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본디 북향이라 하면 망자가 가는 저승길이라 잘 때는 북쪽으로 머리도 돌리지 않았다. 도성에서 최북단. 원경도 원혜는 망자의 북쪽만큼이나 몹쓸 곳으로 불렸다. 사시사철 혹한이 도사리는 겨울의 땅은 자라는 작물도 없어 척박한 황무지였다.
도성 사람들 사이에서 원경도 출신 여자는 음탕하고 남자는 계산적이라 배신을 일삼는다는 편견을 당연시했다. 하나같이 게으른 데다 멍청하다고도 했다. 그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원혜에서 왔다는 것이 알려지면 새경을 깎는 일도 허다할 정도였다.
모로 봐도 번듯한 장시(場市)였다. 마침 장이 섰는지 성문으로 들어서자 좌판과 매대가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봇짐 멘 사람들부터 짐수레를 멘 마차까지 바글바글했다. 곳곳마다 오색등을 매단 나무와 깨끗한 담장이 여느 대도시 저잣거리 못지않았다. 헐벗고 굶주린 빈민들이 가득하다느니, 노략질을 일삼는 강도들의 고향이라던 말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여기저기 은비녀, 은거울 등,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흥정하느라 상인들이 정신없이 주판을 두드리기 바빴다. 원혜에는 큰 은맥이 있어 은공예가 발달했단 이야기는 익히 들었던 바였다.
그러나 은보다도 유원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각종 요수의 부산물을 파는 상점들이었다. 불개 뼛가루와 박하를 응고시킨 연고, 흑풍괴 쓸개를 말려 빻은 가루, 인면삼(人面蔘) 분말과 구미호 털로 엮은 목도리 등등 도성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희귀한 물건이 즐비했다.
도성에서 요수는 잡히는 즉시 불태워 죽였다. 가죽에서 풍기는 악취와 특유의 독성 때문이었다. 일전 선왕께서 대국에서 건너온 흑풍괴 심장을 약으로 쓰게 했다가 어린 공주를 잃은 뒤로는 옥양에서 요수 고기를 먹거나 내장을 약재로 쓰는 일은 일종의 금기였다.
산쟁이 사이에서는 요수는 똥오줌마저 묘약이란 말이 돌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는 말이었다. 명약이라는 말에 혹해 요수의 쓸개와 간을 암암리에 구해 먹는 양반들도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약으로 쓰진 못했다. 그런데 원혜에서는 전문 수입상까지 버젓하게 있을 정도였다.
시장통을 빠져나오자 주막 골목이었다. 국솥에선 펄펄 김이 오르고, 꿩이며 토끼며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나귀에 앉아 있던 막둥이가 코를 벌렁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허기지는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부터 물 대신 눈을 씹고, 열매 몇 개 먹은 것 외에는 입에 댄 곡기가 없어 뱃가죽이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주막으로 기어들어 가 국밥에 코를 박고 싶었다.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인 유원이 애써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도백을 찾아가는 게 먼저였다. 가서 이래저래 사정을 설명하면 하다못해 거처라도 해결될 터였다.
번듯한 기와집이었다. 대문 앞에 서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대감댁 앞에 종일 서 있던 것이 불현듯 생각난 탓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몇 차례 숨을 고른 유원이 가까스로 대문을 두드렸다. 세 차례 정도 두드렸을까. 한참 만에 끼익, 문이 열렸다. 발 한쪽 들이밀 정도로 조그맣게 열린 틈 사이로 어린 여자가 빼꼼 얼굴을 드러냈다.
여자는 빠르게 두 방문객을 훑었다. 찢어진 옷고름 하며, 피투성이 치마, 그 위를 덮은 투박한 털외투는 여염집 규수가 할 법한 차림은 아니었다. 그뿐인가. 머리 장식이 떨어진 머리는 댕기도 없이 짧으니 부랑자라도 해도 이견이 없는 행색이었다.
“무슨 일이시오?”
여자가 퉁명스레 물었다. 날이 선 목소리에 유원은 마른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저 옥양에서 왔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 간단한 말이 뭐가 그리도 막막하던지, 입에 풀이라도 바른 듯 쉬이 열리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숨이 턱턱 막혔다.
뭐야, 벙어리 거지들인가.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린 여자가 문을 닫으려는 그때였다.
“오, 오, 옥양 홍세환 대감댁에서 왔습니다!”
새파랗게 질려 얼어붙은 유원을 대신해 막둥이가 크게 대답했다. 돌아본 여자가 되물었다.
“옥양이라고요?”
“예, 이. 이 앞에 계시는 분은 도, 도, 도백 영감 정혼자 되시는 호, 홍유원 아기씨 되시고요.”
“정혼자? 도백 영감의 혼약 상대시라고요?”
막둥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자가 의문스럽다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신부 꼴이 이게 무엇이냐 타박하는 것이 아닌,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었다. 분명 차사원(差使員)을 통해 어지가 갔을 텐데.
설마 정말로, 정혼 사실 자체가 없었던 일인 걸까.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유원이 부들부들 떨었다.
“뭘 하길래 문가에서 그리 기웃거리고 있느냐.”
머리를 단정하게 쪽진 중년 여인이 불쑥 문가로 다가왔다. 당황한 여자가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어멈, 그게, 그러니까 난데없이 주인님 정혼자 되는 자라며 찾아온 이들이 있지 뭡니까. 옥양에서 왔다, 홍세환 대감댁이 보냈다 하는데, 꼴이 저런 걸 봐선 구걸하려 거짓부렁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이 제 손으로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다급하게 계단 아래로 내려온 여인이 유원의 두 손을 맞잡았다.
“홍유원 아기씨, 맞으시지요?”
“예?”
“소인은 염옥화라 합니다. 곽가한테 오전 중에는 이쪽으로 찾아오실 거란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통 소식이 없어 어찌나 걱정했는지요.”
유원은 어리둥절하여 눈만 깜빡거렸다. 곽가라 하면, 곽현욱 그자를 가리키는 듯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전에 말하기로는 원혜에 들를 일이 없을 거라 하더니 어느 틈에 전했을까. 가는 길에도 앞서가는 일행이나 흔적을 본 바가 없었는데.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휴, 내 정신 좀 봐. 고단하실 텐데 여기 서 계시지 마시고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염옥화가 손사래를 치며 유원은 안쪽으로 안내했다.
저택은 밖에서 보기에도 넓었지만 안쪽은 더더욱 큼직했다. 옥양 양반집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규모였다.
집채 하나를 지날 때마다 염옥화가 곳곳을 설명했다.
정문을 지나면 바로 행랑채 두 곳과 찬간, 본채 노른자위는 사랑채, 그보다 위가 안채. 뒤로 더 나아가면 외양간과 마구간인데 그 중간에 목련목을 심은 작은 정원 하나가 있었다. 원래는 빈 곳이었는데 주인어른이 귀향하시면서 목련목을 하나하나 사들여 심었다 했다.
집사가 안내한 쪽은 저택에서도 가장 안쪽인 별당채였다.
달그락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귀에 타고 있던 막둥이가 제 등 뒤까지 따라와 있었다. 풀 죽은 얼굴을 한번 살핀 유원이 여인에게 말했다.
“저기, 같이 온 아이가 발을 접질렸습니다. 괜찮다면 의원에게 봐 달라 할 수 있을지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방금 의원한테 언질을 주고 왔습니다. 금방 올 겁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깥에서 의원을 모시고 왔다는 심부름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老)의원은 능숙하게 막둥이의 양발을 살폈다. 전날만 하더라도 퉁퉁 부어 있던 발목이 어쩐 일인지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어 있었다.
“붓기도 멍도 거의 빠졌군요. 크게 손 볼 곳은 없겠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산도 뛰어다니게 될 거란 말에 막둥이가 후유, 하고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몸을 돌린 의원이 유원에게 말했다.
“사실 저것보다도 이분께서 더 큰일 나실 뻔했습니다.”
“저… 말입니까?”
“예, 손발이 이리 얼어붙었는데도 모르셨습니까?”
의원의 말에 유원은 그제야 제 손을 내려다봤다. 손톱부터 손가락까지 핏기 없이 창백했다. 게다가 얼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손가락을 움직일 때 미약하게나마 불편함이 있는 듯도 싶었다.
“딱히 아프진 않았는데….”
“통증이 지속되면 몸이 적응하여 아픈 것을 못 느끼기도 합니다. 어디 손 좀 보여 주십시오.”
유원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노인은 손등 위에 천을 대고 툭툭 손가락이며 손목을 꾹꾹 눌러 댔다.
“으….”
찌릿한 느낌에 유원이 신음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가만히 있을 때는 멀쩡했는데 의원이 만지는 곳마다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손만이 아니라 발도 마찬가지라, 하얗게 굳은 발끝에 침을 찔러 확인한 의원이 혀를 찼다.
“이리되셨는데 어찌 안 아프다 넘기시려 했습니까. 동상인 채로 놔뒀다면 손발을 영영 잃었을 겁니다.”
다행히 손발 감각이 멀쩡한 데다 심한 정도는 아니니, 수시로 뜨거운 약물에 손발을 녹이고 연고를 바르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동상 외에도 까진 무릎과 생채기를 처치한 의원이 물러나자 교대하듯 여종 둘이 집사에게 목욕물이 준비되었노라 말을 올렸다.
“이 아이들이 아기씨 목욕 시중을 도와줄 겁니다.”
염옥화의 말에 유원은 비로소 자신이 사내란 것을 아직 알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마님, 저는, 그러니까 여인이 아니라….”
“욕조 옆에 가림막이 있으니 걱정 마셔요. 또한 목욕복을 입고 들어가실 것이니 아랫것들에게 알몸을 보일 일은 없을 겁니다.”
여인이 아니란 이실직고에도 염옥화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목욕간에 들어서자 가득 찬 수증기가 구름처럼 천장에 고여 있었다. 목간통(沐間桶) 속 가득 담긴 물 위에 탱자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이걸 걸치고 탕으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하인이 건넨 의복은 속곳 치마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유원은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 옷가지를 받아 들었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의복이었다. 벗은 몸에 걸치니 속살이 은근하게 비쳐 입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지만 알몸보다는 나았다.
유원은 받침대를 딛고 올라가 욕조에 살금살금 몸을 담갔다. 딱 적당히 따뜻한 온도였다.
“하아….”
어깨까지 푹 담그자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뜨거운 물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물에 띄운 탱자 열매며 말린 흰서향 꽃잎 덕에 물에서 향기가 풍겼다. 한겨울에도 찬물로 몸을 씻던 유원에게 극락과 다를 바 없는 호사였다.
가림막 안쪽으로 들어오는 기척에 유원이 퍼뜩 움츠렸다. 고개를 꾸벅 숙인 하인이 손에 든 함지를 내밀었다.
“편백과 박하 잎을 달여 만든 세정수예요.”
확실히 산뜻한 향기가 났다. 그걸로도 모자라 옆에 놓인 대나무 통에는 양치에 쓰이는 죽염과 정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도성에서도 대갓집이나 쓸 법한 값비싼 세정제였다.
소매를 걷은 하인이 유원의 머리에 세정수를 붓고 머리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에 눈이 감길 정도였다.
하인이 나가고 난 뒤에도 유원은 물이 거의 다 식고 손발이 주글주글해질 때까지 뜨거운 물을 즐겼다. 바구니에 들어 있던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오니 새 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입고 있던 저고리며 치마는 수선해도 입을 수 없는 넝마 수준인지라 옷 한 벌을 새로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치마를 가져다주리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주어진 옷은 목면 바지에 가벼운 저고리였다. 어차피 여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 사내 옷을 주겠다는 건가. 아무리 미리 알고 있다지만 자연스럽게 사내 색시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했다.
다행히 품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심지어 치수라도 잰 듯 딱 맞기까지 했다.
별채에 돌아오자 여인이 늦은 점심이라며 상을 올렸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진수성찬이었다. 탕국, 구운 생선, 각종 나물 반찬 하며 기름에 지져 낸 고기와 전. 제아무리 유원이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해도 혼자서는 다 못 먹을 양이었다. 유원은 구석에 앉아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막둥이를 향해 손짓했다.
“너도 와서 먹어.”
“예? 하, 하지만 이건 아기씨 상인데요. 어찌 저 같은 것과 겨, 겸상을 하시려고요.”
“아무도 없으니 괜찮다. 난 겸상해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앉아.”
암만 하인은 하인끼리 밥상머리를 쓰는 것이 법도라지만 보는 눈도 없는 자리였다. 게다가 애초에 유원은 양반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여러 사람과 겸상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지라 혼자 먹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손가락만 물고 있던 막둥이에게 닭 다리 하나를 내밀었다. 앉은걸음으로 다가온 막둥이가 조심스레 닭고기를 받아 들더니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고기만이 아니라 밥이며 떡이며 손에 집히는 것이라면 뭐든 꿀떡꿀떡 삼키기 바빴다.
“체하겠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켜야지.”
급하게 살코기를 입에 욱여넣던 막둥이가 캑캑 가슴을 쳤다. 저리 허겁지겁 먹으니 사레들릴 만했다. 서둘러 국 사발을 내밀자 아이는 보지도 않고 단숨에 마셨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서야 제가 얼마나 급히 먹었는지를 깨달은 막둥이가 배시시 겸연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