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우사는 팔짱을 끼고 서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언가 관찰하는 눈이다. …아니, 생각하는 눈인가?
“…결국 남소위가 사마외도의 길을 걸은 건, 자신이 죽인 사마외도들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네요, 사형.”
우사가 내게 말했다.
“…그들은 내가 그 시체들을 생강시로 만든 줄 알 거야. 형님에겐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지. 당연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 시체들에게 무언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 나뿐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남여연이 나직이 읊조렸다. 감정이 격앙되는지 끝에서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곧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형님이 알고 싶은 건 오연의 죽음에 관한 일일 거라고. 그래서 형님이 따로 강령술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당연히 오연에 관한 강령술일 거라 생각했지, …설마 정소양을 죽인 사마외도들을 되살릴 거라곤! 제길. 말도 안 돼. 하지만…. 정말 처음부터 그 사마외도들을 강령술로 되살릴 생각이었다면…, 대체 왜…….”
점차 힘 빠진 넋두리로 변해 가는 남여연의 자문자답을 듣다가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남소위가 생강시로나마 되살리려 했던 사마외도, 화호문. 그 한 가문을 몰살할 때 남소위가 그들에게 물은 죄목은 ‘사해필성 성주인’ 정소양을 납치한 죄였다.
기실, 화호문이 멸문에까지 이른 건 ‘정소양’이 당시에 ‘사해필성 성주’였기 때문이었다. 그 죗값으로 멸문당했으니, 그들의 죽음이 사해필성과 아예 무관할 순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강령술을 준비한다고?
처음부터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강령술 집행 장소가 혼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남소위가 몰랐을 리 없다. 분명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전부 다 신경을 썼겠지. 그들이 악귀로 되살아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오연의 혼을 그 수단으로까지 사용한 자였으니까.
그런 그가 사해필성을 강령술 장소로 선택할 리 없다.
모든 정황을 보았을 때, 오히려 강령술 장소는 처음부터 그 빙옥이 아니었을지 싶다. 거기엔 모든 게 갖춰져 있었으니까.
그러면 남여연은 왜 남소위가 사해필성에서 강령술을 집행할 거라 생각했을까?
심지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단순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남해검문에서 사해필성까지의 근방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남여연이 스스로 정보를 모았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남소위에게서 무언가를 들었을 거라 보기도 힘들고.
애초에 남여연이 남소위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우리 둘을 사해필성으로 데려가려 했었지.”
고심 끝에 불쑥 말을 내뱉었다.
일순 남여연이 멈칫하더니 동시에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도 그쳤다.
“분명 그때 강령술이 예정된 장소를 덮치는 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했었고. 한데 정작 강령술이 실제로 벌어진 건 빙옥이었지. 흠-. 아무리 봐도 정황상 사해필성은 아니지 않아? 안 그래? …이봐, 남여연. 네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거야, 아니면 우리한테 무언가 더 감추고 있는 게 있는 거야? 또, 그때 말한 ‘우리에게 바라는 도움’이 뭔지 이제는 확실하게 대답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을 이을수록 어투가 딱딱하게 굳으며 목소리가 싸늘해진다. 상황이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이 사해필성이니까.”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결국 사해필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남여연이 거래까지 제안하며 우리를 데려가려고 했고, 남소위가 죽기 직전 언급했으며, 오연의 혼을 가진 자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 -사해필성.
모든 것이 귀결에 다다르며 이르는 장소가 바로 사해필성이었다.
남여연이 미간을 찡그린 채 날 응시했다. 당혹감과 난처함이 얽힌 표정에 일순 방어적인 반항심이 드리워졌다가 곧바로 체념에 밀려 사라졌다.
주저하며 바로 대답하지 않는 남여연을 물끄러미 마주했다. 맞닿은 시선을 먼저 비낀 건 남여연이었다.
“애초에 오연의 혼은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말해.”
후지기수들이 오연의 혼을 나눠 가졌다고 해도 그 차례가 남여연에게까지 오진 않았을 거다. 그에겐 뛰어난 형이 있었으니까.
오연의 혼으로 해야 할 게 있던 남소위가 남여연에게 혼 조각을 나눠 줬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결국 가장 유력한 건, 남여연에게 제3자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사해필성의 그 장소를 흘리고, 오연의 혼을 나눠 준 제3자. …어쩌면 그 ‘제3자’가 남여연을 이용해 우리를 사해필성으로 데려오게 수 쓰는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런 자가 남여연의 뒤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형님의 친우가 내게 나눠 줬어. 그에 반응하는 자들을 데려오는 게 거래의 조건이었거든.”
침묵 끝에 남여연이 입을 열어 답했다.
“거래?”
설핏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정말 제3자가 있었을 줄이야. 뭐, 그럴 가능성을 높게 치긴 했지만 서도.
“그래. 그 거래의 대가로 내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알려 준다고 했어.”
“그 정보가 남소위의 강령술 장소인 거고?”
“……그건, …맞아. 더불어 그 거래의 대가로 화호문 멸문에 관한 비화도 알려 준다고 했어. …빙옥의 그 시체들은 전부 화호문 사람들이고, 내겐 화호문이 사마외도의 길을 걸은 이유를 알아야만 하는…, 그런 게 있으니까.”
“…….”
“애초부터 화호문 비화를 듣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너희를 사해필성으로 데려가려 했던 거야. 그래야만 그자가 내건 거래를 제대로 성사시킬 수 있고, 형님…, …남소위가 강령술을 집행한다는 장소 역시 그래야만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 …그자는 사해필성이라는 것 외엔 말해 주지 않았거든. 거래가 끝난 후에야만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 준다고 하고…! 제길!”
“…구체적인 장소?”
“그래! 나는 사해필성이란 것만 알지, 사해필성의 어디인진 몰라. 무슨 수로 아냐고. 혼자서 그 방대한 곳을 다 뒤질 수도 없고. 아무튼 난 강령술 장소가 사해필성이라고 하니까, …형님이 또다시 사해필성의 영웅으로 도약하려는 줄 알고. …그런 줄로만 알았지. 난, 그렇게 믿었어.”
내리깐 시선을 천천히 들어 다시 날 마주하며 남여연이 말했다.
“…이제 다 알았으니 너희는 함께,”
“그 ‘형님의 친우’란 자가 이걸 나눠 줬다면, 나머지 일정량은 그 ‘형님의 친우’란 자에게 있겠군.”
전부 남여연한테 주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남여연은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흠.”
짧게 침음했다. 내 의중을 읽지 못하겠는지, 그런 날 보는 남여연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곧 남여연이 다소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다 알았어도 너희는 나와 함께 사해필성에 가야 해. 그 대가로 이미 내가 가진 오연의 혼도 내줬으니,”
“갈 거야.”
빠르게 이어지는 남여연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그러자 날 보는 눈이 대번에 커진다. 이렇게 빨리 긍정할 줄은 몰랐단 눈치다.
“정말, 사해필성으로… 나와 함께 간다고?”
제가 제안해 놓고 믿기지 않는지 재차 묻는다. 그에 나는 이번엔 더 간단히 답했다.
“응.”
“……왜?”
그러자 도리어 남여연이 반문해 왔다.
“난 지금 너희들을 거래의 대가로 쓰겠다고 말하는 거야. 형님의 친우한테 너희의 신변을 넘길 거라고.”
“상관없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잖게 답했다. 그에 남여연이 미간을 찡그린 채 날 응시한다.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눈빛이었다.
“…형님의 친우란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한 건 없어? 내가 너희들을 사해필성으로 데려가는 것도 결국 그자 때문인데.”
“네 형과 친우 사이면 그쪽도 어느 가문의 후지기수겠지. 오연의 혼까지 들고 있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고. 그자 역시 강령술에 이용할 피가 필요한 거겠지. 그리고 그 친우란 자가 어떤 자인지는 내겐 안 중요해. 내게 중요한 건 그자에게도 오연의 혼이 있을 거란 점이야.”
말을 이으며 소매 아래의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마치 무언가를 움켜쥐는 것처럼 손끝을 서서히 오므려 꽉 주먹 쥐었다.
“나는 사해필성으로 가서, 그 남소위 친우란 자한테서 오연의 혼을 뺏어올 거야. 그다음엔 우리를 찾아 사해필성으로 몰려드는 후지기수들, 그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연의 혼을 전부 뺏어서…….”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모조리 없앨 거다.”
마침내 말을 끝맺었다,
내 말을 들은 남여연은 조금 질린 낯빛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넌 내가 남해검문의 유일한 후계인 줄 알 테니, 혹시라도…. 그래, ‘남해검문의 남여연’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걸까 봐 좀 그랬는데. 뭐, 보아하니 괜한 걱정 같네. 그래도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본래 남해검문 사람이 아니야.”
조금의 얼버무림도 없이 시원하게 말하며 남여연이 인상을 썼다.
“남해검문 문모(안주인)와 내 친모 사이의 지난 인연 때문에 남여연으로 살고 있지만…, …‘여연’이란 이름은 결국 ‘남은 인연’이란 뜻이고, 이제 그 남은 인연은 전부 끝났어. 남은 건, 내가 쫓기고 있는 신세라는 것뿐이야.”
차분히 이어지는 말들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나는 남여연의 눈가와 뺨의 눈물 자국을 찬찬히 본 뒤 시선을 거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계가 입을 뗀 건 바로 그때였다.
“남해검문 문주가 남 공자의 친부가 아닌 거라면,”
유계의 낯빛이 모호해졌다.
굳이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아도 모두가 뒷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정소양을 구하기 위해 남소위가 죽였다는 그 시체들. 남소위로 하여금 사마외도의 길을 걷게 만든, 그 생강시가 된 시체들이-,
“……내 친부는 죽었어.”
유계가 맺지 못한 말의 끝을 남여연이 직접 매듭지었다.
“형님이 내 친부를 비롯한 그 일가를 죽이고 사해필성의 영웅이 된 날, 나는 시체가 된 친부를 직접 빙옥에 안치했어. 그때 나는 이미… 그가 내 친부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형님도 알고 있었어. 알면서도 죽이러 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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