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앓고 나서야 유원은 이불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아기씨, 괜찮으세요?”
쪽방 문밖에서 들리는 막둥이 목소리에 유원은 엉금엉금 기어 문을 열었다. 땀을 너무 흘린 탓에 떼꾼해진 얼굴에 막둥이가 울상을 지었다.
“아기씨, 죽지 마세요.”
“그냥 몸살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몸살이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밤새 끙끙 앓느라 목이 바싹 마른 탓이었다. 거기다 기침을 하도 했더니 목구멍이 찢어진 것처럼 따가웠다.
의원이라도 찾아가 봐야 하지 않겠냐며 걱정하는 막둥이를 달래며 유원은 미리 떠다 둔 자리끼로 마른입을 적셨다. 실로 오랜만에 크게 앓아누운 기분이었다. 종일 말을 타고 따라가느라 긴장한 몸으로 찬 바람을 원 없이 맞았더니 몸살에다 고뿔까지 겹쳤다.
하긴, 어머니가 아픈 이후로는 병날 틈도 없이 약값을 채우느라 정신없긴 했지. 기억해 보면 유원은 여태 큰 병치레를 한 적은 없었다. 그 무섭다는 천연두도 무사히 넘겼지만, 대신에 한 번 고뿔이 걸렸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열흘은 족히 앓아눕곤 했었다. 약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인 탓이었다.
“아, 참, 이거 정애 누나가 아기씨 가져다주랬어요.”
막둥이가 곱게 싼 보자기를 내밀었다. 잣 몇 알을 올린 흰죽이었다. 아프다는 소리에 일부러 쑨 모양이었다. 입이 깔깔하고 속도 불편했는데, 나중에 따로 가서 고맙단 말이라도 전해야 할 성싶었다.
“그, 근데요. 저, 저거는 뭐, 뭐가 들었어요? 또, 또, 그 새라도 들어 있어요?”
막둥이가 가리킨 이부자리 옆에는 곱게 놓인 대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문짝을 두 손으로 꽉 잡은 막둥이가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예전에 바구니에 까마귀가 들었던 걸 무심코 열었다가 놀랐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 모양이었다. 유원은 덮어 뒀던 화려한 조각보를 들쳐 보였다.
“보다시피 새는 아니고 복숭아야.”
“보, 보, 복숭아요? 어, 어디서 나셨는데요?”
“으응, 숲에 갔다가 어떤 도사님한테 선물 받았어.”
도사한테 저 복숭아 더미를 받았다는 말에 막둥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 진짜, 도사 맞대요? 사, 사기꾼이 아니라요?”
“내가 도깨비한테 홀리진 않았으니 도사는 맞겠지.”
그야 그렇긴 하지만. 태연한 유원을 바라보며 막둥이는 걱정스럽게 두 손을 꼬물거렸다. 막둥이가 도성에서 보고 들은 도사들이란 대부분 자기 생각에만 빠져 남에게는 관심이 없는 작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 절반은 신력 빠진 무당들로, 거짓말하는 사기꾼들이라고도 했다.
그나마 제대로 된 도사 협회 소속 도사들마저도 일개 사람은 꿈도 못 꿀 값비싼 비용을 부르기 일쑤였다. 이전 주인이신 김 생원만 하더라도 장남이 고시 보러 가는 길에 동행할 도사 하나를 고용한 적 있었는데 그 값이 쌀 한 가마니 값이라며 툴툴거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괴팍하고 인색한 자한테 뭔가를 선물 받았다는 말은 실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냥 선물도 아니고, 남쪽 따뜻한 곳에서나 자란다는 복숭아라니.
유원은 큼직한 복숭아 두 알을 집어 소매로 쓱쓱 껍질을 닦았다. 마치 막 딴 듯 싱싱한 과일 표면이 매끄러운 붉은빛을 띠었다.
“이건 막둥이 네가 먹고, 다른 하나는 정애 누나께 드리고 올래?”
“아, 아니에요! 저, 저, 저런 귀한 것은 못 받아요. 도, 도사가 주, 준 선물이라면서요?”
막둥이가 손사래 치며 뒤로 펄쩍 물러났다. 유원이 고개를 저었다.
“귀해 봤자 과일이 사람 입보다 중하겠어.”
“그, 그래도, 도, 도사가 나중에 와서 예, 예끼, 이놈! 하, 하면요?”
“딱히 그럴 분은 아니신 듯하지만, 정 야단을 치신다 해도 내가 줬다, 하면 그만이지. 괜찮아.”
유원이 두 차례 어르며 권하자 쭈뼛거리던 막둥이가 두 손으로 과일을 받고는 넙죽 배꼽 인사를 했다. 움켜쥔 과일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흡사 고구마 앞 강아지 같았다. 역시 좋아하는구나. 일전에도 다 물러 터져 까치밥으로나 남겨 둔 연감을 주는 대로 받아먹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저, 그럼 이, 이거 누나한테 갖다주고요. 무, 물그릇에 물도 채, 채워 올게요!”
볼끼를 꽉 조여 맨 막둥이가 말릴 새도 없이 품 안 가득 그릇과 복숭아를 안은 채 허겁지겁 튀어 나갔다. 홀로 남은 유원은 아직 욱신거리는 등허리를 툭툭 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종일 쉬었으니 놀고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지럽게 펼쳐진 이불을 개고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문을 크게 열어젖히니 한낮에 까치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연통은 아직일까. 대감댁에 사람을 보낸 지는 꽤 되었건만 도통 소식이 없었다.
문득 바구니에 눈이 닿았다. 그는 탐스럽게 쌓인 복숭아 더미를 가만히 뒤적거렸다. 가장 밑에 숨기듯이 넣어 둔 열매. 한 입 베어 문 자국은 이틀 동안 곯지도 않았다. 선명히 드러난 과육은 여전히 하얗고 싱그러웠다.
정염(情炎). 잠자리에서의 정분.
무심한 듯 농지거리하던 목소리가 귀 끝에 맴돌았다. 시정잡배들이나 할 법한 저급하고 단순한 음담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때만큼은 태백훈이 덜 무심하게 보였던 걸까. 아주 조금은 누그러진 듯하던, 그 시선이 자꾸 생각이 났다.
복숭아를 가만가만 손안에서 굴리던 유원은 자국을 따라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목구멍 안쪽이 뜨끈해졌다.
* * *
펼쳐 둔 두루마리 지도를 손끝으로 툭툭 두들기던 태백훈이 입을 열었다.
“석 달 동안 밀입국으로 체포된 기록은 민간인을 포함하여 총 스무 건인데 대부분은 천록강 뱃길과 서쪽 산길을 통해 왔군.”
“날이 아직 추운지라 북쪽에서 들어올 길은 거의 없다 보시면 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거긴 현무의 땅이라고도 불리잖습니까.”
북계 대장 조견이 지도 가장자리 끝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원혜부 바로 위쪽에 지붕처럼 놓인 현운산맥은 최북단이자 선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봉우리는 험준하고 만년설로 얼어붙은 산이었다.
그중 가장 높아 영산으로 불리는 현운산은 과거 시조께서 북쪽 오랑캐를 막아 낼 적에 현무가 스스로 그곳에 누워 단단한 바위산이 되었다고도 전해졌다.
현무의 땅이라 불리는 만큼 현운산맥은 쉬이 넘어 다닐 산이 아니었다. 각종 요수들이 득시글거렸는데, 특히 팔백 년 묵은 이무기가 살기로 자자해 도사나 무당 같은 신령한 것을 쫓아다니는 자들이 아니고서야 굳이 현운산을 오르는 자는 없었다.
게다가 현운산이 아니더라도 현운산맥은 지붕이라고도 불릴 만큼 견고한 방벽이었다. 은맥을 탐내는 화적단과 북쪽 이민국들조차 날 풀리는 여름철이 아니고서야 북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면 역시, 짐독을 밀반입한 자 또한 서해 항구를 통해 들어왔을까. 검역관만 지난다면 북쪽으로 들어오는 길은 도리어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 말은 나라는 물론, 수도의 검역과 보안이 뚫렸다는 뜻이기에 속단하기엔 다소 일렀다.
“그런데, 밀입국 기록은 어찌 찾으신 겁니까?”
조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반 밀입국은 사실상 매일 벌어지는 일로 중차대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보초병 장교들 선에서 오르내리는 정도인지라 군령 중에서도 임금을 제외하면 최고 권한자라 할 수 있는 도백이 굳이 신경 쓸 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은밀히 북계군 대장을 불러 약 석 달간의 입국 기록을 물으니, 그로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태백훈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별일 아닐세. 내 비록 요수 사냥이나 즐기고 산으로 나들이나 다니는 한직이라지만 놀고먹는다는 소리는 피하려고 일하는 시늉 중이거든.”
“하, 한직이라니요. 당치도 않으십니다.”
조견이 어색하게 손사래를 쳤다. 샐쭉 눈웃음 지은 사이로 첨예한 눈빛이 스쳤다. 몸을 일으킨 태백훈이 두루마리를 곱게 묶어 조견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바쁜 와중에 시늉에 맞춰 줘서 참으로 고맙네. 조 대장.”
“예, 예.”
조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머릿속으로 그의 꼬리표 같던 말들이 떠올랐다. 주상 전하의 동궁 시절 내금위 별운검 출신이자 북벌을 두 차례 막아 낸, 이른 나이에 대장군이란 공적을 치하받은 장수. 스스로 사직하였음에도 봉작을 하사받은 데다 군령의 일부를 위임받는 바람에 조정을 뒤집어 놨다던 무신.
그 무수한 문장들만큼이나 속내를 읽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친히 조견을 배웅까지 한 태백훈은 그와 종사관이 탄 말이 멀어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조 대장은 벌써 돌아갔습니까?”
“아쉽게도. 술 한 잔이나 하자고 권하려 했는데 말이야.”
슬그머니 다가온 황우경을 돌아본 태백훈이 크게 하품하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황우경이 말했다.
“서북부 평의도 군영에서 발령 온 지 이제 석 달 된 것으로 아는데, 영감과 얼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던가요.”
“그렇지.”
“믿을 만해 보이십니까?”
“왕명 아래에선 서로를 믿어야 하는 법 아니겠나.”
두 남자는 천천히 걸었다. 정자 아래에서 멈춘 황우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도내 일곱 부를 중심으로 아직까진 역병이나 역귀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날도 추워 병증이 생기더라도 쉽게 퍼지지 않을 테고요.”
“맞네. 게다가 단순한 짐작에 불과할 뿐이니, 신중히 주시하되, 와전된 말이 흘러 나가진 않도록 하게나.”
“경칩을 앞두고 산불 예방과 야생 요수 대비라 하면 될 겁니다. 탐문하는 데도 큰 의심은 사지 않을 테고요.”
고개를 끄덕인 태백훈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상공을 가르며 하강한 수리가 깃털처럼 사뿐히 그의 팔 위에 앉았다.
“착하지.”
부리를 손끝에 비비는 수리를 한차례 쓰다듬은 태백훈은 수리가 방금 잡아 온 사냥감을 내려다봤다.
“이런, 연애편지나 좀 훔쳐볼까 했더니 아쉽게 되었군.”
다리에 묶인 가죽 통을 살핀 태백훈이 혀를 찼다. 공교롭게도 서신을 보낸 흔적뿐, 편지는 없었다.
“눈속임으로 보낸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태백훈은 매듭을 풀어 가죽 안쪽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마른 먹물의 잔흔이 묻어 나왔다.
“혹은 중요한 서신을 읽고 돌려보내던 중일 가능성이 크겠군.”
향리와 그 부하의 시신이 발견된 지 일주일만이었다. 사인은 길을 잃다 헤맨 까닭이라며 변사로 기록되었고 장례를 치르도록 수습해 돌려보낸 지 만 하루가 지났다. 그 직후에 송산으로 향하던 전서구였다. 어디서 날아와 누구한테 가려 했는지,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무기를 쓰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 사주한 배후를 두고 있다.
“참, 다름이 아니라 보장사가 왔습니다. 영감께 드리는 서신이랍니다.”
“서신? 그냥 자리에 두고 가면 될 일 아닌가?”
“직접 얼굴을 뵙고 전해야 한다더군요.”
태백훈은 눈을 갸름하게 찌푸렸다. 교지도 아니고 일개 서신을 가져오는 보장사가 뵐 만한 용건이 뭐가 있단 말인가.
보장사는 감영에서 대기 중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툼한 방한구로 무장하고도 화로 앞에서 앉아 덜덜 떨던 보장사가 관복 차림의 두 남자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태 도백 영감 되십니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라 굳이 얼굴을 보면서 전해 주려는가?”
“보내시는 분께서 반드시 태 영감님을 살피라고 분부하셨던지라….”
서둘러 봇짐을 뒤적인 보장사가 두 손으로 정중하게 전달품을 내밀었다. 고운 비단으로 겹겹이 싸여 있던 물건을 확인한 태백훈이 동백 자수에 입술을 깨물었다.
숙용 태 씨, 하나뿐인 누이동생에게서 온 간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