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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41)화 (41/101)

제41화. 징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아슬아슬하게 대고 있던 칼날에 연약한 피부가 닿았다.

김진수는 저도 모르게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전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손이 떨리는 바람에 상대의 뺨에 닿은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면서 긴 생채기를 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을 벌리는 감각이 손의 신경을 타고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김진수는 순간 나이프를 내던질 뻔했다.

눈앞의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이 역전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은 흔한 장난감 칼 같은 게 아니었다. 사람의 여린 살 따위 너무도 쉽게 베어내고 찌를 수 있는 도구였다. 그의 시선이 상대의 눈동자와 핏빛이 비치는 칼날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평생 칼 한번 쥐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운이 나쁘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그리고 김진수는 스스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여기서 이 손을 힘주어 내리긋기만 해도, 권무휼에게 복수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빼앗아 간 권무휼에게.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쥐고 있는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가 마치 제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인 양 어색하게 느껴졌다.

“안 해?”

남자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단정한 얼굴에 실금이 가 있는 상황인데도 꼭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라도 보는 듯 건조한 눈이었다.

그 속에 희미하게 깃든 경멸을 본 순간, 눈앞의 얼굴은 형의 얼굴로 바뀌었다.

‘앞으로 이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야. 잘 지내라.’

형은 그 말만 하고는 뒤돌아 집을 나섰다. 김진수는 뒤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점점 작아지는 형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더러운 호모 자식, 가문에 먹칠한 빌어먹을 새끼 따위의 욕설이 아버지의 입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한참 뒤, 그의 어깨를 부러질 만큼 거세게 움켜쥔 아버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진수 네가 유일한 내 아들이다. 내 뒤를 이을 사람도 너뿐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김진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아버지. 열심히 할게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형 대신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선수가 될게요.

다행히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배구 국가대표였던 아버지와 테니스 선수였던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서인지 금세 프로 스카우터의 눈에 띄었고, 중학교 때엔 이미 몇몇 구단 관계자로부터 명함과 함께 은근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장하다며 그를 칭찬해 주었고, 어머니는 웃으며 그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 목이 말라 방을 나섰던 그는 어머니가 인형처럼 생기 없는 얼굴을 하고 형의 방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형의 방은 이미 아버지의 지시로 텅 비어 있었다. 형의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졌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방 안에 뽀얗게 쌓인 먼지뿐이었다.

하지만 그 방문 앞에서 어머니는 마치 집 안의 장식품이나 가구처럼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보아선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허둥지둥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밤을 새웠다.

그때부터 불행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줄줄이 김진수를 찾아왔다.

‘오늘부터 훈련에 참가할 거다. 이름은 권무휼. 같은 포지션끼리 잘 지내봐라.’

권무휼이 전학 왔을 때, 그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팀의 에이스는 그였고, 다음 대회에서 활약할 사람도 자신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뿌리째 뒤흔들렸다.

‘제가 레프트요?’

‘그래, 옆에서 네가 받쳐주고 무휼이 녀석이 크게 꽂아주기만 하면 백 프로 우승이야.’

‘하지만 왜 제가….’

‘너에겐 미안하지만, 쟤가 워낙 물건이잖냐. 이번만 양보해라.’

감독의 ‘이번만’은 곧 ‘이번에도’가 되었고, 끝내는 ‘앞으로도’가 되었다. 그는 마치 얼음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얼음은 점점 녹아 가라앉는데 발 디딜 땅도, 그를 구해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번번이 MVP 자리를 놓치는 그에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걸핏하면 물건을 집어 던지고 고함을 지르는 탓에 집 안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마 그나 어머니에게 직접 폭력을 쓰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우며, 그는 스스로의 한심함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리고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날, 혼자 남아 늦게까지 연습하던 그는 우연히 권무휼과 같은 반이었던 팀메이트가 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너도 들었냐? 권무휼 얘기.’

‘권무휼? 아, 그 싸가지 없는 새끼. 걔가 왜?’

‘그 새끼, 남자 좋아한대.’

그 뒷말은 더 들을 수 없었다. 더럽다느니 어떻게 그러냐느니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그때 그는 이미 체육관을 뛰쳐나와 아무렇게나 내달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다가 차에 치일 뻔하고 나서야, 그는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그 소식은 물이 가득 찬 컵에 떨어진 물감처럼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평소 타인에게 벽을 세우는 무휼의 성격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데다, 권무휼 본인도 딱히 부정을 하지 않았던 탓에 소문은 더욱 자극적으로 변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사이 그의 집안 분위기는 점점 궁지에 몰려 끝내, 아버지가 그와 어머니에게까지 손을 올렸다.

이미 균열이 가 있던 가정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권무휼을 이기기 전에는 프로 따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생각에도 없던 대학까지 왔다.

그러나 정작 권무휼은 연습은커녕 정규 훈련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팀의 에이스 자리만큼은 절대 넘겨주지 않았다.

김진수가 뭘 어떻게 해도, 권무휼은 이길 순 없었다.

“너 지금 뭐 하냐?”

그의 정신이 퍼뜩 현실로 끌어 내려졌다. 눈앞에 곱상한 얼굴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고운 이마를 설핏 찡그리고 쌍꺼풀이 진 큰 눈을 가늘게 뜬 모습이 같은 남자임에도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멍하니 있지 말고 저질러 보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나이프를 더 세게 손에 쥐여주었다. 숨을 헐떡거리느라 흔들리는 시야에도 남자의 하얀 뺨에 가늘게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만은 무섭도록 잘 보였다.

자신의 손목을 잡은 남자의 왼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저 상처가 났을 때 그 권무휼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던 게 눈에 선했다.

만약 이 남자가 죽기라도 하면 권무휼은 죽도록 고통스러울까?

일순 눈앞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가며 몽롱해졌던 머릿속이 찬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깨끗해졌다.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때린 것처럼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스스로도 알아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남자가 재차 몸을 붙여왔다. 뜨겁게 맥박치는 몸이 맞닿으며 드러나 있는 살갗을 통해 체온이 전해져 왔다.

시야에는 남자의 셔츠 깃이 들어왔다. 턱을 타고 흐른 피가 새하얀 셔츠를 점점이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진짜 찔러야 하나?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걸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나?

아니, 애초에 내가 진짜 사람을? 할 수 있을까?

권무휼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홧김에 생채기 정도를 내는 것과, 작정하고 사람을 찌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흐으-”

잇새로 나약해 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숨을 너무 헐떡거리느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근육이 뻐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선은 어느새 남자의 갈색빛 도는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의 눈은 고요했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곧바른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덜컥 숨이 멎는 듯했다.

무섭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손에 힘을 뺀 뒤였다.

날붙이가 돌을 긁는 것 같은 카랑카랑한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힘이 빠진 손에서 흘러내린 나이프가 맨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섰는지 눈앞에서 남자의 얼굴이 조금 멀어졌다.

등 뒤에서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혹시 몰라 들어올 때 문을 잠가 두었더니 아예 문을 들이받아 버린 모양이었다.

“김진수!!”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아프게 때렸다.

도망가야 해.

그 생각부터 들었다. 이미 몸은 뒷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문을 어깨로 들이받다시피 열어젖히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벽의 어스름한 빛을 머금은 거리는 숨 막히도록 고요했다. 가로등만 점점이 켜진 골목길에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는 자신의 발소리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귓가의 발소리는 두 개가 되었다. 권무휼, 그놈이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더욱 빨리 뛰었다. 저 앞으로 밝은 빛이 보였다. 가로등과 간판이 스쳐 지나갔다. 큰길이다.

“김진수! 안 돼, 멈춰!”

저 뒤에서 권무휼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도망치는 사람한테 멈추라니,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는 걸까.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발을 움직였다. 일생토록 이렇게 절실하게 뛰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멈춰, 김진수!!”

뒤에서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큰길로 나왔다. 뒤를 돌아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구덩이를 밟은 것처럼 내디딘 발이 아래로 쑥 꺼졌다.

“어…?”

몸의 중심이 앞으로 훅 쏠렸다. 조건반사로 들어 올린 손이 보였다. 손가락 너머로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시야를 꽉 채웠다.

어디선가 빠아앙- 하는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김진수!”

그 뒤로는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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