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32)화 (32/101)

제32화. 그 개의 사정 (1)

무휼이 ‘그 여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너 때문이야.’

음울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 작은 아이의 전신을 찍어 누르는 듯한 그 목소리에 무휼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나 힘껏 옹송그린 작은 몸으로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은 어린 무휼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너 때문에 그 사람이 변한 거야. 너 같은 거 때문에…!’

그 여자는 걸핏하면 무휼을 때리고 신경질을 부렸다. 건방지게 쳐다보지 말라며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게 했고, 발소리를 내는 것도, 눈에 띄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중에서도 울음소리를 가장 싫어해서, 무휼이 얻어맞다 울음이라도 터트리는 날에는 온몸에 검붉은 피멍이 잔뜩 생기기도 했다.

식사도 마찬가지라, 며칠씩 무휼을 방치하다 생각나면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을 던져주곤 했다.

그러면 무휼은 며칠씩 수돗물만 먹으며 견디다 여자의 눈치를 보며 집어 든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그 눈…, 그 눈이 문제였던 거야.’

여자는 무휼을 싫어했지만, 그중에서도 새파란 그의 눈동자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이면 비명을 질러대며 무휼의 몸을 마구 내리쳤다.

‘그 눈 때문에! 그 눈만 아니었어도!’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 무휼은 늘 그렇게 불렸다.

갓 태어난 무휼을 안고 남자를 찾아갔을 때에도, 남자에게 쫓겨나 싸구려 단칸방에서 홀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을 때에도, 남자에게 이미 다른 가정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에도 여자는 무휼을 그렇게 불렀다.

무휼은 참았다. 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여자는 무휼이 아사하길 바랐던 건지 아이를 혼자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무휼은 알아서 끼니를 챙기며 목숨을 연명했다.

대부분의 끼니는 수돗물로 해결해야 했고, 어쩌다 한 번씩 옆집 할머니가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혼자였고, 허기가 져 견딜 수 없는 날에는 밖으로 기어나가 사람들이 남기고 내다 놓은 배달음식 찌꺼기나 길고양이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무휼이 아동 보호소로 가게 된 것은, 한 달이나 집을 비웠다 돌아온 여자가 무휼의 목을 틀어잡고 죽이려 했을 때였다.

‘징그러운 새끼…! 제발 죽어! 죽으라고!!’

여자는 무휼의 목을 움켜잡고 꾹 조였다. 어린아이의, 그것도 제대로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한 아이의 목은 억센 손아귀 안에서 힘없이 조여들었다.

어린 무휼은 숨통이 틀어막히는 와중에도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 눈… 그래, 이 눈이 문제야! 이 눈이…!!’

이성을 잃은 여자가 집 안에 굴러다니던 쇠젓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숨통이 트여 콜록거리는 무휼의 머리채를 잡고 턱을 틀어쥐었다.

‘이 눈만 없어지면…!’

힘줄이 솟아날 정도로 꽉 쥔 젓가락이 높이 쳐들렸다. 그 순간,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소란을 듣고 옆집의 할머니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무휼은 그 여자와 떨어져 아동 보호소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이 순탄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시설에는 매번 돈이 부족했고, 새로 떠맡겨지는 아이는 끝이 없었다. 피로에 찌든 직원은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남는 돈은 늘 원장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원장은 보호자가 뻔히 살아 있으면서 이곳에서 돈을 축내는 무휼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심지어 새파란 눈이 소름 끼친다며 먼지를 치우듯 구둣발로 걷어차곤 했다.

무휼은 그곳에서도 구석에 앉아 숨죽이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시간이 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낡긴 해도 제대로 된 옷이 주어졌으며, 다리를 뻗고 잘 곳은 있었다. 무휼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첫 번째 입양이 결정된 것은 그의 나이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는 얼굴이 예쁘장해 좋다는 젊은 부부의 손에 이끌려 시설을 떠났다.

그리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애가 너무 조용해서 꺼림칙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입양도, 세 번째 입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반년 동안 머물며 수없이 많은 집을 전전했다.

끝내는 진력이 나버린 원장이 ‘기회만 된다면 어디 내다 버리고 왔음 좋겠다’는 말을 할 무렵, 마지막 입양이 결정되었다.

입양자는 마흔을 앞둔 부부로, 둘이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 했다. 그들은 시설 운동장 한구석에서 웅크린 채 아이들을 구경하던 무휼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네가 무휼이니?’

자신의 이름이 그토록 다정한 울림으로 불린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무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 아차 싶어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제껏 그를 데려갔던 이들 모두, 처음에는 그의 푸른 눈을 신기해했었다. 더러는 혼혈 같아 좋다며, 얼굴도 잘생겼으니 연예인을 해도 좋겠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멸시와 경멸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며 무휼은 기대감을 버렸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무휼은 너무 어린 나이에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와 같이 가지 않을래?’

그들은 그렇게 물었다. 무휼은 어차피 자기들 마음대로 할 거면서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듯 묻는 것이 가증스러웠다. 짐짓 배려하는 것처럼 말하는 그들이 우스웠지만, 무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아이로 있어야 그나마 오래 저들의 집에 머물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시설로 돌아와서도 당분간은 맞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만은 뭔가 이상했다.

살며시 이끄는 손을 따라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무휼은 꼭 따듯한 물에 푹 잠긴 것만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자신을 위해 준비된 안락한 방과 깔끔하게 정리된 새 옷, 무휼 전용 식기와 신기가 아까울 정도로 반질반질한 새 신발, 그리고 그의 발치에 몸을 비벼오는 작은 생명체.

그 모든 것들이 무휼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것은, 그를 보는 어른들의 눈빛이었다. 적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따듯한 다정함만으로 가득 찬 그 눈빛은 무휼이 난생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무휼은 처음으로, 시설 때문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 집에 남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휼은 불안해졌다.

지금껏 그를 입양했던 이들 모두 ‘저 아이가 불행을 몰고 왔다’고 했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쫄딱 망하는 경우가 그러했다.

무휼 입장에서는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공교로운 타이밍과 이질적인 그의 외양은 책임 전가를 하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어린 무휼은 혹 이 집에도 그런 불행이 일어날까 불안했다. 이제는 완전히 형제처럼 친해진 강아지를 품에 꼭 안으며, 그는 이 집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운명은 호락호락 무휼의 행복을 빌어주지 않았다.

끔찍한 사고였다.

랜딩 기어가 오작동을 일으켜 기체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졌고,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항공기를 들이받았다.

뉴스에 들려오는 사망자 명단 중에는 출장을 다녀오겠다던 새아버지의 이름도 있었다.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키며, 무휼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집을 전전하면서 보호자가 부상을 입거나 집이 망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목숨을 잃은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 자신 때문이다. 무휼은 그런 생각에 도저히 홀로 남은 새어머니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무휼을, 새어머니는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이럴 때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무휼아.’

그날, 무휼은 그 품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무휼은 학교에 들어가고, 키가 크고, 신발과 옷이 작아졌다.

새어머니는 사업을 지탱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무휼을 살뜰하게 챙겼다. 무휼 역시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보냈다.

다행인 점은 그의 새어머니가 상당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부끼리 작게 해오던 사업을 크게 확장했고, 종내에는 해외에 진출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그만큼 새어머니는 많이 바빠졌지만, 무휼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녀는 무휼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대신할 가정부들을 들였고, 무휼과 강아지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수영장이 있는 커다란 집을 지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어머니가 무휼에게 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아들, 너 운동 해보지 않을래?’

처음 새어머니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 무휼은 살이 쪘으니 운동 좀 하라는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취미 삼아 시작한 배구에서 코치가 진지한 낯으로 프로가 되어볼 생각 없냐는 말을 했을 때야 새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휼은 배구를 좋아했다. 순수하게 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았고, 상대 팀과 경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승패가 확실하게 갈리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경기를 응원하러 와주는 새어머니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프로로 데뷔하기 전에 대학을 간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프로가 되면 바빠질 테니 그 전에 그나마 여유로운 대학 경기를 새어머니에게 실컷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설마 새어머니가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