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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56화 (56/141)

<56화>

내가 먼저 권하자 사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너무 무덤덤해서 좋은 건지, 별로인 건지 잘 모르겠다. 날 좋아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이런 면에선 속을 읽기가 힘드네.

그래도 이 나이대면 다 저런 장난감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편한 대로 생각하며 사아를 데리고 장난감 좌판으로 향했다. 거리에 대고 떠들썩하게 호객 행위 하던 상인이 다가오는 우리를 보곤 반색한다.

“어서 옵쇼! 이야, 좋은 형님을 뒀네! 장난감도 사 주고, 참 형제 복 많다!”

우리가 같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형제지간으로 봤나 보다. 넉살 좋게 걸어오는 말이 싫지 않다.

“사아야, 이 중에 갖고 싶은 거 있어?”

이왕 인심 쓰는 김에 장난감도 하나 사 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아가 주저하며 장난감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나는 가판 위의 장난감들을 눈짓하며 눈웃음 지었다.

“형님 돈 많아.”

사아와 마주 잡지 않은 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를 구부려 맞댔다.

금낭(지갑)이 좀 얄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 장난감쯤은 얼마든지…… 는 아니고.

한두 개 정도는 사 줄 수 있다.

“가장 갖고 싶은 게 뭐야?”

눈에 띄는 장난감들 몇 개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건 어때? 아님… 이건?”

사아는 장난감을 들어 보이는 내 손만 눈으로 좇다가, 나와 맞잡은 손을 다시 꼼지락거렸다.

나는 가판 가장자리에 있는 뱀 인형을 집어 들었다. 초록색 종이를 접어 만든 종이 인형이었다. 그에 사아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어때요, 형님?”

되레 내게 묻는 사아에 뱀 인형을 찬찬히 살펴봤다. 마감 처리도 나쁘지 않고 나름 귀엽다.

무엇보다도 사아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장난감이다.

“이게 좋아?”

“형님은요?”

“내 눈에도…….”

사아 쪽으로 살짝 몸을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

“이게 여기서 제일 괜찮은 것 같아.”

한쪽 눈을 장난스럽게 찡긋거리며 말했다. 그런 날 올려다보는 사아의 눈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숙였던 몸을 바로 하며 뱀 인형을 사아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상인에게 값을 치른 뒤 다시 천천히 걸었다. 내가 준 뱀 인형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아를 곁눈으로 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난감이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다.

사아를 데리고 거리를 천천히 거닐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달짝지근한 냄새를 쫓아가니 닭고기를 파는 노점이 나타났다. 이미 그 앞은 닭꼬치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우리도 저거 먹을까?”

뱀 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사아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아에 싱긋 웃었다.

사아를 데리고 닭꼬치 노점 앞으로 갔다. 먼저 온 사람들 뒤로 줄을 서니, 우리 앞으로 세 명이 있다.

“닭꼬치 좋아해?”

“제대로 먹어 본 적 없지만 좋아해요.”

닭꼬치를 제대로 먹어 본 적 없다고?

“정말? 혹시 네 문파가 벽곡 위주인 건…….”

“예전에 사형이 먹어 본 적 없냐면서 비슷한 걸 해 준 적은 있어요.”

“사형이?”

“나무 한 그루를 얇게 쪼개서 꼬치로 잘 다듬어 가져오면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멀쩡한 나무를 꼬치로 다듬어 오라고 했다고? 그건 괴롭힘이잖아.

‘나무를 꼬치로 다듬어 와라’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래서 열심히 다듬은 다음에 사형과 함께 닭꼬치를 완성했는데, 전부 타 버렸어요. 순식간에 모닥불의 불이 옮아 붙어서 숯덩이처럼 변하는 바람에…….”

말을 잇는 사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린다. 어렵게 만든 닭꼬치가 숯덩이가 되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사아에겐 즐거운 추억인 모양이다.

무슨 애가 이렇게 순하지?

이 정도면 사형이 괴롭혔다며 원망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 사형을 좋아하며 따르는 느낌이다.

“결국엔 먹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어요. 사형은 제 나무 꼬치가 문제라고 했지만, 제 생각엔…….”

다시금 말꼬리를 끄는 사아의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났다.

“양념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양념에 불이 붙었거든요. 그런데 그 양념은 사형의 특제 양념이었어요. 제가 못 먹는 양념이 몇 개 있어서, 그 때문에 사형은 반나절 내내 주방에만 있었어요. 꼬치 굵기를 물어보려고 몇 번이나 사형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주방에 있었으니까…, 아마 내내 만드는 중이었을 거예요.”

사제만을 위한 특제 양념을 반나절 내내 만드는 사형이라.

“…그래? 아주 나쁜 사형은 아닌가 보네.”

“제가 아는 이들 중 가장 복잡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사실 아직도 사형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요.”

“…….”

“언제나, 언제든지… 절 구해 줄 거라는 걸요.”

진지한 목소리엔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사아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사아에게선 그 사형이란 자를 향한 신망이 느껴졌다.

“…이번 우횡산에선 널 구한 건 난데.”

짧은 침묵 끝에 내가 말했다. 그러자 사아가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형님이에요.”

이제 줄은 거의 줄어들어 우리가 바로 다음 차례였다.

“형님의 사제는… 형님한테 어떤 이에요?”

문득 사아가 물었다. 그 말에 곧바로 우사가 생각났다. 그가 내 유일무이한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제 내게 사제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때 사형제지연을 맺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인연을 맺고 있었을 때의 난 매일 심술만 부렸었다. 결단코 좋은 사형이 아니었고, 훌륭한 사형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사는 자신이 괴롭힘 받은 적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분명 괴롭힘이었다. 엉망진창인 내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부었으니까.

그 감정의 원천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제대로 된 사형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깔려 있었다 해도… 그건 옳지 않았다.

괴롭힌 당사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아는데 왜 우사 그놈은……. 저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괴롭혔다는데 왜 자꾸 자기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그 과거에 죄책감을 갖고 있는데, 갚을 수 없는 빚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내게… 갚아야 할 빚이 없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진 빚은 뭔데. 내가 네게 갚아 주고 싶은 건 대체 뭐인 건데.

“…걔는 나한테 의지하지 않아.”

잠깐의 침묵 끝에 말했다.

“내가 의지가 안 되는 사형인가 봐.”

뒷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거일 수도 있고. 예전에 바보 같은 짓을 한 적이 있거든.”

들개의 잔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우사의 뺨에 생겼던 그 상처도. 눈물이 뒤집힌 모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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