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격돌 (1)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진혁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실감했다.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고, 집안일을 대신 봐주는 아주머니도 직접 뽑았다.
매일매일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받으면서도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이런 돌발행동을 할 거라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숙경은 아들인 진수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 못해 착란에 빠졌다. 진수가 잘못한 게 아니라, 피해자인 무휼이 김진수를 몰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몇 번이나 아니라고, 현실을 직시하라 말해도 숙경은 요지부동이었다.
진혁은 아무래도 조만간 어머니를 병원에 수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진혁은 택시기사의 말을 듣자마자 지갑에서 돈을 뭉텅이로 꺼내 아무렇게나 내밀고는 굴러떨어지듯 차에서 내렸다.
병원으로 달려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카운터에서 무휼의 이름을 댔다.
간호사는 파랗게 질린 그의 안색을 보더니 서둘러 무휼의 수술실을 찾아주었다. 진혁은 감사하다는 말도 잊은 채 바로 등을 돌렸다.
수술실을 향해 내달리는 시간이 미치도록 길었다. 진혁은 마주 오는 사람들을 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최대한 빠르게 발을 옮겼다.
가는 동안 새하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한 가지였다.
‘뭐라고 사죄해야 하지?’
아니, 이게 사죄를 한다고 될 일인가? 오히려 다신 그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맞는 일이 아닐까? 그건 그저 잘못에서 도망치는 일 아닌가?
너무 많은 생각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생각이 맞는 생각 같았고, 또 모든 생각이 틀린 생각 같았다.
어찌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의 발은 착실하게 그를 붉은 등이 빛나고 있는 수술실 앞으로 이끌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선 진혁은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풍경 앞에서 이를 악물었다.
시영은 간이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입고 나왔는지 구겨진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 등뼈가 너무도 연약해 보였다.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초로의 여인이 침울한 얼굴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호원이 형.”
진혁은 잘 벼린 칼날을 뱉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수술실 앞에 우뚝 선 채로 등을 돌린 남자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미동도 없는 몸은 숨을 쉬긴 하는 건지조차 의문스러웠다.
이윽고 호원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은 건조했다. 아니, 건조한 걸 넘어서서 감정 한 올 찾아보기 힘들 만큼 무표정했다.
마치 인형처럼 담담한 얼굴로 호원이 진혁과 눈을 맞췄다.
“…왔구나.”
그 말뿐이었다. 호원은 그 말만을 전한 채로 다시 등을 돌렸다. 기계적인 그 움직임에 진혁은 오싹함을 느꼈다.
호원이 차라리 소리 지르고 윽박질렀다면, 아니 하다못해 눈물이라도 보였다면 이토록 참담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원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술 중이라는 표시등의 붉은빛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 바위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진혁은 그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초록색 옷에 덕지덕지 피를 묻힌 의사가 나와 경과를 말할 때도, 수술 결과를 들은 시영이 안도하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중년의 여인이 시영을 부축하며 휴게실로 향할 때도 미동 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호원은, 수술실에서 나오는 무휼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 채 병원 침대 위에 누운 무휼은 꼭 잠든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저 몸 어딘가에 어머니가 찌른 상처가 있다. 그 잔인한 사실에 진혁은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지금 그에게는 침대 위의 무휼도, 그런 무휼을 가만 내려다보는 호원도 모두 비현실적인 광경처럼 느껴졌다.
순간 진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었다. 정신이 멍해지며 숨이 막혀왔다.
어머니는 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진수 하나로도 모자라서 어머니까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몸에 흐르는 피는 모조리 뽑아내고 싶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호원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그 자리에 호원은 없었다.
“…호원이 형?”
그는 허망한 목소리로 호원을 불렀다. 그러나 무휼을 병실로 옮기느라 분주한 그 자리에서 그의 부름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
호원은 병원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무휼은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근처에 지나가던 간호학과 학생이 빠르게 지혈을 해준 데다 신고도 빨랐던 덕분이었다.
운이 좋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다행히 찔린 위치가 좋았다. 내장을 절묘하게 피해간 덕분에 장기에는 손상이 거의 없었다는 모양이다. 환자의 나이도 젊으니 금방 회복될 거라며 의사는 호원을 안심시켰다.
호원은 천천히 줄어드는 엘리베이터 계기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졌다.
띵-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있었다면 겨우 억누르고 있는 감정이 새어 나올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는 끝 갈 데 없이 위로 올랐다. 빠르게 올라가는 고도에 귀가 먹먹해질 때가 되어서야 또다시 맑은 알림음이 들렸다.
호원은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옥상으로 가려면 최고층에서 내려 비상계단을 통해야 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옥상 문을 걸어 잠그지만 호원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비상구 끝에 있는 옥상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그의 옷깃을 뒤흔들었다.
들어오라는 거겠지. 호원은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서 와, 원이 형!”
호원이 옥상에 다다르자마자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덥석 안겨왔다.
훅 끼쳐오는 체향이 그의 기억 속과 다르지 않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호원은 울컥 솟는 토기를 애써 내리누르며 자신을 꽉 끌어안은 몸을 잡아 밀어냈다.
다행히 상대는 순순히 밀려나 주었지만, 자신을 밀어내는 호원의 손등을 감싸 잡았다.
손등에 닿는 따스한 체온이 끔찍했다. 머릿속에 새하얗게 질려 있던 무휼의 얼굴이 떠오르자 괴리감에 소름이 끼쳤다.
“형, 나 없는 동안 잘 지낸 거 같더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너무하다는 목소리가 불퉁한 어조로 들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질투 심한 애인이 투정을 부린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원은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마저도 힘에 부쳤다. 목소리가 꼭 구더기처럼 꾸물거리며 전신을 기어 다니는 듯했다.
호원은 잡힌 손을 뿌리쳐 떼어냈다. 그러고는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새 키가 많이 컸는지 기억 속의 깡마른 소년은 이제 호원보다 키가 커 있었다. 어깨도 넓어지고 팔다리도 굵어져 힘으로는 호원에게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호원은 숨을 들이쉬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부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음절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목구멍을 찔러대서 입술 밖으로 내뱉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여명훈.”
“옛날처럼 서진이라고 불러도 돼, 형.”
여명훈은 호원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 퍽 만족스러운지 방실방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꺼낸 이름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호원의 심장을 후벼 팠다.
“네가… 네가 그딴 소리를 해?”
호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서진은 옛날, 명훈이 호원의 바에서 일하던 때 쓰던 가명이었다.
호원을 배신하고 능멸했던, 그를 진창에 처박은 이름이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대수롭지 않게 내뱉을 이름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도 다 추억이잖아, 형. 이제 신경 안 쓸 때도 된 거 같은데.”
그러나 여명훈은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호원은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당장 손을 뻗어 저 목을 졸라 버릴 것 같았다.
숨이 벅차서 어깨가 들썩거렸다. 혈압이 올라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호원은 경이로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번 일… 네 짓이지.”
호원의 입에서 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여명훈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였다.
“무슨 일?”
천연덕스러운 그 얼굴을 보니 호원은 다시금 머리로 피가 솟는 기분이었다.
턱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이 갈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이를 악물고 있었음을 알았다.
“혹시 그 무휼인지 뭔지 하는 걔? 걔 얘기를 왜 나한테 해? 걔는 미친 여자 칼에 찔린 거잖아. 보니까 원인 제공은 그쪽이 한 모양….”
“여명훈!!”
호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명훈은 한쪽 눈썹을 꿈틀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왜 소리를 질러? 나 아니라고 했잖아. 정 그러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한테 물어볼래? …그 아줌마를 꼬드겨서 권무휼을 찌르게 한 게 정말 나인지.”
아, 혹시 나인가? 여명훈은 장난스럽게 덧붙이더니 큰 소리로 웃어댔다.
호원은 깊은 물속에 잠겨 있다 나온 사람처럼 커다랗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흐트러지면 당장 여명훈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 된다. 그의 손에 죽는 것이야말로 여명훈이 가장 바라는 일일 테니까.
호원은 온 힘을 다해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 꽉 쥔 주먹 때문에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어 피를 냈지만, 뇌 신경을 태우는 것 같은 분노 속에서는 그 고통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근데 원이 형. 우리 오랜만에 봤잖아. 근데 계속 그 무휼인지 뭔지 그 새끼 얘기만 할 거야? 나 서운해.”
여명훈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호원은 여명훈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이상 무휼의 이름을 언급해서 그를 자극했다간, 여명훈은 지금 당장 병실로 내려가 무휼의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호원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여명훈을 무휼에게서, 그의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떼어놓을 방법은 단 하나였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호원은 여명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명훈은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된다는 듯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기를 하자.”
너랑 나. 단둘이.
호원의 말에 여명훈의 눈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