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쾅-! 콰앙-!!
굉음이 울린 직후에 단전의 운공이 가능해졌다. 분수 작동이 멈춘 거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며 허공을 박차고 쏘아져 내려갔다. 허공답보를 펼쳐 순식간에 지면에 착지했다.
다시 내려온 아래는 엉망이었다. 감옥의 안팎이 구분 없이 골고루 부서져 있었다. 바닥은 군데군데 패여 있고, 창살은 우그러졌으며, 벽에는 깊이 패인 흔적이 있었다.
그 어지러운 한 가운데에 우사가 서 있었다.
내게 등을 진 채 서 있는 우사의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
내 기척을 눈치챈 우사가 비스듬히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사형.”
나를 부르는 우사의 어깨 너머 암벽에 그자가 박혀 있었다. 그새 얼마나 쥐어 터졌는지 걸레짝이 되어 있다.
변용술이 풀린 얼굴은 남여연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암벽에 박힌 놈이 피를 토하는 순간,
“사형.”
우사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리로 시선을 돌리자, 한 팔로 허리를 감싼 채 한쪽 무릎을 굽혀 앉는 게 보였다. 팔로 감싸고 있는 부분에서 피가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검에 찔렸었지. 우사의 등을 관통했던 검 끝과 피로 붉게 젖어 들던 백의를 상기했다. 벽에 박혀 있는 자의 상태가 너무 위중해 보여서 잠시 잊고 있었다.
다급히 우사에게 다가가 그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많이 다쳤어? 어디 한 번 봐봐.”
그 말에 우사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상처를 가리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리자, 붉게 물든 백의가 드러났다.
“……피가 많이 나요.”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우사가 말했다. 동시에 뒤의 벽에 박혀 있던 놈이 피를 한 움큼 토했다.
“쿨럭-! 커헉-!”
무시하기엔 소리가 너무 요란하고 컸다.
우사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바닥을 짚고 있던 손끝을 까닥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아든 돌이 놈의 머리에 명중했다.
따악-!
명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돌에 맞은 놈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대로 기절한 거다.
“……뭐 한 거야?”
어이가 없어서 묻자 우사가 내 시선을 피했다.
몸이 이렇게나 다쳤는데 이상한 데 힘을 쓰며 장난이라니. 역시 애구나 싶다가도, 아까 전, 낯설게 느껴졌던 우사가 마음에 걸렸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 나이대의 우사는 내 눈치를 잘 보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난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아까 소매치기의 목을 졸랐던 것도 그렇고, 저놈의 손가락을 꺾던 것도 그렇고. 혹시 내가 그간 우사를 ‘잘못’ 봤던 걸까?
아니, ‘잘못’ 봤다기보단, ‘덜’ 알고 있었다는 쪽에 더 가깝겠다.
같은 사물을 대하더라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시점과 관점을 갖고 보기 마련이다.
‘사형’으로서 내가 보는 우사가 있고, 남들이 보는 우사가 있겠지. 그 둘이 다르다 해서, 그 둘을 다 알지 못하는 게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덜’ 알고 있는 거지.
나는 그간 우사를 덜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제 와 ‘내게’ 우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나를 대할 때의 그 모습은 여전하다.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우사는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사제다. 이번엔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이면이 보였던 것뿐이고.
“……함부로 힘쓰지 말고 쉬어.”
일단 우사를 타이른 뒤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남해검문의 지하 감옥에서 이렇게까지 소란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게 찾아오는 간수 하나 없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다시 둘러보니 여기에 갇혀 있는 것도 우리뿐이었다. 시체도 없는 걸로 보아, 애초에 호위나 간수도 없었던 것 같다.
남여연이 투덜거리면서 했던 말들이 순간 생각났다.
‘이렇게 거창한 곳에 가두다니. 형님 수완도 대단하네.’
‘그 사형에 그 사제였을 줄이야.’
‘너희들이 빙옥에 갇힌 게 형님의 작품인 것도 그런 쓸모 때문이라고!’
그리고 저기 벽에 박힌 채 기절한 놈이 한 말도.
‘아우의 말대로 정말……, 그 사형에 그 사제군.’
남여연과 비슷하면서도 닮지 않은 얼굴. 누군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남소위일 거다.
남여연의 형인 남해검문 후계자. 남소위.
남소위는 처음부터 나와 우사 간의 사형제지연을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로 짚이는 건 두 개 정도다.
첫 번째, 남여연에게 남소위의 감시가 붙어 있었던 거다. 이 가정이 맞다면 남여연이 감옥 안에서 한 말인 ‘그 사형에 그 사제군’을 남소위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도 대충 설명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처음부터 남소위와 남여연이 한 패였을 가능성도 있다. …있지만, 그럴 확률은 현저히 낮다.
남여연이 지금까지 한 말에 따르면 이 빙옥은 남소위의 소관 같은데, 제 손안에 들어온 이를 가지고 짜고 쳐서 속일 것까지야 있었을까.
그러니 전자에 중점을 두고 남소위를 살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남소위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로 향했다. 처음부터 저게 신경에 거슬렸다.
“가져올까요?”
우사가 내 시야 안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마주한 시선이 올곧다. 청록색이었던 동공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사에게도 물어볼 게 있었지.
“백아. 처음에는 분명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왜 갑자기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던 거야?”
내 물음에 우사가 멈칫한다. 그런 우사를 찬찬히 살펴봤다. 이제 보니 옷자락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양손에도 피와 흙이 엉긴 채 메말라 있다.
내가 자신의 손에 시선을 두자 소매 안으로 슬그머니 숨긴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맨손으로 땅을 판 것뿐이니 별거 아니에요.”
“뭐?”
“……내려온 후, 이곳에 깔려 있는 기관 장치 중 하나가 작동하며 저를 바깥으로 튕겨 냈어요. 근처에 호수가 있는지 그쪽으로 나갔는데, 다시 돌아올 길이 요원해 호수 근처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파고 내려왔어요. 이 빙옥이 자리한 곳이 호수와 접한 산맥 안쪽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사형.”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우사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그럼 남여연도 같이 튕겨져 나간 거야?”
“음……. 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우사가 두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 당시의 기억을 되뇌는 듯하다.
곧 우사가 말했다.
“남여연은 제가 손쓸 새도 없이 호수에 빠졌어요, 사형.”
“…….”
“…구해야 했을까요?”
“피치 못할 상황이었잖아. 됐어.”
내 말에 굳은 표정이 조금 느슨해진다. 나는 그런 우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줬다.
“어쨌든 늦지 않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기고 그만 쉬어.”
“…….”
“그런데 그 모습 유지하기 힘들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며 우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긴 소맷자락이 아래로 늘어지며 하늘거린다.
“들어올래?”
나를 올려다보는 우사의 시선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가 내민 손에 닿았다. 정확히는 손아래의 벌어진 소매 틈을 보고 있었다.
곧 우사는 작은 뱀으로 변해 내 손을 타고 소매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한동안 꾸물거리더니 슬금슬금 안쪽으로 더 들어온다. 그 감촉이 간지러워서 피식 웃자, 거기서 멈추곤 더 움직이지 않았다.
우사가 들어온 팔을 등 뒤로 돌려 뒷짐 진 채 남소위에게 걸어갔다. 굳이 기척을 숨기지 않고 다가가 그 앞에 마주 섰다.
거침없이 손을 뻗어 남소위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부터 잡아 뜯었다. 이게 뭔지 자세히 볼 생각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