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몸 위로 곱게 덮여 있던 이불은 내 움직임에 밀려 이미 한껏 젖혀진 상태였다.
내가 왜 백아와 한 침상에 누워 있는 거지? 몽경에 들기 이전만 해도 분명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상황 파악을 다 하기도 전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침상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는 문곡이 보였다.
자리에 일어나 앉기 위해 다시 양 팔에 힘을 줬다. 두 손으로 침상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자, 내 어깨에 둘러져 있던 백아의 손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어깨를 잡아 줘서 정신이 들었나 싶었는데 무의식중에 한 행동인 듯했다.
자리에 앉아선, 백아의 위로 이불을 다시 곱게 덮어 줬다.
“소인이 법술에 능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원인불명으로 나란히 쓰러졌다고 소란을 피웠을 겁니다.”
문곡이 말하며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다.
“……우리를 침상으로 옮겨 준 게 의원 나리인가요?”
내 물음에 문곡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법술을 행하는 중의 술사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자세가 워낙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옮겼습니다.”
자세가 워낙 좋지 않았었다고?
나와 백아의 마지막 자세를 떠올려 봤지만 잘 모르겠다. 서로 지나치게 가깝긴 했지만 아주 불편하진 않았었다.
내 얼굴에 의문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문곡이 이어서 말했다.
“그대로 뒀으면 소협께선 분명 질식해 죽었을 겁니다.”
“질식?”
반사적으로 반문하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소협이 정신을 잃은 후에 귀인…, 그러니까 사제분도 따라 정신을 잃으며 소협의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 바람에 두 분의 몸이 겹치며 예기치 않게 서로의 입술이 포개졌고요. 소협께선 숨쉬기가 버거운지 입을 벌리며 숨을 쉬려 애쓰는 듯했지만 입술이 거의 먹힌 상태라 여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입만 더욱 깊이 맞물려 질식사가 머지않아 보였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순간 아연해졌다.
그러니까, 내 입술이랑 백아의 입술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도로 손을 뗐다. 내 입술이 내 것이 아니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때마침 옆에 누워 있던 백아가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진다. 왠지 백아를 보기 좀 그래서 그대로 후다닥 침상에서 내려갔다. 어지럼증은 이미 가신 지 오래였다.
“아마 소인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겁니다.”
문곡이 엄숙하게 말했다. 그런 문곡에 집중하려 애쓰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등 뒤로 백아의 기척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그럼 의원 나리가… 제 생명의 은인이겠군요. 감사합니다.”
“의원으로서 당연한 소임을 행한 것뿐입니다. 이제 두 분 모두 무사히 깨어났으니 소인이 물어볼 차례가 왔군요.”
나와 마주 선 문곡이 고개를 슬쩍 기울여 내 뒤를 본다. 아마 내 뒤에 있을 백아를 보는 걸 거다. 그 눈빛에 은근한 적의가 서려 있다.
“그래서, 귀인께선 사형분의 병에 대해 알아냈는지요?”
“아아-.”
무성의한 음성을 흘리며 백아가 내 옆으로 와 섰다. 나는 그 옆얼굴을 훔쳐봤다. 문곡을 응시하는 백아의 시선이 스산하다.
“사형의 사제되는 자로서 ‘그런 군상’일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을는지.”
“…….”
문곡을 향해 손을 가볍게 내젓는 백아는 무표정했다. 휘휘 내저어지는 손짓은 당장 나가라는 축객령이었다.
그에 문곡은 인상을 쓰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 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얼마간 머뭇거리던 문곡은 곧 입술을 깨물던 걸 멈추고 백아에게 물었다.
“…그전에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소인이 보기에, 아까 그 법술은 내면을 읽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혹 그걸로 영혼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까?”
조심스런 물음이었다.
“읽을 수 있다면?”
반면 백아의 목소리는 어딘가 심드렁한 기색이 짙었다. 이 대화 자체에 별 관심 없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가는 무엇으로든 치르겠습니다. 반드시 읽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의원 나리가 줄 수 있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데.”
“……제 목숨을 걸고 오늘 본 전부를 함구하겠습니다.”
그 말에 백아의 입매가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 입은 분명 웃고 있는데, 문곡을 노려보는 시선은 흉흉하다.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백아가 갑자기 곁눈으로 나를 본다. 동시에 문곡이 말했다.
“소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내건 건, 굳이 내걸지 않아도 귀인께선 언제든지 소인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단 걸 몰라서가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사형분의 은원에 기댈 뿐이지요.”
“…….”
내 은원에 기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자신은 내 생명의 은인이니, 나보고 알아서 자기 명줄 좀 잘 챙겨 달라는 거다.
“……우리가 몇 시진 만에 깨어났지?”
백아가 문득 말했다. 자연스러운 하대가 이젠 당연하게 느껴졌다.
“동이 튼 지 좀 됐습니다. 밤을 지새웠습니다만, 누가 물어봐도 제 선에서 알아서 둘러대겠습니다.”
“그럼…, 사형제지간이 참 각별하다는 첨언 정돈 좋아.”
괜한 첨언을 덧붙이는 백아에, 나도 모르게 그 옆모습을 흘끔 훔쳐봤다. 백아는 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왠지 가슴이 조금 술렁거린다.
“알겠습니다.”
문곡이 눈을 살짝 내리깔며 답했다. 백아는 팔짱을 낀 채 그런 문곡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무심했다.
“…소인이 바라는 건, 사해필성 지하에 잠들어 있을 영혼의 기억을 읽어 주는 겁니다.”
문곡이 말했다.
사해필성 지하. 순간적으로 ‘잊혀진 기억’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같은 여인을 그린 초상화들과 붉은 혼례복,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소위.
“현재 사해필성 지하에 혼령이 있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선술을 써서 묶어 두었다고 들었고, 지금쯤이면 오연의 혼으로 제령술을 준비 중일 테니 분명…….”
문곡의 목소리가 끝에 치달을수록 격앙되어 간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 끝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단순히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론 안 돼. 어딘가에 깃든 상태여야 해. 육신이나, 아니면 물건이라든지.”
백아가 말했다.
“그 지하실 전체에 깃들어 있을 겁니다. 그 공간 자체가 그 여자의 둥지나 마찬가지니까요. …그 여자의 기억을 읽어서 제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지금 문곡이 말하고 있는 그 여자는 아마 높은 확률로 남여연의 친모인 ‘유휘’일 거다. 그 지하실엔 그녀의 초상화들만 즐비했으니까. 그런데 설마하니 문곡의 부탁이 유휘의 기억을 읽어 달라는 것일 줄이야.
대체 왜일까.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한데, 백아는 궁금하지 않은 눈치다. 살짝 가라앉은 표정은 얼핏 무료해 보이기까지 했다.
“흠. 어떻게 할까요, 사형?”
백아가 기습적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를 돌아보는 그 눈과 딱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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