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눈치 싸움
벌써 세 시간째. 방 밖에서는 무언가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윽박지르는 소리와 살갗이 맞부딪쳐 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러나 방 안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보던 그는 그저 가만히 생각했다.
‘오늘은 좀 기네.’
평소에는 그의 존재를 신경 써서인지 한 시간 언저리면 끝나곤 했던 싸움이 오늘따라 한참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싸움의 원인이야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거친 언사가 오가고 비명이 터지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일 터였다.
‘하긴, 한 달이 넘도록 훈련도 안 가고 멋대로 나다녔으니.’
그는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고개를 들어 벽에 뒤통수를 기댔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해도 가슴속에 치받고 올라오는 감정이 수그러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했음에도 피하지 못했다는 허무함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귀청이 찢어질 것처럼 높고 날카로운 비명이 잇달아 울리는가 싶더니, 그의 어깨가 움찔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문을 타고 넘어왔다.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그는 보지 않아도 잘 알았다.
몇 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듣던 소리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길고 길었던 싸움이 일단락났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이윽고 현관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동차 엔진음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마저 멀어지자, 방 안은 금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아?”
그 정적을 뚫고 들려온 가느다란 목소리에 그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는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진…. …괜차…, …아?”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목소리는 명백하게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비척거리며 다가오는 기척은 여봐라는 듯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에 그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핏발 어린 눈에 덜컥거리는 문고리가 비쳤다.
마음 같아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싶었지만, 이 집 안에서 ‘잠기는 문’이라고는 밖으로 통하는 현관문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열쇠 구멍은커녕 이렇다 할 잠금장치 하나 없는 문은 이 집의 특징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방들 중 제 몸 하나 제대로 숨길 수 있는 방이 없다는 데 그는 새삼 진저리가 났다.
문밖의 상대는 문을 똑바로 열 힘도 없는 듯, 자꾸만 문고리를 놓쳤다. 덕분에 문고리는 조금 돌아가다 덜그럭거리며 제자리로 돌아오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가, …못….”
덜컥거리는 소리 사이사이 들려오는 애처로운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어려 있었다. 물기가 어린 목소리는 꼭 점성 가득한 액체처럼 흘러들어와 그의 몸을 조금씩 삼켜갔다.
“진수….”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발끝부터 차오른 목소리에 꼭 물에 잠긴 것처럼 숨통이 막혔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잘 사용하지 않아 새것처럼 뻑뻑한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진수야.”
부르는 소리는 끔찍하리만치 갈라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일그러진 얼굴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왜소한 체격의 작은 여자가 문손잡이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기대서 있었다. 작은 머리와 움츠린 어깨 위로 마구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뒤엉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긴팔 셔츠에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팔다리의 흉터와 멍을 가리느라 사계절 내내 그런 차림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길게 찢어진 이마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피가 너무도 선명해 그 시도는 물거품이나 다름없었다.
“진수야.”
바싹 말라 갈라진 입술에서도 피가 배어 나왔다. 그 입술 사이에서 나온 이름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했다.
“…머리, 피 나.”
겨우 내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 말 외에 그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멍한 눈빛으로 손을 들어 제 이마께를 만져보더니 힘없이 웃었다.
“엄마는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는 새벽녘의 바람 소리처럼 희미하게 허공을 울렸다.
그녀는 천천히 발을 옮겨 그에게 다가왔다. 질질 끌리는 것 같은 발소리에 그는 입술을 짓씹었다.
“훈련… 안 나간다며?”
한겨울의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이 그의 팔 위에 얹어졌다. 맨살에 닿는 뜨끈한 체온에 그는 등 뒤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왜, 코치님이 별로니? 다른 사람 알아봐 줄까? 지금 코치가 국내에선 최고라고 했는데… 뭣하면 외국에서라도 데려오면 되니까….”
속닥이듯 조곤조곤 들려오는 목소리가 올가미처럼 그의 목을 죄었다. 그의 가슴팍이 크게 들썩거리며 가쁜 숨을 들이켰다.
“열심히 해야지, 진수야…. 너는 제대로 된 아이니까….”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그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뒤이어 나올 말이 무엇일지 뻔히 알아서, 그래서 더욱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덫에 걸린 토끼처럼, 그녀의 갈고리 같은 손아귀에 잡힌 몸은 딱딱하게 굳어 그의 의지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네가 착한 아이로 있으면 진혁이도 돌아올 거야…. 지금은 나쁜 병에 걸려서 그러고 있지만 언젠가….”
중얼중얼 내뱉는 목소리는 이제 눈앞의 그가 아닌 허공에 대고 하는 혼잣말이나 진배없었다.
텅 빈 눈으로 웅얼거리며 말을 내뱉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보다는 기괴한 인형에 더 가까워 보였다.
“진혁이…, 진혁이도 언젠가….”
중얼중얼 갈라진 목소리가 끊임없이 같은 이름을 불렀다. 팔을 잡은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며 정리되지 않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엄마, 손-”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대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그녀는 더욱 힘주어 그의 팔을 붙잡을 뿐이었다.
긁힌 살갗에 피가 맺혔다. 움푹 파인 살갗에 맺히기 시작한 핏방울이 맨살을 타고 흘렀다. 날카로운 통증에 그녀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 손 좀….”
“진수야.”
돌연 떨림이 가신 명확한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까지의 위태롭게 떨리며 갈라졌던 목소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 소리에 그는 등허리에 오싹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네가 잘해야 돼.”
핏발 선 눈이 그를 응시했다.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이 괴물의 눈처럼 흉흉했다.
“네가 잘해야 네 형도 돌아오는 거야. 알겠지?”
“…응.”
그가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물음은 자신이 대답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 내가… 내가 잘할게, 엄마.”
“그래, 그래야지. 우리 착한 진수.”
그녀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멍한 동공 때문인지 그 웃음마저 기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착하다, 내 아기.”
그의 팔에서 떨어진 그녀의 손이 올라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퉁불퉁한 손톱 끝에 묻은 붉은 기를 애써 외면하며 김진수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오늘도야?”
심드렁하게까지 느껴지는 어조였다. 그러나 무휼은 그 말에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움찔하며 대답했다.
“으, 응. 오늘도 딱히 수상한 사람은 없었어.”
“그래.”
호원은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틀째. 무휼은 호원의 집에 머물면서 낮 동안엔 주변을 맴돌며 김진수의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깐 짬이 난다면서 바의 일도 거들고 있었다.
‘어제는 길어야 4시간…. 오늘은 한숨도 못 잤겠는데.’
호원이 흘긋 무휼을 쳐다보았다.
요 근래 무리한다 싶더니 운동선수 체력으로도 낮이고 밤이고 깨어 있는 것은 못 할 짓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잘생긴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 눈을 문지르는 모습이 나른해 보였다.
그러나 그 피곤한 모습도 수려한 얼굴과 맞물리니, 가뜩이나 선명한 이목구비가 더 강조되어 비현실적이리만치 짙은 색기를 뿜어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호원이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좀 쉬는 게 어때?”
“괜찮아.”
조심스럽게 던진 말에 식탁 의자에 눕다시피 기대 있던 무휼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밤에는 쉬라고 해도 말을 들어 먹질 않으니 호원으로서도 답이 없었다. 괜히 말했다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가 냉장고를 열어 재료들을 꺼냈다.
시곗바늘이 벌써 3시에 가까워 오고 있었다. 무휼은 아침을 대충 때우고 나갔을 테니 한창 배가 고플 터였다.
뭐라도 만들어주려는 셈으로 재료들을 훑어보며, 호원이 말을 꺼냈다.
“너 밥은….”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 괜찮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무휼이 입꼬리를 당겨 웃더니 호들갑스럽게 시계를 돌아보는 척했다.
“슬슬 오픈 준비하러 가야 하지 않아? 나는 그 전에 밖에 한 번 더 둘러보고 올게.”
“너….”
말을 꺼내려던 호원이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신경 쓰지 말라는데 더 말을 보태는 건 괜한 참견일 터였다.
“그래, 그럼.”
아직 바의 문을 열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호원은 머쓱하게 웃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단둘이 이 좁은 집 안에 있느니 가게로 내려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가게에 내려가 있는 동안 무휼이 조금이라도 쉬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막 현관문으로 향하던 무휼이 방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호원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