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그걸 시작으로 발아래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비수들이 날아왔다.
피할 틈이 없었다. 때마침 다시 분수가 솟구쳐 오르면서 감옥 안 남여연의 모습이 가려졌다.
비수와 분수. 전부 다 바닥 아래의 어떤 기관장치가 조작되며 작동된 함정들이었다.
남해검문 지하 감옥 밑에는 기관 장치가 깔려 있었던 거다.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이 주변의 공기를 얼리기 시작했다.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우사가 내게 속삭였다.
“사형……, 추워지니까 졸려요.”
뭐?
본능적으로 두 팔로 우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우사가 내 허리에 한 팔을 둘렀다.
“잠 안 오게, 되도록 꽉 끌어안아 주셔야 해요.”
우사는 그대로 가볍게 지면을 박차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빌어먹을 분수 때문에 운공할 수 없는 나는 그 품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까마득하다. 여기서 떨어지면 성치 못할 거다.
감옥의 고도는 아주 높았고, 벽면은 깎아지른 석벽이었다.
한참을 위로 오른 우사는 비수가 날아들지 않는 지점까지 도약했다. 그러곤 그 벽면 중 튀어나온 부분의 가장자리에 사뿐히 발끝을 걸치며 섰다.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착지였다.
우사는 그 안쪽에 나를 내려놓으며 안은 팔을 풀었다. 그러곤 여전히 제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내 두 손을 잡았다.
“백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팔을 풀어내며 우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지? 등 뒤는 까마득한 어둠뿐이다. 게다가 나랑은 떨어지면 안 되잖아. 나와 떨어지는 즉시 잠들 게 분명한데…!
“안 돼.”
우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 없이 혼자서 내려가서 어쩌려고? 거기서 뭐 껴안을 만한 게…… 아. 남여연이 있었지.”
“…….”
하지만 걔는 감옥 안에 있지 않으냐고 물으려는데, 우사는 그새 나를 두고 말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직후 무언가가 부서지는 굉음이 여러 차례 울려 퍼지더니, 아래에서 남여연이 날아왔다.
마치 무언가에 던져진 모양새로 올라오며 다급히 허우적댔지만 끝내 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도로 추락하는 남여연의 목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반짝- 빛을 발한 건 목걸이였다.
나는 곧바로 남여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벽의 튀어나온 턱에 발끝만 걸친 채 아래로 몸을 내렸다. 그러곤 한 손으로 남여연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아슬아슬했다.
“형님이 왔어.”
날 보자마자 희게 질린 얼굴로 남여연이 말했다.
“여러 번 땅에 처박히던데……, 설마 죽이진 않겠지?”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며 무언가가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많이 다쳤어?”
내 물음에 남여연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남해검문의 유일무이한 후계가 된다면 그건 전부 다 네 사제의 공이야.”
“…….”
순간적으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한 박자 늦게 알아듣곤, 코끝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남여연이 내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내 손목을 마주 움켜잡았다. 서로의 손목을 맞잡은 형상이 되었다.
“이제 그만 끌어 올려 줘.”
나는 대답 대신 곧바로 몸 안의 단전을 운공했다.
남여연을 여기로 올려 보낸 건 우사일 테고, 순수한 힘만으로 던지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술법을 썼다는 소린데,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내공을 쓸 수 있을까 싶어 시도해 본 거였다.
하지만 여전히 운공이 되지 않았다. 아직 분수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여연은, 분수가 작동되는 감옥 안에서 어떻게 나온 거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순간, 남여연의 손목을 더욱 힘껏 움켜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곧바로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습관적으로 검을 꺼내 들려던 순간, 정사봉에서 하산하며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려던 그때, 손끝에 뭔가가 걸리며 만져졌다.
더듬었을 때 그려지는 모양만으로도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비수였다.
우사의 손가락 사이에 껴 있던 비수가 곧바로 생각났다. ……언제 챙겨 준 거지?
나는 암벽의 턱에 걸쳐 뒀던 발을 빼며 그대로 상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지지하고 있던 부위가 사라지며 한 몸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오른 무릎으로 상대의 복부를 찍어 누르며 그 목에 비수를 바짝 갔다 댔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탓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펄럭였다.
놀란 눈으로 날 보던 상대가 이내 코끝으로 가볍게 웃으며 눈매를 휘어 웃었다.
“난 분명 끌어 올려 달라고 했는데.”
조금의 긴박감도 없이 가벼운 어투였다. 상대는 곁눈으로 아래를 힐끔 일별하더니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이번엔 그대가 날 땅에 처박을 셈인가? …아우의 말대로 정말……, 그 사형에 그 사제군.”
아까 한 ‘여러 번 땅에 처박히던데……, 설마 죽이진 않겠지?’란 말이 지금의 이 말 위로 오버랩되었다.
상대가 남여연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죽기 싫으면 분수 작동을 멈춰!”
내가 일갈하자마자 무게의 중심이 순간 뒤집히며 서로의 위치가 반전되었다. 나는 내 위에 올라탄 상대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글쎄. 아까 네 사제도 날 죽이진 못하던데.”
제 목을 겨누고 있는 비수를 눈짓하며 상대가 비소했다. 그런 그의 어깨 너머, 끝없는 창공에 작게 뿌연 먼지가 일었다.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가볍게 펄럭이는 백의가 보였다.
가늘게 수축된 청록색 동공과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빠르게 낙하해 오는 이는 우사였다.
두 사람의 무게로 추락하는 이쪽을 따라잡기 위해 허공을 박차며 날아온다.
날 보고 있던 상대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벌써 돌아왔군.”
다시 무게의 중심이 뒤집히며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 내가 위에 올라탄 형상이 되었다. 날 방패로 쓰려는 거다.
더 참지 못하고 그냥 비수를 휘두르려는 그때, 시야 가장자리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우사였다.
벌써 우리를 따라잡은 우사가 속도를 맞춰 벽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우사의 시선은 내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서로의 손목을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곧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상대의 손이 저절로 뒤로 꺾이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틀어지는 속도가 몹시 빨랐다.
다섯 개 손가락이 전부 꺾여 뒤집히자마자 우사가 벽을 박차며 날아와 내 곁을 스치며 말했다.
“놔요, 사형.”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상대의 손목을 놓기 무섭게 우사가 한 손으로 그자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펼친 손의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우사가 눈동자만 굴려 나를 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 청록색 동공은 또렷했다.
날 일별한 뒤 우사는 잠시 심호흡하며 허공에 발을 딛더니 상대의 얼굴을 움켜쥔 그대로 빠르게 쏘아져 내려갔다.
가공할 속도에 바람이 찢기며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우사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진 그다음 순간, 그 등에서 관통한 검 끝이 삐죽 튀어나왔다.
피에 젖어 가는 백의가 펄럭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아-!!”
쾅- 콰앙-!
뒤이어 아래에서 연이은 굉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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