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회귀 직전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와 후회였다. 특히 후회하는 마음이 가장 크고 강했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빌었었는데……. 그래, 분명 빌었었다.
그런데 누구한테 빌었지? 누가 나를 위해 금술인 ‘회귀’를 발현시켜 준 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눈 바로 아래까지 내렸다. 그러자 시야 안으로 우사가 들어온다.
우사는 내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조금 놀랐다. 방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상념이 놀라움에 희석되며 사라졌다.
덜컹-
다음 순간,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다급히 두 손을 뻗어 우사를 들어 안아 내 무릎 위에 앉혔다.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상처가 아픈 것 같아서요, 사형.”
상처? 상처가 아프다고?
최근 우사가 다친 곳은 배다. 빙옥에서 남소위의 검에 찔린 부분이 덧난 건가?
바로 시선을 내려 우사의 복부를 봤다.
…음. 겉으로 보기엔 잘 알 수 없어서 웃옷을 단정히 동여매고 있는 허리끈으로 손을 가져갔다. 옷을 벗겨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우사는 그런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처음엔 손등에 살짝 닿기만 했던 우사의 손끝이 점점 은근히 겹쳐진다.
내 손을 살짝 밀어내는 듯했던 우사의 손은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서로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엇갈리며 깍지가 껴졌다.
우사의 손끝이 슬그머니 오므라지며 내 손을 잡아 온다.
이제 내 손은 우사에게 완전히 잡혀 있었다.
이러면 배의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는데.
우사는 우리가 깍지 낀 손이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한참을 그것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끝으로 내 손등을 조심조심 토닥여 보다가 아주 엷게 미소 짓는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니 한 손은 그냥 우사에게 내어주고 남은 손으로 허리끈을 풀어 버렸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우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조심스럽게 잡고 있던 내 손을 힘주어 꽉 잡는다. 순간 손등이 아작 나는 줄 알았다.
내가 설핏 인상을 쓰자 바로 힘을 푼다. 그에 가벼운 숨을 내쉬며 마주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줬다. 그러곤 다른 한 손으로 우사의 배를 더듬었다.
예상과 달리 상처는 거의 아물어 있었다. 굉장히 빠른 회복력이다.
그러면 사학당의 비극 때 굳이 늪에 안 빠트려도 됐던 거 아니야? 이 정도의 회복 속도면 말이다.
“상처는 잘 아물었는데. 어디가 아파?”
상흔이 남은 복부를 손끝으로 꾹꾹 눌러 가며 물었다. 나름의 진단이었다. 겉보기에 다 나았는데도 통증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다.
심각한 얼굴로 우사의 미끈한 복부를 보았다. 잔근육이 예쁘게 윤곽을 드리우고 있는 복부는 꾹꾹 누르면 누를수록 단단해졌다. 힘을 주는 모양이다.
“이제… 안 아파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우사가 말했다.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려다본 우사의 얼굴엔 선홍빛 열기가 흐리게 떠올라 있었다. 목덜미와 귀 끝도 붉다.
성품이 워낙 아정해서 복부를 드러낸 것 자체에 수치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사의 상태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되묻자 우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얼굴을 빤히 보며 기습적으로 복부 몇 군데를 빠르게 눌렀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우사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까보다 얼굴은 더 붉어졌지만 아픈 기색은 없었다.
“정말 괜찮아요, 사형.”
우사가 좀 전보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까 아프다고 한 건 엄살이었나. 하지만 우사가 내게 엄살을 부릴 이유가…….
아, 혹시 그런 건가? 내 기분이 저조해 보이니, 내 주의를 끌어 기분을 풀어 주려고 나름 애를 쓴 거라든가, 뭐 그런.
…그래, 그게 가장 말이 되는 것 같다.
확실히 기분도 환기되었고.
“다 안 나았으면 침 발라 주려고 했는데.”
쓰디쓴 기분을 감추며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마침 ‘상처는 침 바르면 낫는다’는 말이 생각나,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우사는 말없이 날 빤히 보다가 스르르 시선을 내리깔아 제 복부를 내려다봤다. 나도 우사를 따라 그의 배를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웃옷이 풀어 헤쳐져 있어서 그런가, 배가 추워 보인다. 괜히 배앓이하면 안 되니까 직접 다시 옷을 덮어 줬다. 그리고 손수 허리끈까지 매주려다가, 아직 한 손이 우사에게 잡혀 있단 걸 깨달았다.
“백아, 이거…….”
맞잡은 손을 흔들며 좀 놔 보라고 말하려는 순간, 우사가 갑자기 내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서 끈을 가져가 스스로 허리에 묶은 뒤 내 맞은편에 앉았다.
왜 내 옆에 안 앉고?
다리를 꼬고 앉은 우사는 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허리끈을 여러 번 단정히 고치더니 슬쩍 시선을 들어 나를 본다.
“?”
마주치는 시선에 의아해하자, 우사가 바로 고개를 모로 돌리며 피했다.
“……이따 옆으로 갈게요.”
그리고 나를 보지 않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 거기가 편하면 그냥 거기 앉아도 돼.”
굳이 같이 안 앉아도 된다. 그런데 내 말에 우사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한쪽으로 꼰 다리의 발끝을 까닥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남여연을 열렬히 쳐다본다.
남여연은 반시체 같은 몰골로 죽상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 고뇌하는 미간에 골이 깊게 패였다.
우사는 남여연을 얼마간 보더니 이윽고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자리로 넘어와 앉았다.
“……어리광은커녕, 나는 형님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더는 형님에 대해 무엇도 알고 싶지 않았어.”
동시에 남여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까 전의 중얼거림보단 크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이제 와 어리광을 부리려 한들…….”
남여연의 두 눈에 눈물이 서린다. 두 눈 가득 차오른 눈물이 아슬아슬하다.
나는 남해문주 옆에 서 있었던 남소위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가 갖고 있던 주머니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게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수 없다.
“…형님은 죽었어. ……빌어먹을. 나는 이렇게 못 끝내. 나는 형님을 알아야겠어. 이대로는 내가, 내가 용납이 안 돼. 이렇게, 이런 식으로 보낼 순 없어. 그러니 절대로, 결단코,”
눈물이 흥건한 남여연의 눈에 결의가 서린다.
“나는 형님을 낯선 사람인 채로 보내지 않을 거야.”
나는 말없이 남여연을 응시했다.
…‘낯선 사람인 채로 보내지 않겠다.’라.
그 말에 필연적으로 떠오른 건 빙옥에서 봤던 환영이다.
내게 비질을 하라던 우사의 모습.
…확실히 굉장히 낯선 모습이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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