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탕! 산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총성에 그들이 걸음을 멈췄다.
“건방진 것들! 다가오면 대가리에 총탄을 꽂아 줄 것이다!”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꼴에 병졸이 기세등등하게 쏘아붙였다. 잠자코 지켜보던 사내가 입술에 엄지와 검지를 붙이더니 휙, 하고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 밟히는 발소리와 함께 지면이 쿵쿵 울렸다. 덤불을 파헤치며 나타난 것은 전신이 새빨간 괴물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죄다 죽이고 계집만 살려 둬라!”
명령과 동시에 괴물이 울부짖으며 언덕 아래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단숨에 병졸 하나를 손으로 낚아챈 괴물이 목을 물어뜯었다. 숨통이 끊어진 시신은 걸레짝처럼 널브러졌다.
“나, 나티다!”
새파랗게 질린 수가마꾼이 기함하며 외쳤다. 나티는 요수 중에서도 포악성이 자자한 짐승이었다. 생김새는 곰과 비슷하나 곱절은 더 컸고 입가에 흉측한 송곳니가 뻗어 나와 요사스러운 짐승이란 말에 걸맞았다. 발을 크게 구른 나티가 사람들 사이로 뛰어내렸다. 당황한 병졸들이 총을 마구 쏘아 댔다.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한 총탄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성난 나티가 앞발을 휘두르자 피가 팍 튀어 오르고 눈 바닥에 시신이 굴러다녔다.
“빨리, 빨리 어떻게 좀 해 보시오! 그 부적인지 뭔지를 쓰면 된다고 하지 않았소!”
도백을 붙잡은 수가마꾼이 애걸복걸했다. 소매에서 부적 뭉치를 꺼낸 도백이 악을 쓰며 종이를 마구 흩뿌렸다. 부적이 낙엽처럼 팔락팔락 휘날렸다. 나티는 콧김을 길게 내뿜을 뿐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이가 성가시다는 듯 도백을 앞발로 퍽 후려쳐 날렸다.
그제야 사태를 인지한 가마꾼들이 하나둘 가마를 버리고 도망쳤다. 도망치는 사냥감을 보고 흥분한 나티가 더더욱 사납게 날뛰었다. 살이 찢기고 비명이 메아리쳤다.
삽시간에 눈길이 핏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유원은 부서진 가마 안에 남아 있었다. 휘장을 내리고 매듭을 묶어 놔 쉽게 가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오들오들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도적이 급습한 걸까. 하지만 무장한 군병이 열이나 동행했고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수라는 도백께서 있었는데, 무슨 수로 그를 제압했단 말인가.
“끄아아악! 저리, 가! 아악!”
퍽, 누군가가 쓰러지며 튀어 오른 피가 휘장을 적셨다. 비단을 타고 번지는 핏물에 전신이 오싹하게 굳었다.
바깥에서 부스럭거리며 한참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가마 안쪽도 꼼꼼하게 뒤져 봐라. 발소리가 코앞이었다. 피가 차갑게 식고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짜악, 매달려 있던 휘장을 찢어발기듯이 걷어 낸 사내가 가마 안을 들여다봤다.
“흐흐, 이리 나오시지요.”
사내가 히죽이며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깨를 붙잡힌 순간, 유원은 손에 꽉 쥔 참빗으로 사내의 눈을 힘껏 찔렀다.
“으아악!”
일격에 사내가 걸걸한 비명을 질렀다. 어렵사리 사내를 밀쳐 낸 유원이 허둥지둥 가마 밖으로 뛰쳐나와 가까운 나무 등에 숨었다.
사방이 아비규환이었다. 그야말로 지옥도를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끔찍한 광경이었다. 유원은 헛구역질을 억지로 넘겼다. 피 냄새가 섞인 찬 바람이 속을 칼로 베어 내는 듯했다.
시신을 짓밟은 괴물이 크르륵, 크르륵, 목 긁는 소리를 냈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뻘건 안광이 섬찟했다.
“저기 있다! 저것 잡아!”
수색하던 사내 여럿이 유원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 질렀다. 유원은 뒤도 보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었다. 어두운 밤을 하얗게 칠할 것처럼 펑펑 내리는 눈발에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무작정 숲으로, 산으로 올랐다.
턱까지 숨이 차오른 탓에 뜀박질이 불안정했다.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 거란 생각으로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다.
“아윽!”
신음과 함께 넘어진 유원이 억지로 상반신을 들어 올렸다. 넘어지면서 힘이 죄 풀린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뒤를 보자 횃불이 넘실넘실 도깨비불처럼 흔들렸다. 벌써 등 뒤까지 쫓아와 있었다.
“잡았다. 이 쥐방울 같은 것!”
뒷덜미를 낚아챈 사내가 입술을 실룩거렸다. 아까 전 유원에게 빗으로 가격당한 사내였다. 핏줄 터진 눈이 독 오른 개구리처럼 불룩하게 부어 있었다.
“오늘 날을 아주 제대로 잡겠구나.”
“이거 놔!”
사내에게 머리채를 잡힌 유원이 필사적으로 바동거렸다. 손에 집히는 대로 상대에게 마구 던졌다. 나뭇가지, 돌, 급기야 흙까지 뿌리며 저항했지만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머지않아 유원은 눈더미 위에 그대로 내던져졌다.
“두목, 가마 안에 타고 있던 계집입니다.”
덜덜 떨고 있는 몸 위로 커다란 그늘이 드리웠다. 두목이라 불린 자는 바위만 한 덩치를 가진 사내였다. 흥, 하고 콧김을 내쉰 두목이 몸을 숙여 유원을 느릿하게 훑었다.
스산한 밤바람 사이로 피비린내가 풍겼다. 역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였다. 유원은 엎드린 채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었다. 떨림을 억누르려 해도 어딘가 탈이라도 난 듯 제어가 되지 않았다.
한참 유원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두목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양손을 뻗은 그가 유원을 붙들더니 저고리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당황한 유원이 온몸을 비틀며 악을 썼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놔주세요!”
“시끄러워!”
짝! 솥뚜껑 같은 두꺼운 손이 유원의 뺨을 세게 갈겼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얼얼한 통각에 머릿골이 찡 울릴 정도였다. 동시에 숨이 턱 막히며 눈물이 핑 돌았다.
힘으로 유원을 누른 두목이 기어코 저고리를 북, 찢어발겼다. 얇은 속곳 사이로 드러난 가슴은 밋밋했다. 허리는 제법 잘록하긴 하나 여인의 풍만함이라곤 하나 없는 몸이었다. 꼴사나운 걸 봤다는 듯 유원을 내팽개친 두목이 옆에 서 있던 부하를 들볶았다.
“네놈 눈깔은 똥구멍에 달렸냐?”
“예? 예?”
“계집이 아니라 비리비리한 사내놈이잖아!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거냐?”
그 말에 사내가 유원을 다시 살펴봤다. 밋밋한 가슴에 침을 삼킨 사내가 당황한 얼굴로 변명했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부, 분명 얼굴만 보기로는 계집이 틀림없었는데.”
“네놈이 빼돌린 게 아니고?”
“아닙니다! 제가 어찌 두목께 먼저 보이지 않고 취하겠습니까요. 분명 가마 안에 있던 년을 데려온 것인데. 두, 두목께서도 분명 공모한 놈에게서 이번 가마가 양반네 집에서 오는 가마라 들으셨다 하지 않았습니까!”
“빌어먹을 놈. 됐고, 그럼 패물은? 뭐 좀 건진 것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냐?”
“그, 그게, 돈 될 만한 것이라 해 봤자….”
뒤에 서 있던 부하가 겁먹은 얼굴로 강탈해 온 주머니를 내밀었다. 헐거운 자루에는 푼돈뿐이었다.
“이 개같은 놈이 나를 가지고 농지거리를 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진 사내가 발을 쾅 굴렸다. 그때, 반대편에서 우르르 내려온 부하들이 포박한 남자를 그의 앞에 전시했다.
고개를 든 유원은 눈을 크게 떴다. 잡혀 온 남자는 다름 아닌 도백이었다. 상투는 풀리고 입가에는 피가 질질 흘러 폐인 같은 꼴이었다.
“어, 어찌 이러시는가. 마, 말이 다르잖소이까.”
도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린 두목이 그를 발로 걷어차며 윽박질렀다.
“네 이놈, 세 치 혀를 놀리더니, 동전 몇 닢? 고작 이 정도 갖고 나한테 떼돈을 벌 수 있다, 한 것이냐?”
“아, 아니오!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소! 정말로 옥양 양반집에서 온 이들이 맞단 말이오! 꾸러미 중에 혼수품이 있을 것이니 확인해 보면 되잖는가!”
“닥쳐라. 혼수라 해 봤자 몇 푼 되지도 않을 것뿐이었다! 목숨을 살려 줬더니 감히 은혜를 모르고 쓸모없는 짓으로 날 농락해?”
“이보게. 진정하게. 내가 다시 한번 알아봄세. 분명 오해가 있는 게 틀림없네. 내, 내 목숨만 살려 준다면 가진 재물을 전부 내주겠네. 제발, 한 번만 봐주게나.”
도백이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며 애걸했다. 처량하고 궁상맞기 짝이 없는 꼴이었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친 두목이 도끼날을 손가락으로 삭 쓸어내렸다.
“봐달라? 그래, 네놈 낯짝 한 번 실컷 봐 주마.”
두목이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퍽, 하고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났다. 두목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호소하던 도백의 몸이 뚝, 하고 잘려 나간 대나무처럼 천천히 스러졌다.
하얗게 질린 유원이 쓰러진 사내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 이보세요.”
몸을 흔들어 봐도 신음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유원은 넋 나간 듯 그를 세게 흔들었다.
“여, 영감, 마님…?”
되는 대로 그를 불렀다. 더듬더듬 손목을 잡아보았으나 희미한 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두 손 가득 묻은 피를 확인한 유원이 그제야 놀라 뒤로 허겁지겁 물러났다.
이미 죽은 것이었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비고 사위는 어질어질 흔들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분명 나는, 그저 대감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눈앞에, 자기 신랑이라던 남자가 왜 이리 허망하게 죽어 있는 걸까.
장수라고 하지 않았나. 그 대단한 장수가 도적 떼한테 죽어 버렸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준단 말인가. 사실 대감에게 속았던 걸까. 애초에 도백께 시집보낼 생각도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럼 어디서부터 속았을까. 설마, 처음부터 쫓아낼 명목으로? 그저 내가 불길한 놈이라서?
호원촌에서 저를 두고 숙덕거리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불길하고 사특한 놈. 양쪽 눈이 다른 괴물 새끼.
그게 유원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들에겐 괴물이었고 불길한 놈이었다.
이번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 얌전히 있어야 미움받지 않을 테니까 꾹 참았는데. 그런데 왜, 또 나쁜 일이 생겼지. 가만히 있어서 나쁜 일이 생겼을까?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괴물 새끼. 병신 눈깔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