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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38화 (38/141)

<38화>

침묵하는 내게로 백아가 손을 뻗어 온 건 그다음이었다.

자신을 밀어냈던 내 두 손을 각각 양손으로 잡아 오며 백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사형의 곁에 있는 건 사형을 알고 싶어서였어요. …이 알고자 하는 마음은 사형을 이해하고 싶단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고요.”

백아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자신이 잡은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내 손을 보았다.

백아에게 잡혀 있는 손을 본 순간 기억 속의 반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부부라는 그 말과 내 손에 쥐여져 있던 피 묻은 천옥도 연이어 떠올랐다.

“……!”

순간 나도 모르게 잡혀 있던 손을 빼 버렸다. 그러자 백아가 곧장 팔을 뻗어와 다시 내 손을 잡는다. 서로의 몸이 바짝 붙었다. 날 물끄러미 응시하는 그 시선이 올곧다.

“…그리고 사형의 곁을 허락받으면서 마침내 알게 되었어요.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가 얼마큼 보여 주느냐에 따라 편협함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을요. 사형은, 백아에게 얼마큼 허락해 주실 건가요?”

날 바라보며 백아가 이어 말했다. 나는 그 시선을 일별하며 고개를 틀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더는 곡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백아가 답했다.

“알려 주세요, 사형.”

“…그래도 알려 주지 않으면. 네가 나를 곡해하든 말든 나는 상관치 않는다고 하면…….”

망설임 끝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마저도 말끝을 흐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끝맺지 못한 말의 나머지가 목 안쪽에서 맴돈다.

“그게 사형의 뜻이라면, 그 뜻 안에 있을게요.”

“……내 뜻?”

“네, 사형.”

짧은 대답과 함께 백아가 내 손을 놓았다.

…어? 이렇게 쉽게?

순식간에 허전해진 손에 당황하며 백아를 보자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비키며 내게 말한다.

“결국 그것도 제 욕심일 뿐이니까요.”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태도와 자세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딜 보나 백아는 지금 금세 괜찮아진 상태였다.

지난번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은 언제든 금방 괜찮아질 거라던 백아의 말이.

그 대화를 떠올리자 마음이 더욱 껄끄러워진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인상을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물의 도의가 제각각 다르듯, 속에 품은 뜻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각기 품은 뜻이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일 뿐. 어떻게 남의 뜻 안에 있겠단 말이 있을 수 있겠어. 나와 뜻을 일치시키고자 네 자신을 놓진 마.”

“…….”

백아는 말이 없었다.

흘끔 시선을 들어 백아를 보았다. 백아는 날 빤히 보고 있었다. 살짝 커진 눈의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그 눈에 즐거운 기색과 더불어 온유함이 어린 건 다음 순간이었다.

“사형이 제게 잘해 주신다는 거 알아요.”

침잠했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묘하게 산뜻한 목소리다.

“사형.”

백아가 재차 나를 불렀다.

“……응.”

왠지 멋쩍어져선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에 돌아온 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밖에 의원을 불러 뒀어요.”

의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앞에 선 백아가 옆으로 비키자 트인 시야로 앞의 겹문이 보인다. 언제부터 처져 있었는지 결계 하나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정면에 있는 겹문 바깥에서 기척들이 느껴졌다. 안팎의 기척과 소음을 차단하는 결계였나 보다.

“결계는 언제 쳐 둔 거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일찍이 쳐 뒀어요.”

그럼 의원들을 대체 언제부터 바깥에 세워 두고 있었던 거야? 질린 기분으로 기척들을 살폈다.

…이거 한둘이 아닌 것 같은데?

“몇 명이나 데려온 거야?”

“열 명이요, 사형.”

“여, 열 명?!”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백아가 겹문으로 시선을 줬다. 그러자 겹문이 스스로 열리며 그 너머의 의원들이 보였다.

“백아, 이건 너무…….”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어림잡아 진짜 열 명은 되는 것 같다.

“……날 엄청 많이 걱정했나 보네.”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목덜미를 매만졌다.

“걱정했어요.”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목을 매만지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아. 응.”

“…….”

“…사형인데 못 미더운 모습만 보이고. …괜히 신경 쓰이게 했네.”

한 손으로 백아의 어깨를 짚은 채 말했다. 곁을 스치며 어깨를 짚었던 손을 그대로 떼려 했다. 그런데 자연스레 떨어지는 그 손의 손목을 백아가 잡아 왔다.

돌아본 백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백아?”

내가 부르자, 가는 숨을 내쉬며 천천히 표정을 푼다. 살짝 찡그렸던 미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의원들한테 들어오라고 할게요.”

표정과 어투는 평소와 같이 아정한데,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손엔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다. 빤히 쳐다보자 눈을 맞춰 오며 엷게 미소 짓는다. 겉보기엔 평소랑 똑같은 백아다.

“……음.”

짤막하게 대답하곤 백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백아는 날 근처의 탁자로 데려가 의자에 앉혔다. 그러자 의원들이 기다렸단 듯 일렬로 들어와 섰다.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의원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묘하게 경직되어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 감도는 긴장감에 나까지 덩달아 불편해졌다. 그때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뒤로 백아가 섰다.

이로써 앉아 있는 건 나뿐이었다. 앞에 무려 열 명의 의원까지 세워 두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마주하니, 새삼 그 열 명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실감 났다.

“일단…, 이 중에 한 분이면 될 것 같은데.”

“사형.”

등 뒤에서 바로 제지해 오는 염려 가득한 목소리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릴 뿐 말을 물리진 않았다.

“감사하지만, 정말 한 분이면 됩니다.”

이것도 사형으로서 사제의 걱정을 아예 무시할 수 없어 한 명인 거지, 본래대로라면 한 명도 필요 없다.

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하며 말했다. 의원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다가 내 뒤로 슬며시 시선을 모은다.

…내 뒤? 지금 백아를 보고 있는 건가?

하기야, 저 의원들을 데려온 게 백아이니…, 잠깐 그럼 백아는 무슨 수로 저만한 의원들을 다 데려온 거야? 수중에 돈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사해필성에 연고가 있었을 리도 없는데.

“그게 사형의 뜻이라면.”

돌아보며 물으려는 찰나, 백아가 말했다. 그러자 의원들이 다시 저들끼리 재빨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일제히 공수를 한다. 몇몇은 공수를 하는 자세 그대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곧 방을 가득 채운 의원들이 사라지고 가장 후미에 서 있던 의원 단 한 명만이 남았다.

“그럼 소인, 문곡이 귀인의 맥을 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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