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동행의 승낙까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 모습으로 다닐 거야?”
“이 모습은 싫으세요?”
“아니, 눈에 띄잖아. 좀 더 인간같이 변해 봐.”
내 말에 우사가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몸을 둘러본다. 스스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다.
나는 뒷짐 지지 않은 손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손끝을 밑으로 향하게 둔 채 내력을 흘려보내자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 있는 늪의 호수가 거칠게 물결친다. 이내 단번에 팔을 위로 내젓자 아래의 호수 물이 내 손끝을 따라 위로 솟구쳤다.
물은 나와 우사 사이를 정확히 갈랐다. 물방울이 산발적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허공에 남아 부유했다.
“네 눈동자 색과 눈가의 비늘을 어떻게 할 순 없어?”
허공을 턱짓하며 물었다. 우사와 나 사이, 허공에 자리한 물의 장벽은 어설프게나마 면경 대신이 되어 줬다.
제 얼굴을 확인한 우사는 곧바로 눈동자 색을 바꿨다. 그리고 눈가에 거꾸로 돋은 비늘에 손을 댔다가 이내 내렸다.
“이건 없앨 수 없어요.”
“왜?”
손을 휘저어 물의 장벽을 무너트리며 물었다.
거꾸로 돋은 비늘은 크기는 작았지만 피부가 워낙 희고 깨끗한 데다가 이목구비가 수려해서 그런가. 이상하다기보단 화려한 인상을 줬다.
“진신(신선, 선인의 본원)의 역린이라…….”
비스듬히 눈을 내리깔며 우사가 답했다.
‘진신’이면 ‘본원’이잖아. 저 비늘이 본원의 역린이라고?
그렇지만 회귀 전 마지막으로 본 우사의 얼굴엔 저런 건 없었다. 천룡이 되면서 역린을 숨기는 데 능해졌다 하기엔 천룡이 되기 이전에도 없었던 것 같은데?
회귀 이후엔 이렇게까지 인간에 가깝게 변용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헷갈린다.
…으음. 잘 모르겠네. 있었나, 없었나?
꿈속에서도, 그리고 회귀한 현재의 어제까지만 해도 우사를 외면하고 괴롭히는 데에만 급급해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사형이 보기에 많이 이상한가요?”
다시 눈을 들어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우사가 물었다. 그 곧은 시선엔 왠지 모를 힘이 있었다. 마주하고 있으면 섣불리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단애약수를 먹기 전까지만 해도 그 사로잡히는 느낌이 싫어서 일부러 우사의 눈을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내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흐려졌다.
우사와의 거리를 성큼 좁히며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동글고 검게 변한 동공이 미미하게 흔들린다. 당황한 눈치다.
“내 눈은 신경 쓸 거 없어.”
“…….”
우사는 말없이 눈을 굴리더니, 이내 시선을 떨구었다. 긴 속눈썹 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속눈썹도 엄청 기네. 얘는 대체 안 예쁜 구석이 어디야?
우사의 시선을 따라 나도 힐끔 시선을 내려, 그 눈가의 뱀 비늘을 보았다.
귀신이나 요괴가 아닌 영물이라 그런가. 청아한 기운만 느껴진다. 하긴, 뱀의 모습일 때도 기[氣] 하나는 맑고 순수했었다. 이런 음침한 늪지대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영물이라도 조금은 탁해질 법도 한데.
꿈에서 보았던 성인 모습의 우사도 내뿜는 기운이 음산하고 무겁긴 했지만 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마냥 청아한 것도 아니었다. 청수함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재회한 우사는 마치 검게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모든 것을 새카맣게 살라 버리는 불길은 어떤 의미론 정화 그 자체였다.
“이건… ‘상처’라고 하자.”
우사의 눈가에 있는 역린(뱀 비늘)을 보며 말했다.
“……상처요?”
“응. 상처가 흉터로 남은 거지. 만약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
“네.”
우사는 얌전히 대답했다. 이렇게 말 잘 듣는 걸 보면 아직까진 순한 상태인 우사다.
그냥 서 있는 자세도 참 아정하다. 이제까지 지켜본 바론 나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으니 괜한 사고도 안 치겠지. 게다가 운과 기연이 몰빵된 ‘주인공’ 아닌가.
좋아, 이참에 그 운수 대통함을 나도 한 번 곁다리로 누려 보자.
“그럼…, 어디로 갈까?”
의식적으로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사실 나 나름대로 생각해 둔 데가 이미 있긴 하다.
거창한 건 아니고, 회귀에 대해 생각하다 결정한 곳이다.
‘회귀’란 술법 자체가 금지된 술법이란 것에 착안한 거다.
금지된 술법 하면 통상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귀곡’, 그리고 ‘마교’다. 그러니 귀곡과 마교부터 우선 뒤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이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지금은 우리의 앞길을 우사의 운에 한 번 맡겨 볼까 싶다.
‘주인공’에겐 천운이 따르는 법이니까.
“동서남북 중에 골라 봐.”
* * *
하늘에 별 하나가 졌다.
별똥별이 떨어지며 남기는 그 긴 잔흔의 끝에 별의 주인이 있었다.
각 선문세가의 후지기수와 문파의 주[主]들은 그 잔흔을 쫓았다. 그 결과 우횡산에서 한 선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오래된 초가집 안에서 피에 잠겨 죽어 있는 그 선인은 ‘오연’이었다. 공명정대함과 자비심으로 이름 높은 이였다.
오연이 잠겨 있는 피는 영물의 것이었다.
저명한 법술사들이 대대적으로 법술을 펼쳐 오연의 시신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내려 했다.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범인을 알아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일부는 순간적으로 청록색의 길쭉한 동공을 보았지만, 뇌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 본 것을 잊었다.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이대로 선인의 죽음을 묻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는 정파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들은 사학당의 좁은 앞마당에 모여 앉아선 며칠을 논의했다.
그러던 중에 어느 가문의 준걸이 ‘직접 수사’를 제의했다. 그는 ‘오연에게는 제자가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오랜 기억을 더듬어 한 소년을 떠올렸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오연의 우횡산 은거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오연은 그 누구와도 친분을 맺지 않았다. 곤륜산에서 수학할 때도 대부분 혼자였다.
누구도 옆에 두지 않던 오연이 처음으로 곁을 내준 게 그 소년이었다.
그 자리의 모두는 분명 그 소년이 이 사건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연이 죽은 이곳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결국 며칠하고 반나절 만에 결론이 내려졌다.
곤륜산의 이목, 남궁세가의 남궁정, 연화산문의 설휘랑, 제갈세가의 제갈련옥, 사천당문의 천청.
현 강호의 정파를 대표하는 백[白]연맹에 속한 가문들이었다.
그 가문의 후지기수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지엄하고도 중대했다. 또한 그 스스로의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외행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도맡아 수사하라는 강호의 부름에 그들 모두가 기꺼이 응했다. 더러는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끼는 놈들도 있었다.
진상 규명이 안 되는 죽음이야 강호에 널리고 널렸다지만, 그 피해자가 선인이라면 말이 달랐다. 게다가 법술사의 법술이 통하지 않는 죽음이라니. 이건 정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선인의 죽음을 수사해 그의 억울함을 밝혀 주기만 한다면, 이미 진 별을 다시금 밝혀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보다 더한 명성 쌓기는 없을 거란 생각에 모두가 눈을 벌겋게 뜨고 이 일에 달려들었다.
비로소 우횡산 ‘명성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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