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면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
이상하다 싶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제 갈 길만을 간다면 이런 식으로 문제가 복잡하게 꼬일 필요도 없었다.
나이가 차고 혼자서 먹고살 만한 일을 하고 있으니, 평판이라는 건 어디를 가나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평판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집안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말이 떠돌면 좋아하진 않을 거다. 구석진 곳에 부임이 되었다 한들, 소문이라는 건 발이 달리지 않는 말과 같았다. 여차하면 순식간에 도성에 있는 그들 귀에 자신에 대한 말이 들어가게 될 거다.
대낮부터 기방을 찾아 여자를 끼고 논다는 말에는 혀를 차면서 경멸을 하겠지만, 이상한 걸 보고 듣고 그것과 관련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이 들리면 그들은 그보다 훨씬 더 심한 반응을 보일 거다.
중요한 일이나, 그쪽에서 부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본가에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게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을 이상한 괴물 보듯 바라보는 게 싫었다. 아버지의 외면을 받는 것도 싫었다.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다들 기피하는 자신을 여기까지 키워 준 분이었다. 애정이 있든 없든, 책임감으로 자신을 맡아 주었으니 그에 따른 보답을 하는 게 사람 된 도리였다.
그것 때문에 자신을 죽여 왔다. 최대한 보통 사람처럼 지내려 했건만 결국엔 이런 상태였다.
모르는 척하고 넘길 수 있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하나, 아픈 아이를 데리고 와 치료를 해 주고, 충분히 보살폈다. 그쯤에서 손을 떼고 모르는 척을 한다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이 모르는 걸 하나 더 알고 있었다.
아이에겐 귀물이 달라붙어 있었고, 그 귀물은 분명 아이에게 해가 된다.
거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보통 사람인 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가면 더는 평범하게 있을 수 없었다. 언제나 늘 그런 생각을 머리 한구석에서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입은 아이를 찾으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전부를 숲으로 데리고 왔다가, 결국 귀물의 농간에 길을 헤매고 있었다. 전의 그와 같은 귀물이라면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거다. 죽을 수도 있겠거니 싶었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아라. 아무것도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도 마라. 그리해야 한다.’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명월은 이를 악물었다.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가 하는 말을 따르려고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숨기고 감추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한다 해서 자신이 그들과 같아질 순 없었다. 그들과 진짜 가족이 될 순 없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암만 노력한다 한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자신은 그저 바깥에서 굴러들어온 집안의 우환덩어리였다. 설령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또 다른 이유를 붙여서 자신을 배척하고 비난하고 밀어내고 경멸했을 거다. 그걸 알기 때문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는 거다.
언제나 늘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신의 진정한 이해자는 없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렇게 영영 혼자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죽을 때까지, 나는 혼자인 걸까.
혼자서 하게 되는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수많은 상념이 마음을 침투해서 깊숙한 안쪽에 자리를 잡고는 곁가지를 퍼트린다. 잡념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이 자신의 눈을 멀어 버리게 할 터였다.
그래서 명월은 걷는 걸 멈추었다.
“…….”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비단 분위기 탓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이런 류의 부정적인 잡념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누군가 의도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여기서 조금 더 어둡고, 안 좋은 생각을 하게 해서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고 그걸 파고들려는 거다. 그걸 느낄 수 있었던 명월은 입술을 달싹였다.
“난 네놈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모습을 숨기고 있지만, 반드시 찾아 낼 거다. 숨겨 버린 아이도 되찾고 말 테다. 명월은 재차 검의 손잡이를 꼬옥 움켜쥐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아니면 뭐냐. 내가 두려운 것이냐. 인간인 내가 두려워서 아직까지도 숨어 있는 것이더냐.”
이런 도발이 먹힐 것이라 생각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계속해서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명월은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그 앞에 내려앉아 있던 무거운 안개가 사라진다. 좌우로 갈라지듯이 물러나더니 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안개 때문에 코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설마하니 공터 위에 서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다. 어쩌면 이것도 놈의 농간일지도 모른다.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던 명월의 눈동자에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쪽인가 싶어서 바로 검을 반쯤 빼들다가 주춤했다. 엎드린 채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얘야?”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그걸 모른다. 그래서 조심스레 불러 봐도 아이는 반응이 없었다. 엎드린 채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몸이 온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런 모습으로 대체 뭔 일을 하는 건가 싶었던 명월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대체, 라고 중얼거린 명월은 급히 그리로 달려갔다. 아이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선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일어나라.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다급한 명월의 말에도 아이는 여전히 엎드린 채였다. 바닥의 풀을 하나하나 헤집으면서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뭔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명월은 급한 대로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들었다. 그러자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명월은 그런 아이의 어깨를 잡아 똑바로 앉게끔 한 후에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라!”
옆으로 고개가 돌아간 아이는 맞은 충격이 컸던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옆얼굴이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다는 걸 확인한 명월은 재차 외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안 그러면 너도 죽는다!”
손바닥이 얼얼한 정도로 때려 버렸다. 그 손을 움켜쥔 채로 명월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힘없이 늘어져 있다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아이가 명월을 올려다봤다.
크게 떠지긴 했지만, 텅 빈 눈동자를 본 명월은 숨을 삼켰다. 떨리는 눈동자로 멍하니 명월을 바라보던 아이가 하얗게 튼 입술을 달싹였다.
“어, 엄마가 필요한 게 있으시데요.”
“엄마라니. 그런 건 없어. 너희 어미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다.”
가능한 목소리를 낮추고 감정을 죽인 채로 차분하게 사실을 알려 주려 했다.
그건 인간이 아닌 귀물이라는 걸, 아이가 똑바로 알고 받아들여야 지금의 이 개 같은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아이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불 속에 누워 계세요. 말을 걸면 대답을 하세요.”
명월이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양, 부정하면서 아이는 양손으로 제 가슴을 눌렀다.
“아니에요. 그건 우리 엄마예요. 엄마가 분명해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도 눈동자는 불안으로 떨린다. 그걸 본 명월은 이미 아이가 모든 걸 알고 있음을 직감했다. 명월은 재차 입을 열었다.
“사람이 아니다. 그건 네 어머니가 아니야.”
“……아니에요.”
힘없는 부정에 명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아이와 승강이를 벌일 새가 없었다. 아이가 받아들이든 아니든, 찾아냈으니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대로 아이의 팔을 붙잡아 그 몸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에 맞춰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눈을 치뜬다.
“우리 어머닌 살아 있어!”
그리 외치면서 아이는 앞으로 빠르게 손을 뻗었다.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랫배 쪽으로 뜨끈한 뭔가가 퍼지는 감각에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 싶은 얼굴로 눈을 크게 뜬 채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공포로 물드는 얼굴을 본 명월은 손에 힘을 줬다.
“괜찮다.”
아이의 팔을 힘주어 붙잡은 명월은 재차 말했다.
“이건 네가 한 일이 아니야.”
“…….”
아이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다물린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오는 걸 들으면서 명월은 천천히 눈을 내리떴다.
왼쪽 옆구리 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있었다. 심마니들이 약초를 캘 때 흔히 사용하는 짧은 단도였다. 깊지 않고 급소를 찔린 게 아니니 괜찮다지만, 칼에 찔려서 그런지 아프긴 했다. 아픈 내색을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며 명월은 재차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상처 입지 마라.”
지금 자신이 당한 일보단 아이의 상태가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말에, 아이는 명월을 찌른 제 손을 내려다봤다.
양손을 움켜쥔 채로 신음을 흘리는 아이가 전신을 떠는 걸 확인한 명월이 재차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싸늘한 공기가 뒷목에 닿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명월은 떨고 있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칼에 찔리지 않은 오른쪽으로 아이를 안아 든 채로 달렸다. 그러자 아이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저항을 한다.
“죽고 싶지 않거든 가만히 있어라!”
명월이 소리를 치자 움찔한 아이가 행동을 멈췄다.
“이대로 있다간 너도 네 어머니처럼 죽게 될 테니까!”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이 방법이 먹힌 것인지 아이는 얌전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월의 상태가 편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왼쪽 옆구리엔 칼이 박혀 있었는데 그 상태로 어리다 하나 아이를 든 채로 달리는 건 여러모로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이를 악문 채로 어떻게든 버텨 내면서 달리던 명월은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걸 느끼곤 아뿔싸 싶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당황해서 달리는 속도가 느려질 즈음 무언가가 아이를 잡아채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를 놓쳤다. 놀란 명월이 그쪽을 바라보는 것에 맞춰서 아이도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명월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필사적으로 뻗어지는 손을 잡기 위해서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아이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명월은 헛손질을 하면서 비틀거렸다. 동시에 왼쪽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신음을 삼키며 그쪽으로 손을 댔다.
칼에 찔린 곳은 이미 축축하게 젖은 채였다. 급소는 피했다고 하나, 갑작스럽게 움직인 것 때문일까. 다친 부위가 욱신거리면서 더 아파지는 걸 느끼면서 명월은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지금 명월은 한곳에 멈춰 서 있었다. 보이는 게 없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가 소리를 치거나 인기척을 낸다면 그리로 갈 수도 있으려만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렇다 해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가 안개에 몸을 숨긴 채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타나라.”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경직 되어 있다. 그 끝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명월은 입을 다물곤 마른침을 삼켰다.
어디에,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보이는 게 없으니 모든 신경이 청각에 집중되었지만, 들리는 건 없었다. 그래서 상태가 점점 더 예민해지는 걸 느끼면서 명월은 칼에 찔린 곳에서 손을 떼곤 대신 검집에 손을 올렸다. 검의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는 것에 맞춰서 어둠 속에서 나직한 웃음이 들려온다.
『달콤한 피 냄새로구나.』
하아, 하고 귓가에 닿는 음성에 움찔한 명월은 바로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눈동자만을 움직이는 명월을 두고 공기에 퍼지는 듯 기분 나쁜 웃음이 들려왔다.
『내가 보이지 않는 거로구나. 하지만 난 네가 무척이나 잘 보인다. 너의 공포도 말이지. 지금 이 순간이 너에게 무척이나 힘든 시간인 것 같구나.』
놈은 본인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놈이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놈에게 당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명월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빼 든 검을 앞으로 내민 채로 정면을 노려보는 명월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졌다.
『그 알량한 검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해 봐야 아는 거겠지.”
이번에 나온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명월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네놈도 정면 승부를 하면 질 것 같으니까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니더냐.”
『우습구나. 인간의 그 되지도 않는 자만이란―.』
키득거리면서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안색을 굳힌 명월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뭔가가 그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명월은 앞으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고, 재차 옆구리가 걷어 채였다. 하필이면 찔린 쪽이었다.
들고 있던 검을 위로 향한 채로 명월은 몇 번이나 풀 위를 굴렀다. 그러다가 똑바로 누운 상태가 된 명월은 이를 악물곤 왼쪽 옆구리를 손으로 눌렀다.
박혀 있던 건 빠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명월은 이를 악문 채로 신음을 흘렸다.
“……제기랄.”
마치 불에 덴 듯한 통증이었다. 아팠지만, 덕분에 정신이 바로 드는 것 같다면서 명월은 인상을 쓴 채로 주변을 살폈다. 이번에도 역시나 보이는 건 없었고, 들리는 건 비웃는 소리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이러고도 네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물론이지!”
아프니까 목소리도 크게 나온다.
왼쪽 옆구리를 세게 누른 채로 명월은 이를 갈았다.
“너 같은 놈에게 질 것 같으냐!”
그 순간 사방에서 요란한 웃음이 들려왔다. 그리 큰 울림은 아니었지만, 고막 안쪽으로 바로 닿는 듯한 느낌이 기분 더러웠던 명월은 신음을 삼키며 검을 쥔 손으로 귀를 막았다. 기분 더러우니까 그만 웃으라고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머리에 쓰고 있던 전립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잡아서 뒤로 넘긴 명월은 풀에 손을 짚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두어 대 맞았더니 정신이 확 든다면서 고개를 짧게 턴 명월은 정면을 응시했다.
『어딜 보는 것이냐. 난 여기에 있다.』
웃음이 담긴 목소리에 명월은 놀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다 아니다. 여기래도.』
이번에 목소리가 들린 건 왼쪽이었다. 숨을 삼킨 채로 그쪽을 바라보는 것에 맞춰서 목 뒤에서 하아, 하는 호흡이 느껴졌다.
차디찬 한숨.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숨을 느끼며 명월은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거라. 그러면 이번엔 너에게 내 모습을 보여 주마. 너 같이 나약한 면상을 지닌 인간은 분명 보자마자 놀라 자빠질 거다.』
“네놈 스스로도 그 면상이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구나.”
『쓸데없는 말로 날 화나게 하지 마라. 일부러 날 자극하지 않아도 네놈을 잘 데리고 놀아 줄 셈이니까.』
무려 데리고 노는 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자신을 어찌할 수도 있다는 양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꽤나 거물이로구나. 그런 주제에 잘도 숨어 있었어.”
『숨어 있을 필요도 없다. 인간은 가벼운 말 하나로도 쉽게 낚이는 나약한 것들이니까.』
“그 어리석은 인간 중에서도 죄 없는 어린애를 현혹한 주제에 꽤나 당당하군.”
『그 어린 것이 죄가 없다고 누가 그러더냐. 인간이란 태어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니라―.』
인간이든 귀물이든 뚫린 입으로 제멋대로 지껄이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명월은 쓰게 웃었다.
“그런 추악하고 더러운 인간하고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냐. 나도 서 있는 게 슬슬 힘들어지니, 서둘러 끝내자.”
『조금 전의 자신만만함은 전부 다 어디로 가 버린 거냐. 이제야 포기할 마음이 든 거냐.』
“애초에 난 성가신 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지.”
그리 말한 명월은 검을 내렸다. 오른손에 검을 쥔 채로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서자 앞으로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게 다가온다. 그걸 감지한 명월은 말없이 눈동자만 위로 들었고, 앞에 서 있는 그걸 봤다.
하얀 여자 소복을 입고 있는 그것은 머리가 길어서 그걸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으나, 벌레가 파먹은 듯 구멍이 숭숭 뚫린 피부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크고 동그란 눈은 돌출되어 있고, 코는 낮은 데다가 입술 모양도 이상했다. 추물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보는 순간 이상한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을 감춘 채로 마주 응시해 오는 명월을 두고, 그것은 감탄을 했다. 저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게 신기했던지 웃으면서 말한다.
『이 근처를 돌다가 흥미로운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그 저주받은 서쪽의 백귀가 있음에도 이리로 들어온 거지.』
말을 하는 순간 놈의 뚫린 피부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구더기인가.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던 명월은 애써 그리로 시선을 주지 않고는 차분히 물었다.
“날, 알고 있는 거냐.”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네 피와 살이 맛있을 거라는 건 알지.』
명월은 놈이 하는 모든 말들을 전부 다 듣고 기억하려 했다.
서쪽의 백귀가 무엇인가.
놈이 느낀 흥미로운 기운은, 정말 자신에게서 풍기는 것일까.
그래서 이곳에 오는 순간 이상한 놈들하고 이렇게 엮이는 것인가.
그때 놈이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에 피하려 했으나. 용케 참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 놈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우리의 먹이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놈인 것 같구나. 어차피 내가 아니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다른 놈에게 먹힐 운명이라면, 그냥 나의 것이 되려무나―.』
명월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 마음에 들지 않음을 드러내는 그 모습에 놈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내 너에게 마지막 순간 가장 좋은 꿈을 보여주마.』
그 순간 놈의 모습이 바뀌었다.
지저분한 소복이 알록달록 화려한 것으로 바뀌고, 추물인 얼굴이 꽃이 핀다. 가느다랗고 진한 눈썹과 또렷하고 짙은 눈동자, 오뚝한 콧날과 붉은 입술을 지닌 미인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화려한 장신구를 꽂은 그녀의 이름을 저도 모르게 읊조리게 된다.
호접화. 중얼거린 후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에 맞춰서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네가 원하는 사람이다. 마음에 드느냐?』
그러곤 재차 그녀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지금껏 호접화를 보면서 저토록 환하게 웃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그녀가 아닌 그가 느껴진다. 그 망할 놈이 말이다.
갑자기 가슴 안쪽으로 뜨끈한 무언가가 화악 퍼지는 걸 느끼면서 명월은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무표정을 한 채로 다가오는 명월을 두고 그녀의 미소가 한층 밝아진다. 이리 오라며 손가락을 까닥이는 걸 보면서 명월의 손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움직였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이 그녀의 복부 가운데를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배를 찌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입을 벌리자 그 사이로 막힌 숨이 터져나온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굴면 백이면 백 홀려서 간이고 쓸개고 전부 다 빼 주었을 거다. 하지만 명월은 귀물이 왜 호접화 그녀로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아름답기는 해도, 별다른 감정은 없었는데.
호접화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명월은 중얼거렸다.
“전혀 마음에 안 드는데?”
혼잣말하듯 말한 명월은 그대로 검을 뽑아내면서 뒤로 물러났고, 놈이 양손으로 본인 배를 눌렀다.
검이 뚫고 지나가 버렸으니 피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멈춰 보려는 듯 필사적으로 배를 누르면서 놈이 사라졌다.
『그런 걸로 날 어찌할 수 없을……』
분노를 담은 목소리는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 명월은 오른쪽으로 검을 찔러 넣었던 거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고 그곳에 서 있던 놈이 보였다.
이번에는 가슴 가운데 쪽에 검이 박힌 채로 놈은 마른 숨을 뱉어냈다. 헐떡거리는 놈을 확인한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앞에서 오른쪽, 그 다음이 왼쪽, 그러고 나서 뒤로 돌아가는 거냐.”
안개는 그저 착시일 따름이고, 놈은 그 뒤에서 숨어서 재간을 부렸던 거다.
이제는 완전히 제 모습으로 돌아간 놈을 흘겨보며 명월은 빈정거리듯 말했다.
“안개가 네놈의 추악한 면상을 온전히 다 감추어 주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으면서 그리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지금 명월은 성치 않은 몸 상태였다. 겨냥이 빗나갔고, 그 틈을 타 놈은 뒤로 물러났다.
안개 사이로 금방 사라져 버렸으나 이번에도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던 명월은 망설이지 않고 그리로 달려갔다.
왼쪽 옆구리를 한 손으로 누른 채로 부지런히 달리자 저 앞으로 하얀 그림자가 보였다. 안개 사이에 숨어 있던 귀물이 흉측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인간 놈이! 인간 놈 따위가!! 용서하지 않겠다!!』
“더 달려 봐라! 네놈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보이니까!”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놈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겁게 깔려 있던 안개가 걷히는 걸 느낄 수 있었던 명월은 다리에 힘을 주고 왼쪽 옆구리를 누르던 손을 뗐다.
손으로 누른다 해도 아픔은 가시지 않는 법이었다. 차라리 저놈을 완전히 없앤 후에 몸 걱정을 하자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린 명월은 도망치는 놈의 등을 베어 버렸다.
날카로운 비명이 고막을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놈이 비틀거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내가 인간에게 당하다니……!』
놈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희열이 가슴을 채운다.
“내가 인간이 아닌가 보지.”
나직이 속삭인 명월은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본 귀물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린다.
『설마하니 네놈은―!』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반응에 명월도 주춤했다.
뭐지? 무슨 말을 할 셈이지?
그리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놈이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이제는 도망쳐 봤자 손바닥 안이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더니만 다 개수작이었던 건가.
혀를 찬 명월은 놈을 따라 움직였고, 그때 녀석이 허리를 굽히면서 뭔가를 움켜쥐면서 재차 뒤를 돌아봤다. 그런 놈의 한쪽 팔에 들려진 건 어린애였다.
그 순간 명월은 뒤를 쫓던 걸 멈추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 아이의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
아이의 턱을 잡아 위로 들어 올린 놈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분노 때문일까. 단순히 감정적인 동요가 일기 때문일까. 완전히 허물어진 그것은 얼굴로 부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놈이 의식을 잃은 아이를 인질로 삼고 있는 것이니 쉽사리 접근할 수도 없었다.
멀찍이 선 채로 가만히 있는 명월을 두고, 놈은 이죽거렸다.
『그래. 그렇게 가만히 있거라. 안 그러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려니 지겨워서 안 되겠군.”
익숙한 목소리에 명월도 귀물도 놀라서 숨을 삼켰다.
명월의 눈이 크게 떠진 채로 뒤쪽을 보는 걸 확인한 귀물도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하얀 호랑이의 가죽을 눌러쓰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곤 경악으로 눈을 치떴다.
『넌―!』
“여긴 내 구역이다. 이 잡놈아.”
짧게 말한 백호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눈 깜짝 할 사이에 귀물의 양팔이 잘려져 나갔다.
아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본 명월은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 양손으로 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감싼 채로 그대로 귀물의 목 가운데를 찔렀다.
『커……헉!』
목을 뚫고 지나간 칼날은 백호의 얼굴 앞까지 접근했다.
날이 조금 더 길었으면 분명 얼굴에 닿았을 거라며 백호는 코앞에 있는 칼끝을 보다가 옆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귀물 너머에 서 있는 명월과 시선이 부딪친 짧은 순간 그의 눈썹이 올라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양 굳어 버리는 백호의 표정을 확인한 명월은 검을 빼내곤 그대로 귀물의 목을 베어 버렸다.
단발마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귀물의 머리와 몸이 재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에 깔려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의 풍경이 드러났다.
“네놈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짤막하게 내뱉은 후 명월은 입을 다물었다.
눈에 힘을 주고 노려봐도 얼굴색은 파리하고 동공이 풀려 있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기는 하나 금방 쓰러져도 이상할 거 없는 모습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내음에 백호는 눈을 내리떠 명월의 왼쪽 허리춤을 살폈다. 한 손으로 그곳을 누르고 있으나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를 멈추게 할 순 없었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은데 정말로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거냐.”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 넌 신경 쓰지 마라.”
이를 악문 채로 내뱉은 명월은 눈을 내리떴다.
아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귀물을 상대할 때, 그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어찌 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당시엔 아이의 안위보다, 귀물 놈을 없애 버리는 쪽에 더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선 안 되었는데.
만약 아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크나큰 자책감을 느꼈을 거라며 아랫입술을 깨문 명월은 아이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그런데 내내 참고 있었던 통증이 강해진다.
날카로운 꼬챙이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느낌에 표정을 굳힌 명월은 입을 벌리고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다가 아직 앞에 서 있는 백호를 의식하곤 바로 표정을 수습하곤 아래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손이 닿기도 전에 비틀거리게 된다. 두 다리에 힘을 준 채로 버티고 서선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앞으로 커다란 손이 다가온다. 안색을 굳힌 명월은 당장 고개를 들었다.
“나한테 손 대지 마.”
그 말에 손을 뻗다 말고 백호는 행동을 멈춰야 했다.
명월은 백호를 노려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굽히려던 순간 비틀거렸다. 쓰러지려던 순간 재차 뻗어진 손이 그의 몸을 안아 든다. 듬직한 가슴팍에 안긴 명월은 숨을 죽였다.
힘이 들어간 몸을 느낀 백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지금 명월은 제 스스로는 설 수도 없는 상태였다.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상태로 고집을 부려 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한마디 하려던 순간 신음이 들려온다.
“날 건드리지 마라…….”
중얼거림을 들은 백호는 혀를 차면서 명월의 뒷머리에 손을 올렸다.
“시끄럽다. 조용히 있어라.”
그리 말하며 머리를 누르자 명월이 놀라 흠칫, 하고 몸을 굳힌다. 하지만 더 버티지 못하고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지더니 온전히 품에 안겨 온다. 명월을 양팔로 단단히 끌어안은 채로 백호는 바로 손을 내렸다.
왼쪽 옆구리를 누르던 명월의 손이 떨어져서 대신 그곳에 백호의 손가락 끝이 닿는다. 상처는 깊지 않아도 피가 꽤나 많이 흘렀다. 명월이 흘린 피가 숲에 진동해서 쓸데없는 것들이 이끌리게 생겼다면서 백호는 명월의 옆구리를 손으로 눌렀다. 백호의 손바닥이 뜨거워지면서 그곳에서 흘러나온 온기가 명월의 상처 부위를 덮는다.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한 후에, 그대로 명월을 안아 든 백호는 아직도 쓰러져 있는 아이를 내려다봤다. 다시 고개를 든 백호는 입을 벌리고 가느다란 숨을 토해 냈다.
그 숨이 숲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 * *
눈앞을 가리는 안개가 너무 짙어서 바로 코앞을 확인하는 게 어려웠다. 늦은 시간이라 횃불이 없으면 더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들 지경인데, 명월이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으니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복운도 아이를 찾지 못한 마당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아이를 발견해서 무사히 데리고 나가야지.
처음 아이를 봤을 때 혼자서 숲에서 살아가는 것에 많은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묻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게 있으면 이것저것 챙겨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복운은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러다가 앞에 있던 나뭇가지에 발끝이 걸려선 비틀거렸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아이구―하는 소리를 낸 복운은 앞으로 손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붙잡은 건 이방의 옷자락이었다. 안개가 짙어서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던 이방은 갑자기 옷을 붙잡는 복운의 행동에 안색을 굳히며 뒤를 돌아봤다.
“뭐냐.”
“발에 뭔가가 걸려서 넘어진 것뿐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이방을 붙잡다니. 괜히 창피한 기분이 든 복운은 급히 손을 떼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바로 코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사또.”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게 된 것인데, 그걸 싹 모르는 척하면서 명월에게 말을 건네는 복운의 행동에 이방은 혀를 차면서 “잘 보고 다녀라.” 라고 한마디 했다. 그 말에도 복운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릴 따름이었다.
어두워도 뺀질거리는 얼굴로 있을 복운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던 이방은 한소리 하려다가 말았다. 여기까지 와서 복운하고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 필시 명월이 뭐라 할 터였다. 가뜩이나 아이 때문에 예민해진 그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이방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앞으로 움직이는 횃불이 보였다. 이방은 걸음을 서둘렀다.
해가 지기 전에 아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 되지 않을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만 했다. 여기서 더 시간이 늦어지면 사또를 관아로 돌려보내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었다.
사또는 분명 아이를 찾기 전까진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겠다 하겠지만, 말이라도 꺼내서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할 것 같았던 이방은 걸음을 서둘러서 횃불을 들고 있던 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사또―.”
명월을 부르려다 말고 이방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뒤를 돌아보는 포졸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긴장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붙잡는 것인가 싶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포졸을 두고 이방은 주변을 살폈다.
뵈는 게 없으니 일단은 눈앞의 횃불을 따라온 건데 그 근처에 있어야 할 명월이 없었다. 이리로 오면 분명 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이방은 당황해선 주변을 살피다가 재차 고개를 들어 포졸을 바라봤다.
“사또는 어디에 계시는 게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뒤를 따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은 횃불을 든 채로 앞만 보고 걸음을 옮겼으니 사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보다는 그쪽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묻는 식으로 바라보는 포졸을 두고 이방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때 복운이 허둥지둥 뒤를 따르면서 “같이 갑시다―.” 라고 말했다. 그 말에 이방은 바로 뒤를 돌아봤다. 횃불로 비추어지는 이방의 얼굴 절반이 굳어 있는 걸 본 복운도 뭔가를 감지하곤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복운은 당장 주변을 살폈다.
“사또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잔뜩 굳어 있었다.
그 묻는 말에 대해 이방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도 명월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게 조금 전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는 이방이 답답했던 복운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하려던 찰나 저기 안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이리로 와 보십시오!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내내 찾던 아이를 발견했다는 말에 복운과 이방이 급히 그쪽을 살폈다. 어쩌면 명월이 자신들보다 한발 먼저 아이를 찾아서 근처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는 횃불이 보였다. 그리로 달려가던 이방과 복운은 횃불이 멈춰서 있는 곳에 다가가선 바로 멈춰 섰다.
그곳에 서 있는 다른 포졸들은 하나 같이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복운과 이방도 그들과 똑같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이 멈춰 서 있는 곳의 가운데엔 어린 아이가 똑바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백골이 된 시체가 누워 있었는데, 다 삭은 여인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백골이 한 구뿐이었다면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두개골과 백골이 몇 개나 있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뼈들을 확인한 이방은 신음을 삼켰다.
“이게 대체…….”
지금 눈에 보이는 이것들이 대체 무언가 싶었던 이방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이토록 깊은 숲에 들어온 건 처음이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백골이라니.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웩,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썩거나 끔찍하게 변한 시신은 없었으나 사방에 널려 있는 뼈들은 기이하고 구토를 유발했다.
하나가 헛구역질을 하자 여기저기서 웩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그들 사이로 누군가 앞으로 달려간다. 이방은 당황해선 아이에게 달려가는 복운을 바라봤다. 아이의 맥을 짚은 후에, 그 몸을 안아 올린 복운이 주변을 살폈다.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던 복운이 마지막으로 이방을 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물었다.
“사또는 어디에 계신 겁니까?”
“…….”
아이를 발견하긴 했으나, 지금 보이는 주변의 끔찍함에 멍하니 있던 이방은 아차 싶었다. 대충 주변을 둘러봐도 명월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그는 근처에 서 있던 포졸이 들고 있던 횃불을 빼앗듯이 들고 가서 서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곳에 명월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 모습을 바로 알아보는 게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최종적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복운을 바라본 이방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난 후, 복운은 이방에게 아이를 떠넘겼다. 엉겁결에 한팔로 아이를 받아 든 이방은 숲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복운을 보곤 놀라 외쳤다.
“혼자서 움직이면 위험하다!”
이런 백골들이 널려 있는 것은 여기에 위험한 산짐승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곳을 복운 혼자 다니게 할 순 없었던 이방은 다급히 다른 포졸들에게 그의 뒤를 쫓으라 말했다. 몇몇 포졸이 뒤따라가는 걸 보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방은 재차 말했다.
“너희들은 사또를 찾아봐라! 갑자기 사라지셨다!”
이방의 말에 작은 술렁거림이 생겨난다. 여기서 왜 사또가 사라진 거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해도 일단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포졸을 확인한 이방은 재차 복운이 달려간 쪽을 살폈다.
이곳은 기분 나쁜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사또가 사라졌는데 복운은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래선 안 되는 게 아니냐면서 아이를 한팔로 추슬러 안았다.
아이가 있던 자리 옆에 누워 있는 여인의 해골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두개골을 본 이방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시선을 피했다.
* * *
모든 시험과 심사를 거친 후, 명월은 등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등용을 받고 제대로 임명이 되었다는 걸 알기 전까진 기뻐할 순 없었다. 물론, 기뻐한다고 해서 그것에 동조해 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만―.
명월보다 먼저 과거를 준비한 두 형님은 지금 관직에 올라 있었지만, 명월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삼형제가 나란히 관직에 오르면 집안의 홍복이 될 터이지만, 이 집안에선 그 누구도 그걸 바라지 않았다.
자신은 존재 자체가 짐이었고 화근이었다. 그들로선 가능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줬으면 싶을 터였다. 그렇게 조용히 있으면 언젠가 때가 되어 이름 모를 여인을 떠넘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자신은 얼굴도 모르는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해 저기 먼 지방으로 유배되듯 보내질 거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사방이 막혀 있다 한들, 적어도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관직에 오르고 싶어도 다른 이들이 방해를 할 터이니 할 수 없겠고, 집 안에 눌러앉아만 있으면 죄 없는 여인이 희생양으로 팔려 올 테고, 그렇다면 무엇이 좋을까.
집 안에 붙어있지 않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생활해도 남들 보기에 모나지 않을 만한 것. 생각을 하다가 나온 게 바로 사또라는 업이었다.
2년에서 3년 동안 한곳에 부임해 있다가 때가 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본인이 원하면 그곳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었다.
품계는 낮아도 보기에 따라서 부족하지도 않고 차고 넘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제 손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둬도 나라에서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한 돈이 나오니 그걸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덧붙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실제로 명월은 사또가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초반엔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이들도 알아서 조용해졌다. 사또라는 입장이 저들에게 어떤 해를 가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늘 냉랭하던 어머니도 다른 지역으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잠깐 얼굴을 보이곤 “건강해라.” 라고 한마디 해 주지 않았던가. 그건 부임하는 자식에 대한 걱정 어린 말이 아니라, 앞으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 존재를 내보내는 속 시원함이 담긴 한마디였다. 그걸 알기에 명월도 순순히 고맙다 인사를 드렸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던 두 형들과도 대화를 끝냈고, 아버지의 충고도 잘 들었다. 짐은 제대로 챙겼고,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날 일만 남았다.
이곳을 떠나, 자신 혼자서 살아가게 된 거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혼자가 된 거다.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는 건 지난 10여년 간 생활을 해 왔던 자신의 방이었다. 특이할 것도 없고, 평범해서 언제나 늘 판에 밖은 듯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공간을 바라보던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이렇게 속이 허할까. 여기서 그토록 멸시와 냉대를 받아 왔는데 떠나려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걸까.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자신의 감정인데도 바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앉아만 있던 명월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대청 밖으로 나왔을 때 마당 쪽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안개가 끼어 있는 걸까. 이상하다. 그리 생각하면서 명월은 가죽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손을 움켜쥐어도 안개는 잡히질 않는다. 정말은 손을 뻗기 전부터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손을 내린 명월은 고개를 들고 재차 주변을 살피다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어가선 대문을 열고 안채로 향했다. 그렇게 몇 개나 되는 문을 열고 나가서 걷는 동안 대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른 때라면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머슴이 하나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손님이 찾아오거나 이상한 자들이 나타면 바로 대응할 수 있으니.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명월은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다.
거리 밖에도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몸을 돌려서 열린 대문을 바라봤다. 찬찬히 전체적으로 대문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곳을 만져 봤다.
어렸을 땐 훨씬 더 크고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별거 아니다.
대문을 더듬던 명월은 몸을 돌리곤 그대로 쪼그리고 앉았다.
지금 이 모습을 집안 사람들이 보면 재차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놈이 집안 욕되게 한다는 소리나 지껄일 터였다. 하도 들어서 면역이 될 만도 한데 가끔씩 기분이 상할 때가 있었다. 자신도 원해서 이곳으로 온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날 여기에 버려 두고 간 거야. 그냥 보통 인간들처럼 살기를 바랐을 테니까.
하지만 다름은 감추어지지 않고 드러나게 되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함께 어울리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도 저들은 자신을 밀어냈다. 그래서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전에 살던 곳은 여기보다 작고, 형편없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없었지만……그래도 거기가 좋았다. 그와 함께 살 때가 훨씬 더 좋았는데, 왜 그는 자신을 버리고 간 걸까. 버리기 전에 말이라도 해 주었다면 이토록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가슴이 허하고, 쓰리고, 아릿하면서 슬픈 기분이 들지 않을 거다.
이 집을 떠나게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보지 않고 사는 건 좋았지만, 자신이 여길 떠나게 되면 그 사람과 영영 못 만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게 싫었다.
만약에라도 그 사람이 마음이 바뀌어서 자신을 보러 왔는데,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게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을 보면 그도 여기선 사는 게 힘들었던 것 같던데, 험한 말이라도 듣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편지라도 한 장 써 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편지를 써도 마땅히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가지고 있다가 건네달라 말을 해도 기분 나쁜 물건이라면서 나중에라도 태워 버리면 곤란한 노릇이었다.
……아, 왜 이렇게 입장이 처량맞은지.
가슴이 답답해진 명월은 가만히 있었다.
대문 바깥에 나와 이런 식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건 꼴사나워서 싫지만,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었다. 자신에게도 마음의 정리라는 게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검은 그림자가 얼굴 앞으로 드리워졌다. 놀란 명월은 바로 고개를 들었고, 앞에 서 있는 검은 가면을 쓴 사내를 발견하고 눈을 치떴다.
예전에도 본 적이 있던 사내였다. 분명 이 사내를 만나고 나서 그가 자신을 이리로 데리고 왔었다. 잘은 몰라도 그가 뭔 짓을 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명월의 표정은 밝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지듯 굳어지는 명월을 두고 사내가 입을 열었다.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지만, 조심하도록 해라.’
조심하라는 말에 명월의 얼굴로 의아함이 서린다.
그 말은 어떤 의미인 건가 싶어서 숨 죽인 채로 있는 동안 사내가 재차 말을 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거다.’
생각을 하는 것도, 상대가 제대로 된 말을 해 줄 때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추상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뭐라 하려던 찰나 사내가 사라졌다. 안개가 더 짙어지고 그것이 몸을 타고 올라온다. 주변의 공기가 습해지는 걸 느끼면서 안색을 굳힌 명월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안개를 피하려는 순간, 의식이 깨어났다.
* * *
허공을 향해 높이 한쪽 팔을 든 채로 굳어 있던 명월은 한참을 같은 자세로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는 있으나 멍한 얼굴이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고는 천장을 확인한 명월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높은 천장은 나무와 흙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걸 지탱하는 건 흙벽이었다. 황토빛의 벽을 보는 순간 흙냄새가 코를 찔렀고, 명월의 표정이 더 굳어진다.
여긴 관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인 걸까.
의문을 가지는 순간 떠오르는 건 백호와 아이였다. 그때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고 명월은 급히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바깥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려던 자가 명월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을 닫으려 들었다.
도망치듯 나가려는 모습에 명월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거라 몸이 무겁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잽싸게 일어선 명월은 문을 닫고 도망치는 자의 뒤를 쫓아서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이가 보였다. 등이 구부정한 꼽추였다. 뭔가가 떠오르려는 것 같았으나 그 전에 저자를 붙잡는 게 우선이다 싶어서 급히 움직여서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
“멈춰라! 왜 도망치는 것이냐!”
명월에게 팔이 잡힌 꼽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들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명월의 표정이 한결 굳어진다.
“왜 얼굴을 감추려는 거냐. 고개를 들어라.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더냐―!”
“상처를 치료해 줬더니만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로군.”
“…….”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주춤한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바깥 언덕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백호가 보였다.
맨발인 그는 상의도 탈의한 채 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나로 대충 묶은, 꽤나 야성적인 모습의 그는 명월을 흘겨봤다.
“겁 많은 노친네 겁주지 말고 팔이나 놔줘라. 그렇게 붙잡다간 뼈 부러지겠군.”
뼈 부러지겠다는 말에 명월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그러자 주저앉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던 꼽추가 바닥을 기어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언덕 아래로 달아난 꼽추를 보고도 붙잡지 않은 건 백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긋하니 설렁거리며 걸어가 건물 뒤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걸 보고 나서야 명월은 이곳이 어딘지를 알게 되었다.
전에 동헌 의자에 목이 비틀린 닭이 올려졌을 때, 새 의자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실력 좋은 장인이 있다는 말에 홀랑 속아서.
결과적으로 장인이라는 놈과 얽히게 되어서 머리 아플 일만 생기고 있었지만―그건 그냥 넘어가고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파악해야 할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한곳에 자리한 건물과 풍경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여긴 저 재수 없는 놈의 본거지였고, 자신은 그곳에 와 있었다. 왜 이곳에 와 있는 건가 싶어 생각을 하다 말고 명월은 급히 제 왼쪽 옆구리를 더듬었다.
그러자 칼에 찔린 곳에서 아무 통증도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칼에 찔렸는데.
명월은 급히 저고리를 위로 잡아들고는 바지를 살짝 내렸다. 그러자 하얗고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그곳엔 칼에 찔린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이런 게 처음이었다면 말도 안 된다면서 당황했을 터였다. 하지만 처음이 아니었기에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저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식는 걸 느끼며 명월은 옷을 내리곤 백호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건물 뒤쪽으로 큰 규모의 창고가 있었고, 백호는 창고 바깥쪽에 나와 있는 용광로 앞에 서 있었다. 불을 지핀 것인지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용광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한 명월은 곧장 그리로 향했다.
백호의 옆에 서선 그를 내려다봤다. 그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게 느껴졌다. 백호도 분명 알고 있을 텐데도 그는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발로 걷어차고 싶은 걸 꾹 참고는, 백호 쪽에서 먼저 반응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용광로 안쪽을 주시했다.
눈을 지그시 뜬 채인 모습이 진지했다.
저 안에 무엇이 있기에 저리도 진지한 걸까. 정말은 아무것도 없는데 단순히 자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는 게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봤지만, 그렇다 해서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명월은 손을 들어선 본인 왼쪽 옆구리를 지그시 눌렀다.
아이가 멋도 모르고 찌른 단검은 끝까지 파고들어갔다. 그저 살을 가르고 들어간 것뿐이어서 뼈가 다치거나 내장을 건드린 건 아니었지만, 심각한 수준의 부상이었는데 지금 그게 완치되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귀물이나, 눈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상식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전에 이 금수만도 못한 놈에게 당했을 때 꼬박 하루를 자고 나서 눈을 뜨니 몸이 괜찮아져 있었다. 며칠 전, 물에 빠졌을 때에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몸에는 상처 하나 남아 있지 않았지.
자신의 몸이 이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이놈이 뭔가를 한 것일까. 두 번째 경우엔 놈이 곁에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불이 잘 타는군.”
내내 조용히 있다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불이라는 녀석은 참 좋아.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모든 걸 공평하게 태워 버리니. 이렇게 보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하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는 지껄이지 마라.”
“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거냐. 단순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더냐.”
그리 말한 백호는 고개를 들어 명월을 올려다봤다.
눈을 내리뜬 명월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앉아 있을 땐 몰라도 일어서니 묘한 박력이 느껴진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상반신을 벗은 채로 바지만 입고 있는 상태가 보기에 거슬렸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피하면 그게 지는 것처럼 여겨진 만큼, 명월은 눈에 힘을 준 채로 백호를 노려봤다. 그런 모습에 백호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가만히 주시하던 백호가 천천히 고개를 가까이 한다. 다가오는 얼굴을 본 명월은 헛숨을 삼키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위로 올라온 백호의 손의 명월의 눈두덩이 바로 위를 쿡 찔렀다.
“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명월은 손으로 눈을 누른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금방 손을 내리곤 백호를 노려본다.
“지금 뭘 하는 거냐?!”
“어린 것이 눈을 치뜨는 게 맹랑해서 그런다.”
어린 것이라 하는 순간 명월은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백호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가 얼마나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확실한 건 지금 겉모습만 보더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다는 거다.
조용해지긴 했지만 굳은 표정마저 풀린 건 아니었다. 인상을 쓴 채로 쳐다보는 명월을 두고 백호는 옆으로 몸을 물렸다. 그가 거푸집 앞에 서선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
그 손에 들린 게 눈에 익은 환도라는 걸 깨달은 명월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무얼 하는 거냐.”
그건 자신의 검이었다. 그걸 들고 왜 거푸집 앞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장인 흉내라도 낼 셈인가 싶었던 명월은 묘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백호는 환도의 날을 살피다가 위쪽에 걸린 커다란 망치를 잡아 내렸다.
“검에 서린 독기를 빼내는 거다. 이런 걸 들고 다니면 잡귀들이나 달라붙을 테니까.”
“잡귀들보다 훨씬 더 해로운 것이 다듬어 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빈정거리는 순간 바로 백호가 고개를 든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백호는 한눈에 보기에도 성이 나 있었다.
지금까지 뭔 말을 해도 유들거리는 반응이던 그가 저토록 정색을 하며 바라보는 게 의외였던 명월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입을 다무는 명월을 살피며 백호는 들고 있던 망치로 그를 가리켰다.
“내가 아니었으면 네놈은 거기서 죽었다. 그건 부정하지 못하겠지. 넌 내게 빚을 진거다. 내 은혜를 입은 거지.”
“그래서, 재차 내게 비역질을 하겠다는 거냐.”
언제 주춤해 있었냐며 이를 악물고 세게 내뱉는 순간 등 뒤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었던 명월은 당황해서 뒤를 돌아봤고, 쓰러진 양동이를 붙잡고 있는 꼽추가 보였다.
꼽추는 고개를 들고 있다가 명월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안색을 굳히며 바로 고개를 푹 숙인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서둘러 사라지는 모습에 명월은 굳은 채로 그쪽을 바라봤다.
“보기보다 순진한 놈이니 듣고 놀랄 만한 말은 하지 마라.”
도망치듯 사라지는 꼽추를 살피던 명월이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망할 놈하고 단둘이 있었으면 이보다 더한 말을 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그런 말을 할 때 나타난 거냐면서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불편한 공기가 그들 사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싫었던 명월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자가, 네 대신 기방으로 내려와 물건을 파는 자더냐.”
“뭐, 그렇지. 술병이 나서 못 일어나면 나 대신에 내려가서 이런저런 일을 대신 하지.”
딱 보기에도 거동이 힘들 것 같은 사내였다. 그에게 대신 일을 시킨다는 건가. 백호가 한심하게 여겨졌지만, 그보단 달리 알아볼 게 많았다.
“사람인가.”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도 구분 못하는 거냐. 한심하군―.”
눈을 흘긴 백호는 다시 검을 살폈다.
짧은 순간 눈을 흘기는 게 정말 한심한 걸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인지라 명월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구분할 필요가 뭐가 있더냐. 너희 놈들이 알아서 나다니지 말아야지. 여긴 사람이 사는 땅이다.”
“무식한 소리 하지 마라. 어찌 하는 말마다 하나 같이 머리 빈 소리뿐이냐. 너 낳은 놈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알려 주지 않은 거냐.”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말문이 막힌다.
검을 살피면서 끝에서부터 가볍게 망치로 두드리던 백호는 그걸 세워선 본인 얼굴 앞에 두었다.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고 인간들에게 방생해 놓으면 어쩌라고. 살라고 내보낸 건지, 아니면 그냥 이놈 저놈 잡귀들이 죄다 들러붙어서 죽으라고 한 건지 알 수가 없군.”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 백호는 검 속에 비치는 제 얼굴의 반을 살피다가 옆으로 눈동자를 옮겼다. 그리고 양손을 움켜쥔 채로 서 있는 명월을 살폈다.
“화가 난 거냐. 내 어떤 말이 네놈을 화나게 한 거냐.”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 말도 명월의 기분을 풀어 줄 수 없었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백호를 노려보던 명월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명월은 지금 입고 있는 게 자신의 옷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원래 입고 있었던 구군복은 분명 다 벗겼겠지. 상처를 치료하고 옷을 새로 입힌 건 저놈이 한 짓일까.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저놈이 자신에게 대체 뭔 짓을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명월은 저고리의 긴 고름을 잡아 당겼다. 쉽게 풀리는 고름에서 손을 떼고 앞이 벌어지자 저고리를 벗었고, 그 순간 백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지금 뭘 하는 거냐.”
“은혜를 갚으려는 거다.”
전에 백호가 은혜 운운하면서 몸을 취했다. 이번도 마찬가지겠지. 그리 생각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명월이 벗은 저고리를 한 손에 든 채로 그를 노려봤다.
바람이 불어서 명월의 하얀 등을 스쳐 지나간다. 곧게 뻗은 등과 날씬한 허리, 그리고 긴 목과 아름다운 쇄골, 그 아래에 자리한 작은 두 개의 유실은 아직 풋풋한 색을 띠고 있었다. 배 아래쪽으로 오목하게 자리한 배꼽까지 확인한 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백호의 눈동자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고 지나가듯 움직이는 순간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동요하지 말자. 그리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백호가 입을 열었다.
“그 마르고 빈약한 몸을 보이면 내 음경이 당장 발기할 것 같았냐. 어림도 없다.”
약간의 당혹감을 담아 바라보는 명월을 두고, 백호는 혀를 찼다.
“풋내 나는 네놈을 안는 건 고역이었다. 알기나 하는 거냐.”
딱한 걸 보는 양 눈을 흘기는 순간 명월은 입술을 벌렸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으면서도 부끄러운 느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멍하니 있다가 얼굴을 붉힌 명월의 목소리가 커진다.
“날 건드린 건 네놈이 먼저였다!”
“그땐 그래야 했다.”
“비역질이나 한 주제에 뭐가 그래야 했다는 거냐!”
“그 비역질 덕분에 네놈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다.”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명월이나, 그에 대꾸하는 백호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여전히 굳은 시선을 유지한 채로 백호는 탐탁지 않음이 가득한 억양으로 말했다.
“네놈이 누군지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 나불대지 마라.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고 싶지 않아진다. 애초에 그놈만 아니었다면―.”
인상을 쓴 채로 말하던 백호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을 듣고만 있던 명월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 순간 ‘괜한 걸 말했다.’라는 얼굴로 있던 백호가 재차 검을 쥐고는 위로 들었다.
“들어가 있어라.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네놈 때문에 활검(活劍)이 아니라 사검(死劍)이 되게 생겼어.”
위로 들린 검은 흠 하나 없었다. 햇볕을 받아서 유난히 더 시린 빛을 발하는 검날에서 시선을 뗀 명월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처음, 백호와 만났을 때부터 들던 기묘함이 있었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명월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에 대해서 뭘 아는 거냐.”
“네놈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모든 걸 알고 있지.”
“지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순순히 입을 벌리나 싶던 백호는 혀를 찼다. 그리고 망치를 위로 들고는 있는 힘껏 검을 내리쳤다. 징―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명월의 귀를 찌른다.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진동이 되어서 귀 안쪽을 찌르는 느낌에 명월이 안색을 굳히자 백호가 허리를 주욱 폈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성가시게 굴지 마라.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거든 먼저 예의부터 갖추거라. 지금의 네놈은 건방지기 짝이 없어. 마음에 안 들어.”
백호는 눈을 내리떴다. 거기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명월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서 있는 명월은 여전히 저고리를 벗고 있었다.
하얀 가슴팍과 그곳에 자리한 유실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걸 참으면서 백호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번에야말로 명월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 일이나 하겠다는 양 망치를 고쳐 잡았다.
“이봐.”
막 집중하려던 순간 저런 식으로 부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게 당연했다.
얼굴을 확 일그러뜨린 백호가 고개를 듦과 동시에 명월이 물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
짜증이 담겨 있던 백호의 눈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간다. 그는 망치로 검 끝을 두드리면서 답했다.
“포졸이 데리고 갔다.”
“그래. 알았다.”
바로 몸을 돌린 명월은 들고 있던 저고리를 다시 걸쳤다. 고름을 바로 매려다 말고 한 번 묶고 만 명월은 그대로 처음 있었던 곳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이지만, 갖추어진 건 정말 없었다. 한쪽에 잡동사니 같은 것들만 잔뜩 쌓여 있는 걸 살핀 후 오른쪽을 살피자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꼽추가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로 명월을 흘깃거리던 꼽추는 시선이 부딪치자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되레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명월은 왼쪽에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나무판을 높게 올린 곳에 이불을 깔아 두었다. 이부자리 한편에 앉은 명월은 꼽추를 빤히 바라봤다.
저 백호와 함께 생활한다는 건 그도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거였다.
하지만 사람인 것 같은데…….
“자네 이름이 뭔가.”
명월의 물음에 꼽추가 고개를 든다. 그 얼굴은 뭔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 얼굴 가득 주름이 잡혀 있으니 노인이 분명한데, 묘하게 눈빛이 맑았다.
그때 꼽추가 손을 들어선 동정을 잡아 벌렸다. 그제야 목 아래쪽에 난 검붉은 흉터를 본 명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제 목을 길게 빼서 상처를 보여 주고 난 후 꼽추는 손으로 입술을 두드린 후, 고개를 저었다. 그것에서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게 된 명월의 안색이 굳어진다.
“미안하네. 내가 실수를 했군.”
명월의 사과에 꼽추는 눈을 끔벅거리더니 갑자지 가까이 다가왔다. 터벅터벅 거리면서 다가오자 명월의 몸으로 힘이 들어간다. 뭔가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니 꼽추가 명월을 가리키곤 자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꼽추가 손짓하는 이부자리를 살피던 명월이 물었다.
“누우라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 후 자리에 눕자 이불을 들어서 덮어 주려 한다. 그것까지 시키는 건 이상했던 명월이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가 알아서 하겠네.”
착실하게 이불을 가슴 위까지 올리고 나서야 얼굴에 달라붙던 시선이 떨어진다.
“누워만 있으면 되는 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꼽추가 몸을 돌려선 앉아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낮은 의자에 앉은 그는 다리를 모았다. 명월을 눕게 만들었으니 이제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 말하는 얼굴이었다.
꼽추를 보다가 눈동자를 옮겨 천장을 살피던 명월은 이불 아래에 있던 손을 내렸다. 왼쪽 허리와 그 부근을 만져 보고 더듬었다.
상처는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보통 인간이라면 치료를 한다 해도, 이렇게나 말끔하게 낫는 게 가능할까. 자신이기 때문에 이런 일도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그러다 백호를 떠올린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고리를 벗고 놈 앞에 선 건 거의 충동적으로 한 짓이었다. 그래도 놈이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태연하게 그리 말할 줄은 몰랐다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수치스럽다. 저고리를 벗은 자신을 두고 놈이 한 말 때문이 이러는 게 아니었다.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고 부끄러웠다. 그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걸까.
다음에 그놈을 어찌 보려고…….
명월은 표정을 굳히며 눈을 흘기던 놈을 떠올렸다.
관심이 없고, 오히려 화가 난다는 양 반응하던 놈이지만, 그 시선이 꽤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왼쪽 허리에서 손을 뗀 명월은 제 가슴 위에 한 손을 올렸다.
가볍게 올린 채로 있던 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손을 움켜쥔 명월은 가슴 한쪽이 묘하게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명월의 거처가 있는 곳의 대청 한쪽에 앉아 있는 복운은 퀭한 얼굴이었다. 칙칙한 표정을 한 채로 눈을 내리뜨고 있던 복운은 지저분한 옷차림에 머리 꼴도 엉망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가서 뒹굴다가 온 것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얼굴로 있지 말고 안에 들어가 있어.”
타박하는 목소리에 복운은 고개를 들어선 앞에 서 있는 이방을 올려다봤다.
“싫습니다.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갈 겁니다.”
뚱하게 대꾸한 복운이 고개를 돌리는 것에 맞춰 이방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사람이 무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모하게 구나. 다른 포졸들이 찾아보고 있으니 잠깐 방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다 나와.”
“싫습니다. 제가 눈을 감고 쉬는 동안 사또께 뭔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습니까.”
“현명한 분이시네.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잖은가.”
“사또가 현명하신 만큼 나쁜 일들이 비껴 나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시종일관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말을 해대니 그걸 듣고 있는 것도 곤혹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해서 복운보다 명월을 더 걱정하거나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를 찾았으나 명월은 실종되어서 그때부터 다음 날, 낮 동안 계속 포졸을 풀어 그를 찾고 있었다.
사또가 사라진 게 알려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은밀하게 움직이면서도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를 가늠하고 있는데 복운은 내내 저런 식이었다. 그런다고 명월이 더 빨리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저러다 복운도 쓰러질 것 같아서 노파심에 한마디 해 준 건데 쓸데없는 짓이었나 보다.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다 입을 다문 이방은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이방 또한 지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복운은 가만히 있었다. 대청 끝에 앉아서 몸에 힘을 빼고 있으니 가라앉는 것 같다. 이대로 누우면 죽은 듯이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리해선 안 되었다.
손을 움켜쥔 복운은 가죽신 위에 놓인 제 발을 확인했다. 보기에 딱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보다 더 아파도 상관없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명월을 찾았으면 좋겠다면서 복운은 몸을 일으켰다.
“가 봐야지.”
지금 이 순간에도 명월이 어떤 상태로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예전에 명월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 지나친 걱정은 하지 말라 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오히려 어른이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이 마음을 정말 모르는 건가 싶었던 복운은 씩씩하게 마당을 가로질러 가려다가 야옹, 하는 소리에 발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대문 옆, 담 위에 앉아 있는 나비가 보였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나비야.”
힘없이 손을 뻗자 나비는 그걸 빤히 바라본다. 다가오진 않고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손만 내려다보는 모습에 복운은 그리로 걸어갔다.
나비 바로 아래에 서선 양손을 뻗어 부드러운 털을 문질렀다.
“사또가 사라지셨다. 이번엔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예전부터 종종 이런 식으로 사라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이번엔 느낌이 이상하구나. 불안해서 죽을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괴롭히는 놈들이 있어 그놈들 때문에 일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장에 나갔다가 자신을 따돌려도 금방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기에 화가 나도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숲에서 발굴한 유골만 하더라도 수십 개였다. 다른 뼈 없이 머리만 굴러다니는 것도 수두룩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이들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일으킬 만한 광경이었고, 명월은 그런 곳에서 사라졌다.
명월의 눈은 보통 사람과 달라서 이상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 그가 사라진 게 그런 놈들의 농간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속이 탄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아닌 귀신이 수작질을 부리는 거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한 복운은 표정을 굳혔다.
“잠시만 혼자 있거라. 내 금방 사또를 모셔 올 테니.”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멀쩡한 모습으로 데리고 오겠다면서 복운은 나비를 노려보듯 쳐다봤다. 강렬한 의사를 내비치는 복운이었으나, 나비가 고개를 들고는 크게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복운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빠르게 대문을 넘어섰다.
사람은 한 번 간 곳으로 두 번 찾아가지 않는다. 그런 맹점을 노려서 곧장 아이를 찾았던 그 기분 나쁜 장소로 갈 셈이었다. 사람들 뼈를 모은다고 포졸 몇이 남아 있으니 혼자 가도 무섭지 않았다. 명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서운 게 대수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복운은 양손을 움켜쥐고는 외문을 빠져나왔다.
“여보게.”
차분한 목소리로 부르는 것에 움찔한 복운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익숙한 목소리가 마치 명월의 것처럼 들렸던 거다. 하지만 뒤에 서 있던 사내를 확인한 복운은 미간 사이로 주름을 만든 채로 당신은, 하고 중얼거렸다.
* * *
움찔한 명월은 바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차디찬 어둠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바로 몸을 일으켜선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가 코끝을 스치는 자연의 내음에 몸에 들어간 힘을 빼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이곳이 어디고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된 명월은 느린 숨을 토해 내며 재차 주변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때 근처에 꼽추가 있었다. 말을 못하는 그는 곁에 머무르면서 조용히 간병을 했고, 낯선 이의 인기척이 신경 쓰여서 그쪽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의식은 흐려졌다. 그때 재차 잠이 들어선 지금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이불을 걷어 내고 몸을 일으킨 명월은 손을 들어 제 몸을 더듬었다. 여기저기를 어루만져 보아도 불편한 구석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왼쪽 허리춤에 손을 내린 명월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정면을 노려봤다.
몸은 나았으니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떠나면 되겠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명월은 한쪽 발을 들었다. 느린 걸음을 옮겨선 문을 밀자 끼익, 하는 소리가 울린다.
온전히 문을 다 열고 나온 명월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오른 달을 올려다봤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걸 보다가 재차 걸어갔다. 어디를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지 않아도 발길이 알아서 갈 곳을 안내해 준다. 그래서 도착한 커다란 창고 앞에 선 명월은 손잡이를 잡고 뒤로 당겼다.
조용한 곳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을씨년스럽다.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도 시종 차분하게 모습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선 명월은 문을 닫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운데 탁자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백호를 봤다.
“…….”
어디선가 떨어진 달빛이 그 하나만을 비추고 있었다.
편하게 앉아선 앞에 술병 하나만을 두고 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명월의 눈가가 가늘게 떨린다. 명월은 재차 걸음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윽고 명월은 백호 앞에 멈춰 서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질 만도 한데 백호는 시종 눈을 내리뜬 채였다.
본인이 술을 마시는 이 순간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명월은 그가 자작하게 두질 않았다.
탁자에 손끝을 대는 순간 백호가 고개를 든다.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명월은 다시 움직여선 백호의 앞에 앉았다. 당돌하게도 앞으로 올라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명월의 행동에 백호의 눈썹이 꿈틀한다.
뭐라고 한소리 할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일단은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걸 확인한 명월은 손을 뻗어선 가만히 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넘기자, 시종 평온하게 있던 백호의 미간으로 주름이 잡힌다. 그가 앞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과 동시에 명월의 입 안에 고여 있던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알싸하고 시원한 향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가슴과 배에 도달했을 때, 거기서부터 시원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명월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물었다.
“이건 독주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만월의 밤에 가장 여린 잎에 맺히는 이슬을 모아서 만든 귀한 월주다. 그걸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네 멋대로 마시고 앉아 있는 거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호는 명월의 손에 들려 있던 병을 잡아채듯 들고 갔다. 비단 말뿐이 아니었는지 병을 살피는 그의 미간에는 여전히 주름이 잡혀 있었다.
병을 든 채로 무게를 가늠하나 싶던 그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걸 깨닫곤 혀를 찼다. 인상을 쓴 채로 바라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명월이 말했다.
“어차피 그런 거 많이 가지고 있을 거면서…….”
뭘 저렇게 속 좁게 구는지 모르겠다면서 명월은 고개를 돌렸다.
남이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걸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지금 명월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던 백호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굳어진다. 당장 한소리 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면서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몸이 다 나은 것 같으면 물러날 것이지 왜 그러고 앉아 있는 거냐. 썩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백호의 그 말에 명월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응시해온다.
하얀 한복을 입은 명월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채였다. 평소와 다르게 편안한 차림새인 그의 얼굴 위로 달빛이 떨어져서일까. 안 그래도 곱디 곱던 얼굴이 꽃피듯 화사해졌다. 입을 앙다문 그 고집스러운 모습조차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 얼굴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면, 독에 빠져 죽어도 모르리라.
어느새 백호도 명월을 마주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불편해하지도 않고, 도통 속을 읽을 수 없는 차분함으로 바라보는 백호를 두고 명월은 입을 열었다.
“최초의 기억은 허름한 오두막에서 그와 함께 살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이런 말에 그가 흥미를 보일까 싶었으나, 이내 생각을 접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와 단둘이 살았고,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어. 단지 아주 가끔은 그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보고 싶다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뿐이었지. 기본적으로 둘이 함께 있는 상황에 만족했어.”
그러면서도 종종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밖으로 나갔고, 그때 귀물과 부딪쳐서 위험한 상황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똑같은 삶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그가 자리를 비웠고 검은 가면을 쓴 사내가 나타났지. 옆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살피고 오른손을 만지던 사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난 후, 바로 사라졌고 그가 다시 나타났지. 그는 내게로 달려와 내 오른손에 남은 걸 보곤 당황스러워하며 동시에 슬퍼했어. 내 손을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그때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어. 하지만 그게 그와의 헤어짐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지. 난 그대로 지금의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집 아들로 잘 살아왔지.”
잘 살아왔다는 걸로 끝낼 정도로 순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나 싶기도 했다.
자라오면서 있었던 일들, 기억, 그런 것들은 전부 과거일 뿐이었다.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건 지금이었으니, 지금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었다.
“난 이상한 아이였고, 그게 사실이었지. 내 눈에는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던 게 보였으니까. 처음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도 하지 못했어. 내가 보이니까 다른 이들도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다들 볼 수 있는데도 내게 거짓말을 하면서 안 보이는 척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들은 정말 볼 수 없었던 거야. 그때부터 내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지.”
자신에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이 남들에겐 아니었다.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같았다. 싫고 이상한 걸 대하듯 일그러진 얼굴을 하곤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어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려 하는 이들도, 마음 한구석에선 자신을 혐오했다.
자신의 주변으로 커다란 원이 있어 그곳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자신 또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살던 그가 내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해. 그는 나와 피가 통하던 사람이었어. 아마도 그는 나처럼 이상한 게 보였던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 날 데리고 그런 깊은 숲 속에서 단둘이서 살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그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게 바로 이 손 때문이었지.”
명월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검은 가죽 반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 손등을 앞에 둔 채로 그걸 바라보다가 그쪽으로 다른 손을 가까이했다.
끼고 있던 반장갑을 벗고 있는데도 백호는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장갑을 벗은 후 명월은 본인의 손등을 살폈다.
원래 피부가 하얀 편이긴 했지만, 유난히 더 투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달빛 때문에 그런 걸까. 오랫동안 가죽 장갑을 끼고 있어서 햇볕을 받지 않았기에 이러는 걸까.
고운 제 손을 바라보던 명월은 그걸 천천히 돌렸다. 그러곤 제 손바닥 안쪽을 확인했다.
손바닥 안에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동그란 점이 가운데에 찍혀 있고, 그 위쪽으로 반달처럼 휘어진 선이 그려져 있었다.
가운데 점만 있었으면 괜찮았을 테지만, 위쪽의 휘어진 선이 문제였다. 딱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로운 문양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명월의 얼굴은 굳은 채였다.
이것 때문에 헤어져서 살아야 했던 거다. 이걸 감추기 위해서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음으로 인해서 더 튀고, 이상해 보이게 된 것 같았다.
전에는 숨기면 되는 문양 정도였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반양에 들어와 만난 몇몇 귀물들은 이 문양에 반응했다. 그리고 그건 코앞에 앉아 있는 놈도 마찬가지였다.
“넌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묻는 말에 대해서 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굳게 다물린 백호의 입술을 본 명월은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정말로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거였다면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거야. 왜 나타나는 거냐. 왜 위험할 때마다 도와주는 거지. 왜…….”
궁금한 것들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알고 싶은 건 그것이었다.
“여기에서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냐.”
다른 곳에 있어도 이상한 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 반양에서 보이는 것들은, 다른 곳하고 비교가 불가한 것들 투성이었다.
사람을 해하고, 이용하고, 잡아먹으려 든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귀물이라 불리는 그것들을 알지도 못했다.
굳은 시선을 보내오는 명월을 두고 백호는 눈을 내리떴다.
잔은 비어져 있었다. 한 잔을 더 따를까, 싶었으나 지금 술을 마셔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백호는 입을 열었고, 그 사이로 긴 숨이 흘러나왔다.
“인간이 살고 있다고 해서 그곳이 인간들의 땅인 건 아니다. 애초에 그들은 들어서지 말아야 할 곳에 터를 잡았고, 그게 실수였던 거다. 반양이라는 이 땅은 조용하고 한적해 보이지만, 정말은 그렇지 않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그들을 옭아매서 여기서 떠나지 못하도록 한다.”
예전, 이방 한소규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제 딸은 이곳을 벗어 날 수 없다는 그 말. 그리고 혼자선 나갈 수 없을 거라고도 했었다.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없는 이유가 폐쇄된 공간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는 동안 이어져 내려온 풍습 때문에 그런 건가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던 건가.
잔을 한 손에 움켜쥔 백호는 감정이 담기지 않아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로 명월을 응시했다.
“너 또한,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거다.”
“내가 원해서 이리로 오게 된 게 아니다.”
“모든 일들은 우연으로 인해 벌어지지만, 그것들이 꼭 우연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건가. 그리 말하는 백호의 저의가 수상쩍었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게 그 때문인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자신의 생각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내의 정체조차도 알 수 없는 마당엔, 말이다.
“네 정체가 뭐냐?”
“봐서 알고 있을 거 아니냐.”
“늘 하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지. 그게 네 진짜 모습이냐. 그렇게 있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진짜 짐승으로 변하는 거냐.”
“짐승의 모습으로 있는 건 가장 하급인 놈들이지. 날 그런 놈들과 똑같이 보지 마라.”
“그러면 왜 그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건데.”
하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채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언젠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명월은 입술을 달싹였다.
“누군가가 날 부탁한 거냐. 그래서 내 뒤를 봐주는 거냐?”
“그런 거 없다.”
“낮에 말을 하려다가 말았지. 거기까지 들었는데, 네놈이 아니라 해서 그걸 믿을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아.”
지금 그가 저런 식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렇군. 넌 정말로 아는 게 없구나.’ 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시종 일관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명월을 두고 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그가 말을 할까, 말까 가늠하는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명월은 일단 기다렸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여기가 얼마나 조용한 곳인지를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장소. 깊은 숲 속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토록 조용한 게 아닐까.
명월은 눈동자를 옆으로 돌렸다.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보이는 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백호뿐이었다.
그것이 이상했다.
“네놈의 손에 있는 그것은 독각귀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패(牌) 같은 거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백호의 말을 흘려듣을 뻔했다.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을 것처럼 굴던 주제에 이상한 소리를 한다.
“패라니―.”
“통행증 같은 거지. 독각귀의 땅은 더럽혀진 귀물 놈들에겐 허락되지 않은 땅이다.”
명월은 재차 자신의 오른 손바닥을 살폈다.
이상한 문양, 이것이 통행증이 된단 말인가. 어떤 식으로 말인가.
안색을 굳힌 명월은 오른손을 움켜쥐며 물었다.
“독각귀라는 건 그거냐. 그 사람을 현혹해서 꾀어낸다는―.”
“진짜 독각귀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귀물 놈들이 헛수작을 부린 게 와전되어서 다들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전에 검은 가면을 쓴 채로 나타난 사내의 정체가 독각귀였던 거냐?”
중심에 접근하지 않은, 그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하나하나 짚고 올라가면 도달하는 결론은 같은 것이었다.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 물어도 결국에는 핵심으로 대화를 몰고 가는 수작을 감지한 백호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애송이.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짚어 나가다 보면 네놈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네가 알려 주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알아내면 된다.”
“다른 방식으로 알아낸다고? 어떻게?”
“여기에 와 보니 손을 뻗으면 닿는 게 귀물인 것 같은데, 그런 놈들을 붙잡아 이 손의 문양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지.”
그 순간 백호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는 걸 확인한 명월은 말을 이었다.
“내 손의 문양에 대해서 집착하고 흥미를 보이는 건 네가 아니라 그쪽인 것 같으니, 어쩌면 더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줄지도 모르지.”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귀물들은 말도 안 되는 놈들이어서, 솔직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밀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명월은 백호의 반응을 살폈다.
뚫어지라 바라보는 시선에 결국 백호가 입을 연다.
“맹랑한 놈. 그런 짓을 하면 네놈의 목숨이 붙어 있을 것 같으냐.”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위험해지면 네가 도와줄 텐데.”
단정 짓듯 하는 말에 백호의 눈썹이 올라간다. 불쾌함을 드러내는 걸 알면서도 명월은 모르는 척 말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을 테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인간이 아닌 존재일 거다. 어렸을 때 함께 산 그가 아닌 다른 존재라면,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어머니가 되겠군.”
그 순간 옆으로 고개를 돌린 백호가 풋, 하는 소리를 냈다. 정말 우습다는 양,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비웃음에 명월의 입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지워진다.
불쾌함으로 굳어지는 얼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맙소사―.”
계속해서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몇 번이나 기침을 하고 난 후 백호는 다시 명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 반응에서 자신이 잘못 짚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와 아는 사이였던 걸까. 그도 자신처럼 이상한 게 보이는 쪽이었다. 그런 거라면 평범한 여인과의 사이에서도 자신을 낳을 수 있었다는 거고…….
모르는 척 그가 자신을 부탁한 건가, 하고 묻고 싶었으나 재차 백호의 비웃음을 받으면 못 참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명월은 아예 다른 걸 물었다.
“네놈하고 하고 난 후에 꼬박 하루를 잤지. 그랬더니 몸 상태가 좋아졌어. 어떻게 된 거지?”
이 질문에는 이번 옆구리에 생긴 상처가 다 나은 것에 대한 의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뭘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가 솔직하게 말한다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을 터였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겠지?”
“네가 귀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
예상대로 쉽게 말을 해 주는 걸 들으면서 명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귀물은 아니고 인간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면……대체 정체가 뭘까.”
“머리 굴리지 마라. 네놈이 알고 있는 것으로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의 내리기 힘들 테니까.”
백호는 잔에 술을 따라 그걸 집어 들었다. 잔에 입술을 대자 달콤한 냄새가 올라온다. 그 달콤한 냄새가 계속해서 나긴 했다. 비단 술에서뿐만이 아니라, 앞에서 풀풀 올라왔다.
명월이 나타나면서부터 나던 향기가 점점 더 강렬해진다. 그걸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 굴면서 백호는 중얼거렸다.
“나 정도가 되면 모든 게 약이 되지. 눈빛, 목소리, 체취, 호흡, 피, 그리고 정액까지도 말이야.”
마지막 말을 하고는 바로 술잔을 비웠다.
고개를 들자 이상하게 변한 명월의 얼굴이 보인다. 이런 말을 할 때 저런 반응이 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백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귀하기로 따지면 산삼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걸 네놈의 안에 듬뿍 싸 준 거다. 그러니 그 정도의 상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치유되는 건 문제도 아니지.”
느긋한 미소를 머금은 백호와 달리, 그 말을 들은 명월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걸 확인한 백호는 소리 내 웃었다.
“그 눈빛은 뭐야?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 덕분에 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네놈의 그 잘난 정액을 내 몸에 뿌린 거냐.”
명월의 목소리가 굳어 있는 게 기분 좋게 느껴진다.
백호는 술잔을 앞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거 왜 이래? 늘어진 상대를 건드리는 취미는 없어.”
“그때는 내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잘만 했잖아.”
처음의 기억. 의식을 잃는 순간까지도 몸은 흔들렸다. 분명 이후로도 오랫동안 달라붙어서 그 짓을 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그때 그렇게나 그곳이 아팠을 리가 없으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었군.”
하는 말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긍정하는 말에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오랫동안 백호를 노려보던 명월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나하고 뭘 하고 싶은 건데?”
“너하고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아무 일도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에 명월의 눈썹이 올라간다. 저돌적인 구석이 있는 명월이니,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대충 예상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만들자 생각하는 백호였다.
최근 들어 귀물의 출몰이 잦은 것도 문제지만, 그것에 명월이 얽히는 것도 성가신 노릇이었다. 가만 두면 여기저기 다 쑤시면서 숨어 있던 귀물들을 다 끄집어낼 판이었다. 그 전에 명월의 콧대를 꺾어서 얌전해지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명월이 움직였다.
앉아 있던 곳에서 내려온 명월이 똑바로 서는 걸 본 백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명월이 밖으로 나가길 기다렸다. 날이 밝으면 이곳을 내려가겠지.
그 전에 또 어떤 식으로 명월의 기를 죽여 놔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갑자기 명월의 손이 앞으로 움직여 옷고름을 잡는다. 그러자 백호의 눈썹이 꿈틀하고 흔들린다.
백호가 가만히 있는 동안 명월이 옷고름을 풀고 재차 저고리를 벗었다. 그 순간 백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뭘 하는 거냐.”
“너에게 갚아야 할 빚이 하나 남아 있었지. 그걸 갚으려는 거다.”
명월은 저고리를 탁자 위에 던지듯이 두고는 앞으로 움직였다. 다가오는 명월을 본 백호는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낮에도 말했지만, 네 몸은―.”
“네가 날 어떻게 만졌는지를 기억하고 있어.”
그리 말한 명월은 백호의 바로 옆에 서선 그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명월의 말이 의외였던 걸까. 여전히 백호의 미간에는 짙은 주름이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입은 다문 채였다. 그걸 확인한 명월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난 여자하고는 안 되지.”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말이 달갑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밝힌 바 없던 비밀이었다. 비밀이라고 해도 알 사람은 알 터였다. 그리고 그건 눈앞에 있는 이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인상을 쓴 얼굴은 험악하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거칠었다.
늘 그 누구하고도 몸을 섞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시작이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엔 상대가 인간이 아닌 거로군. 그런 생각을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명월은 손을 들었다.
그때 내내 가만히 있던 백호가 입을 열었다.
“그런 서투른 유혹에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월이 얼굴을 내밀어선 백호에게 입을 맞추었다.
“…….”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백호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굳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얼굴로 당혹감이 드러난다.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문 백호가 인상을 쓴다. 그 얼굴이 무서워 보였지만, 명월은 한 번 더 입술을 눌렀다. 마르고 퍼석거리는 느낌의 입술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이었다. 그것에 딱히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나,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역시나 이 녀석은―.
“평범해.”
생각을 하기도 전에 흘러나온다.
“보통이야.”
그리 말하고 나서 눈동자만 들어 백호를 바라봤다.
그러자 지금까지 봐 온 그 어느 때보다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놈이 있었다.
아, 저런 얼굴이라니. 진짜 별로다.
그리 생각하면서 명월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토해 냈다. 길게 내뱉은 호흡이 백호의 입술에 닿아 간질거린다. 그러곤 바로 허리를 세운 명월이 떨어지려는 순간에 맞춰서 백호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지금 뭐라고 한 거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맞춰서 명월의 눈이 빛났다.
왜일까. 마음 상해 보이는 백호를 보는 순간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에서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명월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전에도 말했잖아. 너 별로라고.”
내 성향과는 별개로 네놈하고는 하고 싶지 않아. 내키지 않아. 그런 식으로 말을 이어 갈 셈이었지만, 그대로 손목이 당겨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탁자 위에 눕혀진 명월은 부딪친 뒷머리와 등에서 올라오는 얼얼한 통증에 당황해선 눈을 크게 떴다. 그 몸 위로 백호가 올라탄다. 거친 몸짓에 한쪽에 올려져 있던 술병과 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챙그랑, 하는 소리에 맞춰서 명월은 움찔해선 눈을 내리떴다. 동시에 커다란 손이 명월의 턱을 붙잡곤 억지로 위로 들어올린다. 고개를 든 명월은 위에 올라탄 백호를 바라본 채로 인상을 썼다.
본인이 도발을 한 것과는 별개로 이런 식으로 거칠게 구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되었으니 떨어지라 말하려던 명월은 백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시리도록, 지나치게 차가운 눈빛과 마주한 명월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명월을 내려다보며 백호가 입을 열었다.
“너는―.”
무슨 말을 할 셈인가.
이상하다는 듯 올려다보는 명월을 두고 백호는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난 것처럼 굳은 얼굴로 있다가 제길, 하고 거칠게 내뱉은 그가 고개를 숙여 왔다. 두 눈 가득 들어오는 백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명월의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잘못을 한 걸지도―.
이윽고, 그런 후회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 *
처음에는 모든 게 당황스럽고 이상해서 작은 새처럼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상기해 주겠다는 듯, 명월이 모든 걸 볼 수 있도록 했다.
뒤에서부터 명월을 끌어안아 움직일 수 없도록 해선 살점이 거의 없는 가슴을 문질렀다.
마치 여인의 젖가슴을 주무르듯 살점이 거의 없는 가슴을 문지르고 손가락으로 그 곳에 달린 두 개의 유실을 희롱했다. 손가락 사이에 낀 유실을 잡아서 문지르고 잡아 당기면서 몇 번이나 명월의 귀에 입술을 대고는 물었다.
“이게 뭐냐.”
처음에 먼저 다가간 게 저라는 자각이 있었던 명월은 내내 아랫입술을 깨문 채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양 굳은 표정을 한 채로 눈을 내리뜨고 있어도 집요한 손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촉촉하게 땀이 배어나오는 가슴을 한 손으로 세게 움켜쥐고는 재차 잡아 주무르던 유실 가운데에 손톱을 세웠다. 저릿하게 퍼지는 통증에 명월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온다.
변태 같은 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고 말하고 싶어도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한 번 입을 열면 막을 새도 없이 이런저런 정신없는 소리들을 토해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집요하게 유실을 희롱하면서도 반응을 살피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집착이 느껴질 만큼 유심히 살피면서 결국엔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띠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사리 손이 파고들어 왔다. 그 커다란 손이 안으로 들어와 성기를 쥐었을 때, 그건 이미 절반쯤 고개를 든 채였다. 아무 반응이 없으면 모를까. 발기가 된 상태가 느껴졌던 명월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손가락 끝으로 귀두를 세게 훔치면서 그가 속삭였다.
“뭔가가 흐르고 있군.”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아도 그것에 섞인 빈정거림이 느껴졌다.
명월이 이를 악물곤 백호의 손을 뿌리치고 피해 보려 했으나,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그가 피하려 했던 걸 탓하기라도 하려는 양 더 세게 손에 힘을 주어 성기를 잡았다.
마른 숨을 토해 낸 명월이 고개를 숙이는 것에 맞춰서 백호는 쥐고 있던 성기를 천천히 훑었다. 힘주어선 위아래로 움직이자 명월의 호흡이 깊어진다.
이를 악물고 있어도, 가끔씩 참을 수 없어 토해 내는 숨이 들릴 때마다 백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겉보기엔 화가 난 것 같아도 정말은 아니었다. 백호는 명월의 목덜미에 입술을 눌렀다. 그러곤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다른 손도 바지 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명월의 성기를 양손으로 쥔 채로 흔들었다.
명월의 허리가 휘면서 뒷머리가 백호의 어깨에 닿는다. 백호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입술을 달싹여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들리지 않는다. 그저 긴 숨을 토해 내기만 하는 것에 맞춰서 백호의 손이 성기에서 떨어져선 더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회음부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명월이 몸을 구부렸다. 앞으로 몸을 숙인 채로 젖은 숨을 내뱉는 순간에 맞추어 백호는 더 세게 그 몸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 성기를 단단히 쥔 채로 다른 손은 회음부를 타고 내려가 뻐금거리던 은밀한 곳에 도달했다. 손가락 안쪽으로 주름을 문지르다가 그 안쪽으로 가운데 손가락 한마디를 밀어 넣자 명월이 버둥거렸다.
“그만……!”
“별거 없다면서, 그냥 눈 딱 감고 있어라. 나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니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치고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뜨거웠다.
명월은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백호를 보려 했고, 그 순간 백호가 성기를 놓고는 대신 명월의 바지를 잡아 아래로 내렸다. 갑자기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가는 바지에 당황할 새도 없이 그대로 배 안쪽으로 손이 들어와 명월을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명월은 딱딱한 나무 탁자에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하얗게 드러난 명월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붙잡은 백호가 바로 그곳으로 고개를 숙였다.
엉덩이가 벌려지고, 그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닿는 순간 명월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진다.
“……!”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임에도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름이 벌려지고 그 사이로 백호의 입술이 닿았다. 혀를 내밀어서 안쪽을 핥는 순간에 맞춰서 명월이 앞으로 기어가려 했고, 그 순간 백호가 더 단단히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가만히 있어라.”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이런 짓을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는단 말인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덜덜 떠는 명월을 알면서도 백호는 제 일을 했다.
주름을 사악 핥고는, 손가락으로 밑을 벌리고 그 안쪽으로 재차 혀를 밀어 넣었다. 거부감은 조금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그 생각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게 해야 할 일인가. 머릿속으로 그런 의문이 드는 것과 달리, 백호는 더 열심히 명월의 내벽 안쪽으로 혀를 밀어 넣고 그곳을 정성스럽게 핥았다.
예민한 점막 안쪽으로 혀가 닿고, 그곳이 축축하게 젖어 간다. 어쩔 수 없는 거부감에 명월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덜덜 떨려온다.
차갑게 식은 얼굴로 보통이라든가, 평범이라는 말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두렵고 무섭겠지.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지금 명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은혜를 갚고 나서 훌훌 다 떨쳐내겠다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정액을 받아서, 몸 상태를 좋게 만든 후, 말한 대로 귀물을 찾아나서 다른 걸 더 알아내려 할지도 모르고.
자신이 명월의 호기심을 건드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지 밝혀질 일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선 자신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한번 호되게 귀물에게 당해 봐야 정신 차릴 놈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시건방진 인간은 본 적 없었다. 이런 인간에게 잡혀서 질질 끌려 갈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생각은 그리하면서도 백호는 멈추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점막 안쪽으로 더 깊게 혀를 밀어 넣었다. 그곳이 질척하게 변해 간다. 덜덜 떨면서 혀를 죄여 오는 내부의 움직임이 요사스럽다. 백호는 제 양물이 점점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명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것과는 모양도, 크기도 완전히 다른 그것이 하얀 다리 사이에 선 채로 꺼덕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귀여운 느낌이 드는 물건이었다. 같은 물건이라곤 여겨지지 않아서, 한입에 넣고 빨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 생각을 하면서 백호는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양 명월이 바로 엉덩이를 내리곤 몸을 돌렸다. 다리에 걸린 바지가 불편해 보인다. 그래서 백호는 그 바지를 잡아서 벗겨 주었다. 움직이기 편하라고 벗기는 게 아니라, 다음 행위를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지가 벗겨지자 소름이 돋았던 명월은 급히 엉덩이를 탁자에 대고 앉았다. 내내 백호의 혀로 희롱 당했기 때문일까.
명월은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백호를 노려봤다. 매서운 시선에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은 백호가 입을 열었다.
“올라타라.”
그리 말하면서 백호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백호는 제 바지 앞섶을 벌렸다. 그러자 옷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양물이 드러난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거근을 보곤 넋이 나가 멍하니 있던 명월은, 이내 백호가 한 말을 상기하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라고?”
“네놈 머릿속에 담아 둔 생각이 있겠지.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취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스스로 올라타서 내 물건을 먹어 봐라.”
“…….”
먹어 보라는 노골적인 말에 명월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러다가 모멸감으로 뺨이 붉게 달아오른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거냐고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참으면서 명월은 백호의 성기를 노려봤다.
차디찬 시선으로 노려봐도 발기된 성기는 줄어들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걸 보는 순간 심장이 점점 더 거칠게 뛴다.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런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 눈을 내리뜬 명월은 제 성기 또한 발기가 된 걸 봤다.
이런 상황에서 발기되어 퉁퉁 부은 제 성기를 보자니 숨이 막힌다.
게다가 저것이 무언가. 이런 상황에서도 시들지 않다니.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후려 맞은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탁자에 올린 손을 움켜쥔 명월은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알몸이 되어서, 발기가 된 물건을 가릴 수도 없었다. 이제와 이걸 가린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짓일지도 모른다. 아랫입술을 깨문 채로 눈을 빠르게 끔벅이는 동안 백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크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했다.
하아―하고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하자 명월이 바로 고개를 든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시선에도 백호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어서 해라. 지루하게 시간을 끄니 내 양물이 시들게 생겼군.”
그리 말한 후 백호는 입을 다물고 입꼬리를 올렸다.
내 물건이 시들면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텐데.
그리 말하듯 바라보는 시선에 아랫입술을 다시 한번 깨문 명월은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 버렸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상황을 서둘러 끝내 버리자는 생각뿐이었다.
백호 앞으로 다가선 후 그의 어깨를 붙잡고 하반신을 붙였다. 그대로 허리를 내렸다. 하지만 엉덩이에 거근이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숨을 삼킨 명월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안색을 굳힌 채로 몇 번이나 엉덩이를 내렸다.
딱딱한 양물은 쉽게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몇 번이나 입구에서 미끄러졌다. 그것에 명월의 얼굴로 초조함이 서린다. 아랫입술을 깨무나 싶더니 결국 아래로 손을 내려 백호의 성기를 쥐었다. 그 순간 내내 차디찬 얼굴로 있던 백호의 표정이 변한다.
흠칫, 하고 흔들리는 표정을 본 명월은 손에 더 힘을 줬다. 한 손으로는 채 쥘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건이었다. 이런 게 몸 안으로 들어오면 어딘가가 이상해져 버리는 게 아닐까. 문득 든 생각이 명월의 표정을 얼어붙게 만든다.
입을 앙 다문 명월은 마치 화가 난 사람으로도 보였다. 그러다가 성기를 단단히 쥐고는 그리로 엉덩이를 내렸다. 귀두가 주름에 닿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넣으면 되었다. 그런데 더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릎을 세운 채로 불안정하게 백호에게 올라탄 채로 얼어붙어 있던 명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곤 눈동자를 옮겨 백호를 바라봤다.
가까이에 있는 백호의 눈동자는 어두웠다. 밤의 한자락을 잘라 내서 붙여 둔 것처럼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검은 눈동자 속에 비춰지는 제 얼굴을 본 명월은 숨을 삼켰다. 그대로 허리를 내렸다.
좁은 틈을 벌리고 거대한 양물이 파고든다.
“―윽.”
짤막한 신음을 흘린 후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를 악문 명월은 천천히 더 허리를 내렸다. 백호의 거근이 명월의 좁은 내벽을 벌리며 차근차근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게 뒤를 밀어젖히면서 끝도 없이 파고든다. 정말은 앞부분의 일부만 들어왔을 뿐인데도 명월의 전신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입을 벌리자 그 사이로 헐떡거리는 호흡이 토해져 나온다.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양물이 제 몸을 부수고, 결국에는 목을 타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뒤가 채워지는 느낌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압박감을 선사해서 명월의 몸이 덜덜 떨렸다. 얼어붙은 혀끝으로는 아무 소리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비명도, 그 무엇도 말이다.
“아, 으……읏. 크윽―.”
짤막하게 토해 내는 신음이 지금 명월이 느끼는 통증의 크기를 느껴지게 한다. 내내 가만히 있던 백호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그리할 수 없었다.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조급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타액으로 내벽을 바르는 것만으로는 역시 무리였구나 싶었던 백호는 명월의 허리에 손을 댔다.
피부에 닿는 커다란 손의 느낌에 몸에 떤 명월이 고개를 든다.
“…….”
눈물에 젖어 있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백호는 숨을 삼켰다.
땀으로 젖어 있는 명월의 이마와 뺨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기 때문일까. 유난히 입술이 붉어 보인다.
그 순간 참지 못한 백호가 얼굴을 내밀어선 명월에게 입을 맞췄다. 갑자기 다가온 입술에 당황한 명월이 피하려 드는 순간에 맞춰서 내내 힘겹게 버티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반쯤 꽂혀 있던 성기를 타고, 명월의 몸이 아래로 주저앉았다.
“……!”
갑작스럽게 끝까지 파고들어 온 성기 때문에 명월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어선 크게 소리도 내지 못하는 명월의 반응에 백호는 이런, 하고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지금의 이건 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중간까지 하다가 포기할 거라 생각했는데―.
백호는 급히 명월의 엉덩이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제 성기를 아플 정도로 물고 있는 곳을 더듬어서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찢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통증이 심한지 주저앉아 있는 명월은 여전히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명월이 얼굴을 묻은 어깨에서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필사적으로 헐떡거리면서 지금 이 상황을 참아 보려 하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명월의 손이 백호의 팔뚝을 쥔다. 다른 손은 손톱을 세워선 백호의 단단한 팔뚝에 박혀 있었다.
간혈적으로 헐떡거리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토해 내는 걸 느끼면서 백호는 혀를 찼다. 그는 명월의 귓가에 입술을 대곤 나직이 속삭였다.
“아프면 소리를 질러라.”
참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소리를 내야 할 게 아니던가.
하지만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팔뚝에 박힌 명월의 손가락 끝으로 더 힘이 들어간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걸 느낀 백호는 안색을 굳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재차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달큰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달착지근하면서 착착 감기는 향이었다. 이토록 감미로운 향이 달리 있을까. 만약 먹을 수 있는 거였다면, 지금 당장 명월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꿀꺽 삼켜 버렸을 거다. 그래야지만 이 갈증이 해갈된다.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한 백호는 명월의 머리채를 잡아서 그의 고개를 위로 들었다. 통증을 삭이며 힘겹게 숨을 고르던 명월은 백호의 갑작스러운 행위에 놀라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바로 입술이 겹쳐졌다. 물어뜯듯 입술을 덮어 오자 명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지금 대체 무얼 하는 건가 싶었던 명월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고, 백호가 재차 고개를 숙였다. 명월의 아랫입술을 세게 빨아들이자 살이 길게 잡아당겨진다. 재차 입을 벌려선 명월의 입술을 덮고는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들였다.
정말로 입술을 먹어 치울 기세였다. 당황으로 얼굴이 굳어진 명월이 무얼 하는 거냐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고개를 뗀 백호가 명월의 턱을 붙잡았다.
아플 정도로 단단히 붙잡고는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명월을 노려보듯 응시하던 백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 순간 명월은 백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게 새삼스럽게 상기되었다. 그래서일까. 거부감이 든 명월이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내려던 순간 그대로 어깨가 잡혀서 탁자 위로 눕혀졌다.
“……흐억!”
몸 안에 거근이 박힌 채로 몸이 눕혀지자, 안쪽이 이상하게 눌려지는 느낌에 명월의 얼굴이 재차 일그러진다. 입을 벌리고 힘겹게 숨을 토해 내려는 순간 재차 입술이 막혔다. 숨을 쉴 수가 없어진 명월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백호를 떨어뜨리려 했고, 그 순간 허리를 뒤로 물리나 싶던 백호가 움직였다.
묵직한 물건이 반쯤 뽑히더니 재차 안으로 밀려오는 순간 명월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명월이 다음 소리를 내기도 전에 재차 내벽을 벌리며 성기가 파고들어 왔다. 빡빡한 내벽이 거근의 움직임을 막듯이 단단히 조여 온다. 그럼에도 백호는 멈추지 않았다. 성급하게 허리 짓을 하는 동안 명월은 결국 막혀 있던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악! 아윽―!”
강한 몸짓으로 쳐올리자 몇 번이나 짧게 끊어지는 비명이 토해진다.
거근이 무리하게 몸을 벌리면서 닿을 리가 없는 안쪽을 꾹꾹 눌러댄다. 그때마다 명월은 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백호가 내벽을 가르고 욕심껏 성기를 밀어붙일 때마다 머리 쪽으로 충격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그를 밀어내기에 바쁘던 명월의 손이 그에게 힘겹게 매달렸다.
몇 번이나 붙잡고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던 손이 결국에는 덜덜 떨리는 순간 거침없이 허리를 움직이던 백호가 고개를 숙였다. 입을 맞추려던 순간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이라지만, 끝까지 거부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뜬 백호가 거의 끝까지 빼낸 성기를 한 번에 밀어넣었다. 끝까지 파고든 성기가 뿌리 끝까지 맞물린 순간 명월은 충격으로 몸을 떨었다.
“……!”
크게 입을 벌려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제 성기를 욕심껏 박은 채로 백호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내 혀를 정성스럽게 빨고, 핥고, 거기서 나오는 걸 모두 받아 마셔라.”
바라보는 명월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헛소리 하지 말라는 양 차갑게 바라보는 눈빛에 백호가 재촉했다.
“어서―.”
명월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 싫다. 힘겹게 고개를 저은 명월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걸 본 백호는 뭔가에 얻어맞은 양 굳어 버렸다.
“…….”
바라보는 명월의 눈동자엔 힘이 빠져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지지 않는 거부감이 담겨 있었다. 무엇으로 인한 거부감인지 모르진 않았다. 그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백호는 고개를 숙였다. 혀를 내밀어선 명월의 눈물을 핥아 냈다.
혀끝에 눈물이 닿았을 때, 그 달콤함에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꿀보다 훨씬 더 달았다. 재차 혀를 내밀어 명월의 눈가를 핥자 파들, 하고 떨린 속눈썹이 감겨 온다. 백호는 아예 그곳에 입술을 댄 채로 세게 빨아들였다. 눈알을 빼 먹을 셈인가 싶었던 명월은 거칠어진 숨을 삼키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뭘 하려는 거야. 이 미친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한마디 한 후 명월은 재차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말에 백호는 입술을 떼곤 명월을 내려다봤다. 명월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갖다 댄 채로 속삭였다.
“그래야 덜 아플 거다.”
“…….”
무엇이 덜 아프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백호의 혀를 물고, 핥고, 빠는 건 싫었다. 지금까지 그런 걸 해 본 적 없었다.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명월을 두고 쯧, 하고 혀를 찬 백호가 이번에는 입술을 할짝였다. 한 번, 두 번, 연거푸 입술을 할짝거리자 명월의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사라진다. 굳은 얼굴로 있는 명월이나 백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곤 입술을 세게 빨아들였다.
처음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백호 쪽이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명월의 얼굴을 붙잡은 채로 계속해서 그의 입술을 핥고 빨아들인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래는 연결이 된 채였다.
커다란 사내의 성기가 제 몸에 박혀 있는 감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진다. 그 감각은 다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게 뭘 하는 건지.
제대로 돌아가는 상황인 건지.
그러다가 곧 그 모든 생각을 중단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이 자초한 게 아니던가.
그리 생각을 하면서 명월은 입술을 벌렸다.
내내 다물어져 있던 명월이 입술을 여는 순간 백호는 행동을 멈추었다. 가만히 있던 그는 그 사이로 제 혀를 밀어넣었고, 머뭇거리던 명월의 혀가 그것을 핥았다.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서 백호가 눈을 내리뜬다.
명월은 눈을 감고 있었다. 명월은 서투른 혀를 놀리면서 백호의 혀를 핥고 빨았다. 아기가 장난을 치는 수준으로, 그리 툭툭 건드리면서 입 안에 고인 타액을 목구멍 안쪽으로 넘겼다. 그 순간 백호가 움직였다.
명월의 혀를 빨아들이면서 그의 몸 안에 깊이 밀어넣고 있던 성기를 뒤로 빼냈다. 그리고 다시 밀어 넣었을 때, 막힌 명월의 입술을 타고 신음이 튀었다. 막힌 신음이 읍읍, 하는 소리를 내면서 튀는 순간 백호의 허리 짓이 점점 더 깊고, 격렬해졌다.
그의 등 근육이 단단히 뭉쳐진 채로 거세게 명월을 밀어붙였다. 거근이 파고들 때에 맞춰서 명월의 몸이 마구 흔들린다. 그때마다 깊게 연결된 접합부에서 젖은 애액이 튀었다. 크게 벌려진 명월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듯 덜덜 떨렸고, 결국 참지 못한 명월의 양손이 백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을 붙잡은 채로 힘겹게 밀어낸다. 혀를 목구멍 안쪽까지 밀어넣은 채로 명월의 입 안을 탐닉하던 백호가 입술을 떼는 순간에 맞춰서, 명월의 입을 타고 자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윽! 앗! 아! 아―!”
목을 타고 흘러나오는 건 교성이었다. 여전히 무리하게 벌어진 몸 안쪽이 아프고, 얼얼하고, 몸이 흔들릴 때마다 토기가 올라왔지만, 동시에 저릿거리는 무언가가 몸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한껏 높아진 신음을 들으면서 백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명월의 엉덩이 볼기를 세게 움켜쥐고는 더 세게 밀어 넣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성기가 깊게 연결되고, 주름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헐떡거리던 명월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인은 어떤 표정을 지어도 아름다운 법이었고, 지금 명월이 그랬다.
쾌락과 고통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한껏 일그러진 얼굴이 혀에 침이 고이게 한다. 정말로 집어 삼키고 싶었다. 이대로 먹어치우고만 싶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느끼며 백호의 허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아―, 그, 그만……!”
더 하는 건 고통이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명월은 백호를 올려다봤다. 재차 눈물이 흘러나왔다. 응축되어진 농염한 향을 풍기는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백호는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나직하게 토해 낸 것과 동시에 명월의 머리를 한 팔로 끌어안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기다렸다는 듯 백호의 등에 팔을 두른 명월은 크게 입을 벌려선 백호의 어깨를 깨물었다. 콱, 하고 박혀 오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백호는 멈추지 않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명월의 몸 위에서 날뛰던 그는 결국, 나직한 신음을 토해 내며 성대한 사정을 했다. 명월의 몸 안으로 차고 넘칠 정도로 뜨거운 정(精)이 퍼부어진다. 배 속을 두드리면서 그득 채워지는 뜨거운 걸 느끼며 명월은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목까지 찬 숨을 거칠게 헐떡거리던 명월은 백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손톱을 세워서 백호의 등 안에 깊게 박은 채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쾌감에 몇 번이고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떨었다.
턱 끝까지 찬 숨을 토해 낸 후 몸에 들어간 힘을 빼낸 명월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흐릿한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던 명월은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다가 천천히 감았다. 하아―하고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한숨이 나직하게 울린다.
내내 틈 없이 명월을 끌어안고 있던 백호는 옆을 확인했다. 명월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의식을 잃은 채였다.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드러나는 피로를 읽은 백호는 고개를 숙이곤 혀를 내밀었다. 명월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핥자 그곳에서부터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단맛이 이상하게 배 속을 허하게 만든다. 채워지지 않는 강렬한 허기를 느끼며 마른침을 삼킨 백호는 입맛을 다시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혀로 명월이 속눈썹을 하나하나 핥다가 뺨에 입술을 댔다. 그리고 재차 입술에 다다랐다.
가볍게 누르는 입술에서 피맛이 난다.
뭔가 싶어 그리로 눈을 내리뜨자, 아랫입술이 조금 터져 있었다.
“…….”
이건 뭔가 싶었던 백호의 미간으로 짙은 주름이 잡힌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몰아친 자신 때문에 튀어나오는 신음을 참기 위해서 명월이 내내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음을 상기했다.
그러게 왜 입술을 깨물어. 그냥 벌린 채로 있으면 좋았지 않나.
그리 생각을 하면서 혀로 명월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혀 끝에 닿은 비릿한 피가 입 안으로 사악 퍼져 나간다. 그걸 맛보듯 몇 번이나 입맛을 다시던 그는 고개를 숙였다. 턱에 입술을 대고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를 물리자 깊이 박혀 있던 성기가 빠져나간다. 질컥, 하면서 안에 가득이 뿌린 정액이 벌려진 주름을 타고 흘러나왔다. 명월의 쇄골과 가슴, 그 아래쪽으로 고개를 옮기던 백호는 사정을 하고 난 후 힘을 잃은 명월의 성기를 확인했다. 자신의 것과는 느낌도 모양도 다른 성기를 살피다가 그 위쪽으로 손을 내린다. 젖어 있는 음모를 쓰다듬다가 성기를 잡고는 그 끝에 입술을 댔다.
처음 입술을 눌렀을 땐, 자신이 뭘 하는 건가 싶어서 주춤하긴 했지만 이윽고 그것도 사라졌다. 아무렴 어떠나. 그런 상태가 된 백호는 입을 벌리곤 명월의 성기를 물었다. 그러자 뒤는 수월했다. 성기를 절반 가량 문 채로 혀로 그걸 애무했다.
의식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이상함을 감지한 것일까. 늘어져 있던 명월의 손가락이 움찔하고 떨리는 것 같았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으로 성기를 애무했다. 동시에 회음부 아래를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을 조금 더 내려서 아직 좁혀지지 않은 주름을 건드렸다.
실컷 희롱 당한 그곳은 녹진하게 풀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자 울컥―하고 뱉어지는 정액이 손가락에 뿌려진다. 그걸 느낀 백호는 눈을 가늘게 뜬다.
아주 조금, 배 속의 허기가 채워지는 걸 느끼며 그는 더 크게 입을 벌려서 명월의 성기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