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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1화 (11/141)

<11화>

“응. 내가 끝냈어.”

눈을 살짝 내리깔며 답했다.

우사의 희생도, 스승님의 목숨과 그 죄업도, 우사가 붙잡으려 했던 사제지연도 전부 다 끝났다.

[왜요?]

“…내가 이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형이 아니어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가라앉은 목소리는 한숨을 닮아 있었다.

[……그런 사형이 뭔데요?]

“음……. 그보다 아까 거들어 줘서 고마워.”

우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사도 나름 스승님에게 원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런 짓을 당하는데 마음에 응어리 하나 없는 게 이상한 거다.

사실에서의 결정적인 순간에 요동치던 정기를 떠올렸다. …그걸 생각하면 우사는 스승님을 미워하면서도 ‘사제지연’을 놓지 못한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기야, 나와의 관계도 회복하려고 했던 녀석이니 그럴 법하다.

…사실, 어쩌면 우사도 계속 해방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얽매이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심정이 무엇인지 나도 안다.

아무튼 덕분에 검강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었다. 그 정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스승님을 죽이진 못했을 거다.

[제가 거들었다는 건,]

“별똥별은 이미 떨어졌어.”

우사의 말과 내 말이 겹쳤다.

[…….]

내가 하는 말의 중대함을 안 우사가 입을 다물었다.

“다들 봤을 테니 곧 움직일 거야.”

지고한 경지에 올라 선인이 되면 그 명[命]이 하늘에 수놓인다. 그걸 우리는 명성이라고 불렀다. 일종의 별[星]인 셈이다.

선인들은 각자 자기의 별이 있고, 천수를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다.

선인의 죽음은 대부분 마교나 귀신의 소행이라, 별똥별이 지면 수선맹에 속한 무림의 선문세가들이 앞장서서 그 이유를 추적한다.

이때 사대문파와 일방도 백[白]연맹 협약에 따라 그 추적에 협조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대대적인 추격전으로 번지게 된다.

그야말로 무림 공공의 적이 탄생하는 거다.

나는 마교의 마적은 아니지만 스승님의 제자였다. 제자가 스승을 해하는 건 이유 불문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다. 잡히면 분명 오체분시 되어 죽을 거다.

죽지 않는다면… 적어도 벽곡의 무량감옥에 갇히겠지. 듣기론 멀쩡한 사람도 미쳐서 나가는 곳이라던데. 내가 그곳에 들어가면 필시 귀신이 될 거다.

그렇다면 이제 내 끝은 못 해도 귀신이 되는 건가.

속으로 차갑게 비소했다.

오연을 죽인 시점에서 내 끝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든, 내가 스승님을 죽인 죄를 지었다는 건 불변하지 않는 진실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죄에 잠시간 유예를 둘 생각이다.

썩 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도 한 참이니, 그래도 그 근처는 가 보고 죽어야지. 회귀 전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고 말이다.

설령 좋지 못한 끝이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이 삶의 마무리는 잘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귀찮게 달라붙는 날파리들부터 적당히 잘 피하고 물리쳐야겠지.

나는, 회귀의 이유를 찾기 전까진 붙잡힐 수 없다.

[……사형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뭘?”

[과정이야 어떻든 스승님을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지금 왜 스승님을 죽였냐고 묻는 건가?

[사형은 …괜찮아요?]

우사가 재차 내게 물었다.

대체 뭘 괜찮냐고 묻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대략 짐작이 가긴 하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어볼 것도 없이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해도 괜찮으냐’, ‘스승님이 그렇게 되었는데도 괜찮으냐’라는 말이겠지.

“사제야말로 괜찮아? 이제 쫓아다닐 사람도 없잖아.”

나도 모르게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한 말이긴 한데, 내가 듣기에도 내 인성에 탄복할 만한 말이다.

미치겠네.

폐물 스승한테 걸려서 이때까지 학대받은 애한테 할 말은 아니잖아. 게다가 난 그 폐물 스승의 악질 제자인데 말이다.

잠시 참회한 뒤 아까 한 말을 덮을 만한 말을 속으로 고르는데,

[사형. …사형이 있잖아요.]

우사가 말했다.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이었다.

“…….”

하려던 말들이 순간 전부 잊혀졌다. 나는 천천히 내려가 늪의 수면 위에 섰다. 고요하게 흐르는 수면에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서서 우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될 거야. 죄다 눈이 벌게져선 날 잡으러 달려올 텐데.”

[…….]

“그냥 이참에 자립해.”

단순명료하게 말한 뒤 시선을 비스듬히 틀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진 조용하지만 이건 폭풍전야의 고요다. 조만간 날 잡으러 개떼처럼 달려들 거다.

“아무튼 깨어난 거 봤으니 난 간다. …혹시라도 이 일로 빚졌다곤 생각하지 마. 이건 그냥 지난 일에 대한,”

[망설이지 않았잖아요.]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우사가 똑똑히 말했다. 날 올려다보는 우사의 몸에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차츰 인간과 외형이 비슷해지더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이 되었다. 내가 지금 열여섯 살이니까 거기서 무조건 한 살 줄여서, 우사의 저 모습은 열다섯 살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현재 우사의 모습은 예전의 열다섯보다는 인간의 모습에 더욱 가깝긴 했으나, 아직은 불완전했다.

늪의 호수에서 천천히 올라와 나와 대등하게 마주 선 그 아이는 백의를 입고 있었다. 선력으로 만든 모양이다. 겉에 걸친 장포가 은은히 펄럭일 때마다 청아한 기운이 퍼졌다.

우사의 동공은 파충류처럼 세로로 길고 청록색이었다. 피부는 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다.

왼쪽 눈 아래에 비늘 하나가 거꾸로 나 있었는데, 뱀의 비늘인 그것 역시 청록색이었다. 새하얀 피부 때문에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무엇보다도 거꾸로 나 있는 모습이 뒤집힌 눈물을 연상시켰다.

“처음에도 이번에도, ……왜 매번 망설이지 않는 거예요?”

순수한 의문이라기엔 살짝 찡그려진 눈매가 괴로워 보였다.

“널 도운 거 말이야?”

우사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요. …사형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아야, 마음을 확실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조금만 더 사형을 곁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결국, 곁에서 날 지켜보며 판단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거잖아.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서선 우사를 보았다. 우사는 뻔뻔한 낯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한 말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표정이다.

나는 인상을 쓴 채 고민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지만, 쟤와 나 사이에 얽혀 있는 걸 생각하면…….

그래, 우리가 보통 인연이 아니란 건 알겠다.

‘꿈’을 생각하면 우사와 멀어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게 바뀌었다. 나는 단애약수를 마셨고, 또 우사에게 사형제지연을 약속한 뒤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사의 이 제안이 어쩌면, 훗날 회귀의 인과를 알려 줄 열쇠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회귀 직전의 나는 우사와 함께 있었고, 재회한 그때에 회귀해 지금의 ‘과거’로 돌아왔다. 아니, 과거가 아니지.

지금은 내 새로운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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