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세상에, 무슨 일이래.’
‘정부인마님께서 아시면 경을 치시겠네.’
문 뒤에서 구경하던 하인들이 숙덕거렸다. 어머니 손에 들린 서신을 낚아챈 노파가 한숨을 쉰 뒤 대답했다.
‘지금 주인어른께선 조정 일로 입궁하셨네. 밤늦게 귀가하실 것이라 당장 뵈기 어려우니 다음에 다시 오게.’
‘나리께서 오실 때까지 예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에 노파가 츳츳 혀를 찼다. 부인 마님께서 산욕차 친정집에 가신 것이 참으로 다행이지. 끽해야 스물이나 됐을까 싶은 여인이었다. 매질하고 쫓아냈다간 괜한 말만 돌 뿐일 터였다. 권솔들더러 문 걸어 잠그고 입조심하라, 엄중히 이르니 들락이는 어린 종놈마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하여 굳게 잠긴 대문 밖에 꼼짝없이 서서 기다린 지 어언 몇 시진이었다.
사위가 어둑어둑했다. 가늘던 눈발에 물기가 성겨 정수리며 뺨이 축축이 젖었다. 진눈깨비였다.
‘엄마, 우리, 절로 돌아가면 안 돼?’
유원은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기며 칭얼거렸다. 말로만 듣던 도성에 왔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꾀꼬리 소리 가득하던 산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친손주처럼 예뻐해 주시던 큰 스님이 그리웠다.
‘우리 아가, 조금만 참자. 응?’
‘그치만….’
입술을 삐죽거린 유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침에 식어 빠진 감자 한 덩이 얻어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배가 고팠다. 그뿐이던가. 열흘 중 절반은 꼬박 걸어온지라 발은 터질 듯이 아팠고 눈꺼풀은 무거웠다.
비단 유원만 고단한 것이 아니었다. 상경하는 동안 어머니께선 한숨 제대로 주무신 적이 없었다. 옷도 얇아 추위를 막는 것이라곤 낡은 목도리뿐이었다. 큰 스님만 하더라도 몸 약한 어머니가 말도 않고 참는 것을 속상해하시곤 했었다.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춘 어머니가 유원의 차가운 뺨을 쓸어내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인사는 드려야지.’
‘아버지는 언제 오시는데?’
‘곧, 금방 오실 거야.’
곧, 이란 말은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말이었다. 그러나 유원은 더 투정하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도 어머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이내 어머니가 매고 있던 목도리를 유원에게 둘러매 줬다. 어머니의 온기가 밴 목도리는 품만큼이나 따뜻했다.
병중으로 남쪽에 요양차 내려왔던 아버지는 당시 병 수발을 돕던 어머니를 은애했노라 했다. 귀경길에 오르기 전 복중에 있던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 줬는데 그것이 지금의 유원이었다.
산사에서 나고 자란 유원은 지금껏 아버지를 뵌 적이 없었다. 바빠서 산사로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유원이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라곤 어머니가 한두 마디 했던 이야기뿐이었다.
네 아버지는 말이지. 아름답고, 인자하고 기품 있는 분이시란다. 그리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막 사랑에 빠진 처녀처럼 아름다웠다.
얼른 아버지가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분명 어머니를 보고 기뻐하실 거야.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캄캄한 하늘에 손톱 같은 달이 떠올랐다. 담장에서 내려온 그늘에 주변은 더더욱 어두웠다. 추적추적 쏟아지는 진눈깨비를 피하려 대문 앞에 움츠리고 있던 유원의 눈앞에 호롱 불빛이 둥실둥실 흔들렸다. 멀리서 가마꾼들이 가마를 지고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가마에서 푸른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익숙하게 시중을 받으며 내려섰다.
‘주인마님, 다녀오셨습니까.’
마중 나온 노파가 공손하게 말을 올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유원의 손을 꽉 잡아 쥐었다. 차게 식은 손끝이 파들파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유원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저 남자가, 어머니가 그토록 말씀하시던 아버지였다. 어머니를 알아보면 기뻐하실까. 자신을 보면 어떤 반응을 지으실까.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 남원의 명래사에서 왔답니다. 돌려보내도 한사코 작은 주인마님을 뵈어야 한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주인의 안색을 살핀 노파가 조심스럽게 대문 옆에 서 있는 두 모자를 설명했다. 그때, 어머니가 한 걸음 나아갔다. 나리,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습하고 애틋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하나뿐인 낭군이자 아이의 생부 되는 남자 하나 만나고자 남도에서 열흘 가까이 맨몸으로 상경한 길이지 않았던가.
비로소 남자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봄에 핀 백매화처럼 우아한 얼굴이 싸늘했다. 단정한 눈썹을 찌푸린 남자가 치마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유원을 쳐다봤다. 그는 긴 시간 동안 빤히 유원을 보다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춥구나, 술을 데워 오거라.’
‘허면 저들은….’
노파가 묻는 말에도 남자는 대답 없이 대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머니께서 황급히 손을 뻗었으나 옷소매 한 번 붙잡을 새도 없었다. 한숨 쉰 노파가 여종에게 눈짓하자 소금을 한 바가지 가져온 여자가 살풀이라도 하듯 좍좍 뿌려 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굵어진 빗물이 추적추적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 아래 한참 말없이 서 있던 어머니가 유원의 손을 움켜쥐고는 돌아섰다.
그날 유원은 고뿔에 걸렸다. 열흘 내리 앓아누운 동안 아버지께선 걸음 한 번 아니하셨다. 유원이 고작 다섯 살이 되던 늦겨울이었다.
남영 홍씨.
난다 긴다 하는 사대부들만 모인 옥양에서도 이름 높은 개국공신 가문으로, 지난 삼백 년간 왕조와 나라에 충성을 다해 온 양반 중의 양반.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걸출한 집안에서 유원은 존재만으로도 가문의 오점이었다.
유원은 도성에서도 가장 구석진 빈민가의 낡은 사삿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생부께서 마지못해 내어 준 보금자리였다.
‘어휴, 망측하다, 망측해. 어찌 저런 천박한 것들이 들어왔대요.’
‘글쎄. 나리를 꼬셔 화냥질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 대감댁을 찾아왔다데요. 불여우가 따로 없다니까.’
‘눈이 멀더니 뵈는 것이 없는 거지. 애도 지 엄마 닮아서 아주 독한가 보던데.’
어머니와 길을 나서기라도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쏟아졌다. 동네 사람들에게 두 모자는 불결하고 불경한 것이었다. 어른들이 박대하니 또래 아이들조차 행동거지를 따라가기 마련이었다.
‘쟤 눈 봤어? 짝짝이야. 우웩.’
‘우리 엄마가 시장에서 들었는데, 쟤네 엄마, 산에서 살던 요물이라더라. 한낱 요물이 멀쩡한 사내를 홀리는 바람에 저런 괴물 새끼가 태어난 거래.’
날 때부터 이런 눈이라 했다. 서로 색이 다른 눈동자. 그중 하나는 파르스름하니 보는 이들마다 괴물 새끼라 손가락질했다. 제 욕이야 무시하면 그만이건만 어머니 욕까지 듣는 것은 싫었다.
제 얼굴이 싫어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분명 어머니와 다르게 꼴사납고 흉측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욕을 먹는 것이리라. 얼굴을 가리면 욕이라도 덜 먹을까 싶어 일부러 부스스한 산발 꼴로 다녔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진 않았다. 동네 아이들은 걸핏하면 유원을 향해 쑥대강이 괴물, 하며 비웃었고 돌이나 개똥을 던지기 일쑤였다.
몇 해를 지나니 비웃음도 견딜 만했다. 그래, 괴물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 괴물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랑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어머니는 유원에게 스승이자 벗이었고, 세상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는 그 곱고 다정한 어머니를 급격히 망가트렸다. 미음은 물론이고 좋아하시던 산딸기 하나 삼키지 못했다. 밤이면 열에 시달려 신음하니 식은땀으로 젖은 이불보가 마르는 날이 없었다.
‘내 평생 환자를 봐 왔건만 도통 영문 모를 병증이네.’
촉진을 마친 의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병이거나, 심회가 무거운 탓이 아니겠나. 용하다는 의원을 모셔 와도 다들 같은 말이었다. 끽해야 보양에 좋은 약이나 지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밤마다 먼눈으로 허우적거렸다.
‘유원아, 서방님께서 오신 게지? 네 아버지 발소리를 들었다. 나리, 나리께서 이제야 나를 보시는구나.’
오지도 않을 이를 찾으며 흐느끼는 날이 늘면서 수면제로 재워야만 간신히 밤을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약값을 감당하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돈을 준다면 닥치는 대로 하고 봤다. 분뇨 수거꾼 수발이며 심지어 노름판 심부름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니 몇몇은 돈도 주지 않고 부려 먹었다.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약초 냄새만으로도 그 효능을 알 정도였다. 그 어머니의 밑에서 자란 덕에 유원도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약초를 심마니만큼 잘 알았다. 그리하여 유원은 산에 쏘다니며 약초를 캤다. 그중 몇몇은 어머니께 고아 드리고, 남은 건 약방에 가져다주면 돈을 벌 수 있었다.
알음알음 이름나던 약방은 머지않아 유명세를 탔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니 몇 푼도 아까워하던 약방 주인은 유원을 쫓아내는 대신 밤낮으로 두고 썼다. 의원이 생색을 내도 유원은 군말하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맞는 약을 직접 찾으려면 약방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그렇게 새벽에는 약방에서 손을 데어 가며 탕약을 달이고, 낮과 밤에는 손톱이 닳고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약초를 캐 온 햇수가 오 년이었다.
진눈깨비가 날리던 섣달 초일, 사대문에서 심부름꾼이 찾아왔다.
홍세환 대감께서 유원을 급히 찾는다는 전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