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위하는 마음이요?”
“내 내원근은 타고나길 약해, 한 번씩 이렇게 해 줘야 더 오래 너희들 곁에 있어 줄 수 있으니까. 따져 보면 내 자신을 위한다기보단…….”
손을 휘둘러 허리께까지 차오른 피를 찰랑거리며 스승님이 말했다. 겉옷은 벗었는지 내의만 입고 있었다. 본래 새하얬을 내의는 우사가 흘린 피에 젖어 온통 빨갰다.
“…우리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픈 우사의 마음을 내가 위해 주는 거겠지.”
“우사가 스스로 원한 일이라고요?”
나른한 어조로 잇는 말을 도중에 끊으며 물었다.
“그래.”
스승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 사제가 어떤 아이인진 연아,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느냐?”
“……저는 오늘의 일을 지금 처음 알았어요.”
“우사가 네게 말하지 않은 건, 우사 또한 네가 어떤 사형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
‘네가 어떤 사형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
그 말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꽂혔다.
나는 무언가를 더 묻는 대신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핏물이 묵직하게 출렁인다. 내 종아리까지 고여 있는 우사의 피에는 황금색 빛무리가 흐르고 있었다. 저 황금빛이 ‘정기’인 건가.
갑자기 뛰어내린 탓에 피가 내 뺨까지 튀었다. 스승님이 골치 아프단 듯 날 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래. 기어코 들어올 줄 알았다. ‘정기’라고 하니까 좋아 보이든? 어차피 내원근 없인 소용없는 것인데 ……이번만이다.”
나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스승님을 향해 다가갔다. 스승님은 다가오는 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정신 사납단 듯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얼마간의 거리를 남겨 둔 채 나는 몸을 살짝 낮췄다. 일순 주변의 핏물이 낮게 일렁이며, 그 안에 담긴 ‘정기’가 요동쳤다.
내 내공에 일순 정기가 맺히며 내 뜻에 따라 내가 원하는 법진을 순식간에 그려 냈다.
다음 순간 나는 스승님의 품에 안겨 있었다. 스승님은 쇄도해 온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네. 이번까지만이에요.”
스승님의 어깨에 턱을 얹은 채 말했다. 내게서 만들어진 검강이 나를 중심으로 고슴도치 가시처럼 뻗어져 있었다. 스승님의 등 너머로 수 개의 검강이 관통해 나와 있었다.
검강에 둘러진 법진들이 황금색 빛무리를 흩뿌린다.
“끄윽…… 커헉-.”
귓가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의 몸이 힘없이 바르작거린다. 의미 없는 몸부림이다. 날 밀어내야 할 두 손은 이미 검강에 꿰뚫려 있다. 양팔은 좌우로 넓게 벌려진 채 검강에 꿰어져 있다.
“스승님이 보시기에, 이젠 제가 어떤 사형으로 보여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스승님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내 몸 위로 흐른다.
스승님의 피를 덮어쓰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건, 스승님과의 지난 인연이 내 발목을 붙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부 단애약수의 덕이다. 단애약수는 내 눈을 절반만 가려, 스승님과의 인연은 보이지 않게 해 줬고 스승님이 지은 죄만을 판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단애약수로도 미처 지워지지 않는 게 있단 것도 내게 알려 줬다.
마음보다 더 내밀한 곳에 각인되어 있어서, 그래서 지워지지 않은 걸까.
‘네가 어떤 사형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
한 번 꽂힌 그 말이 귓가에 이명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나를 단번에 잡아끈 게 그 말이란 게…….
…아니, 아니다.
내가 스승님을 죽인 까닭은, 스승님이 지은 무도한 죄가 가장 큰 이유다.
“끄르륵-. 크흑…….”
처참한 소리와 함께 스승님이 절명했다. 이번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은 거다.
영물의 피로 목욕하다니. 이건 선인이라고 할 수 없다. 마교의 악인이나 할 짓이다.
스승님은 선인이 아니었다.
천천히 스승님의 품에서 나왔다. 순식간에 검강이 사라지며 요동치던 정기도 잠잠해졌다.
지지대가 사라진 스승님의 몸이 아래로 힘없이 쓰러진다. 우사의 피에 반쯤 잠긴 스승님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내공에 정기가 맺히는 기적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죽이지 못했을 거다.
슬프지만 비탄은 없다.
“……엉망이네.”
방 안 전경을 둘러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 * *
우사는 반나절 만에 정신을 차렸다.
줄곧 정신은 깨어 있었던 것 같은데 초점이 맞지 않았었다. 혹시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실에서 늪으로 옮겨온 참이었다.
이제야 눈에 이지가 맺히고 우사가 몸을 꿈틀거렸다. 몇 번 들썩이며 움직이더니 몸체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마침내 내 손바닥만 한 크기가 되자마자 순식간에 늪 아래로 가라앉았다.
거대한 연못 크기만 한 늪이었다. 그 주변을 칙칙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풀은 썩어 가고 진흙은 기분 나쁘게 물컹거렸다.
늪 주변은 항상 안개가 옅게 고여 있어서 축축하고 스산했다. 간혹 물이 일렁이는 소리만 들릴 뿐 늘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가끔 소름 끼칠 때가 있다.
여긴 이상할 정도로 벌레가 없다. 서서히 죽어 가는 것들만 있을 뿐이다. 혹은 이미 죽어 썩었거나.
처음 만났을 때 우사는 여기서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런 우사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 운명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도 몸에 진흙이 닿는 게 싫어서 허공에 떠 있다. 우사가 가라앉은 지점 바로 위의 허공에서 한 손을 뒷짐 졌다. 뒷짐 지는 게 습관이 된 건, 뒷짐 지고 있는 스승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스승님의 등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는… 나의 이상이었으니까.
사학당에 남겨 두고 온 일들이 내 신경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미간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깊은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던 손을 그대로 올려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손도 같이 뒤로 넘겨 목덜미를 꾹꾹 누르며 지압하다가 스르르 팔을 내렸다. 늪 아래에서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늪에서 나올 생각이 들었나 보다. 오래 있지 않아 늪 위로 작은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우사’다.
훗날 우사는 천룡이 되며 이름을 바꾼다. 그땐 스승님이 지어 준 이름을 아명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에 의문이 든다. 정말 아명으로 남겨 뒀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남겨 둔 게 아니라 버린 게 아닐까.
회귀 전에도 스승님은 죽기 직전까지 우사만 따로 불렀었다. 그 기억 위로 우사의 피로 목욕하던 스승님의 모습이 겹친다.
…정말 버린 게 맞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버릴 것이지. 우리의 인연이 뭐라고 그런 짓까지 감내한 거야. 그렇게 대단한 것도, 좋은 인연인 것도 아닌데.
[…정말 끝났어요?]
긴 침묵 끝에 우사가 물었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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