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나름 우사를 꾀는 거였다. 오기 싫던 사학당까지 왔는데 그래도 뭐 하나 얻어 가는 건 있어야지.
내가 원하는 건 단애약수를 바로 찾는 게 아니다. 아니 예지몽이 맞으려면 바로 찾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우사를 꾀는 건 나만 아는 도박인 거다. 그 꿈이 예지몽이냐, 아니면 회귀냐 하는 도박.
예지몽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통해 천명을 엿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성을 띠고 있고, 예지몽을 통해 본 것과 다른 길로 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고난의 연속이 될 테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쉽게 단애약수를 손에 넣는다면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즉 그 자체로 예지몽이 아니라는 거다.
간밤에 꾼 게 개꿈도 예지몽도 아니면 남은 건 역시 하나다.
꿈을 통해 본 그 모든 일들은 이미 일어났던 일이며, 내가 한 번 겪었던 일이라는 말.
즉, 내 ‘회귀’ 이전의 생이 되는 거다.
…<회귀>라니.
그런 일이 정말 내게 일어났다고? 개소리.
그게 얼마나 극심한 희생을 요하는 건데. 애초에 금지된 술법이잖아.
속으로 바로 부정해 봐도 미묘한 찝찝함이 남아 있다.
엉기는 상념에 속으로 가는 숨을 삼켰다. 그래, 일단은 두고 보자. 예지몽인지 회귀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다. 지금 앞에 놓인 일이 우선이다.
어쨌든 난 지금 여기 있고, 지난 일은 무를 수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응?”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옆으로 까닥였다. 우사가 아까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선 혀끝을 날름거린다.
곧 우사의 눈매가 차츰 가늘어졌다. 내 속셈이 뭔지 의심하는 거다. 나를 살피는 눈빛엔 의심과 불안이 서려 있다. 으레 사형에게 가지게 되는 경외심이라곤 조금도 없다.
하기야 그럴 법도 한 나날들을 보냈었지. 애초에 난 우사에게 사형 대접 따위 받고 싶지도 않았었고.
나 또한 단 한 번도 우사를 사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
우사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나와의 악연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마음 한편에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거다. 바로 거절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나는 그 망설임을 거세게 흔드는 방법을 안다.
[어디로요?]
잔뜩 경계하며 우사가 물었다.
“우횡산 전부. 찾는 건 단애약수이고.”
내 대답에 우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세로로 길게 수축된 동공을 보고 있자니, 꿈의 마지막에서 본 우사의 눈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내려다보는 건 우사였다. 그를 올려다보는 꿈속 내 목에는 뭔가가 겨눠져 있었고, 그 끝엔 우사가 존재했다.
그게 뭐였는지까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중이었으니 아마도… 분명 검 종류였겠지.
얕게 심호흡한 뒤 가벼운 숨을 터트리며 말했다.
“소사제(가장 어린 사제를 이르는 말).”
‘소사제’. 그 단어에 듣는 우사도 놀라고, 말한 나도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내가 아는 모든 시간을 통틀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그래서 무척 어색하고 이상했다.
우사는 뻣뻣하게 굳어선 숨도 쉬지 않는 것 같다.
[…왜…….]
또다시 그 한 음절만 간신히 내뱉는다.
“이제 바꾸려고. 전부 바꿀 거야.”
[…뭐를요?]
“내 심보.”
내 심보.
마음을 쓰는 속 바탕. 나의 마음.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내민 손끝을 까닥였다. 우사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방금 한 말이 ‘보물찾기’를 조건부로 한다는 걸 알아들은 것 같다.
역시 우리의 관계가 아직은 완전히 틀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우사에겐 나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아직 존재했다.
아마… ‘사형제지연’에 대한 동경 때문이겠지.
사제지연과 사형제지연. 내 눈에는 우사가 그 인연의 울타리 안에 속해지고 싶어 하는 걸로 보였다.
줄곧 늪지대에서 외로웠기 때문일까. 나는 나와 만나기 이전의 우사를 모른다. 지금의 나도, 예지몽 속의 나도.
내가 집중했던 건, ‘내 자신이 우사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느냐’였다.
내민 손끝을 타고 우사가 내 팔 위로 기어 올라왔다. 주저하는 기색이지만 그래도 도중에 물러나진 않는다. 팔 위로 미끄러지는 감촉이 서늘하다.
팔을 감싸는 매끄러운 느낌이 기분 좋다. 좋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얼굴에 반사적으로 인상이 써진다.
우사에게 좋은 감정이 일면 거부부터 하다 보니, 이젠 아주 조건반사적이다. 물론 표정만 그렇지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다.
우사가 내 팔을 끌어안은 채 머리만 들었다.
[왜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건진 모르겠지만……, …사형을 도울게요.]
이제야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 주는 그 눈빛이 진지하다.
[단애약수가 어디에 있는지 제가 알아요.]
그곳이 어디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우사가 내 팔을 휘감아 안은 건 ‘공간 전이’를 하기 위함이었다.
‘공간 전이’는 선기를 바탕으로 한 술법이라 내가 쓰는 법술과는 그 궤가 달랐다.
선기를 바탕으로 한 술법은 ‘선술(혹은 술법)’이었다. 선술은 하늘에 속한 자들만 쓸 수 있었다. 영물이나 선인, 신선과 같은 선력을 쓸 수 있는 존재들 말이다.
반면에 법술은 내공을 이용한 무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쓰는 걸 내공을 운공한 법술이라 하고, 신선이 쓰는 건 선기를 운기한 선술이라고 한다.
우사와 같은 신선, 영물을 비롯해 요, 마, 귀는 단전이 아닌 내원근에서 기운을 운기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인간들이 저들끼리 우열을 가리며 나누는 ‘경지’란 것이 없다. 얼마큼 깨우쳤냐만 있다.
그들의 지향은 ‘원신을 갖추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원신’이란 본원진기 안에 내재된 ‘진짜 모습’이다. 그래서 수련도 그 원신을 갖추기 위한 깨달음을 얻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이 ‘깨우침’이란 것은 저마다 각기 각양각색이다. 완전히 깨우친 자는 자신의 극[極]에 도달해 원신(진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우사로 치자면 천룡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천룡의 모습이 우사의 원신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 반대로 깨우침을 잊은 자는 스스로의 원신을 잃게 된다.
현재의 우사는 둘 중에 정확히 어떤 상태일까. 애초에 깨우침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깨우침을 잊은 상태인 걸까.
둘 중에 무엇일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확실한 건 그 깨달음을 얻을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거다.
꿈에 의하면 우사는 멀지 않은 미래에서 모든 깨달음을 얻고 천룡으로 승천한다. 그리고 그 직후에 나를 찾아선 강제적인 재회를 이루고, 나는 그 직후 죽었을 거다. 그 재회의 순간이 꿈의 마지막이었으니 말이다.
공간 전이 술법을 시전하기 위해 우사가 선기를 흘린 순간 내 상념은 끝났다. 그 선기의 궤적을 따라 피어나는 법진들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나와 우사 앞에 수 개의 법진이 피어났다. 동시다발적으로 그려진 법진들은 완성되기 무섭게 화르륵 무너져 내렸다. 그 무너진 자리에 새카만 구멍이 생겨났다. 우사가 선술을 통해 불러온 공간의 일부였다.
우리가 서 있는 공간과 그 새로운 공간 사이에 있는 경계가 한순간 겹쳐졌다. 이제 나와 우사는 두 개의 공간에 동시에 있는 셈이 됐다. 정확히는 두 개의 공간에 전부 있으면서, 전부 없는 거다.
공간의 경계에서 양쪽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단 건, 한 마디로 불완전한 양다리를 걸치는 중이란 거다.
우사가 불러온 공간이 스스로 확장되고 축소되길 반복하며 뒤틀린다. 벽면이 갑자기 코앞까지 확 왔다가, 다음 순간엔 훅- 멀어진다. 막힌 벽면이 부서지며 하늘이 열렸다가, 지면이 솟아오른다.
저 공간 자체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뒤져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우사의 선력이겠지.
얼마 있지 않아,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종유석이 위에서 내려왔다.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갈고리 끝에 호리병이 걸려 있었다.
[저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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