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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52화 (52/141)

<52화>

비키라고, 나는 네 사형이라고 외치며 우사의 목덜미를 잡아채 내 뒤로 밀쳤다. 그리고 검을 들고 들개와 직접 마주했다.

두려웠지만 견디고 싶었다. 두려움을 억지로 삼키며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다.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고.

‘사형이 되어서 사제의 뒤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다니.’

하지만 막상 들개의 샛노란 동공과 마주하니 긴장감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동요로 인해 들고 있던 검 끝이 덜덜 떨렸다. 상대를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고 폐물처럼 굴었다.

우사가 나를 옆으로 밀쳐 낸 건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에, 내게 덤벼든 들개의 공격을 우사가 대신 받아 냈다. 얼굴에 상처를 입음과 동시에 우사는 들개들을 죽였다.

나는 우사의 얼굴에 난 상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허공에 흩어지던 그 핏방울들도.

‘네가 그러고도 우사의 사형이라 할 수 있겠느냐.’

우사의 얼굴에 난 그 상처는 마치 뒤집힌 눈물 모양 같았다. 그마저도 자연스럽게 치유되며 사라졌지만, 잠깐 동안 그 얼굴에 남아 있던 상처는…, 그 상처는…….

너를 지키지 못했다는 나의 수치였다.

내가 모자라서 네게 지켜졌다.

‘한심하구나.’

…어쩌면 그날이 기점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우사가 꺼려졌다.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그 애 보고 미물이라고 욕하며 구박했다.

‘연아, 정진하거라.’

그 기억들은 내 가슴 안에 뿌리를 내려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나 자체가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기반으로 자랐으니까.

그러니 사라지지 않을 그것들은 나를 안에서부터 계속-,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갉아먹고 있다.

‘연아, 정진하거라.’

나는 우사를 능가하는 힘을 갖고 싶다.

그 힘으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를 지켜서, 그날의 네가 입었던 상처를 만회하고 싶다.

“진연 님, 무엇이 궁금하신 건가요?”

“……아.”

비천정의 그 물음에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내가 방금 한 질문이 많이 이상하게 들렸을 거란 게 뒤늦게 인지됐다.

밀려드는 상념을 털어 내려 애쓰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그런데 비천정 대인이 저와 함께 동행하는 게 아니라 이 참새하고만 같이 가라고요?”

조금 어색한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화제를 돌리는 데 나름 성공했다.

비천정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코끝으로 가는 숨을 내쉬었다. 내 어색한 화제 돌리기를 짚어내지 않은 비천정의 낯은 전체적으로 초연했으나, 한 줄기 근심이 서려 있었다.

“저는 여기에 할애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찾느냐’라서……. 진연 님만 있으면 됩니다.”

곧 비천정이 답했다.

“…그래도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우사를 찾는 일 아닌가요?”

“물론 시급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를 찾는 데’ 직접 나서는 것엔 별 의의가 없을 테니 괜한 수고이기도 하고, 또 요 근래 요마(요괴와 마인)들의 동향이 수상해 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비천정이 손짓하자 참새가 내 어깨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럼 룡존 전하 일은 진연 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어깨에 앉은 참새에 잠시 시선을 준 사이 비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선술을 써서 순간이동한 거다.

방금까지 비천정이 서 있던 자리를 일별하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아직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럽지만 대충 이해는 됐다.

그러니까, 우사가 나와 절연한 건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거다. 내가 자신을 죽일까 봐 나를 멀리했던 거였어.

“…….”

그리고 사형제지연이 끊어진 지금은 그 시련이 사라져서…… 다시 나를 찾은 건가. 이제는 괜찮아졌으니까.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지.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다면, 아니, 애초에 그런 식으로 절연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처럼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우사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처럼 그날도 우사는 내게 아무 언질도 없이 떠나 버렸다. 내가 우사에게 그런 사형이었기에, 내가 아무 의지도 안 되는 그런…….

그날. 스승님이 죽고 우사마저 바로 내 곁을 떠난 그날 난 한순간에 혼자가 되었다.

‘……본받을 것 없는 사형의 곁에 어느 사제가 남아 있겠느냐.’

스승, 오연의 그 말을 끝없이 곱씹으며 나는 계속 혼자였다.

어깨에 앉은 새가 내 얼굴 바로 옆까지 쫑쫑 다가온다. 내 뺨에 머리를 비비는 새를 곁눈으로 봤다. 눈이 마주치자 짹짹 지저귄다. 그런 새를 보며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우사를 찾으러 가야지.

내게 아무 사정도 말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인연을 끊은 주제에, 다시 그 인연을 맺으려 하는. 그리고 이제 멋대로 숨어 버린 그 녀석을 말이다.

“…내가 저를 구한 순간, 언젠가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거란 걸 알았을 거라고…….”

그래도 난 내가 우사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우사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꼬인 생각을 하긴 했어도, 우사를 구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사를 제대로 구한 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유일한 순간마저 사실은 엉망진창이었단 걸 이제 알았다.

가슴 안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요동치며 술렁거린다. 두 손을 꽉 움켜 주먹 쥐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연아, 정진하거라,’

“제발…….”

환청에 대꾸하며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제발 좀 그만해요.”

근처에 내려 둔 멱리를 집어 들어 푹 쓰며 중얼거렸다. 멱리의 너울이 내 표정을 가려줬다.

* * *

우사가 있을 법한 곳이 짚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익숙한 늪지대에 가 봤지만 우사는 그곳에 없었다. 그다음 장소로 사학당이 떠올랐지만, 사학당은 내가 부숴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 그곳엔 빈터만 남아 있다. 학의전 역시 내가 없애 버렸다.

그때는 들끓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억누르지 못한 감정은 그렇게 표출되었다.

우사와 함께 어울리던 시절을 그렇게 전부 부수는 것으로 없애 버리려 했다. 하지만 잔해만 남은 터를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건 후련함이 아니었다. 여전히 넘쳐흐르는 울분만 꾹꾹 눌러 삼켰다.

그렇게 스스로 모든 걸 놓고, 모든 걸 잃었다. 남겨진 건 나뿐이었다.

삶의 의욕마저 놓고 죽어 가던 나를 우사가 자신의 곁으로 납치해 왔다. 자기 형편 좋을 대로 날 휘두르고 자신이 끊은 연을 다시 맺으려 한다.

나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고, 눈물을 보였다가, 또다시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형이 자꾸 스스로를 놓으려고 해서 데려온 거야. 내가 교화시키고 싶은 건 그 빌어먹을 짓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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