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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45화 (45/141)

<45화>

사해필성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자고를 만났다. 결론적으로, 사해필성에서 출몰한다는 그 귀신은 ‘정소양’이 아닌 ‘자고’였다.

두 사람의 외모가 흡사해, 사람들이 언뜻 보고 착각한 거였다.

자고는 처음엔 본인을 남소위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며, 남소위의 행방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남소위는 사해필성 성주인 ‘정소양’을 구한 공로로 ‘사해필성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영웅 준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광기에 휘말려 현교당을 몰살하고 ‘정소양’을 죽인 뒤 자취를 감췄다. 그게 3년 전의 일이다.

나와 우사는 자고를 도와 남소위를 찾았다.

남소위가 발견된 곳은 사해필성의 지하에서였다.

그 지하에는 커다란 초상화 여러 점이 놓여 있었는데 그림 속 인물은 전부 같은 사람이었다. 초상화 속 여인은 행복하단 듯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붉은 혼례복 자락이 떨어져 있었는데, 본래엔 초상화를 가리는 용도로 쓰였던 듯했다.

자고는 초상화 속 인물이 자신의 모친이라고 했다. 남소위의 모친인 ‘유현’과 먼 사촌지간인 ‘유휘’.

남소위는 지하에서 그 초상화들을 마주한 채 죽어 있었다. 스스로 자결한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소위의 시신은 조금도 부패되어 있지 않았다. 혈색만 창백할 뿐이라 그저 잠에 든 것 같았다.

‘……형님은 내 친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형님, 형님……. 아연이 왔어요, 형님…….’

자고는 그런 남소위를 품에 안아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남소위의 시신이 풍화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고는 남소위를 제대로 한 번 품에 안지도 못하고 바람에 내주었다.

이제 남소위는 사해필성 어디에도 없었다.

그 지하의 정체는 뭐고, 혼례복은 왜 있었으며 그 내밀한 속사정이 무엇인지 알아내진 못했다. 이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줄 만한 인물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이다. 남해검문의 문주 내외는 물론이고, 사천당문의 사천청도 죽은 지 오래였다.

자고, 그러니까 남여연은 남소위의 죽음을 조우한 뒤 목소리를 잃었다. 실어증이었다. 게다가 주먹으로 연이어 바닥을 내리친 탓에 손도 망가졌다.

우리는 남여연만 지하에 남겨 두고 나왔다. 남여연이 그곳에 남길 고집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해필성 지하로 사람을 보내기로 하며, 외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사해필성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자고를 만났었을 때가 스무 살 무렵이다. 그 무렵의 자고는 단애약수를 찾아 은비여귀에게 팔아넘기고 있을 때다. 시기적으로도 남소위가 정소양을 죽이고 자취를 감췄을 때와 얼추 맞다.

자고와 함께 대작하며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객이 그렇게 없다면, 내가 다시 조문을 와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습니다.’

끝내 그 약속의 일부만 이뤄졌다.

남소위가 가는 길에 술 한 병을 함께 뿌려 줬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단 건 지키지 못했다.

이제 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알 길이 없으니, 그 지난 일들을 알 도리가 없구나. 나의, …우리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멍하니 상념을 이어 가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전체적으로 드는 붕 뜨는 듯한 느낌에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한 손을 들어 머리를 짚었다.

“어디 불편한 거야? 머리 아파?”

우사가 곁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머리가 아프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경계하며 매섭게 말했다.

“상관이야 있지. 내 형이니까.”

우사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그 태연한 어투에 일순 짜증이 치민다. ‘형’이란 호칭마저 우사에겐 일종의 장난질이란 걸 안다. 내 반응을 보며 놀리는 거겠지. 저 대단한 우사가 날 정말 ‘형’이라고 여길 리 없을 테니까.

…게다가 먼저 사형제지연을 끊은 건 우사였다.

“날 ‘형’이라고 부르는 게 재밌어?”

“…….”

“언제까지 이런 장난질을 할 건지 궁금해서.”

머리를 짚었던 손을 내리며 우사를 노려봤다.

눈앞의 인물이 예전의 그 우사가 아니란 건 안다. 나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도 잘 안다.

그걸 알면서도, 아니 알기에 더더욱 우사에게만은 절대로 존댓말이 안 나온다. 그런 마당에 ‘룡존’이란 존칭이 나올 리 없다.

그렇다 해서 천룡이 되며 바꾼 ‘백아’란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도 않다.

…그건 내 오기이자 아집이자, 하잘것없는 자존심이다. 정작 본인은 내가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전혀 신경 안 쓰는 눈치지만.

처음, 별 볼 일 없는 마을의 싸구려 객점에서 납치당했을 때는 정말 무서웠었다. 날 납치한 게 무려 우사였으니 말이다.

우사와는 지난 일이 있으니, 분명 날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재회한 그는 날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살의는커녕, 오히려 날 부릴 생각으로 만만해 있었다.

내 목에 드리워진 게 검이 아닌, 무려 빗자루였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말 다 했다.

내가 살기를 느꼈다고 여긴 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그때 너무 긴장한 것도 있었고 당시 우사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도 상당했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재회한 첫날 내가 맞이한 건 죽음이 아닌, 앞마당 쓸기였다.

우사가 기거하는 연회천전의 앞마당을 쓰는 데 하루를 다 보냈다. 앞마당이 워낙 넓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에는 우사의 옆에서 먹을 갈았고, 목이 마르다 말하면 차도 따랐다. 눈이 피곤하다는 말에 서책도 직접 낭독하고, 운기조식에라도 들어가면 반드시 그 옆을 지켜야 했다.

그뿐 아니라, 어디든 꼭 날 데리고 다녔다.

시중드는 걸로도 모자라서 외행에까지 말이다. 잠시도 날 가만두지 않고 1초라도 더 알뜰히 써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거다.

부려 먹으려면 부려 먹기만 하지, 그걸로 그치지 않고 입으론 날 ‘형’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며 장난질이나 치고. 진짜 어디 하나 거슬리지 않는 구석이 없다.

밉상이다.

“형은 왜 장난질이라고 생각해?”

우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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