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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22화 (22/141)

<22화>

대뜸 내력을 끌어 올려 목걸이에 기[氣]부터 밀어 넣어 보았다. 그러자 목걸이에 꿰여 있는 구슬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퍽-, 퍼억-!>

무언가를 치는 듯한 둔탁한 타격음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이… 무식한… 쿨럭-. 그만 때…, 저리 꺼져! 쿨럭-! …뭐야?! 그 자식 어디 있어?! 빙옥의 기관 장치를 만든 건 형님이라 그 근방 기관에 빠삭하니, 되도록 형님이 다른 기관을 작동하지 못하게끔 방해하라고, 그렇게 조심하라 했는데! 잘난 척하며 나서더니 별거 없잖아! 결국 같이 튕겨져 나가기나 하고!!>

남여연의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다가 이내 구슬에 금이 가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뭐야? 왜 갑자기 고장 났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소매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혹시 우사는 이게 고장 난 이유를 알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우사가 바로 시선을 돌려 내 눈을 피했다.

……설마?

“……목이 가볍네.”

막 우사를 추궁하려는 때에 벽에 박혀 있던 남소위가 중얼거렸다. 그새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눈을 완전히 뜨지 못하는 듯했다.

빙옥의 까마득한 천장에서부터 흙먼지와 돌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남소위가 박혀 있는 벽의 균열이 점점 깊어지며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딛고 서 있는 지면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낙석이 많아지는 게 아무래도 붕괴의 전조 증상이다.

위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이 아까 우사가 팠다던 그 구멍인가 싶었다. 점점 아래로 들어오는 빛줄기의 수가 많아지고 그만큼 지진도 강해졌다.

그 진동에 벽에 기대어 있던 남소위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앉을 자세를 잡는 그는 정말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하아-.”

남소위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표정에 탈력감이 짙게 배어 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연의 혼으로 강령술을 한다고 들었는데.”

여태 알게 모르게 속에서 맴돌던 말이 끝내 튀어나와 버렸다.

“말이 좋아서 혼에 남은 기억의 잔흔을 보겠다는 거지, 실상은 그 혼을 소생시키려는 거잖아. 소생한 혼은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영향력을 갖게 될 텐데. …그게 뭔 줄 알고 불러들이려는 거야?”

내비치는 빛줄기에 깨진 목걸이를 이리저리 비춰 보며 말했다.

“뭐?”

남소위가 반문했다.

나는 구슬에서 느리게 시선을 떼, 앞에 주저앉아 있는 남소위를 내려다봤다.

“오연은 선인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남소위의 반문은 사방에서 이는 진동 소리에 먹혔다. 떨어지는 낙석의 크기가 점점 커지며 그 수가 많아졌다. 여기에 더 있다간 그대로 매장될 판이다.

그만 나갈 길을 모색해 보려는 그때, 남소위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이미…… 시작됐어.”

남소위는 내가 아닌, 내 어깨 너머의 어느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하늘과 가장 가까운 선인의 혼을 쓴다면 얼마든지 입을 열게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네 말대로 시신들에게 닿은 그 기운이 맑은 선기가 아니라면…….”

남소위가 보는 방향을 따라 나도 비스듬히 몸을 돌렸다. 벽 가운데에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고, 그 날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직감적으로 저것이 아까 우사의 몸을 관통했던 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전부 악귀가 될 거다.”

남소위가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동시에 우사가 내 소매 안에서 나왔다. 다시 사람 모습으로 변한 우사는 등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남소위를 보며 나는 내 허리를 끌어안은 우사의 팔을 느꼈다.

다음 순간, 벽에 박혀 있던 검을 중심으로 커다란 진이 생겨났다. 복잡하게 중첩된 진이 한 번 크게 진동한 순간,

콰앙-!!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검이 박혀 있던 벽에서 수십 개의 사람 팔이 튀어나왔다. 벽을 뚫고 나온 팔들이 버둥댈수록 벽의 균열이 깊어지더니 감옥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사의 피가 제물이 되어 오연의 혼이 강령술에 반응한 거다.

남소위는 그 무너지는 벽과 버둥대는 팔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 거침없는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봤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사형.”

우사가 그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알고 있었어? 저건… 대체…….”

“몰랐어요. 설마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데 쓸 줄이야. 저 시체들이 스승…, 오연의 혼을 전부 나눠 흡수했을 테니 저것들을 전부 죽이면 강령술에 쓰인 오연의 혼은 소멸될 거예요, 사형.”

‘소멸’.

‘소멸’이라. 오연에겐 더는 상관치 않겠다고, 오히려 귀찮게 생각했던 게 아까 전인데. ‘소멸’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미묘하게 울렁거렸다.

“이대로 둬도 이곳이 무너지면서 시체들은 알아서 죽을 거고, 그때엔 오연의 혼 역시 마찬가지로…….”

우사는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없이 앞을 주시하다가,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우사의 팔을 한 손으로 감싸 잡았다.

“내 소매 안으로 돌아와.”

내 말에 우사가 살짝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기대며 답한다.

“……네, 사형.”

다시 뱀으로 변해 내 옷깃 사이로 들어온다. 내의와 겉옷 사이로 들어간 우사를 직접 내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

“잘 붙잡고 있어.”

정면을 노려보며 나직이 말했다.

아까 남여연의 말에 멈칫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걸 떠올리면 지금의 내 행동은 예견된 거나 마찬가지다.

‘오연과의 사이에 어떤 골이 있는진 몰라도, …그래, 하다못해 너희가 정파라면 선인을 욕보이는 걸 원치 않을 거 아니야? 도의를 안다면 멈춰.’

남여연이 내게 한 말이 귓전에 울린다. ‘도의’란 단어에 흔들린 게 아니다. ‘선인을 욕보이는 것’이란 말이 내 발목을 잡아챘다.

오연은 이미 스스로를 욕 먹이다 못해 타락한 상태였다. 제자의 피로 목욕하는 지경이었으니까. 그래서 남소위에게 오연이 악인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난 아직, …정말로 오연을 모르겠다. 그가 어떤 군상인지.

그래서 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에게 아직 욕보일 것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내 말대로 정말 악인이 되었다면, 그가 만들어 냈을 참극을 확인하고 싶다.

“아직 남소위에게서 알아내지 못한 것들이 많아.”

우사 보고 들으란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의 내 행동에 그럴싸한 명분을 심는 거였다. 그래야 겉으로나마 내 행동이 납득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 그럴싸한 명분에 기대고 싶었고.

그래, 이건 나 자신을 위한 핑곗거리였다.

왜냐하면 오연에게 아직까지도 얽매이고 마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여기에 왜 이렇게 시신이 많은지 알아야겠어. 그리고 오연의 혼을 이용해서까지 그들을 되살려 낸 이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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