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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29화 (29/141)

<29화>

마차에서 멀리 나동그라진 남여연은 그가 안고 있던 검들과 함께 날아갔다. 날아가며 도중에 놓친 검들이 남여연이 나무에 처박히면서 그 머리 옆과 다리 사이에 박혔다.

그래도 전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얼굴이 희게 질린 남여연이 부들부들 떨며 제 몸을 연신 살핀다. 나도 같이 눈으로 남여연을 살폈다.

“위,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기껏 생각해서 선검도 따로 챙겼더니만……!”

“마차는 망가졌지만 그래도 대신할 선검을 구했으니, 이제부터는 어검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소리 지르는 남여연을 슥- 가리며 문 앞에 서서 유계가 말했다. 그런 유계의 등 뒤로 검 두 자루가 연달아 날아왔다. 뒤에서 남여연이 집어 던진 거였다. 남여연의 손을 떠나 쏘아진 검을 유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만 틀어 전부 피했다.

그를 스쳐 내게로 날아온 검을 가볍게 낚아채고 우사 역시 제 몫의 검을 쥐었다.

갑자기 선검이 생겼다는 건 우리를 습격한 이들이 선사란 건가.

받아 든 검의 옆면을 살펴보았다. 세가와 문파에서 지급되는 검에는 그 옆 날에 속한 곳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검의 옆면에는 ‘남해검문’이라고 투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너 방금 나 죽일 뻔한 거 알아?! 나니까 피했지……!”

남여연이 씩씩대며 걸어와선 외쳤다. 유계가 그런 남여연을 곁눈으로 일별한다.

처음 봤을 땐 그래도 뻣뻣하게나마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때가 극히 예외였던 것 같다.

무표정한 지금은 남여연을 잠시 일별할 때조차 표정 변화가 극히 드물었다. 분명 남여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질 않으니 알아챌 수가…….

혼자만의 생각이 너무 오래 이어졌나 보다. 내 시선을 눈치챈 유계가 나와 눈을 맞춘다. 곧 유계의 입매가 희미하게 호선을 그렸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자리 잡자, 풍기는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유계가 웃는다면 분명 처음 봤을 때의 그 뻣뻣한 미소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상대에 따라서 웃는 표정이 달라지는 건가?

“제게 할 말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주세요.”

유계가 내게 말했다.

“음. 별다른 건 아니고…….”

대놓고 물어보라 하니,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잖게 입을 열었다.

“방금 남 공자 보면서 무슨 생각 했어?”

내 질문이 예상외인지 유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남 공자의 선검을 피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검이 남 공자를 요행히 피했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라고-.”

차분히 이어지는 말에 나도 눈을 크게 깜박였다. 내 질문이 유계에게 예상외였던 만큼, 나도 유계의 대답이 예상외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코끝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속내를 몰랐던 건 남여연도 마찬가지인지 바로 쌍심지를 켜고선 유계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말 다했어?!”

버럭 소리 지르는 남여연에 유계의 미소가 금세 떨떠름해진다.

“내 사견일 뿐이니 남 공자가 괜히 신경 쓸 것까진 없습니다.”

미묘하게 굳은 낯으로 유계가 대꾸했다.

“지금 나보고 내 욕하는 거 잠자코 듣고 있으란 말이야?”

“이런 거 하나하나에 휘둘릴 것 없단 이야기인데. 남 공자는 말 그대로 공자님이고, 나는 고작해야 소매치기인데 이런 거에 일일이 반응해서 소리 지를 필요 없단 말이야 …요.”

“웃기지 마! 아예 대놓고 내 욕하겠다는 말이잖아!”

“쯧.”

유계가 혀를 찼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들었다. 끓는점이 낮은 남여연이 화르륵 타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둘을 구경하는 내 뒤로 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깨어날 거예요, 사형.”

우사가 내 곁을 스치며 마차에서 내렸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우사를 쫓았다.

먼저 마차에서 내린 우사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밀어진 그 손을 잠깐 응시했다가 이내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냥 내렸다. 우사의 시선이 나를 쫓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나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한 손으로 우사의 어깨를 짚었다.

“아까 이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잖아.”

무표정하게 굳으려는 낯에 미소를 그려 넣으며 우사를 돌아봤다. 우사는 고개를 정면에 고정한 채 눈동자만 굴려 나를 보고 있었다.

“응?”

내 물음에 우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어느새 살짝 내리깐 두 눈은 마치 순종을 표하는 것 같았다.

내리깔았던 시선을 천천히 바로 하며 우사는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낯빛이 유순하다.

“…네, 사형.”

“…….”

나는 우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뒤 그대로 곁을 지나쳤다.

마차 주변에는 선사 네 명이 쓰러져 있었다.

안 보고도 어떻게 알았는지 우사의 진단은 정확했다. 선사 네 명 다 ‘곧 깨어날 것 같은’ 상태였다.

최대한 상처 내지 않고 기절시키는 정도로만 마무리 짓고 싶었던 모양인데, 힘 조절이 깔끔하지 못했다. 이건 기절보단 어설프게 잠재운 수준에 가까웠다.

만약 오늘 찾아온 선사들이 조금 더 강했다면 오히려 역공을 당했을 거다.

한 곳에 대충 모아 둔 선사들에게로 걸어가 그 곁에 웅크리고 앉았다. 혈을 눌러 기절시키엔 남여연과 유계가 이미 그 방법을 쓴 후다. 같은 혈자리를 두 번 누르면 심맥이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쓸 순 없다.

마침 남여연에게 마음의 부채를 아주 약간 갖고 있던 터라, 조금 신경 써 주기로 했다.

이걸로 지난 일은 갚은 거야.

한 손에 쥐고 있던 선검을 반 바퀴 돌렸다. 손안에서 빙글 돈 검의 날 부분이 뒤로 향하고 손잡이는 위로 향했다.

일단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사부터 그 멱살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뭐 하려는,”

멀찍이서 지켜보던 남여연이 나서는 것과 동시에,

퍽!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 손잡이가 선사의 목 뒤를 정확히 때렸다. 그 충격에 선사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꺾였다.

좋아. 이 정도면 당분간은 일어나지 못할 거다.

“무슨 짓이야?!”

다급한 외침과 함께 남여연이 달려왔다.

남여연은 선사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이게 누군지 몰라? 남해검문 사람이잖아!”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여연을 보다가, 그 어깨 너머에 있는 이에게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우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오다가 문득 허리를 숙여서 뭔가를 줍는다. 짱돌이다.

“…그래서 굳이 수고를 더해 주는 건데.”

우사가 있는 쪽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수고?”

남여연이 미심쩍어하며 내 턱짓을 쫓아 뒤를 돌아봤다. 그 등 뒤에는 주워 든 돌을 한 손으로 던졌다 받길 반복하는 우사가 있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대의 지척까지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친히 때려 주는데. 당연히 큰 수고지. 가까이서 때리는 게 마음에 안 들면 말해. 멀리서 때린다는 선택지도 있으니까. 검, 아니면 돌팔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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