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사형, 술법을 못 쓰게 기운을 흐트러트린 건 분수였어요. …분수가 잠잠해진 지금은 술법을 쓸 수 있으니 저 목걸이를 가져올까요?]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우사가 전음으로 물어 왔다.
“아니. 목걸이는 두고 자리만 아예 바꾸자.”
내가 답하기 무섭게 우사가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뻗은 손바닥에서 선기가 흐르더니, 일순 화악 퍼지며 수 개의 법진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다음 순간, 내가 서 있던 공간이 뒤로 빠져나가며 어느새 나는 감옥 밖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남여연이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서로의 자리가 바뀐 거다.
“뭐야, 이건? 야!”
당황한 남여연이 소리 질렀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목걸이를 주워 들었다.
“이게 뭔지 말해 주면 꺼내 줄게.”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 목걸이 끈을 손가락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남여연은 인상을 구기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날 매섭게 노려보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건…… 오연의 혼이야.”
“…혼?”
“오연을 죽인 이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정파 몇이 그 혼을 긁어모아서 나눠 가졌어. 그건 그 혼의 일부이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남여연이 인상을 썼다.
“혼은 생전에 가장 가까이했던 인물에 반응하기 마련이거든. 나눠진 혼의 조각 중 하나가 그 인물과 조우하게 되면 반응을 하고, 그 반응은 나머지 조각들에도 일정한 표식으로 나타나. 그렇게 되면 혼을 나눠 가진 자들이 저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 대상을 추적할 수 있는 거지.”
이게…… 스승님의 혼 조각이라고?
저 말이 사실이라면 추적은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거다.
“……그럼 아까 강령술 이야기는 뭐야?”
“모두가 오연의 혼을 ‘추적’에 쓰진 않는단 이야기야. 그보다 더 효율적인 게 있으니까.”
“말해.”
내 단호한 어투에 남여연의 표정이 못마땅하단 듯 일그러진다. 그런 남여연을 향해 어서 말하라고 눈짓하자, 혀를 한 번 차더니 곧 입을 열었다.
“혼에는 일말의 기억이 잔흔으로 남아 있어. 그래서 그 잔흔으로 오연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낼 수 있고. 일종의 강령술인 셈이지. 그런데 강령술을 하기 위해선 매개체가 필요한데, 그 매개체가 바로 ‘혼이 생전에 가장 가까이했던 인물의 피’야.”
지금 남여연의 말로 보았을 때, 이미 남해검문의 장자는 나와 우사가 스승님과 연관되어 있다고 단정 짓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생전 가까이했던 인물, 즉 우사와 내 피가 필요하다, 이건가.
“너희들이 빙옥에 갇힌 게 형님의 작품인 것도 그런 쓸모 때문에서고…! 형님이 가지고 있을 혼 조각도 분명 반응했을 테니까…….”
뒤이어 이어진 남여연의 말은 내 추측을 뒷받침해 줬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제 알겠지? 알았으면 슬슬 날 좀 꺼내 주지 그래? 형님이 가지고 있는 혼 조각도 분명 반응했을 테니까, 곧 여기로 올 거야. 당장 날 여기서 꺼내!”
남여연의 외침을 무시하며 손안의 목걸이만 내려다보았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 혼이 반응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옆을 흘끗 쳐다보자, 우사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거 진짜야?”
의심하며 다시 묻자, 남여연이 성질을 냈다.
“진짜야, 멍청아! 당장 날 여기서 내보내!”
“…너, 먼 훗날의 이름을 자고[自高]로 하겠다고 했지?”
“그래!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다.
남여연이 그 자고[自高]였으니까.
회귀 전의 내가 아는 자고는 신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교묘하게 수를 쓰거나 장난질을 치는 경우가 많았던 인물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예 쓰레기인 건 아니고.
만일 자고가 사기꾼으로 이름을 날렸다면 은비여귀도 자고와 ‘거래’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 자고는 ‘거래’에 한해서만은 진중하고 확실하단 평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목걸이를 얻게 된 경위가 ‘거래’와는 상관이 없단 게 문제다. 그냥 일방적으로 얻은 것이니 애초에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크단 소리다.
곁눈으로 남여연을 흘낏 본 뒤, 보란 듯이 목걸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목걸이가 바닥의 빙석과 부딪치며 꿰어져 있던 유리가 그대로 산산이 깨졌다.
역시나.
자고가 자고했네.
“빙석보다 경도가 무른 혼이라.”
나는 팔짱을 끼고 낮게 이죽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곧 남여연이 제 소매 안에서 똑같은 목걸이 하나를 슬그머니 꺼냈다.
“……그으래, 진짜는 여기 있어. 이건 진짜야. 하지만 똑같은 수에 내가 또 당할 것 같아? 당장 날 여기서 꺼내 줘. 그렇지 않으면… 이거 삼킬 거다.”
말하는 남여연의 얼굴은 결연했다.
그에 우사가 자못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배를 가를 순 없으니… 만약 삼키게 된다면 변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형.”
우사의 그 말에 급작스런 피로감을 느꼈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죄다 귀찮아졌다. 이제는 저게 정말 오연의 혼이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다.
…상관하고 싶지도 않고.
오연의 혼을 이용해 우리를 추격해 온단 말에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나는 애초에 끝까지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스승을 죽인 데 대한 죗값은 받을 거다. 그로 인해 맞이할 죽음도 피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 죽음을 맞기까지의 유예를 스스로 둔 것뿐이다.
이 회귀의 원인을 찾아야지만 삶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이 추격을 피할 생각이었다.
“…이제 됐어. 마음대로 하라고 해. 먹든지 말든지.”
시큰둥하게 말하며 바닥의 부서진 유리 조각을 발끝으로 툭 찼다.
“뭐? 야! 어이! 이거 진짜 먹는다?!”
그런 나를 향해 절박하게 외치는 남여연을 무시하며 그대로 뒤돌아섰다.
“잠깐만! 설마 이대로 그냥 가 버릴 셈인 건 아니지?! 이대로 가 버리면 내 형님이 이 오연의 혼으로 강령술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시끄럽게 구는 남여연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대꾸했다.
“관심 없어.”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며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방금 한 말은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자 진실이었다.
“……그래도, …분명 너희와 공명했어.”
등 뒤에서 남여연이 말했다.
남여연은 오연의 혼이 우리에게 공명하고 있으니, 그와 우리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확실히 인연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인연들은 결국 허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가 예상치 못했던 밑바닥을 내보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습들은 전부 거짓이란 듯이 말이다.
나는 이제 오연이 어떤 군상인지도 모르겠다. 위선자, 쓰레기, …그 말들로도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오연과의 사이에 어떤 골이 있는진 몰라도, …그래, 하다못해 너희가 정파라면 선인을 욕보이는 걸 원치 않을 거 아니야? 도의를 안다면 멈춰.”
“…….”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사형.]
동시에 우사가 전음으로 나를 불렀다. 설마 저 얄팍한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라도 한 건가 싶어서 우사를 돌아봤다.
우사는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짙게 고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다음 순간, 공기를 찢으며 쇄도해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사가 내 앞으로 손을 뻗었다.
내 눈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을 땐 이미 그 길고 곧은 손가락 틈새에 비수가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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