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흘깃거리는 내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우사가 눈동자만 굴려 곁눈으로 나를 본다.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주자,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바로 시선을 돌려 버린다.
그래도 계속 빤히 쳐다보자 목이 뻣뻣하게 굳는 게 보인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앞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흠흠. 진연.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떤지 말해 보거라.”
한 손에 서책을 받쳐 든 스승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흘려듣는다는 건 어쨌든 겉으로 듣긴 했다는 거라 수업의 흐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내겐 이 모든 게 두 번째라서 스승님이 수업을 통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
스승님이 말하는 주제의 대부분은 ‘조화’다.
‘서로 어우러지는 것’.
그 가르침은 스승님의 생을 일축한 것이기도 했다.
영물을 제자로 들이는 것부터가 전례에 없던 일이다. 협행하는 이들 중 요괴와 귀신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 선사는 스승님뿐이었다. 인간을 해치는 사악한 요괴도 그 사정을 알아보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모든 만물이 스승님 앞에선 평등하고 공정했다. 제자 간의 편애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 편애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신기한 일이다. 단애약수를 마신 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웠다.
역시 그걸 마시는 게 정답이었어. 이제는 아무것도 밉지 않다.
“세나귀, 세나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스승님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운다.
“세나귀…, 세나요?”
“세상에 나쁜 귀신은 없다. 그리고 세상에 나쁜 요괴도 없다.”
“…….”
스승님의 눈빛이 짜게 식는다.
“줄여 말하지 마.”
가볍게 주의를 준 뒤 다시 훈화를 이어 간다.
다시 시작된 자장가에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힐끔 눈을 굴렸다. 우사는 똑바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
분명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었는데. 내 착각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훈화가 끝나고 스승님이 우사만 따로 사실[私室]로 불렀다. 늘 있는 일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혼자 한실[閑室]에 남았다.
단애약수를 마시기 전이었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이미 사학당을 벗어났을 거다. 한실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싫어서 우횡산을 방황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밖에 나가 봐야 춥기만 하다.
하릴없이 한실에서 뒹굴거리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왜 가끔씩 우사만 사실로 부르는 걸까? 죽기 직전에도 우사에게만 따로 뭘 챙겨 주더니, 나 몰래 무슨 비급이라도 가르쳐 주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그럴싸한 추론이다.
치사하게 제자 간에 차별을 두다니.
결심은 빠르고 행동은 그보다 더 빨랐다.
생각과 동시에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허공을 밟으며 위로 올라가 천장에 두 손을 갖다 댔다. 이 초가집을 관리하는 건 나고, 수리도 대부분 내가 도맡고 있다. 그래서 스승님도 모르는 빈 공간을 알고 있다.
법술로 기척을 완전히 없앤 뒤 천장을 열었다. 그러자 지붕과 아래 가벽 사이에 좁은 틈이 나타났다.
틈에는 방부재[防腐材] 성질의 물이 얕게 차 있었다. 지붕으로 덮은 짚이 너무 빨리 썩어서, 그 썩는 기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기 위해 넣은 약수였다. 이 물을 가까이에 두면 보존 기간이 조금이나마 늘어난다.
천장과 지붕 사이의 틈으로 기어 올라가 낮게 포복했다. 방부수([防腐水]방부재 성질의 물)가 내 움직임에 따라 일렁인다.
사실은 한실의 바로 옆이라 오래지 않아 도착했다. 아직까진 스승님과 우사에게 들키지 않았다. 내 움직임을 읽는 게 느껴지지…….
…아. 방금 우사가 눈치챈 것 같다. 역시 영물의 기감은 속일 수 없는 건가. 그래도 스승님은 아직까진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나는 매번 사학당을 뛰쳐나가기 바빴으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거다.
나도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벌써 두 번째다. 단애약수에 이어서 지금 난 또다시 운명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시작은 단애약수였고 거기서부터 운명의 흐름이 새롭게 바뀌기 시작해 지금, 이 두 번째에 이르렀다.
사실의 천장 틈새에 엎드려선 아래에 집중했다. 들키지 않게 법진도 내 두 눈의 동공에만 그렸다.
단전의 내공이 아주 조심스럽게 운공 되며 법진에 내력이 흐른다. 하도 집중하느라 저절로 미간이 모이며 눈썹이 찡그려졌다. 곧 법술이 시전 되며 두 눈에 뭔가 보였다.
나는 엎드린 천장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
두 눈이 크게 떠지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뒤이어 천장 바닥을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게 떨리는 손끝을 오므려 꽉 주먹 쥔 뒤 그대로 크게 휘둘렀다.
콰앙-!
굉음과 함께 천장이 부서져 내렸다. 산개하는 파편과 함께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다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려, 허공을 딛고 섰다.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옷자락이 은은히 펄럭인다. 나는 내가 딛지 않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실에 딱 맞은 크기로 커진 우사가 거기에 있었다. 스승님은 커진 우사의 몸통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사에게서 흘러나온 피에 몸을 반만 담근 채 말이다.
우사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동공이 풀려 있다.
“연아.”
날 보고도 스승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다 못해 나른한 어투로 나를 불렀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날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젠 창문으로는 성에 안 차서 천장으로 드나드는 것이냐?”
우사의 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변명은커녕 도리어 나를 힐책한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스승님이 천천히 시선을 내리뜬다. 두 손을 모아, 움푹 모아진 손안으로 우사의 핏물을 떠내며 입꼬리를 호선으로 가늘게 휜다.
“다시 배워야겠구나.”
스승님이 내게 말했다.
“…어째서, 설마 계속-,”
드문드문 이어지는 목소리 끝이 희미하게 떨린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맞닥뜨려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늘 말하지 않았더냐. 가장 중요한 건 ‘조화’라고. ‘조화’는 ‘안정’을 불러오는 법이지.”
‘안정’이라니. 제자의 피로 하는 목욕으로 무슨 안정을 취한다는 말인가.
“……우사의 피에 무슨 효험이라도 있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에 스승님이 느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와 우사에게 있어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내원근’이지.”
요, 마, 귀, 그리고 신선과 선인이 운기하는 곳을 내원근이라고 한다. 범인[凡人, 보통의 사람]에게 있어서 단전 같은 곳이다.
“내원근을 정양해 주는 것이 ‘정기’이다. 선기의 근본이 되는 기운이지. 그 ‘정기’를 가장 극대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더구나. 우사가 그 나름 효도를 하는 셈이지.”
‘효도’라는 말에 순간 숨이 막혔다.
아연하다.
“스승을 위하는 마음이 갸륵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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