다. 다시금 굵어진 바깥의 빗줄기가 그의 오열을 삼켜 주었다.

* * *

추적대며 내리는 비가 청승맞게 느껴졌다. 원래 이런 날씨에는 온갖 잡것들이 기어 나온다. 비 특유의 비린내가 놈들의 냄새를 지워 줄 거라고들 착각하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원래 안 좋은 건 유난히 더 강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음침하고 더럽고 짜증나는 놈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면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움직이려 드는 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유난히 기분 나쁜 밤이라면서 사내는 탁자에 앉아서 호리병을 기울였다.

쪼르륵, 하고 잔에 담기는 투명한 달빛주를 본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호리병을 내려놓고는 잔을 들어 달빛주를 마시려 했건만, 미묘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달빛주에서 나는 향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냄새였다. 지금 나는 건 아니고, 이건 어디 선가 맡은 적이 있던 냄새를 기억해내는 것에 불과했다.

사내는 술을 마시는 대신에 본인의 손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야옹, 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춤한 사내는 손등에 코를 댄 채로 눈을 내리떴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맞은편 자리에 하얀 덩어리가 나타났다. 눈을 반쯤 감은 그것은 큰 고양이었다. 털이 복슬거리긴 하지만, 그보단 살의 문제인 것처럼 꽤나 덩치가 좋은 고양이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앞으로 앞발을 뻗었다. 그러곤 호리병을 툭, 건드리는 순간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드리면 그대로 지붕 아래에 매달릴 줄 알아라.”

지금 사내가 단순한 위협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진 것일까. 고양이는 앞으로 손을 뻗은 채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졸린 눈 안쪽이 꽤나 매서웠다. 마치 지금 사내의 심리를 가늠하려는 양 한참을 바라보던 고양이가 크게 입을 벌렸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는 혀로 입술 주변을 핥고 손을 내린다. 그대로 탁자 아래로 내려가선 안쪽에 있는 의자에 올라가려 하는 것에 사내가 혀를 찼다.

“냄새 묻히지 말고 나가.”

냉랭한 그 말에 사내를 흘겨본 고양이가 의자에 올라가려다 말고 아래쪽으로 들어가 엎드렸다. 다소곳하게 모은 앞발에 턱을 올리곤 눈을 감는다. 찾을 땐 보이지도 않다가 혼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려 할 때 나타나서 그걸 방해한다.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차 혀를 차게 된다. 그때 문을 열고 꼽추 사내가 들어왔다.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온 이가 안쪽으로 들어가선 창문을 닫는다. 그러자 시원하게 들리던 빗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비는 금방 그칠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타난 놈은 바깥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거다. 지금까진 그런 놈들이 나타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알 바 아니었던 거다. 그랬는데―.

“다시 창을 열어라.”

사내의 말에 밖으로 나가려던 꼽추가 멈춰선 고개를 든다. 눈을 감고 있던 고양이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사내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창을 열라고 하잖나.”

딱히 특이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창을 열라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들 보는 거냐며 사내는 달빛주를 주욱 들이켰다.

아직도 코끝에 잔향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무척 귀한 술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동시에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명월.

무척 당황스러워 했지. 그건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자신의 냄새를 묻히는 건, 그 외에 다른 방법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재차 입술에 닿았던 부드러운 피부가 떠오른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인의 온기였다. 어린 것이라 그런지 말랑거리는 피부의 감촉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맛보고 싶은 걸지도.

달빛주를 따르는 사내의 옆얼굴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던 고양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놈 저거, 안 되겠군.’ 그런 느낌으로 재차 앞발에 턱을 올린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

다시 열린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여전히 청승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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