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기다려
진혁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시영은 초조해하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호원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건 것이며,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있는 곳은 병원 응급실이라는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불길한 예감만 엄습했다.
‘일단 여기로 와줘. 자세한 얘기는 오면 할 테니까.’
호원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호원의 그런 다급한 목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병원으로 간댔지?’
시영이 문득 운전석에 앉은 진혁을 흘긋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진혁은 침착하게 운전하고 있었지만 속도는 과속과 정상 속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얗게 질린 얼굴이며 힘주어 악무느라 덜덜 떨리는 턱 근육을 보고 있자니 당장 사고가 난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들이 허겁지겁 병원 입구에 들어서니, 호원이 굳은 얼굴로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오빠!”
시영의 부름에 호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영은 호원의 전신을 눈으로 훑었다. 다행히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 호원은 웃옷이 조금 구겨진 것 말고는 멀쩡했다.
그런데, 곁에 무휼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권무휼은?”
시영이 호원의 양팔을 덥석 움켜잡으며 말했다. 지친 기색이 완연한 호원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안에.”
안이라고? 시영의 눈이 그의 뒤쪽을 향했다. 반투명한 양쪽 문에 쓰인 ‘응급의료센터’라는 글자에 그녀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다친 거야? 얼마나? 위험한 거야?”
“일단 진정해. 그보다….”
호원이 시영의 몸을 천천히 떼어내더니 시선을 들어 진혁을 쳐다보았다. 진혁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호원에게 물었다.
“수술실은?”
“이쪽으로. 서둘러.”
호원이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뒤를 뛰다시피 걸어 따르며, 시영은 여전히 불길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등허리가 얼음을 댄 것처럼 서늘하고 이마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수술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간호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진혁을 붙들었다.
“김진수 환자 보호자 되시죠? 수술 동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진혁이 당장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큰 숨을 들이켜는 것이 보였다. 김진수라는 이름은 시영도 무휼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보호자가….
경악한 시영의 시선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 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그러고는 서툰 손짓으로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오빠, 수술이라니….”
시영이 불안한 얼굴로 호원을 돌아보았다.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무휼이한테 가자. 상황 설명은 거기서 해줄게. 그리고….”
호원이 시영의 어깨를 툭툭 쳐 안심시키고는 진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혁은 수술실 앞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서둘러 다녀올 테니까, 잠시만 여기 있어. …금방 돌아올게, 진혁아.”
호원이 진혁의 구부러진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진혁은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권무휼은 괜찮은 거야? 걔도 막 수술받고 그런 거 아니지?”
복도를 걷는 동안, 시영이 다급하게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호원은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마주 잡아 오는 손이 동아줄에 매달리는 것처럼 절박하게 그의 손을 붙들었다.
응급실 침대가 죽 늘어선 곳에 다다르자,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인 곳을 호원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몇 개의 침대를 지나 도착한 곳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시영은 괜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새하얀 커튼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주춤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호원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고는 커튼을 걷어냈다.
“다녀왔어.”
“빨리 왔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무휼이 반갑게 호원을 맞았다. 빨리 왔다는 말과는 반대로 표정은 며칠 못 본 사람을 상봉한 것처럼 반가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아, 연락됐구나. 두고 와서 걱정했는데, 그쪽은 해결 잘 됐어?”
무휼이 호원의 뒤에 선 시영을 보고는 물었다. 시영은 왼손과 오른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그의 모습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느라 시영의 시선이 무휼의 몸 곳곳을 향했다.
자세히 보니 흙바닥에 굴렀는지 옷은 먼지와 흙투성이였고, 소매를 걷어 올린 손이며 팔뚝도 생채기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다행히 그 외에는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시영이 보조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원은 그녀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고는 무휼에게 고개를 돌렸다.
“팔은 깁스 해야 한다니까 여기 얌전히 앉아 있어. 곧 의사 선생님 오실 거야. …코치님도 고생하셨어요. 죄송하지만 잠시만 여기 계셔 주세요.”
코치님이라는 말에 시영이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무휼의 침대 건너편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중년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영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호원과 무휼만 번갈아 쳐다보는데, 호원이 그대로 등을 돌렸다. 커튼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무휼이 덥석 팔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그 작은 행동으로도 꽤 무리가 가는 것인지 인상이 와락 구겨졌지만, 다행히 호원을 붙들어놓는 데에는 꽤 효과적이었다.
“또 어딜 가.”
무휼이 호원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얼굴이 꼭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불안해 보여서, 호원은 그대로 이 자리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꾹 내리눌러야 했다.
“…진혁이가 수술실 앞에 혼자 있어. 불안할 거야.”
“당신이 거길 왜 가.”
무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영의 어깨가 흠칫할 정도로 날 선 목소리였다.
그러나 호원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자신의 손목을 틀어쥔 손을 살짝 붙잡았다.
“진혁인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야. 저대로 그냥 둘 수는 없어.”
“친동생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며. 그런 사이에 왜….”
“무휼아.”
부드럽지만 단호한 호원 특유의 목소리가 무휼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그 목소리에 무휼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거렸다.
피딱지가 앉은 입술에 다시 상처가 생기자 호원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치님이랑 시영이랑 같이 있어. 수술 얼마 안 걸린다고 했잖아.”
부드럽게 말한 호원이 손을 들어 무휼의 뺨을 감쌌다. 그의 엄지가 핏방울이 맺힌 무휼의 입술 끝을 꾹 눌렀다. 한쪽 입꼬리가 눌리며 무휼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그 얼굴에 호원이 피식 웃었다.
“입술 깨물지 말고.”
“…….”
무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내리깔며 잡았던 손을 풀어줄 뿐이었다.
“다녀올게.”
호원은 그 말만 남겨둔 채로 무휼의 침대를 떠났다.
***
정강이뼈가 조각났다. 진혁이 알고 있는 동생의 상태는 그것뿐이었다.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수술을 하기까지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하는데, 다행히 뼛조각이 살을 찢고 나오진 않아서 과다출혈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용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의 부모도, 그리고 김진수 본인도.
‘나 때문이야.’
진혁은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이를 악물었다. 그 지옥 같은 집안에서 혼자 도망쳐 나온 후로, 그는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진수는 나름대로 배구를 좋아하는 모양인지 군소리 없이 훈련을 받는다 했고, 간간이 얼굴을 볼 때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간에 잘 하지 않았지만, 가끔 무심코 흘리는 말에서 다들 잘 지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모른 척했다.
이따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동생을. 미처 몰랐는지 옷깃으로 가리지 못한 목덜미에 선명한 피멍을. 요즘 운동하는 건 어떠냐는 말에 슬며시 시선을 피하던 모습을.
별거 아닌 일일 거라고, 그냥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하고 외면했다.
그때 붙들고 닦달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그 집을 나올 때 진수도 데리고 나왔더라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바닥에서부터 진득진득하고 검은 무언가가 다리를 휘감고 올라와 전신을 옭아매는 듯했다.
시야가 가려지고 숨통이 틀어막혔다. 숨이 가빠 헐떡거렸다. 얼굴을 처박은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혁아.”
그 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는 걸,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가볍게 쥐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혁은 화들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무의식중에 어깨에 얹어진 손을 뿌리쳤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는 듯 덤덤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본래부터 새하얀 얼굴이 수술실의 창백한 빛을 받아 한층 말갛게 보였다.
“…형.”
진혁은 무심코 그 단어를 내뱉었다가, 그것이 꼭 갈급한 사람이 물을 찾는 목소리처럼 들렸다는 것에 놀랐다. 서둘러 몸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생각보다도 몸이 더 빨랐다.
“아….”
진혁은 당황한 얼굴로 제 손을 쳐다보았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호원의 한쪽 손을 부여잡은 양손은 꼭 제 것이 아닌 것처럼 그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미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는 자신이 듣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호원은 잡힌 손을 빼내는 대신 그대로 손을 내어준 채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잡고 있는 게 나으면 그러고 있어.”
놀란 얼굴로 호원을 돌아보던 진혁은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말 안 해서 미안해요.”
비에 젖은 종이처럼 눅눅한 목소리였다.
호원을 안 지는 꽤 오래됐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가족의 존재는 치부나 다름없었다. 쉬이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괜찮아.”
호원은 다독이듯 천천히 말했다. 그 작은 말 한마디에 진혁은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호원이 말했다. 진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바닥을 내려다보던 눈을 감았다.
손안에 딱 들어오는 마르고 건조한 손이 오늘따라 유독 따듯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