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의자에 앉아서 등채로 본인 손바닥을 두드리는 명월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굳어 있었다.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얼굴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명월이 안색을 굳히기만 하면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면서 호방은 옆에 선 이방을 흘깃, 봤다. 그리고 차분한 모습으로 눈을 내리뜨고만 있는 이방을 확인하곤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이방이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전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더니만, 지금은 차분한 게 마치 고민거리가 싹 사라진 모습이었다. 호방은 그의 변화된 표정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뭔가 싶은 듯 빤히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뭔가 싶었던 호방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사또가 데리고 온 머슴 복운이라는 놈이 커다란 도끼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웃으며 동헌 앞을 가로질러 가는 걸 발견했다.
실성한 사람마냥 실실 웃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뒤로 하얀 털이 풍성한 고양이가 뒤따르고 있었다. 꼬리를 살짝 든 채인 고양이는 돼지인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제법 컸다.
졸린 듯 눈을 반쯤 뜬 상태인 주제에 걸음이 꽤나 사뿐하다. 그런 발걸음으로 종종 따라오니 복운은 마냥 귀엽다는 얼굴이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것 같지 않은 모습에 호방은 “저건 또 뭐야.”라고 중얼거렸다. 그건 명월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나무토막 하나 옮긴다고 지나치고, 다음엔 빗자루질 한답시고 알짱거리고, 급기야 점심 때가 되자 고양이를 안은 채로 명월 앞으로 다가온다.
“사또. 식사 하셔야지요.”
실상 오전 내내 하는 것 없이 의자에만 앉아 있었던 명월은 식사를 하라는 복운과 그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비만 고양이를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본 복운은 움찔해선 고양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나비를 보십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얘가 놀라잖습니까.”
지금은 저 고양이도 그렇지만, 복운의 행동도 참 별로였다. 저놈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끼고 도는 게 어리석어 보였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중얼거렸다.
“그게 진짜 고양이가 아니면 어쩌자고, 그렇게 끼고 도는 것이냐.”
“딱 봐도 고양이가 아닙니까. 배가 고프시니 눈이 안 좋아지신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라는 거다.
다른 놈도 아니고 복운이 갑자기 저러니까 기분이 되게 묘했다.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이를 옆에 끼고 자신을 홀대하는 거다. 물론 그간 자신이 복운에게 이래저래 안 좋은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에도 복운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제 품에 안긴 고양이만 어를 따름이었다.
왜인지 그 모습이 보기가 조금 그랬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바라보던 명월이 한소리 하려 입을 여는 순간에 맞춰서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었던 명월은 입을 다문 채로 그쪽을 바라보다 바람결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를 확인하곤 바로 내려왔다.
밥시간인데 어딜 또 가려는지 모르겠다. 뚱하니 있긴 했어도 명월의 행동이 신경 쓰였던 복운은 어딜 가십니까, 라고 물었고 명월은 대꾸조차 없었다. 그냥 앞만 보고 혼자서 가 버리는 것에 복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동헌 마당을 지나쳐 간 명월은 내삼문을 지나쳐 외삼문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포졸들의 당파에 막혀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기녀가 보였다. 다급한 얼굴인 그녀는 앞을 막는 포졸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사또께 드릴 말이 있다 하잖소. 전에 만나 주지 않아서 이러는 거요?”
“이년아, 그런 게 아니다. 너 같은 게 관아를 들락날락하면 사또께 누가 되잖으냐. 무슨 일인지 말을 하란 말이다. 내 전해드린 데도?”
“그런 식으로 시간 끌 생각일랑 하지 말고, 길 좀 비켜 주시오. 우리 형님 큰일나게 생기셨소.”
다급함에 기녀는 발을 동동 굴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본 명월은 그제야 기녀의 이름이 기억났다. 분명 자희라는 이름이었다. 그런 그녀가 형님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라면 딱 호접화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던 명월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인상을 쓴 채로 있던 자희는 다가오는 명월을 보곤 표정이 펴졌다.
“사또! 어떻게 아시고! 이리로 좀 와 보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자희가 손짓을 하며 다급히 명월을 부르자 포졸의 얼굴은 낭패로 굳어졌다.
길가에 나 있는 외삼문이다 보니, 지나치는 이들도 많았다. 대낮에 기생이 사또를 찾는 모습이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지나치던 몇이 안쪽을 살피는 걸 본 포졸이 다급히 자희를 잡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이 년아,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잖으냐. 사람들 죄다 쳐다본다.”
하지만 포졸의 타박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자희는 한달음에 명월 앞으로 달려갔다. 당파도 뿌리치고 가버리는 모습에 당황한 포졸이 저, 하면서 손을 뻗었지만 어느덧 가까이에 온 명월을 확인하곤 손을 내리곤 고개를 돌렸다.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명월은 앞에 선 기녀를 내려다봤다.
“무슨 일이냐.”
다급한 자희의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월의 물음에 자희는 속이 타 본인 가슴을 두드렸다.
“사또, 동쪽 외길로 좀 가 보십시오. 형님하고 아이들이 기방으로 돌아가는데, 대갓집 마님이 머슴들하고 길을 막고 위협을 하십니다.”
“벌건 대낮에 왜 그런 짓을 하신단 말이냐.”
“그 집 대감께서 형님께 지나치게 공을 들이시는 게 있긴 했는데…….”
자희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고, 명월은 모든 걸 파악했다.
호란 제일의 기녀 호접화였다. 그녀와 만나는 건 사또인 명월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손님이 있거나 그녀가 바쁘면 발끝도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내가 자신 하나뿐일 리가 없었다. 이 일은 그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었다.
모든 걸 파악했으니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거기로 같이 가자.”
“사또, 가긴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점심 드셔야지요.”
갈 땐 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복운은 다급히 명월의 앞을 막았다. 급해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자희가 화가 난 얼굴로 한마디 하려는데, 명월이 바로 그녀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곤 묘하게 싸늘한 눈으로 복운을 바라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뭐 하러 챙기느냐. 그 품에 안긴 나비 밥이나 챙겨 먹이도록 해라.”
유치하게 복운이 한 짓을 두고 복수를 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난 밥 챙겨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일부러 신경 쓰진 말아라, 하고 좋게 말해 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복운에겐 그리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면서 명월은 그를 지나쳐 갔다.
동쪽으로 가다 보면 경치가 좋은 자리가 있다 말을 전해 들었다. 기분 전환을 하거나,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릴 때 종종 찾는 장소라면서 전에 한 번 호접화가 ‘시간이 될 때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웬만한 이들은 모시지 않는다는 장소라는 걸 언뜻 들었기 때문에 명월은 기분 좋게 꼭 그렇게 해 달라 대답을 했었다.
때때로 기녀들끼리도 놀거나 할 때에도 그곳을 찾는다 들었다. 어제 옷을 지으러 갔으니, 그걸 입고 다른 기녀들에게 보여 주고자 오전에 일찍 찾고 돌아오는 길에 봉변을 당한 걸 거다.
기녀의 치마폭에 감싸인 대감 때문에 투기를 드러내는 본부인의 일에 대해선 몇이나 들어 봤다. 하지만 대부분이 은밀하게 사람을 사서 혼을 내 주거나, 늦은 시간에 끌고 와 매질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식으로 길을 막고 위협을 가하는 건 드문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그리 될 경우, 기녀를 상대로 투기를 드러낸다는 걸 사방팔방에 광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서 오히려 비웃음을 살 수도 있음이었다. 남편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셈이니, 그것으로 쫓겨날 사유가 될 수도 있었다.
돈 많은 사내가 기방의 기녀를 찾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두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다니. 그 대감의 안사람의 행동이 잘 못 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그 현장에 오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험악한 분위기에 명월은 놀랐다.
호접화의 기녀들 쪽에는 말이 있었지만 다들 내려와 있었고, 그 앞으로 몽둥이를 든 덩치 좋은 사내가 몇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바닥에 놓인 가마가 있었고 그 안에 대갓집 마님이 앉아 있을 터였다.
본인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면서 가마 속에 앉아만 있다니. 대체 뭔 생각인지를 모르겠다면서 명월은 말에서 내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명월의 존재에 머슴들 사이로 작은 술렁거림이 생겨났다. 그들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몸 뒤에 숨겼고, 호접화의 뒤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던 기녀들 몇몇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명월은 호접화부터 확인했다. 그녀는 다른 기녀들과 달리 의연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다소 안심이 되는 걸 느끼며 명월은 등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이게 뭐하는 중인지 알 수가 없군.”
말을 들어서 알고 있어도 그런 내색을 취할 순 없었다. 그래서 대충 하는 말에 머슴들은 재차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도포를 입은 사내가 급히 명월 앞으로 와선 고개를 조아렸다.
“사또,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날이 좋아 마실 좀 나왔네. 그런데 여기서 이런 걸 보게 되는군.”
자희가 큰일이라면서 발만 동동 굴러대기에 명월 먼저 말을 타고 와 이곳에 도착했다. 구군복을 차려입고는 있어도, 혼자 있으니 마실 나왔다는 말이 크게 이상하게 들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사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가마를 흘깃 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실은 저희 마님께서 길을 가던 중이신데 저것들이 길을 막고 물러서지 않아 이리 되었습니다. 저희가 잡음 없이 저 무례한 기생 년들을 처리해서 길 정리를 하겠습니다.”
그 말에 저기 호접화 뒤에 숨어 있던 꼬마 기생이 얼굴을 내밀면서 “거짓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는 대번에 험악한 얼굴이 되어선 뒤를 돌아봤다.
“입 닥치거라! 천한 기생 년이 어찌 끼어드는 것이냐! 네년이 주리가 틀리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사내의 일갈에 겁을 먹은 꼬마 기생이 급히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도 살벌한 시선을 던지던 사내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저것들이 저렇습니다. 버릇도 없고 무례한 것들이지요. 이번에 저희가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상대는 여인이고 그쪽은 몽둥이를 든 건장한 사내들이로군. 그리 봤을 때 버릇도 없고 무례한 게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네.”
명월의 말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양반들은 체면을 생각해서 물러나곤 했다. 그런데 이 신임 사또는 그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웬만한 이라면 적당히 위협을 할 수도 있겠으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어찌할까 싶었던 사내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눈을 내리떴고 그때 가마 안쪽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여인들의 일입니다. 그러니 사또께서는 못 보신 척 지나쳐 주십시오.”
고집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가마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은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명월은 모르는 척 가마 옆으로 걸어갔다. 가마의 주변을 살피던 명월은 허리를 살짝 굽힌 채로 말했다.
“이병현 대감의 안사람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어찌 저를 잘 알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대감께서 좋아하시는 문양이 가마에 그려져 있어서 바로 알아봤습니다. 그렇다고 대감과의 사이가 친근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가끔씩 호란에 갈 때마다 설핏 대감을 본 게 기억이 남아 있는 것뿐입니다.”
지금 부인이 길을 막고 기녀들을 위협하는 건 이병현 대감이 기방을 찾는 것에 분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기방 안에서 대감을 종종 본 적이 있어, 그가 좋아하는 무늬 또한 기억하고 있다 말하는 거였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얼굴로 쳐다들 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명월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가마 안에 앉아 있던 부인은 일단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다 싶었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 꺼냈다.
“알 만한 사내 분들께서 어찌 기방을 출입하신단 말이십니까. 보는 눈들이 많을 터인데,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일을 하다가 마음이 답답해질 때 벗을 찾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뿐입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한 것들을 벗이라 칭하시는 겁니까.”
“무릇,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귀한 건 매 한가지라 했습니다. 저들이 하는 일만 보시고 천하다 운운하시는 건 부인의 소견을 좁게 만드는 것일 뿐, 결코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도 통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보통 양반들에게 해 봤자 코웃음을 칠만한 소리였고, 그건 가마 안에 앉아 있는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저것들이 내 지아비를 빼돌려 날 능멸했으니, 오늘은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호란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저들이 지아비를 빼돌린 게 아니라, 지아비께서 제 발로 걸어 들어가신 겁니다. 그걸 두고 저 사람들 탓을 하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가마 안에 앉아 있으니 눈으로 보이진 않아도 지금 부인이 어떤 상태일지는 훤했다. 갑자기 나타나 기녀들 편을 들어주는 명월이 탐탁지 않을 거다. 웬만한 자라면 당장 매질을 하라 시켰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명월을 이 자리에서 떠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할 거다. 그녀의 속내 정도는 빤히 파악할 수 있었던 명월은 앞으로 팔을 뻗어, 머슴들과 대치 중인 기녀들을 가리켰다.
“부인. 보십시오. 저들 손에 무기가 있소, 뭐가 있소? 어쩌다 삶이 꼬여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러운 여인들이오. 지금 하는 일도, 저들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그녀들을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들고 위협을 하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많은 걸 배우신 분께서 저작거리의 부랑자들도 하지 않을 행동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명월의 말에 머슴과 사내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건 기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반 댁의 여인을 두고 저잣거리 부랑자와 비유를 하다니. 큰일날 소리를 한다면서 숨죽인 채로 있는 이들을 두고 명월이 굽힌 허리를 세웠다.
뒷짐을 진 채로 앞으로 걸어간 명월은 머슴과 기녀들 사이에 가운데에 서선 등채로 길 가운데에 금을 그었다. 흙이 깊이 팰 정도의 금을 그은 후 다시 허리를 세운 명월은 가마를 내려다봤다.
“부인께선 오른쪽 길로 가시고, 그대들은 왼쪽 길로 가시오. 내가 가운데 서서 부딪칠 일이 없도록 할 거요.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실상 길은 이들이 동시에 움직여도 무방할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시비를 걸려는 사람에겐 길이 좁고 넓음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정말 길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치가 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명월은 이 모든 일들을 서로가 갈 길을 가는 것으로 해결 보려 하고 있었다. 그것에 가마 속에 앉아 있던 부인이 재차 한마디 했다.
“지금 사또께선 저것들 앞에서 절 부끄럽게 하시는 겁니다.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명월을 뒷짐을 진 채로 가마를 노려봤다.
“부인. 난 이 고을의 사또요. 정말로 부인의 식솔들이 저들에게 매질을 했다면, 그땐 일이 더 커질 것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엄연한 범법행위요. 그에 대한 처벌은 모두에게 똑같이 치러질 것이고, 그건 부인도 예외일 수 없소. 오랏줄에 묶인 채로 동헌 마당에 무릎이 꿇리는 치욕을 당하시기 전에 내 배려를 해 주는 겁니다. 그런 제 마음도 몰라주시고 어찌 이리도 고집을 부리신단 말이요. 칠거지악이라 했소. 대감께 더 이상 누를 끼치지 마시고 가던 길 마저 가십시오.”
힘 있고 단호한 말에 가마 주변에 있던 이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명월은 가까운 곳에 있던 머슴에게 호통을 쳤다.
“네놈들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몽둥이를 들지 말거라.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금 생긴다면, 네놈들의 손목을 모조리 분질러 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머슴들은 급히 몽둥이를 몸 뒤로 숨겼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돌아가자 더 이상 버티는 건 의미가 없다 여겨진 것인지 급히 손짓을 했다. 머슴들이 가마를 들고는 방향을 틀어서 마을 쪽으로 서둘러 멀어져 갔다.
그걸 바라보던 명월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명월의 도움을 받은 기녀들은 이미 그에게 푹 빠진 얼굴들이었다. 그녀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호접화만이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주시할 따름이었다.
명월과 시선이 부딪친 그녀는 옆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서 있던 기녀들이 알아서 흩어져선 말의 고삐를 당겼다. 그러는 사이 호접화는 명월의 앞으로 다가왔다.
“무모하셨습니다.”
호접화의 말에 명월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고맙다는 인사부터 듣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오.”
“일을 크게 만드셨으니 어찌 고맙다 인사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명월은 이병현 대감을 떠올렸다. 배가 나오고 욕심이 많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나름 도성에도 지인이 있어 힘 좀 꽤나 쓴다는 평판이었지. 그런 치를 건드렸으니 곤란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성가실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알아서 처리할 능력은 되오.”
“하지만 소문까지는 아니지요. 이걸로 저와 사또가 보통 사이가 아님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미묘한 구석이었다. 하지만 평판을 목숨처럼 여기는 형님들이 그 소문을 들으면 당장 게거품을 물겠군. 거기까지 생각하던 명월은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호접화는 뒤로 다가온 기녀에게서 고삐를 받아 그녀의 도움으로 말에 올라탔다.
“이번 도움은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꼭 호란을 찾아와 주십시오.”
“그래도 덜 소문이 날 수 있도록 낮에 찾아가도록 하겠소.”
낮이든 밤이든, 사또라는 자가 빈번히 기방을 드나들면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명월도 모르는 게 아니면서 이런 식으로만 구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양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의 옆구리를 차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기녀들이 따르나 싶더니, 몇몇이 뒤를 돌아보면서 소리 내 웃는다.
“사또. 우리 형님 외면하지 마시고, 반양을 떠나실 때 꼭 데리고 가십시오.”
“애첩으로 삼아서 우리 형님 머리가 하얗게 샐 때까지 어여쁘게 봐 주셔야 합니다. 아셨지요?”
그녀들의 말에 명월은 가기나 하라는 양 손짓을 했다. 그걸 본 그녀들의 웃음이 한결 높아진다.
웃기는 해도 이번 일로 많이 놀랐을 터였다. 도와준 건 좋지만, 이걸로 그녀들에게 괜한 파장이 가는 건 아닐지, 그게 살짝 걱정이 된다. 멀어지는 기생들을 바라보던 명월은 한숨을 쉬면서 말 쪽으로 걸어갔다. 훈련을 잘 받은 녀석은 묶어 두지 않아도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말 옆으로 간 명월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잘 했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자 투레질을 한다. 그걸 본 명월은 말에 올라탔다. 그러곤 바로 자리를 뜨려는데 어디선가 파사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그놈인가. 안색을 굳힌 명월은 당장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길 옆으로 난 경사로에 자라난 풀이 흔들리는 걸 보곤 당장 그리로 말머리를 돌렸다.
“거기 누구냐?!”
명월은 말에서 내려선 그리로 달려갔다. 경사로 들어서자 깔린 나뭇잎이 미끄러웠다. 주르륵 아래쪽으로 내려간 명월은 계속해서 흔들리는 풀을 쫓아 달려갔다. 이대로 혼자 내려가서 위험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은 등채도 들고 있었다. 지금 저게 정말로 그놈이라면 있는 힘껏 휘둘러 줄 거라며 명월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풀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 채로 풀을 헤치고 조금 더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놈이라면 이런 식으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건 뭘까. 명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흔들리는 풀을 등채로 내리쳤다.
“멈춰라!”
“으악!”
거의 동시에 들리는 비명소리에 명월은 움찔했다.
어린애의 비명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린애가 튀어나온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명월은 방심하지 않고 풀을 좌우로 갈랐다. 고개를 숙이자 보이는 건 허름한 옷을 입은 어린애였다.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은 어린애는 끙끙,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입고 있는 옷을 보자니 누군지 알 것 같기도 했던 명월이 앞으로 손을 내렸다. 그러다 지금 손에 등채를 들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걸 급히 겨드랑이 안쪽에 낀 채로 손으로 아이의 팔을 툭 쳤다.
“히익―!”
소리 죽여 비명을 토해 내면서 조금 더 몸을 움츠리는 것에 명월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무섭게 군 건가. 그래도 마냥 이렇게 떨게만 할 순 없었다. 이러다가 소변이라도 지리면 큰일이 아닌가 싶었던 명월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꼬마야. 괜찮으냐.”
그 말에도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명월은 헛기침을 하며 재차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놀랐다.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이만 팔을 내려 봐라.”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에 아이의 떨림이 차차 잦아든다.
그걸 확인한 명월은 괜찮아진 건가 싶은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천천히 팔을 내린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명월을 올려다본다. 잔뜩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자니 괜히 소리를 쳤나 싶은 기분이 든 명월은 애써 웃어 보였다.
수북하게 쌓인 쌀밥은, 거의 어른이 먹을 만한 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양 밥을 끌어안고 열심히 수저질을 했다. 저러다가 목이 메겠다 싶어서 국도 같이 먹으라 하자 눈치를 살피면서 국그릇에도 수저를 넣는다.
열심히 밥과 국을 떠 먹어도 반찬에는 손 하나 안 대는 게 신경 쓰여서 명월은 고기반찬을 집어 밥 위에 올려줬다. 그러자 급하게 그걸 수저로 떠서 입에 넣는다. 다른 반찬을 줘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반찬 같은 것도 먹고 싶은 건 직접 집어서 먹어도 괜찮다.”
명월의 그 말에도 아이는 눈치만 살필 뿐 반찬에는 손도 못 대고 있었다. 결국 명월이 이런 저런 반찬을 집어 줬고, 그걸 보고만 있던 복운이 한마디 던졌다.
“남 챙겨 주지 마시고, 사또 밥부터 챙겨 드십시오.”
그 말에 명월은 복운을 흘깃 봤다.
애가 밥 먹다가 얹히게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싸늘한 시선을 던지자 복운의 입술이 당장 앞으로 튀어나온다.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보기 싫은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복운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저 고양이 때문이었다.
혀를 찬 명월은 젓가락으로 고양이를 가리켰다.
“지금 밥 먹는데 왜 그놈을 데리고 들어온 거냐. 냉큼 바깥으로 내보내라.”
명월의 말에 복운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듯, 당장 나비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얌전히 있는 얘한테 왜 그러십니까?”
“마당도 왔다 갔다 한 놈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지금 여기가 네 방이 아니라고 이러는 거냐?”
“그러면 그냥 바깥에 둡니까? 이렇게 예쁜데, 누가 들고 가면 어쩝니까?”
“네 눈이 뒤집힌 거냐. 그런 뚱뚱한 돼지 고양이를 누가 집어간단 말이냐?”
“돼지라니요? 이건 살이 아니라 전부 털입니다―.”
“되지도 않는 말은 하지도 말고, 썩 물러나기나 해라.”
그 고양이도 데리고 나가 버리라며 명월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봤다. 그러자 복운은 툴툴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녀들만 챙기고, 라고 투덜대는 말에 명월이 쯧, 하고 혀를 차자 그제야 조용해진다.
복운이 고양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명월은 계속 그쪽을 쳐다봤다.
저 고양이를 어떻게 처리를 하든지 해야지. 재차 혀를 찬 명월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아이와 시선이 부딪쳤다. 아이는 어느새 밥을 다 먹어치운 후였다. 배가 부를 만도 한데, 아직 부족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본 명월은 본인의 밥을 앞으로 밀어 주었다.
“먹을래?”
묻는 말에 아이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밥그릇을 본인 앞으로 끌어당기고 난 후 바로 수저질을 시작한다. 명월은 그런 아이에게 반찬을 주면서 종종 국물을 마셨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이쪽보다 훨씬 더 배고픈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먹는 걸 두고 욕심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밥도 순식간에 먹어치운 아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 싶어서 괜찮은 거냐, 라고 물었다.
밥을 먹을 땐 모르겠지만, 막상 다 먹고 나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이상하게 여겨진 건지 꽤나 안절부절못해한다. 그러다가 엉덩이를 살짝 들면서 몸을 일으키려 하는 것에 명월이 물었다.
“지금 가려는 거냐?”
반쯤 몸을 일으킨 채로 있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데리고 와서 배부르게 밥을 먹여 줬다.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가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선 지금 이 장소에 와 있는 것 자체가 크게 부담스러울 거다. 일부러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해선 안 되는 짓이겠구나 싶었던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라. 그리고 배고프면 찾아오고. 문 앞의 포졸에게 따로 말을 해 두겠다.”
“…….”
명월의 말에도 별다른 대꾸 없이 그를 바라보던 아이가 바로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분합문을 닫지도 않는다. 서둘러 나가 버리는 모습이 걱정 되었던 명월은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마당에 서선 복운에게 뭔가를 건네받는 아이가 보였다.
묵직한 주머니를 받은 아이는 그것과 복운을 번갈아 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렸다. 마당을 가로질러 서둘러 달려가는 걸 본 명월이 대청으로 나왔다.
“뭘 준 거냐?”
“주먹밥을 좀 넣어 줬습니다. 그게 제일 나을 테니까요. 저런 녀석들은 돈을 들고 있어 봤자 금방 빼앗길 겁니다.”
복운의 그 말에 명월은 새삼스러운 걸 깨달은 양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그저 배부르게 밥만 먹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돈을 챙겨 줄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복운처럼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생각했기에 그만 두었던 거다. 복운은 그런 자신보다 한발 앞서 생각했다. 잘 했다고 칭찬을 하기에도 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명월은 다른 말을 꺼냈다.
“여기에 저런 아이들이 더러 있었던 거냐.”
“사또 신경 쓰느라 이 주변이 어떤지 제대로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
와중에도 빈정거리는 걸 잊지 않는구나. 이럴 땐 좀 피해 주면 좋을 텐데.
명월은 그런 복운을 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그 뚱뚱한 고양이가 안 보였다.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거냐?”
“누가 자꾸만 눈엣가시처럼 여기시는 것 같아서 방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 짐승은 방 밖에서 키워야 하는 법이다.”
“나비는 단순한 짐승이 아닙니다. 제 친구입니다.”
누가 들으면 한 10년 넘게 키운 줄 알겠다.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지났으면서 잘도 저런 말을 하는구나 싶었던 명월은 어이가 없어 복운을 내려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복운은 고개를 돌리곤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걸 보던 명월은 배에 한 손을 올리곤 머뭇거리다 복운을 불렀다.
“가서 밥이나 한 그릇 더 떠 와라.”
안 먹으려 했지만 속이 출출해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그 말에 복운은 한참 만에 “방에서 기다리십시오.”라고 대꾸했다.
두툼한 보따리를 품에 끌어안은 아이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얼굴로 땟국물이 질질 흐르고 옷도 지저분한데다가 머리도 엉망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다른 때에는 늘 빈손이었지만, 지금은 묵직한 걸 들고 있었다. 이걸로 어머니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을 터였다. 뭐라도 좀 드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시겠지. 지금까지 얼마나 누워 계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전에는 집으로 올라오는 걸음이 무거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달음에 산속 낡은 오두막에 도착한 아이는 낡은 싸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쯤 기울어진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어눌한 목소리로 그리 말한 아이는 안쪽으로 가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내 소중하게 품에 안고 왔던 걸 내려놓고는, 그 안에서 주먹밥을 조심스레 꺼냈다. 굉장히 크고 먹음직스러운 주먹밥이었다.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주먹밥을 보는 순간 입 안으로 침이 고인다. 하지만 이건 자신이 먹을 게 아니었다. 입맛을 다신 아이는 주먹밥을 아래로 내렸다.
“어머니.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쌀로 만든 주먹밥이었다. 아이가 기억하기론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은 일어나서 한입 좀 드셔 보라면서 아이는 기대에 찬 눈으로 어머니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계속 이불에 누워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누워만 있는 게 아니라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얼굴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이불을 내릴라치면 크게 화를 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재차 말했다.
“어머니. 좀 일어나 보세요.”
그리고 주먹밥 좀 드세요. 그래야 기운을 차리실 게 아니겠어요.
마음을 담아 걱정스럽게 내려다봤다. 그러자 이불 안쪽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내내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난 그런 걸 먹어 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단다.”
냉랭한 목소리에 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지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이걸 드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재차 권하려는데 이불 밖으로 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뭔가를 손에 쥐고 있다가, 그걸 아이에게 보여 줬다.
“이것하고 똑같은 걸 산에서 캐 오렴.”
아이는 일단 주먹밥을 다시 보따리 안에 집어넣고는 어머니 손에 올려져 있던 걸 집어 들었다. 애벌레가 말라 있는 것 같은데 위쪽으로 굵직한 싹 같은 게 나 있었다. 딱딱한 껍질의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 보는 거라서 그런지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충하초다. 아주 귀하고 찾기도 힘든 것이지. 그러니 잘 보고 구해 와야 한다. 정 구하기 어려우면 훔쳐서라도 가지고 오렴.”
낯선 이름은 그냥 외우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훔쳐서라도 가지고 오라는 말에 아이는 더럭 겁을 먹은 얼굴이 되었다.
“어, 어머니 전 도둑질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이 어미가 죽는 걸 보고만 있을 거냐. 그게 아니라면 난 살아날 수 없단 말이야. 그래. 넌 내가 죽길 바라는 거로구나. 그렇다면 다 필요 없다. 이런 거 캐 오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가 동충하초를 다시 집어 들려 하자 놀란 아이가 급히 그걸 양손으로 눌렀다.
“아니에요! 캐 올게요! 저, 정 안 되면 도둑질이라도 해서 가지고 올게요!”
하지만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면 관아로 끌려갈 거다. 조금 전에 그곳의 주인인 사또가 주는 따뜻한 밥을 먹지 않았던가. 마음씨처럼 얼굴도 곱던 사또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도둑질을 한 걸 안다면 표정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싫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만월이 되기 전까지 천 개가 필요하다. 알았니? 그만큼을 얻지 못하면 이 어미는 죽고 말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가서 그걸 캐 오렴.”
“이, 이게 어디에 있는데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속 아주 깊고, 높은 곳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준비 단단히 해서 지금 바로 가도록 해라.”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바로 가는 건 무리였다.
숲은 밤이 되면 추워지고, 자신은 두터운 옷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이대로 숲으로 들어가면 얼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머뭇거리자 하얀 손이 방바닥을 세게 후려쳤다. 지금 뭘 하는 거냐는 그 무언의 재촉에 아이는 슬그머니 일어나선 보따리와 동충하초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좁은 마루 한편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는 보따리를 무릎에 올리곤 양손에 올린 동충하초를 내려다봤다.
처음 보는 거였다. 산속에서 살다 보니 소소한 약초는 알고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손을 내린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아서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 바로 다녀오라 말했다.
아이는 뒤를 돌아봤다. 단단히 닫혀 있는 방문을 확인한 아이의 눈동자 안쪽으로 눈물이 차오른다. 손을 들어서 눈을 누르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막을 새도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에 아이는 흐윽, 하고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뒤이어서 훌쩍거리는 순간 방 안쪽에서 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가 서서히 아이 쪽으로 접근한다. 그 순간 오싹한 한기를 느낀 아이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아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싸리문을 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들고 있는 잔속에 가득 찬 물 안쪽으로 미미한 떨림이 퍼진다. 가운데에서 생겨 난 떨림은 수면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그걸 유심히 바라보나 싶던 사내는 잔을 내려놨고, 맞은편에 앉아서 다기에 차를 따르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달빛이 스며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있는 여인은 얼굴이 하야니, 꽃 한 송이처럼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사내는 입꼬리를 올렸다.
“여자라는 건 좋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그림이 되니까.”
“그건 사내도 마찬가지지요. 가만히 있어도 여인의 마음을 흔드니까.”
나직하게 속삭인 그녀는 다기에서 손을 뗐다. 양손을 허벅지 위에 올린 채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딱 봐도 만들어진 모습인데 그 녀석은 왜 이런 걸 마음에 들어 하는 걸까.”
“당신답지 않게 지금 제게 질투를 하시는 건가요?”
“질투라니. 그런 걸 할 리가 없잖나.”
“그러시겠지요. 천하의 백호께서 어찌 인간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닌 척 빈정거리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 테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인이라는 존재는 상대하기 껄끄럽다면서 그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전까지만 해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지금은 꽤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입술에 대고 있던 잔을 떼어 낸 그는 눈을 내리떠 그걸 보고는 혀를 찼다. 왜 이렇게 맛이 없나, 그런 중얼거림을 들으며 여인이 속삭였다.
“이번 일 때문에 온갖 잡귀들이 다 몰려들게 생겼어요.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더 많은 놈들이 모여들겠지요.”
“다 쓸데없는 짓거리다.”
“보기에 따라선 꼭 쓸데없는 짓이라고만 볼 순 없답니다.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차를 마셔도 맛을 느끼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는 여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너도 노는 건 적당히 하고 알아서 조심해라. 자꾸만 얽히면 계속 그 모습으로 있을 수 없게 될 거야.”
“저는 거리를 두려 해도 그분이 찾아오시지요. 저를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 하시더군요.”
그 말에 사내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나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여인이 말을 이었다.
“신경 쓰이는 건 제가 아니라, 백호님이실지도 모릅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이만 가 봐라.”
잔을 뒤로 미는 건 차도 마시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눈을 내리떠 그걸 본 여인의 미소가 한결 짙어진다. 알았습니다, 라고 짧게 말한 그녀가 몸을 일으켜선 뒤로 물러났다. 양손을 모아 배 아래에 댄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바로 사라졌다. 달빛을 받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백호, 그만이 홀로 있을 따름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순간은 그가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만끽할 수 없었다. 아마도 여자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쓸데없는 일을 부탁했다. 독각귀.”
중얼거린 백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그는 묘한 느낌을 받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귀여운 짓을 하는군, 하고 중얼거린 그는 눈을 감았고 이윽고 그 모습 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마루 아래쪽에 엎드린 채로 자고 있던 하얀 털뭉치가 움찔하고 몸을 떤다. 그 순간에 맞춰서 내내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자가 냉큼 고양이의 앞발을 잡아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그러곤 준비해 두었던 천 주머니에 고양이를 넣고는 양팔로 그걸 끌어안았다.
“윽?!”
덩치가 있으니까 무거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이는 당황해선 주변을 살피다가 급히 몸을 돌렸다. 한달음에 처소로 달려간 그는 가죽신을 벗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두 치워서 깔끔해진 방 가운데에 망할 걸 내려놓고는 뒤로 물러났다.
한쪽에 세워 둔 검을 빼 든 명월은 방 가운데에 놓여있는 걸 노려봤다.
저 망할 고양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분명 요물이었다. 복운은 저 요물에게 지금 속고 있는 거였다. 복운을 위해서 자신이 대신 확인을 해 주는 것이니, 고맙게 생각해야 할 거라며 명월은 눈에 힘을 주고 주머니를 노려봤다.
그런데 천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잠잠했다. 어쩌면 수작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며 명월은 검 끝으로 주머니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바로 움찔하고 반응한다.
헛숨을 삼킨 명월은 검을 거둔 채로 눈에 힘을 줬다.
그래. 이놈. 어서 얼굴을 내밀어 봐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봐. 내 네놈의 정체를 밝혀서 이번에야말로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혼자서 생각하기에 저 고양이는 분명 망할 백호인지 뭔지 하는 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복운이 고양이를 나비라 부르면서 옆구리에 끼고 물고 빨고 난리를 치니, 생각에 혼선이 왔다. 정말로 고양이인가―하고 생각하고 마는 거다. 그런 혼란을 정리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놈이 조금씩 흔들린다. 위쪽을 긁어대는 건지 천이 들썩거린다. 그걸 본 명월은 숨을 죽인 채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래. 지금 바로 얼굴을 내밀어 봐라. 이번에야 말로 내 네놈의 정체를―.
그 순간 천이 뒤로 넘어가고 안에 들어가 있던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반쯤 뜬 눈. 푹신해 보이는 하얀 털. 육중한 몸. 그런 것들을 본 명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 긴장감 없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졸려진다. 실제로 당장 어찌 해 버리고 말겠다는 마음이 흔들리는 걸 다잡으면서, 명월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선 검을 내밀었다.
날카롭게 갈아진 검날이 고양이의 코 아래에 닿았다.
“자, 지금 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라. 안 그러면 그 검은 콧잔등이 베이게 될 거다.”
위협을 하자 고양이의 눈이 더 가늘어진다.
“그 날, 마당에 있던 건 네놈이었다. 그리고 네놈은 그 망할 놈으로 변했지. 그게 네놈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더냐. 복운을 홀려서 그 옆에 붙어 있는 건 성공했을지도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속지 않아.”
명월은 검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코에 닿을락 말락할 때 고양이가 갑자기 입을 벌렸다. 움찔한 명월의 손으로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방 안으로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옹―하는 고양이 소리 말이다.
“…….”
긴장한 상태로 있었던 명월은 갑작스러운 고양이 울음에 움찔했다.
멍청한 얼굴로 있는 명월을 두고, 고양이는 더 열심히 입을 벌리며 울어댔다.
야옹, 야옹, 야아아옹, 이야아옹, 야―옹―.
작은 것 같아도 꽤나 우렁찬 소리였다. 그래서 넋이 나간 채로 있던 명월도 금방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 울음은 듣기에 따라서 아기 울음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 이런 소리를 바깥을 지나던 이가 들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면서, 복운이 달려오는 게 아닐까 싶었던 명월은 당장 검을 치우고 고양이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조용히 하지 못해? 고양이인 척하지 마. 넌 그런 거 아니잖아!”
나직한 목소리로 위협을 해 봐도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내 울어댔다. 야옹, 야옹 거리는 소리에 명월은 고양이 입을 붙잡으려 했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으려던 순간 내내 울기만 하던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빛나나 싶더니 갑자기 고양이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명월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지는 것과 동시에 고양이의 앞발이 명월의 오른쪽 뺨을 할퀴었다.
“윽―?!”
아픔에 소리를 낸 후 명월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사이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고양이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문으로 달려가는 걸 본 명월은 이를 악물곤 그리로 몸을 날렸다.
“너 거기 멈추지 못해?!”
고양이 주제에 사람 얼굴을 할퀸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면서 명월은 몸을 날린 그대로 고양이의 배를 붙잡았다.
복운은 이게 살이 아니라 털이라고 했지만, 웃기는 소리였다. 손바닥 가득히 느껴지는 이건, 분명 살이었다. 야, 이 돼지 고양아! 그리 외치고 싶은 얼굴로 명월은 더 세게 고양이를 붙잡았고, 허리가 잡힌 고양이는 엎드린 채로 버둥거렸다. 손톱을 세운 발로 바닥을 긁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모습에 명월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암만 그런다 해도 내가 이 손을 놓을 것 같으―.”
어림도 없다고 한마디 더 해 주려던 순간, 분합문이 열리고 복운이 나타났다.
막 씻고 들어오는 중이었던지 하얀 천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였던 복운은 눈을 내리뜬 채로 명월과 잡힌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당장 뭐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라보는 눈빛이 꽤나 싸늘했다. 그 시선을 느낀 명월은 당황해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이 망할 고양이 주인은 복운이었다. 그런 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 녀석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건 분명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긴 했다. 그렇다 해서 그걸 두고 변명하거나 미안하다 말할 필요가 있는 걸까.
이건 어디까지나 복운이 걱정이 되어서 이러는 거였다. 지금은 고양이라고 해도 언제 갑자기 모습이 바뀔지 모르는 놈이었다. 위험한 녀석은 미리부터 분리를 해 두고자 함이었다. 그걸 알아달라 말하려던 순간 복운이 냉큼 허리를 굽히곤 고양이를 채갔다. 그러곤 언제 싸늘한 얼굴을 했느냐는 양, 고양이의 턱 아래를 손가락으로 살살 간질인다.
“그래. 그래. 우리 아기. 아빠가 없어서 무서웠지? 이제 걱정하지 마라. 이 아빠가 꼭 옆에 붙어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복운은 명월을 싸늘하게 내려다봤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괴롭히는 누구하고 아빠는 아주 다르단다.”
“…….”
딱 거기까지 말한 복운은 코웃음을 치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명월은 눈을 끔벅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일어서서 앉은 그는 여전히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다가 허, 하고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곤 당장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쳤다.
하지만 딱딱한 바닥을 쳐 봤자 손해 보는 건 그걸 때린 쪽이었다. 바닥에 손을 내리치는 순간 퍼지는 엄청난 통증에 명월은 억, 하는 신음을 흘리며 손을 품 안쪽으로 끌어안았다.
그냥 지나치거나, 다른 이가 품고 있는 고양이였다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 망할 고양이하고 함께 있는 게 복운이었기 때문에 이렇게나 신경 써 주는 거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일로 고생하던 복운이었다. 이제 자신은 어른이 되었으니 복운도 그럭저럭 제 일을 하면서 편하게 지내면 되었다. 그러다가 마음 맞는 여인이 있으면 혼례도 올려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덜떨어진 놈이 하필이면 요물 고양이에게 홀려서, 저렇게 간도 쓸개도 몽땅 빼 줄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금도 동헌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선 보란 듯이 “아이고, 우리 나비 예쁘다.” 같은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전날 명월이 고양이를 몰래 방으로 데리고 간 걸 어떻게 생각한 건지, 아까부터 눈앞에서 알짱거리면서 “저 사람은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가까이 접근해선 안 된다.”라는 소리나 해댄다. 그것에 명월의 한 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저 망할 놈을 어떻게 쳐야 제정신이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으로 이방이 다가왔다.
“사또.”
부름에 명월은 고개를 들어 이방 한소규를 바라봤다.
그와는 딸을 구해 준 덕분에 사이가 많이 좋아진 참이었다. 구체적으로 명월이 뭘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딸이 정신을 차린 거라고 믿고 있었던 이방은, 이후로 명월을 끔찍하게 챙기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시다면 이 약초를 발라보시지요. 얼굴의 붓기가 가라앉을 겁니다.”
조심스레 말하는 이방은 눈을 내리뜬 채로 있었다. 그건 호방이나 다른 포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명월의 오른쪽 뺨에는 고양이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피가 난 건 아니지만, 붉은 자국이 남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명월의 얼굴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했다. 이방도 뭐라 말은 하지 않아도 “얼굴이―.”라면서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다가 영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렇게 약재를 준비해 온 거다. 하지만 명월은 그걸 바를 기분이 들지 않았다. 복운이 하는 행동이 괘씸해서 상처가 있는 채로 얼굴을 떳떳하게 들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이 상처를 보고 가장 먼저 달려와야 할 사람이 복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양이에게 홀라당 빠져선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원래 당연하다 싶었던 게 외면을 하면 더 섭섭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명월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네. 사내라면 모르지기 이런 상처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상처가 조금 미묘하옵니다.”
상처가 미묘하다니. 지금 이방이 하는 말이 훨씬 더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 쳐다보자 이방은 고개를 숙였다.
“여인의 손톱자국 같습니다.”
그 말에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진다.
그런 오해를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자국이긴 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그런 게 아니었다. 명월은 인상을 쓴 채로 복운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이건 여인의 손톱자국이 아니라, 저 망할 고양이가 내 얼굴을 할퀸 거네.”
그 순간 복운이 당장 고양이를 품에 안고는 뒤를 돌아봤다. 매섭게 노려보는 시선에 명월의 표정 또한 굳어졌다.
지금 저놈이 요물 고양이한테 홀랑 빠져서 지금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눈 안 내리뜨냐면서 노려봐도 이쪽을 바라보는 복운은 여전했다. 거센 콧김을 내뿜는 게 마치 ‘내 고양이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말도 안 되지 않으냐면서 명월이 인상을 쓰는 것에 맞춰서 저기 대문으로 들어오는 포졸이 보였다. 동헌 마당 가운데로 온 포졸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사또. 이병현 대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 순간 이방과 복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호접화의 앞을 막고 몽둥이를 든 머슴을 푼 건 바로 그 댁의 마나님이었던 거다. 꼭 그 일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겠지만, 시점이 공교롭지 않은가. 이방은 명월에게 내밀고 있던 약재 주머니를 내리곤 어찌 할까요, 라고 물었다.
어찌 하느냐고 물어도 자신이 할 대답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 그 호색한 영감에게 딱히 잘못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니, 피할 필요도 없었다. 명월은 차분하게 말했다.
“객사로 모셔라.”
그 말에 이방이 아래로 내려갔다. 이병현 대감씩이니만큼 포졸보단 그가 나가서 모셔오는 게 맞는 거였다.
반양에 온 지 이제 두 달이 좀 넘었다. 때문에 아직 이곳 지리를 전부 다 파악하지 못했다. 누가 실세이고, 아닌지에 대해서도 알 턱이 없었다. 물론 이방과 호방이 두툼한 책자를 건네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건 지금 명월의 방 한편에 잘 놓여 있었다.
상대에 대해서 사전에 아는 게 많다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뿐이었다. 고작해야 2년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 낯선 고을에서 마음을 나누는 벗을 사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히 머물다가 떠나면 그만인 장소였다. 그런데 여러모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긴 했다.
그건 눈앞에 앉아 있는 늙은 두꺼비 같은 이 호색한 영감도 마찬가지였다. 책자를 읽은 건 아니지만, 호란의 기녀들이 한마디씩 하는 건 기억하고 있었다.
‘추잡하게 색을 밝히는 영감이다. 주제도 모르고 형님을 넘본다.’
‘저고리는 두고 치마만 벗어선 춤을 추도록 했다. 역겨워 죽는 줄 알았다.’
‘본인 입에 술을 담고는 그걸 마시게 강요한다. 다리를 벌리곤 그 사이로 사내든 여인이든 기어들어가는 걸 시킨다. 아마 그 댁 안방마님은 밤마다 그 영감탱이 사타구니 사이를 기어 다닐 거다.’
‘툭하면 형님을 부르는데 전에는 사또 핑계를 대서 거부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앞으로도 종종 그런 방식을 써도 될까.’
이병현 대감과 얼굴을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는 기녀들의 말이 떠다닌다. 그래서일까. 속이 좀 메슥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명월은 겉보기에 좋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반양에는 이미 유명한 기방, 호란이 있고, 그곳엔 꽃 중의 꽃 호접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명월은 그녀와는 미묘하게 다른 미를 뽐내는 사내였다. 사내인 것이 확실하지만, 간혹 숨이 막힐 정도의 향을 풍기는 게 바로 명월이었다. 비록 오른쪽 뺨에 할퀸 자국이 있긴 해도 그것이 그의 미모를 감소시키진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병현은 멍하니 그런 명월의 얼굴을 바라봤다. 쉽사리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병현을 두고 명월은 먼저 입을 열었다. 호색한 두꺼비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속이 뒤집혀서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래.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명월의 물음에 이병현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문제라니. 그런 거 없습니다.”
잠시 동안이라 해도 명월을 멍하니 바라봤던 게 신경 쓰이는지 그는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다 해서 지금의 어색한 분위기는 쉬이 사라지진 않을 거다. 결국, 먼저 본론을 꺼내는 건 이병현 대감 쪽이었다.
“그저 집사람이 너무도 시끄럽게 굴어서 사또께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부인께서 시끄럽게 굴 만한 일이라면 하나밖에 떠오르는 게 없군요. 어제 그 일 말입니까.”
이 대감이 자신을 찾아올 일이라면 그것밖에 없었다.
어제도 생각한 거지만, 성격이 보통이 아닌 여자였다. 자신 때문에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으니 집으로 들어가 대감을 얼마나 달달 볶았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래도 그렇지. 다음날 냉큼 찾아오다니. 이 인간도 영 아니었다.
“모름지기 사내란 여인들이 하는 일에 간섭을 안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야 집안이 화목해지는 게 아닙니까.”
은근히 돌려서 어제 네가 간섭한 건 잘못이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월은 그런 식으로 돌려 까는 말에 잠자코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건 화목해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일입니다. 어젠 제가 우연히 길을 지나다 그 광경을 보고 개입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안사람께서 큰 고초를 당하실 뻔했습니다.”
명월의 말에 이병현 대감은 당황한 얼굴로 “고초라니요?”라고 물었다.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려 하셨으니, 그게 전부 다 부인의 죄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명망 높은 이병현 대감의 안사람을 동헌 앞마당으로 끌고 오지 않게 된 걸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이병현은 입을 벌렸다. 지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기녀의 길 앞을 막고 두어 대 때린다 해서 사대부 아녀자에게 죄를 물을 순 없음이었다. 그런 법도가 어디에 있던가 싶었지만, 그걸 따져 묻기 전에 일단은 지금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는 시도를 했다.
“고작 기녀가 아닙니까. 몇 대 두들겨 맞는다고 해서 뭔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그건 말 안 듣는 개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대감께서 한번 몽둥이질을 당해 보시지요.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병현 대감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양 몇 번이나 들으라는 듯 크게 기침을 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명월은 말을 이었다.
“호란의 기녀들을 무척이나 어여뻐 하시는 대감께서 어찌 그런 야속한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이 말씀을 호란의 아이들이 안다면 무척 슬퍼할 겁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툭하면 기방을 찾아서 호접화 뒤꽁무니만 쫓는다는 소문이 이미 반양 전체에 퍼졌는데 말이다.
그런 걸로 따지면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신임 사또라고 온 자가 대낮부터 기방을 찾는다는 건 이젠 어린애도 알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명월은 그런 사람들의 말 따위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고, 이병현 대감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대번에 안색을 굳혔다.
“제가 언제 그런 천것들을 어여뻐 했단 말입니까? 말씀 가려 하십시오.”
“그저 보고 들은 걸 두고 말한 것뿐인데 말을 가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허, 그런 게 아니래두요―.”
“그래요. 아니시겠지요. 눈에 검은 띠를 두르시고 도망치는 기녀들과 어화둥둥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대감을 본 건,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바로 입을 다문 이병현 대감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리고 돌아가실 때 챙겨온 것들도 다시 들고 가십시오.”
막 몸을 돌리려던 이병현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벙 찐 얼굴이 된 이병현 대감을 올려다보며 명월은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아직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 않습니다.”
지금 명월의 미소는 조금 전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보기 좋았지만,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병현 대감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한 소리 하고 싶지만, 이 새파랗게 어린 놈은 사또였다. 거기다 정 2품 도총관, 유일선의 아들이었다. 그런 배경이 있으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이병현은 이를 갈면서 바로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탕, 하고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게 닫는 소리에 명월은 혀를 찼다.
“저 돼지가 건물 다 무너뜨리려고 하네.”
하여튼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면서 명월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편안한 사또 생활을 하려면 저런 이들과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삐뚤게 나가면 언젠가 성가신 일이 생길 거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던가.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그에 맞추고 싶지가 않으니 왜인지 모르겠다. 나라는 놈도 참 비뚤어진 성격이라면서 명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문을 열고 이방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명월의 눈치를 살피면서 옆으로 온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 대감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찾아온 거겠지. 뻔하지 않은가.”
짧게나마 어제 있었던 일을 들은 이방이었다. 명월이 알아서 해결하고 돌아와서 보고 같은 식으로 알려주기도 했고, 이미 소문이 좌악 돌기도 한 일이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제가 주제 넘는 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일은 사또께서 잘못을 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기녀들을 도와준 게 잘못된 행동이었다 말하는 건가.”
“상대가 좋지 않습니다. 이병현 대감은 이쪽에서 꽤나 힘을 쓰는 사람이고, 성품이 포악해서 본인이 당한 일은 잊지 않습니다. 아래로 부리는 이들도 많고 하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들 생각하는 거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남기고 이방 한소규는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 것인가. 그러다가 명월의 차분한 눈동자를 봤다. 지금 명월은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다 알고 있었다.
“기녀들을 위해서 이 대감의 안주인에게 뭐라 한 건, 잘못입니다.”
“그녀들이 기녀이기 때문인가.”
바로 나오는 반문에 이방 한소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눈이 있습니다. 이번 일로 비웃음을 당하는 건 이 대감이나 그 부인이 아닙니다. 바로 사또십니다.”
의자 팔걸이 위에 놓인 명월의 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자신이 비웃음을 당할지 모르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저 기녀를 위해서 사대부 여인을 나무란 거다. 여기는 조용하지만, 반양의 사대부들이 모여서 열심히 자신을 씹어댈 게 어렵지 않게 상상되었다. 거기다 이병현이 저런 식으로 돌아갔으니 재차 그들 앞에서 시끄럽게 굴면서 ‘사또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 하오!’ 같은 소리가 나오겠지.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그냥 눈을 감으십시오. 사또께선, 사또의 입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이방도 나름 생각을 해서 이리 말해 준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명월도 자신이 괴팍한 짓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난 내가 아는 사람들만큼은 잘 지켜 주고 싶은데, 이놈의 세상은 그런 것조차 못하게 하는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방은 뭔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 * *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어디서 이런 걸 본 적 없었던 복운은, 나비와 자신의 만남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나비 옆에 찰싹 붙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까지는 계속 명월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렇듯 나비와 함께 있으려니 시간이 정말로 긴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비를 더 신경 쓸 거라며 복운은 잘 말린 생선을 흔들었다.
“자, 나비야. 이것 좀 봐라. 맛있겠지?”
생선을 흔들어도 나비는 보는 척, 만 척이었다. 심드렁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조차도 매력 있어 보인다. 이런 고양이는 난생처음이라며 거친 숨을 몰아쉰 복운이 생선을 내밀려던 찰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순간 복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어림도 없다는 양 당장 나비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들었다.
“제가 곁에 없으니 아쉬운 모양이십니다. 왜 이렇게 사람 귀찮게 뒤를 졸졸 따르시는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옆에 서 있는 건 명월이 아니라, 이방 한소규였기 때문이다.
뒷짐을 진 그는 한심해 죽겠다는 양, 싸늘하니 눈을 내리뜬 채였다. 복운은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선 더듬거리며 물었다.
“사람을 왜 그렇게 보시오?”
“지금 네놈이 이런 짐승하고 놀 때냐. 네놈의 임무가 무언지 망각한 거냐?”
“제 임무가 뭔지는 이방 나으리께서 말씀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인께서 원치 않으시니 지금 여기서 귀여운 나비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네놈이 눈치 없이 낄 때, 안 낄 때 다 나서서 간섭이니 사또께서 성가셔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네놈이 잘못한 걸 가지고 사또께서 나무라셨다고 이런 식으로 삐뚤게 나갈 거냐?”
이방 한소규의 꾸중에 복운의 입술이 앞으로 한자나 튀어나왔다.
전에 곳간에 있는 걸 잡아냈을 때에는 그보다 기세등등했던 복운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딸 때문에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곳간 일을 들먹이면서 막 대할 수 없게 된 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방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원래 곳간 일이 아니었다면 이방을 똑바로 쳐다봐서도 안 되는 위치의 복운이긴 했지만 말이다.
싫은 소리를 했음에도 복운은 고양이 앞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보기에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방이 재차 “아직도 그렇게 있는 거냐.”라고 언성을 살짝 높였다. 그 순간 복운이 웅얼거렸다.
“어차피 제가 곁에 없어도 사또 혼자서 잘 하실 텐데요, 뭐.”
“네놈이 어린애냐? 그딴 소리나 지껄여대고. 그러다가 사또께 일이 생기면 내 네놈을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그리 말한 이방은 홱, 하니 몸을 돌리고 가 버렸다.
그때까지도 가만히 있던 복운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했다.
아니. 언제부터 명월을 챙겼다고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흘리던 복운은 뒤를 돌아봤지만, 한소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복운은 당장 구시렁거렸지만 들은 말이 있어서 지금 명월이 뭘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긴 했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뭘 하고 있는지나 알아보자면서 그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옆까진 다가가지 않을 거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뭘 하는지만 보고 올 거라면서 복운은 “나비야. 가자.”라고 말했다.
명월은 동헌 마당 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위쪽의 대청과 안쪽에 놓인 의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본인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주변에선 뭐라 할 수 없었다. 다만 보기에 이상하니 자꾸만 그쪽을 흘깃거리게 된다.
쪼그리고 앉아선 물끄러미 마루를 보나 싶더니 옆으로 슬쩍 몸을 물린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뚫어지라 보다가 몸을 일으켜선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곤 대청 바로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아래를 살핀다.
뭔가를 떨어뜨린 걸까. 그러면 다른 이에게 찾아 달라 말을 할 것이지 저 무슨 꼴사나운 모습인가 싶었던 복운이 결국 참다 못해서 앞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때 이방 한소규가 명월의 옆에 서선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게 보였다. 그것에 명월이 고개를 들면서 대청 위를 가리키면서 무슨 말을 한다. 그 사이로 언뜻 닭, 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복운은 눈썹을 올렸다.
예전에 웬 미친놈이 저기 의자에 닭 모가지를 비틀어서 올려 둔 적이 있었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일이었으나 당시 명월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결국, 주변 정리를 하고 의자를 새로 교체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닭 사건을 알아볼 셈인가.
복운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명월을 바라봤다. 그때 손을 턴 명월이 뒤를 돌아봤다. 대문 앞에 서 있었던 복운은 명월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움찔하고 몸을 떨면서 당장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척 휘파람을 불면서도 명월이 부르면 못 이기는 척 달려가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름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부르겠지. 그런 생각으로 계속 휘파람을 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자 이상함을 감지하게 된 복운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명월이 사라지고 이방만 남아 있는 걸 확인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 짧은 사이에 어디로 가 버린 거야.
당황한 복운이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자 이방이 혀를 찬다.
“미련한 놈.”
다 들으라는 듯 하는 소리에 복운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내심으로는 명월을 찾아가 볼까도 싶었지만, 이방 앞에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생긴 복운은 당장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본 이방 한소규가 “아이고, 저, 저놈―.” 하면서 더 크게 혀를 찼다.
* * *
“그때 제가 불침번이긴 했지만, 딱히 수상한 움직임 같은 건 없었습니다.”
대답을 하는 포졸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혹여라도 말의 실수가 있거나 한 건 아닌지 재차 생각을 하던 포졸은 분명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명월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턱에 손가락을 댔다. 그 모습이 고왔다. 신임 사또의 미모가 월궁항아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나누긴 했지만, 막상 이리 가까이서 보니 괜히 긴장된다. 사또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던 포졸은 주변을 살피다가 근처에 있던 동료에게 손짓을 했다.
“그때 자네가 외문에 있지 않았나. 그때 뭔가 수상쩍은 움직임 같은 건 없었지?”
“물론이지. 그날따라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지. 그 흔한 고양이나 개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걸 알 수 있는 건 졸지 않고 착실하게 불침번을 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일단 입을 다문 포졸은 긴장한 시선을 던졌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쳐다보나 마나 명월은 본인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따름이었다.
갑작스레 의자에 목이 비틀어진 닭을 올려 두고 간 놈이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원래 그런 건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 수색해야 알 수 있는 거였다. 며칠이나 지난 후에 알아보려 해 봤자 그나마 남아 있던 증거 같은 것들도 몽땅 사라졌을 터였다.
당시에는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어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방이나 망할 장인 놈의 일이 생기면서 그 일을 알아보는 게 뭐 대수인가 싶어졌다. 그냥 가볍게 주변을 휘익 돌면서 당시의 일을 듣고 싶었던 건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원래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에 빠지는 게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명월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날은 수상한 자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사또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혀에 가시가 돋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불침번을 설 때 절대로 졸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른 놈들하고 달리 아주 착실하게 밤을 새웁니다.”
입을 다문 포졸들이 진지한 눈동자로 바라봐 왔다.
교대로 밤을 새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다 보면 종종 졸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걸 명월도 모르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나중에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볍게만 둘러보는 게 목적이었던 명월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군.”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언제든지 이상한 일이 있으면 물어봐 주십시오.”
자세가 딱 잡힌 포졸의 말에 명월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몸을 돌렸다.
외부인이 동헌 안의 의자까지 오려면 외문과 내문을 통과하고, 동헌으로 들어가는 대문도 열어야만 했다. 일단 외문과 내문에는 포졸이 서 있고,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포졸들이 관아를 돌기도 했다. 마음먹고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뚫고 와서 닭을 올려 둘 수 있긴 했다.
솔직히 자신더러 그리 해 보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기에 있는 포졸들은 성품이 나쁘진 않지만, 느슨했다. 도성의 포졸들은 눈빛으로 사람을 잡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시선이 부딪치면 바로 웃기부터 한다. 상대가 자신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고 일부러 웃는 걸 수도 있겠지만, 다른 상황에서도 저런 식이면 곤란했다. 본인들은 제대로 불침번을 섰다고 하지만,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분명 졸았을 거다.
외문 밖으로 나온 명월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관아 앞에 난 넓은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 몇이 명월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그들을 바라보던 명월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바로 옆에 자리해 있는 북을 확인하고는 그리로 갔다.
튼튼한 나무 기둥 위에 걸린 북이 찢어진 데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아래에 채도 제대로 달린 걸 확인했다. 겉면을 쓰다듬은 명월은 북의 가죽도 두드려봤다. 통통, 하고 울리는 소리를 확인한 그는 흐음―하는 소리를 냈다.
북이 걸려 있기는 해도 이게 단순한 장식용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보통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북은 두드려선 안 된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자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과연 이 북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명월의 얼굴은 점점 더 진지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뒤로 누군가 천천히 지나갔다. 커다란 수레에 물건을 담아선 지나가는 사내를 볼 수 없었던 명월이지만, 그 사내가 바로 뒤를 지나치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를 깨달은 양 단박에 뒤를 돌아본 명월은 수레를 끌고 가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등채를 빼들었다.
“네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난 거냐?!”
명월의 외침에 수레가 멈추고, 그걸 끌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놈의 앞으로 달려간 명월은 놈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 번 보면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뻔뻔한 낯짝. 장인 그놈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놈이 다른 때하고 달리 뭔가가 있는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거적이 덮어진 수레가 불길하다. 설마하니 저기 아래에 시체라도 들어가 있는 거 아니야?
“사또, 무슨 일이십니까?”
명월이 수레 앞을 막아선 게 이상하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포졸들이 달려오는 걸 본 명월은 당황해선 그들과 놈을 번갈아 보다가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마라.”
명월의 말에 달려오려던 포졸들은 주춤했다. 도와주려고 온 건데 왜 가까이 오지 말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명월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아서 눈치를 살폈다.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너희들은 그냥 움직이지 말고―.”
아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놈이 수레를 끌고 움직인다. 그것에 명월은 급히 등채로 놈이 잡고 있는 수레의 앞부분을 두드렸다.
“지금 너 어딜 가려는 거야? 이 수레에 담긴 건 또 뭔데?”
“궁금하면 확인해 보시든가―.”
확인을 하라고? 지금 그 짓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러는 거였다.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싶었던 명월의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사라진다. 굳은 얼굴이 된 명월을 두고, 놈은 재차 움직이려 했다.
“기다려. 수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 말한 명월은 수레 옆으로 가선 심호흡을 했다.
만약 이상한 게 있으면 이 녀석은 당장 그 자리에서 포박이었다. 코앞이 관아고, 포졸들도 있겠다, 더군다나 지금은 대낮이었다. 이놈이 저항을 한다 해도 그걸 붙잡을 수 있을 거라면서 명월은 안색을 굳힌 채로 앞으로 걸어갔다.
등채 끝을 거적 아래에 넣어선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러자 거적이 옆으로 스르륵, 흘러내린다. 그 순간 움찔한 명월이지만, 이윽고 수레에 올려져 있던 걸 확인하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거울이 눕혀져 있었다. 물론 위쪽으로 얇은 비단이 덮어져 있긴 했지만, 이것이 거울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런데 수레에 왜 이런 게 들어가 있는 걸까. 혹 모른다. 다른 곳에 뭔가가 더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명월은 조금 더 거적을 치워 보려 했다.
“너무 뒤적거리지 마라. 그거 호란으로 가야 하는 물건이니까.”
“……뭐?”
대체 뭔 소리를 들은 건가 싶었던 명월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여전히 수레를 붙잡은 채로, 놈은 그런 명월을 돌아봤다.
“지금부터 호란으로 갈 거다. 함께 갈 테냐?”
“…….”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멍하니 있는 동안 그는 수레를 잡고 다시 끌기 시작했다. 끼익, 하고 수레가 묵직한 소리를 냈다.
* * *
이병현 대감과의 일도 있고, 이방에게 조언을 들은 것도 있고 하니 당분간 호란을 찾는 건 자제하자 싶었다. 그런데 명월은 지금 기녀들이 휴식을 취하는 방 한편에 앉아 있었다.
여긴 행수도 오지 않는 장소라 했다. 기녀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그녀들만이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즉, 해우소 역할을 하는 곳이었던 거다. 그런 곳에 사내가 들어온 건 분명 명월이 유일할 거다. 아니, 하나 더 있던가.
구석진 곳에 양반다리를 한 채로 앉아 있던 명월은 눈동자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방 한편에 거울을 세우고 그걸 고정하는 놈을 확인했다. 키가 멀대 같이 큰 놈이 서 있으니 무척 답답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호접화가 서 있었다.
이상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인데, 저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 의외로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더 닮아 보였다. 그리 생각하는 건 자신뿐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했던 명월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자희가 명월의 옆으로 와선 내내 숨겨왔던 꿀을 바른 유과를 권했다.
“사또,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지금은 딱히 뭔가를 먹고 싶진 않았지만, 일부러 챙겨주는 성의를 봐서라도 맛이나 보자 싶었다.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자 자희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맛있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싶을 거다. 하지만 명월은 유과를 입에 문 채로 앞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느냐?”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자희는 눈을 끔벅이다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한다. 명월이 묻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그냥 직접적으로 묻는 편에 나을까. 명월은 재차 물었다.
“전에 장인이 꼽추라고 했잖나. 그렇게 보이느냐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그 노인께서 안 오셨네요.”
“……음?”
이건 명월이 생각하던 종류의 답변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방이나 복운에게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던 것. 그건 바로 저놈이 다른 이들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전에 저놈이 꼽추라고 단언했던 기녀에게 물은 건데, 이런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려 준다.
“가끔 장인께서 몸이 안 좋으시면 그분 제자께서 직접 내려오곤 하신답니다. 저분도 멋진 분이시죠.”
바로 기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명월은 멍하니 있다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을 설치하던 놈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가늘게 접혀지는 눈꼬리가 마치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구려진다.
그러니까 꼽추 노인이 따로 있었고, 저놈은 그 제자라는 식으로 둔갑이 된 거란 말인가. 하지만 이방은 저 자에게 말을 건넸다. 어쩌면 누구에겐 이렇게 보이고, 누구에겐 또 달리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 장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다른 대답을 들려 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명히 인간은 아닌데, 인간의 삶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수를 쓴 걸까.
놈을 바라보는 명월의 눈동자는 차게 식어 있었다.
거울 설치를 끝낸 놈은 차를 들고 가라는 말에 괜찮다 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명월도 기녀들이 한가득인 곳에 마냥 앉아 있고 싶지가 않아서 뒤를 따랐다. 명월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그 자리를 찾은 기녀들은 아쉬워했지만,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았다.
명월은 놈과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저런 놈하고는 아는 사이가 아님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함께 이곳으로 온 마당에 그런 류의 위장은 쓸모가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호접화가 놈의 앞으로 다가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예상보다 빨리 가져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걸 받아 주십시오.”
그는 주머니를 받아 품에 넣으며 말했다.
“다음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시오.”
말을 주고받는 둘은 평온했다. 친분이 있지는 않고,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돈을 받은 놈은 뒤돌아보는 일 없이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뒷문 쪽으로 이동하는 걸 본 명월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굳어진다.
저놈이 혼자 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호접화가 앞으로 다가왔다.
“사또. 전에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하니 한잔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그 일 말고 전에도 그녀를 보러 왔다가 자리에 없어서 불발에 그쳤다. 전이라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점점 멀어지는 놈의 뒷모습에 초조한 마음이 강했던 명월은 어색한 거절을 했다.
“오늘은 내가 볼일이 있어서 안 되겠군. 하지만 다음엔 꼭 함께 합시다.”
그 말에 호접화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거절당한 게 마음 상하는 걸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려니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 하시지요.”
허락을 받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게 된 명월은 당장 몸을 돌렸다.
서둘러 다리를 움직인 명월은 놈의 뒤를 쫓아서 기방의 뒷문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진 좁은 길 위에 그놈은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어디로 간 건가 싶었던 명월은 혀를 차며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 가지 못해서 길가에 있던 커다란 나무 뒤에서 손이 뻗어져 나온다. 그것이 명월의 팔을 붙잡았고, 놀란 명월은 헛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나무 뒤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 놈은 명월을 내려다봤다.
“왜 이렇게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오는 거야. 내가 그렇게나 좋은 거냐?”
갑자기 나타난 것도 당황스럽고,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몸을 만지는 게 싫었다.
명월은 당장 놈의 손을 뿌리쳤고, 그것에 이런―하고 중얼거린 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느긋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바라보는 놈을 보자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굉장히 언짢아지는 걸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명월은 이 사내가 신경 쓰였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랑 차 좀 마시지.”
노려보나 싶더니 한다는 말이 차를 마시자는 거다. 말을 들은 사내가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 나에 대한 호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가? 내가 서툴다 뭐다 잘도 지껄여대더니, 정말은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지?”
“네놈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할 말이 잔뜩이니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거잖나.”
한 곳에서 진득하니 앉아야지만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터였다.
명월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명월은 아직도 이놈이 억지로 자신을 덮쳤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면하고 있지만, 그건 수시로 변하는 거였다. 그래서 놈이 다가오는 순간에 맞춰서 안색을 굳힌 명월이 다급히 말했다.
“그리고 나한테 가까이 접근하지 마라.”
너무 속마음을 드러냈나 싶었을 때 놈이 빈정거린다.
“숫처녀도 아니면서―.”
“그딴 소리도 지껄이지 마.”
그 일은 저런 식으로 간단하게 언급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놈이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구니까, 명월도 점점 그 일이 기억 속에서 옅어지는 것 같지만, 그리 둬선 안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경고를 하자면서 명월은 손을 들어 놈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래. 네놈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그 추잡한 짓으로 갚았다 치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지껄이지 마라. 앞으로 한 번 더 내 앞에서 거론하면 그땐 가만 두지 않겠다.”
자신이 아닌 이 사내가 그 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살벌하게 노려봤다. 그런 명월을 바라보는 놈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놈이 느긋한 만큼 명월은 반대로 초조해지는 걸 느꼈다.
……괜한 말을 꺼낸 게 아닐까. 그냥 무시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자꾸만 이놈을 신경 쓰게 되는 건지―.
“밥 먹었나?”
갑작스러운 말에 명월이 고개를 든다.
“출출한데 국밥이나 한 사발 말아 먹으러 가지. 그 전에 옷부터 갈아입어. 내 수레는 기방에 잠시 맡겨 둬야겠군.”
내려다보며 웃는 놈을 두고 명월은 다시 눈을 내리떴다.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럽게 입을 수 있는 구군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걸 갈아입으면서까지 이놈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면서도 명월은 옷 한 벌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장사가 잘 되는 곳인지 밥 때가 아닌데도 사람이 많았다. 자리가 없어서 서 있나 싶었는데 안쪽의 좁은 마루 쪽으로 가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는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고개를 들면 다들 보이는 자리니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런 걸 확인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게 들통이 난 건지 바로 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비웃는 느낌이 드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는 것에 명월의 눈썹이 올라간다.
실제로도 안전한 곳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 주변을 둘러본 게 있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던 명월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놈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때 주모가 다가왔고, 놈이 기다렸다는 듯 주문을 넣었다.
“국밥 두 그릇에, 하나는 고봉으로 올려 주시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주모가 안쪽으로 들어가고, 명월은 허벅지에 한 손을 올린 채로 주변을 살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싶더니만 처마 아래쪽으로 메주가 걸려 있었다. 다른 쪽으론 시래기도 널려 있고, 마른 옥수수도 두어 개 보였다. 메주 냄새가 거슬리긴 했지만, 딱 보는 순간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런 게 있었다.
위를 확인하고 난 후 고개를 숙이던 명월은 이쪽을 보고 있는 사내와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움찔했다.
“왜? 이런 곳은 처음인가.”
처음이긴 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문 채로 있었다. 그러자 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또 저런 웃음이다. 딱 보는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명월은 눈을 내리떴고 얼마 안 있어 주모가 왔다.
낡은 상 위로 푸짐한 뚝배기 두 개와 밥과 김치가 올려 있었다. 양이 많은 쪽을 사내 쪽으로 돌린 주모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물었다.
“반주는 필요 없으십니까?”
“고기나 더 가져다 주게.”
“네. 알겠습니다.”
굽실거린 주모가 서둘러 움직이는 동안 놈은 먼저 수저를 들었다.
“먹어. 여기 맛있으니까.”
그러곤 뚝배기에 바로 밥을 가득 넣고는 휙휙 저어서 입에 넣는다. 뜨거울 만도 한데, 그런 내색 하나도 취하지 않고 빠르게 국밥을 떠 먹는 모습에 명월은 수저에 손을 댔다. 먹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명월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일단 밥부터 먹지. 난 지금 배고파.”
그러곤 더 크게 떠서 입에 넣는다. 그러는 동안 주모가 와서 고기가 수북이 쌓인 접시를 들고 왔다. 기다렸다는 듯 고기 몇 점을 뚝배기에 넣고 그대로 크게 떠서 입에 넣는 걸 본 명월도 그제야 수저질을 했다.
국을 떠 맛을 보자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칼칼한 맛에 눈을 끔벅이고는 더 많은 국물을 떠서 맛을 봤다. 그렇게 밥도 두어 입 먹었을까. 어느새 국밥의 절반을 비워 가던 놈이 여상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네놈이 여간 내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갑작스러운 말에 명월은 수저에서 입술을 뗐다.
놈은 명월을 흘깃 봤다.
“네놈도 보통 신경이 아니라는 거다. 어딘가 무뎌진 구석이 있는 거지. 보통 사내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뒤가 뚫리면 바로 회복하기 어려울 텐데 말이야.”
천박한 표현에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갑자기 속에서 불길이 확 올라온다. 뭐 하러 이런 놈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이런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일어나 버릴까. 그때 놈의 입을 타고 말이 흘러나왔다.
“네놈, 그거냐?”
움찔한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뒤로 몸을 젖힌 놈은 눈을 반쯤 뜬 채로 있었다.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풍기는 눈빛에 명월의 심장 박동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감춘 채로 차갑게 내뱉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네놈 이야기를 해라. 네놈의 정체, 그것에 대해서 말이야.”
입을 다문 명월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손대면 베일 것 같은 차디찬 얼굴을 하고 있는 걸 확인한 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난 백호다. 다들 그렇게 부르지.”
그 순간 떠오르는 건 작업실 벽에 걸려 있던 하얀 호랑이 가죽이었다.
“그곳에 걸려 있던 호랑이 가죽이 네 정체였던 거냐.”
“가죽이 걸려 있으면 그건 죽은 놈이지. 하지만 난 살아 있는 쪽이다.”
“어차피 인간이 아니지 않나. 너희 놈들은 모두가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더냐.”
“그런 걸로 따지면 네놈은 뭐냐.”
반문에 명월은 움찔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놈의 말은 계속 되었다.
“인간도 아니고, 귀물도 아니고, 중간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채로 인간의 탈을 쓰고 그리 행동한다고 해서 네놈이 살아있다고 볼 순 없다.”
차가운 무언가가 목구멍 안쪽으로 파고 들어와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놈의 말에 아니라고 바로 반박할 수도 없었던 명월은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있었고, 놈은 그런 명월을 비웃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정체가 뭐냐고? 다른 놈들은 날 백호라고 부르고, 두려워한다. 이곳 대부분의 산은 모두 내 것이며 땅이 이어진 곳이라면 내가 가지 못할 곳이 없다. 마음에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은 산속 깊숙한 곳에서 잠을 청하고, 간혹 내키면 인간들 세계로 내려와 그들과 어울리며 생활을 하지.”
명월은 지금 자신이 상당히 긴장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온몸으로 힘이 들어가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 없는 상태였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놈의 기에 밀려 이런 꼴사나운 상태라는 걸 인지한 명월은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울리며 생활을 한다고? 그들에게 해를 가한다는 말을 잘못 한 게 아니냐?”
“해를 가하는 건 저급한 것들이나 하는 짓이지. 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이지. 내 기술과 능력으로, 인간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거다. 인간들은 그런 날 두고 신선이니, 신수니, 저들 마음대로 부르지. 그러다가 뭔가 수틀리면 요물이라면서 비방하고 말이야. 놈들이 날 어떤 식으로 부르고 칭하는지는 관심 없고 신경도 쓰이지 않지만, 그래도 종종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긴 하지.”
고기 위에 김치를 올리고 그걸 입에 밀어 넣은 놈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너 같은 놈도 나타나고, 참 재미있단 말이지.”
“…….”
이것은 마치, 자신이 놈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정체를 알 수가 없고, 도대체 뭘 하는 놈이라서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건가 싶은데, 이놈도 마찬가지인 거다.
이 구역은 저놈만의 것이었는데, 자신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도 아니고, 귀물도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난 대체 뭘까. 어려서부터 생각하던 의문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런 걸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퍼지는 것 같다. 불쾌한 감각을 느끼며 명월은 천천히 숨을 토해 냈다.
이런 화제는 불편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놈에게 듣지 못한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명월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여기서 오랫동안 있었던 거냐?”
“네놈보다는 오래 있었겠지.”
“그렇다면 그런 일을 두고도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지금 나더러, 인간들의 일에 개입해서 그들을 도와줬어야 했다고 말하는 거냐?”
비꼬는 말에 명월은 입을 다물었다.
앞서 명월은 놈이 인간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으나, 지금 한 말은 그와 달랐다. 왜 죄 없는 소녀들이 죽어 가는 걸 알면서도 그걸 도와주지 않은 거냐고 따져 묻는 거나 다름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그리 말한 게 실수를 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인간들이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장이라면, 그들에게 해를 가하는 귀물이 나타날시 그걸 처리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애초에 우리는 인간들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번은 관여를 했잖나.”
“그건 네가 있었기 때문이지.”
“…….”
명월의 눈가가 파들, 하고 떨렸다.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너하고 단순히 그 짓을 하고 싶어서 네놈을 도와준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놈, 백호가 젓가락을 세웠다.
상에 부딪친 젓가락에서 따닥, 하는 소리가 났다.
“지금 너처럼 굴면 쥐도 새도 모르게 통째로 먹힐 거다.”
먹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끔찍하게 생겼던 귀물에게 통째로 집어 삼켜진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영혼이 빼앗긴다는 걸까. 뭐가 되든지 개죽음이라는 건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명월을 본 백호가 빈정거렸다.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해서 안 되었군.”
그 순간 명월의 눈가가 파들거리고 떨렸다.
미미한 동요를 드러내는 명월을 두고 그의 웃음이 한결 진해졌다.
“네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한번 말해 볼까? 나하고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 그런 존재라면 고민을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인간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아니야. 앞으로, 나는―.”
“입 다물어!”
명월이 이를 악문 채로 거칠게 내뱉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호는 뒷말을 내뱉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겠구나.”
“…….”
그 순간 명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명월은 지금 자신이 일어선 상태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상에 올려져 있던 젓가락과 수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싸우는 건가 싶었던 주모가 걱정스럽게 쳐다보긴 했으나,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백호는 젓가락에 묻은 김치의 양념을 혀로 핥아냈다.
“너하고 난 다르다. 이렇게 겸상을 해서도 안 되는 거지. 지금 내가 너에게 맞춰 주고 있지만, 정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난 너 같은 반푼이들은 상대하지 않아.”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는 눈동자만을 들어 명월을 노려봤다.
“내가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내시나.”
정리가 되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거칠었다. 정리가 되지 않아서, 사납고 차가움이 풍기는 그 눈빛과 마주한 명월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홀라당 다 벗겨져서 알몸인 채로 놈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꽁꽁 숨겨 왔던 무언가가 들켜 버렸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명월은 악문 어금니 사이로 거칠게 내뱉었다.
“애초에 네놈이 내 근처를 배회하지 않았나.”
“내가 뭘 했다는 거냐.”
“했다. 이 돼지 고양아―.”
돼지 고양이, 라고 부르는 순간 백호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그걸 본 명월은 재빠르게 내뱉었다.
“그런 식으로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썩 꺼져 버려.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하란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가 될 거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명월은 당장 몸을 돌리곤 밖으로 나갔다. 한쪽 어깨에 짊어진 걸 위로 추스르면서 걸음을 서두르는 뒷모습에서 지금 그가 단단히 화가 났음이 느껴졌다. 그걸 바라보던 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서―.”
어른이 밥그릇을 다 비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혼자 가 버릴 수 있는 건가 싶었다. 혀를 찬 백호는 고기를 손으로 집어선 입에 넣었다. 퍼석하고 맛이 없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도 아니었다.
이런 걸 잘도 먹었다면서 뚝배기를 들고 국물을 마신 후 그는 뒤로 몸을 젖혔다. 편한 자세를 잡은 채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명월이 앉았던 자리를 살피다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라는 건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그는 픽, 하고 웃었다.
음식을 다 먹지도 않은 백호는 바로 주모를 불렀다.
* * *
쪼그리고 앉은 채로 외문 앞에 있는 복운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가 저런 얼굴로 있으니까 방해가 되어도 뭐라 말할 수 없었던 포졸은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복운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저 고양이는 대체 어째야 하나 싶었다.
이런저런 고양이를 많이 봐 왔지만, 저런 건 처음이었다. 복슬복슬한 털을 지닌 녀석은 묘하게 졸린 눈을 하고 있는, 못생긴 놈이었다. 원래 고양이라는 게 대부분 얄팍하니 귀엽지 않으냐면서 포졸은 이상하다는 식으로 고양이를 바라봤고, 그때 복운이 고개를 들었다.
뭔 일인가 싶어 똑같이 고개를 든 포졸은 이리로 오는 명월을 확인하곤 어, 하는 소리를 냈다. 분명 나갈 땐 구군복 차림이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생각은 비단 포졸만이 하는 게 아닌 듯 복운은 당장 명월 옆으로 달려갔다.
“아니, 사또. 옷차림이 왜 이런 겁니까?”
묻는 말에 명월은 대답 없이 복운을 흘깃 봤다.
묘하게 싸늘한 시선에 복운은 당황해선 바로 입을 다물었고, 그러는 사이 명월이 앞을 지나쳐 갔다. 외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고개를 들고는 바라보는 녀석을 확인한 명월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색을 드러내나 싶더니 이윽고 별말 없이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대로 조용히 관아 안으로 들어가는 명월을 본 포졸이 의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
지금 포졸이 보기에도 명월은 이상해 보였다. 그걸 복운이 모를 리가 없었다.
되지도 않는 감정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복운은 불안해졌다. 혹,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자신을 보는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차갑게 식어 있는 그 눈빛.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다.
복운은 고양이를 지나쳐 명월의 뒤를 쫓았다. 그제야 고양이도 육중한 몸을 일으켜선 복운의 뒤를 졸졸 쫓았다.
일단 명월의 뒤로 접근하긴 했지만,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망설이던 복운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사또,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
“옷을 왜 갈아입으셨습니까. 혹 뭐가 묻은 게 아닙니까? 그런 거라면 저한테 주십시오. 바로 깨끗하게 해서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손을 뻗은 채로 졸졸 따라도 명월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급해진다.
“식사는 좀 하셨습니까? 곧 점심 때가 아닙니까? 제가 갓 지은 밥을 바로 올리겠습니다. 사또께서 좋아하시는 산나물도 잔뜩 올려드리겠습니다. 아, 날도 이러니 모처럼 비빔밥을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딴에는 좋은 생각이다 싶어 말을 꺼낸 건데 역시나 명월은 무반응이다.
다른 때라면 복운도 ‘왜 사람이 말하는데 대꾸도 없으신 겁니까? 제가 뭐, 그림자라도 됩니까? 사또 정말 너무하십니다.’라면서 툴툴 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할 수 없었다. 이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였다.
복운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명월을 바라봤고, 그러는 동안 처소에 도착한 명월은 방으로 들어갔다.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닫히는 분합문을 보고도, 복운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그때 뒤에서 “복운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방 한소규가 서 있다.
“사또께서 들어오셨다는데, 기분이 별로라고…….”
“아무 말씀 마시오.”
한소규가 더 뭐라 하기 전에 복운은 재빠르게 말하면서 그에게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뒤를 흘깃거린 복운은 조용히 말했다.
“저러다 알아서 나오시면 왜 그러시는지 내 물을 테니, 나으린 조용히 계시오.”
복운이 조용히 하라 운운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금 명월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명월의 방 쪽을 살핀 이방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방으로 들어온 명월은 어깨에 멘 짐을 내리고 갓을 벗었다. 그러곤 바로 안쪽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쪽 다리를 세운 채로, 그 위에 팔을 올린 명월의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나 싶던 명월은 하,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제멋대로 지껄여대다니.”
놈이 한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었다.
나하고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니. 내가, 혼자가 아닐 거라니.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애써 부정을 하는 명월의 얼굴은 내내 굳은 채였다. 눈을 내리뜬 채로 있던 명월은 이마를 감쌌다. 그러자 재차 놈이 한 말이 떠오른다.
‘네놈, 그거냐?’
그 순간 명월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던 명월은 당장 근처에 있던 목침을 들어선 있는 힘껏 던졌다. 날아간 목침이 벽에 부딪쳐 큰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장 위에 있던 함이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복운이 “사또? 왜 그러십니까?!”라고 다급히 묻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다! 들어오지 마라!”
복운이라면 당장 문을 열고 들어오려 들 거다. 실제로도 그랬던 건지, 달려오던 소리가 멈췄다. 사또라 부르는 것도 없었다. 그걸 확인한 명월의 움켜쥔 손으로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마음이 거칠게 날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다독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굳은 눈으로 하염없이 있던 명월은 상에 손을 올렸다. 근처에 있던 벼루를 던지려 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물건엔 죄가 없었다. 그걸 던지는 건 단순한 화풀이밖에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그 정도로 한심하진 않았다.
그래. 여기서 더 바닥으로 떨어질 순 없었다.
여기서 더 바닥으로…….
거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명월은 눈을 내리뜨고는 이를 갈았다. 그 사이로 나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방의 딸을 살려 낸 거란 말인가. 그 일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했다면 그놈하고 이런 식으로 얽히는 일이 없었을 터였다. 이런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을 테고, 바닥이 다 드러난 듯한 이런 감정 또한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을 거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이 저지른 일이다 싶었던 명월은 고개를 숙였다. 책상 위에 엎드린 명월은 움켜쥔 손으로 느리게 상을 두드려댔다.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