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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광 (1)화 (1/60)

1화

가지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푸드덕 날갯짓하며 깍깍 울어 젖혔다. 옅은 눈발이 은분처럼 사방에 휘날렸다.

북단 겨울은 풍문대로 지독한 추위였다. 고개를 하나 넘을 때마다 코까지 시릴 정도로 강풍이 부는가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 덕에 소복하게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강 위는 마치 곱게 짠 비단을 펼쳐 둔 듯했다. 멜대를 느슨하게 잡고 느릿느릿 걷던 가마꾼들이 뜬금없이 멈춰 서더니 길바닥에 가마를 내려놨다.

“지금 거기서 뭣들 하는 게요?”

앞서가던 최 씨 부인이 멈춰 선 가마를 확인하고는 엄하게 꾸짖었다. 가마꾼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피곤해서 더는 못 가겠습니다. 좀 쉬었다 가시지요?”

“또 쉬겠다니? 어제 내리 객주에서 한참 쉬지 않았나. 게다가 고단하다며 오시(五時)까지 농을 부려 놓고도 그런단 말인가?”

“어허, 지금 내가 게으름이라도 부린단 말입니까? 부인께서 직접 가마를 끌지 않으시니 모르시는 거요. 이보게, 자네들도 고단하지 않은가?”

가마꾼 하나가 동료들에게 눈짓하며 선동하니 다들 하나둘 맞다, 맞다,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최 씨 부인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주막을 떠나온 것이 불과 두 시진도 채 안 되었거늘 벌써 농땡이였다.

농땡이만 부리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흘 전에는 단체로 술판을 벌이더니 숙취로 하루를 꼬박 날렸다. 거기다 투정은 밥 먹듯이 하니 남들 백 리 갈 동안 절반도 못 가는 날이 수두룩했다.

혼인 치를 날이 당장 코앞이었다. 단장까지 준비하려면 한시가 급한데도 툭하면 강짜를 부리니, 제아무리 노련한 중매쟁이 최 씨로서도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당장 새신부께서도 별말씀이 없지 않습니까? 아, 하기야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나. 손발 움직일 필요도 없이 얌전히 가마만 타면 되는데, 감사할 줄 아셔야지.”

가마꾼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가마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아무리 어질고 순한 규수라 해도 무엄하다며 호통칠 만한 무례한 태도였다. 그러나 가마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할 뿐이었다. 덧댄 비단 가림막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인영이 아니었더라면 빈 가마라 여겼을 정도였다.

머리 위를 맴돌던 까마귀들이 쪼아 대듯이 까악까악, 사납게 울부짖었다. 메마른 나무들과 바위, 눈만 가득한 풍경에 까마귀 소리까지 더하니 스산하다 못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바닥에 가래침을 뱉은 가마꾼 하나가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급전만 아니었어도 이딴 곳에 올 일도 없었을 건데, 하여간 얼마나 못났으면 이딴 곳에 시집을 간단가?”

“박복한 신부를 태우니 나까지 복이 달아날까 무섭구만.”

“이따 한잔하면서 액운을 풀어 주자고.”

젊은 가마꾼이 잔을 쥐고 꼴깍 마시는 시늉을 하며 낄낄 웃었다. 멜대를 헐겁게 들고 휘적휘적 걸으니 비단과 장식을 매단 꽃가마가 파랑에 쓸리는 돛단배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오색 휘장으로 겹겹이 싸인 가마 안에서, 유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저 치들의 시비를 멈추는 방도는 간단했다. 돈, 그도 아니면 팔찌나 반지 같은 값나가는 패물. 두 손에 은전을 수북하게 쥐여 준다면 가마꾼들은 금세 태도를 바꾸고 굽실거릴 것이며, 중매쟁이는 능숙하게 상대를 달랬을 터였다.

허나 공교롭게도 유원에게는 당장 마부에게 건네줄 은전도, 대신 큰소리를 내줄 하인도 없었다. 애당초 그런 고귀한 신분이었다면 이런 가마에 짐짝처럼 실려 북쪽으로 갈 일도 없었을 터였다. 가마도 사람도 더 성대하고 크게 차려 사방에 경사라는 것을 알렸을 터였다. 지금 그가 탄 가마는 꽃가마라기보다는 마치 상여 같았다.

유원은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을 툭툭 굴렀다. 발볼을 꽉 비트는 듯한 얇은 비단신이며 허리를 힘껏 동여맨 천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답답했다. 거기다 비탈길을 오르느라 가마가 수시로 덜컹거리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두통이 올라오고 속은 메슥거렸다. 그러나 불편하다 하여 벗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곱디고운 각시 차림부터 꽃 장식을 매단 가마와 일꾼들, 심지어 혼약조차 제 소관이 아닌 것들이었다.

낡은 가마가 흔들리며 받침대가 딸깍딸깍 미어지는 소리를 냈다. 접은 부채로 살을 후려치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에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얼굴에 직격으로 맞고 튕겨 나간 잔이 산산이 부서져 뒹굴었다. 금세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입 안쪽이 욱신거렸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숨을 한 번 고른 부친이 명령했다. 노기로 들끓는 목소리였다. 이마를 바닥에 댄 채 납작 엎드려 있던 유원이 벌벌 떨며 말했다.

‘가, 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작 여덟 자를 말할 뿐인데도 떨림이 멈추지 않아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거렸다. 부친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기회를 줬는데도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것이냐?’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벌써 세 번은 반복한 대답이었다. 다만 대감께서 원하던 말이 아닐 뿐이었다.

쿵쿵! 발을 크게 굴리며 다가온 대감이 유원의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아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손을 번쩍 들어 뺨을 후려갈겼다. 짝! 짝! 반동으로 넘어진 몸이 덜덜 떨렸다.

‘감히 네까짓 것이 어디서 싫다 말다를 운운하느냐! 분수를 몰라도 도리가 있어야지! 갈 곳 없던 너와 어미를 저 멀리 내쫓는 대신 터를 잡고 살게 해 줬다. 집안에 들러붙는 불순한 말도 감내하고 집도 내어 줬어. 그런데! 내게 은혜를 갚지 못할망정! 주인 못 알아보는 개처럼 대드는 것이냐?’

노발대발하던 대감이 급기야 벼루를 집어던졌다. 빗나간 벼루가 벽에 부딪히며 반으로 두 동강 났다.

‘네가 싫으면? 저 보잘것없는 북변에, 이미 처 있는 아들들을 보내기라도 하냔 말이냐? 아니면 너 대신 내 딸아이를 보낼까?’

이어지는 폭언에 유원은 입 속에 차오르는 울음을 억눌렀다. 목구멍에 커다란 자갈이 박힌 것처럼 숨이 막혔다.

애초에 이러려고 저를 부른 것이구나. 대감댁에서 호출이 왔다 하는 말에 하던 일도 마다하고 부리나케 찾아뵈었다. 며칠 후면 생일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말씀을 해 주시지 않을까. 기특하게 자라 주었으니 이제는 가족으로 받아 주겠다 하진 않으실까.

허망한 기대였다. 대감께서 부른 용건은 한 가지였다. 원경도 원혜로 보낼 신부 대역. 금지옥엽 막내딸을 대신할 만한 볼모로서 유원을 찾은 것뿐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대감과 눈이 마주쳤다. 흡사 버러지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민은커녕 작은 죄책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 아니니까, 자식으로도 여기지 않으니까.

창호지 사이로 스며들던 볕이 가늘어졌다. 빗소리가 서서히 커졌다. 그늘이 듬성듬성 얼룩진 방 안에서 헝클어진 숨소리만이 오갔다. 살이 다 해진 부채를 펼쳐 얼굴을 식히던 부친이 말했다.

‘그래, 좋다. 가기 싫다 하는데 내 억지로 보낼 수야 있겠느냐. 그리하거라. 어디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아 봐라.’

아량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점잖은 말투였다. 장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진눈깨비가 매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처마 아래 묵묵히 대기 중이던 노비를 내려다본 대감이 입매를 비틀었다.

‘지금 당장 호원촌 작은 집에 가서, 그 계집을 끌어내 도성 바깥 저 멀리 쫓아내거라. 전부터 그를 두고 재수가 없다며 온갖 불평이 빗발쳤는데 이제는 굳이 눈감아 줄 필요도 없겠구나.’

호원촌 작은 집. 유원의 얼굴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그 집은 유원이 눈먼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병환으로 거동조차 쉽지 않았다. 아픈 어머니를 이 비 오는 날 쫓아내겠다는 말은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대감이 방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였다.

‘대감마님!’

네발로 기듯이 다가간 유원이 대감의 발에 매달렸다. 궁상맞게 엎드린 꼴이 볼썽사납다는 듯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당장 대감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이 급급할 뿐이었다. 유원은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모아 빌었다.

‘마님,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부디 어머니를 내치지 말아 주세요.’

목소리가 점점 울음에 잠겼다. 애원하고 매달리는 말에도 대감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쉬이 걸음을 옮기지도 않았다. 마치 유원에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냐는 듯 냉엄한 침묵이었다.

‘가, 가겠습니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문 유원이 그의 발에 이마를 댔다.

‘대감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소인이 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어머니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울음 섞인 어린 목소리가 방 안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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