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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3화 (13/141)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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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는 동서남북 중 한 곳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쭉 쫓아 온 곳이 여기, 남해였다. 이곳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울창한 수림이 나온다. 덥고 습한 수림과 경계를 맞댄 곳이 바로 사천이다.

그리고 그 사천 근처에 귀곡이 있다.

동서남북 중 한 곳을 고르란 것뿐인데 이렇게 방향을 잘 잡다니. 이제 귀곡과 마교를 뒤지는 건 당연히 잇따르는 수순이 되었다.

남해까지 오면서 나는 우사에게 어떠한 자세로 이 동행에 임해야 하는지 알려 줬다.

첫째로 어떤 일이 닥쳐도 나서지 말고 내 의사를 따라야 하며,

둘째로 이 동행에서 가장 우선되는 게 내 의지와 뜻이니, 이에 반한다는 건 내 곁을 떠나겠다는 것과 같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행보에서 우선해야 할 것이 뭔지 알려 줬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제일 중요한 건 정체를 숨기는 거다. 선문세가와 정파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잡히지 않는 것.

희망적인 것은 그들이 우리의 인상착의를 잘 모를 거라는 데 있었다. 우리는 우횡산에서 은거 중이었다. 아직은 나나 우사가 선문세가, 정파와의 접촉이 거의 없을 때란 거다.

그러니 정파의 추적을 피하는 건 생각보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파를 따돌리는 일은 대외적으로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인 거고, 실상 가장 우선시되는 건 회귀의 이유를 찾는 거다.

그게 이 동행의 핵심이다.

우사에겐 이 내적 목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 말도 안 한 건 아니고. 혹 회귀의 술법에 관해 뭔가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초장에 슬쩍 떠봤다.

기왕에 같이 동행하는 거 미리 물어보는 편이 시간 낭비도 안 되고, 뭔가 아는 게 있다면 일에 추진력이 붙을 테니 말이다.

내 선에선 다 이유가 있는 물음이었지만, 듣는 우사에겐 난데없는 질문이었는지 낯빛이 일변했다.

그 낯에 처음 떠오른 건 의심이었다.

나와 회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뭔가 쓸데없는 짓을 하진 않을까’에서 오는 경계성 의심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우사가 의심한 건 ‘앞으로 내가 회귀할 가능성’이었을 거다.

우사는 의아함과 의심이 섞인 눈초리로 날 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묻는 말에 대한 대답보단 충고에 가까웠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진 않아요. 설령 그 시간들을 전부 없던 걸로 만들어 버린다 해도 말이에요. 한 번 생긴 업은 본신(인간의 본원)에 새겨지니, 그건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나게 될 거예요. 본신의 상흔은 육신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니까요.’

‘영향이라면 어떤 식으로?’

내가 묻자 우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령…, 이전엔 없던 표식이 몸에 생기거나 아니면 광기로 표출되는 식일 거예요.’

‘광기로 표출된다는 건… 미친다는 거야?’

‘네.’

그 대답에 나는 자연스럽게 우사의 역린을 보았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만일 회귀 전에도 있었다면 저렇게 겉으로 티가 나는 걸 몰랐을 리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회귀를 기점으로 생겼다는 건데. 그 일이 어떤 식으로든 우사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관계자는 우사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배움으로써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자연히 알 수밖에요.’

하늘의 섭리는 자연히 알게 된다는 우사의 말에 잠시 고심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사문 아래 똑같은 배움 속에서도 난 하늘의 섭리가 뭔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같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같을 수 없으니까.

사실 하늘의 섭리 말고도 내가 받아들인 게 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지나온 모든 게 갖가지 감정으로 덩어리져 있다.

그 안에 뜻도 있고 길도 있고, 배움과 우사가 말한 하늘의 섭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부 다 한데 뒤섞여 뭉개지며 의미를 잃었다.

지금 내 유일한 생의 목적은 ‘회귀의 원인을 찾아내 더 이상 생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잘 죽는 것.’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그 외에는 없다.

그런 나와 다른 이들이 같을 수 없다. 생을 대하는 상황과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뒤에 남겨 두는 것 없는 산뜻한 첫 시작이라 모든 게 새롭고 그 새로움 속에서 뜻과 길도 자연히 생겨나겠지만, 나는 아니다. 회귀 전의 일이 없던 일이 되진 않으니까.

한 번 끝맺었다 생각한 것들이 내 현생에 남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그 잔재들을 안다. 회귀를 기점으로 생겨난 우사의 역린을 나만 알듯이 말이다,

그 잔재가 회귀로 인해 다시 한번 펼쳐진 내 앞길을 희뿌옇게 덮었다. 그래서 지금의 난 그저 길을 잃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회귀라는 기연이 닿아 다시 생을 살게 됐어도, 정작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는 건…… 어쩌면 그게 우사가 말한 나의 ‘업’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왔기에 없어지지 않을 나의 업.

“사형.”

그 업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이가 나를 불렀다. 긴 상념에서 깨어나 우사를 돌아봤다.

우사는 혼자서 나와의 내적 친밀감이라도 쌓은 건지, 아니면 그저 ‘사형’이란 어감이 좋은 건지 나를 자주 불렀다. 마치 이제 막 ‘사형’이란 단어를 배운 아이 같았다.

“어. 네 사형 여기 있어.”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저잣거리를 걸었다.

때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 거리 양쪽에 좌판을 깐 상인들이 있었다. 가판에 펼쳐진 제각각의 물건들을 구경하며 한 손으로 금낭(돈주머니)을 던지고 받길 반복했다.

장이 서는 저잣거리엔 소매치기가 들끓기 마련이니 그들을 겨냥한 미끼였다.

참고로 이 금낭 안에는 돌 몇 개만 들어 있다. 돈이 없으니 이걸 이용할 생각이다. 누구든 훔치기만 하면 당장 잡아서 이 금낭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돈을 몽땅 물어내게 할 심산이었다. 그야말로 돌이 돈이 되는 창조경제다.

크- 으! 속으로 뿌듯한 감탄을 내뱉었다. 내가 생각해 낸 계책이지만 정말,

“이건 도의에 맞지 않습니다.”

속으로 자화자찬하는 내 곁에서 우사가 초를 쳤다.

“그래서 도의 없는 놈들 상대로 하는 거잖아.”

“…상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형.”

아까보다 강경하게 말해 오는 우사에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공중에 던진 금낭을 낚아채 잡으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사를 돌아봤다.

“도의라면 내가 너보다 더 질리도록 배웠어.”

“그렇다면 왜 배운 걸 지키지 않는 건가요?”

우사 특유의 낮은 목소리는 언제나 건조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약하게 격앙되어 있었다. 고운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그 속에 의문과 약간의 질책이 서렸다.

하여간,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의 도의는 엄청 따지네.

“배움이란 지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니까. 사제, 만물의 생김새가 제각각 다르듯이, 모든 만물이 한 가지 도의만 갖고 있진 않아. 모든 것이 제각각이지. 그러니 이건 내 도의이고, 사제는 사제만의 도의를 찾아.”

“…….”

내 말에 우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뒤 대답을 기다렸다.

그사이 거리가 점점 북적이며 인파가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내 손에 있던 금낭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사가 한 팔을 높이 들었다. 그 손에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목이 움켜쥐어져 있었다.

“캑-. 윽-.”

허공에 뜬 소년의 두 발이 다급히 바둥거린다. 목이 졸려 겨우 신음을 내는 얼굴은 새빨갛고, 두 눈은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나는 우사가 애 하나 잡는 걸 망연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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