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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49화 (49/141)

<49화>

유계는 그런 남여연을 힐끔 일별하며 살짝 입을 뻐금거렸다. 뭔가 말하려는 기색은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남여연의 것과 달리 유계의 가면은 얼굴 전체를 덮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계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곧 유계가 먼저 자리에서 나갔다. 남여연은 그런 유계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이쪽을 보고 있던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까지 점원에게서 등지고 앉아 있어서 몰랐다.

남여연의 시선이 탁자 위 식은 찻물에 닿았다가 다시 점원에게로 힐끔 향했다. 몸은 어느새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유계는 객잔 밖으로 나갔고, 남여연은 2층으로 통하는 계단과 객잔 입구를 번갈아 보다가 입구 쪽으로 걸음을 틀었다.

지금 괜히 2층으로 올라가 봐야 살벌한 분위기에 불편하기만 할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본 우사는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우사와 달랐다.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그랬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 쫄았다.

남여연은 인상을 구기며 입안으로 투덜거렸다.

한편, 남여연보다 한발 먼저 바깥으로 나온 유계는 객잔 입구 옆의 한적한 벽에 붙어 서 있었다.

번화한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유계의 시야에 스쳐 지나갔다.

거리에 시선을 두고 있던 유계의 눈이 문득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보자, 태촌산 검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해 준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음을 파고들어, 네가 살아 있는 걸 바라게 만들어야 한다.’

태촌산 검선은 유계의 친모의 스승이었다. 그는 친모가 죽기 전부터 태촌산에서 은거 중이었다.

유계가 태촌산 검선을 찾아간 건, 이제라도 자신의 것을 되찾고자 해서였다.

검선은 유계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하늘이 돕지 않으면 무엇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하늘이 돕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조언을 덧붙였다. 때마침 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떨어진 저 별과 가까운 자를 찾아라. 찾아서 네가 살기를 바라게끔 친분을 쌓거라.’

유계는 그때 떨어진 별이 선인 오연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아냈다. 그래서 오연과 가까운 자를 찾아내기 위해 남여연이 갖고 있던 오연의 혼 조각을 소매치기했고, 그 직후에 진연과 우사, 그 사형제와 마주쳤다.

목표를 찾았으니 훔쳐 낸 오연의 혼 조각은 적당한 때를 봐 남여연에게 몰래 돌려주었다. 멋대로 본인 얼굴로 분장을 시키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때 말이다.

사실 그때 완전히 정신을 잃진 않았었다. 자신을 갖고 장난질을 하고 있단 걸 알았지만 그냥 내버려 둔 거였다.

더불어 호수에서 남여연을 구한 건, 남여연을 징검다리 삼아 진연과 우사, 그 사형제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대로 수월하게 풀렸다. 문제는 자신의 목표가 되는 그 대상들이 만만치가 않다는 거다. 일단 마음에 들기 위해 최대한 온화하게 굴고 있긴 하지만, 원래 성격에 맞지 않아 어려웠다.

진연과 우사. 유계는 우선적으로 진연만 공략하기로 결심했다. 그 둘을 전부 공략할 것까진 없어 보였고, 그나마 진연이 자신의 말을 받아 줄 것 같은 틈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사란 자가 뭐 하는 자인지 몰라도 굉장히 거북스러웠다.

그래, 불편하다.

유계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우사가 쓴 법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법술인지 술법인지 몰라도, 보아하니 역시 만만찮은 대상이었다. 허공에서 의원들을 그렇게 꺼내다니. 게다가 그때 풍겼던 위압감.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선인이라기엔 뱀 같은 음습함이 있다. 제 사형에겐 온순하게 굴긴 하지만, 그 기질이 완전히 감춰지는 건 아니다.

…역시 남여연이 우사한테 더 까불지 못하게 자신이 잘 제지해야겠다. 괜히 불똥 튈 수 있으니까.

남여연, 그 자식은 제 분수도 모르고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굴고 있다.

“뭐 하냐?”

때마침 옆에서 남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계는 고개는 정면에 둔 채 힐끗 시선만 돌려 남여연을 보았다가, 이내 고개까지 그에게로 돌리며 선선히 답했다. 입가에는 예의 그 어색한 미소가 떨떠름하게 띠어져 있었다. 가면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거리? 아. 축제 말이야?”

유계가 자연스럽게 남여연의 옆에 섰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선 그 둘 사이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유계는 이 어색함이 불편해서 남여연을 힐끔 곁눈질했다. 남여연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평화롭네.”

남여연이 문득 말을 꺼냈다.

“아무 일도 없는,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 같아.”

그렇게 말하는 남여연의 목소리는 울적해져 있었다. 설마 또 우는 건가 싶어서 유계는 남여연을 힐끔거리다가, 자신이 이렇게 신경 쓰는 것 자체에 진절머리를 냈다.

옛날부터 불편한 분위기를 못 견뎌 했던 스스로의 성질이 새삼 짜증스러웠다.

쯧.

속으로 혀를 찬 뒤 유계는 그냥 자신이 이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유계가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자, 남여연이 그 뒤를 바로 쫓아왔다.

“어디 가?”

“따라오지 마세요.”

“뭐?”

남여연이 뒤쫓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혼자서 뭐 하게?”

남여연이 물었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살짝 가늘어진 눈매에 의구심과 의아함이 깃들었다.

“같이 가.”

좀 전보다 더 바짝 달라붙어 오는 남여연에 유계의 미간에 짜증이 서렸다.

“남 공자는 혼자 있지 못하나요?”

“아니.”

“그럼 왜…,”

“난 혼자 있어도 상관없는데, 내 신용을 위해서라도 널 혼자 둘 순 없지.”

남여연은 오른손 검지를 좌우로 까닥이며 말했다. 유계와의 동행을 가장 두둔한 게 본인이란 뜻이 담긴 말이었다.

그 말은 잘 알겠다만, 유계의 눈엔 남여연의 어투부터 행동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럼 알아서 따라붙든가요, 남 공자.”

그 말을 툭 남기곤 유계는 갑작스럽게 허공답보를 펼쳐 전각 위로 뛰어올랐다. 느닷없는 행보에 남여연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입매를 진득하게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거지?

“재밌네.”

뒤이어 남여연도 유계의 뒤를 쫓아 전각 위로 뛰어올랐다. 달이 떠오른 새카만 밤하늘 아래에 둘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그 아래론 붉은 등이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렸다.

몇 번 대치하며 투닥거리는 사이에 남여연이 유계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별 의미는 없었고, 머리카락이 길어서 가장 잡기 쉬웠다.

“잡았다!”

갑자기 잡아채인 머리카락에 유계는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쳤다. 남여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유계는 곧바로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돌려차기를 했다. 유계의 발이 남여연의 얼굴을 정확히 가격했다. 문제는 그 발차기에 남여연이 쓰고 있던 가면이 부서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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