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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6화 (16/141)

<16화>

“왜 갑자기 나서서,”

왜 갑자기 나섰냐고 따져 물으려고 했다. 네가 나서는 바람에 일만 커졌다고 말하려 했는데,

“사형이라면 방금의 무례를 참고 넘어가라 말할 테니까요.”

우사가 눈을 살포시 내리깔며 먼저 답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 제가 먼저 손썼어요.”

뒤이어 이어진 이실직고는 간결했다.

“뭐?”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우사의 담담한 어투에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도배되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한 거 맞나?

“……그러니까, 내가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먼저 선수 친 거라고?”

손을 들어 우사를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정당방위였어요.”

방금까지만 해도 당당했으면서, 이제 와서 은근히 자기변호를 한다.

슬쩍 내 눈치를 보는 우사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 그러니까 결국은 나를 위하는 마음이 넘쳐서 나섰다는 거잖아. 어쨌든 그것도 정당방위의 범주 내였으니 자신은 거리낄 게 없다는 거고.

하지만 난 그런 걸 원한 적 없다. 지금 우사가 내게 한 짓이 남여연이 우산을 빌려주겠다고 오지랖을 부린 거랑 뭐가 다르냔 말이다.

“하아……. 일단은, 그래, 일단은 알았어.”

가는 숨을 내쉬며, 우사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지그시 오므려 꽉 주먹 쥐었다.

대체 내가 지금까지 말한 규칙을 뭘로 보는 거냐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 우리 상황이 어떤지 알고는 있냐고 묻고 싶은데 자꾸 말문이 막힌다.

많은 말들이 목 언저리를 맴돈다.

나를 대신해 참지 않았다는 그 속뜻이 가슴 안에 얹힌 것 같다.

우사는 그런 날 보며 뒷말을 마저 이었다.

“저는 지나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형.”

그 모습이 무척 아정하고 정숙해 보였다.

미치겠네, 진짜. 다른 한 손으로 목뒤를 꾹꾹 지압하듯 눌렀다.

“후-.”

긴 숨을 내쉬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혼란함이 가시자 생각이 대충 정리됐다.

진지한 표정으로 우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나치든 지나치지 않든, 내가 말한 규칙들이 가장 우선이야. 지키지 않을 거면 내 곁에서 떠나.”

그 말에 날 보는 우사의 눈빛이 한 차례 일렁인다. 낯빛도 조금 창백해졌다.

“……사형.”

날 부르는 우사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다. 나는 가는 숨을 내쉰 뒤 이어 말했다.

“곁에서 날 보고 싶다고 했지?”

“…….”

“그럼 보기나 해.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순간 우사에게 저질렀던 지난 모든 만행이 떠올랐다.

“……그리고 네가 나서지 않았어도 내가 알아서 손썼을 거야.”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읊조리며 한쪽 무릎을 굽혔다.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든 남여연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보기엔 마른 체형인데, 마른 근육 체질인 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남여연을 재차 고쳐 안았다. 부러진 팔의 통증이 상당한 모양이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 발로 직접 남해검문에 가야 했다. 사제가 뿌린 똥은 사형이 치워야지, 뭐. 근방에서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남해검문 사람들도 그러길 바라는 듯하니.

“그럼, 남해검문으로 간다.”

먼저 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내게 공주님 안기로 안긴 남여연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입술 새로 앓는 소리가 미약하게 새어 나온다. 잠시 고민하다가 고통을 덜어 줄 겸해서 은밀히 혈을 눌러 아예 기절시켜 버렸다.

바로 정신을 잃은 남여연의 고개가 내 쪽으로 꺾였다. 내 가슴에 기댄 남여연은 더 이상 끙끙 앓지 않았다.

조용해지니 좀 낫네.

허공으로 가볍게 도약해 근처 전각 지붕에 착지했다. 일순 크게 펄럭인 옷자락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사형.”

뒤이어 전각 위에 선 우사가 나를 불렀다. 소매치기는 술법으로 허공에 띄워 둔 채, 내 앞에 서서 길을 막았다.

“비켜.”

길 막지 말란 뜻으로 비키라고 하자, 우사의 눈매가 살짝 이지러지며 눈꼬리가 아래로 쳐졌다. 냉하면서도 무구한 인상이 단번에 순해진다.

“…비키기 싫으면 앞장서던가. 남해검문이 어디에 있는진 알아?”

“……아니요.”

“그럼 비켜.”

나는 회귀짬밥으로 안다.

그런데도 우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승처럼 서선 내 앞을 막고 있다. 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어서 눈을 부라리자, 우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만회?”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형이 방금 제게 느꼈을 감정을 없애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다시 차분히 이어진 우사의 말은 예상치 못한 거였다.

“난…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

내가 답했다. 말 그대로 정말 별 감정 없다. 아까 일에 대해선 충분히 주의를 줬고 말이다. 속내를 진실 되게 말했는데도 우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다.

“제가 싫지 않아요?”

“안 싫어.”

깔끔히 답하며 턱 끝을 까닥였다.

“이제 됐으면 비켜.”

“…….”

대충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우사.”

이름을 부르자 우사가 움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우사란 이름이 새삼 걸린다. 자신을 학대한 스승이 지어 준 이름이라서 저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지난 일이 생각날 텐데.

좋지 않은 과거를 끊임없이 자극해 봐야 덧나서 트라우마로 남기만 할 텐데.

“…백아[白我].”

그래서 우사가 먼 훗날 스스로에게 붙일 이름으로 불러 줘 봤다.

“……백아[白我]?”

“우사[雨蛇]보다는 백아[白我]가 듣기에 더 낫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비는 멎어 있었으니까.”

우사를 처음 만난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비가 막 그친 뒤의 안개비로 온통 희뿌옇게 변한 세상이었다. 이후 안개비마저 멎고, 여운만 남은 백색 세상에서 우사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하얀색이거든. 네가 싫었으면 백아라고 부를 생각도 안 했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비켜.”

나름 의미를 담아 한 말이긴 한데, 말이 길어질수록 기적의 논리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우사는 알아서 잘 납득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곤 옆으로 비켜선다.

“저도… 더 마음에 들어요.”

내 뒤를 쫓아오며 우사가 작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다. 따져 보면 ‘백아’는 내가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나중에 우사가 지을 이름이었다. 먼 훗날 스스로에게 지어 줄 이름이니 본인 마음에 드는 게 당연하지.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며 허공을 박차고 달렸다.

저 멀리 있는 남해검문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제 우리가 밟은 똥이 얼마나 지독할지 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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