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또전 2권
1장
‘저게 유 대감의 막내 아들인가.’
‘막내 아들은 무슨, 바깥에서 얻어 온 아들이라 하던데.’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떠들어대던 이들이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저렇게 모른 척한다고 해서 들은 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기분이 언짢아진 명월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픈 꼴이나 당해 봐라―.
그리 생각을 하는 순간 억, 하고 신음을 흘리며 한 사내가 머리를 감싼 채로 허리를 굽혔다. 그건 앞에 서 있던 자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끌어안고는 아이고,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이들을 본 명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꼴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근처에 서 있던 중년 사내와 시선이 부딪쳤다. 뒷짐을 진 채로 서 있는 건 바로 아버지였다. 저들이 운운하던 유 대감, 바로 그였다.
그 순간 명월의 입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들켰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명월은 시선을 돌린 채로 그 자리를 피하고자 발을 뗐다. 그런데 그때 ‘이리로 오너라.’라는 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명월은 더럭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가 먼저 오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럴 땐 바로 대답을 하고 앞으로 달려가야 했지만, 지금은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동안 뒤에선 두 사내의 신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상함을 감지한 것인지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인가?’라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명월은 더더욱 당황했다.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야 할 거리는 얼마 안 되었지만,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한참 남은 것처럼 여겨졌다. 힘겹게 간신히 그 앞에 멈춰 선 명월은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명월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굴려댔다.
그때 머리 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따라오거라.’
그 말과 함께 먼저 몸을 돌리는 아버지를 본 명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상태가 된 명월이지만, 그런 그를 달래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가면 분명 크게 혼날 거다. 하지만 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자신을 쫓아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던 명월은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걸음을 옮겨서 아버지를 따라갔다.
안채로 들어간 아버지는 안쪽 자리에 앉아선 본인 앞에 방석을 던지듯 내려놨다. 그런 그의 앞에는 기다란 함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명월은 더럭 겁이 났다.
방석 앞까진 걸어갔지만, 그 위로 올라설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명월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잘못했어요.’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이니 넌 혼나야 한다.’
‘다, 다음부터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당연한 말은 하지 마라. 애초에 넌 해선 안 되는 짓을 한 거다.’
엄한 목소리엔 자비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순 없음을 깨달은 명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한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을 먹었고, 그걸 철회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대한 빨리 해치워 버리는 편이 나았다.
명월은 느리게 움직여선 방석 위에 올라섰고, 허리를 굽혔다. 바지를 접어서 무릎 위까지 올리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올 통증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섭다. 도망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엔 허리를 세우곤 똑바로 섰다.
그런 명월을 확인한 유 대감은 함을 열었다. 달칵, 하고 울리는 차가운 소리에 명월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마른침을 삼키자 바로 회초리가 나왔다. 회초리의 끝을 단단히 잡은 아버지가 ‘이를 악 물거라.’라고 말했다.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고 찰진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열 번. 스무 번을 넘어갈 즈음 명월도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정강이에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곳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외려 더 세게 날아오는 회초리를 맞으면서 명월은 울었다. 울면서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그런 말을 반복했다.
맞으면서 너무 많이 울었던 걸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하자 그걸 그치는 게 힘들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창피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서럽게 울곤 했다. 그리 운다고 해서 달래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결국 명월이 눈을 뜬 건 이불 위였다.
정강이가 아직도 얼얼했다. 그런데 찬 뭔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엎드린 채로, 베개에 얼굴을 기대고만 있던 명월은 눈동자를 들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회초리를 맞다가 기절했던 걸까. 아마 이 집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방으로 옮기고 간단한 치료만 해 주었을 거다. 아픈 상태로 그냥 두는 것도 싫지만, 이런 상황에서 눈을 떴는데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꽤나 싫은 일이었다.
뚱한 얼굴로 있던 명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로 으, 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일어나 앉은 명월은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다리가 마비된 것마냥 얼얼했다. 눈을 내리뜨고 확인하자 다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치료를 해 줄 거면 처음부터 살살 때리든가.’
투덜대긴 해도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다.
지친 얼굴로 붕대가 감긴 다리를 내려다보던 명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로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이곳으로 온 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어느덧 3년이나 지났으니 슬슬 익숙해지자 싶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문득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월은 엉덩이걸음으로 문 앞까지 갔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천것들이라 해도 자신을 피하곤 했다. 어쩔 땐 불러도 모르는 척하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배고프니까 모르는 척해도 끝까지 불러서 이리로 오게끔 할 거라며 손잡이를 잡았다.
‘그 아이는 일어난 거냐.’
그때 거의 동시에 들리는 목소리에 명월은 행동을 멈췄다.
그러자 문 바로 앞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들어갔을 땐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너무 늦게까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의원을 불러야 하니 내게 말하도록 해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혹여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쇤네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마님께선 신경 쓰지 마십시오.’
굽실거리는 말에 섞여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명월은 그 소리가 무서웠다.
아버지가 생기면서 어머니도 덩달아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차가운 눈으로 명월을 바라보곤 했다. 저건 대체 무언가 싶은 눈빛으로 바라볼 때면 명월은 자신이 괜한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곳에서 셋째 아들로 있지만, 정말은 다른 곳에서 온 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바깥에서 떠들어대는 놈들처럼 말이다.
‘마님께서 어지간히 막내 도령을 챙기시는구만.’
‘챙기는 게 아니라, 뭔 문제가 생기면 옴팡 뒤집어쓰니까 그 전에 확인하러 온 거지.’
‘옴팡 뒤집어쓰다니?’
‘전에 보니까 마님이 막내 도령을 등한시하는 걸 두고 주인어른께서 뭐라 하시더라고, 그 말을 들은 마님이 한마디 하니까 분위기가 말도 못혀. 아이고, 그런 가시방석이 또 없더라니까.’
‘쯧쯧쯧, 그러기에 왜 바깥 아이를 데리고 와선……. 그런데 막내 도령이 주인어른의 씨가 맞기는 한 거야?’
‘그렇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구먼. 얼굴이 전혀 안 닮았잖아.’
‘그래서 말인데, 이건 나도 들은 말이긴 한데 예전에 주인어른께 나이 차이가 나는 아우가 있었다고 하던데.’
‘난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그 아우가 정신이 좀 이상해서 절에 가두다시피 했다잖아.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는 말을 언뜻 들었어. 그분하고 막내 도령하고 아주 쏙 빼닮았다는 거지. 저기 안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옥이 어멈이 하는 말이니까 정확할 거야.’
‘그러면 뭐야. 막내 도령이 그 절에 있었던 정신 이상한 사람의…….’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명월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마루 끝에 앉아 있던 머슴 둘이 갑작스럽게 열리는 문에 놀라 급히 뒤를 돌아봤다. 싸늘하게 식은 명월의 눈빛에 그들은 다급히 입을 다물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어나셨습니까. 도련님.’
‘배고프니까 밥이나 가져와.’
‘네, 네. 알겠습니다.’
마치 이상한 소리는 애초에 떠들지도 않았다는 양 그들은 서둘러 멀어졌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이들을 본 명월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들 멋대로 지껄여댔다.
그는 정신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늘 내 곁에 있던 사람이었는데……그랬는데.
지금은 곁에 없었다. 지금 명월은 혼자였다.
3년 전에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갑자기 울적해지면서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듦을 느끼며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슬프다. 너무너무 슬펐다. 왜 난 혼자인 걸까. 왜 그는 자신만 이곳에 버리고 떠나 버린 걸까.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하지만 정작 선을 넘어서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다 지나고 난 후에 뭐라고 하는 건 정말 너무한 일이지 않느냐면서 명월은 훌쩍거리며 문을 닫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명월은 한참을 더 울었다.
그냥 서럽고, 슬펐다. 이곳은 아직도 명월에게 낯설고 두려운 장소였다. 여기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엔 명월처럼 이상한 걸 보는 사람이 없었다. 명월이 뭔가를 보고 말을 할라치면 절반은 다들 기함한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이 꼬마가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저들이 왜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지 알 수가 없어 화가 났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깨를 붙잡고 말했던 거다.
‘무엇이 보이는 거냐.’
그리 묻는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도 무서워서 명월은 얼어 버렸다.
‘어서 말해라. 무엇이 보이느냔 말이다.’
붙잡힌 어깨가 너무 아팠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명월은 겁에 질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하, 하얀 손이 우물 안에서 튀어나와서 복순이 어멈을 붙잡았어요.’
‘그리고?’
‘눈이 붉은 새가 날다가 초가집 위에 앉아서 크게 울었는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병에 걸렸어요.’
‘그리고? 또 뭐가 있더냐?’
‘거, 검은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 그림자가…….’
얼마 전에 온 늙은이의 등에 달라붙어 있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늙은이 몸속으로 들어간 거였다. 그리고 늙은이는 얼마 되지 않아서 숨이 끊어졌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몇이나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이 명월을 알아차리고 접근하려 한 적도 종종 있었다.
그건 명월이 보고자 해서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함부로 말을 하거나 하면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걸, 요즘 들어서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말하려 하는데 혀끝이 얼어 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냥 슬펐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든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울먹거리는 명월을 보고도 아버지는 채근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느냐.’
‘더는 없었어요. 다른 건 못 봤어요.’
거짓말이었지만, 이리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월은 눈물 맺힌 눈동자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굳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보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응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통해서 누군가를 투영하려 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나 싶더니, 어깨에서 손을 떼곤 말했다.
‘앞으로는 매사에 조심해야 할 거다.’
잡힌 어깨가 얼얼했다. 아팠지만 애써 참고는 조심스레 위를 올려다봤다. 명월이 고개를 드는 걸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바로 경고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모르는 척해라.’
‘……하지만 보이는 걸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더냐. 여기서 사람답게 살고 싶거든, 내 말대로 해야 할 거다. 알았느냐.’
엄한 그 말에 고개를 젓거나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 하는 게 최선이었다. 잔뜩 겁에 질려선 알겠다고 한 명월은 눈을 내리떴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처음 경고를 들었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노력해서 보이게 되는 빈도가 한결 줄긴 했지만, 그래도 눈앞에 나타날 때가 되면 고민의 시작이었다.
저것이 지금 나에게만 보이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걸까. 알 수가 없으니 주변을 살피게 되고, 사람들 안색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게 또 잘못이 되었다. 어린놈이 사람 안색을 지나치게 살펴서 기분이 나쁘다는 식으로 떠들어댔다.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맞느니, 차라리 저런 말을 듣는 편이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한 명월은 남들이 뭐라 말해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투고 있었다. 어디서 안사람이 지아비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거냐는 말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러운 놈, 피 운운을 하면서 당장 자신을 쫓아내라 했다. 그 말에 안색을 굳힌 아버지가 목소리 낮추라며, 윽박질렀다.
‘그 더러운 놈이 대감을 마음에 품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놈이 그토록 어여뻤다지요? 그래서 대감께서도 그놈을 잊지 못하는 게 아니십니까?’
그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지금까지하고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 사라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괜한 말을 했다 싶은 내색을 드러내나 싶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그놈이 밤만 되면 이 사내, 저 사내를 전부 다 끌어 들여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다들 그놈을 매질로 때려 죽여야 한다 했지만, 대감께서만 반대를 하셨다지요? 결국에 그놈을 절로 보내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계속 뒤를 봐주셨다지요? 왜 그렇게까지 하셨던 겁니까? 그놈뿐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놈의 피를 이어 받은 아이까지 제 자식으로 두시다니.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미치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과 말만 들어 보면 이미 미친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전 미쳤습니다. 여기서 더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시거든 그 천한 아이를 당장 내치세요!’
‘말조심하시오!’
결국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공기가 따끔거릴 정도의 매서운 살기를 드러내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노려봤다.
‘그 아이는 내 집안의 핏줄이오! 앞으로 한 번만 더 그 아이를 내치라 마라 말을 한다면, 그땐 당신이 이 집안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오!’
집안에서 쫓겨나게 될 거라는 그 말에 어머니의 뒷모습이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 표정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세상이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을 거다. 자신이 처음 이 집안에 왔을 때에도 그런 얼굴로 바라봤으니까.
‘게다가 어디 여인이 사내 앞에서 언성을 높인단 말인가! 그러고도 사대부의 여인이라 할 수 있겠소?! 진정 이 집안에서 쫓겨나고 싶은 것인가!’
아버지의 날카로운 말이 비수가 되어 어머니의 마음에 꽂힌다. 내내 앙칼지게 굴던 그녀였지만, 결국에는 먼저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져선 얼굴을 감싼 채로 서글프게 흐느꼈다.
‘저도 여인입니다. 지아비의 사랑을 바란단 말입니다.’
‘자네와 내 사이엔 아들이 둘이나 있소.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오?’
‘아들이야 태어났지요. 대감께서 매일 저녁 의무감으로만 절 안으셨으니까요. 심지어 대감께선 그걸 숨기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노골적으로 필요로 의해서 절 안는다는 티를 내셨지요. 그때마다 제 심정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집안을 잇기 위한 아들을 둘이나 낳았소. 그걸로 제 할 일을 다 한 셈이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그 외에 다른 걸 기대하지 마시오.’
‘……어찌 그리도 무심하고 잔인하시단 말입니까. 제가 미친 것처럼 이리 구는 이유를 아시면서도 왜 자꾸만 모르는 척을 하십니까. 너무도 야속하십니다.’
몇 번이나 야속하다 하는 말에도 아버지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절로 어머니가 불쌍해진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걸 걱정할 입장은 못 되었다.
기둥 뒤에 몸을 숨긴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달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그걸 보자니 눈물이 나온다. 웬 청승인지 모르겠다며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내도 멈추지 않았다. 입을 열고 한숨을 내쉬자, 그 사이로 떨림이 퍼져 나간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명월은 떠올렸다. 그를, 기억해 내려 했다.
그는 늘 곁에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서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그건 명월의 옷이 되기도 했고, 가죽신이 되기도 했으며, 종종 이불과 베개가 되기도 했다. 숲에 들어가서 사냥을 해 오는 건 자신에게 먹이기 위함이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도 없었다.
그와 자신뿐이었기에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금방 사라졌다. 외로움이 더 길게 이어지지 않도록 그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가 진짜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였다. 지붕이 되어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던 존재였다. 그런 그가 떠나고 지금 자신은 혼자였다. 앞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걸 알아 버렸다. 그래서 무서웠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 두려움과 공포마저도 온전히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백호(白虎). 그의 존재를 파악했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 했던 건, 그래. 그가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으면 뭐가 어떻다는 걸까.
자신은 정말 어리석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는 짓을 했다면서 명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ㅅㅁ ㅇㄹ
이불 위에 웅크린 채로 잠든 명월은 추워 보였다. 거기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으니 보기가 딱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하얀 형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건 털이 풍성하게 난 고양이였다. 고개를 숙인 채로 지그시 바라보던 고양이는 혀를 내밀어선 명월의 눈가에 묻어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렇게 두어 번 할짝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는 빤히 본다.
바라보는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그 얼굴만을 본다면 평범한 고양이 같진 않았다. 그윽하다 할 수 있는 두 눈동자 가득 명월의 얼굴이 담긴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명월이 몸을 움츠렸다. 눈물은 멈췄지만, 추운 건 여전한 듯싶었다.
고양이는 고개를 들곤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입을 벌리자 야옹―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한 번 더 소리 내 울려다가 입을 다문 고양이는 고개를 숙였다. 뭔가 좀 탐탁지 않게 명월을 보더니 입을 벌린다. 그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오고 고양이의 체격이 점점 커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양이는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하얀 한복을 입은 사내는 흰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채였다. 호랑이의 머리가 그대로 머리에 올려진 거라 무거울 만도 한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그는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미간에는 짙은 주름이 잡혀 있다. 명월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 성가신 놈을 과연 어찌 처리할 것인지, 그런 의중을 품고 있는 눈빛과 태도였다. 그러다가 명월이 조금 더 몸을 움츠렸고, 결국 그가 움직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선 명월을 안아 들고 이불 위에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주려던 순간, 무언가가 그의 가슴팍을 붙잡았다. 안색을 굳힌 백호는 눈을 내리떴고, 자신의 가슴팍을 쥔 명월의 하얀 손을 확인했다. 설마 잠에서 깬 건가 싶어 조심스레 살피자, 명월의 감긴 눈꺼풀을 타고 재차 눈물이 흘러나온다.
인간의 눈물 따위가 그의 심계를 어지럽힐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한숨을 쉰 백호는 결국 명월의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편안하게 누운 그는 명월의 몸 위로 한 손을 올리곤, 그의 가슴을 느리게 토닥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양 몸을 돌려 명월이 붙어 온다. 하지만 일단 옆으로 누워선 안겨 오긴 해도,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게 낯선 듯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잠을 자는 도중에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건가.
여간 성가신 삶을 살았던 모양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명월의 미간으로 짙은 주름이 생긴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느린 신음이 흘러나오는 걸 들은 백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명월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갖다 대고는 중얼거렸다.
“나쁜 꿈은 더 이상 꾸지 마라.”
계속해서 이마를 댄 채로 있으려니, 호흡이 안정되어 간다. 명월의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이 서서히 펴지는 걸 확인한 백호는 다시 고개를 뗐다. 그리고 뒤로 살짝 벗겨져 있던 호랑이 머리를 앞으로 끌어 내렸다.
모자를 쓰듯이 푹 눌러쓴 그는 명월의 몸 위로 팔을 올리곤 등을 토닥였다. 마치 아기를 어르듯이 자는 내내 그리해 주었다.
* *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상할 정도로 머릿속이 개운했다. 아주 잠깐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던 기억이 나려 했지만 그건 금방 사라졌고, 명월은 눈을 감았다. 위로 양팔을 뻗은 채로 기지개를 한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돌렸다.
조금 더 뒹굴거리다가 일어날 셈이었던 그의 얼굴 앞으로 푹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이건 또 뭔가 싶었던 명월은 눈을 떴고, 못생긴 고양이를 발견했다.
“…….”
전이라면 당장 소리를 치면서 난리법석을 떨어댔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이불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대청 끝으로 걸어가서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고개를 든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늘이 왜 이리도 흐린지. 오늘은 비가 쏟아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월은 하품을 했다.
“기침하셨습니까.”
양손을 마주 잡은 채로 눈치를 살피는 복운이 보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고양이를 옆에 끼고 방자하게 굴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그래서일까. 명월도 딱히 그때의 모습을 두고 뭐라 하지 않고 차분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날이 흐리구나.”
“목욕 준비부터 할까요?”
“아니. 괜찮다. 그냥 옷만 갈아입으면 되겠어.”
“새로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명월은 구군복을 입고 나갔다가, 다른 걸 입고 돌아왔다. 그때 명월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보따리 안에 전부 다 들어가 있을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걸 얻어낼 수 없었다.
아마도 방 안에 굴러다니고 있겠지. 그건 나중에 찾아서 빨래를 하고, 여벌로 된 다른 걸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명월의 방문을 열고 하얀 고양이가 걸어 나왔다.
털도 많고 덩치도 큰 놈인지라 다리가 굉장히 짧아 보이는 녀석은 여타의 고양이들과 달리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복운은 크게 당황해선 대청 위로 기어 올라가 급히 고양이의 앞발을 잡아 주욱 끌어당겼다.
당장 고양이를 내려놓은 복운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명월을 올려다봤다.
“이 녀석이 사또 방에 들어갔나 봅니다. 간밤에 안 보여서 그렇게나 찾아다녔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 밥부터 준비해라. 속이 출출하구나.”
복운의 말을 중간에 자른 명월은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걸 본 복운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다소곳하게 앉은 고양이가 제 앞발을 혀로 핥고 있었다. 느긋해 보이는 모습에 복운은 당장 허리를 굽혔다.
“너 대체 사또께 뭘 한 거냐?”
그 순간 고개를 든 고양이가 가만히 있다가 입을 벌리며 야옹―하고 울었다. 그걸 보자니 말도 못하는 고양이를 붙잡고 무슨 소리를 한 건가 싶었던 복운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쓸데없는 짓일랑은 하지 말고 아침이나 챙기자면서 서둘러 움직였다.
* * *
방으로 들어간 명월은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면서 본인의 오른손을 내려다 봤다.
검은 가죽이 틈 없이 피부에 밀착된 상태로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다가 손을 움켜쥐었다가 펼친 후에 상 위에 올렸다.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하고 있었던 거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 그가 원했던 건 바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그의 뜻에 어긋나려 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두고 혼자 떠나긴 했지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거다. 얼마 전에 귀물 놈이 이 손바닥을 보고 흥분하던 것과 관련이 있는 일일까.
거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명월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고,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돌아본 그는 다시 손을 움켜쥔 채로 생각했다.
앞으로는 조심할 터였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주 잠시 착각하고 있었던 게 있었지만, 더는 아니었다. 자신은 보통 사람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살아가면 되었다. 그렇게만 하면 별다른 잡음이 생기지 않을 거다.
* * *
곧 중순이 될 터이니, 하순이 되기 전에 도성에 보낼 물자를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물론, 호방이 알아서 준비를 했겠지만 최종적으로 검토를 하는 건 사또의 몫이었다. 때문에 그동안 호방이 정리하고 준비한 것들을 마당 앞으로 전부 끄집어내서 그걸 일일이 확인했다.
처음 명월이 그 말을 꺼냈을 때 ‘워낙에 물건들의 양이 많아서 일일이 끄집어내긴 힘들 텐데요.’라고 하던 호방은 이방이 옆구리를 찌르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방만이면 모르겠지만, 명월의 표정도 평소와 달랐다. 묘하게 차분하고 가라앉아 있는 게 일단은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호방이 말한 대로 마당에 펼쳐 놓은 물건들의 양은 상당했다. 석달 동안 소중하게 잘 모아 온 것들이니 그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상한 게 더러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소중하게 잘 보관했다 하더라도 봄에서 여름으로 지나치는 시기에 생것이 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거기다 약초 중에서도 질이 저급한 게 더러 있었다. 대충 보면 넘길 수 있겠지만, 한 번 더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
명월은 바로 그런 걸 집어냈다.
“이 약초는 다시 준비하도록 해라.”
명월의 말에 호방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금 명월이 다시 준비하라고 한 건, 겨우내 산에서 캐낸 것들이었다. 작은 바구니로 하나의 양이었지만, 얻기가 어렵고 지금은 나지도 않는 것들이니 이만큼을 다시 얻는 건 힘들었다.
명월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나. 아니다. 다시 하려면 그만한 포졸들이 산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그처럼 쓸데없는 인력 낭비가 없는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호방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사또, 이건 지금 시기에 나지 않는 것이니 새롭게 얻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말에 명월은 눈을 내리떠 호방을 바라봤다.
“나쁜 것과 좋은 걸 다시 걸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좋은 것들만 준비를 해 두고, 부족한 것은 제철에 나는 약초로 메꾸는 게 어떨까요.”
일단 용기를 내 말을 꺼내 보긴 했는데, 과연 이걸 어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지금 명월은 기분이 언짢아 보였으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 해서 호통을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해라.”
명월이 싫은 소리를 하면 그냥 다 듣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호방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들은 말이 참인가 싶었던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제철의 것으로 대체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시기에 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없던 걸 준비해 오라 시킬 순 없지.”
“그, 그렇지요. 요즘은 나지도 않는 건데 그걸 다시 모을 순 없는 노릇이지요.”
웅얼거리며 대답한 호방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제야 슬슬 명월이 어떤 사내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계집애 같은 놈이 왔구나 싶어 우습게 봤지만, 어느 순간 만만치 않은 사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사또를 대하듯 하려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없잖아 있었다. 말이나 행동을 취할 때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그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또들은 안 된다고 하면 ‘시도라도 해 봐라.’ 하며 호통을 쳤을 거다. 하지만 바로 이해하고 알았다 하는 건, 대단한 거였다. 괜찮은 사내일지도 모른다 싶었던 호방은 명월의 옆얼굴을 흘깃거렸다.
뒷짐을 진 채로 물건 사이를 다니면서 꼼꼼히 확인하던 명월은 어느 한곳에서 멈추었다.
잘 짜인 소나무 함에 금띠가 둘러져 있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이었기에 그걸 유심히 보려니 호방이 잽싸게 옆으로 와선 장부를 넘겼다.
“아, 그건 동충하초입니다.”
낯선 단어에 명월이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그걸 본 호방은 냉큼 쪼그리고 앉아선 금띠를 풀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아주 얇은 한지를 옆으로 치워 내자 이상한 게 드러났다.
새끼손가락만 한 그것은 애벌레 같기도 하고, 금빛이 감도는 나뭇가지 같기도 했다. 명월이 허리를 굽힌 채로 그걸 보려 하자 호방이 하나를 집어선 내밀었다. 명월은 그걸 받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렇게 보니 금색이 감도는 애벌레 같은 거였다. 그 위로 기다랗고 딱딱한 무언가가 자라나 있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었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겨우내 땅 속에 잠들어 있던 곤충에 기생하여 자라나는 버섯입니다. 버섯의 뿌리에 매미나, 딱정벌레, 메뚜기, 거미 등등의 몸에 파고들어선 그걸 양분으로 살아남는 거지요.”
“그런 게 있었나?”
“조선에선 나지 않는 겁니다. 저기, 바다 건너 청에서 온 것들이습죠. 이곳을 드나들던 상인이 진상한 것인데, 저도 그때 처음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도성으로 물건을 올리는 게 두렵지가 않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곳을 드나들던 상인이라.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걸 호방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레 동충하초를 원래 있던 자리에 넣은 호방이 다시 상자 뚜껑을 닫는 걸 확인하곤 물었다.
“이런 걸 어디다 사용하는 거지?”
“대단히 영험한 약재입니다. 거기다가 사내들의 허릿심이 좋아지게 한다는 속설도 있습죠.”
마지막 말은 명월이 들을 수 있도록 나직하게 속삭인 호방은 웃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이미 관심이 없었던 명월은 조금 전 손바닥에 놓여 있던 동충하초를 떠올렸다.
땅 속에서 잠들어 있는 곤충의 몸에 자리를 잡고 자라나는 버섯이라. 묘했다. 곤충이라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일 텐데, 그걸 빼앗아 양분으로 삼는 것인가. 명월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기생(寄生) 인가.”
“기생은 기방에 있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리 말한 호방은 환한 얼굴이었다. 딴에는 꽤나 괜찮은 농을 던졌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그 순간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백 마디 말보다 싸늘한 시선 한 번 던지는 게 가장 효과가 좋은 법이었다. 실제로 눈치가 빠른 편이었던 호방은 바로 미소를 지웠다.
“죄, 죄송합니다.”
호방의 안색은 이미 해쓱해져 있었다. 한창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큰 실수를 했다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호방을 두고 명월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당 절반 가까이 실어 나오는 물건들을 살피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만 되었다. 다시 집어넣도록 하고, 나중에 정리가 된 장부를 가져오도록 해라.”
“네. 네.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말실수를 한 것 때문에 지금 명월과 함께 있는 게 못내 불편하게 여겨진 호방이었다. 냉큼 대답한 그는 부피가 있는 것들을 옮기려 드는 포졸들에게 되었으니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넣으라 했다.
포졸들은 군말 없이 따르긴 해도 내심으론 불만이 있을 터였다. 바로 집어넣을 거면서 왜 꺼내라고 한 거야, 라고 생각할 거다.
나중에 포졸들에게 술과 고기를 줘야겠다면서 명월은 몸을 돌렸다.
뒷짐을 진 채로 느릿한 걸음을 옮기면서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흐린 하늘이었다. 속설엔 저런 걸 두고 시어머니 이맛살, 이라고 했다. 며느리들의 고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걸음을 서두르는 명월의 앞으로 이방이 다가왔다.
다른 일이 있어서 거길 들렀다가 온 이방은, 벌써 돌아가려는 명월을 보곤 “끝나신 겁니까.” 라고 물었다.
“호방이 제대로 일 처리를 해 둔 것 같아서 중간까지 보다가 말았네.”
“사람이 가벼운 것 같아도 제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되지도 않는 농을 건넬 때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네.”
그 순간 호방이 명월에게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게 된 이방의 얼굴이 굳어진다. 당장 호방에게 달려가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그걸 꾹 참고 품 안에 손을 넣어선 잘 접힌 종이를 꺼냈다.
“사또, 이걸 읽어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뭔데?”
“제 여식이 사또께 꼭 전해 드리라 했습니다.”
“…….”
명월의 얼굴에서 빠르게 표정이 사라진다. 무표정이 된 채로 눈을 내리뜨는 걸 본 이방은 살짝 당황했다. 지금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취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는 동안 명월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열어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명월은 이방을 지나쳐 갔고, 명월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이방은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랐다.
* * *
곱게 접힌 종이에선 달콤한 냄새가 났다. 느낌 탓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종이 아래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자 단 냄새가 풀풀 풍겼다. 눈을 감은 채로 그 냄새를 맡던 명월은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쳤다.
여러 번 접혀져 있던 것을 펼치자, 그 안에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꽃 주변에 몰리는 나비를 그려 넣은 거였다.
훌륭한 그림이었다. 그런 게 접혀 있다는 것이 아쉬웠던 명월은 그걸 책상 위에 올리고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눌러서 바로 펴지게 했다. 사방을 꾹꾹 누르면서 온전히 다 펼친 후에 조금 더 자세히 그림을 감상했다. 자못 진지한 그 표정을, 이방은 조심스레 살폈다.
처음 딸아이가 저걸 사또에게 전해 달라 했을 때 걱정스러운 마음이 강했다. 저런 걸 드려도 괜찮은 걸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 명월의 얼굴을 보자니 건네주길 잘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종이를 내려다보나 싶던 명월이 고개를 들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군.”
“아닙니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인지라 명월의 칭찬이 싫지만은 않았던 이방이 재차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느냐만은, 일단은 감사한 마음의 표현만이라도 하고 싶다 하더군요. 지금은 그림뿐이지만. 조금 더 있으면 손의 힘도 돌아올 것 같으니 그땐 사또께 옷 한 벌 지어 드리고 싶다 하더이다.”
“옷이라니. 너무 과한 게 아닌가. 그렇게까지 해 주지 않아도 되네.”
“딸아이가 원하는 일인지라―. 그리해야지만 그 아이도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냥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 앞에 대고 재차 거부를 하는 것도 이상하겠다 싶었다. 명월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그 위를 더듬었다. 그때 뭔가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명월이 고개를 드는 것에 맞춰서 이방이 ‘비가 오는 군요’, 라고 말했다.
“아직 마당에 물건들이 나와 있을 텐데―.”
“지금쯤 다 정리가 되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연 그럴까. 거기서 이리로 온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뭐든지 차근차근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지금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이것저것 손을 대게 된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어지게 생겼다.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방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 * *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의 걸음이 바빠졌다. 바깥으로 나온 물건을 집어넣는 이들도 있고, 가게 문을 닫기도 했다. 지금 내리는 비가 오래 갈 것이라는 걸 아는 거였다. 그렇게 모두가 안쪽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처마 아래에 선 채로 양손으로 몸을 끌어안은 아이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정말 추웠던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아, 추워. 그리 생각하면서 눈을 질끈 감자,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자 저기 가게 바깥으로 내놓아진 삶은 돼지 머리가 보였다.
눈을 감고 킁킁거리는 동안 저도 모르게 몸이 그쪽으로 향한다. 하지만 가게 앞까진 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분명 재수가 없다면서 뭐라 할 게 분명했다. 운이 나쁘면 매질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아이는 미련 가득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귀 한쪽이라도 먹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그런 생각을 자꾸 하니 입맛을 다시게 된다. 점점 더 배가 고파서 속이 쓰렸던 아이는 아예 쪼그리고 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먹밥을 아껴서 먹는 건데. 뭐하면 다시 관아로 가 볼까. 거기에 있던 예쁜 사또를 찾아가면 다시 밥을 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해도 정말 다시 그리로 갈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사또는 예뻤지만, 문을 지키는 포졸들은 무서웠던 거다.
굵은 빗방울이 아이의 팔 위로 떨어졌다. 이미 온몸이 젖은 상태였기 때문에 새삼 그걸 피할 마음도 들지 않았던 아이는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봤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추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몸이 떨리지 않았다. 세찬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추위에 익숙해진 걸까. 그런 거라면 배고픔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팔 위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있던 아이는 어느 순간 몸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느껴지지 않게 된 걸 깨달았다.
벌써 비가 그친 걸까. 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고개를 든 아이는 앞에 서 있는 존재를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열이 나서 일까. 이렇게 보는데도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냥 검고, 키가 큰 사람이 서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때 사내가 허리를 굽혀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걸 멍하니 보던 아이는 움찔해선 다리를 모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잔뜩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를 두고, 사내가 미소 지었다.
“춥고, 배가 고플 것 같구나.”
상대의 말을 한참 만에 이해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따라올 테냐. 먹을 걸 주마.”
왜 자신에게 먹을 걸 준다 하는 걸까. 그러다가 아이는 얼마 전에 예쁜 사또가 밥을 줬던 걸 떠올렸다. 그때에도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잔뜩 밥을 줬었다. 그저 자신이 먹는 걸 뿌듯하게 바라봤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상대에 대해서 알지는 못해도,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아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똑바로 일어서긴 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휘청이는 아이를 본 사내의 웃음이 한결 짙어졌다.
“그래. 날 따라와라.”
전에 예쁜 사또가 웃을 땐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 사내는 아니었다. 웃는 얼굴이 멋있긴 한데, 묘하게 거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굶주림 앞에선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아이는 사내를 쫓아갔다.
예전에 어머니가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면 안 되는 거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뭐라도 좋으니 먹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잠깐 누워서 쉬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딘가에 도착했고, 아이는 바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푸짐한 밥과 따뜻한 국, 그리고 맛있는 고기와 다른 여러 가지 반찬들.
예쁜 사또하고 있을 땐 고기 반찬이 있어도 차마 제 손으로 집지 못하고 밥하고 국만 먹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것들을 먹어 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 적극적으로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꾸역꾸역 먹는 걸 보고도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더 열심히 먹었다.
밥도 먹고, 국도 먹고, 고기와 부침개에 다른 반찬들까지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배 주머니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금방 차게 되었다.
더는 먹을 수 없었던 아이는 수저를 내려놓고는 트림을 했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사내를 봤다. 그제야 왜 자신에게 밥을 준 건지가 궁금했던 거다.
사내는 판에 박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방 안으로 덩치가 큰 사내가 들어왔다. 제 앞에 앉아 있는 사내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들어온 사내도 낯선 존재였다. 누군가 싶었던 아이는 겁을 먹은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고,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옆으로 가선 뭔가를 내려놨다.
하나는 털로 만들어진 가죽이었고, 하나는 작은 상자였다.
“그걸 가지고 가라.”
“……왜요?”
밥은 그렇다 쳐도 물건은 아니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걸 주는지 알 수가 없으니 경계심이 들었다. 밥을 다 먹어 놓고 이제 와서 경계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아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사내가 앞으로 손을 뻗어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뭘 하려는 건가 싶었던 아이는 열린 상자 안에 담겨 있는 걸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다는 양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서 봐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동충하초였다.
어머니가 가지고 오라 했던 바로 그거였다.
“이, 이게 왜 여기에 있어요?”
어머니가 당장 이걸 천 개 정도 모아 오라고 했다. 하지만 암만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도 찾을 수 없었다.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있을까도 싶었지만, 무서웠다.
늦은 시간이 되자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눈이 빛나는 부엉이가 자신의 주변을 배회했다. 마치 자신이 죽으면 그 시신을 뜯어 먹겠다는 양 말이다.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혼자 망상을 하는 동안 무서움이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커졌다.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없었던 아이는 결국 산 아래로 내려왔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던 동충하초가 코앞에 놓여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연신 상자를 보는 아이를 두고 사내가 말했다.
“지금 네가 필요한 게 아니더냐. 괜찮으니 가지고 가라.”
“…….”
아이의 눈동자가 떨렸다.
잘은 몰라도 이건 귀한 거였다. 그걸 주는 의도가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그때 아이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어머니였다.
언제부터인가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이불 속에 누운 채로만 계셨다. 만약 이걸 어머니에게 가져다드리면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예전의 어머니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한 눈으로 동충하초를 보던 아이는 상자 뚜껑을 닫고는 그걸 든 채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내가 준 것이니 도망치듯 자리를 피할 필요가 없었지만,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아이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숨이 턱 끝까지 찼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 들어서서야 뛰는 걸 멈춘 아이는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목이 터질 것 같고, 얼굴이 뜨거웠다. 더 이상 추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그게 괴로웠다. 마른침을 삼킨 아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다 낡은 짚신을 벗고는 마루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헐떡거리면서 그리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계속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익숙해졌다 싶으면서도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때하고 달랐다. 아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선 밝은 얼굴로 상자를 내밀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가지고 오라고 하셨던 거예요.”
상자를 내려놓은 아이는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 가득히 들어가 있는 동충하초를 본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이야, 하는 소리를 낸 아이는 기침을 하면서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주었던 동충하초를 꺼내려 하는데 이게 어디로 갔는지 만져지지 않았다.
당황한 아이는 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본인 가슴팍을 더듬었다. 이게 어디로 가 버린 거지? 가슴과 주머니 등으로 손을 넣어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뛰어오는 동안 떨어뜨린 건가.
낭패다 싶었던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이불 바깥으로 어머니의 손이 빠져나왔다. 비가 내려서 어둑한 방 안에서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새하얀 손을 본 아이는 행동을 멈췄다.
얼어붙은 채로 얌전히 있는 아이를 두고 손이 바닥을 더듬다가 천천히 위로 움직인다. 그러다 상자 속으로 들어가선 동충하초를 한 움큼 쥐었다.
그걸 본 아이는 끝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게 그거 맞지요?”
애써 그리 묻고는 웃었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은 가빴다. 몸에서 열이 나는 상태였던 아이는 애써 웃으며 어머니의 하얀 손을 내려다봤다.
한동안 동충하초를 쥐고만 있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잠시 후 아그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음향에 아이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
그냥 한 번으로 끝나는 거였다면 좋았을 터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그작, 하면서 계속해서 울리는 소리에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면서 아랫입술을 깨문 아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문에 등을 기대는 순간, 다시 손이 나와서 상자 속에 들어가 있던 걸 끄집어냈다.
재차 아그작, 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그때마다 이불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그걸 바라보던 아이의 눈동자 가득 눈물이 차오른다. 입술을 깨문 채로 어떻게든 참아 보려 했지만, 힘겨웠다.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좁은 마루를 기어서 끝으로 가 앉았다. 짚신을 신지도 못한 채로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가늘게 뜬 아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멍하니 있는 동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낸 후, 코를 삼켰다.
여전히 빗방울은 굵었다. 다시 저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무척 추울 것 같았다.
그냥 들어갈까. 흠뻑 젖은 채로 산을 돌아다니면 감기에 걸리겠지. 그러면 열이 날 거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될 거다. 그러다가 죽는 건 순간이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아이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변한다. 그렇게 멍한 얼굴로 있으려니 등 뒤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안 그래도 빠르게 뛰던 심장의 박동이 더 거세진다. 숨을 크게 내쉴 수도 없을 지경이 된 아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참아 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것은 아이의 등 뒤에 멈춰 섰다.
『조금 더 가지고 와라.』
이상한 목소리였지만, 듣는 순간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어머니’가 발끝으로 등을 툭, 쳤다.
『조금 더 가지고 와.』
그 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겁에 질린 채로 한 번 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웅얼거렸다.
“더 가지고 올게요.”
대답한 아이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 * *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이틀 연달아 내리다가 그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그쳤다. 한번 시원하게 내리는 건 좋지만, 덕분에 산사태가 일어나고 방죽이 무너지는 일이 생겨났다. 강물이 불어나서 다리가 잠기는 일도 생겨서 자연스럽게 포졸들은 그리로 보내졌다.
호방이 ‘그래도 몇은 관아에 남겨 두지요.’라고 말했지만 명월은 괜찮다며 다 보냈다. 관아에 있어 봤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느니 하나라도 더 사고 현장에 보내서 복구를 서두르는 게 나았다.
명월도 자리에 앉아만 있지 않았다. 피해 상황에 대해서 알아본 후, 그는 바로 말을 타고 가장 외곽 쪽의 다리를 살피기 위해서 움직였다.
반양에서 외부로 나갈 때 흔히 사용하는 가장 큰 다리 중 하나였다. 그 다리가 잠겼다고 하니 신경 쓰였다. 다친 사람은 없다 하나, 물이 많이 불었으니 복구에 신경 써야만 했다.
그리고 명월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포졸과 마을 사내들이 나와 있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인지, 그들 중에서 명월을 신경 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사내를 따라 나온 아낙 몇이 명월을 보곤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때 현장을 맡고 있던 포졸 하나가 명월을 발견하곤 급히 달려왔다.
“사또,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명월은 대답 없이 말에서 내려 고삐를 건넸다.
“말을 묶어 두도록 해라.”
말을 묶어 둔다는 건 명월이 이곳에 조금 더 있을 생각이라는 거다.
포졸이 고삐를 받아 들었고 명월은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알아본 몇몇 이들이 인사를 건네거나 했고, 그들 중에는 포졸도 있었다.
무너진 다리를 보수하기 위해서 무거운 돌을 연결한 줄을 붙잡고 있는 자도 종종 있었다. 저런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명월은 바로 손을 들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라.”
그 말에 포졸은 다시 복구에 집중했다.
다리는 사람 다섯이 일렬로 서서 걸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평소에는 소나 수레도 통과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 다리의 기둥이 지금 금이 가고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나가기 위해선 꼭 여길 통과해야만 했기에 다리가 무너지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한쪽에 쌓아 올려져 있는 바위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보수를 하는 건 물이 빠진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명월은 다리의 거의 위까지 닿을락 말락한 물을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이틀 내내 퍼붓는다 싶더니만 정말 엄청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옆으로 한 노인이 다가왔다.
“사또, 어찌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명월은 눈을 내리떴다.
예전에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노인이었다. 반양은 규모가 있는 편이고, 산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단합이 잘 되는 편이었고, 덩달아 여럿의 이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이장이 있어서 고을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모여서 의논을 하곤 했던 거다.
중요한 다리가 무너지게 될 것 같으니, 그 이장 중 하나가 나와서 살펴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라면 자신보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 지금 상태가 어떤가?”
“다리가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버티는 격입니다. 조금이라도 서둘러서 보수를 해야 합니다.”
“물이 이렇게나 범람해서야 그도 쉽지 않겠군.”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일인데, 무리를 했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낭패네.”
명월은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까지 올라오는 거친 물살을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저런 유수라면 휘말리는 순간 끝장이겠군.”
“그래서 일을 하는 이들의 허리에 줄을 감아 두었습니다. 물에 빠지더라도 잡아서 당기면 되지요.”
“잘못 당기면 허리가 나갈 거네. 위험한 짓은 하지 말게나.”
명월의 말에 노인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러곤 시선을 피하는 얼굴 위로 탐탁지 않음이 서린다.
여기 일은 명월 그보다 자신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아는 척하는 명월이 탐탁지 않지만, 일단은 사또라서 하고자 하는 말을 참는 거다. 그걸 모르지 않았지만, 명월도 딱히 내색하진 않았다.
명월은 앞으로 걸어갔다. 포졸들과 마을 사내들이 일하는 쪽으로 가는 명월을 본 노인이 ‘위험합니다’, 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포졸들은 노인이 말한 대로 허리에 줄을 감은 채로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럿 달라붙어서 무거운 돌을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가능한 많은 돌을 넣어서 그걸로 기둥을 대체하려는 거다.
다리가 무너져도 아래쪽으로 돌을 잔뜩 넣어 두면 그게 어느 정도 지탱을 해 주지 않을까 싶은 거겠지.
그런 방식은 어디서나 취하는 거였다. 그리고 명월은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 말고 조금 더 제대로 된 보수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얼굴에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명월은 뒤를 돌아봤고, 사람들 뒤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을 발견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진한 보랏빛의 의복을 입고 갓을 눌러쓰고 있었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은 검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다들 마찬가지로 갓을 써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으니 수상쩍기 그지없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 더욱 눈에 띄었지만, 그걸 의식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자신만 저들이 이상하다 여기는 걸까.
그러다 문득 저자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의문에 명월은 숨을 삼킨 채로 그들의 특징을 확인했다. 일단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옷깃이 흔들리고, 그림자가 있었다. 그러다가 한 사내가 그들 뒤로 걸어왔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으로 피하는 걸 보곤, 저들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행이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 명월이 고개를 들었을 때 가운데에 선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사내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
사내가 자신의 행동을 파악하고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느낌 탓이겠거니 싶어도 속이 불편해진 명월은 손을 움켜쥐었다.
저들의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일단은 가까이 다가가서 말이나 걸어 보자 싶었다. 실제로 그리할 마음으로 한쪽 발을 드는 것에 맞춰서 뒤에서 짤막한 비명이 들렸다.
“위험해! 붙잡아!”
“꺄아아악―!”
동시에 사방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에 헛숨을 삼킨 명월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물에 빠진 포졸을 확인하곤 안색을 굳혔다.
허리에 매달린 줄 때문에 간신히 위로 떠올라 있었지만, 그도 잠시뿐이었다. 줄이 끊어지자 포졸이 다리 아래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그대로 떠내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들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못하고 망연자실해서 떠내려가는 포졸을 보고만 있는 동안, 명월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명월은 다리 위로 달려 물속에 몸을 날렸다. 명월의 몸은 요란한 물보라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만큼 차가웠다, 너무 놀란 명월은 당장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고, 어느새 저 앞까지 떠내려가는 포졸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헤엄을 쳤다.
팔과 다리를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빠르게 내려갔다. 옷이 몸에 감기면서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몇 번이나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얼굴을 내민 명월은 굉장히 많은 물을 마셨다. 지금도 속수무책으로 들어오는 물을 뱉어 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떠내려가는 포졸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 들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듯 둥둥 떠내려가는 몸을 확인한 명월은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조금 더 가면 된다.
조금, 조금 더―.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어 옷을 붙잡았다. 이를 악물고는 끌어당기는 순간 내내 늘어져 있던 포졸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포졸의 눈과 코와 입이 뻥 뚫려 있는 걸 본 명월은 너무 놀라 숨을 삼켰다.
크게 입을 벌리자 막힌 숨이 토해져 나오고 심장이 죄여 든다. 갑자기 다리에서 올라온 쥐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거친 물살이 명월을 집어삼켰고 그는 그대로 수면 아래로 잠겨 버렸다.
* * *
한바탕 비를 뿌려 대던 하늘이 청명했다.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감아 버렸다. 그러곤 양팔을 뻗으면서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산속에 자리한 장인의 작업장. 그 꼭대기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백호는 다음 순간 다시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굳은 얼굴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 듯, 매섭게 어느 한곳을 내려다보던 그는 아래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작업장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곰방대를 태우고 있던 꼽추 노인이 옆을 흘깃 본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백호를 본 그는 꼼질거리며 몸을 돌렸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양 말이다.
꼽추를 두고 백호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언덕 끝자락까지 선 그는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채로 주변을 살폈다. 보이는 건 온통 산뿐이었다. 싱그러운 녹음이 눈을 찌르는 와중에 저 멀리,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주 오묘하면서도 기분 나쁜 촉이 왔다.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리할 수 없게 만드는 촉이었다.
원래 성가신 일을 싫어하는 그였다.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는 법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꽤나 바쁘게 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던 만큼 속으로는 이미 몇 번이나 성가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건 오만방자하게 굴던 명월이었다.
노골적으로 기분 나쁨을 드러내며 노려보던 매서운 눈빛을 떠올린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되지도 않는 방식으로 숨기려 하다니. 우습지도 않다면서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았다.
지금, 명월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지 가볍게만 알아볼 셈이었던 그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이상한 느낌에 다시 집중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흐릿한 막이 끼어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포기를 할 백호가 아니었다.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해 봤고, 그는 눈을 떴다.
“……이건 또 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눈을 내리떠 재차 고을을 내려다봤다.
지금껏 명월에게만 신경 쓰고 있느라고 다른 쪽에 소홀해 있었던 동안, 뭔가 좀 이상한 게 꼬여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센 것도 아니고, 약하지도 않았다. 다른 때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게 산속 한쪽에서 느껴지고, 고을 안에서도 느껴졌다.
다른 때에는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고을로 들어가는 놈들이 없었을 터인데. 하나가 잘못 끼어 드니까 없던 일도 생기는 거라며 백호는 혀를 찼다.
* * *
커다란 손이 몸을 더듬는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양, 거침없이 쓰다듬다가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그에 맞춰서 아무 거부감 없이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였다.
다리를 벌린 채로 있으려니 그 손이 발목으로 내려와선 느리게 위로 기어 올라온다. 피부를 더듬으면서 점점 위로 올라오던 손이 다시금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던 순간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이게 뭐지. 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에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리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내가 고개를 든다. 각이 진 이목구비에 진한 눈썹을 지닌 사내가 비웃음을 단 채로 속삭였다.
‘이런 주제에 아니라고 할 셈인가. 넌 남자가 좋은 거다.’
단정 짓듯 내뱉은 놈의 미소가 한결 짙어진다 싶을 때, 거부감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멍하니 있던 게 언제 일이냐는 듯 당장 손을 휘두르면서 놈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에 맞춰서 눈이 떠졌다.
“……헉!”
크게 눈을 뜬 채로 있던 명월은 짧은 순간, 지금 이곳이 자신의 처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떠오르는 건 붙잡았던 포졸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목구비에 검은 구멍만 뚫려 있었던 끔찍한 장면을 떠올림과 동시에 잠이 싹 달아난 명월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걷다가 움찔했다.
그가 누워 있는 사방으로 발이 쳐져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발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뜨려져 있는 걸 확인한 명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 걸까. 혹시,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이상한 곳으로 옮겨진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일어나셨습니까.”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음성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 봄직한 느낌에 명월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잡아 옆으로 치워 냈다.
보이는 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사내였다.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건, 눈을 뜨자마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명월은 일단 발을 치워 내고 밖으로 나왔다.
눈을 내리뜨자 제가 입고 있는 건 구군복이 아니었다.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혀져 있는 걸 확인한 명월은 오른손을 확인했다. 그곳에 가죽 장갑이 제대로 끼워져 있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앞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굳어 있는 명월의 얼굴을 봐서 알고 있을 텐데도,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구군복이 온통 젖어서 어쩔 수 없이 갈아입혀 드렸습니다. 함부로 몸에 손을 대서 죄송합니다.”
“……여기가 관아는 아닐 테고, 당신의 집이오?”
“그렇습니다. 급한 나머지 바로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물론, 관아에는 연락을 취했습니다.”
사내는 낯설지가 앉았다. 얼마 전 포목점에서 만난, 그 요란한 차림새의 사내였다.
그때 포목점 주인이 사내를 행수라 불렀던 걸 떠올리며 명월은 물었다.
“내가 얼마나 이곳에 누워 있었던 거요. 관아에 연락을 취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쯤이라면 사람이 오고도 남을 시간일 텐데―.”
“이방 나으리께서 오셨습니다만, 아직 사또께서 의식이 없다 말씀드리자 알았다 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에 명월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
“돌아갔단 말인가?”
“사또의 의식이 돌아오면 저희 쪽에서 가마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방이 그냥 순순히 물러날 사람은 아닐 텐데.
그리고 이런 말이라면 복운도 들었을 터였다. 그놈이라면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자신의 얼굴부터 확인하게 해 달라 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겠지.
명월은 웃고 있으나, 가면을 쓴 듯 차가운 느낌을 풍기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후 말했다.
“이제 일어났으니 바로 돌아가야겠소.”
“금방 일어나신 겁니다. 조금 더 휴식을 취하시지요.”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오.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겠소.”
그리 말한 명월도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웃는 얼굴을 가장하긴 해도 그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눈앞의 사내가 모르진 않을 거다. 그래서일까. 똑같이 웃나 싶던 사내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릴 것 같은 모습에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던 명월이 저기, 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물에 빠졌던 포졸은 어찌 되었소?”
“아, 그자 말입니까? 가슴뼈에 금이 가긴 했지만, 무사합니다. 지금 치료를 받는 중에 있으니 가시기 전에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명월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일이 생기면 그 포졸도 자신과 관아로 갔어야 했다. 그러고 난 후 의원을 부르거나 했겠지. 하지만 지금 이 사내의 집에서 모든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 하더라도,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감사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건 제대로 된 옷을 갈아입은 후에 하자며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소.”
그 포졸을 보고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었기에 명월은 입을 다물곤 사내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미소를 지은 사내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된 명월은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내곤 뒤를 돌아봤다. 발을 바라보던 명월은 그곳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냥 이불만 갈아 둘 것이지, 이건 다 뭔가 싶었다.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고 포졸을 만나 본 후에 바로 여길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명월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본 포졸의 마지막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치료를 받고 있다 한 걸 보아하니, 역시나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본 거다. 기가 허해져서 이리된 거겠거니 싶으면서도 속이 편치 않았던 명월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 *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밖으로 나가게 한 후, 명월은 어느새 다 마른 구군복을 갖춰 입고 전립을 썼다. 그러고 나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선 거울 속에 비치는 본인 모습을 확인했다.
고개를 돌리면서 신중하게 모습을 살피던 그는 별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서자 대청 아래쪽에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뒷짐을 지고 있던 그는 문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가, 서 있는 명월을 보곤 웃었다.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의 미소에 명월은 왠지 언짢아 졌다. 그는 일단 대청에서 내려와 신을 신으면서 물었다.
“왜 웃으시는 거요.”
“사또께서 구군복을 입으신 모습이 보기 좋아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사또를 뵈었지만, 지금처럼 잘 어울리는 분은 없으셨지요.”
“칭찬 고맙소.”
대답은 이렇게 해도 명월의 굳은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내가 웃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분명 뭔가가 더 있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사내의 속마음을 알아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명월은 태연히 “갑시다.” 라고 말했다.
“포졸을 보러 가기 전에 차라도 한잔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을 것 같구려. 복구 중이던 다리의 상태가 어떤지 한 번 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요.”
“그렇군요. 사또께서 포졸을 구하기 위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드셨을 때, 다들 놀라면서도 감동을 받았지요. 보통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리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다들 걱정이 클 터이니, 건강한 지금의 모습을 보여서 저들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사내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만 좋은 말이라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은 명월이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양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명월은 사내를 따라 느린 걸음을 옮겼다.
앞장선 사내를 따라 걷는 동안 명월은 잘 꾸며진 곳곳에 감탄했다.
건물 사이의 간격도 넓고, 화초와 꽃, 나무 등등이 여기저기에 심겨 있었다. 건물을 올린 나무도 재질이 좋아 보이고, 창이나 처마, 문 같은 곳의 장식도 특색 있었다.
상인이라 하더니 제 사는 곳도 잘 꾸며 놓고 있구나 싶었던 명월은 대문을 넘어가는 동안에도 계속 주변을 살폈다. 그때 앞장 서 걷던 이가 뒤를 돌아봤다.
너무 노골적으로 구경을 했나 싶었던 명월은 민망함을 느끼곤 헛기침을 했다.
“집이 참 좋소.”
“평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지라 신경 써서 꾸미긴 했습니다.”
“안사람은 없으시오?”
“혼기가 넘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부인이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짝을 만날 수 있지 않겠소.”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반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 말을 한 사내가 입을 다물고 명월을 바라봤다.
뒤에서 따라 걷는 동안 계속 주변 구경을 하고 있다가 문득 그런 행동이 별로 안 좋게 여겨져서 옆으로 온 건데, 순간 실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하는 말이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닐 텐데도, 묘하게 움찔하게 된다. 숨을 죽인 채로 잠자코 있던 명월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길목을 살피면서 “나무가 튼튼해 보입니다.” 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사내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명월의 고운 얼굴선과, 매끄럽게 뻗어진 콧날, 그 아래에 다물린 입술을 보나 싶던 사내는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공들여 보살피고 있습니다. 튼튼하게 자라지 않으면 그게 더 곤란하겠지요.”
그 말에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그들은 본채와는 다소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침 그 안에서 물수건과 대야를 들고 나오던 하녀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명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잠시 들어가서 얼굴만 보고 바로 나오겠소.”
“같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얼굴만 보는 건데 같이 들어갈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그리 말한 명월은 입을 다물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 혼자 들어갈 테니까 따라오지 마. 그런 성가신 짓은 하지 마.
무언의 말을 전한 후, 명월은 바로 움직였다. 목화를 벗고 대청에 올라선 그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라도 그놈이 따라올 수도 있음이었다. 문을 닫고 난 후에도 고리에 손을 댄 채로 바깥 소리에 집중했다.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서야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낸 명월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누워 있는 낯선 사내를 확인하곤 숨을 삼켰다.
머리와 이불 밖으로 보이는 가슴, 팔 등에도 붕대를 감고 있는 사내의 눈빛은 흐릿했다. 지금 방 안에 명월이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걸 확인한 명월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눈, 코, 입 등이 제대로 붙어 있었다.
역시나 그땐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본 거였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안색을 굳혔다.
그제야 사내는 명월을 알아보곤 힘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또.”
포졸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바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명월은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러자 바로 신음을 흘린 포졸이 베개에 뒷머리를 올리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당황한 명월은 급히 손을 뗐다.
“미안하네.”
사과의 말에 포졸은 입을 다물고 힘겹게 신음을 삼켰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뉘인 채로 그는 명월을 올려다봤다.
“저 때문에 사또께서도 큰일을 당하실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그걸 두고 송구할 게 뭐가 있겠나.”
“아닙니다. 만약에 저 때문에 사또께 무슨 일이 생겼다면, 전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겁니다.”
점점 굳어지는 포졸의 얼굴을 본 명월은 눈을 내리떴다.
딱 봐도 지금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상대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건가 싶기도 했다. 궁금했지만, 지금은 다른 걸 알고 싶었다.
포졸의 얼굴은 길 가다 볼 수 있는 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에는 왜 그리 보였던 걸까. 알 수가 없어 꽤나 집중해서 바라보게 된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응시하는 걸 어찌 생각한 건지 포졸이 조심스레 눈동자를 든다. 이렇게 해야지 명월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을 아는데도, 역시나 누워 있는 상태가 부담스러웠다.
“그래. 그때의 일이 기억나는가?”
“기억나지요.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요. 사또와 그분이 아니었으면 꼼짝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그분이라니?”
“이곳의 행수께서 물속으로 들어와 저와 사또를 구해 주셨습죠.”
“…….”
행수라면 바깥에 있는 그 사내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 사내에게선 듣지 못한 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굳는 명월을 본 사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내겐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
“그러실 겁니다. 본인의 일에 대해선 입이 무거운 분이시죠. 하지만 알게 모르게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생활이 어렵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찾아가면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노력하시지요. 물론 장사를 하는 분인지라 이곳에 계속 계시는 건 아니라 해도 머무는 동안에는 주변을 둘러보시면서 많은 이들에게 신경 써 주곤 하십니다.”
거기까지 말한 포졸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나서 무슨 말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바라보는 눈빛이 말하는 건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거였다.
그 시선이 불편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명월은 헛기침을 했고, 그제야 포졸은 눈길을 돌렸다.
일단 무사한 걸 보았고, 상대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역시나 의식을 잃기 전에 자신이 헛걸 본 거다. 요즘 이상한 놈하고 얽혀서 심신이 허해진 모양이라며 명월은 일어나기 전에 달리 하나를 더 물었다.
“그런데 왜 물에 빠진 건가. 발이 미끄러진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그쪽 일로 나간 자들에게 조금 더 조심하라 말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그쪽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끄러질 일이 없는 곳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속에 있더군요. 제가 수영을 잘합니다. 그런데 물론 물살이 세긴 했지만, 암만 허우적거려도 꿈쩍도 할 수 없었습니다. 느낌 탓인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발목을 붙잡는 것 같기도 했고…….”
뭔가가 발목을 붙잡는 것 같다고 말한 포졸은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말을 한 건가 싶어 안색을 굳히는 그를 두고 명월은 몸을 일으켰다.
“자네도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게. 난 먼저 나가 보겠네.”
“가 보십시오. 일부러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포졸은 누운 채로 열심히 고개를 굽실거렸다. 그것으로도 그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던 명월은 눈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명월은 뒷짐을 진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뭔가가 발목을 붙잡는 것 같다라―.
먼 곳을 응시하듯 눈을 가늘게 뜬 명월은 얼굴에 닿는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대청 아래쪽에 서 있는 사내와 시선이 부딪쳤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니 처음 만날 때부터도 그랬다. 저자는 언제나 늘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응시해 온다.
자신이 아리따운 꽃이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물건 달린 사내였다. 그런 자신을 저렇게 쳐다볼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사또이기 때문에 잘 보이고 싶은 건가. 하지만 저런 사내라면 그런 소소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대청을 걸어갔다. 그러곤 기둥에 한 손을 댄 채로 목화를 신으려 하자 바로 사내가 허리를 굽히려 든다.
그걸 본 명월이 아예 대청 끝에 앉아선 말했다.
“나 혼자서도 신을 수 있소.”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너무 빨리 말한 건가.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사내는 앞에 쪼그리고 앉아선 정말 신겨 주려 했을 터였다. 허리를 세우는 사내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은 명월은 재빠르게 신을 신었다.
그리고 목화에서 손을 뗐을 때 의문이 들었다.
이 신도 물에 젖었을 텐데, 이렇게 빨리 마른 건가.
자신이 얼마 동안 누워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이 마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을 텐데. 아니다. 하루 정도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거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눈을 뜨긴 했는데 얼마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명월은 목화를 다 신고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혹시 내가 여기서 하루 동안 있었던 거요?”
궁금한 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월이었다.
그래서 바로 묻는 말에 사내의 미소가 한결 짙어진다.
“그렇습니다. 꼬박 하루 내내 주무셨습니다.”
“……정말 그랬단 말이오?”
어떻게 하루 동안 잘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이게 처음도 아니었다. 전에 그 망할 놈하고 그 짓을 하고 난 후에도 꼬박 하루 동안 자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온몸에 남아 있던 자국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어쩌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
방 안에 누워 있는 포졸은 넝마가 되어선 누워 있는데 지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하루 내도록 자는 동안 알아서 치료가 된 거라면…….
명월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선 사내를 바라봤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사내가 웃으면서 “왜 그러십니까?” 라고 물어왔다.
웃는 얼굴로 속내를 감추는 게 능숙한 사내였다. 이런 사내를 상대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속내를 알아보거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울 거라며 명월은 입을 열었다.
“포졸에게 그쪽이 도와줬다고 들었소.”
“그런 말을 했습니까. 모르고 지나치는 편이 좋았을 텐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이오. 덕분에 살았으니 감사 인사 정도는 들으셔야 할 게 아니오.”
감사 인사라는 말에 사내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간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다 저와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이들이 물에 빠졌다면 저도 구경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포졸이 물에 빠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리는 사또를 뵙곤 깊은 감명을 받아 그리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따라하게 하는 힘이 있더군요.”
위험한 사람이 보이면 달려가서 도와주는 것. 그건 생각을 하고 있다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저절로 몸이 움직인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일이긴 했다. 이자가 아니었다면 뭔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렇게 말로만 상황을 정리하기엔 걸리는 게 많았다.
물에서 자신을 건져 냈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자가 봤다면, 만약 심지어 부상이 심했다면 지금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걸 두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음이었다.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어찌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굳은 채로 있던 명월은 상대의 말에 움찔했다.
시종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그가 재차 말했다.
“정말 고맙다 생각하신다면 식사나 함께하시지요.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바로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이곳을 뜨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가볍게 먹으면서 이 사내의 의중을 살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던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먹을 사람은 둘뿐이었지만, 넓은 상 위에 준비된 음식은 장정 열이 먹어도 충분할 만한 양이었다.
기방 호란의 음식도 잘 나오는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건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맛은 분명 좋을 테고, 보이는 멋이 있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입 안으로 침이 고인다.
그제야 명월은 자신이 하루 내도록 잠만 잤다는 걸 인정했다.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배 속이 요동을 치면서 ‘어서 먹을 걸 내놔라.’라고 시끄럽게 굴었던 거다.
마음 같아서야 맨손으로 갈비찜을 들고 뜯어 먹고 싶지만, 그걸 꾹 참은 채로 맞은편에 앉은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편하게 드시지요.”
“……그럼 잘 먹겠소.”
원래 배고픔 앞에선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일단 대화를 유도해서 알고자 하는 걸 끌어낼 생각이었지만, 음식을 앞에 두자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몽땅 사라진다. 배부터 채우자 싶었던 명월은 수저로 밥을 크게 떠서 입에 넣고는 국물도 마셨다.
재첩이라 그런지 시원하고 깔끔한 게 맛이 그만이었다. 여기다가 밥을 말아서 마셔도 되겠다면서 감탄한 명월은 그 다음에는 김치와 나물, 고기전과 갈비찜 등등을 먹었다. 그러자 밥 한 공기가 뚝딱 사라진다.
몇 입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디로 다 가 버린 건가 싶었던 명월이 당황해하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여인이 새로운 밥공기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한 공기로는 부족했으니, 더 먹어야 하긴 했지만 너무 게걸스러웠던 건가 싶었던 명월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앞에 앉은 자가 보고 있다고 생각되니 고개를 똑바로 들 수조차 없었던 명월은 슬그머니 앞을 확인했다.
그도 밥을 먹고 있었다. 그걸 보자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상대도 밥을 먹고 있겠다,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던 명월은 다시 수저를 놀렸다. 그렇게 두 공기를 다 먹고 갈비찜을 더 뜯고 난 후에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 안을 헹구고 천으로 손을 닦자 “더 드시지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충분히 잘 먹었소. 더 먹는 건 안 좋을 것 같구려.”
더 들어가면 체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먹어서 속이 부대끼는 것 같기도 했던 명월은 상 위에서 손을 뗐다. 그런 명월의 모습에 상대도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자신 때문에 먹다가 마는 건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상대의 밥공기도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사내가 손을 들자 바깥에서 여인들이 들어와서 커다란 상을 들고 갔다. 딱 보기에도 무거울 것 같은데 여리여리한 여인들이 힘도 좋다. 더군다나 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민한 몸놀림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보고 있으려니 한 여자가 작은 상을 들고 왔다. 그러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선 바로 차 준비를 한다.
청에서 흔히 사용하는 다기로 찻물을 우려내는 걸 본 명월이 그쪽을 주시하자 사내가 말했다.
“식후에 대화를 나누면서 차를 마시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요.”
“나도 그리 생각하오.”
일단 대답을 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빨리 밥을 먹어 치운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배가 고팠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명월은 찻잔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예사 찻잔이 아니다. 저도 모르게 눈앞에 잔을 올리고 그걸 살피듯 바라보던 명월은 아차 싶어서 바로 손을 내렸다.
“찻잔이 무척 좋구려.”
“마음에 드신다면 똑같은 게 있으니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오. 선물을 해야 하는 건 내 쪽인 것 같은데.”
일단은 도움을 받은 건 그가 아니라 자신 쪽이었다.
그 순간 백호 그놈이 떠올랐다. 놈은 은혜 운운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댔다. 놈을 생각하니,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사내에게도 쓸데없이 빚진 채로 있지 말고, 그에 대한 보답을 바로 해서 어정쩡한 지금 상황을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부자인 것 같으니 돈은 거부할 테고, 어떤 선물을 주는 게 나을까. 그리 생각하다가 문득, 이 사내의 이름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명월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바로 입을 떼고 차를 내려다보니 “맛이 어떠십니까?” 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오묘한 맛이 나는구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점점 뜨거워진다. 이윽고 복부 아래쪽으로 열기가 감도는 걸 느낀 명월의 안색이 굳는다.
지금 이상한 걸 먹은 건 아니겠지.
불현듯 드는 생각에 안색을 굳히자 상대도 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 몇 모금을 시원하게 마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여러 차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랍니다. 동충하초를 사용해서 우린 차랍니다.”
“……동충하초라면?”
“아, 알고 계시겠군요. 관아에 있는 건 제가 진상한 것이니까요.”
명월은 금빛으로 빛나던, 벌레를 숙주를 삼아 자란 약초를 떠올렸다.
그걸 갈아서 차로 우려낸 건가. 아니면 넣고선 삶은 건가.
분명 몸에 좋은 것이니 귀한 것 운운하는 거겠지만, 왠지 모를 거북함을 느끼며 명월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대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원래 조선에선 나는 게 아니랍니다. 저기 바다 건너의 청에서 특별하게 사 들여 온 거지요. 자양강장에 좋다고는 하지만, 피로 회복과 잔병치레를 피하기 위해서 종종 마신답니다. 다른 것하고 달리 이걸 마셔야지만 몸이 개운해지더군요.”
그러곤 보란 듯이 차를 마신다. 몇 모금이나 연달아 마신 후 웃는 얼굴이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명월은 더 이상 차를 마시고 싶지가 않았기에 잔을 잡다가 놓기를 반복하다 넌지시 물었다.
“나이가 어찌 되시오.”
“올해 28세가 됩니다.”
“나보다 많으시구려.”
“그리 말씀하시는 사또께선……?”
“24살이 되었소.”
상대가 아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명월은, 재차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화소군이라고 합니다.”
화소군. 그 이름을 입 안으로 반복하던 명월은 문득 조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취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궁금하지 않으시오?”
“저 같은 장사치들은 새로 사또께서 오신다 하면 일단 어디서 오시는 분인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
알아본다는 표현에 명월의 표정이 굳어지자, 화소군은 바로 덧붙여 말했다.
“자연스럽게 그리하게 되지요. 그렇다 해서 뒷조사를 한 건 아니니 너무 언짢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먼저 당당하게 밝히니 그 앞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어진 명월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안색을 굳힌 채로 있으려니 화소군이 재차 물어왔다.
“기분이 언짢아지셨습니까?”
“아니, 뭐, 그런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괜찮소.”
괜찮다고는 해도 명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사람의 뒷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딱히 뒤가 구린 짓을 한 건 없었지만, 조사하는 중에 무슨 말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기에 더더욱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었던 명월은 찻잔 안을 살폈다.
투명한 액체가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조금 전 마셔서 배를 뜨끈하게 하던 건 사라져서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차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날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살이 거셌을 텐데, 나와 포졸까지 장정 둘을 꺼내려 힘드셨겠소.”
“의식을 잃은 동안에도 사또께서 어떻게든 사시려고 절 붙잡으니 위험할 뻔도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말이지요.”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그쪽에게 매달렸나 보오.”
“그렇습니다. 손힘이 그리도 세실 줄이야.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화소군이 웃는다. 여인이라면 심장이 뛸 만큼 멋진 미소였지만, 명월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 내가 다친 곳이 없었나 보구려.”
“그렇습니다.”
바로 나오는 대답에 명월은 뒤로 몸을 물렸다.
정말로 다친 곳이 없었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루 내도록 잤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별일 없으면 왜 그렇게까지 오래 잤단 말인가. 그러는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이 사내 앞에 노출된 채로 있었던 거다.
명월은 무릎을 잡고 있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엔 반양에 얼마나 머물러 있을 거요.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이번에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구려.”
“보답 같은 건 필요치 않습니다. 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고도 가만히 있어서야 내 체면이 서지 않을 게 아니오.”
“…….”
명월의 말이 의외였던지 가만히 있던 화소군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음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연락을 주시오.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외다.”
여기까지였다. 더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도 않았던 명월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화소군은 그런 명월을 따라 일어났다.
“가마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타고 가십시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으니 걸어가겠소. 아직 이곳을 다 돌지 못했으니 겸사겸사 여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보고 말이지.”
“그렇다면 말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가마는 좀 그렇지만, 말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하던 명월은 그리해 주면 고맙겠다고 대답하곤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화소군이 따르는 게 느껴졌지만, 일부러 고개를 돌려 확인하진 않았다.
이번에도 대청 끝에 앉아 재빠르게 목화를 신고 일어선 후에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신을 신고 옆에 선 화소군의 입술꼬리가 반사적으로 올라간다.
저런 식으로 보란 듯이 웃는 건 솔직히 별로였다. 속을 읽을 수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 정말로 호감을 느끼지도 않는데 웃기만 하는 건 솔직히 좀 재수 없었다. 차라리 그 백호 놈처럼 빈정거리든가.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콧잔등을 씰룩였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놈을 떠올린단 말인가.
이상한 생각은 말자며 빠르게 고개를 젓자 의아한 시선이 닿는다.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후 뒷짐을 진 명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색을 취하면서 아래로 내려가 마당에 섰다. 그러다가 포졸에 대한 생각이 미쳐서 뒤를 돌아봤다.
“여기에 있는 포졸은 다 나을 때까지 부탁해도 되겠소?”
“안 그래도 그리할 셈이었습니다. 걸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관아에서 멀지 않은 의원에게 보내겠습니다.”
“그에 대한 비용은 나중에 정산해 줄 테니, 잘 기록해 두시오.”
“그건 그냥 제가―.”
“그리해 주시오.”
중간에 말을 자르자 화소군이 입을 다문다.
물끄러미 명월을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입꼬리를 올리며 그러지요, 라고 답했다.
* * *
“아이고오! 사또오오오!”
얼굴을 보자마자 곡을 하는 복운 때문에 명월은 당혹스러웠다. 이놈이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싶으면서도, 이방이나 호방, 다른 포졸들도 함께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얼굴을 보자니 큰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일단 이들이 자신을 걱정했다는 걸 아는데, 떽떽거리는 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싶었던 명월은 왼팔에 매달려서 꺼이꺼이 우는 복운의 등을 토닥였다.
“누가 들으면 내가 죽은 줄 알겠다. 그만 울고 좀 떨어져라.”
“아이, 아이고, 아이, 아이고오―.”
“어허, 그만하래두.”
“만약 사또께 뭔 일이 생겼으면 이놈도 그냥 콱 물에 빠져 죽을 셈이었습니다. 흐으윽, 흐윽, 사또오오오―.”
백년가약을 맺은 정인도 아닌 놈이 왜 이렇게 질척하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복운이 자신을 많이 생각하고 걱정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난리를 치는 것 같았다. 남들 보면 오해하기 딱이겠다면서 괜히 주변 눈치가 보였던 명월은 아예 복운을 팔에 매단 채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복운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보단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한 곡소리에 이방이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 앞을 지나치며 괜찮다, 라고 한마디 한 명월은 결국 복운을 매단 채로 처소로 갔다. 그리고 대청에 오르기 전에 참다 못해서 복운을 그 위로 던져 버렸다.
“그만 좀 해라. 팔 떨어지겠다!”
세게 힘을 준 것도 아니었는데 복운은 제대로 엎어졌다. 철푸덕―하고 쓰러지자 명월은 놀라서 그리로 손을 뻗으며 괜찮으냐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벌떡 일어선 복운이 명월 앞에 서선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안 좋은 곳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그래야 제가 약을 구하든 뭘 하든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 말하는 복운은 다급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니 정말 돌아왔구나, 싶었던 명월은 긴장이 풀렸다.
“괜찮다. 내 거기서 충분히 쉬고,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봐라. 멀쩡하지 않느냐.”
양팔을 벌리며 괜찮다 하는 명월이지만, 복운의 굳은 얼굴은 여전했다.
“그놈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놈이 사또를 홀라당 모셔가더니 얼굴도 볼 수 없게 하고, 이방이 말리지만 않았다면 제가 몽둥이를 들고 거길 쳐들어갔을 겁니다.”
“그리했다간 네놈이 호되게 당했을 거다. 제발 좀 아무데서나 나대는 그것 좀 고쳐라.”
“사또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전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이번엔 이방이 절 막을 수 있었지만, 다음엔 어림도 없습니다. 그냥 쳐들어가서 우리 사또 내놔라, 라고 할 겁니다.”
눈앞에 그놈들이 있는 것처럼 양손을 움켜쥔 채로 이를 악무는 복운을 두고 뭐라 할 수 없었던 명월은 일단 대청 끝자락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온몸에서 힘이 빠진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뺀 채로 멍하니 있는 명월의 모습에 복운은 위로 든 손을 내렸다.
지금 명월은 지친 얼굴이었다. 겉보기엔 이상이 없고 잘 걷는 것 같으니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쓰였던 복운이 쪼그리고 앉아선 명월을 올려다봤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고요?”
“없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겁니까. 별일 없으셨으면 주무시지 말고 바로 돌아오셨어야 지요.”
그리할 수만 있다면 했을 거다. 하지만 명월은 꼬박 하루를 잤다. 정말 자는 동안에 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오른손의 장갑만이 그대로 있고 옷은 다 갈아입혀져 있었다. 젖은 걸 말리려 했다면 가죽 장갑도 벗겼어야 했는데―.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움켜쥔 명월의 얼굴이 굳어진다.
의식을 잃은 동안에 뭔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명월은 고개를 숙여 쪼그리고 앉아 있는 복운을 내려다봤다.
“내가 물가에서 나왔을 때 상태가 어땠는지 아느냐?”
“저도 들어서 잘 모르겠지만, 축 늘어지셔서 미동이 없으셨다 합니다. 그런 사또를 웬 얼굴 반반한 놈이 안아 들고 가 버렸다고 들었을 때 전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제가 사또를 어찌 지켜왔는데, 웬 얼굴도 모르는 놈이 사또를 홀라당 집어 간 건가 싶어서―.”
“헛소리하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움찔한 복운은 입을 다물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는 괜찮아 보였다 하고, 누구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계셨다고 하기도 했지요. 일단 의식이 없어 보였다 하시니 그게 걱정이 되어서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웅얼거리던 복운은 입을 다물었다.
결국은 그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지금은 명월이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이고, 안심이 되었던 그는 슬금슬금 명월 앞으로 다가갔다.
“사또, 다음부터는 어딜 가시려거든 절 꼭 데리고 가십시오. 어제는 사또께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 저도 눈치가 보여서 바로 뒤따르지 않았던 거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뭔 일이 있어도 사또의 그림자처럼 찰싹 달라붙어 다닐 테니 그리 아십시오.”
거기까지 말한 복운은 입을 다물곤 눈에 힘을 줬다. 지금 하는 말은 결코 농 따위가 아니라고 말하는 얼굴에 명월은 한숨을 쉬었다.
“됐다. 난 들어가서 쉴 테니까 그리 알아라.”
그러곤 바로 대청으로 올라가 버리자 복운은 어,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목화를 벗고 대청으로 올라가 분합문의 고리를 잡은 명월은 뒤를 돌아봤다.
“네가 애지중지 여기는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 거냐.”
명월의 물음에 움찔한 복운은 우물쭈물했다.
“그, 그 녀석은 지금 제 방에 있습니다.”
대답을 하는 복운은 눈을 내리뜬 채였다.
명월이 고양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한번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소중하게 잘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명월이 고양이를 버리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정말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복운이지만, 명월은 태연했다.
“그 고양이에 대해서 앞으로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복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대체 뭔 소리를 들은 건가 싶었던 복운은 당장 고개를 들었지만, 명월은 이미 방 안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멍하니 닫힌 문을 보던 복운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바깥에서 뭔 일이 있었나?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시지?
하지만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고 허락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옆에 끼고 함께 다녀도 되는 걸까. 아니다. 허락을 하긴 했지만, 명월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그건 정말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거였다.
아아, 고양이도 그렇고 명월도 그렇고, 복운에겐 무척 소중한 존재였다. 둘 중 누군가를 포기하는 건 안 될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던 복운은 머리를 감싼 채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 * *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명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화소군이라. 자신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놈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이를 묻기 전에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위세야 대단하니 단박에 알아냈을 테고, 그 외에 또 무엇을 조사했을까.
원래 그런 장사치들이 사람 뒷조사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막상 면전에 대고 말을 듣게 되니 그리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이야 내내 웃으면서 간이며 쓸개 모두 빼다 줄 것처럼 굴지만, 그게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돌아간 후, 바로 그 가식적인 미소를 거두고 뒤통수 칠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명월은 눈을 내리떠 오른손을 확인했다.
앉아 있거나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선 언제나 늘 아래로 내리고 있는 손이었다. 혼자 있을 때에도 허벅지 아래쪽으로 숨기듯이 두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해 온 것이 이제는 몸에 익은 거였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 숨기고 있어야겠지.
그래서 자신은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었다.
“…….”
혼자만의 생각을 할 따름인데도 기분이 묘했다.
명월은 안색을 굳힌 채로 눈을 내리떴고, 입을 벌리자 그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돌아왔으니 수습할 일들이 아직 잔뜩 남아 있었다. 남쪽 다리 보수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이방을 불러야겠지만, 만사가 다 성가셨다. 이대로 누워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늘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던 명월은 일어났다.
명월이 다시 나오자 대청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복운이 놀라선 뒤를 돌아봤다.
“왜 다시 나오십니까?”
“이방을 불러와라.”
“이방이요? 이방만 불러오면 됩니까.”
“이방이 네놈 친구더냐. 함부로 이방, 이방 거리지 말고 어서 갔다 오거라.”
명월의 타박에 복운의 얼굴이 밝아진다. 갑자기 표정이 환해진 복운은 실실 웃으면서 마당으로 달려갔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씩씩하게 외치면서 멀어지는 복운의 모습에 명월은 혀를 찼다.
미친놈처럼 뚱하니 있다가 왜 갑자기 웃는지 모르진 않았다. 축 처져 있던 자신이 평소같이 돌아가자 그게 좋은 거다.
복운은 정말 충성스러운 자였다. 저런 사람은 어디 가서 쉽게 만날 수 없으니 곁에 있으니 잘 대해 줘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그리되지가 않는다. 자연스럽게 툴툴거리는 말을 내뱉게 된다고 할까. 격이 없는 만큼 오히려 더 홀대하게 되는 게 없잖아 있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건데.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대청 끝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릎을 세우곤 그걸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궁상스럽기보다는 귀여웠다.
뭔가를 집중해서 생각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입술을 앞으로 뚱하니 내밀고 있던 명월은 야옹, 하는 울음소리에 움찔해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복운이 있었던 자리에 앉아 있는 하얀 고양이를 발견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마루 아래에 있다가 기어 나온 건가.
그때 고양이가 재차 입을 벌리고 야옹, 하고 울었다.
“조용히 해라.”
냉랭한 일갈을 알아들은 건지 고양이가 바로 입을 다문다.
그러곤 동그란 눈망울로 빤히 올려다보자 명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진짜 고양이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 이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모르겠지만, 만약에 하나라도 복운에게 해를 가하려 든다면 널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복운이 애지중지하면서 예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곁에 두도록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복운의 은혜도 모르고 그에게 해를 가하려 한다면 그땐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라며 명월은 매섭게 노려봤다.
명월을 빤히 바라보나 싶던 고양이는 고개를 숙이곤 본인 앞발을 핥았다. 목 안쪽으로 갸르릉,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멀어지는 걸 본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한 고양이인 것 같은데.
아니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놈이 위장한 것일 수도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필 거라면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즘 이런 식으로 수시로 그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짓을 당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그 전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지만, 더는 아니었다. 화소군의 도움에 대해서 예민할 정도로 반응하면서 어떻게든 꼭 갚겠다 말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잘못 걸렸다가 된통 뒤집어쓰는 건 사양하고 싶다면서 명월은 중얼거렸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망할 놈 같으니.”
다음에 보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며 명월은 어금니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