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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42화 (42/141)

<42화>

‘회귀 전의 내가 사형에게 줬을 테니까.’

마지막 그 말에 일순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대화의 흐름이 부지불식간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형, 제 생각이 맞아요?”

“…….”

“정말 사형이 회귀를 한 거라면…, 그래서 천옥을 갖고 있다면, 그럼, 회귀 전에 사형은 나를 죽였어요?”

‘잊혀진 기억’에서 내가 가장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백아가 짚었다. 그 목소리는 차분하고 고요했다. 지금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그 어떤 격앙도 없이 담담하다.

나는 백아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건 비밀인데, 천옥은 진신과 깊이 연관된 거라 그걸 잃으면 머잖아 죽게 돼요. 예외는 없어요. 반드시 죽음에 이르러요.”

“……!”

“문제는, 천옥을 잃음으로써 맞이하는 죽음이 천명(하늘의 운명)에 걸맞은 죽음이 아니란 거예요. 그러니 천계는 어떻게든 그 죽음을 수습하려 들 테고, 신군(천계의 군사)들을 내려보내겠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옥을 되찾아 제게 되돌려 주려고요.”

이어지는 백아의 말에, 이전에 ‘잊혀진 기억’을 통해 본 것이 생각났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나와,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우사.

그때 우사가 한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

‘안 찾을게.’

“천옥을 되찾으면 저는 살겠지만, 사형은 무간지옥에 떨어져 영영 고통을 받게 돼요. 그곳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요. 천옥을 빼앗는 순간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혀 평생 신군에게 쫓기게 되니까요.”

‘잊혀진 기억’을 통해 들었던 그 말과 지금 백아가 하는 말이 오버랩 된다.

내가 회귀한 이유가…….

내가 회귀 전 맞이한 죽음이…, 네가 나를 죽여서가 아니라…….

“무간지옥에서 받는 고통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에요. 그러니 제가 사형에게 천옥을 줬을 리 없어요.”

백아의 시선이 천옥을 쥐고 있는 내 손으로 향한다. 이 손에 묻어 있는 피는 분명 그의 것일 거다. 내 손을 일별한 백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충격에 얼어붙어선 색- 색- 숨만 몰아쉬었다.

내가 회귀한 이유가…… 네가 나를 죽여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죽여서라고?

‘잊혀진 기억’에서 본 장면들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이다.

절벽 위에 서서 나를 일별하던 그는 한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검을 쥔 채 절벽 안쪽으로 사라지던 뒷모습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땐 이미 신군에게 쫓기던 중이었던 걸까? 절벽 안쪽으로 사라진 그가 마주한 건 신군이었을까?

설마…, 뒤쫓아 오는 신군들을 혼자서 저지했던 건…….

손안의 천옥이 무겁게 느껴진다.

백아는 얼어 있는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끌며 반걸음 앞서서 걷는다. 나는 더 이상 제자리에서 버티지 않았다. 버틸 수 없었다. 버티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아에 의해 한참을 힘없이 끌려가다시피 걸었다. 이곳에서 백아를 내쫓아야 하는데,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백아의 것이다. 반지도, 천옥도, 그리고 손에 묻은 이 피조차.

어쩌면 저 혼례복 또한 그의 것일지도 모른다. 한 벌뿐인 데다가 그마저도 온전히 보이지 않는 붉은 혼례복.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백아에 의해 우리 둘은 이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하늘거리는 혼례복 자락은 이제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

뒤에서 백아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초조함과 긴장감에 손끝이 차갑게 식는다.

아직 ‘잊혀진 기억’을 전부 되찾지 못했다. 그래서 드문드문 끊긴 기억이지만, 백아의 말로 한데 이어지니 모든 정황이 뚜렷하다.

손에 묻은 피와 내 수중에 있는 천옥.

‘천옥은 진신과 깊이 연관된 거라 그걸 잃으면 머잖아 죽게 돼요. 예외는 없어요. 반드시 죽음에 이르러요.’

정말로 내가 백아를 해친 거다.

백아가 나를 해치면 해쳤지,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럴 가능성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목이 메며 뭔가에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입술을 달싹였다가 이내 꾹 다물었다.

천옥을 빼앗기면 백아가 죽는단 건 이제까지 몰랐다. 회귀 전의 나는 천옥을 앗아 가면 네가 죽을 거란 걸 알고서도 그런 걸까.

너는, 회귀 전의 내가 천옥에 관한 비밀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너를 죽이고 회귀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왜 내게 아무 말도…….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은,

‘사형, 언제나 저는 이미 괜찮아져 있을 거예요.’

문득 떠올린 그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기억 속 백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옆모습처럼 말이다.

“……내가 정말 너를 죽게 만들고 회귀했다면,”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 말했다. 목소리 끝이 미약하게 떨린다. 동요을 감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멈춰 서자 백아는 날 무리하게 잡아끌지 않고, 자신도 덩달아서 멈춰 섰다.

“나를 원망해야 하는 거잖아.”

“…….”

“왜 그렇게 담담한 거야? 아무렇지도 않아? 내게 전에 했던 말처럼 이미 괜찮아진 거야? 내가 너한테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식으로 날…,”

숨을 깊이 삼키며 말을 도중에 끝맺었다.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들을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사형.”

백아가 마주 서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그를 노려봤다. 잡혀 있던 손도 힘껏 뺏다. 그 바람에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빠졌다.

백아와 나 사이로 떨어진 반지를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우리 중 먼저 허리를 숙인 건 백아였다.

백아가 허리를 숙여 떨어진 반지를 주워서 내게 도로 내밀었다.

“회귀 전 제 죽음에 대해 ‘괜찮으냐’, ‘괜찮지 않으냐’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기엔, 이미 서로 간에 한 차례 응보가 오갔으니까요.”

“……응보?”

“사형은 제게 단애약수를 달라고 했고, 저는 사형에게 직접 단애약수를 건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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