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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41화 (41/141)

<41화>

회귀 전후를 기점으로 해서 우사를 대하는 내 마음속 거리감이 달라졌다. 같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마음속 거리감이 각각 다르니, ‘우사’와 ‘백아’를 별개의 인물로 인지하고 그게 상대를 부르는 명칭에서 나타나 버렸다.

‘우사’는 스승님이 지어 준 이름이고, ‘백아’는 내가 지어 준 이름이었으니까.

‘백아’란 이름이 본래는 우사가 저 스스로 지은 이름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번엔 내가 부여한 이름이었다.

내가 지어 준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 의미를 부여했나 보다.

속으로 지었던 쓴웃음은 이내 조소로 바뀌었다. 웃기는 일이다. 정작 ‘백아’란 이름을 지어 줬을 땐 별 의미 없다고 딱 잘라 생각했으면서, 속에선 알게 모르게 의미를 담고 있었다니.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내 물음에, 백아가 눈꼬리를 내리며 짐짓 처연한 표정을 짓는다.

“…죄송해요, 사형. 하지만 사형을 위한 일이었어요.”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왔다. 매서운 어투에 숨겨진 ‘주제넘다’란 속뜻을 백아가 못 읽었을 리 없다.

백아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곧 차분히 말문을 열었다.

“…단순히 맥을 짚는 걸로 알아낼 수 없다는 건, 본신(인간의 본원)보다 더 깊은 곳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막힘없이 이어지는 목소리에 긴장의 기색이 서려 있다.

“그렇다면 몽경(내면의 세계)을 읽는 방법밖에 없어요.”

백아가 말을 끝맺었다.

내리뜬 백아의 긴 속눈썹 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 모습이 퍽 가련해 보여, 미간을 설핏 찡그렸다.

백아가 말했던 ‘읽는다’와 ‘나름의 맥을 짚는 법’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내 몽경을 직접 살피겠단 뜻이었다.

“…허락받지 않고 멋대로 사형의 몽경에 들어와서 죄송해요. 하지만…….”

다시 시선을 들어 날 직시하는 그 눈에 결의가 서려 있다.

“제게도 허락해 주세요.”

백아가 말했다.

“…당장 여기서 나가.”

그런 백아에게서 등을 돌리며 답했다.

백아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지독히도 거북하다. 그는 내게 있어, 내 속내를 가장 감추고 싶었던 상대였으니까. 그러니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그에겐 무엇도 보이고 싶지 않다.

이 안은 온통 결점투성이니까.

…정말, 엉망진창이다.

이 엉망인 곳에서 백아는 도통 물러갈 생각을 않는다. 제자리에 멈춰 선 그 기척에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나가!”

백아에게서 등을 진 채 외쳤다. 높아진 목소리 끝이 거칠다.

“…사형.”

나를 부르는 백아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흔들린다.

“왜 제겐 허락되지 않는 건가요? 저는 그저 사형을,”

“그래, 사형.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사형이니까!”

비스듬히 몸을 돌려 백아를 돌아봤다. 백아는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음 비슷한 걸 지었다.

감정이 거칠게 동요한다. 단애약수론 가려지지 않는 감정이다.

“어느 사형이 사제의 짐이 돼? 날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당장-,”

“웃는 자가 있으면 제가 입을 찢을게요.”

“내 입을 찢겠다고?”

차갑게 비소하며 백아에게로 완전히 돌아섰다. 마주한 백아의 표정은 어둡게 굳어 있었다.

“…….”

침묵하던 백아의 시선이 순간 내 손으로 향했다. 피가 묻은 내 손을 본 백아의 동공이 일순 세로로 길쭉해졌다. 낯빛이 아까보다 더 파리해진다.

“사형, 그 피는…….”

반사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백아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양손을 얼른 등 뒤로 숨겼지만 이미 뒤늦은 일이란 걸 안다. 분명 다 봤을 거다.

백아의 가늘어진 눈매가 날 찬찬히 훑는다. 그 관찰하는 시선이 마음에 안 들어 인상을 썼다.

“…왜 사형에게 제 천옥이 있어요?”

잠시간의 침묵 끝에 백아가 내게 물었다.

“몽경은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바라는 것을 구현해 낼 수 있다던데, 혹시…….”

“아니야!”

백아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외쳤다.

“절대 아니야.”

왠지 한 번으론 부족한 것 같아서 재차 말했다.

“그러면요?”

자연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오며 백아가 물었다. 나는 그런 백아를 마뜩잖은 눈으로 지켜볼 뿐,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이대로 거리를 벌리며 대화를 피해 봐야 아까 말에 대한 긍정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백아에게서 더 멀어질 수도, 이곳에서 내쫓을 수도 없다. 아직 풀어야 할 이야기가 남았으니까.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지? …나도 내가 뭘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내가 이 일에 대해 묻고 싶은 심정이다.

대체 회귀 전의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중에, …나중에 좀 더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 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떼 말하는데 백아가 갑자기 냉큼 손을 잡아 온다. 하필이면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이다. 놀란 눈으로 보자, 백아가 내 뒤를 눈짓한다.

“우리 저기에 가까이 가 봐요. 사형.”

가까이 가 보자고?

내 뒤에는 붉은 혼례복 자락밖에 없는데, 설마 혼례복이 있는 쪽으로 가 보자는 건가?

‘잊혀진 기억’과 아주 밀접한 이 장소에 있는 혼례복. 그 혼례복이 상징하는 건 아마도 분명…….

‘세 번 절을 올리자. 천지께 한 번,’

‘부모에게 한 번,’

‘서로에게 한 번.’

‘이제 우리는 부부야, 형.’

잊혀진 기억을 통해 들었던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그때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저 혼례복이 상징하는 건 분명 나와 우사의 화촉지전[華燭之典]일 거다.

“아니, 잠깐만…!”

내 손을 잡아끄는 백아의 힘에 버티며 외쳤다.

“저 혼례복은 갑자기 왜?”

“이 공간에서 사형의 손에 있는 걸 제외하고 존재하는 거라곤 저 혼례복뿐이니 혼례복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면, 나머지의 존재 이유도 자연히 밝혀질 테니까요.”

나머지라면 내 손에 있는 것들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사형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도 설명이 되겠죠.”

내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백아가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언급했다. 내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백아의 손 아래로 덮여 있었다.

“마침, 사형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곤 짚이는 게 하나 생겼는데, 확인해 볼 수 있겠네요.”

백아가 잡고 있는 내 손을 가볍게 제 쪽으로 당겼다. 나는 백아에게 잡힌 내 손을 봤다. 백아가 내 손을 받쳐 든 덕분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잘 보였다. 반지에 음각된 무늬를 따라 박힌 보석이 어둠 속에서도 은은히 빛을 발한다.

“…짚이는 게 뭔데?”

내가 물었다. 반지에서 시선을 들자, 날 보고 있던 백아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회귀에 관한 선술을 찾는 이유가 뭐예요?”

내 질문에 돌아온 건 뜻밖의 물음이었다. 그 반문에 순간 손끝을 움츠렸다.

“갑자기 단애약수를 찾은 이유와 회귀에 관한 선술을 찾는 이유가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몽경 속 사형에게 이 반지가 있는 것도 이해 못 할 거 없죠.”

“…….”

“회귀 전의 내가 사형에게 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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