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불빛 하나 없는 동굴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서서히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 유원이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물이 흐르는 자리를 따라 군데군데 이끼가 넓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말을 세운 유원은 안장에서 태백훈을 내려 눅눅한 이끼 위에 그를 눕혔다.
“영감, 영감.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창백하게 질린 뺨을 두 손으로 붙잡은 유원이 거듭 그를 불렀다. 감은 눈꺼풀이 움찔 떨리긴 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진 않은 듯해 불안했다. 이대로 계속 의식 불명이 이어지면 안 될 텐데. 가뜩이나 흰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숨이 꺼질 것만 같았다.
우선은, 차게 식은 몸을 데워야 했다. 눈 때문에 흠뻑 젖은 옷은 살짝 손만 대도 물기가 흥건할 정도였다. 젖은 옷을 계속 입게 놔뒀다간 몸이 더욱 차가워질 뿐이었다. 게다가 부상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옷을 벗기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가죽을 덧댄 방한용 철릭 한 겹을 벗기는데도 등과 목덜미에서 진땀이 흘렀다. 허리띠까지 겨우 떼어 낸 유원이 뒤로 주저앉았다. 뒷골이 지끈거렸다.
바깥에서 새어 든 엷은 빛에 드러난 몸 선은 건장하다 못해 단단한 돌 같았다. 두꺼운 목 빗근하며 가슴과 배로 이어지는 근육이 촘촘했다. 멀거니 몸을 쳐다보다 말고 서둘러 피가 고인 부분을 더듬어 살피자 오른쪽 옆구리에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한 큰 열상(裂傷)이 있었다. 정황상 눈사태에 밀려 나무 위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나뭇가지 따위에 살이 찢긴 듯했다.
외상은 옆구리만이 아니었다.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크게 부어 있었다. 밝은 곳에서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최소 골절상이었다. 그 밖에도 군데군데 크고 작은 상처들을 제외하더라도 오른팔과 옆구리는 치료가 시급했다.
대체 왜 여기로 같이 떠밀려 왔을까. 분명 먼저 말을 타고 선봉으로 퇴로를 이끌지 않았던가. 문득 마지막에 누군가가 끌어안았던 순간이 스쳤다. 얼굴을 볼 새도 없어 몰랐는데 그이가 다름 아닌 태백훈임을 깨달은 유원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도 그를 번거롭게 만들었다. 번거로운 정도가 아니라 태백훈을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행여나 유원이 죽게 되어 그 일로 홍세환과 사대부에게 책망이라도 받을까 저어했을까. 단지 그런 이유로 눈사태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판단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장수였고 최북단을 수호하는 도백이었다.
만일 그가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면, 손청준이든 곽현욱이든 누군가가 나서서 그를 아래로 긴급 이송시켰으리라. 그도 아니면 연녹수가 회복에 용이한 약을 지어 줬겠지. 뭐가 되었든 간에 지금 같은 최악의 결과는 아니었다.
벼락같은 눈사태에 휩쓸리던 연녹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자 입술이 벌벌 떨렸다.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몇십 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도사조차 피하지 못한 재해였다. 눈시울이 축축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등신같이. 지금 울어서 뭘 어쩌겠다고….”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지른 유원이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분명 손청준이나 곽현욱이 위기에 빠진 그를 구했을 거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눈이 덮치는 순간 연녹수가 어떻게든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저와 달리 특출한 인재들이니 참변에서도 무사했을 터였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태백훈을 도울 사람은 유원 자신밖에 없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죽어 가는 태백훈을 지켜보며 저 또한 고립되어 죽게 될 뿐이었다.
죽더라도 이곳에서 죽고 싶진 않았다. 아무도 모를 두메에서 죽을 바에는 하다못해 옥양 대감댁 앞에서 침이라도 뱉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등에 멨던 봇짐은 넝마쪽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바리바리 들고 온 약이며 술이며 죄다 눈사태에 쓸려 없어지고 남은 건 붕대로나 쓰이는 헝겊 몇 묶음과 물에 젖은 약초 주머니 정도였다. 그나마 약초 주머니도 죄다 젖어 안에 든 약초도 상했을 터였다.
군마의 말 안장주머니를 뒤져 봐도 처지는 비슷했다. 가죽을 벗길 때 쓰는 사냥용 장도칼 두 자루와 몽땅한 초 몇 개, 그리고 꼬깃꼬깃 접은 가죽 주머니에 노르스름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부적?”
부적이라면 부적인데 여타 보던 생김새와 조금 달랐다. 주문도 ‘燒(소)’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그려진 정도였다. 간단한 언문이라면 몰라도 천자문은 익히다 말아 아는 글자라곤 몇 개 없는 까막눈이었지만 그래도 불(火)이라는 부수(部首)는 읽을 수 있었다. 불과 관련된 문자일 텐데, 혹시 화마를 막는 용도로 넣어 뒀을까.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잡고 있던 종이가 나풀나풀 떨어졌다. 허겁지겁 부적을 주우려는 순간, 물기에 닿은 종이가 활활 타오르더니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여정 동안 연녹수가 부싯돌 취급이나 당하고 있으니 같잖다며 밤새 뭔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학문을 탐구하나보다 하고 넘겼는데 불을 피울 수 있게 부적을 마련한 모양이었다. 태백훈은 그러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을 테니 받은 부적을 적당히 말안장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 둔 듯했다.
운수가 좋았다고 하기엔 벌어진 사고가 참혹해 기뻐할 수도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건가. 유원은 동굴 밖으로 나가 보이는 대로 검불과 나뭇가지를 끌어모았다.
봉긋하게 솟은 땔감에 종이 한 장을 올리고 물을 떨어트렸지만, 생각보다 화력이 크지 않았다. 거의 반 뭉치를 집어넣고서야 간신히 자그만 모닥불을 피울 수 있었다.
몽땅한 초에 불을 켜 군데군데 놓아두자 캄캄하던 동굴 내부가 한결 밝아졌다. 천장은 너무 높지도 않고 안쪽에는 작은 연못만 한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손을 넣어 살살 저어 보니 차갑지 않고 오히려 적당히 뜨뜻했다. 끝맛은 약간 찝찔하고 쇳내 비슷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아무래도 온천수 같았다. 어쩐지 안으로 갈수록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이끼가 유난히 많이 있더라니 얼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물 때문인 듯했다.
“으윽….”
물에 푹 적신 헝겊으로 상처를 살살 닦아 내자 태백훈이 작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의식이 흐린 와중에도 느낄 정도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영감, 죄송해요. 조, 조금만 참아 보세요.”
입술을 꽉 깨문 유원이 그를 붙잡아 눌렀다. 지혈만으로는 대처가 안 될 테지만 약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살이 최대한 곪지 않도록 깨끗하게 닦아 붕대를 감아 두는 수밖에 없었다.
동이 트기 무섭게 유원은 왔던 길을 더듬어 추락했던 자리를 찾아갔다. 현장은 밤눈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처참했다.
부서진 수레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고 흙과 눈에 파묻힌 휘장이 축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 눈에 떠밀려 떨어진 바위에 부러진 나무들까지 더해지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말수레 아래를 살피며 쓸 만한 물건을 찾았지만 대부분 별 볼 일 없었다. 하기야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식량이든 약재든 멀쩡하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쓸 만하게 보이는 모피와 화살 등을 부지런히 챙긴 유원이 한숨 돌릴 겸 고개를 들었다. 추락한 지점으로 예상되는 절벽 위까지 짙은 안개가 뒤덮여 있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산쟁이든 다른 누구든 부디 마주치길 바라며 주변을 빙빙 맴돌았으나 어디를 가도 고요했다.
험준한 북단 지역이어도 길목이 잡힌 곳은 사냥꾼이든 인근 주민이든, 하다못해 절이라도 보이기 마련인데 여긴 그 흔한 이정표도 없었다.
한 시진 내내 홑몸으로 숲속을 돌아다녔건만 유원을 노리고 달려드는 기척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보이는 것이라곤 꿩과 노루처럼 위협이 되지 않는 산짐승뿐이었다. 안전하다면 안전했고,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숲이었다.
그는 마른 덤불 아래를 찾아다니며 칼로 헤집었다. 금세 팔뚝만 한 칡뿌리 몇 줄기가 딸려 나왔다.
“심봤다.”
물론 진짜 심은 아니지만 지금 유원에게는 산삼보다도 반가웠다. 속살은 먹을 수 있는 데다 겉껍질은 단단하고 질겨 새끼줄로도 제격이었다. 옥양 인근 산을 드나들며 약초를 캐다 팔던 유원에게는 기특한 보물이었다. 이외에도 익숙한 약초를 하나둘 캐고 나니 보따리가 금세 두툼해졌다.
동굴로 돌아가자 말은 얌전히 태백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상태를 살피고자 옆에 조신하게 쪼그린 유원이 이마에 손을 댔다.
여전히 이마가 불덩이였다.
간밤에 오른 열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었다. 찬바람을 맞아 일시적으로 몸살이 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출혈이 더욱 큰 원인이었다. 어떻게든 상처를 틀어막았다고 해도 열이 계속 나면 회복은커녕 살이 곪기 시작할 터였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말을 타고 가까운 민가를 찾아다녀 볼까. 하지만 만약 그사이에 태백훈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 어떡하지. 벌벌 떨리는 손을 입으로 깨물던 유원이 문득 잊고 있던 물건을 떠올렸다.
안주머니에 넣어 뒀던 그 약병.
잃어버렸을까 싶어 더듬더듬 옷 여기저기를 뒤적이자 등거리 뒤쪽 터진 솔기 사이로 손가락만 한 작은 병이 만져졌다. 연녹수가 술을 선물 받은 대가로 준 약이었다.
‘현호색과 비단삼을 넣은 진통제야. 뼈를 깎아 내는 듯한 통증마저도 잊게 할 만큼 강한 효과가 있지.’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통증은 진정시킬 만큼 강력한 약효를 가졌다고 했다. 태백훈을 이대로 앓게 둘 바에는 고통이라도 가라앉혀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쪽이 회복을 유도하기에도 훨씬 나을 터였다.
유원은 신음하는 태백훈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아 허벅지에 고개를 올렸다. 자연히 턱이 기울어지며 입이 조금 벌어졌다. 약병을 입으로 잡아 뚜껑을 개봉하자 순식간에 역겨운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으읍.”
저절로 헛구역질이 나오며 올라온 신물이 목 끝을 찔렀다. 몸에 좋은 약이 쓰다고는 하지만 냄새로만 따지면 독이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손등으로 입을 막고서 잠시 심호흡을 한 유원이 태백훈에게 말했다.
“영감. 약이에요. 약. 드셔야 해요.”
유원은 제 몸에 기댄 태백훈의 입가에 병 입구를 가져다 댔다. 그러나 입술이 벌어지긴커녕 오히려 역한 약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 나머지 호흡이 흐트러졌다. 제정신일 때도 삼키기 힘들 만큼 고약한데, 의식이 흐린 사람한테 잘못 먹였다간 약을 그대로 토할지도 몰랐다.
억지로라도 먹여야 해.
불현듯 어머니가 어린 유원에게 종종 쓴 약을 먹일 때마다 하던 방법이 떠올랐다. 그녀는 직접 약을 머금어 유원에게 모이 주듯 조금씩 삼키게 했다. 사람 온기에 익은 탓인지 약은 쓰지도 않고 오히려 꽃과자처럼 달착지근했다.
입에 약을 머금은 유원이 두 손으로 태백훈의 뺨을 잡았다. 핏기 없는 입술에 입을 맞대고 슬쩍슬쩍 문지르자 틈새가 살살 벌어졌다.
꿀꺽, 울대뼈가 위아래로 울렁거렸다. 한차례 삼킨 그의 반응은 얌전했다.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에 유원은 남아 있던 약물을 마저 머금고 입술을 마주 댔다.
“으음….”
아까보다 벌어진 입술이 스스럼없이 흘러들어 오는 약을 삼키더니 급기야 태백훈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유원의 아랫입술을 삼킬 듯이 훑었다.
마치 새끼 짐승이 어미에게 기다리던 먹이를 받아먹는 것처럼 입놀림은 점차 농밀해졌다. 약으로 젖은 입술이 서로 부딪혔다 멀어질 때마다 쪽, 끈덕진 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이윽고 붉어진 입술을 타고 묽은 약이 줄줄 흘러 턱에 방울방울 맺혔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든 유원이 눈을 감고 호흡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태백훈은 약을 무사히 삼킨 듯했다. 한 식경 정도 차분히 지켜봤지만 토하려는 기미나 호흡 곤란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이제는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한숨을 삼킨 유원은 모포처럼 덮어 준 가죽 외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목 위까지 끌어 올렸다. 엄습하는 피로감에 머리가 무거웠지만 태백훈의 얼굴에서 도통 눈을 뗄 수 없었다.
얼른 의식이라도 돌아오면 좋을 텐데.
빈틈이라곤 하나 없어 보이던 태백훈이 이리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참으로 낯설고 어색했다. 동시에 무서웠다. 만에 하나 약이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불현듯 어머니가 쓰러지던 날이 떠올랐다. 곁을 지키던 내내 어머니가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할까 봐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던지.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자. 차도가 있을 거야. 그래야만 해. 반드시 그럴 거야.
시큰거리는 눈가를 질끈 감았다가 뜬 유원은 슬며시 입술 주변을 더듬거렸다. 잠깐, 아주 잠깐 입을 맞췄을 뿐인데도 입 안은 뜨거운 덩어리를 삼켰다 뱉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입술을 침범하듯 들어오던 온기는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