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너!”
남여연이 부들부들 떨며 바로 나를 돌아봤다.
“왜 때려서 기절시킨다는 선택지밖에 없는, 아니 애초에 왜 얌전히 기절한 사람을 두고 때리지 못해서 난리야?”
“내가 이유 없이 이러는 것 같아?”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꺾으며 반문했다. 내 반문에 남여연이 더 성을 냈다.
“그래!”
“왜?”
“그야! 처음에, 비가 내리는데 사제의 겉옷으로 혼자 비를 피하기도 했었고…….”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남여연과 처음 만났을 때 우사의 장포로 비를 피했던 걸 가지고 얘기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쳐지는지 남여연이 썩은 표정으로 날 질책했다.
여태 내게 유독 날 선 모습을 보였던 게 그 때문이었나. 이제 보니 그날 내가 보인 단면적인 모습이 토대가 되었던 거였다. 내가 보였던 일면이 남여연의 안에서 무지막지한 악인으로 자리매김한 모양이다.
하여간, 남소위 일로 그렇게 겪고도 여전히 학습 능력이 없다.
자신이 본 상대의 일면에 자신만의 잣대를 두고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토대로 상대를 규정짓는 것만큼 스스로를 기만하는 건 없다.
기만당한 삶은 진실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남소위에 관한 진실을 찾으려는 남여연의 지난한 상황처럼 말이다.
“흠.”
코끝으로 비소하며 짧게 말했다.
“뭐, 좋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면-, 남해검문 선사들이 남의 손 타는 게 싫은 남 공자가 직접 이 일에 솔선하는 걸로.”
내 말에 남여연이 인상을 쓴다. 뭐라 말을 하려 입을 뻐금거렸다가 만다.
내가 자리를 비키기 무섭게 남여연이 쭈뼛거리며 움직였다. 이 상황 자체가 뭔가 되게 미심쩍나 보다.
남여연은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선 선사들을 살폈다.
“…….”
미간에 다시 골이 패더니, 곧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지 눈매가 찡그려진다.
자신의 손과 이번에 얻은 선검을 두고 고민하는 남여연을 지켜봤다. 저 고민은 손날치기로 할지, 아니면 검 자루로 가격할지 일 거다.
보아하니, 맥을 짚는 방법을 또다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건 아는 모양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본다는 건,
“…….”
그에 관해서 더는 생각지 않기로 하고, 남여연을 일별했다. 그대로 남여연을 지나쳐 걸으며 우사와 눈을 맞췄다.
“백아. 남 공자가 제대로 하고 있나 좀 봐줘.”
나를 보고 있는 우사를 향해 말했다.
남여연이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시역이 필요하다.
“네, 사형.”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에 고개를 주억이며 유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걸음은 자연스럽게 유계 쪽으로 틀어졌다.
유계는 제 옷과 기절한 선사들의 옷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사들의 옷과 제 옷을 바꿔 입을 요량인 것 같았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유계와 남여연은 서로의 옷을 입고 있다. 이를 알 수 있었던 건 현재 유계가 입고 있는 옷에 놓인 수 때문이다.
옷깃 끝에 붉은 반원 문양 자수가 들어간 하늘색 무복은 남해검문 공자나 입을 의관이었다. 반면 남여연은 그와 정반대로 허름한 차림새으니, 누가 봐도 유계가 남해검문 도련님 같은 차림새였고, 반면 남여연은 허름한 누더기를 걸친 걸개 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어 나 또한 그냥 넘어갔었다. 둘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거라 지레짐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습격으로 인해 알아야 할 이유가 생겨 버렸다.
그저 모종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 지레짐작만 했던 그 일이 지금의 ‘습격’과 연관이 있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석연찮다.
처음엔 당연히 나와 우사를 목표로 한 습격인 줄 알았다.
무너진 빙옥과 그 안에서 발견되었을 생강시들. 그리고 남소위의 죽음.
일이 알려지고 난 후 곧바로 의심받을 인물은 그 감옥에 가둬 두었던 두 사람일 터였다. 바로 나와 우사.
그래서 처음엔 이 습격이 우사와 나를 노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애초에 선사들은 우리를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우사와 나는 계속 마차 안에 있었으니까.
남해검문 선사의 시야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둘 뿐이다. 마부석의 유계와 마차 지붕의 남여연.
더불어 이제 와 생각해 보건대, 빙옥이 무너진 직후 남여연이 취한 태도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엔 이런 일이 생기면 가문에 먼저 알리고 도움을 구할 텐데 그는 그보다 먼저 우리에게 함께 움직일 것을 제안했다. 심지어 우사가 남소위를 죽인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으면서 말이다.
꺼림칙한 의문 속에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남 공자와 유계의 옷차림이 서로 뒤바뀐 것 같은데.”
나름 은근히 흘리듯 말했지만, 아무래도 이제 와 짚어 말하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는 주제였다. 그래서 말하면서도 이 질문 자체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제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유계가 대답했다.
유계의 시선이 나를 비낀다. 내 뒤에 있을 남여연을 보는 건가.
잠깐 비껴 나갔던 시선은 곧바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남해검문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이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얼굴도 남 공자의 얼굴과 흡사하게 분장되어 있었고요.”
유계가 말했다.
“…이상한 낌새에 곧바로 처음 있던 장소에서 벗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호수로 떨어지는 남 공자와 사제분을 발견했습니다.”
‘사제’는 우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사와 유계는 아직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우사는 유계에게 아예 무관심했고, 유계도 우사를 무심하게 대했다. 우사를 부르는 칭호가 아예 ‘사제분’일 정도였다.
“사제분은 꽤 경황이 없어 보였습니다. 같이 떨어지는 중이었던 남 공자를 발판 삼아 높이 도약해 홀로 산으로 돌아갔고, 그 바람에 남 공자의 추락에 가속이 붙었습니다.”
유계의 시선이 깊어진다. 지난 일을 회상하는 거다.
나는 그런 유계한테 시선을 고정했다.
유계는 한 손으로 제 턱을 짚고선 무언가 고심 중이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 보다.
“쏘아지듯 호수 속으로 빠져버린 남 공자를 구했는데……, 남 공자는 절 처음 본 순간부터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직 분장을 지우지도 않았고, 옷차림도 바뀌었는데 말이에요. 그것에 의구심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뒤에서 남여연이 일어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음 나한테 직접 와서 해.”
등 뒤에서 남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한 시비조였다.
그에 비스듬히 몸을 돌렸다. 남여연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남여연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응? 갑자기 웬 신음 소리지?
빠르게 뒤를 돌아보니 우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제자리에 가만 서 있는 그는 느슨히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갖고 놀던 돌은 어디 갔는지 손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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